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나무 아래에서/일상의 발견'에 해당되는 글 98건

  1. 2011/12/01 | 글을 쓴다는 것은 (4)
  2. 2011/11/30 | 가을? 겨울? 아무튼 남산..
  3. 2011/11/27 | 겨우 폭력이라니 (2)
  4. 2011/11/17 | 낙인찍기
  5. 2011/11/15 | 별 너머의 먼지
  6. 2011/11/15 | 저 산너머에는...
  7. 2011/10/18 | 당신이 그리워질 때 (2)
  8. 2011/09/30 | 선의란 무엇인가 (2)
  9. 2011/09/15 | 농구의 발견 (2)
  10. 2011/06/23 | 인연이 되지 못한 것을 기리며

글을 쓴다는 것은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절친한 친구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들어가 보니 이미 190여개의 포스팅이 올라가 있다. 주로 시와 시에 대한 단상, 그리고 일상의 상념들을 담았다. 시 때문일까, 글들이 남다르다.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그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여전히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있어 좋다. 그러면서도 이제까지 왜 숨겨왔을까.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참 많은 걸 이해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서툴던 것일까, 부끄러웠던 것일까, 꺼렸던 것일까?

요새 인기 있는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소양 없는 자가 글자를 알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당시로서는 소양 없는 자가 글자를 안다는 것도 무서운 일이었을 게다. 기득권을 지켜주고 있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양 없는 자가 돈도 권력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기득권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질서를 만들었다. 여기에 파열음을 내는 어떠한 시도도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집단 불법세력으로 몰아 세운다. 지금의 시대에 글자를 아는 것만으로는 권력도 돈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글자는 힘이 될 수 있고 권력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의 텍스트들이 그렇다. 이제 인터넷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권력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 SNS를 모르는 정부 여당을 향해 수많은 민초들이 SNS를 통해 비판하고 저항한다. 여기서 다시 정기준은 이렇게 예견했다. 글자를 알게 되면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고, 글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자 할 것이라는 점. 지금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SNS에서 유통되는 많은 텍스트들은 정제되지 않은 것이 많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일 것이다. SNS는 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 소양없는 자에게 폭력이 되는 것처럼 SNS에서 흐르는 수많은 텍스트를 자신의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소양이라는 것(그것은 단순한 주관일 수도 있고, 정보를 거르고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일 수도 있다)이 필요하다.

리영희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이 없는 99%가 글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그 자체로 진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자신을 드러내겠지만 돈도 권력도 없는 99%에게 블로그와 SNS는 아주 괜찮은 매체인 것이다. 이제 글자를 아는 것을 넘어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수많은 글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권력과 질서에 저항하고 있다. 블로그든 SNS이든 이제는 쓰고 알리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은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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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겨울? 아무튼 남산..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끝까지 가볼 걸 그랬어. 오랜만에 찾은 남산.
중간에 돌아서는 발걸음들이 계단 틈에 숨어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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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폭력이라니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결혼을 앞둔 신혼 부부에게 흔하게 하는 조언으로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하지만, 난 그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차피 갈등은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일부러 드러내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가리는 것도 옳지 않다. 져주는 것은 당장의 갈등을 덮을 수 있지만 흐르는 물을 작은 돌로 막아 놓은 것일뿐이다. 물이 계속 들어오면 범람하게 되어 있고 더 큰 홍수대란을 피할 수 없다.

"화내는 사람이 진 거다."

갈등을 풀어가려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화를 내느냐 내지 않느냐와 같다. 다름을 다름으로 보고 공통의 분모를 찾던가 해결의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그런 진득한 기다림과 이해와 설득에 대해 숙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힘과 권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부쳐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의 일부를 시혜적으로 베풀면서 "봐라,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는 훈계가 일상적이었다.

MB와 한나라당의 방법이 항상 그러했다. 이번 한미FTA 역시 그들의 치졸하고 옹졸한 속내에서 비롯된 참담한 결과물이다. 그렇게 좋고 훌륭하고 중요한 문제라면 보다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기다려야 하는 문제를 졸속으로 강행처리하고서 나몰라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가진자의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도(한석규)가 이런 말을 하지 않나.

"겨우 폭력이라니..."

