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나무 아래에서/My On-Line Story'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2/02/06 | 마흔의 문답
  2. 2011/12/31 | 내 블로그로 보는 2011년
  3. 2011/12/23 | 정봉주 유감
  4. 2011/12/13 | 노동자, 근로자, 인부...
  5. 2011/11/23 | 비명과 악다구니 속에서
  6. 2011/11/14 | 블로그여 부활하라
  7. 2011/04/20 | 감성의 매체 페이스북, 정보의 생산과 확산 트위터 (3)
  8. 2011/04/12 |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다
  9. 2011/03/10 | 북스캔과 출판사의 미래 (5)
  10. 2011/03/04 | 게임하는 아이, 게임하는 부모

마흔의 문답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님의 말 :
40대의 인생은 어떨까요...?
 
[진]하늘을 여는 아이 님의 말 :
사회적으로야 20대 30대 때 품었던 열정, 패기, 힘,
낭만이 점차 현실의 벽에서 희석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면의 면역력은 더욱 강해져서 쉽게 상처받지도 않고,
자신만의 굳은땅을 가지고 살 나이죠.
그게 단 한평의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감사히 여길줄 알면서요.
 
○○○ 님의 말 :
네.. 저도 그런 40대를 맞이해야 할텐데요..
 
[진]하늘을 여는 아이 님의 말 :
대부분은 그러지 않을까요.
제가 본, 제가 겪는 40은 그런듯하네요
 
○○○ 님의 말 :
나이에 맞는 모습을 하고 사는 게.. 어려운 일 같아요
 
[진]하늘을 여는 아이 님의 말 :
자신에 맞게 나이를 살아가면 되겠죠.
나이에 맞는 삶이란게 다 다를텐데요.
걱정마세요. 면역력이 생겨요 ㅎㅎ

○○○  님의 말 :
득도하신거 같은데 ^^

[진]하늘을 여는 아이 님의 말 :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나요.  ○○○ 님도 그럴 거에요. 
그 나이가 되면 말이죠^^

○○○  님의 말 :
전 지금도 생각만 많아요..
답은 없고.

[진]하늘을 여는 아이 님의 말 :
언젠가 스스로 답을 내리겠지요.
질문을 놓치지 않으면 그 끝에 답이 있으니까요.
사실 저라고 답이 분명한 것이 아니라,
그냥 저 나름대로 위안을 주기 위해 오답도 답이라고 우기는 중이죠. ㅎ

 


때로는 좋은 질문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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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마흔

내 블로그로 보는 2011년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한 고개를 넘고(1월 21일)

중3한문 교과서를 무사히 제출하고 쓴 글. 생소한 실험을 또다시 시작하게 된 내 인생에 위로의 술잔을 건네야 할 시간이었다. 지난 삶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결과로 기나긴 유배의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지금에 충실하고자 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중이염에 걸린 민서(2월 14일)

이제 막 돌을 지난 민서가 감기가 잘 걸린다 싶었는데, 그로 인해서 중이염까지 악화되었다. 아기들 사이에서 잘 걸리는 병이라지만, 고통스러워 하는 아이도 엄마도 나도 함께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겨울이 찾아오니 그때의 아픔이 생생히 다가온다. 이번 겨울은 부디 무사히 지나가기를...

불과 반나절 만에 집이 나갔다(3월 3일)

4월 1일 이사를 했다. 전세대란의 와중이라 2.5배 정도의 높은 전세값을 부담해야 했지만, 삶의 모습은 그 전의 집에 비해 못해도 10배 이상 좋다. 무엇보다 민서와 함께 하루종일 살림을 하는 아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런 집에서 평생 살면 좋겠다는 말을 지금도 하고 있다. 그저 소소한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질 날이 언제쯤일까.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다(4월 12일)

올해 목표는 1500km였다. 하지만 지금 보니 고작 665km밖에 달리지 못했다. 지난 번 양평에서 집까지 200리를 달린 것은 내 자전거 생활에서 가장 큰 업적이긴 하지만, 그 이후로 이렇다할 진척이 없었다. 자전거 출퇴근을 4월달이라는 늦은 때에 시작한 것도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자출(30km) + 한 달에 한번 자전거 여행(50km)이라는 주기를 잘 진행할 수 있다면, 2000km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내년에는 연초부터 이 계획을 힘차게 추진해 보아야겠다.

