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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에 가려했던 덕유산 백두대간 코스 산행을 다시 가려고 합니다.  지난번 덕유산 산행에 관련된 이야기는 '백두대간9 -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를 참고해 주세요. 함께 가실 분은 eowls@eowls.net 이나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사진은 2008년 덕유산에서 찍었던 사진.

백두대간 4~5구간 : (덕유산)백암봉-덕산재 산행


1. 대상지 : 덕유산 향적봉 출발 백암봉 시작 덕암재 도착


2. 기간 : 2010년 2월 27일(토)부터 2월 28일(일)까지(1박 2일)


3. 참석자 : 강대진 외 3명까지 가능


4. 장비 계획

○ 입을 것 : 등산화, 등산복 상하의, 속옷 상하의 2벌씩, 내의 상하의 1벌씩, 방한 재킷, 양말 3켤레, 털모자, 안면마스크 또는 마스크, 폴라, 장갑. 수건, 임시 담요, 판쵸의,

○ 먹을 것 : 버너, 코펠, 캠핑가스 3개, 라면3개, 쌀, 햇반2개, 고추장, 김, 육포, 장조림, 사탕 1봉지, 영양갱 3개, 수저와 젓가락,

○ 구급약 : 진통제, 뿌리는 파스, 붙이는 파스, 압박붕대, 해열제, 대일밴드 등

○ 산행 장비 : 배낭, 보조가방, 랜턴, 스틱1~2개, 아이젠, 스패치, 보온병, 두루마리 휴지, 칫솔, 비닐봉투, 라이터, 볼펜과 수첩 등 필기도구.

○ 기타 자유 장비 : (있어도 되고 없어도 상관 없음) 카메라, 손난로, 휴대폰, 라디오, MP3 등등

○ 숙박을 위한 준비 : 없음(민박이나 산장 숙박 예정)


5. 상세 일정

○ 12월 19일(토)

  ~ 04:40 구로역 도착 : 서울 → 무주리조트(경기 대원고속,02-575-7710)

  ~ 04:50 구로역 출발(구로디지털역 1번출구 LPG충전소 앞)

  ~ 08:00 무주리조트 도착

  ~ 09:00 리조트 아침 식사

  ~ 09:30 곤돌라 탑승(편도 8,000원)

  ~ 10:00 설천봉

  ~ 10:20 향적봉

  ~ 11:00 백암봉(1503, 송계 삼거리)

  ~ 12:20 귀봉(1390)

  ~ 14:00 못봉(1343)

  ~ 14:40 월음재(달음재)

  ~ 15:20 대봉(1263)

  ~ 16:00 갈미봉(1211)

  ~ 16:40 고사목과 헬기장

  ~ 17:30 빼재(신풍령) 도착_산행 마무리

  ~ 18:30 작은골 산장 도착 후 휴식

 ○ 12월 20일(일)

  ~ 05:00 기상

  ~ 06:30 아침 식사 및 출발

  ~ 07:00 신풍령 휴게소

  ~ 07:50 된새미기재

  ~ 08:40 호절골재

  ~ 09:10 삼봉산(덕유삼봉산_1254)

  ~ 09:40 오두재갈림길

  ~ 10:40 소사고개

  ~ 12:10 삼도봉(초점산_1249)

  ~ 13:10 대덕산(투구봉_1290)

  ~ 13:30 점심 및 휴식

  ~ 14:50 덕산재

※ 첫날 코스가 비록 곤돌라로 올라가는 코스이지만, 능선길이 꽤 복잡하고 오르고 내리는 일이 잦아서 체력 소모가 심하다고 함. 시간상으로도 꽤 빡빡하게 잡혀 있어 힘들 것으로 예상됨. 둘쨋날은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을 생각해 서둘러야 한다.


6. 예상되는 비용

○ 교통비 : 54,500원

  - 서울-무주 리조트 : 20,000원

  - 무주리조트 곤돌라 탑승비(편도) : 8,000원

  - 덕산재-김천행 버스 : 1,500원 또는 택시 : 10,000원(☏대덕택시 : 054-434-2009)

  - 김천-서울 : 16,500원(우등)

○ 숙박비 : 30,000원

  - 빼재 작은골 산장(055-941-1110 010-6314-5810) : 30,000원

○ 식사 및 영양식 : 27,000원

  - 1일 아침 식사(무주리조트 안) : 6,000원

  - 1일 점심 (간이식-빵) : 2,000원

  - 영양식(영양갱과 쵸코바) : 2,000원

  - 사탕 1봉지 : 1,000원

  - 1일 저녁(산장 식당 이용) : 7,000원

  - 2일 아침 6,000원

  - 2일 점심 (간이식-빵) : 2,000원

  - 영양식(영양갱과 쵸코바) : 1,000원

○ 기타 20,000원

  - 예비비 : 20,000원


>>>> 총 13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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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9

- 삿갓재대피소 >> 동엽령 >> 송계삼거리 >> 향적봉 >> 무주리조트(약 10.7km)

-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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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뒤에 남는 아쉬움들, 연민, 후회, 집착... 털어버리고 싶었던 감정들이 심장 가장 안쪽에서 비를 맞고 있다. 소나기처럼 그냥 지나가다오. 그저 한바탕 비를 맞고 푹 젖어버리면 더이상 비를 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했다. 이날 예정된 목적지는 향적봉 대피소. 거기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날 빼재로 내려가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날 갈 거리는 짧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다. 배낭에만 우의를 둘러주었다. 다시 신발끈 꾹 메고 길을 나섰다. 이날만큼은 동행이 있다. 함께 삿갓재 대피소에 묵었던 아저씨다. 아저씨는 향적봉까지 가고 거기서 하산하겠다고 했다. 짧은 동행길이지만, 헤어지게 되면 몹시 흔들린다.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타협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어차피 덕유산 향적봉을 찍으면 다 온 거니까. 그리고 괜히 하룻밤을 더 묵는 것보다 그냥 하산하자. 다음에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와 나머지 구간을 계속 가면 되겠지.’

‘아냐, 그래도 처음 계획한대로 가야겠어. 그냥 하루 푹 쉬면 내일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가 먼저 출발한 다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많이 지쳤던 것일까.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니 그 생각은 더욱 강했다. 가만히 있으니 드는 잡생각이다. 일단 걷자. 부지런히 아저씨 뒤를 쫓았다.  

 









 


 

삿갓재 산장을 나오자마자 또 급한 오르막길이다. 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장대비로 바뀔지 알 수 없다. 무룡산에 오르기 전, 먼저 출발했던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우의를 꺼내 배낭을 감싸고 있었다. 무룡산에서 내려서면 순탄한 마루금길이다.  


간간히 비가 쏟아졌다. 기상이 불안정한가 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천둥번개는 멀리서 친다. 9시 20분 동엽령에 도착했다. 넓은 동엽령 지대는 짙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동엽령에서


 송계삼거리 이정표




 함께 동행한 아저씨


 

 왼쪽으로 가는 길이 신풍령 가는 길, 오른쪽은 삿갓재에서 내가 올로온 길.



동엽령에서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마침내 향적봉이 눈앞이다. 여기서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백두대간길이 아니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쪽으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 길이다. 그러나 덕유산 주능선을 타면서 향적봉을 오르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닐까. 대간길을 잠시 미루고 향적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다. 오전 중에 개인다는 일기예보는 역시 여기 덕유산에서는 통용될 수 없나 보다. 길가에는 간간히 원추리 꽃망울이 길쭉하게 나있다.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 보통 때면 활짝 개화를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텐데 날씨가 안 좋아 개화시간이 좀 늦다. 덕유산도 지금 이맘때면 원추리가 한창이다. 귀품 있는 모양새며 도도한 줄기가 꽤나 운치가 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중봉에서

 

백암봉을 지나 제2덕유산이라는 중봉을 넘었다. 잘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는 데 바람이 거세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중봉을 넘어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에 오르기 전 향적봉 대피소에 들렸다. 이곳에서 일단 점심을 해결했다. 덕유산 산장 안의 매점에서는 지리산과 달리 사발면을 판매한다. 햇반과 사발면을 주문하면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나오고 사발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최소한의 먹을 거리는 충분히 사서 해결할 수 있다. 젖은 신발을 벗도 양말도 대충 씻어서 꾹 짰다. 다시 신으려니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침 함께 동행했던 아저씨가 새 양말을 꺼내주며 신으라고 하신다. 함께 비바람을 뚫고 왔던 우정의 표시였을까.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발은 젖었어도 양말이라도 갈아 신으니 한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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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다시 향적봉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이곳에서 자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배낭도 산장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향적봉으로 올랐다. 백암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종종 주목을 만날 수 있었다. 주목은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덕유산에도 300~500년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특히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관상용으로도 제배되고 있지만 정말 멋진 주목을 보기 위해서는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덕유산의 설경이 멋진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주목의 설경도 꼽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말이 따라 붙는 주목의 고아하고 옛스러운 모습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다음에 겨울 덕유산을 오면 반드시 이 주목의 모습을 내 눈안에 담아 볼 것이다.


