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문화 테마 파크는 잠깐 들려볼 만했어.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더군. 물론 이벤트가 있다면 좀더 걸리겠지만 아무 것도 없을 때는 박물관만 둘러보게 되고, 박물관 규모도 그리 크진 않아. 하지만 닥종이로 만든 인형들의 짜임새 있는 제작과정 설명이 인상적이더라. 볼만했어.
의외로 박경리 문학공원이 좋았다. 도착하자마자 청소년 시동아리에서 야외 전시회를 하는데, 멀리서 달려와 차와 과자를 주면서 구경하고 방문록을 작성해달라고 하여 뜻하지 않게 청소년들의 시를 둘러보았는데, 재미있고 참신했다. 그 나이 때의 고민과 삶, 사랑과 우정이 투박한 그림과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찬찬히 둘러 보면서 시는 이렇게 사람들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밖에 전시관 안에는 토지 전편의 이야기를 짧막한 글과 동영상, 그리고 소도구를 이용해 표현한 곳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게 아쉬웠는데, 원주 여행을 다시한다면 이곳은 꼭 다시 들려보고 싶다.
길은 항상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새롭게 길이 나면 그곳에서 제를 올렸다. 길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이면서 낯선 것들이 공동체로 들어오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것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공동체는 밖으로 번창하라는 의미를 제에 담았다.
중앙선의 복선화로 새롭게 자전거길이 뚫렸다. 사실 길이 "새로" 뚫렸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미 있던 길을 자전거 길로 바꾸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철도 중앙선의 역사는 멀리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만주 침략과 한반도 수탈의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중앙선을 건설했다. 1936년 일제가 밝힌 건설 목적에서는 “반도 제2의 종관선을 형성함으로써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경기도 등 4도에 걸치는 오지 연선
일대의 풍부한 광산·농산 및 임산자원의 개발을 돕고, 지방산업의 발달을 촉진하는 동시에 격증하는 일본(日)·조선(鮮)·만주(滿)의
교통 연락, 객·화의 수송 완화를 도모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각주:1] 철마가 달리던 길을 이제는 두 바퀴를 굴리며 달리는 자전거들의 질주로 채웠다. 억압과 착취의 도구였던 길이 놀이와 낭만의 길로 바뀐 것이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였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아마 이런 때에 쓰는 말일 것이다.
용산역에서 6시 45분 용문행 전동차. 맨 앞칸과 뒤칸에는 자전거를 싣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앞칸에만 해도 20여 대의 자전거로 채워졌다. 거기에 레저용 자전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짐받이에 마른 풀더미가 있었는데, 할아버지 말로는 약재에 쓰이는 거라서 돈을 많이 받는단다. 지금도 자전거를 싣고 밭에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 노인 외에도 밭에 나가신다는 중년의 아저씨와 또 다른 노인도 생활 자전거를 전동차에 실었다. 일요일이라 놀러 가는 자전거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분들의 자전거는 화려한 자전거들 틈에서도 유난히 돋보였다. 용산에서 출발해 약 1시간 반 만에 양평에 도착했다. 양평역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길을 바로 찾기는 어려웠다. 편의점에 들어가 물어서 겨우 자전거길에 올라갔다.
길은 아주 잘 닦여 있었다. 아스팔트를 덮은 철도 길은 부드러운 페달의 느낌을 다리에 전해주었다. 이제는 기차가 지나지 않아 버려질 뻔했던 능내역은 자전거들의 휴식 공간으로 변했다. 젊은 시절 모꼬지 장소로 대성리 다음으로 자주 찾았던 능내역이 이렇게 변하니 기분이 묘했다. 철도의 레일도 철길을 덮었던 자갈들도 저마다의 독특한 운치를 주었다. 산을 뚫어 만든 9개의 터널도 자전거길의 하나다. 교각은 반반한 나무판자를 깔아놓았다. 판자 위를 달리는 자전거로 달그락거리는 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 모든 것들이 한강 자전거 길에서 만날 수 없는 양평 자전거길의 재미다.
