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백두대간 24구간 중 다섯번째 구간 초반부 : 신풍령-삼봉산-초점산-대덕산-덕산재 구간 종주
날짜 : 2010년 5월 15일
소사고개의 탑선 마트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봄가뭄이 오래되서 걱정이란다. 비가 오길 기다리는 산골 아낙의 마음을 헤아림은 어렵지 않다. 봄날의 산행은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메마른 땅에서 풀풀 일어나는 먼지들을 보면 말이다. 민초의 가슴 한켠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갈증이 목줄을 타들어가는 5월. 배낭 가볍게 꾸리고 다시 백두대간길에 올랐다. 이번 산행은 백두대간 24구간중 다섯번째 구간(신풍령-우두령) 중 신풍령과 덕산재 구간이다. (6월2일날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을 유린한 세력을 심판합시다)
새벽 2시 반. 거창 시외버스터미널. 오가는 이들은 없고, 한가로이 택시들이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우리는 우선 이른 아침을 든든히 먹자며 해장국집을 찾아나섰다. 해장국에 소주 한잔, 든든히 속을 채운 후 택시를 잡고 신풍령으로 이동했다.(택시비 32,000원) 그때까지는 미쳐 몰랐다, 우리가 12시간 뒤에나 다시 밥을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긴 처음 딛는 길에 새롭지 않고 낯설지 않은 게 있을까. 모두가 지나고 나니 꿈같은 시간이었다.
택시 기사님도 신풍령의 백두대간 시작길을 잘 모르고 있었나 보다. 자칫 지나칠 뻔했던 입구를 간신히 찾아냈다. 짙게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찾아낸 신풍령 입구에서 다시 신발끈을 고쳐 메고 비탈길에 올랐다. 시간은 새벽 3시 50분. 여명이 트려면 적어도 2시간 정도는 있어야 할 듯했다. 계산해 보니 부지런히 오르면 삼봉산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간산행의 오묘함이 온몸을 저며왔다. 렌턴을 켜고 오르는 산길이지만, 양 옆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숲의 윤곽이 별빛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였고, 더불어 그 사이 오솔길도 밤의 고즈넉함을 잔뜩 끌어안고 있어 부드러웠다. 잔솔가지 위로 밤새 내려앉은 이슬들을 사뿐사뿐 밟아가는 산길이 기분을 좋게 한다. 우리 발걸음에 놀란 산짐승들이 어두운 숲 저편에서 사사삭 움직였다. 그래도 걷기에 이만큼 좋은 길은 없다 생각했다.
삼봉산에 도착한 시각은 5시 20분. 막 붉고 노란 기운이 저편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름이 잔뜩 끼어있던 하늘이라 멋진 일출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산에서 일출을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누군가와 함께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출산의 경험처럼 신비롭다. 아직 꽃봉우리를 트지 못한 꽃나무 너머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자신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 봄이 가깝다.(6월 2일 투표를 통해 진짜 봄을 맞이해 봅시다)
출발이 좋다. 봄의 기운에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운까지 얻었다. 이날 가기로 한 거리는 자그마치 21km(처음 목표는 부항령이었다). 그야 말로 산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고갯길만 3개가 있고, 이름 있는 산이 3개다. 목표는 멀리 잡았지만, 무리 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이었다. 산행이 힘들어지면 중간의 덕산재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신풍령에서 삼봉산까지의 길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록 어두운 밤길을 걸었지만, 고요한 숲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길은 적당히 말라 있었고, 길섶의 풀들은 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딱 거기까지만 자리를 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해가 뜨고 주위가 밝아지면서 서서히 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치에는 자잘한 얼레지꽃들이, 길 옆에는 진달래꽃들이, 간간히 얕은 언덕이나 무덤가에는 할미꽃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진달래는 한창이라서 길바닥에도 꽃잎이 떨어져 있는가 하면 가지마다 환하게 피어나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첫번째 고비는 삼봉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내리막길. 내리막길은 바로 시작되지 않고, 몇개의 암릉구간을 지난 후부터 시작되어 소사고개까지 내리 이어진다. 삼봉산과 소사고개의 고도차 약 600m. 산을 하나 내려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숨이 차는 일이 없지만, 몸에서 받는 자잘한 충격들이 내리막길에 있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이 하산이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
백두대간은 산길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다. 중간중간 산에서 내려와 고갯길을 지나가기도 한다. 고랭지밭을 지나가는가 하면, 작은 과수원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초록의 향연 속에서 갑자기 만난 하얀 사과꽃들의 모습은 또다른 선경의 하나다. 소사고개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7시 30분. 여기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매점도 있다. 탑선슈퍼는 대간꾼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듯하다. 이른 아침이라지만 막걸리 한 사발이 어렵지 않다. 아주머니가 김치도 내 주신다. (막걸리 값이 2000원) (전 한나라당이 싫어요!!!)
