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면서 다시 책들을 정리했다. 이전에 아내와 책들을 합칠 때보다 더 정밀한 구분 작업을 했다. 시와 한국 소설 쪽은 출판사 별로 하거나 시리즈별로 해야 보기 좋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이는 보기에는 좋아도 실제적인 활용에서는 불편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작가 이름 순서로 정리해 보았다. 동일 작가의 작품들이 가지런히 배열되니 책을 보는 느낌이 다르다. 시에서는 신경림 시인의 시집이 7권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안도현, 김용택, 김남주의 순서를 나타냈다. 소설에서는 황석영의 소설이 5종으로 많았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 아내와 내가 둘다 가지고 있는 시집이나 소설이 몇권 나타났다. 교양과학과 역사(신화) 관련 책을 한칸에 몰았다. 경제와 환경 관련 서적도 일단 하나의 칸에 몰았다. 사회비평은 홀로 온전히 한칸을 몽땅 차지했다. 취미실용 중에 여행과 사진은 따로 칸을 마련해 두고 나머지는 함께 몰아두었다.

뿌연 먼지를 날리며 반나절을 꼬박 작은 방에서 그 작업을 했다. 잃어버렸던 책꽂이는 발견했지만, 역시나 정체모를 돈 따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중복된 책들이 여러 권 발견됐다. 게다가 복잡한 책장에 자리가 부족한만큼 불필요한 책들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방한구석에는 노끈에 단단히 묶인 책들이 쌓였다. 마치 중죄를 지은 죄인처럼 포박을 당한 채 쪼그라져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까워 보였다. 책들은 이제 형장, 아니 고물상에서 이슬을 맞으며 사라질 일만 남은 듯하다. 물론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책들은 그럴 운명으로 분류되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이 문제다. 만일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이 있다면, 그 도시의 지하 세계에서 산다는 그림자 제왕에게 보낼 수 있다면?



이 책의 주인공은 공룡 미텐메츠다. 이런, 사람도 아니고 공룡이 주인공이다. 아니 정정하자. 이 책의 주인공은 책이었다. 시종일관 책들은 주인공을 괴롭히고, 위기로 몰아넣고, 생명을 위협하며, 심지어 중독과 최면을 걸기도 한다. 책을 찾아다니다가 지하 세계 깊숙한 곳까지 떨어지고 고대의 룬문자로 쓰인 책들의 기운에 휩싸인 채 책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도망 다니다가 부흐링이라는 책을 먹는 종족도 만난다. 부흐링족이 책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들의 읽는 행위와 같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부흐링이라는 종족은 책을 읽어야 영양분을 흡수하고 배가 부르단다. 심지어 바로크 소설을 한꺼번에 세권을 읽은 어느 부흐링족 청년은 다이어트를 위해 수일간 하루에 시 3편만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튼 이런 세상에서 이야기의 주인공 미텐메츠는 대부의 유언대로 부흐하임에 왔다가 온갖 일들에 휩쌓인다. 그리고 마침내 잊혀진 책들의 지하세계, 그 곳의 왕 그림자 제왕과도 극적인 만남을 가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디까지 '책' 그 자체다. 책을 읽는 내내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장장 800쪽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책은 충분히 나에게 마법의 주문을 외쳐 나를 지하세계로 질질 끌고 내려가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책을 즐기는 사람, 책을 사랑하는 사람,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 책을 읽고 즐길 수 있다.


꿈꾸는책들의도시(전2권SET)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발터 뫼르스 (들녘,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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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방에 처박혀서 버려질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저 책들이 마지막에 닿을 저 세상은 부흐하임의 깊은 지하 세계이길 바라는 마음은 그래서 고귀하다.



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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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유언 없는 지구의 차갑고 무자비한 회전.사정없는 어둠. 눈먼 개들처럼 달려가는 태양. 괴멸하는 시커먼 우주의 진공. 그리고 어딘가에는 쫓겨 다니며 숨어 있는 여우들처럼 몸을 떠는 두 짐승. 빌려온 시간과 빌려온 세계와 그것을 애달파하는 빌려온 눈. - 149쪽

남자의 손에 소년의 손이 잡혔다. 두툼한 외투와 헐어서 너덜너덜한 신발을 질질 끄는 사이로 바람은 발밑의 재를 쓸어 올리며 귀밑으로 달려들었다. 지구는 여전히 스스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멈춘 지 오래다. 밤과 낮은 그 농도만 다를 뿐 똑같은 무채색이 지배하고 있다. 다시 기침이 시작됐다. 쉽게 멈추지 못할 때가 많다. 남자는 지도를 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는 길이다.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안전한 곳.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그는 알지 못한다. 그의 뒤로는 수많은 길들이 닫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길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는 자신이 길 위에서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가 품고 있는 불, 바로 소년이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안다. 자신이 태어나서 줄곧 보아온 회색빛 지구. 아빠는 한때 지구가 푸른빛을 띤 아름다운 행성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푸른빛의 지구를 상상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빠는 남쪽으로 가는 거라고 말하지만 남쪽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에서는 이 여정이 끝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길은 우리를 남쪽으로 안내하지만 길 위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수시로 길을 버렸지만 다시 길 위에서 여정은 시작됐다.