반면 급커브길이 많고 언덕길도 많았다. 자전거 초급자나 아동들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터널 안도 생각보다 어둡다.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자전거 길 관리가 제대로 이어질지도 걱정이다. 사람이 오가는 자리는 아무리 조심스러워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관리가 부실하면 금방 망가지기 쉽다. 게다가 자전거 도로는 지역 지자체가 직접 관리할 텐데, 안양천만 해도 동네마다 지자체 사정에 따라 길의 상태가 다르다. 양평이나 남양주의 재정 상태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전거 도로 관리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하루 전 팔당댐 인근 양서문화체육공원에서 '남한강 자전거길 길트임 기념식'이 있었다. 여기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4대강(사업)은 강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해서 하는 것"이라며 "소수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국민들은 절대 환영"이라고 언급했다.
4대강 사업은 크게 보 사업과 준설 사업, 그리고 강변 주변 사업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자전거 길도 크게 보면 4대강 사업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양주길 구간은 예전 폐철도를 이용해 마련한 자전거 도로다. 따라서 이 구간은 4대강 사업과 관련성이 없다. 물론 이 길이 나중에 강을 따라 연결되는 전국 자전거 도로망에 포함되므로 그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4대강 사업을 억지로 녹색 사업으로 포장하기 위한 꼼수다. 많은 자전거 전문가들이 레저로서의 자전거 문화보다 교통수단으로서 도심내 자전거 도로 확보가 더 시급한 녹색 사업임을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으로 쫓겨난 농민만 2만 4천여 농가에 이른다. 남양주길 한가운데에 있는 두물머리에서는 현장 농민들이 지금도 계속 저항하고 있다. 이곳의 사업 공정률은 0%라고 한다. [각주:2] 이명박 대통령은 항상 그래왔듯이 이곳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농민들과 인권환경단체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프레드 피어스의 '강의 죽음'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수문학자와 공학자들은 강과 관련된 수많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결론 내렸다. 흐르는 강물의 위력과 콘크리트가 정면으로 대치하면 언제나 콘크리트가 패배한다. 한 곳에서
홍수를 막으면, 다른 곳에서 더 자주 홍수가 일어난다. 공학자들이 강을 다스리려는 시도는 자연과 함께할 때, 자연의 요구에
순응할 때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각주:3]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올여름 많은 비 때문에 한강과 그 지천들, 지방의 많은 하천의 둔치에 만들었던 수많은 구조물과 자전거 도로들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본다면 지금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 얼마나 허울 좋은 껍데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뚫린 자전거길은 무척 반갑다. 하지만 또한 슬프다. 반갑게 맞아들이고 즐겁게 달려야 할 그 길에 묻어 있는 이 수많은 이야기와 애환들을 언제쯤 세상에서 알아줄까.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길은 길이다. 길을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도 들어오지만, 전염병과 전쟁, 폭력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놓고 달리는 이 자전거 길이 언제나 평화와 행복을 전해주기를 바라면서도 또 다른 욕심과 욕망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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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시 조금 넘어서 개봉역 플랫폼에 섰다. 자전거는 오직 나 하나. 일요일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 양평역을 출발해 달리던 자전거길. 자전거 길의 폭은 좁았다 2대가 나란히 달리기는 어렵다. 아스콘 포장은 도심 차도만큼 작업이 잘 됐다. 물론 전 구간이 이런식의 포장은 아니다. 길 양옆으로 철도길에 쓰인 자갈들이 쌓여 있다.
▲ 나와 함께 전동차에 자전거를 실었던 자전거족들은 대부분 팔당역 이후로 대부분 내렸고 양평역에 내린 사람은 나와 함께 두세 사람밖에 없었다. 양평역을 출발해서 혼자 한참을 달렸다.
▲ 가을이 깊어가면서 벼들이 무리익어갔다. 남양주길에서 한강변을 달리는 것보다 이런 시골 풍경을 보고 숲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 훨씬 좋았다. 예전 자전거 여행 생각도 많이 났다.