트위터 상에서 벌어진 논쟁으로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에게 폭행을 한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저 의견의 다름으로 볼 문제인데,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화를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으로 해결했던 사건이다. 게다가 일부 트위터인들이 폭력을 휘두른 사람을 옹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용이 부족하고 폭력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분노하라"는 어느 레지스탕스 노인이 쓴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지만, 정당한 분노는 방법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물불 가리지 않는 분노는 야만적인 '화'와 다를 게 없다.

MB치하에서 많은 이들이 핍박받고 있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MB만 물러가면, 정권만 교체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 말하지만 우리 스스로 MB를 닮아서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도 더 나아갈 수도 없다. 당신이 희망임을 보여주는 일을 거리에서 치열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에서 수많은 갈등 상황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도 우리가 MB의 세상, 탐욕적 자본주의 세상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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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찍기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공영라디오(NPR)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미 FTA를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하는 이들은 반미 성향을 지닌 극소수의 국민”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원기사 보기)


반대의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깊이 이해하기 보다는 쉽게 분류해서 낙인찍고 따돌리는 건 정말 쉬운 일이지. 그런데, 꼭 주먹으로 쥐어패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야. 저런 것도 아주 질이 나쁜 폭력이지. 게다가 그냥 시정잡배의 말이라면 그냥 그만큼만 영향을 받지만, 이건 한나라의 권력자가 한 말이란 말이지. 저 말은 경찰과 검찰에게 면죄부를 주는 거라서 실제적인 폭력으로 이어지잖아.

아무튼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잘 뽑았어. 교육 효과가 명확하잖아. 온갖 나쁜 선례의 백과사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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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너머의 먼지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 안철수
  • 그의 노력과 열정이 남달랐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스템과 함께 맞물렸다는 것, 그 결과로 그가 명성과 부를 얻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보통의 부자들이 자신의 노력과 열정만 내세웠다면 그는 이번 기부로 자신의 명성과 부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인정했다. 즉, 자신의 열정과 노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부를 누렸다는 것을 고백한 셈. 그러나 그의 그런 고백이 다시 그의 명성을 더욱 치켜세우는구나. 누구 말대로 기부할 돈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명성은 죽음을 통해서나, 혹은 죽을만큼의 고통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저 별 너머의 것이라는 것. 하물며 별 너머의 먼지로 사라지더라도 얻기 힘든 그 무엇이라는 것.
  • 그럼에도 다행(?)은 그의 말대로 그 사람이나 나나 모두가 언젠가 저 별 너머의 먼지가 될 것이라는 것. 아무튼 여타 다른 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겸손(?)을 표방하였다. 어찌됐든 그는 우리 사회가 베푼 최대의 자선(자산이 아니라)임에 틀림없다. 어느 중견기업의 회사 20대 후반의 이사와 비견된단 말이지. 할아버지 잘 만나서 그 자리에 있음에도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은 전혀 없고, 그저 그리스 사태가 복지병으로 생긴 거라고 헛소리나 하고 앉아 있던 그 이사 말이다. 사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반박도 안한 나라고 뭐 잘났냐만. 갑자기 우울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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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너머에는...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 어느새 '동경'의 마음을 잃었다. 저 산 너머는 어떤 모습일까. 저 바다 건너는 어떤 세상일까. 저 길을 돌아가면 무엇이 있을까. '동경'은 그런 궁금함과 호기심에 희망을 버무려 만들어진 마음인데, 살아가며서 그런 동경을 잃고 산다. 동경을 잃어버리면 무관심만 남는다. 지금 있는 자리에 연연하고 지금의 인연에 매달리고 세상을 원망한다.
  • 동경을 무너뜨리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관성이다. 산 너머에 대한 동경보다 두려움이 커진 것이며, 저 바다 건너 세상에 대한 동경 보다 두려움이 커진 것이다. 길을 돌아가서 만나는 무엇이 나를 위협할 거라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그 용기를 애써 외면하고 '돈'이라는 탐욕의 물질에 위안을 삼지만, 실상 돈이 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니 괜한 절망감과 자괴감으로 스스로에게 상쳐를 분다. 그러면서 '돈'만 있으면 저 산 너머로 갈 수 있을 것이고, 저 바다 건너의 세상도 다 내것이며, 저 길을 돌아가서 만날 무엇인가도 내 앞에 무릎 꿇을 거라는 얼토당토 않은 미신에 빠져든다.
  • 돈이 동기 부여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정에서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살아있음의 유한한 경험은 그것만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 산 너머로 가기 위한 여정, 그 바다 건너의 세상까지 가는 동안의 설렘, 그 길을 돌아가는 동안 품게 될 기대와 희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 등은 모두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것이며,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전하는 울림이다. 
  • 다시 무언가를 동경하고 그리는 마음을 품어보는 일이 참으로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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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리워질 때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 큰 아들이 늦은 나이에도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아마도 턱없이 높은 외모에 대한 기준 때문이라고 보셨을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난 내 기준에서 매우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름다움은 꼭 외모만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하고 같이 살다 보면 자잘한 긴장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남편이란 작자가 금요일 후배들과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들어와서는 토요일 온종일 뒹굴뒹굴하며 보내고 일요일마저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으니, 모처럼의 휴일이 맥없이 그냥 가는 게 못내 아쉬웠을까. 아내는 부산스럽게 외출 준비를 했다. 초췌한 내 몰골 때문인지 아니면 나에게 화가 났는지, 나에게 나가자는 말도 안 하고 민서를 데리고 개웅산에 다녀오겠다는 거다. 일단 아내 얼굴에서 노랑 신호등(주의)에 불이 들어왔다는 신호다.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그냥 내보내면 난 죽는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틀 내내 비가 내린 터라 나는, "비 온 뒤라 개웅산 온통 진흙길일 거야. 잠깐만 기다려. 민서 자전거 끌고 안양천에 같이 나가자."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아내는 화가 나도, 잘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속으로 삭이면서 풀어낸다. 짜증 내며 징징거리는 민서와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게임만 하는 나를 보면서 내심 많이 답답했나 보다. 안양천을 나와 가을의 둔치를 걸어 다니다가 고척교 아래 마련된 메밀밭에서 잠시 쉬는 그의 얼굴에 여유로운 웃음이 떴다. 다 풀어냈구나.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은 관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외모를 보기 위해서는 거울만 있으면 되지만 자신의 마음을 보기 위해서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를 통해서 내 마음의 저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인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 맺는 관계를 자신의 문제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이 사람한테는 이래도 되겠지, 이 사람은 이러는 나를 이해할 거야, 하는 마음은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떠넘기기 위한 기만이다. 이는 깊은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오래된 인연이 이런 이유로 돌아선다.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제를 떠넘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는 객관적 자아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믿는다. 때로는 끊어질 듯한 긴장감을 형성하는가 하면, 때로는 느슨한 무관심을 지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끈의 길이는 약간 길었으면 좋겠다. 그 사이에서 바람이 무심히 지나가고 그 바람 사이로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언제나 그리워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곁에 있어도 네가 보고 싶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런 그리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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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관계, 사랑

