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live)만한 집, 살(buy)만한 집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최근 아이가 태어나고 전세 계약 만료일도 다가와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집을 구하자니, 턱없이 높아진 전세금으로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마저도 물량이 없어 부동산 시장이 얼어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결국 처음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에 가까스로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초과된 금액은 빚을 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계산을 해 보았다. 수도권에서 전세 2억짜리 아파트에서 산다고 했을 때, 하루 숙박비를 계산하면 얼마가 나올까? 은행 정기예금 금리를 연 4%로 생각하고, 2억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받을 수 있는 이자 소득은 하루 18,630원 정도가 된다. 물론 이자에 대한 세금 15% 제외한 금액이다. 따라서 2억 원의 전셋집에서 살 경우 2만 원 정도를 매일 숙박비로 지불하는 셈이다. 물론 여타 생활비용(가스, 전기, 수도 등)을 제외하고 말이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자산은 약 2억7천만 원. 그중 부동산은 2억6백만 원으로 약 75.8%정도다. 게다가 가게 부채가 약 4천2백만 원인데, ‘빚이 없다면 부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을 사거나 전세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가구가 빚을 안고 살고 있다. 우리나라 4인 가족의 한달 평균 수입이 284만원으로 1년 연봉으로 3400만원 정도다. 1년 동안 번 돈 모두를 한푼도 쓰지 않아도 부채를 갚지 못한다. 가계 부채 중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요즘, 뛰는 물가 위에서 날고 있는 전세값의 고공 행진이 사람들 가슴을 억누르고 있다. 과연 우리의 주거권은 안녕할까?
 

지금의 전세값 고공 행진의 원인에 대해 신규 주택 공급의 부족과 신혼부부 등 신규 가계의 자연 증가 등이 맞물려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많은 가계가 불안한 주택 가격의 변동으로 집을 구입하기보다 원금 보존이 가능한 전세 수요로 몰리고 있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 있다. 집값 상승의 요인이 없지는 않더라도 대세는 여전히 관망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은 집을 주거의 공간, 문화의 공간이 아닌 재산적 가치로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경제적 가치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더욱 특수한 부동산 역사를 가지고 있어, 집의 경제적 가치에 대중이 몰입하고 있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세 가격의 고공 행진, 부동산 가격의 불안 혹은 급상승 등은 주거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주거권이라고 하면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의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예를 들어 철거민이나 홈리스, 저소득 임차가구 등의 권리는 당연히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과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일반 중산층이나 일부 고소득 임차가구 등의 주거권도 보호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여전히 강제 철거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분명 중산층의 주거권 문제는 인권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시급한 문제로 취급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다 광범위한 접근을 통해 주거권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인권 활동이 필요하다.
 

1996년에 제2차 세계 주거 회의(Habitat Ⅱ)에서 채택된 의제는 주거권과 관련된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국제 문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주거권과 관련된 국제적인 합의들을 종합하고, 또 주거권의 실현과 관련한 주거권의 구체적인 여러 측면들을 검토하고, 실천의 지침을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국가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정책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적절한 주거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주택을 거주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부담가능하면서 이용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여러 가지 중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정책을 채택하여야 한다.

① 적절한 규제 장치와 시장 경제에 기반한 유인책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주택의 공급을 늘인다.

② 가난한 사람에 대한 보조금과 임대료 및 다른 형태의 주택자금 지원을 통해 부담 능력을 향상시킨다.

③ 지역 사회에 기반한 협동 주택과 비영리 임대주택, 자가 주택 사업을 지원한다.

④ 집 없는 사람들과 그밖의 취약한 집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⑤ 주택과 지역 사회 개발을 위해 재정과 공공 및 민간 부문의 다양한 자원들을 혁신적으로 활용한다.

⑥ 경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임대주택과 자가 주택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장 경제에 기반을 둔 각종 유인책을 실시하여 민간부문을 활성화시킨다.

⑦ 일자리, 재화와 서비스, 편의시설을 쉽게 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공간 개발 형태와 교통체계를 장려한다.

⑧ 집 없는 사람과 부적절한 주택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을 비롯하여 주거 조건에 대한 평가와 효과적인 감시를 하고, 취약한 인구 집단에 대한 상담을 통해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주택 정책을 채택하고 공식화하며 효과적인 계획과 전략을 수행하여야 한다.


 

위의 정책적 권고들은 주거권 보장을 위한 주요 원칙으로 모든 계층에게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문화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주거가 가지는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에 있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참으로 막중하다. 우리 사회가 주거권의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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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여승무원 승소 소식을 접하고서...