빵빵이 아줌마 그동안 고마웠어요(5월 2일)

민서는 조산아였다. 태어날 때 몸무게도 2.04kg이어서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으며, 이후 수분이 빠지면서 1.84kg까지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인큐베이터에서는 다행히 별다른 이상 증세 없이 잘 자라주어 20여일만에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아기의 머릿속에 뇌실(빈공간)이 있다고 했다. 성장하면서 자연히 없어지기도 하지만 심할 경우 뇌수술을 해야 할 상황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매번 민서의 성장 과정을 체크하고 인지 능력을 테스트하면서 조마조마했는데, 5월에 들어와서야 이상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지금은 10kg을 넘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물고기 구피 새살림 차리다(5월 3일)

이사를 하면서 고층 아파트라는 조건으로 인해 실내가 매우 건조했다. 가습기에 대해서는 나도 그렇지만 아내가 적극 반대하는 터라 다른 대안을 찾던 중 어항을 놓기로 했다. 사실 후배 덕분에 물생활을 시작했지만 어항과 물고기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나로서는 다시 인터넷을 뒤지고 새로운 지식들에 눈을 떠야 했다. 그런데 이 구피들을 들여놓고 나서 물생활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움직이고 사람이 오면 반겨주고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커서 또 새끼를 낳았다. 환수에 신경 써야 하고 먹이를 제때에 줘야 하고 광량도 적당히 맞추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런 일은 물고기가 주는 즐거움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다. 무엇보다 민서가 좋아하고 실내의 습도도 적당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등 좋은 점이 많다.

인연이 되지 못한 것을 기리며(6월 23일)

아내가 임신을 했었다. 계획 임신이 아니라서 좀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도 원하던 둘째 아이가 될 거라 생각해서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엄마의 몸도 아기도 몸도 준비가 되지 않았었나 보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성장을 멈추었고, 세상의 빛을 끝내 보지 못했다. 아내의 몸 고생 마음고생이 컸다.

8월의 끄트머리(8월 22일)

아내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좋은 곳에 캠핑을 다닐 수 있었다. 매번 아무 장비 없이 맨몸으로 참여하지만, 그 고마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올해에는 3월 청평, 8월 포천, 9월 대관령, 12월 치악산 등을 다녔다. 나에게는 분에 호사였다. 캠핑이라는 신세계를 열어준 이들에게 감사한다.

동물농장-교활한 독재자와 무기력한 군중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10월 5일)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나름의 목표가 있었다. 매번 연초에 세우는 계획이 올해는 몇권을 채우리라라는 거였는데, 이번에는 좀 색다르게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1만 페이지를 읽자.”였다. 직업이 책과 관련된 일인지라 오히려 책을 멀리하거나 쉽게 손에 잡히지 않다 보니 쉽고 단편적인 책으로 권수를 채우는 경향도 있어서 새롭게 세운 방침이었다. 물론 독서가 계량적인 분량으로 그 질을 담보할 수는 없다. 양질의 독서를 위해서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책읽기를 해야 함은 당연하다. 어디까지나 “1만 페이지”에 담긴 숫자는 재미에 불과했지만 돌아보니 나름 의미도 있었다. 수치상으로 올해 읽은 책의 페이지는 지금까지 7498쪽이다. 1만 페이지를 채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년에도 역시 이 계획을 밀고 갈 참이다.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깊은 책이라면, 


나비와전사근대와18세기,그리고탈근대의우발적마주침 상세보기
고미숙 씨의 역작. 꽤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우리 고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운디드니에묻어주오미국인디언멸망사 상세보기
미국 인디언 멸망사. 소수자를 어떻게 핍박하고 차별하고 몰살했는지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미국의 역사를 통해 지금의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WAR아프간참전미군병사들의리얼스토리 상세보기
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들의 이야기. 시대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모습을 미군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군을 옹호하거나 미국의 군사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미군들이 겪는 아픔을 잘 드러낸 노작이다. 