마침내 향적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려버렸다. 분명 까마득한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구름이 주는 신비함도 이쯤 되면 서운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마침내 덕유산 향적봉까지 왔는데,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향적봉에서 사진을 찍던 노인 한분과 만났는데, 그분도 오전 중에 날이 개일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올라오셨다고 한다. 이러다가 허탕만 치겠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향적봉은 바로 밑에까지 곤돌라로 편하게 올라올 수가 있어 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을 찾아 온다. 일출이나 일몰 등의 풍경사진이 인기다. 이맘 때쯤에는 원추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노인이 알려주었다.









 주목






 

삿갓재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아저씨는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시겠단다. 바람이 많이 불어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운행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아저씨와 작별하고 다시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왔다. 다시 갈등이 시작됐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신풍령쪽을 탈까. 아니면 좀 무리가 되어도 신풍령으로 지금 출발할까. 그냥 향적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 서울로 올라갈까. 무리를 해서 신풍령(13.1km)까지 간다고 해도 밤늦게나 떨어질 테니 서울 올라가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대피소에서 하루를 쉬려고 하니 시간이 아깝다. 결국 난 다시 배낭을 메고 향적봉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하산을 해 오늘 안으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남은 구간이 아쉽긴 하지만 향적봉에 왔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백두대간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향적봉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곤돌라 승강장이 나온다. 10m 앞도 안보이는 구름 때문에 승강장을 찾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승강장을 만나니 반갑다. 편도 7000원의 표를 끊고 입구에 서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곤돌라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의 곤돌라를 골라 올라타는데 승객은 나 하나다. 서서히 산을 내려가는 곤돌라 안에서 온 몸의 힘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굳어진 힘이었을 거다. 지상에 가까워올수록 구름은 걷히고 맑은 대지가 나타났다. 산 아랫동네는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 내가 타고온 곤돌라. 왼쪽의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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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무주리조트 웰컴센터에서 서울 잠실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에 있으며 요금은 15000원이라고 한다. 가격도 싸고 바로 이곳에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남아서 웰컴센터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충 머리와 얼굴 팔 다리도 씻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보니 가관이다. 염소수염은 길게 자라 있고, 머리는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데다,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으니 산도적이 따로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중간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악천후 속에서도 이렇게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운이다.

 

멋진 날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혼자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입가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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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삿갓재 노을에 기대어 서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8

- 육십령 >> 할미봉 >> 장수덕유산 >> 남덕유산 >> 삿갓재대피소(11.9km)

- 2008.07.02.




아침부터 안개가 심상치 않다. 강수확률은 30%. 비가 올까? 완전히 마른 신발을 신어봤던 게 언제였더라. 수염을 자른 게 언제였더라. 입고 있는 옷도 매일 똑같다. 다행히 매일 세탁을 해서 입지만 물세탁만 한 거라서 냄새도 좀 난다. 머리카락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자라고 있다. 손톱의 때는 양호하다지만 끼고 있는 장갑에서는 퀴퀴한 땀내가 진동을 한다. 행색만 보면 산사람 그대로다. 도시에 나간다면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을 거다. 이렇게 이틀은 더 가야 한다. 여행이 끝난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5시, 식당에서 차려준 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하는데 촛불집회 관련 뉴스가 나왔다. 주인할머니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 왜 저럴까라며 혀를 찼다. 단순히 안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드렸다.


“할머니, 옛날 어르신들도 사람이 먹는 소고기의 국물하나라도 소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미국소는 육식을 한단 말이에요. 게다가 안 먹는다고 안 먹을 수가 없는 게 소잖아요. 어떻게든 우리 식탁에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설명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 정서탓일까. 세상과 떨어져 여행하겠다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다. 몇 가지 간편요리를 사려고 보았는데, 대부분 유통기한을 훨씬 넘었다. 씁쓸했다. 결국 라면만 2개 사 넣었다.


육십령고개로 다시 올라선 시간은 6시. 고갯마루는 안개로 10m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량 소통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널찍한 도로를 건너니 기분이 묘하다. 여기는 선계와 세속의 경계선일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는 급경사가 보인다. 다시 백두대간이 시작됐다.


▲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본 육십령 식당. 저 트럭 뒤에 육십령 식당이 있다.


▲ 육십령 고갯마루. 전라북도 표지판 뒤에서 백두대간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할미봉까지는 단단한 암봉이다. 암봉이 단단하지 않은 게 어디있겠냐만,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밧줄이 매달려 있는데 만일 밧줄이 없다면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난코스다. 스틱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만일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타는 사람이라면 스틱은 배낭에 접어두는 게 좋다. 그리고 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동안 자칫 딴생각을 하거나 허투루 발을 딛는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암봉을 간신히 지나고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기어이 한바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행히 스틱을 잘 잡아서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지만 스틱의 끄트머리 부분이 살짝 휘어졌다. 그러나 이는 다음에 올 더 큰 문제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아찔한 암봉을 오르고 내린 다음에서야 내 배낭에 물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 한통은 암봉에서 떨어져버렸나 싶었는데 예비 물통마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물을 다시 채우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누다가 물통을 깜빡 잊은 것이다. 아마도 식당 테이블에는 꽉 채워진 물통 두개가 머쓱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육십령에서 2시간 가까이 걸어온 길이다. 게다가 할미봉이라는 두 번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암봉을 넘어왔다. 그리고 앞으로 3시간 가까이 가야 샘이 있다. 둘 중의 하나다. 다시 1시간 반을 걸쳐 할미봉을 넘어 육십령에 가서 물통을 찾아오던가, 3시간을 더 참고 장수덕유산까지 가던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다시 할미봉을 넘고 싶지도 않고, 물통 때문에 왕복 3시간의 체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결국 장수덕유산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갈증은 정말 지독했다. 그럴 때면 나무들에 맺힌 물방울들로 갈증을 채웠다. 나뭇잎 중에는 그래도 침엽수 종류이면서 잎이 넓은 게 좋았다. 활엽수 쪽은 굉장히 까칠하고 맛이 이상한데, 참나무류의 나뭇잎들은 물방울도 잘 머금고 있고 나뭇잎도 부드러워 핥기 좋았다. 소나무 잎들도 제법 물방울이 알알이 맺혀 있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지기 때문에 마시기 힘들다. 그렇다해도 가뭄에 물 한 바가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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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 너무 심해 바위틈에 고인 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물은 마실 물이 못된다. 뜨거운 한여름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었을 것이다.

공기는 더 축축해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한바탕 쏟아 부을 기세다. 차라리 한바탕 쏟아진다면 컵이라도 대놓고 있다가 마실 참인데, 오진 않았다. 할미봉을 넘어 교육원삼거리까지 1시간 20여분의 길은 평탄한 편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장수덕유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면서 장수덕유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이정표가 샘터(참샘)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바로 내리막길을 타고 갔다. 150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내리막길이지만 바위들에는 이끼가 많이 껴있고 너덜지대를 지나는 곳에는 길이 뚜렷하지 않아 한동안 해매기도 했다.
마침내 작은 참샘을 찾았고 거기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가 반갑다.

하지만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라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물을 떠서 자세히 보니 1mm도 안되는 유충도 보였다.
급하지 않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은 물은 아니다. 샘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수질표시도 없다. 그런 물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건 내 위장의 위대함이다. 이곳에서 육십령 매점에서 구한 찹쌀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물통이 없어서 김을 넣었던 반찬통에 물을 담았다. 김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약간의 소금도 남아있던데다 기름기도 있지만 물 없이 가는 것보다 얼마나 훌륭한가.



▲ 장수덕유산에서 찍은 사진. 10m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다. 


 

물을 마시니 다시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오는 길은 가뿐하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속 가니 넓은 안부가 나온다. 장수덕유산 쪽의 조망이 남덕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구름 때문에 10m 앞도 가물가물하다. 바람도 솔찬히 불기 시작했다. 장수덕유산을 막 벗어나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잠깐 머물다가 가는 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이어 천둥번개까지 동반했다. 머리 위에서 울어대는 천둥소리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이날은 정말 산전수전 다 겪는 날이다. 물이 없어 고생하더니 물(비)이 넘쳐 또 고생이다. 남덕유산 정상부분은 암봉에 훤하게 열려 있어서 번개에 노출될 수 있었다. 결국 남덕유산은 옆으로 질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덕유산을 옆으로 비껴가면 이후부터는 또 한참을 내려간다. 큰 산이라서 그런지 오르고 내리는 부침이 심하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계단에 쭈그려 앉아 젖은 담배를 물고 있으려니 내가 생각해도 몰골이 가관이 아니다. 온몸은 흠뻑 젖어버렸고 고지대이다 보니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저체온으로 지치겠다 싶어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쉬는 시간도 편하게 못 쉬는 상황이다. 비가 오니 개구리와 두꺼비가 길바닥에서 놀고 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자 두꺼비 한 마리가 언덕으로 오르려고 바둥대는 모습이 재밌다. 빗속에서 지쳐 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월성재에서 다시 삿갓봉으로 치고 올라갔다. 역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땅바닥만 보면서 오기로 걸었다. 금방 나올 것 같은 삿갓봉은 굽이굽이 고갯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오고 천둥과 번개는 머리 위에서 위협사격을 가했다. 삿갓봉을 오르는 일도 위함하기 짝이 없다. 우회길이 있을까 싶어 지도를 보니 아주 작게 빗금이 나있다. 있다면 다행인데, 없다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삿갓봉에 오르기 직전에 옆으로 난 샛길이 나타났다. 비교적 뚜렷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삿갓재 대피소에 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계속되는 내리막길. 언제나 그렇지만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만큼 어렵다. 숨쉬기는 편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느껴지는 중압감은 오르막보다 최소한 1.5배만큼 느껴졌다.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대피소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서 삿갓재 산장의 매점문을 두드렸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 한분이 먼저 와 있었다. 산장에는 직원 외에 그 아저씨와 나 단 둘이 있었다.