세상의 문이 닫혔다. 남자와 소년은 닫힌 문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문이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머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준비된 삶은 길 위에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남자는 소년을 지키기 위해 살았고, 소년은 남자와 함께 있고 싶어서 살았다.


죽음 보다 못한 삶은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로드>에서 그려진 세계에서 삶은 끝없는 추락만이 기다리고 있는 깊은 낭떠러지처럼 보인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모욕이며 고통의 삶. 잔인한 세상에 내 던져진 남자와 아이의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아버지와 자식의 숙명을 보았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내 모습이 보였다. 잔인한 세상에서 내 아이를 지키기에 내 몸은 너무 허약하고 내가 가진 것은 볼품없다. 어린 아이에게 남은 순수한 불, 그것은 세상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맥 매카시는 우리가 어린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을 강요하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잔인하고 무서운데, 그런 세상으로부터 자녀의 눈을 가리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그런 자녀들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에도 우리가 가진 건 총알 없는 빈총 밖에 없다. 몸은 점점 지쳐가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진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길, 그 삶은 안전하지 않지만 버릴 수도 없다. 그 길의 저 끝에 있을 행복이 있을까? 아니 우리는 끝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지금을 위해 사는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작은 희망들이 올망졸망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자녀의 가슴에 있는 불을 끄지 않는 것, 그것은 스스로 자녀의 희망이 되는 것이고,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절대 저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알아. 미안하다. 내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 늘 그랬어. 너는 가장 좋은 사람이야. 늘 그랬지. 내가 여기 없어도 나한테 얘기할 수는 있어. 너는 나한테 얘기할 수 있고 나도 너하고 이야기를 할 거야. 두고 봐.
제가 들을 수 있나요?
그래. 들을 수 있지. 네가 상상하는 말처럼 만들어야 돼. 그럼 내 말을 듣게 될 거야. 연습을 해야 돼. 포기하지 마. 알았지?
알았어요.
- 315쪽



먼 훗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아이들에게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살아갈 용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세상이 지옥 같다고 스스로 괴물이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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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홍어다. 얼굴 생김새도 홍어처럼 네모지다. 수컷 홍어의 생식기가 두개라는 데 노름꾼에 건달인 아버지는 이웃 동네의 유부녀와 놀아나 야반도주를 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속절없이 기다린다. 바다 깊은 곳에서 산다는 홍어를 어머니는 부엌에 매달아 놓았다. 홍어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피트 하밀(Pete Hamill)의 소설 "노란 손수건"처럼 아버지에 대한 용서와 기다림을 홍어로 표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눈이 온 세상을 뒤덮었던 어느날, 이름도 없이 거지 같이 떠돌던 여자 아이가 들어온 그날에 홍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매질을 했다.  겨울 들판을 들짐승처럼 떠돌던 그 여자 아이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 매질을 견뎌 냈다.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삼례란 이름을 붙이고 거두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삯바느질의 주문이나 배달을 하는 바깥 일을 맡겼다. 일을 싹싹하게 잘 하는 삼례와 어머니는 죽이 잘 맞는 듯했지만, 번번이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어머니를 속이는 삼례에게 여지없이 어머니의 매질은 이어졌다. 그렇지만 삼례는 듣는 시늉만 할 뿐 다시 시간이 지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삼례는 사라졌다. 삼례가 떠난 이후의 삶은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제 그 기다림은 특정한 아버지로 귀결되지 않았다. 지루한 산골구석에서 누구라도 숨막힐 듯한 정적을 깨뜨릴 수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했다.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이는 삼례의 전남편과 아버지의 정부와 그 아이, 외삼촌 등이다. 속절없는 기다림의 끝에 아버지는 나타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떠났다. 기나긴 기다림에서 어머니가 절절이 기다린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에 불을 붙인 것은 삼례였을 것이다. 전통과 가부장제에 갇혀 살고 있는 어머니는 마치 날고 싶지만 실에 묶여 날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