처음에 그들은 그야말로 빛나는 존재였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찬사도 들었다. 입사도 쉽지 않았다. 적게는 13대 1, 많게는 135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했다. 시속 300km의 거침없는 속도처럼 내달릴 인생을 꿈꾸었을 것이다. KTX 홍보 광고에도 단연 돋보였다. 그들을 선발할 때 철도공사 임원이 배석하여 키와 용모, 나이 등을 따져가면서 사람들을 선발했다. 선발된 이후에도 교육과 업무 지시, 감독 및 평가, 대외 홍보활동에까지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철도공사의 직원과 다름없이 활동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철도공사 직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주와 도급을 거쳐 그들은 비정규 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그들은 거리로 나섰고 언론은 키 크고 예쁜 젊은 여성들의 거리 집회에 반짝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들이 사실상 한국철도공사(KTX)의 실질적인 정규직 근로자이며 철도공사는 이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관련 기사 : “해고된 KTX 승무원들, 철도공사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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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을 돌려 2006년으로 가보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2월에 KTX여승무원 관련 진정 2건을 받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여성에 대한 고용차별이라는, 아직은 우리 사회에 생소한 사안에 대한 조사는 쉽지 않았다. 처음 사건을 배당받았던 조사관은 월간 <인권>(2006년 11월호)에 이렇게 밝혔다.


“처음 사건을 배당받고 든 암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본질적인 비정규직 문제임에 분명하지만 법망에 걸리지 않는 간접고용 사건인 것이다.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던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은 성차별을 주장해 정규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KTX 여승무원들은 그토록 열심히 싸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 관련 기사 가기


지난한 과정 끝에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9월 KTX 여승무원에 대해 성별을 이유로 하는 고용 차별이라며 한국철도공사에 시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권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관련 보도자료 가기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적한 차별의 내용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이 어떤 편견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4년이 지난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 문제다. KTX여승무원 채용 과정에서 한국철도공사는 ‘서비스 업무에 적합한 용모의 여성’을 채용 조건으로 내세웠고, 신입직원의 경우 21세부터 25세까지로 나이를 제한하였으며, 162cm 이상을 신장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업무에 있어 신장과 나이의 제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어떠한 논리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남성 중심 사회의 차별적이고 일방적인 시선만이 존재했다. 게다가 이는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용모, 키 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을 채용기준으로 제시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금지)을 위반한 것이다.


다음은 ‘성차별에 근거한 분리 채용’의 내용이다. KTX승무원의 역할은 방송 시스템 취급, 승강문 취급 및 이례적인 사항 발생 시 조치 등 본질적인 업무 대부분을 수행하는데, 이 중 고객서비스 업무만을 단순 반복적인 업무로 보아 여성 승무원에게 전담시킴으로서 저임금과 고용 차별을 정당화했다.


이 문제는 여성의 일을 평가절하 하는 성차별적 편견에서 비롯됐다. 현대 사회는 여성을 사회적 노동 시장에 끌어들이면서도 여성의 노동을 공짜로 제공되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보았다. 누군가를 보살피고(고객서비스, 돌봄, 간병 등), 청소하고, 요리하는 일에 대해 저평가하여 저임금을 지급하고, 외주나 도급화 등을 통해 차별하는 사례는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KTX여승무원 사례는 승무원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를 모두 배제시키고 그중 돌봄의 영역(고객서비스)으로 축소하여 저임금 계약직으로 비정규직화 해 차별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철도공사가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고용을 시정하는 한편, 오랜 세월 우리 사회의 차별에 가슴 아파했을 KTX여승무원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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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 온전히 보듬자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사람이란 무엇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스스로 저차원적인 욕망을 제어할 수 없는 동물과는 다른 존재로 비유하고 있으면서도 고차원적인 동작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해내는 기계와도 다르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존재죠. 어느 하나로 결론지어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듯이 아이들 역시 공부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조금만 참고 바짝 쪼이면 잠시나마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아이들의 자주성과 창의성 등은 그 과정에 말살되기 쉽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장래(대개는 대학과 직업의 동의어입니다)를 위해 서로가 조금만 참고 노력하자고 합니다만 실상 보이는 현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적을 통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의지를 밀고 갈 수 있도록 책임감을 북돋우고,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같이 고민해 만들어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절제와 인내의 힘을 배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학교 공부를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교훈이겠죠. 성적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긍정적 결과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석차는 이 과정에서 교훈과는 전혀 관계없는 부산물일 뿐입니다. 석차는 사회가 필요로 해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고르는 사회가 아니라 대학이 아이를 고르는 사회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습은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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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15~24세의 사망 이유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살의 이유는 가족 문제나 이성 문제 등도 섞여 있겠죠. 하지만 학교 및 학업과 관련된 자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신문지면 한쪽을 채우고 있습니다. 청소년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심스럽지만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 사회만큼 성적과 체벌을 통해 청소년의 삶을 옥죄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권리와 자유도 주어져야 합니다. 권리와 자유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임과 의무에 대해 무지하다며 권리와 자유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위의 악순환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아이들에게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이들을 험악한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로 만들어 옆의 친구를 쓰러뜨리고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보다는 드넓은 자연에서 모험을 통해 협력과 협치를 이해하며 책임과 의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이 아닐까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말하고 서로의 가치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기고한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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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는 없다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너희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지금 이건 너희들이 자초한 거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사고가 나지 않으니까.”