산자와죽은자 상세보기
2006년에 우리나라에 나온 작품으로 시간이 좀 지났지만, 한 공장의 파멸의 과정에서 대처하는 노동자와 지역 사회,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디테일하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숨은 거대한 음모 등 소설로서 가지고 있는 재미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 그리고 살아 있는 민중의 역동적 희망까지 품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앵무새죽이기 상세보기
1960년대 미국의 흑백차별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성장소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인자로서 재판을 받는 흑인을 변호하는 백인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아이들의 순수한 눈에 비친 차별의 어둠을 탄탄한 스토리로 펼쳤다. 


나는걷는다 상세보기
여행기. 터어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 신장까지 오롯이 걸어서 가는 여행자의 고독, 고통, 고뇌 그 혹독한 여행기를 읽다보면 나도 같이 그 사막과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위에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이 오래전에 나온 책들이다. 나온지 오래된 책은 아내와 내 책을 합치면서 아내가 가져온 책들 중에서 고른 책들인데, 대부분 매우 좋았다. 아내와 나의 책 읽기 코드가 비슷하다는 증거다. 내년에는 더 많은 책을 읽고 이곳 블로그에서 짧게라도 서평을 남겨야겠다. 


양평에서 자전거 200리길(10월 16일)

올해 최대의 자전거 여행이었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만의 도전이었다. 때로는 체력적으로 극한으로 몰고 가며 스스로를 시험하는 일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결국은 성취감을 위해 달려드는 불나방같은 행동이지만 대체로 만족스럽다. 물론 이후의 무릎 통증은 보름 정도의 기간동안 나를 괴롭혔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거라도 없었으면 내 자전거 생활에 이렇다 할 이야기는 없었을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떤 도전에 나설까. 사뭇 설레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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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유감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정봉주 문제는 현행 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명예훼손죄가 악법이라는 데 있다. 그 악법을 폐기하자고 해야지, 판사 신상털고 정권교체하고 복수하자고 하고 자기네편 비판하는 좌파들을 똑같이 악법으로 손발 묶어놓으려고 하고 이러는 것들은 그냥 뇌가 없는거지.
-@CherryBreakfast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자면, 이명박 후보측의 소명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념적 정치문화가 지난 대선에 있었고, 정봉주의원은 이 문화에 속하는 일부 여론을 대변했을 뿐이다.  비록 이 여론이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 여론을 정치무대에서 대변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의 권리이자 의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대의제 정치제도가 그것이 틀린 의혹이라는 이유만으로, 도덕적 비난을 넘어서는 감옥행이라는 사법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유의 원리에 반대한다고 생각한다.
                                                                               - 파리 13구님의 블로그 (http://kk1234ang.egloos.com/2829838)



정봉주 판결 관련 아쉬운 부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관이라는 사람이 임기말의 MB정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하등 이익이 되지 않으면서 법리적으로 무리한 수를 썼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대법관이 MB정권의 하수인이니 보수 세력의 똘마니니 하는 비난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법 체계가 보수적인 것인데 사법부 전체에 대해 불신을 확대하는 건 비약이 지나치죠. 1993년 스티커 몇장 붙인 걸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정식 재판을 걸쳐 벌금형을 받은 저로서는 선거법이 꽤 보수적이라는 걸 오래전에 체감했죠. 