어머니는 기다림 속에서 참자유를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실체가 드러났을 때 정작 자신이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새처럼 날아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자유롭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유를 찾아 멀리 멀리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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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이 싫다. 야근은 삶의 구체적인 계획들을 어긋나게 한다. 일을 정규 근무 시간에 마무리 짓지 못하고 밤늦게 혹은 주말까지 겹쳐서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기 계발에 투여할 시간을 잡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배우고자 해도 일주일에 1~2회 정도 주기적으로 학원에 가야하는데, 이런 시간을 잡을 수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쌓여 가는 야근 시간은 그만큼 스스로를 속박하고 옥죄어 주어진 일밖에 할 수 없는 기계적인 노동자로 만들 뿐이다. 창의적으로 일하고 자유분방하고 활기차게 일하는 노동자를 죽이는 제1의 공로자가 바로 야근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국가 중에서 최장의 노동시간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함에도 최근 들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이 4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100명 15명이 일자리가 불안하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해법이 왜 안되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꽤 높은 경제 성장을 일구어냈다. 세계 유수한 나라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잘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낮은 가격으로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최소한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일이 없는 것, 그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 발전 정책이 내세운 목표들은 이렇게 대부분 실현되었다. 그 시대 우리 아버지들이 가난을 물리치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먹을 게 없어 굶어야 하는 일이 없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돈 없어도 학교에 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 아니었나.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 세대에 대해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 짧은 시간에 이만큼의 업적을 이루어낸 위대한 분들이다. 

물론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 후진적인 정치 문화는 지금도 그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인권 의식은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경제 성장에 집착한 나머지 소홀하거나 의도적으로 억압했던 부분이다. 복잡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렇듯 깊은 괴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또 1997년 외환위기 주기적으로 오는 경제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최장의 노동시간을 가지고 있으며, 유래가 없는 비정규직 비율을 보이는 비정상적인 노동 시장에 대한 마땅한 해법은 없을까.

영국 게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인 장하준 교수와 국민대 경제학부 정승일 교수는 이 책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날카롭게 후벼파고 있다. 더불어 지금의 한국 경제가 쳐한 위기를 돌아보게 하고 그 대안을 고민하는 열쇠를 던져 주고 있다.

이 책은 크게 '1부.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2부. 우리는 후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로 나누었다. 1부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와 재벌의 문제를 다루면서 지금의 시장 개혁이 의미하는 바를 다루고 있다. 2부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따지고, 자본과 노동의 화해를 모색하며, 관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교정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대타협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들은 결국 성장에 목매인 한국 사회의 의제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는 과거의 그 어려운 가난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났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도 깊이 들어가 보면 과거에 못지않은 고통이 상존해 있다. 비정규직을 착취하고,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고, 소수자에 대한 인권 유린을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국민소득만 높아지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일까? 참고 견뎌서 국민소득 4만불이 되면 해결될 문제들일까? 그렇지 않다. 어느 정부든지 성장률과 국민소득에만 목메고 있고, 빈곤과 좌절, 소외, 범죄와 현실도피, 차별과 인권유린 등에 대해 대안을 내놓지 않고 사람들에게 참고 인내할 것만 강요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정부를 폐기해야 할 것이다. 삶의 질을 고민하지 않는 정부나 경제학은 암적 존재일 뿐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일이 없고, 적은 비용으로 기본적인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아프면 병원에서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듯이, 이제는 누구나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일 때문에 괴롭거나 상처받지 않으며, 일을 통해 자신과 가족,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과제다.

다시 야근 문제로 돌아와 보면, 올해를 지나 내년부터 회사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들의 일거리가 없어진다. 반면 다른 분야의 직원들은 작년과 같은 살인적인 야근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 당장 우리들 안에서부터 일자리를 나누고 함께 공생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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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박게 부는 바람, 죽음의 시늠소리도 드러쓸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도 거쳐 왓슬 것이다. 잠 못 이르는 이 밤, 바람에게 마는 사연을 듣는다.”

-홍영녀님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서-


홍영녀님은 포천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칠순에 한글을 배워 주욱 일기를 쓰고 계십니다. 자손들이 팔순 생신 기념으로 일기를 책으로 엮어드렸습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지만,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시는데, 씩씩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다.”