▲ 멀리 터널이 보인다. 이런 터널이 9개가 있다. 몇몇 터널은 센서등을 설치해 사람이 들어오면 불이 켜진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밝지가 않다. 간간히 벨을 눌러 반대편에서 오는 이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려야 했다.
▲ 북한강철교 앞(10시 10분경). 예전에는 기차가 다니던 철교였다. 새롭게 철교가 놓였고 예전의 철교는 다시 자전거를 위한 다리로 바뀌었다. 옛스러운 풍경을 연출하였다.
▲ 덕소 부근(11시). 팔당댐을 지나면 다시 한강 자전거 길이다. 팔당에서 미사리쪽으로 넘어가려 했는데 실패했다. 양평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달리는 길에서는 다시 한강 남쪽 길로 올라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나역시 그대로 한강 북쪽길로 계속 달렸고 나중에 잠수대교길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 역시 덕소 부근에서 찍은 사진. 강아지풀과 억새들이 한창인 가을 풍경.
▲ 구리시에서는 코스모스 축제가 한창으로 휴일을 맞아 공원에 나온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 뚝섬 한강 시민공원(12시 경). 날이 많이 쌀쌀해졌지만 그래도 분수쇼는 아직 유효한가 보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대충 닭꼬치 하나와 물로 일단 급한 허기를 잠재웠다.
▲ 잠수대교를 넘어가는 길. 처음으로 넘었다. 자전거 길이 넉넉하게 열려 있었다.
▲ 안양천에 들어서자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6시간 정도를 달리고 있던 터였다. 게다가 재대로 된 점심을 먹지 못하고 꼬치 2개로 떼운 상태였다. 휴식이 조금씩 길어졌다.
▲ 오후 3시 경. 집에 도착했다. 대략 78km를 6시간 반 동안 달렸다. 쉬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한 시간에 약 13km를 달린 셈이다. 이 때문에 이후 약 1주일 동안 무릎 통증에 시달렸다.
봄의 초입에 지인 덕분에 좋은 캠핑 다녀왔습니다. 좋은 캠핑이라고 하면, 어떤 것을 말하느냐고 묻겠지만, 그저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과 저녁 바베큐, 그리고 은은한 장작불에서 나눈 대화 등이 지난 겨울의 추위를 털어내는 것 같았으니, 좋은 캠핑이었다고 해야겠죠.
게다가 빔프로젝트와 스크린막까지 따로 준비한 지인의 캠핑 시스템은 달랑 침낭만 두개 들고 간 내가 너무나 황송할 지경이었습니다. 덕분에 멋진 캠핑을 할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신세만 져야 하는지... 그래서 캠핑 후기라도 만들어 보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막상 무슨 내용을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청평 캠핑장은 접근성이 매우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길 옆에 도로가 있고 계곡과 계곡 사이에 자리하고 있어서 차량 소음이 매우 크게 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여러 부대시설은 깔끔하고 주인아주머니도 친절한 편이지만, 모처럼의 평화로운 늦잠을 방해하는 차량 소음은 정말 참기 어렵더군요. 게다가 일요일 아침 오토바이족들이 그 큰 엔진 소음을 내며 지나갈 때는 전쟁이 난 줄 알았답니다.
딸 민서를 데리고 가는 두번째 캠핑이었습니다. 물론 저번처럼 이번에도 방갈로를 얻어서 그곳에서 엄마랑 잤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방갈로의 우풍이 심해서 텐트에서 자는 것만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쁘다고 봐주는 어른들이 많으니까 신이 났습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쉽게 안기를 걸 보면 민서도 캠핑 온 걸 매우 반기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산에 다니는 걸 좋아하니 그 피를 받은 거겠죠.
이곳에도 키우는 개가 있는데, 딸 민서는 그 개들에게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그다지 귀여운 구석이 별로 없는 녀석들이었지만 평소 개만 보면 달려드는 민서의 호기심은 여기서도 말릴 수가 없더군요. 쉽게 손을 뻗어서 눈과 코를 만지려고 해서 기겁을 했는데, 말려도 어쩔 수가 없더군요. 개들은 아기가 귀찮을 뿐 오히려 아기보다는 저에게 관심이 많은지, 제 신발과 무릎에 코를 킁킁 거렸습니다.