“역시 맞아야 제대로 돌아가지.”

“너희들한테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


내 군대 시절, ‘집합’이라고 불리는 얼차려 시간에 고참병들이 늘어놓는 말이었다. 공식적으로 군은 병사 간에 신체적 폭력을 동반하는 얼차려나 기합을 금지하고 있다. 내 군대 시절도 벌써 10년 전 일이고 실제 군대를 다녀온 많은 후배들이 지금은 ‘집합’ 같은 건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이 매를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거죠. 우리도 그게 좋아서 하는 거겠습니까?”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죠.”

“사랑의 매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감정 없는 체벌은 필요합니다.”


군대 내에서 들었던 고참들의 말과 다를 바가 없다. 학교 현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체벌은 강력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신체적 체벌은 아동에게 장단기적인 잠재적 피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개인과 사회에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2006년에 발간된 ‘UN아동 폭력에 대한 최종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동은 시종일관 모든 폭력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어른들의 용인과 승인 하에서 이루어지던 폭력은 아동에게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피해를 가져왔다.”


전 세계의 아이들은 애타게 자신이 신체적․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권리이며, 아동청소년 역시 인권의 주체라는 점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가 헌법적․법률적으로 어떤 인간에게도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대해 관대하지 않음에도 유독 아동에게만 체벌을 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많은 어른들이 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를 올바른 길로 안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고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매를 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여성이나 일반 성인에게 행해지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어떠한 것도 인정하지 않고, 최소한의 폭력 수준이라는 기준점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아동 역시 그런 폭력의 허용이나 기준선 마련은 불필요한 것이다.


한편에서 법제정자들과 정부, 학교 당국자 등은 체벌과 관련한 기준선을 제시하는 규정을 통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상 그 규정이라는 것은 ‘아동을 때리는 방법, 나이에 따른 강도, 몸의 부분, 사용되는 도구’ 등을 정하고 있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규정을 세계에 내놓는다면, 선진화를 외치고 있고 G20 회의를 개최하는 나라로서 망신만 당하고 말 것이다. 이미 아동권리위원회가 지난 2003년 우리나라에 체벌 금지를 권고한바 있다.


체벌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두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을 바라보는 전근대적인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또한 세계에 내놓기 부끄러운 규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해서 보편화되어 있는 체벌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는 2002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생활규정(안)을 검토한 뒤, 직접적으로 체벌 금지를 권고했다. 당시 교육부 발표 내용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구체적인 체벌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별도의 장소에서 제3자를 동반하여 실시, 체벌 도구는 지름 1.5cm 내외, 길이 60cm 이하의 직선형 나무, 체벌 부위는 남자 둔부ㆍ여자 대퇴부, 1회 체벌봉 사용 횟수는 10회 이내’ 등으로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국가인권위는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체벌 금지를 권고했다.