선거 기간 중 후보에 대한 검증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치 판단의 경우를 넘어 정치적 인지부조화(어떤 근거도 무시하고 우리 편이 옳다)의 단계로 들어서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정치가 가진 지금의 현실이지, 그것이 사법적 단죄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정치 후진국이라는 수사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선거 기간 중에 자주 나타나는 정치적 인지 부조화 현상은 수많은 폭력적 갈등 상황을 야기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정치적 인지부조화 속에서 갈등의 구조를 얼마나 많이 재생산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과정이 어차피 서구 사회가 수백년간 쌓아왔던 정치적 민주주의를 새기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결국 선거법을 비롯하여 대중의 정치 참여를 옥죄고 있는 많은 장애물들을 풀어가는 게 우선입니다. 그 다음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을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지혜를 가져야겠지요. 나아가 학교 현장에서도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교권이라는 권위만으로 풀어갈 것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을 통해 상생하는 방법을 자꾸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런 면에서 학생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학생 인권 조례 통과는 아주 잘된 일이죠). 정치적 민주주의는 그렇게 단계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암튼 열악하고 암담한 시기에 한줄기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주었던 나꼼수의 멤버인 정봉주 17대 국회의원의 수감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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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근로자, 인부...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baltong3: 생산역군이라고 추켜줄 때는 '근로자',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 '인부', 권리를 주장하면 '배부른 노동자'.. 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들입니다. 다섯 분 철도노동자의 명복을 빕니다.

@namhoon: '인부 5명이 목숨을 잃다'(X) -> '노동자 5명이 목숨을 잃다'(O). 이 세상에 '인부'란 직종은 없습니다.

@grainy_: 전국의 출판사 수가 2만 개가 넘고, 출판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일곱째라는 이 나라에서 노조가 있는 출판사는 7곳뿐이고, 노조에 가입된 출판노동자 수는 50명밖에 안 된다고 한다.   


사실 출판노동자들은 스스로를 근로자로 불리는 것도 마땅치 않은 듯. 그건 지금 기업내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역들이 내세우는 논리이기도 하다. 나름 전문직업인이며 평범한 노동자들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하지만, 이제는 교사도, 비행기 기장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고, 공무원들도 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있다.  어차피 기업 내에서 임금을 받고 정해진 기간과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라면 노동자가 맞을 것이다. 출판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자신의 권리 위에서 낮잠을 잔다면 언젠가 인부 취급을 받을 날이 있지 않을까라는 비관적 전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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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과 악다구니 속에서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meprism  차에서 연탄불 피우고, 욕실에서 목매고, 10층 베란다에서 몸 던지고,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돌연사하고...지난 2년간 쌍용차 노동자 20여 명이 그렇게 죽었다. '헬프미!' 사인이 더 필요한가

@meprism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 중엔 스트레스성 질환으로 인한 돌연사가 많다. 옆에서 잠든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조차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고통과 안타까움은 어떤 것일까. 그들의 죽음은 돌연사가 아니라 예비된 죽음에 가깝다. 막아야 한다..

@vanyaji: 세아이의 아버지. 한여자의 남편. 40대초반. 새벽4시 돌연사. 며칠전 쌍용차해고자 부인의 돌연사에 이은 참담한 소식..KT안동지사. 무겁다. 무겁다.