중앙이 소사고개. 건너편이 삼봉산
이제 다시 막걸리와 안주로 간단히 속을 채웠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때 대충이라도 아침식사를 때웠어야 했다. 막걸리의 취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초점산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시작이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시작하던 산길이 이내 봉우리를 향해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막걸리 기운은 이내 사라지고 숨이 폐를 꽉 채우며 압박했다.
산은 멀리 있어 보이나 다가가면 생각보다 더 가깝다. 위의 마지막 사진에서 멀리 있는 봉우리가 일출을 보았던 삼봉산이다. 그 너머의 신풍령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9시가 안되어 초점산 정상까지 왔으니 대단히 멀리 온 것이다. 도심에서는 시선을 멀리 두는 것도 어렵고, 또한 그만큼 많이 걷는 일도 드물다. 거리로 따지면 10km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뿌듯하다.
소사고개에서 초점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오르고 나서도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마치 자신이 정상인양 고개를 내밀지만, 올라보면 진짜 봉우리는 그 뒤에 숨어서 웃고 있다. 막걸리 기운도 빠져나가고 호기도 몰려들어 오지만, 마땅히 물을 받아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봄가뭄처럼 목이 바싹 타들어가는 구간이었다. 미리 물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게 못내 안타까웠다.
백두대간 구간에서는 물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지도를 보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면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함에도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목을 축일 식수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정작 라면 정도를 끓여먹기도 부족한 정도의 물만 가지고 산행을 했다. 가져간 영양갱과 육포, 오이 등으로 지친 몸을 달랬다.
대덕산까지는 평범한 능선길이다. 잡목과 억새가 많이 있어서 그런지 멀리서도 꽤 부드러운 등산로가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대덕산의 정상 부근 길 옆에는 작은 소나무 하나가 낮게 등산객을 반겨주었다. 앞에 달렸던 삼봉산이 거친 암봉을 이루고 있는 반면, 대덕산은 부드러운 능선길이 마치 동네 뒷산을 오르는 듯 친숙하다.
높이 1290m의 대덕산은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남도 거창군, 경상북도 김천시 등에 걸쳐 있다. 명종 때의 예언가 남사고는 무풍(무주군 무풍면을 말하는 듯, 대덕산이 위치한 곳)을 무릉도원 십승지라고 하였는데, 예로부터 국난이나 천재지변이 생길 때마다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덕산 정상에서 한무리의 중년 남성분들을 만났다. 차림을 보면 대간종주 하시는 분들은 아니었다. 그저 가까운 산에 온 모임으로 보였는데, 마침 점심식사를 하시는 중이었나 보다. 푸짐하게 싸온 김밥을 한묶음 선물해 주셨다. 가뜩이나 허기져 있던 우리는 개눈 감추듯 해치웠다. 비록 김밥에는 묵은 김치와 단무지만이 들어있었지만, 그보다 맛있는 김밥을 어디서 먹어봤을까. 백두대간의 산세는 여기서 매우 부드럽게 머뭇거리다가 다시 힘차게 북으로 달린다.