가족단위 캠핑을 오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 아이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였습니다. 민서 데리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해먹을 설치하여 노는 아이들을 보고 민서의 호기심이 또다시 발동, 뒤뚱뒤뚱 그 옆에서 해맑은 눈으로 해먹에서 노는 아이들을 쳐다 보더군요. 그 모습을 보던 어른들이 아이들 보고 애기도 태워주라고 하는데, 아이들도 거리낌없이 민서를 가운데 태워줍니다. 살살 흔들어주니 아주 비명을 지르면서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또 한참 언니 오빠들과 놀았습니다.
캠핑도 왔겠다 이날은 밤늦게까지 실컫 놀아주마라고 생각했는데, 낮에 워낙에 거칠게 놀아서인지 일찍 잠투정을 하더군요. 민서는 방갈로에 재우고 다시 장작불에 둘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캠핑의 진리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에 있겠죠.
짧은 1박 2일 동안 캠핑장비의 설치와 철거에 들어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캠핑 장비 자체가 막대한 돈이 들어가죠. 이런 모든 일의 중심에서 우리에게 크나큰 혜택을 준 만청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주]2007년 11월 4일에 다녀왔던 주산지글.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인데, 가을을 맞아 지난 가을을 추억해 보고 가을 사진을 보며 지금을 위로하고자 퍼왔다. 여기에 글을 가져오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있는 글은 지웠다.
1.
새벽부터 갔어야 했다.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6시가 좀 넘어서 나온 게 화근이었다. 주산지 앞은 이미 차들로 빽빽했고, 버스를 타고 온 주왕산 등산객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올라가는 아이들, 그리고 새벽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차려진 포장마차와 막걸리를 나르는 트럭들까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가을 단풍이 든 주산지의 새벽 물안개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차를 몰고 주차장 앞까지 밀고 들어간 나는 도로 한가운데서 나가지도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엉망으로 차를 주차시켜 놓은 비양심 인간들 때문이다. 차 안에 갇혀 우왕좌왕 하는 동안 친구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주차할 곳을 찾아다녔지만 한참만에야 겨우 나가는 차를 발견하고 주차를 시킬 수 있었다. 세상은 온전히 밝아오고 있었다. 더 늦으면 물안개를 못 보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빨리 걷는다면 약 15분 정도 걸린다. 주산지까지 가는 길도 풍경이 좋다. 우리의 발걸음이 빨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늦은 시간에 찾은 것인지 주산지 풍경과 만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2.
“너 여기 안가면 평생 후회할 거다.”
10여년 전, 친구는 또다른 친구의 그 말에 이끌려 밤새 마신 술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주산지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가 본 10여년전 주산지 풍경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인적도 드문 주산지의 물안개를 보며 친구와 그 일행들은 오랫동안 말없이 주산지를 바라만 보았다. 밤새 술잔을 비우면서 새벽을 맞은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말이다.
주산지를 배경으로 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2003년에 나왔으니까 그가 방문한 것은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날처럼 사람과 차로 북새통을 이룬 주산지 풍경은 그에게 매우 낯설다. 그때와 사뭇 달라진 풍경에 주산지 가는 길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라진 게 어디 사람들 모습뿐일까. 유명한 관광지답게 주산지 가는 길은 고은 흙길로 넓게 다져져 있고, 길 양편으로 계곡과 울창한 침엽수림도 손색없이 자리잡고 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그냥 산비탈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주산지로 들어갔다고 하니 영화가 바꿔놓은 세상은 거의 천지개벽과 맞먹는 것같다.
3.
많은 사람들이 나갔지만 주산지 주변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에서 200m 정도 가야 있는 주산지 전망대 주변에는 서있을 틈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수많은 카메라들의 기이한 행렬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라 놀랍기만 하다.