트위터를 보면 우울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전해오는 비명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분노한 사람들의 악다구니도 보인다. 글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표정까지 보는 듯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다.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진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비명과 악다구니 속에도 사람이 있다. 비명은 도와달라는 호소로 듣고, 악다구니는 들어달라는 외침으로 듣고 있다. 이런 관심이라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어느 쌍용차 남편을 둔 부인은 어느날 밤 갑작스럽게 아이들 곁을 떠났다. 그 시간 남편은 지방 일용직으로 돈을 벌러 가고 없었고, 아이들은 엄마의 죽음을 모른채 이틀을 보냈다고 하더라.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죽었을까. 그 아이들은 왜 그런 상황에 처해야 했을까. 그이가 그렇게 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오늘 하루의 돈벌이를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그렇게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처지들의 동질감일까. 그렇게 남은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계좌번호가 트위터에 떴을 때 작은 돈을 입금하고 돌아서도 가시지 않는 이 아픔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1996년 정리해고법이 통과되었다. 그때 추운 거리를 얼마나 쏘다녔던가. 하지만 막을 수 없었고, 그렇게 비정규직이 양산되었고, 88만원 세대가 나왔다. 정리해고의 남발로 수많은 목숨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곁을 떠났고, 우리는 OECD 자살율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이 죽음의 굿판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걸 보면 분명 이를 즐기고 기뻐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어제 한미 FTA가 통과됐다. 당장은 아무일도 없겠지만, 언젠가 이것도 수많은 목숨들을 잡아 먹을 것이다. 정리해고법이 그러했듯이... 정리해고법이 통과되고 불과 15년만에 우리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한미 FTA를 통과시켰다. 죽어라죽어라 고사를 지낸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닐텐데, 참 할 말이 없다.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은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조금은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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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여 부활하라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 티스토리 IP제한 공지(http://notice.tistory.com/1686)가 뜬 이후 나에게도 해당되나라는 의문점을 가졌지만 적극적으로 알아보려 하지 않아서 그만 내 블로그가 사라져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버렸다. 물론 티스토리 홈페이지를 통해 로그인해서 들어오면 여전히 살아 있지만 1차 주소를 www.eowls.net으로 해 놓았던만큼 이 주소로 들어오면 없는 페이지로 나온다.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부터 사라져버린 블로그를 소생시키기 위한 내 노력은 나름 눈물겨웠다.
  • 나름 자부하고 있던 블로그 주소이지만 사실 블로그 작업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글쓰는 것에도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 업무에 가정사 챙기는 일까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마흔을 앞둔 생활인의 한계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라는 위로를 던졌다.
  •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 생각과 상념을 차분히 정리하는 일도 블로그가 있는 이유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까이는 일도 많이 봐왔고, 인터넷 세상에서 개인정보가 어떤식으로 유출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글이 가지고 있는 성찰의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세상의 화두는 '쫄지마'가 되고 있다. 세상의 온갖 강요된 질서에 쫄대로 쫄아버린 지금의 30~40대에게 저 말은 얼마나 용감한 말인가. 그 '쫄지마'가 대상으로 가지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고, 나꼼수는 '가카'를 그 정점으로 보고 있지만, 실상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가카'는 멀리 있고, '상사'는 가까이 있는 존재다. 태고적부터 쌓여져 온 직업 내의 권위의식이나 사회의 줄세우기 관행 등이 우리를 스스로 쫄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 글을 쓸 때 언제부턴가 자기 검열에 빠져들 때가 많다. 이것을 쓰면 누군가가 보고 사회(회사나 국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벼라별 구설수에 휘말리고 소송에 휘말리고, 맘고생 몸고생 개고생을 사서하지 않을까 등등.
  • 아무튼 나도 그만 쫄고 싶다. 그 시작을 블로그를 부활시키는 것에서 시작해야지. 벼라별 말들을 아주 읽기 힘들고 쬐그마한 글씨들로 주저리주저리 나불대 보자. 읽는 사람 피곤하게 하는, 가독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내멋대로 글장난을 즐겨보자. 사실 블로그라는 것은 그런 나불거림의 장난질 기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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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SNS(social network service)들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조금씩 다르다. 그 차이는 직접 운영해 볼 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는 선배가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면서 떠오르는 단상을 담담하게 쓴 페이스북의 글에 대해 위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경쟁적 교육의 상징이자 아이콘이 된 학원에 보내는 엄마의 고민과 그와 함께 찾아올 경제적인 부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에 보내달라는 아들의 청원에 대한 생각 등을 담은 그 글("나는 엄마다")은 그렇게 심각한 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댓글은 마치 사교육에 맞서는 전사와 같은 문체로 그이에게 준엄한 논리로 조언(혹은 충고)를 했나 보다. 댓글을 작성하는 동안 사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선배"의 고민에 대해 생각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진정성은 있었지만, 어쩌면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으로 밀어 넣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부모"의 진솔한 고백에 대한 배려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페이스북은 트위터와 다르다. 트위터는 주로 정보의 생산과 확산에 적합하다면, 페이스북은 지인들과의 감성적 연결에 더 적합하다. 담벼락(페이스북의 개인 홈페이지)과 타임라인(트위터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보이는 글들도 그렇게 구별된다. 그렇다고 해서 페이스북에 적합한 글, 트위터에 적합한 글이 따로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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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다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접이식 자전거 블랫캣3.0은 오랜만에 기지개를 폈다. 관절들이 굳어 있을까 걱정했지만 녀석은 무리없다고 자신만만했다. 얼마전에 기름치고 점검해주었더니 기고만장이다. 그러나 얇은 옷속에 숨어있던 내 속살들은 파고드는 아침 기운에 넌더리를 쳤다. 아무래도 방풍쟈켓이라도 하나 더 입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일이다. 페달을 돌리는 힘이 열에너지로 전환되는 시간을 기다릴밖에. 그렇게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밀고 나아갔다.