선의란 무엇인가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많은 일들이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진다. 하지만 어떤 일들은 상흔으로 남아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될 수 있다. 곽노현 교육감의 일이 그렇다. '선의란 무엇인가' 그는 구치소에 갇히기 전에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의 '선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교육을 살리기 위해 나선 동지이자 경쟁자를 향한 개인의 측은지심의 발의는 분명 존경할 만한다. 하지만 법이 측은지심의 마음을 인정할 수 있을까? 법의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그의 행동은 그렇게 쉽게 '선의'로 인정될 수 없는 선이 있고, 유감스럽지만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것이다.


박명기-곽노현 모두가 댓가성을 인정하지 않는 돈이다. 두분 모두 '선의'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선의'는 법정에서 실체가 없는 주관적 의지일 뿐이다. 법정에서는 분명 통장의 잔고와 돈의 흐름을 따지지 '측은지심'의 기준이나 선의 발의에 대해 따지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최종적인 선고에서 판사의 재량에 따라 어느정도의 정상참작의 선에서 고려될 수는 있겠지만 유무죄의 기준에서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선의'가 현대적 '정의'의 심판대에 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선의'를 잘못 이행해 벌어진 결과다. 아쉽지만 법정에서 '선의'가 설 곳은 피고인이 설 증언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진정한 '선의'는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 영향에서 모두 긍정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선의'는 '선행'과 맞닿아야만이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곽노현의 '선의'를 '선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재판의 결과를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래서 그 '선의'를 '선의'로 인정하기가 어렵다. 물론 곽노현 교육감을 구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댓가성이 아니라는 곽-박 교수의 주장을 믿으면서도 최종 판단이 어찌 내려질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아직 법의 정의가 어떻게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는 박명기 교수를 향한 '선의'에서 머물렀다. 그 방법과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오해를 살만한 일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사회 공동체를 향한 '선의'와는 관계가 멀다. 곽노현 교수에 대해서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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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발견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 9월 14일 밤 7시 30분 -