▲ 삿갓재에서 바라본 조망. 나무들 때문에 그다지 좋지는 않다.


▲ 삿갓재 대피소 앞에서.


▲ 구름으로 살짝 가려진 곳 너머로 삿갓봉이 있다.

▲ 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고, 그 위로 하늘 한 구석은 비교적 맑았다.


 

▲ 삿갓재산장에서 본 또다른 풍경.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도착한 나는 먼저 젖은 등산화를 따뜻한 스팀 옆에 기대어 놓았다. 젖은 옷을 말리는 것보다 등산화를 말리는 게 먼저였다. 내일까지 마를까? 그럼 다행이지만 젖은 모양새로 봐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널어야 할 것들과 말려야 할 것들을 산장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결 낫다. 찹쌀떡으로 때운 점심 때문인지 그때부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삿갓재 산장은 제한급수를 하고 있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160m를 내려갔다 오라는데, 그게 힘들어서 그냥 급수시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덕유산은 처음이지. 예전 어느 겨울에 차를 타고 가는데 멀리 보이는 덕유산의 설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겨울에 오르기 전에 한번 여름에 혼자 와 본거야.”


덕유산은 겨울이 멋진 산으로 유명하다. 무주리조트 쪽의 스키장 때문만은 아니다. 바위로 된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주는 운치와 오래된 주목에 쌓인 설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들었다. 시간이 남는 우리의 얘기는 이런저런 얘기로 나아갔다. 내가 지리산에서부터 왔다는 얘기가 아저씨의 호감을 자극했는지, 아저씨의 인생얘기가 술술 나왔다.


“한때 사업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쫄딱 망했어. 빚더미에 앉아 있었는데도 몇 년간 살 수 있었던 건 내가 여기저기서 야생난을 많이 구해다 놨기 때문이야. 집에 있던 야생난을 팔아서 몇 년을 먹고 살았으니까, 꽤 많이 모았었지. 비싼 건 천오백만원까지 받았어.”

“거의 산삼 한뿌리 값이네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구하셨어요.”

“10억짜리 난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뭐. 오래전부터 야생난 구하러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외딴 섬도 가보고 첩첩산중에도 들어가 보고. 온갖 곳을 가지만 사유지나 국립공원, 도립공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는 안가. 지금도 기아사람들과 야생난 모임을 하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일제 GPS가 달린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다니면서 난을 찾고 있지. 좋은 난이 발견된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고 몇 년 뒤에 다시 와보려는 거야. 이게 돈이 되거든. 옛날부터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심마니처럼 다니다 보니 지금도 이 나이에 산을 제법 타는 편이지.”


아저씨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노인의 그늘은 없었다. 영각사에서 출발해 1시 넘어서 삿갓재에 도착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빨리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한 사업도 실패했지. 그리고 노숙생활도 3년이나 했다우. 노숙이란 게 힘들긴 하지만 그게 몸에 배면 또 빠져나오기가 어렵지. 그러다가 동생이 소개시켜준 기아자동차의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 이번에 휴가를 내서 혼자 찾아온 거야.”


백수로 살고 있는 나도 언제부턴가 지금의 생활에 조금씩 안주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일상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은 삶의 철학을 흔들어 놓는다. 내 백수생활도 어디에선가 그칠 것이다. 그 그침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두려울 뿐이다.


5시 즈음 비가 그쳤다. 내리는 기세로 봐서는 하루 종일 올 것 같더니 의외로 싱겁게 그치고 말았다. 저녁식사로 라면에 햇반을 말아먹는 게 식사의 다였다. 허기가 반찬이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비가 그치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가니 제법 조망이 나타났다. 비 때문에 공기는 맑고 청아했다. 7시 반이 되자 노을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데, 정말 멋진 노을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에 빠져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빛과 구름의 향연에 빠져 들었다. 몸속에 누적되어 있던 고단함이 노을 속에서 녹아들어갔다. 이렇게 아름다울려고 그렇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던 것일까. 삿갓재의 노을 속으로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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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죽길에서 만나는 바람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7

- 중재 >> 백운산 >> 영취산 >> 깃대봉 >> 육십령(19.1km)

- 2008.07.01.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도 상쾌하다. 태생적으로 낯선 곳에서도 잠을 잘 잔다. 산속에서 자고 나면 기분은 늘 좋다. 며칠전까지 내 어깨에는 항상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이제는 파스가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어깨가 단단해졌다. 무거운 배낭과 몸무게를 지탱했던 무릎과 발목은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다. 넘어지고 까지는 일이 없었다. 몸은 이미 자연과 공명하고 있었던 것일까.


6시에 민박집을 나왔다. 짙은 안개가 중재 마을을 살포시 보듬어 안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이번에도 차량으로 고갯마루 근처까지 배웅해 주셨다. 중재에서 이날의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중고개재까지는 가뿐한 산책로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짙은 구름 때문에 저녁날씨가 어찌될지 걱정될 뿐이다. 환국이가 보내온 기상정보에 따르면 오후에는 비올 확률이 높다.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이유다. 이날은 덕유산 초입인 육십령까지 달려야 한다. 어제처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 중고개재에서



중고개재부터는 백운산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내 발걸음에 놀란 나비가 팔랑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내 한걸음이 길섶의 작은 세상을 뒤흔드나 보다. 조그마한 날벌레들이 발 아래에서 요란하게 춤을 춘다. 내 귓가에서 웽웽거리며 날아다닐 때면 너무나 귀찮다. 손으로 휘휘 저어보지만 금방 다시 날아든다. 비가 오면 모두들 풀잎 밑으로 숨어들지만, 날씨가 좋으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힌다.


백운산을 치고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숨이 가슴을 조여올 때면, 갈비뼈를 열어서라도 숨을 더욱 크게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뜨겁게 데워진 발바닥도 떼어서 냉동실에 잠깐 넣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숨을 가다듬고, 발바닥을 나무에 퉁퉁 쳐주면서 위로해 준다. 어차피 올라야 할 산이라면, 기꺼이 즐기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서 노래라도 불러본다. 새소리의 엇장단이 나쁘지 않다. 땀이 흐르는 뺨과 목덜미로 바람의 애무가 간지럽다. 기분이 좋다. 힘들었던 숨쉬기의 고통은 금방 가시고 입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간다.


8시 10분. 마침내 백운산에 올랐다. 정상은 작은 공터를 이루고 있어 사방으로 거칠 것이 없다. 동서남북이 훤하게 트여있는 봉우리다. 멀리 지리산도 가물가물 펼쳐져 있다. 그 까마득한 하늘너머에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백운산 정상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이 모두 보인다.


▲ 백운산에서부터 간간히 나타나는 산죽길.


▲ 영취산 정상의 갈림길.

▲ 영취산 정상의 표지석.

백운산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 모두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대간 길은 영취산까지 완만한 능선길이다. 그러나 여느 능선길과는 다른 멋이 있다. 바로 산죽길이다. 책에는 영취산 이후부터 나온다고 나왔는데, 백운산을 넘어가자 내 키보다 더 자란 산죽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다. 또 책에서는 산죽이 너무 빽빽해 헤치고 나아가기 힘들다고 되어 있는데, 다행히 등산길 확보를 위해 좌우의 산죽 일부는 제거해 놓은 상태였다. 산죽이 주는 시원함과 고즈넉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백두대간에서 소나무숲길과 함께 여기 산죽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다. 산죽밭은 영취산 넘어서도 간간히 나왔다.

 

10시 영취산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300여m를 내려가 무령고개에 가야 샘이 있다. 내려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가지고 있는 물은 많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덕운봉을 지나 능선 가까이에 샘이 있다고 나왔다. 지도를 믿고 더 나아갔다. 하지만 덕운봉을 한참을 지나 민령 가까이 가서도 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통의 물도 거의 떨어져갔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물이라도 좀 얻어보겠지만 어제처럼 산속에서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977고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샘을 찾으려다가 자꾸 미루던 점심이라 매우 허기져 있었다. 또 물 없는 점심이라니... 그렇게 신발도 벗고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내가 왔던 숲에서 부스럭거리며 사람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린다. 한분이 힘들여 올라오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분도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물을 얻어볼까 했더니 나처럼 중재에서 출발해 그분도 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갈증을 참는 일도 쉽지 않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분이 먼저 출발하고 나도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할 때였다. 또 한 사람이 봉우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분은 영취산에서 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이 풍부했다. 그분 덕분에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고 사람들 신세도 많이 진다.