불과 5분만에 길을 헤맸다. 목감천에서 안양천으로 접어들었다가 곧장 고척교로 오르는 길이 사라진 것이다. 예전에 있던 정수사업장 옆의 샛길이 공사로 바뀌어서 못알아보고 지나쳤다. 너무 오래 쉬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같은 길을 오래 달리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몸이 먼저 길을 알아본다. 어디에서 돌출구간이 있고, 어느 길에 파인 구멍이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 차량들이 신경질적인지, 다음 신호가 어떻게 변화될지 등등. 차도로 올라오니 몸이 길을 기억하고 있다. 오랜만이지만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처음의 긴장감은 많이 물러났다. 더구나 지난해 마지막 자전거 출퇴근 때보다 도로사정은 매우 좋아졌다. 문래고가가 철거된 뒤에 넓어진 차도는 자전거가 다니기가 편했다. 또 여의도를 관통하는 도로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마련되어 옆의 자동차들의 눈치(혹은 경계)는 덜 보게 되었다.

봄바람은 대단했다. 집으로 오는 퇴근길이었다. 서해 바다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바람이었을 거다. 엄청난 바람이었다. 마포대교 위에서 흔들리는 운전대를 느꼈다. 툭툭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마포대교와 여의도를 지나와야 했다. 영등포 롯데백화점 삼거리가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길은 좁은데 차량통행이 많다. 자전거가 다니는 끝차선의 도로 상태도 울퉁불퉁 엉망이다. 이 구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다. 가장 긴장된 구간이다.

오랜만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나니 몸이 녹초가 되었다. 겨우내 몸이 많이 망가진 것이다. 9월 즈음에는 춘천까지 자전거 도로가 뚫린다고 한다. 그때까지 열심히 몸을 단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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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캔과 출판사의 미래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관련기사: 성업 중 '북스캔'은 저작권 위반…'소리바다 재현되나'


아이패드나 갤럽시탭 등 태블릿 PC가 유행하면서 책을 스캔해서 PDF로 저장해 주는 전자책 서비스 대행업체가 늘고 있다. 보통 페이지당 10원으로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도 않는다. 물론 책을 구입한 사람의 경우 책값과 스캔 비용을 합한다면 과연 경제적인 비용일지 따져보아야겠지만, 정기적으로 두꺼운 책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학생이나 상시적인 관리 메뉴얼이 필요한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북스캔과 태블릿PC를 이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작권과 관련된 논란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몇몇 북스캔 업체의 사이트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경고 문고가 나온다.


