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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전 후배 Y를 만났다. 그 이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에 아들을 낳은 워킹맘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바로 아이를 갖게 되었지만, 아기를 어린이방에 맡기고 출근하는 일이 쉽지 않은가 보다.

이날의 만남은 후배의 고민 때문이다. 나와 만난 Y는 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눈물부터 흘리며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기를 어린이방에 맡긴지 얼마 되지 않아 아기는 그만 요도 간염에 걸려 신장까지 바이러스에 간염 되어 열흘이나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단다. 그동안의 마음고생 몸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아기는 얼마 전에 퇴원해서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어린이집으로 보내야 하는 Y의 마음은 더할 수 없는 상처로 아파하고 있었다. 

"아이도 잘 키우고 직장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없어요. 아이 키우는 것도 자신이 없고, 직장에서 일도 손에 안 잡혀요."
"그만두고 한 1~2년 쉬었다고 다시 일할까 생각도 해 보는데, 그럼 그 뒤에 다시 일자리가 나에게 주어질까 하는 걱정도 있고요."
"육아 휴직을 내려고 해도 나름 진보적인 출판사라는 우리 회사에서도 그런 선례가 극히 드물어서 말이에요. 또 일이 많아서 육아휴직 내는 게 괜히 눈치 보이고…"

내가 다니는 출판사는 교육관련 출판사이다 보니, 회사 신입사원 교육 때도 직원들에게 "아기 많이 낳는 게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할 정도다. 그러면서 육아휴직 등 보육과 관련된 제도나 복지는 전무하다. 실제 육아휴직을 건의했던 직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퇴사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지금의 정부와 하는 짓이 똑같다.

워킹맘 중에서 육아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슈퍼우먼은 극히 드물다. 또 그 이면에는 내부의 든든한 지원이 있거나 직장에서 무소불휘의 파워를 가지고 있을 경우가 아니면 쉽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슈퍼우먼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순간 떠났다 싶었던 산후 우울증이 다시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이상이 하나씩 깨지고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문제는 쉽지 않다. 아기가 아프고 일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산후 휴가 다녀와서 직장 관계도 적응하기 힘들어 질 때쯤에 겪는 워킹맘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가정의 안정감이나 직장 업무가 원활하게 될리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대부분 이럴 경우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일까. 앞의 후배 Y의 경우도 그렇고, 내가 다니는 직장의 경우도 그렇지만 선례도 없고 권장하지도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퇴직을 종용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권력은 멀고 현실은 눈앞이다 보니, 대부분 퇴사를 하고 전업주부의 길로 내몰린다. 물론 전업주부도 의미 있으며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선택이 자발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일 아내는 육아휴직을 신청할 예정이다. 회사가 노동조합 연맹이라서 쉬운 게 아니라 연맹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육아 휴직이 가능해진 것이다. 만일 연맹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면 연맹 사업의 대부분을 꿰뚫고 있는 아내가 이처럼 편안하게 육아휴직을 낼 수 있었을까는 미지수다.

제발 이 글을 보고 있는 조직의 관리자들은 이런 워킹맘들의 고충을 알아주기 바란다. 당장은 그 한 사람이 없으면 일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 또 단기 임시직을 뽑는 것도 어렵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러나 일하는 엄마들이 흘리는 눈물과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이 다시 돌아와 회사와 업무에 있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 조직은 더욱 튼튼하고 안정적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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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사실 동생이 가게를 내놓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에 건물주가 거부해서 계약이 틀어졌다. 당시 권리금으로 수천만 원이 이야기 되던 시점이다. 그리고 얼마 후 건물주가 바뀌었고, 새로 온 건물주는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했다. 재건축을 하겠다는 건데, 처음에는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서 영업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듯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작년 여름부터 말이 바뀌었다. 이주비(300~500만원)는 줄 수 있으나 다른 보상은 없단다. 동생 가게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가게들에게도 똑같이 말했나 보다. 이런 조치로 이 건물주에게 돌아갈 이익은 약 2억원에 가까울 거라고 동생은 말한다. 동생의 바람은  많은 보상비를 요구하는 게 아닌,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서 1층이 아닌 2층에서라도 다시 가게를 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동생 말에 따르면 건물주는 애초 2층에 가게를 내게 해줄 수 있다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동생 말에 따르면 시간을 끌기 위한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아담하고 정성스럽게 꾸려진 내 동생 가게. 사람들을 데리고 갈 때마다 다들 음식맛이 일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더랬다. 꼭 내 동생 가게라고 해서 맛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가게의 분위기나 음식맛은 절대 다른 가게에 뒤질 바 없이 훌륭하다.