영취산에서부터 산죽길은 이전보다 더 장관이다. 백운산과 깃대봉 사이에 있는 곳곳의 산죽길은 대나무 내음을 물신 풍기면서 풋풋한 바람을 살랑살랑 내보내준다. 산죽 뒤로 크게 자란 나무들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이루어 주어, 사자처럼 사나운 햇살도 여기서는 털복숭이 강아지처럼 부드러워진다. 한참 쉬고 있으려니 참새보다 작은 새들이 산죽 사이로 오가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귀엽다.


민령서부터는 급한 오르막이 다시 열린다.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깃대봉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에서는 덕유산의 산줄기가 더욱 명확하게 들어온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여정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가깝게는 할미봉이 불쑥 솟아 있고, 그 뒤로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가깝다. 다음날이면 할미봉을 넘어 본격적인 덕유산 자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 쉬고 있으면 초록의 나무그늘이 나를 달래준다.


▲ 깃대봉에서 바라본 덕유산 자락. 멀리 서봉(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보인다.

▲ 영취산에서 출발한 등산객이 깃대봉에서 찍어준 사진.  


▲ 육십령 마루로 내려서서  


▲ 육십령 식당. 백두대간 종주 등산인들이 많이 찾아 왔나 보다.  



깃대봉을 넘어 조금만 내려가자 샘터가 나온다. 물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팻말도 어여쁘게 만들어 놓았다. 물이 맑고 맛있다. 갈증이 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바위틈에서 힘차게 솟아나오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때문이다.


샘터를 지나 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계곡으로 내려가는가 싶지만 곧 능선길을 만난다. 다 왔다 싶은데, 한참을 가야 육십령이다. 지루하고 고단한 길이다.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동쪽(서상쪽)으로 50m만 가면 식당 겸 매점과 민박을 겸하고 있는 육십령식당이 있다. 현금이 얼마 없어 카드로 계산해야하는데 혹시 안된다고 하면 천상 서상읍이나 장게면으로 내려가야 할 판이다. 다행히 주인 할머니는 가능하단다. 이날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육십령 마루에는 가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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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6

- 매요리 - 복성이재 - 봉화산 - 중재(21.4km)

- 2008.06.30





늘 그래왔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햇반을 준비하면서 점심때 먹을 것까지 데웠다. 햇반은 그냥 먹으면 까칠하지만, 한번 데웠다 먹으면 어떨까. 새로운 시도다. 잘 되면 도시락을 먹는 기분일 것이다.


햇반 하나에 김치로 아침을 떼웠다. 물론 이렇게 출발하면 9시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때부터는 쵸코바나 사탕으로 견디다가 11시 즈음에 점심식사를 한다. 물이 있는 곳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맨밥을 먹으며 물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지리산과 달리 백두대간에는 종종 물 구하기 어려운 구간이 있다.



 

▲ 매요마을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6시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민박집을 나왔다. 매요휴게소를 나와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743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계속 북진하면 유정육교가 나오는데 이 육교를 통해 88고속도로를 건넜다. 임도를 따라 사치재를 향했다. 출발은 언제나 가볍다. 문제는 산등성이 초입이다. 사치재에서 산길을 잡는데 잡목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지, 길잡이 리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또 길을 엉뚱한 데로 잡았다. 다시 사치재 팻말 앞으로 내려왔다. 30분의 시간과 체력을 날렸다. 길이 함몰되어 전혀 없는 곳에 길잡이 리본이 보였다. 설마 저 곳에 길이 있을까 싶어 올라갔는데, 거의 잡목과 풀들로 우거진 곳에 아주 작은 길이 나 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가보자 싶어 올라가니 다행히 이 길이 맞았다.


사치재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산등성이는 1994년과 1995년에 두차례에 걸쳐 산불이 났던 곳이다. 그래서 큰 나무들은 이미 고사하고 지금은 식물들의 춘추전국 시대다. 작은 잡목과 풀들이 길을 덮어버린 것이다. 종종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까맣게 그을린 나무둥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현장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맺힌 풀들이 서서히 내 신발을 적셔왔고, 키만큼 자란 잡목과 가시나무, 풀들이 내 팔을 할퀴었다. 재작년 초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길도 잘 보이고 잡목과 풀들도 거의 없더니 두해 지나 숲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여름이니 그럴만도 하다.


평일이다 보니 산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만큼 새벽부터 지어진 수많은 거미집을 부시고 다닌다. 한걸음을 디디면서도 벌레라도 있으면 피해왔건만, 수많은 거미집들을 거침없이 부시고 그 무수한 잡풀 속을 탈출해야했다. 아, 얼마나 많은 집들을 부시며 걸어왔던가. 얼굴과 팔에 엉기는 거미집 때문에 기분이 묘하다. 마치 숲이라는 큰 거미집에 내가 걸려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간신히 산불난 지역을 벗어나니 온전한 산길이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본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신발은 난리가 아니다. 많이 젖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긴바지를 입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반팔 옷은 치명적이다. 팔에는 온갖 가시와 풀에 베인 상처들 투성이다. 백두대간에는 이런 구간이 꽤 많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잡목과 가시덤불을 지나야 할까.







▲ 아막성터


 


10시도 되지 않아서 신발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신발 안까지 젖어버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치재에 있는 철쭉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재작년에 한번 백두대간 중 1박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11시 쯤 철쭉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무그늘에 마련한 평상에 앉아서 가방을 풀고 신발도 벗었다. 양말과 깔창을 벗어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샌들을 신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잠시후 주류 배달 차량이 들어왔다. 그에게 물어보니 아주 멀리 있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답해준다. 차에 실려온 맥주가 한짝씩 내려지는 걸 보니 입이 왜 이렇게 마를까. 그렇다고 주인 없이 맥주를 꺼내먹는 건 아니다. 할 수없이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니 일찍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기에 평소처럼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산에서 오는겨”

“네, 주인장이 없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올 거니께, 저기 물 떠다 마시고 기다려봐요.”

“저, 할머니, 주인하고 친하세요?”

“바로 요 옆집에 살어요. 왜?”

“그럼 제가 할머니께 일단 삼천원 드릴테니, 여기 맥주 좀 가져다 마실게요. 할머니가 주인 오면 주세요.”

“그래요? 그러지 뭐.”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그때를 돌아봐도 참 신기하다. 맥주 한병을 다 비우고 아침에 데운 햇반을 꺼냈다.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찰기가 잘 흐르고 밥도 잘 익었다. 그냥 식은 도시락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맥주 한병과 밥을 먹으니 기운이 살아난다. 그러고 나니 주인이 왔다. 맥주를 마신 자초지정을 얘기했다.


“아이구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이거 밍밍한 맥주를 마셨겠네요. 하나 더 드릴까요?”

“아니오. 또 산을 타야하는데, 그만 마실게요. 하하”


철쭉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다시 일을 나가신다.


“이제 요 앞에 포도밭에서 일하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백두대간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다 보니 산을 타는 손님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나와 다시 산등성이를 올랐다. 잠깐 신발과 발을 말렸는데, 한결 낫다. 힘껏 산을 다시 올랐다. 식당이 철쭉식당인 것은 치재 근처가 유명한 철쭉군락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철쭉들이 길을 덮고 있다. 그나마 가시나무나 날카로운 풀들이 아니라서 좋지만, 역시 길을 헤쳐 나가는 동안 철쭉가지가 자꾸 배낭을 잡아끈다.


▲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간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길.


 


▲ 봉화산에서 바라본 조망.




오후 2시 봉화산에 올랐다. 답답했던 조망이 확 트였다. 돌아보면 9박 10일 일정 중 가장 멀리까지 시원한 조망을 보였던 날이다. 그만큼 비와 구름이 일정 내내 나를 뒤덮었다. 지리산을 벗어나면서부터 신발이 마를 날이 없었고, 준비한 양말 다섯 켤레 중 하나라도 완전히 마른 날이 없어, 그냥 신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본 조망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중재까지는 가야 하는데, 벌써 오후 2시를 넘었다. 최소한 4시간은 가야하는데, 6시라면 간당간당하다. 자칫 금방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 7시까지 밝기는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봉화산 이후로는 길이 좋다. 마루금은 억새만 좀 자라 있을 뿐이다. 구름이 아니었다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중재까지 4시간 동안 물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좋으면 또 저것이 안 좋다. 모든 걸 만족하는 여행은 드물다. 여행은 그런 부족함 때문에 채워지는 것이다.


▲ 이 정도 길은 양호한 편.

▲ 중재민텔 풍경.