저작권법 침해 주의
저작권법 제30조(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


즉 북스캔 업체는 단순히 책을 대신해서 스캔해 주는 서비스 업체일 뿐 전자책의 출판이나 유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또 생산된 전자책이 유포될 경우 그 책임이 책의 주인에게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한 기사에서도 개인이 소유한 책을 개인이 아닌 제3자가 스캔하는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 관계자 역시 저작권 위반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쪽의 말이 맞는지는 실제 법정에서 가려질 문제겠지만, 북스캐너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전자책을 만들 수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과연 저작권 위반 판결이 나온다 할지라도 전자책의 생산과 유통을 막을 수 있느냐라는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트위터에 올린 질문에 대한 의견들



실제로 개인을 일일이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 자체가 인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MP3처럼 합법적이면서 저렴한 유통 채널을 만든다면? 합법적인 채널을 만드는 것은 유통의 문제다. 영세한 출판사들이 독자적으로 유통 채널을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출판사가 저렴한 전자책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언뜻 생각하기에 책의 발행까지 소요되는 비용(종이, 잉크, 풀, 인쇄와 제본의 기계 비용과 인건비, 입고와 출고, 배송 등의 관리비 등등)을 생략할 수 있는 전자책은 아주 저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제작 단가는 (얼마나 많이 찍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책값의 15%~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출판사(편집자, 디자이너, 조판자), 유통사(광고사), 판매자, 저자 등에게 돌아간다. 전자책으로 출간할 경우 생각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복제방지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안드로이드, 아이폰, 킨들 등 다양한 포맷용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 비용 등은 원본 책의 출간 비용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다. 


애플의 가격 정책이 전자책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애플은 저자에게 마진(기존의 마진은 7~12%)의 70%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놓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는 불법 유통의 가능성이 극히 적으며, 애플이 저자와 직접 계약해 유통하므로 저작권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고, 또 앞에서 이야기한 제작단가가 생략될 수 있어서 이익을 저자와 애플이 고스란히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기에 가능하다. 


애플의 시스템을 보면서 우리가 모색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플랫폼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시장의 고민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북스캔은 현실적인 위협이고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으니 출판사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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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는 아이, 게임하는 부모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컴퓨터가 없던 시절 아이들의 놀이는 주로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술래잡기, 다방구, 얼음땡, 오징어(일종의 야외 전투 게임) 등은 어릴 적 하루해를 짧게 만들었던 즐거운 놀이들이었다. 잘 못하는 아이들은 깍두기를 시키고, 나름대로 작전과 전략을 고민하면서 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이런 놀이를 하다가 종종 다치는 일도 있었다. 찰과상 정도는 너무나 빈번히 일어났고, 멍듦, 타박상 등도 심심치 않게 생겼다. 심하면 탈골, 골절이나 인대 파열 등이 발생하곤 했고 아주 심한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입거나 사망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돌아보면 우리의 놀이는 꽤나 격렬하고 다이내믹했었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야외 놀이라고 해봐야 축구나 농구, 야구 등 성인들이 스포츠라고 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다방구니 술래잡기니 오징어 같은 놀이는 생소하기만 할 거다. 놀고 싶어도 또래가 별로 없고, 있다고 해도 다들 학원을 가거나 과외를 받느라 동네 어귀는 쓸쓸하다. 적어도 오프라인에서 아이들 놀이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있다. 일부 놀이들도 어른들에 휩쓸려 그들만의 문화는 종적을 감추고 있다.


그런 와중에 컴퓨터 게임이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게임 중독이란 말도 심심치 않게 언론에 오르내린다. 과연 컴퓨터 게임은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일까?


간단히 말해 컴퓨터 게임은 지금의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 중에 가장 안전한 게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전에는 아이들 부상의 제1원인이 놀이(게임)이었지만 컴퓨터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심심치 않게 게임 중독으로 인한 사망, 절도, 사기, 살인 등의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게임 중독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높다. 만일 그러한 강력사건들이 게임 중독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당연히 법과 제도로 게임을 규제하고 제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중독도 많다. 많은 직장인들이 주말이나 휴일도 없이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돌연사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워커홀릭이란 말도 생겼다. 아무래도 일에 중독된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니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과 직장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겠다. 많은 학생들이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공부하다가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자살을 하고 있다. 공부가 사망의 원인이니 규제해야 마땅하다. 많은 산모들이 아이를 출산한 후 양육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로 우울증에 시달려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심지어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출산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법안이 필요하겠다.


