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1980년대 사회 붕괴 이후 이런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이런 사람들과 섞여 살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빈곤에서 오는 범죄와 파괴 행위로 노동자가 겪는 고통은 멀찌감치 떨어진 안전지대에 사는 중산층보다 훨씬 심각하다. (중략) 이 책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만한’ 빈곤층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의 자녀는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르는 소수의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일하는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이 주변에 널린 사회적 병폐에 물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런 우려 때문에 이들은 일주일에 48시간이 넘게 일을 하지만, 이 수입으로는 현재의 환경에서 결코 탈출하지 못한다. - 31쪽
병원서비스가 처음 민영화되었을 때(당시에는 ‘타맥’이라 불렸던) 카릴리온이 처음 계약을 따냈고, 운반원을 비롯해 직원 수를 많이 줄였다. “저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벌 것 같아요?” 새뮤얼이 말했다. 그 뒤 카릴리온은 직원 수를 더 줄였다. 병원이 민영화되기 전에는 운반원이 16명이었는데, 환자 수가 늘고 업무량도 점점 늘어난 현재는 되레 11명으로 줄었다는 게 파텔의 설명이었다. “민영화하면서 절대 감원은 없다고 약속했지만 우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예상했죠. 우리 예상이 맞았어요. 그것도 모자라 사람을 더 줄이겠대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다 감당하겠어요?” - 109쪽
환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따위는 내가 맡은 일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새뮤얼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환자를 절대 건드리지 말아요. 회사 규칙이 그래요. 환자에게 손을 대고,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는 일은 간호사가 할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환자의 팔도 건드려서는 안 돼요. 그러다가 환자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카릴리온이 고소를 당해요.” 나는 이제까지 주위에 도와줄 만한 간호사가 없으면 내가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거나 휠체어에서 내려놓기를 수없이 반복했었다. 힘없는 노인은 휠체어에서 천천히 빠져나올 때도 넘어져 뼈가 부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내 팔에 의지해야만 했다. 내 생각에 운반은 어쨌거나 운반이어서 필요하면 짐이나 사람을 옮겨야 했다. 적어도 30년 전에는 그랬다. 그때는 운반원이 늘 간호사를 도와 환자를 옮겼다. 그러나 외주 계약이 생기면서 이런 훈훈한 협력관계는 계약서의 세부사항에서 완전히 빠져나갔다. 우리는 냉정한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되었다. -110쪽
임시직의 높은 이직률은 계속 남아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적잖이 떨어뜨렸는데, 이런 현상은 내가 가는 곳 어디에서나 일어났다. (중략) 사람들이 떠난다는 건 그 일이 하찮다는 뜻이었고, 때로는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하찮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면서 매기와 윌머의 고된 노동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을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의 성의와 전문성과 헌신은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 185쪽
한번은 텔레비전에서 <빌>이란 프로그램을 보는데, 경찰이 꼭 클래펌파크 동쪽 지역처럼 생긴 아파트 단지의 어느 한 집을 덮치는 장면이 나왔다. 이곳에 앉아 그 장면을 보면서 공공주택의 이미지는 항상 범죄나 사회문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곳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나 이와 비슷한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영국이라는 커다란 그림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이들은 잊혀졌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며, 혼란이 지배하는 무법천지를 묘사하는 이야기의 좋은 소재에 불과하다. 영국 국민의 약 3분의 1이 법을 지키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곳이건만, 사람들의 상상 속에는 그저 버려진 황무지일 뿐이다. - 241쪽
노조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국립보건서비스나 지방정부와 계약을 맺은 외주업체들이 서로 사실상의 카르텔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국립보건서비스나 지방의회가 이따금씩 외주업체를 바꾼다 해도, 실제로 이들 업체는 비슷한 가격에 서로 나눠먹기식으로 일을 따내면서, 지나친 경쟁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상황을 막는다. 그리고 병원 관리자들이 청소원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일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다 보니, 청소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관리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관리자들은 청소 업무의 세세한 부분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다. - 266쪽
간병인의 친절한 태도와 고된 노동은 이들이 받는 임금의 가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눈에 띄지도 않고 좀처럼 언급되는 일도 없이,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지하감옥에 꼭꼭 숨어 있다. 일반 매니저의 임금인상이나 일의 가치를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비교해 보라. 대체 어떤 가치의 잣대가 간병을 밑바닥 일로 평가하는 것일까? 이런 가치 평가는 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간병은 여성의 일이고, 여성의 일은 평가절하된다. 이런 태도는 노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성의 노동은 똑같이 존중되지 않는 한, 공정한 임금분배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중략) 여성의 노동은 아직도 공짜로 제공되어야 하는 당연한 노동으로 취급된다. (중략) 누군가를 보살피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가르치고, 아이를 키우는 소위 여성의 능력은 언제나 저평가된다는 것이 저임금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했던 일은 사랑에서 나온 봉사였고, 그러다 보니 일하는 모든 여성은 사회의 어머니가 되어 공짜로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팽배해 있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는 여성은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일한다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나온다. - 326쪽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녀임금평등법 역시 여성의 소득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지는 못했다. (생략) 여성의 저임금은 여전히 문제의 핵심으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기업이 저임금 여성 노동자를 남성과 분리해 놓음으로써 양쪽의 임금을 비교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는 과거에도 늘 있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면서, 대개는 여성의 영역이 되어버린 3c업종인 catering(조리), cleaning(청소), caring(간병)에 종사한다. 간혹 남성이 이 직종을 택한다 해도 여성이 받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결국 저임금 노동자의 70퍼센트 이상이 아직도 여성이며, 이들의 노동은 단지 여자의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식적으로나 시스템상으로나 여전히 평가절하된다. -373쪽
오늘날 가난을 광범위하게 정의하는 말이 있다면 바로 '제외'라는 말이리라. 평범한 즐거움에는 하나같이 '출입금지' 표지판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소비사회는 '출입금지'를 명한다. 이보다 더한 차별정책이 또 있으랴. '제외'는 도시 풍경을 살벌하게 만들었다. 이걸 사라, 저걸 사라며 소비자를 현혹하는 번쩍번쩍 빛나는 상점은 총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돈이 모자라 가장 싼 음식을 고르는 일은 결코 즐거운 쇼핑이 될 수 없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움만 더해갔다. - 3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