 

중재에 도착한 건 6시가 다되어서다. 중재 고개에 보니 ‘중재민텔’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원래는 중재 샘터 근처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또 젖었으니 그곳에 가기로 했다. 게다가 고개까지 차량으로 와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 이날은 대략 10시간 이상을 달린 셈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곳 중재 민텔도 중재에 있는 유일한 민박시설로 자리잡았다. 많은 대간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쉬고 갔다. 집 바깥벽에는 대간 산꾼들이 매달아놓은 길잡이표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거리도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오면서 조우한 산행객은 딱 한팀에 불과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산에서 혼자 걸어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행이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위로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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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길을 찾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5
- 고기삼거리 - 여원재 - 매요리(18.2km)

- 200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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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전날밤 늦게 잠들었다. 방안에는 빨래와 젖은 물건들을 늘어놓아 한쪽 구석에서 초라하게 잠들었다. 밤새 방바닥은 뜨겁게 달궈졌다. 주인께 방에 불을 넣어달라고 말했기 때문인데, 더워도 젖은 물건들을 말리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늦잠을 잤다. 오랜만의 게으름이다. 기상 예보는 오전 중에 날이 갤 것이라고 알려왔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켜보았다. 그러나 응답이 없다. 젖어서 내부기판에 무리가 갔을 수도 있다. 배터리를 분리하고 당분간 휴대전화는 켜지 않기로 했다.


9시에 밖으로 나왔을 때는 가랑비가 좀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 비는 그냥 맞고 가자고 생각했다. 짐을 정리하는데, 다행히 옷가지와 물건들이 대부분 잘 말랐다. 신발 역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신을만했다. 10시에 나와 보니 날이 갰다. 비가 그친 것이다. 준비했던 우의를 가방에 넣고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백두대간은 우리가 묵었던 마을처럼 낮은 자세로 마을들을 지날 때가 있다. 여기서는 지방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이런 길도 백두대간일까 싶지만, 해발 500m 이상에 위치해 있는 대간의 한 줄기다. 본격적인 산행길로 들어서는 가재마을까지는 한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제 몰아친 비바람 때문인지, 멀리까지 시야가 맑게 트였다. 고기삼거리에서는 우리처럼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산행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했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많은 이들이 산악회나 산모임 등으로 백두대간 산행에 나섰다.


우리는 예전 추억을 되새기면서 가재마을 가게 앞에서 막걸리를 주문해 한잔 했다. 동행과 함께 하는 막걸리 한잔은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지리산 자락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수를 끌어다 마시는 편인데, 가재마을의 노치샘은 고기삼거리 민박집에서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심지어 노치샘에 비하면 자신들이 마시는 지하수는 썩은 물이라는 비교도 서슴지 않을 정도다.


노치샘을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 대간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미 대단위의 등산팀들이 이곳을 지나친 흔적도 보였다. 가재마을에서 수정봉으로 가는 길은 예전에도 한번 지났던 길이다. 2006년에 수정봉을 찾았을 때는 팻말도 없이 ‘수정봉’이라고 쓰인 종이만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는데, 지금은 잘 다듬어진 나무팻말이 박혀 있다. 그만큼 백두대간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많아진 것이다. 사실 이런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겠다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노치샘이 있는 가재마을에 사람들이 북적이게 된 것도 순전히 백두대간 덕분이다.


아침 안개가 옅게 드리워졌지만, 등산에는 지장이 없다.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이 길은 산 타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유니콘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다.”


기석이 던진 말처럼 여원재까지 가는 등산길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원재에서 점심을 먹고 기석은 서울로 향했다. 나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미안하다는 친구다. 난 고맙다며 힘있게 그의 손을 잡았다. 진심으로 함께 한 1박2일 산행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서울로 도망가고 싶었던 나의 등을 산으로 밀어준 큰 격려였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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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원재를 떠나 고남산을 향해 가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난관이 시작됐다. 잡풀이 어제처럼 발목을 잡았다. 여원재까지 오면서 거의 마르기 시작한 등산화는 다시 젖기 시작했다. 독도도 어렵고, 길잡이를 해준 리본들도 어지럽게 헷갈린다. 결국은 길을 잃고 말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길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간길이라 생각하고 올라가는데, 어느덧 벌목된 나무들로 인해 길잡이 리본들은 도통 볼 수가 없다. 대략 지도정보와 눈에 보이는 봉우리와 길들을 짐작해 찾아 올라가는데 뜬금없이 큰 무덤 하나가 딱 길을 가로막고 있다.
거기에서 길이 끊겼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내 위치를 짐작해 보니 장치로 올라가는 길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이름모를 무덤의 주인장에게 길을 물어본다고 가르쳐줄 리도 없고, 그저 주저앉아서 나침반과 지도만을 보고 내가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보았다. 무덤 뒤편 능선을 향해 치고 올라가면 대간길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토끼들이나 지났을까, 길은 보이지 않고 온갖 잡목들이 온몸을 붙잡았다. 간신히 능선길로 올라갔지만, 대간길이 아니다. 다시 양옆의 능선이 보였다. 이러다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다시 지도를 살폈다. 마을을 두고 왼쪽으로 빙둘러가는 대간길을 유심히 보았다. 분명 고남산은 오른편에 있지만, 마을길과 비교해보면 왼편에 대간의 마루금이 걸려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왼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내 대간길과 만날 수 있었다. 지도를 보니 장치와 합민성을 그냥 지나친 듯싶다. 한시간 가까이 헤맨 결과치고는 나쁘지 않다. 최악의 경우 여원재로 다시 돌아가 길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다행히 지도를 잘 살피고, 지형지물에 대해 제대로 판단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우여곡절 끝에 홀로 고남산에 올랐다. 고남산까지 오르는 길은 오랜만의 가파른 등반길이긴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다. 게다가 능선길이라서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소나무숲이 잘 만들어져 있어 숲길을 걷는 즐거움도 크다. 하지만 고남산을 넘자 다시 길이 헷갈린다. 길잡이 리본도 여기저기 어지럽다. 다시 지도를 수시로 꺼내놓고 길을 찾아야 한다. 임도와 산길을 수시로 오가면서 길은 진행된다. 다시 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이슬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했다.






길을 찾느라 고생한 때문인지 매요마을에는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마을 적당한 공터에 텐트를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백두대간 때문에 유명해진 매요휴게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매요휴게소는 사람들 싸움에 어수선했다.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싸움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바깥으로 짐을 들고 나왔다. 길을 가는 할머니에게 마을회관 앞 공터에 텐트를 쳐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괜찮지만 이왕이면 민박집에서 쉬지 그러냐고 물으신다. 매요마을에 민박집이 있을 거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좀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마을 위쪽에 노부부가 민박집을 하나 내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서는 텐트보다는 당연히 민박집이 좋다. 물론 비용이 들기 마련이지만, 잘 쉬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박집은 어렵지 않게 찾았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알아서 달라고 하셨다. 민박집에서 신문지를 얻어 등산화 안에 채우고 조금 남은 저녁볕에 말렸다. 그리고 여전히 먹통인 휴대전화 때문에 민박집 전화를 빌려 집에 전화했다. 마지막으로 김치를 좀 얻어 저녁찬과 아침찬으로 해결했다.




내가 묵게 된 민박집은 2층인데, 아래층은 주인 내외분이 사시고, 2층을 손님들에게 빌려주었다. 방에는 살림이나 세간이 그대로 있었다. 책상에는 읽던 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다. TV는 없었지만 라디오와 오디오기도 있었다. 민박집 치고는 좀 황당하다 싶었지만, 그런대로 인간미가 넘쳤다. 2층 베란다는 꽤 넓고 민박집이 산자락에 붙어있어 매요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날밤은 쓸쓸히 혼자 보냈다. 친구의 빈자리가 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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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동행, 비바람을 뚫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4

- 성삼재휴게소 >> 만복대 >> 정령치휴게소 >> 고기삼거리(11.2km)
- 2008.06.28




친구 기석은 새벽 2시가 좀 넘은 시간에 찾아왔다. 이번 종주 구간 중 1박 2일 동안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동행없이 가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구간이라 심심하지 않지만, 이제부터가 외로운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지리산 종주 코스를 벗어나면 이런 장마철에 산을 찾아올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내면과의 동행이라 여기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막상 그것은 험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혼자 가면 또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또 즐거운 일이다. 그런 기대감이 여행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산중 여행이라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동행은 절실하다. 친구는 약해지고 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보다는 ‘우리’가 더 강하다.


우리는 잠깐 선잠을 잤다. 2시간 정도의 옅은 잠이었다. 이날 기상예보는 중부지방에 돌풍을 동반한 40~100mm의 비가 내린다고 알려왔다. 4시 반에 일어난 우리는 터미널로 나갔다. 터미널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식사를 하고 김밥을 2줄 준비했다. 6시 성삼재로 오르는 버스에 올랐다.