 



 


지난 1월25일 정기적으로 받는 메일의 일부였다. 70이 넘어 글을 깨우쳐 매일 쓴 일기가 벌써 8권에 이르는데 그 할머니와 가족의 이야기였다. 80이 넘으신 할머니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다”고 썼다. 그러기 위해 같이 살자는 자녀들 다 뿌리치고 혼자 포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무엇이 할머니로 하여금 자유를 갈망하게 했을까. 여기저기 검색을 통해서 사람들의 글을 보았다. 책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책은 구하기 어려웠다. 교보와 영풍, YES24, 인터파크 어디를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책은 1995년 11월에 나온 책인데, 모두 절판으로 나왔다. 책이 많이 팔리지도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끌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더더욱 욕심이 갔다.


이제 인터넷 헌책방을 찾아다녔다. 역시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헌책사랑’의 게시판에 책을 구한다는 글을 띄어보고 기다렸다. 2월1일 메일로 답이 왔다.


안녕하세요

'헌책사랑' 사이트에서 책을 구한다는 내용을 읽고 이메일을 드립니다.

홍영녀 할머니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책을 제가 갖고 있습니다.

(생략)


정말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너무 기뻤다. 다시 이메일이 오가고 택배비 3000원에 책값 3000원 해서 6000원. 책값이 4500원인데 6000원을 쓰면서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책이 도착했다. 군데군데 형광펜으로 칠한 자욱이 있다. 헌책이 정이 가는 건 사람의 손때가 묻었다는 정감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낡으면 그 정이 떨어지는데, 그리 낡지도 않고 표지도 깨끗하다.


앞쪽의 몇 쪽을 읽어보았는데, 좋다. 일부분을 여기에 옮겨 본다.



 




 

무남이 이야기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다. 에미가 미련해서 죽였다. 우리 시아버지 상 당했을 때는 무남이 난 지 일곱 달 되어서였다. (글줄임) 동생이 장사 치르는데 젖먹일 시간 있겠냐며 우유를 가방에 넣어 주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다.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 종일 업고 다녔다. (글줄임) 젖이 퉁퉁 부었어도 먹일 시간이 업었다. 그런데 애들이 무남이가 우니까 우유를 찬물에 타 먹였다. 그게 탈이 났다. 똥질을 계속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앓아 누우시게 되었다. 그 경황에 자식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땐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흉이었다. 이번엔 시어머님이 또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에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다. 애가 바짝 마르고 눈만 퀭했다.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나. 그제서야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늦었다고 했어. 그땐 남의 집에 세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 죽이는 것이 싫다고 해서 날만 밝으면 애를 업고 밖으로 나가곤 했지.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여 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다시 업고 들어가곤 했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를 업고 밭두렁을 걸어가면 등에서 가르릉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어. 그러다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어. 사흘째 되는 날인가, 풀밭에 애를 뉘여 놓고 들여다 보며 가여워서 ’무남아!‘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 것 눈가에 눈물이 흐르더라구.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시집 올 때 해 온 개끼 치마를 뜯어서 무남이 입힐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바늘 귀를 꿸 수 없어서 서투른 솜씨로 눈이 붓도록 울면서 옷을 다 지었지.

겨우 숨만 걸린 무남이에게 수의를 갈아 입히니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드러났어. 얇은 천이라서 하얗고 조그만 몸이 다 비쳐 보였어.

그렇게 안고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첫닭 울 때 숨이 넘어갔어. 죽은 무남이를 들여다 보니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자근 손이 에미 가슴을 저며 내는 거 같았어. 나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울지 않고 못 배겨.

게다가 그땐 이 에미가 얼마나 독하고 야박스러웠나 몰라. 무남이 싸 안았던 융포대기나 그냥 둘 걸, 물자가 너무 귀한 때라 융포대기를 빼 놨어. 그리고는 헌 치마에 새처럼 말라 깃털 같은 무남이를 쌌지.

즈이 아버지가 주인 여자 깨기 전에 갖다 묻는다고 깜깜한데 안고 나가 묻었어. 어디다 묻었냐고 나중에 물으니까 뒷산 상여집 뒤에 묻었대. 그땐 왜정 때라 부역하듯이 집집마다 일을 나갔는데 나도 나오래서 밥도 굶고 울기만 하다 나갔떠니 하필이면 일하러 가는 곳이 상여집 뒷산이었다.

그곳을 보니까 새로 생긴 듯한 작은 돌무덤이 봉긋하게 있어서 그걸 보고 그냥 그 자리에 까무러쳐서 정신을 잃었었지.

(글줄임)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 붙여 하늘 향해 빌어 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장성 써 볼까

빌어 본들 무엇하리 울어 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 꽃이 바람에 줄기째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움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 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 해가 솟아 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 보아라.

쥐암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 보아라.

옹알옹알 옹알이로 조잘대 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 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


-어려서 죽은 무남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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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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