친구와의 동업으로 시작한 가게가 올해 위기에 처해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바로 옆동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홍대앞 ‘작은 용산’ 두리반(철거민 운영 식당)의 싸움(한겨레 기사)"은 흡사 동생 가게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철거가 시작되지 않았을 뿐, 건물주가 바뀌고, 그 건물주가 동생을 상대로 지금 명도소송을 내놓은 상태이며, 이 재건축은 민간사업자에 의해 실시되는 공사라서 용산참사 이후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앞으로 명도소송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물어보면 동생은 한숨을 쉬며 먼곳을 바라본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 일단 버텨봐야겠다"라고 말하지만, 진퇴양난에 사면초가에 빠진 얼굴이다. 


용산 참사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설마 저렇게 억울한 일이 내 주위에 있을까 생각했는데, 바로 내 동생이 그런 상황에 처하니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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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지금은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5년여의 수감 생활을 하신 분이죠. 그러나 그는 감옥 생활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던 공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의 경우, 감옥 안에서 네 가지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첫째이자 가장 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과거 1977년 청주 교도소에서 2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의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동서양의 두 분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중략) 진주와 청주에서의 4년여의 감옥 생활은 나에게 다시없는 교육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얻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습니다.”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얼마전 사형수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서는 사형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전국 교정시설에서 자사를 시도한 사람의 수는 422명에 달하며, 이중 7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중 살인(28명, 38.9%)으로 복역 중인 수용자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 수용자(15명, 20.8%)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타인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고 복역하는 수용자들의 자살이 절반을 넘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마땅한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한 실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창안한 인문학자 얼 쇼리스의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995년 얼 쇼리스 교수는 한 여죄수와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가난과 범죄의 악순환을 고민하는 그에게 그 여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에 얼 쇼리스는 범죄자를 포함해, 알콜 중독자, 노숙자, 실업자 등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전파합니다.

“당신은 이 수업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는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나를 설명하는 힘,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문학 과정은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던 ‘조건들’에 대해 과거와 다르게 대응하는 힘을 갖게 한 것이죠.

범죄자들이 수형 시설에서 사회를 원망하고 이웃을 저주할 때, 인문학 과정은 새로운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읽었던 대부분의 서적들-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은 모두 인문학의 영역에 있는 책들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사람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시각과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인문학 독서가 김대중이라는 시대적 위인을 만들어냈듯이 수용시설의 수용자들에게 펼쳐지는 인문학 강의도 그들 자신과 우리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의 독서를 통해 얻었다는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수용자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EBS <지식채널e>의 일부를 옮겨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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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동상

지금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는 의류 패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지요. 그러나 1970년 오늘 여기서 한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뚫고 빛나는 화염으로 세상을 밝히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점심을 굶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수유리 집에서 평화시장까지 걸어 다니면서 아낀 버스비로 여공들에게 점심을 사 먹인 일화는 그의 헌신과 희생이 깊은 인간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연구자였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한문이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날이 새가면서 읽고 해석하며 스스로 이해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 근로기준법이 고통받는 여공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장기표 신문명연구원 원장은 전태일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전태일은 고난 속에서 사랑을 얻는 사랑의 원리, 사랑을 통해 지혜를 얻는 지혜의 원리, 사랑과 지혜를 통해 높은 꿈을 이루는 꿈의 원리,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가운데 법열을 얻는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 같이 소중한 교훈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경향신문에서 재인용)