대덕산에서 덕산재까지 다시 한참을 내려오는 내리막길이다. 백두대간 종주 책자에는 덕산재에 매점이 있다고 했으나 거기에서 만난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했고, 사람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물을 구하려고 집을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밖에 나와 있는 수도꼭지 비슷한 걸 발견할 수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산행 속도로 봐서는 최소한 2시간 반에서 3시간은 가야 오늘가기로 한 부항령까지 갈 수 있는데, 그러자니 다들 지치고 허기져서 더이상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이날의 산행은 덕산재에서 마무리했다. 산을 오르내림이 신체의 고생을 각오하는 거라지만, 몸을 상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생업이 있는 사람들인만큼 무리해서 산행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뜻깊은 산행이었다. 봄날의 대간길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다녀온지 불과 3일이 지난 지금, 나에게 남은 기억은 고통보다는 기쁨에 더 가깝다. 산에서 만난 바람, 공기, 물, 그리고 새소리와 야생화들, 사과꽃과 그 사과꽃 같은 웃음을 가진 사람들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다음 산행을 가라 등떠민다. (저는 이번에 모두 진보 후보에게 투표를 할 생각입니다. 사표는 없습니다. 길게 보고 먼 장래를 위해 진보후보에게 투표해 주세요^^)
참고
★ 신풍령에서 덕산재까지는 대략 16~17km 정도 되는 듯합니다.
★ 제가 서울에서 신풍령으로 내려간 방법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거창을 거쳐 함양으로 가는 심야우등버스(19,600원)를 이용해 거창까지 내려간 후
거창에서 택시를 타고 신풍령까지 가는 것입니다. 택시비는 협상을 통해 32,000원이 나왔습니다.
★ 갈수기라서 그런지 물이 귀했습니다. 대덕산 밑에 샘이 있는데 물이 거의 안나왔습니다.
★ 덕산재에 있는 매점은 영업을 안하고 있었으며 물을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 덕산재에서 아는 지인을 통해 무주로 내려갔지만, 사실 김천이든, 무주든 서울로 연계되는 곳까지 가려면
어디라도 택시비는 3만원 이상 줘야 할 듯합니다.
★ 무주터미널에서 대전 가는 시외버스는 자주 있는 편, 서울은 가끔 있습니다.
대전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게 빠른지 서울 직행이 빠른지 시간 계산을 잘 해야 합니다.
대전에서 서울 가는 버스는 수시로 있습니다.
★ 이번 산행에서는 92,000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여차저차 하다 보니 4월 3일(토)로 일정을 잡았다. 올 초에 다시 백두대간 길을 걷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가급적 한달에 한번씩 가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가정사며 회사일이 그렇게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내가 양보하고 맞추어야 할 일이 많다. 그만큼 나는 아주 작은 존재다. 하지만 나 하나쯤 빠진다고 일을 허투로 하거나 게을리 해서도 안된다. 그만큼 나는 중요한 존재라고 위안한다.
또, 백두대간 종주는 내 생의 목표이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남한내 백두대간 길을 천천히 밟아나갈 것이다. 생이 이어지고 남북이 연결된다면 백두산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서 걷는 길이다.
이번 구간은 큰 산이 품은 길도 아니고 멋드러진 풍경이 있는 곳도 아니다. 찾아오는 이들은 나처럼 대간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길은 천상 혼자서 가야 한다. 이번에야 말로 봄꽃들과 다정히 인사하며 휘파람 부르며 봄의 기운이 깃든 산속 길을 오롯하게 걷겠다. 구름을 벗하고 바람에 흔들리며 지나온 길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제법 긴 산행이 될 듯하다. 하루에 걸어야 할 길이 21km가 약간 넘는다. 도상에 제시된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예상 산행 시간은 약 11시간 10분이 걸릴 듯하다. 여기에 휴식 시간과 점심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새벽 동틀 때 쯤인 오전 5시 30분부터 산행을 시작해 해가 저물기 전인 오후 5시 전에 끝낼 생각이다.
꽤 긴 산행이며 여지껏 하루에 걸었던 거리들 중에서 가장 긴 거리다. 지난 산행에서도 버거웠던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무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기에 만약을 대비해 덕산재에서 탈출할 생각도 하고 있다.
산길의 특징은 여러개의 재(고개)를 넘는다는 것이다. 산행도 빼재에서 시작해 부항령(고갯길이다)에서 끝난다. 중간에 된새미기재, 호미골재, 소사고개, 덕산재가 있다. 소사고개와 덕산재는 아예 차들이 지나는 도로이다. 그만큼 오르내림의 부침이 심할 듯한데, 그중 삼봉산에서 소사고개로 쭉 떨어졌다가 다시 초점산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가 가장 힘들 듯싶다.