"괜찮으세요?"
"으... 다리에... 다리에 쥐가 난 거 같아요?"
재빨리 그의 신발 앞코를 위로 꺾고 무릎을 아래로 눌러 다리를 똑바로 폈다. 힘껏 꺾고 눌렀는데도 쥐가 난 다리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빠른 대응 때문인지, 그의 다리는 곧 내 힘에 수그러들었고 그의 고통도 멎었다.
"오랜만에 뛰는 거라서 그럴 거에요."
"네, 정말 힘드네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랬어요. 저도 첫날에는 쥐도 났고, 다음 날에는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쑤시고 그랬죠."

- 1시간 전, 6시 30분 공덕 초등학교 실내 체육관 -

조용한 체육관에 불이 켜졌다. 사람들은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무채색과 강렬한 컬러의 운동복들이 교감한다. 가볍게 체육관을 도는 사람,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공을 꺼내며 퉁퉁 바닥에 튀어보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몸풀기가 시작됐다. 난 스트레칭을 하고 체육관을 다양한 형태로 뜀뛰기를 한 후, 운동장으로 나가 2바퀴를 돈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농구동호회 모임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러 개의 농구공이 번갈아 튀는 소리와 심장의 방망이질 소리가 비슷해지면 경기에 임할 준비가 끝난다. 이날은 편집부서에서 신입직원 2명이 합류해 총 9명이 동호회에 참석했다. 먼저 3:3 반코트. 지는 팀이 떨어지는 경기. 대개는 가위바위보로 팀을 가른다. 복불복, 누구와 팀이 되든 최선을 다한다.

농구 동호회에서 개인의 실력을 상중하로 나눈다면, 나는 하급 수준이겠다. 무엇보다 야투 성공률이 너무 낮고 돌파와 드리블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자신있는 부분은 넓은 시야와 부지런한 공간 침투, 그리고 빠른 패스 등이다. 슛이 부정확하니 적절한 패스를 통한 어시스트에 집중하고, 드리블이 안되니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 낸다.

어제도 총 5 경기 정도(2시간 반)를 하면서 고작 3골을 넣었다. 이전의 어느 때보다 가장 좋지 않은 성적이다. 물론 점수나 승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경기든, 집단으로 하는 경기에서는 골보다 팀에 얼마만큼 기여하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하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었기에,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중간 정도는 했다.

3게임 정도 마무리 됐었을 때 위의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 오는 회원들은 대부분 격하게 진행되는 우리의 경기를 따라오거나,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을 과하게 쓰면서 부상을 입거나 쥐가 나기도 한다. 평소에 운동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2시간 반 정도가 지나면 온몸에 피로감이 몰려오고, 옷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씻을 만한 장소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서 대충 씻고 옷 갈아입고 집으로 가야 한다. 밤 9시가 되서야 집으로 나서니 피곤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다시 동호회 모임이 오면 아침부터 운동복을 챙기는 모습이 생소하지가 않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농구동호회 모임에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간혹 새로오는 분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예전 모습을 오버랩해보면, 지금의 내가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운동의 중요성은 정작 할 때는 짐작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몸이 서서히 달아오른다.

나는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다만, 우리의 몸은 언제나 관리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몸매를 가꾸는 문제만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지점들이 많다. 농구동호회는 항상 그런 화두를 나에게 던져주는 좋은 멘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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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되지 못한 것을 기리며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의사는 '성장을 멈췄다'라고만 말했다. 그러니까 세포분열을 멈춘 것과 같은 의미였을까?

세상의 모든 인연들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부모 자식간의 관계야 두말하면 잔소리 아닐까.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은 몸가짐을 그렇게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내가 버렸을, 혹은 눈감고 지나쳤을 인연이 다시 돌아와 내 발길을 붙잡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정말로 삼신할머니가 있으시다면, 내 안으로 거두어들이지 못한 안타까운 그 죽음을 부디 다른 곳으로 고이 보내주시길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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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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