주산지는 유명한 사진촬영 장소다. 물속에 뿌리를 내린 능수버들과 왕버들나무, 새벽 물안개, 그리고 주변의 가을단풍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는 신선들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그러다 보니 멋진 풍경사진을 담아보고 싶은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요즘이 가장 많은 시기다.
집을 나오면서 카메라만 챙겼지 미쳐 삼각대를 챙기지 못했다. 요새는 자꾸 빼먹고 다니는 게 많다. 그런 일이 생기면 몸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삼각대가 없으니 셔터속도를 길게 잡을 수 없다. 아무리 숨을 참고 몸을 고정하려 해도 미세한 몸의 떨림과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어둠 때문에 풍경을 제대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각대를 고정해 놓고 셔터속도를 오래 개방해야 물안개의 묘한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맨몸에 기대어 셔터를 눌렀다. 어렵게 찾아간 곳인만큼 최대한 좋은 사진을 담아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구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카메라의 렌즈보다 마음의 눈에 풍경을 담는 일이 중요하다.
4.
주산지는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착공해 1721년 조선 경종 때 완공한 인공저수지다. 원래는 하류쪽 농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고, 지금도 주산지 아래의 농가는 이 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주산지는 그 크기만을 따지면 여느 저수지 정도의 크기로 한바퀴 빙 둘러보는데 채 1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주산지를 나오면서 사과 속에 꿀이 들어가 있다는 청송사과를 한묶음 샀다. G마켓에서 가장 싼게 2만 원대이니, 1만원이면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다. 당분간은 이 사과의 맛을 통해 주산지의 멋을 추억할 것 같다.
"안양천 진입했어요. 헤맬 줄 알고 서둘렀는데 생각보다 길을 잘 해놨네요." 동행인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서둘러 나가 하늘을 보았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다행히 오후 늦게 비가 시작될 거라는 예보다. 부지런히 달리면 비를 맞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렇게 자전거 하트코스 도전이 시작됐다.
자전거 하트코스는 서울 남부 지역의 지천들을 잇는 코스다. 당장 집에서 나가는 길에서 안양천까지는 목감천을 타고 간다. 목감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구일역에서 동행인을 만났다. 안양천 주변에는 아마도 토요일 현장수업의 일환으로 안양천 청소를 나온 듯한 중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당연히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청소는 뒷전이다. 그래도 안양천의 다양한 자연생태를 보는 재미는 아이들에게 각별하지 않을까.
구일역 안양천에서 남쪽으로 달렸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마중나왔다. 강변 억새풀들이 쭉쭉 하늘을 향해 발돋음을 했다.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풀들도 반갑다. 동행인이 자전거를 즐겨타지 않는지라 천천히 페달을 굴리다 보니 풍경들이 반갑다. 우리를 앞지르는 자전거족도 많지 않았다. 반대로 우리의 맞은편에서 한강쪽으로 달리는 자전거족을 많이 만났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자전거 도로 상태는 무척 좋지 않았다. 좁고 울퉁불퉁했는데, 해당 지자체의 관리 능력이 드러나는 듯하다. 물론 지방하천의 자전거길까지 신경쓰는 건 예산 문제로 많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족들이 느끼는 그런 차이는 비교대상이 되기 쉽다. 양천구는 어떤데 구로구는 이러네, 광명시는 이런데 안양은 이러네 등등... 입이 가벼운 사람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기 쉽다. 자전거족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만큼 해당 지자체에서 좀더 신경쓰는 건 어떨까.