4월 3일의 무주-김천 지역 날씨는 구름 조금에 아침 최저 기온 영상 2도, 낮 최고 기온 영상 15도로 일교차가 심할 것으로 보인다. 등산 당일 비소식은 없지만, 수요일과 목요일 비 예보가 있어서 길이 진창이 되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백두대간을 타다 보면, 가장 복잡한 게 교통편이다. 비용의 대부분도 교통비가 차지한다. 이번에도 역시 교통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우선 서울에서 빼재까지 가는 교통편은, 일단 거창까지 시외버스(남부시외버스터미널 막차 23:00분, 19,400원)를 이용한다. 그리고 다시 거기서 택시를 이용(네이버에서 계산한 메타요금으로는 19,900원/27.23km이나 부르는 요금은 따로 있는 듯, 3만원)해 이동할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도 복잡하다. 부항령에서 김천의 콜택시를 부른다. 이 경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택시비로 35,000원을 불렀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지도 검색을 통해 나온 택시요금은 약 28,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역시 웃돈을 부른 듯하다. 거기서 김천역에서 기차를 이용해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김천역에 도달하는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지만 김천역에서 서울가는 막차는 23:35(15,400원)까지 있다. 참고로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고속버스는 18:00가 막차인 듯하다.
이래저래 왔다갔다 교통비로 10만원을 채우는 셈이다. 이때 인원이 2~4명이 된다면 택시비를 나눌 수 있어 부담은 줄어 들 수 있다. 하지만 경험상 이마저도 뒷풀이 비용을 생각하면 같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함께 하는 산행을 통해 인간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다. 반면 혼자서 오랜 사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므로 이것 역시 비용으로 책정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2008년 7월 9박 10일 지리산-덕유산 종주 이후 2년 만의 나홀로 산행이라서 좀 떨린다. 이번에는 더 크게 외쳐야겠다. 화이팅!!!
지난해 12월에 가려했던 덕유산 백두대간 코스 산행을 다시 가려고 합니다. 지난번 덕유산 산행에 관련된 이야기는 '백두대간9 -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를 참고해 주세요. 함께 가실 분은 eowls@eowls.net 이나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사진은 2008년 덕유산에서 찍었던 사진.
백두대간 4~5구간 : (덕유산)백암봉-덕산재 산행
1. 대상지 : 덕유산 향적봉 출발 백암봉 시작 덕암재 도착
2. 기간 : 2010년 2월 27일(토)부터 2월 28일(일)까지(1박 2일)
3. 참석자 : 강대진 외 3명까지 가능
4. 장비 계획
○ 입을 것 : 등산화, 등산복 상하의, 속옷 상하의 2벌씩, 내의 상하의 1벌씩, 방한 재킷, 양말 3켤레, 털모자, 안면마스크 또는 마스크, 폴라, 장갑. 수건, 임시 담요, 판쵸의,
노을 뒤에 남는 아쉬움들, 연민, 후회, 집착... 털어버리고 싶었던 감정들이 심장 가장 안쪽에서 비를 맞고 있다. 소나기처럼 그냥 지나가다오. 그저 한바탕 비를 맞고 푹 젖어버리면 더이상 비를 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했다. 이날 예정된 목적지는 향적봉 대피소. 거기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날 빼재로 내려가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날 갈 거리는 짧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다. 배낭에만 우의를 둘러주었다. 다시 신발끈 꾹 메고 길을 나섰다. 이날만큼은 동행이 있다. 함께 삿갓재 대피소에 묵었던 아저씨다. 아저씨는 향적봉까지 가고 거기서 하산하겠다고 했다. 짧은 동행길이지만, 헤어지게 되면 몹시 흔들린다.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타협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어차피 덕유산 향적봉을 찍으면 다 온 거니까. 그리고 괜히 하룻밤을 더 묵는 것보다 그냥 하산하자. 다음에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와 나머지 구간을 계속 가면 되겠지.’
‘아냐, 그래도 처음 계획한대로 가야겠어. 그냥 하루 푹 쉬면 내일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가 먼저 출발한 다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많이 지쳤던 것일까.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니 그 생각은 더욱 강했다. 가만히 있으니 드는 잡생각이다. 일단 걷자. 부지런히 아저씨 뒤를 쫓았다.