체벌은 일시적으로 아동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체벌의 공포에 직면한 아동들은 불안감, 우울증, 학교강박증, 적개심 등 부정적 감정을 버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아동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어른들이 훈육이라는 논리로 아동을 때리는 것을 보아오면서, 자신보다 약한 다른 아동이나 동생들을 똑같은 논리를 이용해 폭력적으로 가르치려는 행동을 답습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일 ‘사랑의 매’가 있다면, 그 대상은 어른이 되어야지 아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해 3월 유엔아동권리협약 20주년을 기념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학생체벌 금지와 교육적 대안 모색’ 국제워크숍에서 기조연설을 한 피터 뉴웰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인격적 신체적 존엄성을 아동들은 아직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해야 하는 것은 부모를 기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을 때리면 안 되는데 아동은 때려도 괜찮다는 인식과 상황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을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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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5년여의 수감 생활을 하신 분이죠. 그러나 그는 감옥 생활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던 공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의 경우, 감옥 안에서 네 가지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첫째이자 가장 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과거 1977년 청주 교도소에서 2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의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동서양의 두 분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중략) 진주와 청주에서의 4년여의 감옥 생활은 나에게 다시없는 교육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얻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습니다.”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얼마전 사형수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서는 사형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전국 교정시설에서 자사를 시도한 사람의 수는 422명에 달하며, 이중 7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중 살인(28명, 38.9%)으로 복역 중인 수용자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 수용자(15명, 20.8%)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타인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고 복역하는 수용자들의 자살이 절반을 넘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마땅한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한 실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창안한 인문학자 얼 쇼리스의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995년 얼 쇼리스 교수는 한 여죄수와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가난과 범죄의 악순환을 고민하는 그에게 그 여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에 얼 쇼리스는 범죄자를 포함해, 알콜 중독자, 노숙자, 실업자 등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전파합니다.

“당신은 이 수업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는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나를 설명하는 힘,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문학 과정은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던 ‘조건들’에 대해 과거와 다르게 대응하는 힘을 갖게 한 것이죠.

범죄자들이 수형 시설에서 사회를 원망하고 이웃을 저주할 때, 인문학 과정은 새로운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읽었던 대부분의 서적들-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은 모두 인문학의 영역에 있는 책들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사람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시각과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인문학 독서가 김대중이라는 시대적 위인을 만들어냈듯이 수용시설의 수용자들에게 펼쳐지는 인문학 강의도 그들 자신과 우리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의 독서를 통해 얻었다는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수용자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EBS <지식채널e>의 일부를 옮겨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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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구상나무


그러고 보니 오늘은 1자가 네 개나겹치는 날이죠. 이런 날을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명목이 바로 길죽한 과자 이름을 딴날입니다. 당초 부산의 어느 여학교에서 11월 11일을 맞아 서로 살을 빼고 날씬해지자며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날이라는데, 지금은 해당 업체의 한해 매출의 절반가량을 해결해 주는 상업적인 날이 되어버렸네요. 이 날의 상업적 흥행은 아무래도미디어가 한몫을 했다고 보기에 여기서는 단 한글자도 그 과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11월 11일은농업인의 날이었죠. 과자의 이름으로 날을 기억하는 것보다 일하는 사람들을 기리는 날이 더욱 뜻 깊고 의미 있지 않을까요? 사람의권리, 인권을 생각하는 블로그이니만큼 오늘 ‘농업인의 날’을 맞아 농촌의 인권과 인권위를 생각하는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농업인들의 인권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아시나요? 지금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안내하는 농촌, 농업인의 문제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세요.

얼마전 국가인권위는 ‘2009년 10대 인권 보도’를 선정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세계일보의 ‘탐사기획 / 대한민국 농촌, 가장 위험한 작업장’(링크 참조)이었습니다. 이 보도에서는 한국 농촌의 위험한 작업 현실을 깊이 있는 탐사와 취재로 조명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업인이 얼마나 위험한 작업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농업인 79%가 농부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 농기계 사고로 매일 한 명꼴로 농업인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현실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농촌, 농업인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음의 농촌 인권 사안으로는 국제결혼 가정이 있습니다. 2006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농어민 10명 중 4명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다문화·다민족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거주하는 결혼이민자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언어적, 문화적, 교육적, 인간관계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월간 <인권> 2007년 7~8월호에 실린 ‘“여부, 우리 행북하게 사라요.”’(관련 링크 참조) 글에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르포작가 박형숙 씨가 취재한 글에 따르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 여성의 문제는 곧바로 그 2세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광주인권사무소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시리즈 ‘사진으로 만나는 이주 여성’은 이주 여성들의 삶을 사진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 블로그 '호제와 남주네'의 '사진으로 만나는 이주여성 시리즈' 중 "며느리가 하고 싶은 일 도와 주고 싶어요"(관련 링크 참조) 


마지막으로 농촌 청소년 문제입니다. 농촌청소년의 문제는 그들이 접하는 풍경의 황량함에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부족과 작아지는 농촌, 문화적 갈증과 소외감은 농촌의아이들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그들에게 대도시로 탈주하려는 욕구를 자극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잃어가면서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농촌이 앓고 있는 고통 중의 하나입니다.