 

성삼재로 올라가는 길부터 심상치 않은 구름들이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게 보였다. 가는 비가 뿌려지는 가운데 우리는 우의를 꺼내 입었다. 버스가 올라온 861번 지방도의 진행방향으로 좀더 나아가면 고리봉-만복대 방향 길이 좁게 나있다. 다시 능선에 올라서 고리봉으로 오르는 길, 기석은 인터넷을 통해 이 구간은 헌옷을 입어야 한다는 글을 봤다고 말했다. 길이 험한가 보다 싶었지만, 실제로 길을 걷다보니 왜 헌옷을 입으라고 했는지 실감이 났다. 숱한 잡목들이 살을 스쳤고, 가방을 잡아끌었으며, 발을 걸어왔다. 우의를 걸쳐 입어도, 신발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은 어쩔 수 없었다. 반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빗물은 무릎과 정강이를 타고 발목 안부터 젖어들었다. 산행을 하고 불과 2시간도 안되어 신발은 푹 젖어버렸다. 등산화 자체는 방수처리가 잘 되어 있지만, 다리를 타고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은 어쩔 수가 없다. 신발 안까지 젖어버리니 온몸이 젖어든 듯하다.


묘봉치 전까지 길을 덮어버릴 정도로 무수히 자란 잡목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편한 복장도 아닌데 우의를 입고 길을 뚫자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온몸은 젖어버렸고 신발도 질퍽거렸다. 발이 젖어버리면 물집이 쉽게 잡히고, 발바닥 살이 찝혀서 걸음걸이가 힘들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하필 친구가 도와주러 내려온 마당에 이런 험한 일을 당하니 도움을 청한 나로서는 미안하기만 하다.


묘봉치를 넘어가면 그나마 거친 잡목들의 방해는 벗어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능선길이 만복대까지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바람의 본격적인 방해가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잡목과 풀들이 바람을 막아주었지만 묘봉치에서 만복대를 오르는 구간은 바람을 막아줄만한 것이 없다. 가을이면 억새가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고 하지만 6월이라 그만한 억새들은 어디에도 없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도 바람에 휘청거린다. 예전 설악산에서 만난 바람만큼은 아니지만, 엄청난 돌풍이 비와 섞여서 귀청을 때렸다. 한걸음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날씨만 좋았다면 만복대에서 쉬면서 준비한 맥주도 한잔 했을 것이다. 정상에 오를수록 더욱 거세게 몰아지는 비바람에 곁눈질로만 만복대와 인사하고 곧장 내리막길로 내려섰다. 다시 잡목숲을 지나니 바람은 잦아들었다.


만복대에서 내려서 정령치 휴게소에 들렸을 때는 몸이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정령치 휴게소가 열려 있을 거라고 판단한 우리는 휴게소로 들어가려 했으나 모든 문이 잠겨 있었고 공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휴게소의 바깥 어디에도 비바람을 피할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대충 싸온 맥주와 김밥으로 점심을 때워야 하는 판에 난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에서 먹을 수도 없고, 쫄쫄 굶으면서 몇시간을 다시 산을 넘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행히 공사 준비를 위해 나와 있던 휴게소 소장님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공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준 것이다. 온몸이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소장님은 이런 비바람에 산을 탈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친절하게 커피도 손수 타주시면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가란다. 우리는 거듭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렸다. 공사도구로 어지럽던 박스 안이었지만 비바람을 피하고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맥주와 김밥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운 우리는 다시 단단히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정령치 휴게소를 떠나 큰고리봉까지는 급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큰고리봉에서는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능선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대간은 고기리 마을 방향으로 뚝 떨어진다. 내리막길은 더욱 미끄러워 서두를 수가 없이 더디기만 했다. 짙은 구름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나그네들이었다. 비바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열심히 걸어 온몸이 열이 올랐지만 비바람 때문에 금방 식었다.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를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이렇게 온몸이 젖어 계속 간다는 것은 무리수라는 판단에서였다. 당초 목적지였던 수정봉을 포기하고 우선 고기삼거리의 민박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고기리 삼거리에 내려서서 가까운 민박집-약촌산장-을 찾아들어가니, 이미 등산객 한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네, 성삼재에서 출발했어요.”

“허, 우리도 거기서 왔는데, 늦게 출발했나봐요.”

“네, 7시 쯤 출발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반가운 인사가 매우 살갑게 들렸다. 우리만 산을 탔으려니 생각했지만 이미 우리 앞으로 간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이런 궂은 날씨에 함께 산을 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위안이 되곤 한다. 같이 역경을 이겨냈다는 동질감이다.


방으로 들어선 우리는 먼저 푹 젖은 신발과 옷과 가방을 말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내일도 산을 타야 한다면 최대한 잘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방은 온통 젖은 옷가지와 물건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옷걸이에 걸어놓은 배낭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져 밑에 수건을 받쳐야 했다. 신발은 깔창을 분리해 흙만 씻어내고, 방안 한 구석에 비닐을 깔아 올려놓았다. 대충 정리하는 데도 버겁기만 하다.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해 늦은 점심을 청했다. 식사와 함께 반주를 청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친구들 얘기부터 다시 시작한 연애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요즘 시골에 땅보러 다닌다.”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했다. 이 친구가 투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이런 산골이나 경치 좋은 곳에 작은 집 하나 짓고, 가끔 숙박 손님들도 받아 살아가는 거야.”


친구의 꿈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소박한 꿈이 아닐까. 지금부터 돈을 잘 모아보겠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경치 좋은 곳에 가끔 여행 삼아 가면서 어디에 집을 지을까 고민하는 정도다. 보통 사람들이 땅 보러 다닌다면 시세나 투자가치 등을 따지는 것일 텐데, 그에게 그런 것은 아직 안중에 없다. 즉 땅보러 다닌다는 말의 의미는 여행 삼아 다니는 산골마을의 경치를 눈여겨본다는 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산골마을의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활짝 열린 미닫이 문 너머로 비는 추적추적 계속 내렸다. 바람은 그세 많이 잦았나 보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산골마을에서 멀리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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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수와 하늘정원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3
- 연하천대피소 >> 토끼봉 >> 노고단 >> 성삼재휴게소(13.9km)
- 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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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연하천산장에서 난 평생 잊지 못할 풍경과 만났다. 그리고 매번 지리산을 올 때면 그 풍경을 다시 내 눈안에 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리산 맑은 밤하늘에 강물처럼 흐르는 별들, 이쪽 하늘에서 저쪽 하늘로 줄줄이 이어져가는 별의 강. 젊은 날에 본 지리산 은하수는 내 감성의 주춧돌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은하수를 잊지 못해 지리산을 찾는다. 내게는 일출보다 소중한 풍경이다.


전날밤, 예전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와 보았지만, 짙은 구름에 가려져 별빛 한줄기도 찾기 어렵다. 이른 새벽 일찌감치 산장 밖으로 나섰지만, 초승달만 휑하게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밤하늘 성긴 별들이 산자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


전날처럼 6시에 산장을 나왔다. 이른 아침 숲길로 나서니 비스듬히 내려앉은 착한 햇살이 마중 나왔다. 욕심조차 이슬로 맑게 정화되는 하루의 시작이다. 연하천 산장을 나오면 곧바로 얕은 오르막이 시작된다. 명선봉이다. 급한 오르막길의 끝에는 작지만 안락한 공터가 나온다. 배낭을 풀어놓고 쉬어가는 길손들의 쉼터다.


명선봉을 지나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종전의 봉우리와는 다른 급한 오르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토끼봉이다. 노고단에서 종주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힘든 구간이 이곳이다. 토끼봉을 넘어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가방을 풀어놓고 숨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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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봉을 지나 급한 내리막을 내려가면 화개재가 나온다. 날씨가 수시로 바뀌었다. 화개재는 맑았다. 구름도 많이 걷혔다. 멀리 구름이 낮게 깔려 있지만, 머리 위로는 해가 맑게 떠있었다.
지리산 여름 날씨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다행히 이날 기상정보에 비소식은 없었다.


화개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유명한 240m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일명 600계단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정말 끝이 없이 이어지는 계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힘들여 계단에 올라서면 삼도봉이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하나의 꼭지점에서 나누어진다.


이번 지리산에서는 많은 대학생들을 만났다. 전국 각양각지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이나 경기 지역보다 지방이 많고, 지방에서도 특히 영남지방 학생들이 많았다. 영남 학생들이 대규모 단위가 많고, 또 그러다 보니 말이 많고 활기차서 눈에 띈 것일 수도 있겠다. 호남이나 서울 경기 지역 학생들은 좀처럼 보기 만나기 어렵다는 게 의아하다. 하지만 산에서 그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전국 각지의 등산객들이 영호남의 경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삼도봉을 지나면 곧 노루목이다.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여기에 있다.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노고단으로 빠졌다. 이글을 쓰는 지금은 무척 후회된다. 어차피 시간이 남았는데 천천히 반야봉을 둘러보고 와도 좋았다. 이번 가을 다시 지리산을 찾는다면 꼭 들려야겠다.



▲ 화개재 삼거리 모습. 예전보다 복원작업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노루목에서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곧 임걸령 샘터다. 풍부하게 나오는 물이 반갑다. 연하천을 나오면서 물을 가득 떠왔지만 4시간 가까이 산행을 하면서 거의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증이 한창일 때 마시는 시원한 샘물은 이 세상 어떤 음료수보다 짜릿하다. 지리산은 적당한 곳에 맞춤으로 샘이 있어 좋다.