안양천 자전거 도로가 끝날즈음 학의천 자전거 도로가 나온다. 지천으로 갈수록 자연생태는 더욱 원시적이다. 개발이 필요하되 자연친화적인 개발의 중요성이 돋보인다. 무분별한 난개발은 오히려 하천을 죽일 수 있다. 자전거도로 핑계를 대며 4대강을 개발하는 지금 정부는 난개발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어울리며 살 수 있는 하천개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과천 입구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과천은 또다른 세상이다. 계획된 도시답게 도시는 잘 정비되어 있고, 길은 깨끗했다. 과천 진입해서 양재천 들어가기 전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과천 양재천은 도심내 하천답게 예쁘게 꾸며져 있다. 산책 나온 사람들의 모습은 한가롭고 여유있어 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의 모습에서 한가한 가을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과천을 벗어날 즈음 하천은 다시 벌거벗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참을 달리니 양재 근처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닐하우스들과 함께 드러난 타워팰리스의 모습은 딱 그만큼 우리 한국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양재천을 달리면서 조금씩 피로가 몰려왔다. 무엇보다 손목과 손바닥 통증이 심했다. 상체로 누르는 압력을 손바닥과 손목이 온전히 받고 몇시간을 달리니 견디기가 어렵다. 중간중간 핸들을 놓고 상체를 세워서 달린다. 도로에 사람이 별로 없기에 가능한 자세다.
반포대교 앞에서 동행인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빗줄기는 제법 굵어져 있었다. 그대로 맞을 경우 10분이면 많이 젖겠다 싶을 정도였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본 경험이 많다. 이상하지만 비를 맞으면 자전거가 더 잘 나가는 느낌이고 이상하게 기운도 더 난다. 반포대교 이후에는 혼자 집까지 돌아왔다. 비 때문인지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10시 시작한 자전거 하트 코스 도전은 오후 4시 반에 끝났다. 중간에 점심 먹고 맥주 마신 시간 1시간 반 정도를 제외하면 5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체력의 한계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저질 체력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제 길도 잘 아는만큼 종종 다녀볼 생각이다. 다음에는 더 푸른 가을하늘을 품고 달리고 싶다.
얼마전 집에서 쉬고 있던 동생이 아는 사람 통해서 중국을 통해 자전거 한대를 들여놨습니다. 집에 가서 보니 BMW clasic bike 써져 있는 자전거인데,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네요. 어쩌면 제가 처음으로 시승기를 올리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물론 이 자전거가 중국 짝퉁인지, 아니면 중국OEM방식의 정품인지 저도 확신이 안갑니다. 동생 말로는 유로화로 삼백만원 정도의 고가 자전거라고 하더군요. 물론 가짜라면 가격은 다르겠죠.
매끈하게 빠진 모습은 미니벨로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특징적인 부분은 핸들과 바퀴의 휠 부분인데요.
핸들은 위 사진처럼 끝이 위로 말아 올려진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의 자전거는 처음 보는데, 조립이 잘못된걸까요? 아니면 원래 이런식일까요? 그리고 기어가 붙어 있는 앞손잡이 부분은 잡기가 불편할정도로 매우 좁습니다. 이 자전거의 가장 큰 단점이 아닐까 싶더군요.
바퀴 휠은 꽤 강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얇은 살이 아니라 두꺼운 판넬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럴까요? 아무튼 자동차 바퀴만큼 멋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자전거 무게가 더 나갑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블랫캣 미니 3.0보다 조금 가벼운 정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실제 무게는 잘 모르지 말입니다.
안장이나 기어(단일 기어 7단) 등은 꽤 좋아 보였습니다.(뭐 하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게 없네요. 전부 인상비평 정도) 일단 기어는 시마노 정품으로 보였고요, 안장 역시 꽤 좋은 가죽으로 날렵하고 튼튼하게 제작된 안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조립과정의 부실인지 기어에서 작은 문제들이 보였고, 안장은 부착 형태가 잘못되어 있어서 타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이런 불편이나 문제는 쉽게 고칠 수 있을 듯합니다만, 주행시 손잡이 부분은 구조적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폴딩형 자전거인만큼 접는 문제는 확실히 편하군요. 가운데 부분의 접이장치만 풀어주면 아주 쉽게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블랫킷 미니 3.0이 세번의 과정이 필요한 반면 한번에 접히는 BMW클래식은 확실히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안전에 대한 의구심도 버릴 수 없습니다. 가운데 접이장치는 블랙캣에 비해 좀 불안한 느낌입니다. 블랙캣처럼 잠금장치가 별도로 있다면 좋을텐데 그 부분이 좀 아쉽네요.