오늘 그가 산화하며 외쳤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


과연 지금 이 말은 얼마만큼 지켜지고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들, 저의 시선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과 대우는 분명 나아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또 다시 한쪽에서 차별의 온상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있다면, 먼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태일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재단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여공들의 고통과 아픔을 돌보다가 해고당하기까지 하죠.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함께 일하던 여공이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인 폐렴으로 강제 해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느낀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열악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하는 시다들을 ‘나의 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바탕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나의 나’를 볼 줄 아는 시선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태일의 의미는 바로 ‘나의 나’를 보는 시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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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 사진 구상나무


그러고 보니 오늘은 1자가 네 개나겹치는 날이죠. 이런 날을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명목이 바로 길죽한 과자 이름을 딴날입니다. 당초 부산의 어느 여학교에서 11월 11일을 맞아 서로 살을 빼고 날씬해지자며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날이라는데, 지금은 해당 업체의 한해 매출의 절반가량을 해결해 주는 상업적인 날이 되어버렸네요. 이 날의 상업적 흥행은 아무래도미디어가 한몫을 했다고 보기에 여기서는 단 한글자도 그 과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11월 11일은농업인의 날이었죠. 과자의 이름으로 날을 기억하는 것보다 일하는 사람들을 기리는 날이 더욱 뜻 깊고 의미 있지 않을까요? 사람의권리, 인권을 생각하는 블로그이니만큼 오늘 ‘농업인의 날’을 맞아 농촌의 인권과 인권위를 생각하는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농업인들의 인권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아시나요? 지금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안내하는 농촌, 농업인의 문제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세요.

얼마전 국가인권위는 ‘2009년 10대 인권 보도’를 선정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세계일보의 ‘탐사기획 / 대한민국 농촌, 가장 위험한 작업장’(링크 참조)이었습니다. 이 보도에서는 한국 농촌의 위험한 작업 현실을 깊이 있는 탐사와 취재로 조명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업인이 얼마나 위험한 작업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농업인 79%가 농부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 농기계 사고로 매일 한 명꼴로 농업인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현실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농촌, 농업인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음의 농촌 인권 사안으로는 국제결혼 가정이 있습니다. 2006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농어민 10명 중 4명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다문화·다민족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거주하는 결혼이민자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언어적, 문화적, 교육적, 인간관계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월간 <인권> 2007년 7~8월호에 실린 ‘“여부, 우리 행북하게 사라요.”’(관련 링크 참조) 글에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르포작가 박형숙 씨가 취재한 글에 따르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 여성의 문제는 곧바로 그 2세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광주인권사무소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시리즈 ‘사진으로 만나는 이주 여성’은 이주 여성들의 삶을 사진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 블로그 '호제와 남주네'의 '사진으로 만나는 이주여성 시리즈' 중 "며느리가 하고 싶은 일 도와 주고 싶어요"(관련 링크 참조) 


마지막으로 농촌 청소년 문제입니다. 농촌청소년의 문제는 그들이 접하는 풍경의 황량함에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부족과 작아지는 농촌, 문화적 갈증과 소외감은 농촌의아이들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그들에게 대도시로 탈주하려는 욕구를 자극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잃어가면서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농촌이 앓고 있는 고통 중의 하나입니다.


 











월간 <인권> 2007년 7~8월호에 실린 "여부, 우리 행북하게 사라요."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어렸을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다 도시로 빠져나가요. 남아 있는 우리들이 오히려 이상해지고, 나만 왜 못나가고 남았을까 하는 불행한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도시로 간 아이들이 부러워요.”