 











월간 <인권> 2007년 7~8월호에 실린 "여부, 우리 행북하게 사라요."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어렸을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다 도시로 빠져나가요. 남아 있는 우리들이 오히려 이상해지고, 나만 왜 못나가고 남았을까 하는 불행한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도시로 간 아이들이 부러워요.”

작가 오수연 씨가 월간 인권 2005년 3월호 ‘사투리를 쓰지 않는 아이들’(링크 참조)에 소개한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안에 그대로 있을까, 아니면 어느 대도시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이밖에도 농촌, 농업인의 문제는너무나도 많습니다. 빈곤 문제, 노령화 문제, 농산물 가격 문제, 환경 문제 등등 헤어릴 수 없는 고민과 고통이 농촌에 산적해 있죠. 그많은 문제의 귀결은 아마도 결국 농촌 소외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농업, 농촌의 문제를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해 풀어가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오늘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이상한 과자를 내세우는 상업적인 ‘데이’보다는 우리 농촌과 농업인들의 삶과 인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의 글은 지난 11일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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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간의 인권침해_이산가족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1991년,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인 구례를 찾아갔을 때 장장 24시간에 걸쳐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그 기록은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 저의 귀향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귀성 전쟁은 비단 저만 치르는 것은 아니죠. 추석 이후에는 너나없이 모여 서로 어떤 귀성전쟁을 치렀는지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한국인이면서 고향이 먼 시골이라면 대부분은 겪어봤을 고통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향길이 아니라 고행길이라지만, 어쩌면 이 분들을 앞에 놓고 생각하면 ‘사치에 가까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산가족 문제입니다.

오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남북 각각 100가족이 극적인 상봉을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이후로 끊어졌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적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인권선언문 중 제16조의 3항에서는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로서 가정을 지켜야 할 의무를 사회와 국가에 있다고 규정한 것이죠.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비슷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죠.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1월에 ‘북한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에서, ‘정부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과 같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들의 문제는 분단과 전쟁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다른 인권문제 보다 정부의 노력이 한층 더 요청되는 사안들이다. 정부는 이 사안들에 대하여 북한과 조건 없이 협의하여 이 사안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의 이산가족 문제는 헤어진 가족들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급선무일 듯합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1세대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족상봉 참가를 신청한 사람만 127,343명인데, 지금까지 대면상봉 16,212명, 화상상봉 3,748명만이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을 못 만나고 사망한 이산가족이 39,000여명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10년에 걸쳐 상봉 행사를 가져왔지만, 신청자 중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먼저 사망한 사람이 많을 정도인 만큼 남은 신청자들이라도 하루 빨리 상봉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시급한 현실입니다.

이번 상봉에서 최고령자인 96세의 박양실 할머니는 딸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금강산까지 머나먼 여행길을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저야 아무리 걸려도 24시간이었지만, 이 할머니는 50년을 넘어서야 딸을 만나게 된 것이죠. 우리 사회, 나아가 남과 북이 분단과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시급히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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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 <킹콩을 들다>는 우리나라의 비인기 종목을 주제로 한 감동의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주목해 보는 이유는 기존의 스포츠와 달리 여기에는 중고등학교 운동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 스포츠 분야가 점차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중고등학교 운동선수를 다룬 이 영화는 인권적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 문제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위악적인 캐릭터가 학생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영화적 설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6개월여에 걸쳐 실시한 학생운동선수 인권 실태 조사에서 나온 학생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지도자가) 뺨을 때려요. 별 이유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쌍둥이 있거든요. 피하다가 고막이 나가가지고 수술했거든요. 그러면 안 때려야 되잖아요. 작심삼일이에요. 삼일 지났다가 또 때려요... [중3, 농구]

(지도자가) ××년아, 니 그럴 거면 꺼지라면서, 그리고 니는 뭐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인간 대접도 못 받는다면서 막 뭐라고... 진짜 싫고...[중2, 핸드볼]

선생님한테 선배가 혼났을 때 (선배가) 정말 선생님하고 똑같이 대가리 박으라고 하고 발로 밟고 그러지요...[고3, 농구]


이 실태조사 결과 75%의 초등학생 선수들이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함하고 있고, 주당 평균 신체적 폭력 피해 횟수도 3~4회에 이상이 40%, 주당 11회 이상이 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에게 나타나는 폭력은 다시 하급생이나 후배에게 전달되는데, 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프로야구팀의 2군에서 선배가 후배를 야구배트로 폭행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라는 프로야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둘째 학습권 보장의 문제입니다. <킹콩을 들다>의 주인공 이지봉은 학생들이 운동 연습때문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따로 영어 공부도 시킬 만큼 어린 학생들의 수업을 챙기지요.