임걸령부터 노고단까지는 산뜻한 산길이다. 오르내림도 적고, 길도 평탄한 구간이 많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이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짧다. 지리산 능선에서 벽소령 구간과 함께 가장 걷기 편하고 즐거운 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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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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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걸령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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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봉 헬기장



노고단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고갯마루에 짐을 풀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도한 짐이다. 텐트까지 들어가 있으니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일부 짐을 소포나 택배로 되돌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친구 기석의 전화를 받았다. 주말을 맞아 지원을 나오겠다고 한다. 동행이 있어 기쁘기도 하고, 소포나 택배가 아닌 친구에게 부탁해 불필요한 짐을 서울로 보낼 수 있겠다 싶어 반갑다.


노고단 정상이 개방된 것은 최근이다. 스무 번 가까이 지리산을 찾아왔지만 노고단 정상에 올라선 것은 처음이다. 시간이 많이 남는 만큼 짐은 노고단 고개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노고단 정상을 향했다. 나무데크가 편하게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노고단 정상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는 약 750M에 이른다. 양 옆으로 낮게 자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겹다. 산 아래에서는 구름이 가득했지만 노고단 정상은 햇볕이 따가웠다.


노고단 정상은 ‘하늘정원’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약 30만평에 이르는 넒은 초지에 여름에는 약 35~40종의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룬다. 1507M의 고산지대라 바람이 심해서 나무들도 키가 작아 야생화가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다. 데크 양 옆으로 작은 관목들과 초지를 살피면서도 멀리 노고단 운해가 펼쳐져 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런 즐거움 사이로 틈틈이 세찬 바람이 흐르는 땀을 씻어 주니 이 또한 등산은 즐거움이다.


노고단고개에서 내려서면 곧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여기서 성삼재까지는 편한 임도를 따라 한시간 가까이 내려간다. 이날은 여기서 버스를 타고 구례로 내려갔다. 친구가 밤기차로 새벽에 오기로 했다.






 

▲ 노고단 정상과 연결된 나무데크





▲ 성삼재에서 바라본 구례군 지역




▲ 성삼재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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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혼자서 왔어?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2
- 장터목산장 >> 촛대봉 >> 벽소령 >> 연하천산장(12.8km)
- 2008.06.26



장터목산장은 이른 새벽부터 어수선하다.
3시반부터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잠결에 들린다. 대부분 일찍부터 일출을 보러 천왕봉에 오르려는 사람들이다. 산장 게시판에는 이날 일출이 5시 15분 경에 있을 거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름이 위아래로 가득했던 엊저녁의 풍경은 멋진 일출을 보여줄리 만무하다. 만일 날이 좋았다면 나는 촛대봉 일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날씨 때문에 접었다. 4시경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났지만 잠은 충분했다. 이미 많은 침상이 비어있다. 모포가 어지럽게 널린 곳도 있다. 대충 꾸리다가 만 배낭도 보인다. 급하게 나간 모양새다.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내일 지리산 최저

14도 최고 21도

구름 조금 강수확률

오전 10% 오후 20%


후배 환국이가 문자를 보내주었다. 이번에 떠나오면서 아무래도 기상정보는 접하기 어렵다 싶어 환국에게 다음날 기상정보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부탁해 놨다. 오기 전에도 무운을 빌어준 후배였고, 여행 내내 문자를 보내 준 것에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햇반으로 아침을 먹었다. 산 아래서 준비해온 카레와 더불어 먹으니 먹을 만하다. 새벽 공기가 약간 서늘하지만 상쾌하다. 멀리 구름이 잔뜩 껴있다. 밥을 먹고 나니 새벽에 천왕봉에 다녀온 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일출은 없었다. 사람들 얼굴 여기저기에는 피곤하고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다. 장터목의 아침은 일출에 따라 표정은 확 달라진다. 멋진 일출이라도 있던 날이면 축제 분위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렇듯 침울하다. 날씨랑 똑같다.


5시 반,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꾸렸다. 어제는 배낭을 잘못 꾸려서 힘들었다. 배낭을 꾸릴 때는 부피에 비해 무거운 것을 아래로 넣고, 가벼운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한다. 양말이나 속옷, 여분의 옷은 딱딱한 물건들 사이사이에 끼어 넣는 게 효율적이다. 물론 배낭에 짐을 넣기 전 김장비닐을 넣어 침수에 대비하는 것도 요령이다. 또 옷들은 지퍼 팩이나 작은 비닐주머니에 소단위로 나눠 놓으면 효율적으로 배낭을 채울 수 있다. 우의나 배낭커버는 유사시 바로 꺼낼 수 있도록 배낭 위쪽이나 옆주머니에 넣어둔다. 그러나 이날 같을 경우 비올 확률이 매우 낮아서 안쪽 깊이 넣어버렸다. 우의도 부피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배낭을 잘못 꾸리면 배낭에 따라 몸의 중심이 흔들리기 쉽다. 그러면 무릎이나 발목, 허리 등에 더 많은 무리가 가고 피로감도 급격히 찾아온다. 배낭은 최소한 몇 시간 동안 짊어지고 가는 것인 만큼 많이 고민하고 신중하게 꾸려야 한다.


6시, 장터목 산장을 떠났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나왔지만, 곧 몸이 더워졌다. 연하봉에서부터 슬슬 구름이 다시 몰려들었다. 하얀 파도처럼 아주 천천히 밀려오는 게 보였다.





7시 20분 촛대봉에 도착했다. 봉우리 모양새가 촛농이 흐른 촛대처럼 보인다해서 촛대봉이다. 이미 짙은 구름으로 10m 앞을 보기가 어렵다. 넓은 세석평전이 한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세석산장은 들리지 않고 곧장 영신봉으로 치고 올랐다. 여름 꽃들이 아침이 되자 만개하고 있다. 초록의 숲에서 피어난 수수한 순백의 꽃들은 별처럼 반짝이며 길잡이를 하고 있다.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지리산 마루금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대부분의 봉우리들이 1500m의 고봉이지만 한시간 이상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드물다. 8시에 영신봉을 올랐다. 영신봉에서 떨어지는 급한 내리막에서는 잘 만들어진 나무계단이 있어 편하다.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이 구름으로 가려져 아쉽지만 키큰 나무들이 펼쳐진 협곡의 모습은 지리산에서 놓칠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다.


영신봉을 넘어서면 곧이어 갖가지 모양의 암봉이 삐쭉 솟아 있는 칠선봉에 이른다. 잠시 배낭을 풀어 내려놓고 시간과 자연이 빚은 바위 모습을 보면서 감상에 젖어본다.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면 맑은 샘을 만날 수 있다. 선비샘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언제나 수량이 많아서 오가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물통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나와 같은 여정을 가는 사람을 보기 드물었는데, 선비샘에서 아저씨 두분이 동행이 되었다. 산에서 말을 트는 인사말은 대개 이렇다. “어디서 오셨어요?” 혹은 “어디로 가세요?”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오고 가는 길을 묻는 건 당연한 일, 그렇게 해서 대화가 시작되고 동행이 되는 것이다.


“왜 혼자 왔어?”

“아, 네. 다들 시간이 잘 안 맞아서요.”

“혼자 지리산 오는 사람은 보통 고민이 있어 오잖아.”

“……”

“결혼, 연애, 사업, 직장 등등 뭐 그런 고민들을 짊어지고 오지.”


혼자 지리산을 찾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96년 군을 제대하고 나서 홀로 지리산을 찾아 하루 동안 광란의 질주로 천왕봉까지 달렸다. 마땅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답답한 마음을 지리산에 의탁해 보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마음은 비단 나만 그렇지는 않다. 많은 이들이 그런 마음과 정신을 치유받기 위해 숲을 찾고 지리산을 걷는다. 숲의 마루금을 걸으면서 아픈 가슴은 맑은 산공기로 가득 채우고, 복잡한 머릿속은 숲의 공명으로 채운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봉우리에서 깊은 숨을 몰아쉬어 보고, 산 아래 펼쳐진 장난감 같이 조그마한 세상풍경을 보며 위안을 받아 보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사람들은 고통, 우울, 절망, 실패, 좌절을 버리고 온다. 그 깊고 깊은 계곡에서 푹푹 썩어가고 있는 나쁜 감정과 생각들은 다시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선물로 돌아오고 있다. 혼자서 산을 가도 좋은 이유다.



 


 


 


 


 


12시에 벽소령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연하천까지는 넉넉잡고 2시간이면 간다. 점심을 먹으며 푹 쉬기로 했다. 먼저 쉬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역시 여느때와 같은 인사말로 말을 건네본다.


“어디서 오셨어요?”

“연하천에서 왔어요.”

“연하천에서 몇시에 나오셨는데요?”

“여기까지 네 시간 걸렸네요?”

“네 시간이나요?”