작가 오수연 씨가 월간 인권 2005년 3월호 ‘사투리를 쓰지 않는 아이들’(링크 참조)에 소개한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안에 그대로 있을까, 아니면 어느 대도시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이밖에도 농촌, 농업인의 문제는너무나도 많습니다. 빈곤 문제, 노령화 문제, 농산물 가격 문제, 환경 문제 등등 헤어릴 수 없는 고민과 고통이 농촌에 산적해 있죠. 그많은 문제의 귀결은 아마도 결국 농촌 소외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농업, 농촌의 문제를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해 풀어가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오늘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이상한 과자를 내세우는 상업적인 ‘데이’보다는 우리 농촌과 농업인들의 삶과 인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의 글은 지난 11일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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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책을 만들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어처구니 없이 터지기도 한다. 모니터와 가인쇄 과정에서 문제가 없던 색의 문제가 실제 인쇄과정에서 터져서 애를 먹는 건 다반사다. 이번 교과서의 경우 특정 인쇄소의 인쇄에서 자꾸 문제가 발생했다. 바탕에 10%의 농도로 색을 깔아 놓았는데, 거의 30%에 가까운 색농도가 자꾸 배어 나오는 것이다. 인쇄 기장님의 말에 따르면 원래 30%로 왔던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하지만 분명 데이터 값에서는 10%로 보냈던만큼 인쇄하는 사람이나 편집자나 속이 타는 건 어쩔 수 없다. 대부분 즉석에서 기계 조절을 통해 색농도를 낮추지만 이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며 이로 인해 다른 지면의 사진이나 색이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라 지나친 색 조절은 오히려 독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가인쇄를 하는 데, 예전에는 직접 해당 인쇄기에서 가인쇄를 했지만, 지금은 디지털인쇄를 통해 인쇄 상태를 점검해 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디지털 인쇄의 경우 인쇄기와는 또다른 시스템으로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줄 때가 많아서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본인쇄를 앞둔 가인쇄라면 해당 인쇄기에서 가인쇄를 해 보는 것이 좋다.

책을 인쇄할 때에는 편집자가 인쇄감리를 나가지만, 제본 과정에서는 빠진다. 제본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지만 가끔씩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교과서 심사본은 가끔 교과부에서 지시한 표지 양식을 지키지 않은 상태의 책이 나올 때가 있는데, 이번에 우리가 제출하는 심사본이 상단과 첫글자 사이의 간격을 지키지 않아서 다시 제본을 한 사례다.

심사 당일 날 우리 출판사만 해도 40여 종이 넘는 책을 제출했다. 대기실의 풍경은 다채롭다. 접수를 기다리며 타 출판사의 아는 사람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가 하면 접수 과정에서 서류에 문제가 생겨서 부산스럽게 본사로 전화를 하거나 대기실에 마련된 컴퓨터에서 편찬계획서 등의 서류를 재출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출판사 역시 편찬계획서의 내용 중 주어진 양식을 따르지 않아 재출력한 사례가 있었으며, 발행인의 인감 도장을 찍어야 하는 난에 회사 직인을 찍은게 문제가 됐다. 물론 이 문제로 평가원의 확답을 받았다는 강과장님의 말이 있었지만 막상 여기에서는 또 말이 바뀌고 말았다. 부랴부랴 회사 총무팀에 전화를 걸어 사장님의 인감도장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현장에서 수정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건 약과. 제출을 앞둔 교과서 속 내용이 문제가 되어 제출이 반려된 회사도 있으니, 1년의 노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듯해 안타까웠다.

교과서는 책이 나오고도 안심할 수 없는 책이다. 최종 심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마음 졸이면서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결과는 내년 4월 중순 이후에나 발표될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 모두가 흘린 땀방울이 우리 후세대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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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지난 10월 14일 찍은 개봉동 우리집에서

길고 긴 장정이 마무리 단계에 다가왔다. 그동안 하군(마눌님 애칭)과 뜨기(태아 애칭)에게 서운하게 할만한 일이 많았다. 하지만, 하군은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나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홀로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언제나 많은 것을 이해해 주었고, 뜨기는 새벽에 들어오는 아빠의 음성을 잊지 않고 힘찬 발길질로 맞아 주었다. 