국가인권위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는 제기됩니다. 실태조사에 응한 어느 고등학생은 “더하기 빼기부터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의 정규 수업 참여시간은 평균 4.4시간(시합이 없을 때이며 시합이 있을 때는 이마저도 2시간 까먹는 2시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수업결손에 따른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더더욱 학교 수업과는 멀어집니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학교 양궁선수로 뛰고 있는 김하늘(가명) 양의 말입니다.


“5학년 정도 되면 소년체전이라는 게 있어요. 거길 붙으면 그 전에 한 달 전부터 합동훈련하고 적응훈련 다니고… 그러면 수업을 빠지니까 점점 성적이 떨어지잖아요. 그럼 어떻게 채울 수가 없으니까 운동이라도 해서 그걸로 밀어붙이고 나가라. 이러고……”


많은 학생운동 선수들이 과도한 훈련과 시합 출전 등으로 정규 수업을 받지 못하여 제대로 된 학습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수업 결손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학생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다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결국 하고 싶지 않은 운동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코치선생님의 헌신과 관심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예를 들어 최저학업기준인정제 등)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바로 학생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문제이지요.



스포츠라는 분야가 강한 근성을 요구하고, 그런 근성을 위해 일정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이 승리의 영광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에게 근성을 빌미로 행해지는 폭력은 잠깐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남기는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지봉 코치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이 동메달이 되진 않아. 그렇다고 금메달을 땄다고 인생이 금메달이 되진 않아. 매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금메달이야.”

자라나는 아이들이 폭력이 무서워서, 혹은 승리에 눈이 멀어서, 상대방을 운동의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대하고 페어플레이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듯이 운동 경기를 치르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경험인지 알려 줄 수 있는 분야로 스포츠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 국가인권위 블로그 '별별이야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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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청계천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산책 삼아 거닐다 보면, 데이트 하는 연인들 모습 때문에 씁쓸했었답니다. 하지만 직장도 옮겼고, 연인을 옆에 두고 있다 보니, 이제는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일전에는 일이 있어서 잠시 지나는데, 한창 공사 중이더군요. 일명 청계천 보도 확장 공사. 





속으로 ‘이제야 청계천 보도가 확장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 타임머신의 시계는 200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2005년 8월 4일, 개장을 불과 한달여를 앞둔 청계천변의 시설에 대해 국가인권위의 현장조사가 실시되었죠.(관련 보도자료) 그때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과 약자들의 접근과 이동도 청계천 흐름만큼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청계천과 차도 사이의 보도폭, 휠체어의 경사로 진입 시 턱 등 장애요소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또, 경사로의 폭과 경사도 등의 안전성이나 점자 블록의 적절한 설치 여부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조사들은 모두 장애인과 약자들의 안전한 이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활동이었죠. 또 이런 조사를 통해 중요 국책사업 등의 설계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 보장 문제 등을 검토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이나 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권고를 전달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이 권고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4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했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보도폭이었습니다.

“청계천 쪽에 설치된 보도를 보면, 이 보도의 폭은 1.5m이나 보도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 가로수가 있는 곳의 통행가능 유효폭은 60~70cm 밖에 되지 않아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지나가기가 어려워 장애인 등의 이동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사진1, 2, 3] 더구나 이와 같이 보도에 가로수를 심은 것과 가로수로 인해 유효폭이 60~70cm로 된 것은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는 보도 등의 유효폭은 1.2m 이상으로 해야한다’, ‘보행장애물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장애인 등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는 장애인․노인․임산부등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시행규칙 제2조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 관련 보도자료 중에서  




청계천의 안전시설 문제는 첫날부터 불거졌습니다. 개장 첫날 삼일교에서 중앙에 있는 조형물을 구경하던 유모씨가 5.5m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죠. 그리고 다시 개장 한달여를 지난 시점에서 또다시 시민의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안전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전혀 억지가 아님을 증명한 사건들이었죠. 비장애인도 그렇게 사고를 당하는 마당에 장애인이나 약자 등은 어떤 위험과 공포에 떨어야 할지는 뻔한 거 아닐까요?

