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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의 죽음은 1990년대 학번의 시대적 종언일 수도 있겠다. 그와 공유했던 그 많은 추억과 기억들은 그의 죽음과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그 시대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냥 눈물만 쏟던 후배들,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종주먹질을 하며 당신들 때문에 죽었다고 울분을 토하는 녀석. 조용히 술병의 술만 축내는 동기들, 모두들 그와의 기억 한토막을 어렵게 끄집어내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를 빼놓고 옛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무는 건가. 하나의 우주가 또 기억의 블랙홀로 소환되는 것일까. 너무나 많은 것을 공유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함께 하지 못했던 안타까움들이 여기저기서 한숨이 되어 술상을 떠돌았다. 


그는 광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냥 미친놈은 아니었다. 형편없는 늙은말을 타고 바보같은 종자 산초를 데리고 풍차를 향해 달려든 돈키호테가 그였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이기지 못할 적과 싸우고, 견디지 못할 고통을 견뎌낼 줄 알았던 그가, 어느날 연탄불을 피우고 홀로 쓸쓸히 죽음의 길을 갔다. 어떤 유언도 유서도 없었다. 다만 그의 삶을 통해 그의 뜻을 추측하는 현재의 우리만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그를 추모하고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데, 풍차를 향해 달려갔던 그는 밤하늘의 별이 되어 먼 여행을 떠났다. 


모르겠다. 앞으로의 세상은 지난 5년보다 결코 더 나아질 수 없을 것 같다. 울산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노동자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아들였다. 미친 세상에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과연 올곧은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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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최경남은 2012년 12월 22일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추모제가 민권연대 주관으로 치루어졌다. 

▶ 2012년 12월 27일 현재 최강서(한진), 이운남(현대), 이호일(한국외대)을 비롯해 이른바 절망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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