두 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네 시간이나 걸렸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길이 바뀐 것일까. 건장하게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을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네 시간이나 걸릴 이유가 없다 싶었다. 길이 바뀌지 않고서야... 그러나 잠시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됐네요. 제 친구가 시각 장애인이거든요.”

“네?”

“앞을 거의 못 봐요. 빛을 감지는 하지만 물체를 구별할 수가 없지요.”


벽소령산장 앞 테이블에서 쉬고 있는 한 사람의 시선은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힘들어서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눈이었던 것이다. 그런 핸디캡을 가지고 지리산을 종주하고 있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시각장애인 친구의 바람을 비장애인 친구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한 4박5일 동안 종주하겠다는 마음으로 가고 있어요. 그래서 짐도 엄청 많아요. 저 친구는 앞을 못 봐서 힘들고, 저는 짐 때문에 힘들고 그러네요.”


이제 점심식사를 마친 그들은 세석으로 가겠다고 한다.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그들도 자신할 수 없다.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4시간이라면, 다시 세석산장까지 4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천왕봉도 오를 수 있는 하루의 여정이건만 아주 천천히 지리산 마루금을 밟아가고 있다.


그들은 음료수 하나씩 나눠 마시고 일어섰다. 둘 사이에는 노란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세석까지 결코 쉽지 않은 봉우리들을 몇 개나 넘어야 한다.


“조심히 가세요.”


난 일부러 큰 소리로 인사했다. 시각장애인 청년이 허공을 향해 대답했다.


“네, 잘 가세요.”


그들을 연결하고 있는 노란끈은 짧지만 그들이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그 노란끈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은 천왕봉까지 무사히 가고 말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올라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협동이며,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다. 산은 그런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다.


벽소령에서 뜻깊은 만남을 가진 후 다시 짐을 꾸리고 길을 나섰다. 연하천까지 가는 길은 형제봉을 넘고, 삼각봉을 지나 어렵지 않게 연하천에 도착했다. 다시 한번 이 구간을 함께 지났을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연하천은 작은 산장이다. 얼마전에 증축해서 시설이 좀 좋아졌다고 하지만 고작해야 60여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다. 하지만 물이 가깝게 있고, 풍부해서 많은 사람들이 산행 중 반드시 쉬어가는 곳 중의 하나다. 이날은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단체로 온 대학생들이 속속 넘어오고 있다. 모두들 여기서 한바탕 쉬고 가고 있다. 50여명 정도의 대인원이 함께 지리산을 타고 있다. 선발대와 후발대가 1시간 이상 차이가 날 정도다. 그래도 젊고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다. 함께 지리산을 탄다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알고 그것을 배려하는 과정에서 동기애와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힘든 여정에서 우정은 더욱 빛을 발하며 고귀하다. 하지만 이기적인 일부의 행동은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다음의 사건이 그러했다.


산장 관리인 아저씨가 연하천에서 묶는 O대학교 동아리팀에게 삼겹살 한근을 선물로 주었다. 약 20여명으로 이루어진 팀에게 고기 한근은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러자 일부 학생들이 후발대가 오기 전에 먼저 구워먹자고 주장했다. 어차피 한점씩 나눠 먹기 힘들다면 빨리 먹어치우고 안 먹은 것처럼 숨기자는 것이다. 너무나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제3자인 내가 뭐라고 말 할 게재는 아니다. 그렇다고 고기를 준 산장 관리인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부 의견은 그렇게 급속도로 모아졌다. 속으로 정말 철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선발대의 선배가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얼마 안 되지만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겹살로 먹으면 모두가 먹기 힘들겠지만 잘게 잘라서 김치와 함께 볶아서 모두가 골고루 나눠 먹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경쟁 중심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희극이다. 먼저 왔으니 먼저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 거기에는 약자나 함께 살아가는 동료에 대한 배려나 연민은 없다. 승자독식주의만 자리잡고 있다.


이날 본 두개의 풍경, 시각장애인의 지리산 종주와 연하천 삼겹살 논란은 이 사회의 희망과 절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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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 아래 글은 지난 2007년 3월 8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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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완주한 이우학교 학생들.

2006년 11월 12일은 이우학교 56명의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바로 2005년 3월부터 시작한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을 마친 날이기 때문이다. 2005년 3월부터 40여개 구간으로 나누어 매달 격주로 산을 찾아가는 노력 끝에 이루어낸 성과다.


이 결과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백두대간 종주는 어른들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단체 산행이라 탈이 없지도 않았다. 경북 문경 조령산 삼두봉을 지날 때는 폭설로 중학생과 여학생들이 조난을 당할 뻔도 했다. 자칫 큰 사고가 날 뻔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는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이었을까. 끈기와 인내심, 그리고 성취감을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백두대간 종주는, 아니 산행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자신을 누르고 산에 더 다가서려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한 싸움이다.


인쇄업을 하는 박용기(58) 씨는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이루어냈다. 박씨는 구제금융의 한파가 몰아치던 그 시절, 자살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를 삶의 절망에서 구한 것은 산이었다. 그는 당시 위기에 처해 술과 절망으로 나날을 보내던 자신을 반성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북한산과 청계산을 오르면서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다행히 공장을 팔고 리스한 인쇄기도 외딴 곳에 옮겨 새로 일을 시작하며 서서히 삶의 본 궤도를 되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삶이 정상 궤도로 올라서던 2002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백두대간을 타기 시작한 그는, 매번의 구간 산행을 할 때마다 화두를 잡고 출발해 소형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했다. 그리고 2년 2개월만인 2004년 8월1일 종주가 끝났다. 그리고 백두대간과 나눈 자신의 대화를 풀어 책으로 펴냈다. <백두대간에서 산이 되리라>(소나무)는 그의 고통과 좌절과 희망과 열정이 담겨 있는 기록이다.


이처럼 백두대간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끈기와 인내를 배우는 학습터이면서 절망한 어른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향한 불씨를 되살리는 현장의 연장선이었다. 이런 백두대간을 처음 타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근대 이후 오랫동안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있지 않았다. 아니 땅과 하늘은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은 백두대간을 알아보지 못했다. 숨쉬고 있는 공기처럼, 마시고 사는 물처럼 그 존재를 옆에 두고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1980년대 이우형 선생에 의해 백두대간의 존재가 점차 구체화되면서 가장 먼저 백두대간을 종주한 이는 남성도 아닌 여성산악인 남난희씨였다.


남난희 씨는 1984년 1월 1일 부산 금정산에서 출발, 3월 16일 진부령에 도착할 때까지 76일간 백두대간을 단독으로 종주해 내며 대한민국의 산악인을 놀라게 했다. 이후 대학산악반을 중심으로 백두대간 종주팀이 줄지어 꾸려졌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반인들도 가세하며 최근에는 기업 단위, 중고등학교까지 백두대간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 남난희 씨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첫발자국의 고독과 어려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30kg 이상 나가는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빗과 칫솔을 반토막만 준비하고 모든 구간의 식사를 빵으로만 했지요. 강원도로 접어든 첫날밤에는 혼자 있기 싫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텐트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갓 내린 눈이라 뭉쳐지지 않았어요. 그때 엄습해 오던 고독감이라니…. 그날은 울면서 꼬박 밤을 새웠지요. 육체와 정신적인 갈등 사이에 잠깐 미쳤었나 봐요.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마음놓고 쉬지도 못했지요. 나 자신 내가 아니었으니까요.” - 월간중앙 1999년 4월1일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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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난희 씨는 당시의 기록을 <하얀 능선에 서며>라는 책으로 냈다. 이후에도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계속 됐다. 1986년 네팔 히말라야 강가푸르나(7455m)를 여성 최초로 등반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91년 2월 25일 토왕성 빙폭등반을 11시간 50분만에 등반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제 그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낸 그의 저서인 <낮은 산이 낫다>(2004 학고재)는 그의 소박한 자기성찰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동안 산은 오로지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오르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편안한 산을 만났다고 한다.


“게다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들의 삶은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때 나무들을 보면서 항상 방황하고 항상 떠돌아다녔던 내게 정착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나무에도 체온이 있다는 것을 그 산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낮은 산이 낫다> 중에서)


백두대간을 종주한 시인도 있다. 이성부 시인이다. 그는 8년간에 걸쳐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백두대간에서 얻은 시심을 <지리산>(2001 창작과비평)과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창비)에 담았다.


그는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고 한다. 산에 오르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렵게 올라가는 과정이 좋고, 그것들이 되풀이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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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에 있는 시 ‘지팡이’가 그와 산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 지팡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 84

                                                 이성부



풀섶에 버려진 나무 지팡이 하나 쓸 만해서

집어들고 산을 내려간다

오랜만에 짚어보는 지팡이 모가지 잡은

내 왼손을 거쳐

땅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겠다

언젠가 다른 산에서도 느껴 알아차렸던

그 편안한 가슴 트임 같은 것

내 손가락 발가락 끝 모세혈관까지

힘이 실려 도는 소리 같은 것

죽은 나무마저 땅과 사람을 잇는구나

저녁 하늘이 불그레하게 옆으로 드러누워

나도 너의 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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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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