이순원 작가는 월간 <인권>을 통해 청계천의 차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왠지 너무도 아깝게 보이고 크게 보이는, 몇 년 후 더 자라서는 청계천을 상징할 나무로 보이기도 하는 저 이팝나무가 내 눈엔 바로 ‘그 나무 때문에 청계천 나들이가 불편한 절대 소수에 대해 그 나무로 청계천 나들이가 더 행복한 절대 다수’가 가하는 차별의 상징수처럼 보이는 것이다.” - 2005년 10월호 휴먼필-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청계천의 이팝나무

작가는 나무라도 뽑아서 길을 확보하라고 충고했지만, 사실 차도를 좁혀서 보도를 넓히는 게 더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일이겠지요. 4년이나 지났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보도폭을 넓힌다는 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시 그때의 국가인권위 권고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봅니다. 국가기관과 지자체 담당자분들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향후 공공사업 시행에서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약자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시설 개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달에 인권위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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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노무현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1.

노무현 후보 역시 사람이라 번번이 여러 유혹 앞에서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그런 유혹에서 건져낸 것도 건강한 상식과 믿음을 가졌던 많은 시민들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대선을 열흘도 남지 않은 2002년 12월 10일, 개혁당 구로지역 게시판과 대학 동문회 카페에 썼던 글 "이번 대선은 축제다"의 일부입니다. 선거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신나게 즐겁게 선거를 즐겼던 적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전 1997년 대선에서는 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도 되었던 전적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노무현 후보와 함께 했던 그 때가 제 생애의 최고 절정이었습니다. 이긴다는 확신도 있었고, 변화에 대한 기대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역사의 중심에 내가 서있다는 자랑스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노무현은 나에게 위대함 그 자체였던 존재였지요.

그렇게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2002년 12월 19일 전 종로 바닥 한가운데서 '수립 민주정부' 노래를 목청껏 외쳤습니다. 누구 하나 손가락질 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시비걸지 않았고, 모두가 함께 노래 불렀지요.


2.

그러나 다음 해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합니다. 당시의 내 심정을 담은 글을 꺼내 보았습니다. 역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대통령이, 엄청난 거짓말을 해대며 전쟁을 벌이는 부시를 쫓아간다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넘어 절망적인 심정이다. (중략) 요즘은 그래서 우울하다. 그래서 한껏 기대했던 많은 기대들이 현실이라는 화려한 수식 앞에서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나 어쩌랴, 살아가는 일이 조금씩 허물어가는 일일텐데....

이처럼 나는 나의 적극적 선택을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 지지세력들의 뜻과는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지요.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인간 노무현의 결정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잠시 몸담고 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는 의견표명을 했습니다. 아쉽게 직접적으로 파병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국가기관의 하나로 그런 의견표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모험이었고, 그런 의견표명이 나오기까지 내부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넘어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전쟁 반대 의견표명만으로도 국가인권위는 다른 국가기관 뿐만 아니라 여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습니다. 당시 민주당은  "정부가 이미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황에서 이런 의견제시는 부적절하다"고 평하고, 한나라당은 "국가기관이 사실상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입장을 밝힌 것은 본분을 망각한 국론분열 선동행위로 인권위원장은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성명을 발표했죠.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국가인권위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단 한마디로 정리했죠.

"인권위는 원래 그런 말하라고 만들어 놓은 기관이다."

국가인권위의 존재 목적과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인간 노무현의 결정과 대통령 노무현의 결정은 다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한국의 세계사적 위치가 어디쯤이며 약소국의 한계가 대통령의 짐이며, 그것은 곧 국민의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3.

그리고 그 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 행사를 국가인권위에서 주관했습니다. 당시 기념식 행사 중에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그리고 인권을 위해 일생을 희생해 온 분들이 단상에 올라가 '세계인권선언문'을 차례로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선언문 낭독이 끝나고 노무현 대통령의 축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단상에 선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분들(선언문 낭독하신 분들) 앞에서 준비된 원고를 읽으면 부끄러울 것 같다"며, 즉석 연설을 시작했지요. 소박하고 담백한 모습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연설이 시작되고 얼마 후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묵 피켓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인권위 직원들은 사색이 되어 경호팀과 함께 즉각 제지에 나섰고, 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썰렁해졌지요. 이때 노무현 대통령은 "몇 분들이 제게 호소하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국가가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약자를) 돕고 해결해 줘야 인권국가지 인권의 사각지대를 구경만 하는 것이 인권국가냐,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말보다는 저의 실천이 모자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하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말고 가자"라고 말하며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고, 피켓 시위는 축사가 끝날 때까지 줄곧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이 저 정도의 인권의식이라도 있었나 싶습니다. 스스로의 실천이 부족함을 성찰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돌아보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물론 그의 실천이 어느정도였는지 역사가 평가하리라고 보며, 지금의 감정적 평가와는 선을 긋고 싶습니다. 그래도 '비판하면서도 믿음은 버리지 말고 가자'라고 하신 그 말씀이 지금에 와서 왜 이리 후회스러운지 모르겠군요. 