물론 엉뚱한 논리다. 우리가 어떤 단어에 ‘중독’을 붙이는 것은 그것이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신체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직접적으로 끼쳤을 때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일하는 사람들 중에 과로사가 나온다고 일을 규제하지 않고, 산모 중에 우울증이 심하다고 해서 출산을 제한하는 법률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게임 역시 일부에서 나타나는 부작용만으로 게임 을 규제한다는 것은 일면 필요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너무 쉽게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시각과 게임에 대한 몰이해가 깊게 깔려 있다. 그토록 ‘게임 중독’에 대해 수많은 미디어들이 강력한 경고를 보냈지만 게임과 범죄를 직접적으로 연관 지을 수 있는 어떠한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가 없다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지금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사고의 원인을 가난, 소외, 따돌림,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대처해 보라. 오히려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게임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가 사회적으로 퍼져 있을까. 그것은 사회를 주도하는 어른들 대부분이 게임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요즘 젊은 것(혹은 어린 것)들은... 쯔쯔쯧”이라는 말로 쉽게 치부해 버린다. 일면 그런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게이머들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에 몰두한 모습을 보면서 기겁을 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평소에는 똘똘하고 부모말 잘 듣는 아이가 컴퓨터 앞에 앉으면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난타하며 혼잣말을 하는 모습은 이상하게 보일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일 뿐이다. 어른들이 고스톱이나 윷놀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저 아이들이라서 더욱 이상하게 보는 것일 뿐이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집중하고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의 표정, 쉽게 말해 어른들이 섹스를 할 때의 표정도 그와 같지 않나.


스타크래프트의 정식버전은 18세 이상 가능이지만 그보다 수위가 낮은 12세 버전도 시중에 나와 있다.


본인이 유일하게 즐기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15세 이상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21세기이며 아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부모가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그저 스트레스나 풀겠거니 하며 방치하거나 ‘게임은 나쁜 것’이라고 하면서 죄책감을 준다면,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와 폭력성을 키울 것이고,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서 더욱 더 게임을 통한 일탈과 반항을 생각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게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즐겨 하는 게임의 장점을 이해하고 그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즐기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스타크래프트가 가진 전략성을 통해 종합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월드워크래프트 속의 신화와 전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구성해 보자.


“아들, 밀려오는 저글링 러쉬를 깨려면 시즈 탱크를 언덕 위에 배치하는게 좋아.”

“아무래도 언덕 탱크를 공략하기 위해서 공중 공격을 해오겠죠?”

“그렇지, 그렇다면 터렛(대공미사일 기지)을 설치해서 방공 능력을 보강하는 건 어때?”


“아빠, 드워프들은 왜 키가 작고 뚱뚱하죠?”

“드워프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보다 작은 난장이란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고 땅굴이나 동굴에 모여 사는 종족이지.”

“아, 그래서 채굴에 능하다는 거군요.”


아이들의 게임을 규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것만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니다. 교육의 진실은 수평적인 대화를 통한 이해와 공감에 있다. 게임을 즐기는 아이와 대화하고 그 게임을 이해하려고 하자. 얼마나 편한가, 만일 아이가 다방구나 술래잡기, 오징어를 하자고 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부상의 위험이나 심신의 피로를 경험할 텐데, 고작 컴퓨터 게임 아닌가? 설마 클릭과 키보드 조작이 힘들다고 핑계될 것인가? 물론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에 대해서는 단호히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게임이 그렇지는 않으며 아이들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많다. 아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함께 게임을 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겉으로 이해하는 척하는 것과 함께 몰입하고 즐기는 것은 천지 차이다. 부모가 함께 게임을 즐기고,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아이들이 게임 안으로 숨어 들어 게임 속에서 방황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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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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