직장인의 밥벌이 노동은 어디가나 비슷하겠지만, 교과서 편집 업무는 마치 수많은 야수와 독충들로 우글거리는 정글 속을 탐험하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거다. 오늘도 아는 후배 하나는 나에게 말했다.
"정말로 나 죽을뻔 했어요."
그 말이 결코 평범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이처럼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노고 속에서 탄생한다.

단행본 출판사에서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 어쩌면 교과서일 수도 있겠다. 고작 150여쪽의 음악 교과서를 만드는 데 왜 1년이나 걸리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아이들은 150여 쪽의 책을 1년간 들여다 보게 된다. 그 1년의 시간동안 한치의 빈틈도 없이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야 하는 것이 교과서이다. 단 한 쪽도, 단 한 줄도, 단 한 글자도 허투로 만들 수 없고, 쉽게 지나칠 수 없어서 심사본 제출일이 시작된 오늘도 어디선가는 다시 인쇄소를 찾아가 재인쇄를 들어가는 게 교과서다.

책은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쌀 한톨을 위해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번 가듯, 책 한권에는 교과서 한권에는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모아야 한다. 그것을 모으는 사람이 편집자이다. 편집자 스스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어도 책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하나의 책이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과정에 함께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이러한 과정처럼 많은 사람들의 온기와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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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1991년,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인 구례를 찾아갔을 때 장장 24시간에 걸쳐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그 기록은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 저의 귀향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귀성 전쟁은 비단 저만 치르는 것은 아니죠. 추석 이후에는 너나없이 모여 서로 어떤 귀성전쟁을 치렀는지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한국인이면서 고향이 먼 시골이라면 대부분은 겪어봤을 고통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향길이 아니라 고행길이라지만, 어쩌면 이 분들을 앞에 놓고 생각하면 ‘사치에 가까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산가족 문제입니다.

오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남북 각각 100가족이 극적인 상봉을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이후로 끊어졌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적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인권선언문 중 제16조의 3항에서는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로서 가정을 지켜야 할 의무를 사회와 국가에 있다고 규정한 것이죠.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비슷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죠.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1월에 ‘북한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에서, ‘정부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과 같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들의 문제는 분단과 전쟁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다른 인권문제 보다 정부의 노력이 한층 더 요청되는 사안들이다. 정부는 이 사안들에 대하여 북한과 조건 없이 협의하여 이 사안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의 이산가족 문제는 헤어진 가족들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급선무일 듯합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1세대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족상봉 참가를 신청한 사람만 127,343명인데, 지금까지 대면상봉 16,212명, 화상상봉 3,748명만이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을 못 만나고 사망한 이산가족이 39,000여명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10년에 걸쳐 상봉 행사를 가져왔지만, 신청자 중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먼저 사망한 사람이 많을 정도인 만큼 남은 신청자들이라도 하루 빨리 상봉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시급한 현실입니다.

이번 상봉에서 최고령자인 96세의 박양실 할머니는 딸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금강산까지 머나먼 여행길을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저야 아무리 걸려도 24시간이었지만, 이 할머니는 50년을 넘어서야 딸을 만나게 된 것이죠. 우리 사회, 나아가 남과 북이 분단과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시급히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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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어렸을 적에 동네나 학교 운동장에 친구들과 놀 때면 늘 깍두기 한두 명씩은 껴있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아주 어렸을 적에 형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깍두기를 자처하던 때가 있었죠. 이때 깍두기는 기량이 많이 떨어지거나 신체적으로 핸디캡이 있는 이들을 놀이에 껴줄 때, 특별한 지위나 능력을 부여해 놀이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깍두기라서 행복해요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 현호(가명)와 신영(가명)은 어렸을 적에 늘 깍두기를 단골로 맡았던 사람들이었죠.