4.

노무현 대통령 취임 100일. 군대에서도 100일을 잘 견디면 3년을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100일 휴가도 보내주지요. 저 나름대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100일을 돌아보는 글을 썼었군요.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개혁 세력 전반의 목소리로 나타나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 주요 목표가 노무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무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게 현실이다. 우리는 지나친 꿈을 그에게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노무현을 인정한다. 그가 하는 작업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시스템을 제대로 바꾸면 50년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시스템은 바로 미군정 5년간 쌓인 것임을 상기해 보자.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한총련 수배자 문제로 수배자의 부모를 만났는데, 경찰들은 보란듯이 그 부모의 자식을 곧바로 잡아들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통상적인 수배자 검거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학생은 평상시처럼 학교 바로 앞 길건너 식당에서 학교로 오다가 잡혔던 것이죠. 경찰이 이미 학생의 행동 습관을 알고 있으면서도 잡지 않다가 법무부장관과 한총련 수배자 부모가 모임을 잡은 그 다음 날 잡아들인 셈입니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그것은 시스템입니다. 노무현은 눈에 보이는 사안이 아닌 시스템과 싸워온 대통령이었습니다. 검사와의 대화 역시 그런 면에서 접근한 문제였다고 봅니다.


5.

그냥 미안타 사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말은 임시방편이고 어쩌면 우리 정치현실을 더욱 퇴보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다. (중략)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투쟁가로서의 노무현을 보는 듯하다. 이미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순교 아니면 영광만을 향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무척 고심하고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결정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다시 개인이 아닌 구조를 생각한다.

위 글은 2004년 3월, 총선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 그는 국회로부터 탄핵을 당한 사건을 보면서 작성한 글의 일부입니다. 이 당시 그를 보면서, 이제 개인 노무현을 보지 않고, 구조 안의 노무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무현에 대한 생각은 잊어야 하는 시기였죠. 그러면서 탄핵 정국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 촛불집회에도 나갔습니다. 노무현을 구하자는 생각보다는 후진적인 한국의 정치현실을 바로잡자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복귀하길 바라지만 그렇게 물러나게 되어도 국민들의 탄핵반대 집회에서 발현된 에너지가 정치 현실을 한단계 도약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찌 몰랐을까요, 당신의 순교(적절하지 않은 표현일 수도 있지만)가 지금은 너무 가슴 아픕니다.


6.

열린우리당이 국회 다수 여당이 된 이후, 아이러니하지만 난 정치에서 멀어져갔습니다. 개혁당 시절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며 민노당으로 옮기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보면서 그냥 중립지대로 남고 싶었습니다. 정치개혁을 향한 우리 사회의 열망은 더 뜨거워졌지만 저는 점점 더 차가워졌습니다.

2004년 6월, 김선일 씨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해 8월 늙은 노동자가 고공 크레인에서 쓸쓸히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5년에는 시위 농민이 사망했습니다. 2006년에는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졌고, 그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했죠. 2003년 "국가가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약자를) 돕고 해결해 줘야 인권국가" 라고 말했던 그가 시장의 폭력에 손을 들고 만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직 기간 동안 10여명이 목숨을 끊었고,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분신으로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라는 말로 저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 세상에서 그 노동자들을 만난다면 적어도 그 말에 대해서는 사과했으면 좋겠습니다.

2006년, 저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를 그만두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시장은 인권위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7.

노사모가 노무현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인 바람과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투사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원했고 그런 방식으로 정치의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예전에 명계남 씨가 노사모에 대해 쓴 글의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노사모는 아니지만(그런데 왜 꼭 이렇게 밝혀야 하는지 참 답답하지만), 글을 약간 각색해 보면,
"내가 노무현을 통해 내 자신의 정치적인 바람과 역사적인 소명의식을 투사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원했고, 그런 방식으로 정치의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에게 우리 정치를 보는 시각을 교정해 주었습니다. 또 열정과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었지만 재임 중 회한과 후회와 실망도 더불어 안겨 주었던 사람입니다. 돌이켜 보니, 그와 함께 했던 지난 시기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다. 정말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분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구조겠지요. 그런 것을 아시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하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 2002년 이전의 노무현은 제 기억에 영원히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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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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