전체적으로 주행감 등은 블랙캣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에게 이것저것 손볼 데가 많겠다고 알려주었는데, 고치고 나면 더 좋아질까요? 손잡이의 한계 때문에 저는 그다지 찾을 것 같지가 않네요. 그래도 날렵한 폴딩형 자전거의 특징과 BMW고유의 로고가 던지는 아우라, 쉽게 접을 수 있는 편리함 등이 이 자전거의 장점을 도드라지게 하는군요.
물론 부모형제와 함께 살 때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그 때 나는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내'
가족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내' 가족이 생겼다. '내' 가족이 생기면서 책임과 의무가 더욱
늘었고, 나만의 자유와 평화의 영역은 매우 축소됐다. 그러나 혼자였던 '나'는 또 다른 '나' 둘을 더 얻었다. 숫자로만 볼 수
없는 부유함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8월 초 휴가 때 내 가족과 함께 한 첫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첫날부터 휴가길은 심상치 않았다. 토요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섰지만, 뉴스에서는 영동고속도로가 새벽부터 시작된 정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물론 영동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서울을 빠져 나가는 모든 고속도로는 아침부터 심한 정체를 겪고 있었다. 휴가를 8월초로 몰아주는 우리나라 현실이 고속도로에 여실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1년에 한번 있는 휴가, 이렇게 고행을 해서라도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참 꽤재재한 현실을.
첫날 여행지는 담양.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그것도 휴가철인 일요일 집을 나선 것이 잘못이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에 치일 거라고 예상은 했어도 시골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담양 소쇄원은 세번째 찾은 것이었는데, 예전처럼 고즈넉한 맛을 볼 수 없었다. 그 작은 전통 정원과 가옥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디를 담아도 멋진 풍경이 나왔던 소쇄원은 어디를 찍어도 낯선 사람들의 사진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운좋게 자리잡은 평상은 우리가 앉은 이후 채 10분도 안되서 다른 사람들로 꽉 채워지고 말았으니, 저 위의 평상 사진은 정말 운이 좋게 잘 나온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사촌누이의 소개로 어렵게 찾아간 명옥헌원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정자라서 그런지 그나마 조용히 머물 수 있었던 곳이다. 물론 이곳에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중에는 일본인과 서양인도 있었다. 하지만 연못과 그 주변의 배롱나무들에서 활짝 핀 꽃이 제법 운치있는 곳이었다. 담양 여행 중 민서가 가장 잘 웃고 행복에 겨웠던 곳이 아마 이곳이 아니었을까.
죽녹원은 입구의 주차전쟁부터 만만치 않았다. 죽녹원 내부에서는 온갖 사투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날이 날인만큼 대나무 숲의 시원함보다는 짜증이 밀려올 정도로 사람과 날씨에 치였다. 그래도 간간히 나들이가 마냥 즐거운 딸내미 덕분에 웃었다.
월요일에는 함양의 서암정사와 상림공원을 다녀왔다. 이날은 장모님도 함께 했는데, 서암정사 주변은 한창 공사중이라서 덤프트럭들이 바로 절 앞까지 오갈 정도로 부산했다. 그래도 서암정사 본래의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장모님이나 아내는 대만족이었다. 상림공원은 날씨를 생각하면 가지 않는게 좋을 뻔했다. 그래도 상림공원 앞 늘봄식당에서 오곡정식은 나쁘지 않았다.
셋쨋날은 순천 송광사를 돌아보고 계곡에서 간단히 물놀이를 즐겼다. 이곳에서 민서와 처음으로 물놀이를 했는데, 민서는 차가운 계곡물이 신기한지 발로 물장구를 치면서 장난을 치면서 까르르 숨넘어가는 웃음을 던졌다. 태어난지 8개월 된 민서에게 모든 게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피곤함도 만만치 않았다. 넷쨋날은 장모님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구례의 위안리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