현호는 어렸을 적에 운동신경이 몹시 둔했다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낀 팀은 패배를 밥 먹듯이 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눈치를 보는 게 무척 싫었다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기는 깍두기가 되어 놀이에 참여하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럴 때, 실수를 하거나 도전의 한계치에 다다르면 오히려 친구들이 도와주거나 요령을 더욱 자세히 알려주었고, 격려나 응원의 목소리도 다른 친구들에게 보다 더 많이 받았다지요. 게다가 다른 친구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기술이나 도전을 해결하면 다들 함께 좋아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특권적인 배려를 받은 셈이지요. 현호는 깍두기 생활을 하다가 어느새 기량과 실력이 늘어서 어느 날은 깍두기를 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깍두기는 죽기보다 싫었다구

반면, 신영은 정반대로 깍두기 되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작아 또래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깍두기를 도맡아 했죠. 친구들은 깍두기가 아니면 놀이에 끼워주지 않겠다고 그러고, 그러면 자신은 깍두기 되는 게 싫다며 억지를 부리지만 번번이 어쩔 수 없이 깍두기를 하여 같이 어울렸다고 합니다. 신영은 그래서 악착같이 혼자 또는 짝궁과 따로 연습을 했죠. 그리고 그렇게 연습한 끝에, 여전히 자기보다 키가 큰 아이들이 머리 위로 올리는 고무줄은 잡을 수 없었지만, 낮은 위치의 고무줄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현란한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하는군요. 신영은 그런 데서 자신감을 느끼고,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을 키워왔다고 하는군요. 다른 친구들과 당당히 겨루고 싶고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싶었던 바람이 때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죠.

‘깍두기’, 현호에게는 승패를 떠나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릴 수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죠. 반면 신영에게는 놀이에서 자신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렸던 친구였습니다.

깍두기를 생각하는 인권의 마음

인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마땅한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노인, 여성, 청소년, 성적소수자들은 어쩌면 놀이의 ‘깍두기’같이 보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깍두기라고 해서 언제까지 깍두기만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언젠가 그 사람은 깍두기에서 벗어나 하나의 온전한 객체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깍두기’라는 사회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그 기회이며 삶의 자극인 셈이죠. 깍두기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마음, 어릴 적 놀이의 추억에서 인권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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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4일(월)부터 16일까지 서울광장에서는 인쇄문화축제가 있었다. 축제 기간 동안 행사 주최측에서는 교과서 전시관을 열었는데, 그 배치와 운영을 금성출판사가 맡았다. 그리고 그 일은 다시 나에게도 떨어졌다. 이 일을 위해 오래된 교과서 목록을 뒤져야 했고, 금성출판사의 옛 교과서를 찾기 위해 각 교과서팀을 순회해야 했으며(물론 번번이 허탕을 쳤다), 옛날 교과서를 대여하기 위해 파주의 한국검정교과서협회와 논현역 앞의 교과서 연구재단을 오가야 했다(지도를 보면 그 거리가 어마어마하다).







예전에 비해 경찰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인쇄출판축제 구조물(사진)을 설치하면서도 시청 측과 실랑이가 있었단다. CCTV가 시야를 가리니 설치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사정사정해서 설치를 했다는 말을 관계자로부터 들었다. 평범한 인쇄출판 행사에서도 감시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경찰청 직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금성출판사가 교과서 전시회를 하니, 역시 노인네들 중에는 “왜 금성출판사는 교과서를 잘못 만들었느냐?”며 조심스럽게 따지는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은 일부러 7차 교육과정 교과서를 전시한 곳에서 근현대사 교과서를 찾는 분도 있었다. 3일 중 첫날 오전에만 자리에 있었던 만큼 그런 사람이 또 없었을까? 물론 근현대사 교과서는 일부러 전시장에서 빼놓았다. 시청 광장에서 보수들이 데모하는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실장님의 배려(?)였다. 고달픈 근현대사 교과서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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