삿갓재 산장을 나오자마자 또 급한 오르막길이다. 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장대비로 바뀔지 알 수 없다. 무룡산에 오르기 전, 먼저 출발했던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우의를 꺼내 배낭을 감싸고 있었다. 무룡산에서 내려서면 순탄한 마루금길이다.
간간히 비가 쏟아졌다. 기상이 불안정한가 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천둥번개는 멀리서 친다. 9시 20분 동엽령에 도착했다. 넓은 동엽령 지대는 짙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 동엽령에서
△ 송계삼거리 이정표
△ 함께 동행한 아저씨
△ 왼쪽으로 가는 길이 신풍령 가는 길, 오른쪽은 삿갓재에서 내가 올로온 길.
동엽령에서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마침내 향적봉이 눈앞이다. 여기서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백두대간길이 아니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쪽으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 길이다. 그러나 덕유산 주능선을 타면서 향적봉을 오르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닐까. 대간길을 잠시 미루고 향적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다. 오전 중에 개인다는 일기예보는 역시 여기 덕유산에서는 통용될 수 없나 보다. 길가에는 간간히 원추리 꽃망울이 길쭉하게 나있다.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 보통 때면 활짝 개화를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텐데 날씨가 안 좋아 개화시간이 좀 늦다. 덕유산도 지금 이맘때면 원추리가 한창이다. 귀품 있는 모양새며 도도한 줄기가 꽤나 운치가 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 중봉에서
백암봉을 지나 제2덕유산이라는 중봉을 넘었다. 잘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는 데 바람이 거세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중봉을 넘어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에 오르기 전 향적봉 대피소에 들렸다. 이곳에서 일단 점심을 해결했다. 덕유산 산장 안의 매점에서는 지리산과 달리 사발면을 판매한다. 햇반과 사발면을 주문하면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나오고 사발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최소한의 먹을 거리는 충분히 사서 해결할 수 있다. 젖은 신발을 벗도 양말도 대충 씻어서 꾹 짰다. 다시 신으려니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침 함께 동행했던 아저씨가 새 양말을 꺼내주며 신으라고 하신다. 함께 비바람을 뚫고 왔던 우정의 표시였을까.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발은 젖었어도 양말이라도 갈아 신으니 한결 좋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향적봉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이곳에서 자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배낭도 산장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향적봉으로 올랐다. 백암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종종 주목을 만날 수 있었다. 주목은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덕유산에도 300~500년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특히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관상용으로도 제배되고 있지만 정말 멋진 주목을 보기 위해서는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덕유산의 설경이 멋진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주목의 설경도 꼽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말이 따라 붙는 주목의 고아하고 옛스러운 모습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다음에 겨울 덕유산을 오면 반드시 이 주목의 모습을 내 눈안에 담아 볼 것이다.
마침내 향적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려버렸다. 분명 까마득한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구름이 주는 신비함도 이쯤 되면 서운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마침내 덕유산 향적봉까지 왔는데,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향적봉에서 사진을 찍던 노인 한분과 만났는데, 그분도 오전 중에 날이 개일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올라오셨다고 한다. 이러다가 허탕만 치겠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향적봉은 바로 밑에까지 곤돌라로 편하게 올라올 수가 있어 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을 찾아 온다. 일출이나 일몰 등의 풍경사진이 인기다. 이맘 때쯤에는 원추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노인이 알려주었다.
△ 주목
삿갓재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아저씨는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시겠단다. 바람이 많이 불어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운행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아저씨와 작별하고 다시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왔다. 다시 갈등이 시작됐다.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신풍령쪽을 탈까. 아니면 좀 무리가 되어도 신풍령으로 지금 출발할까. 그냥 향적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 서울로 올라갈까. 무리를 해서 신풍령(13.1km)까지 간다고 해도 밤늦게나 떨어질 테니 서울 올라가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대피소에서 하루를 쉬려고 하니 시간이 아깝다. 결국 난 다시 배낭을 메고 향적봉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하산을 해 오늘 안으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남은 구간이 아쉽긴 하지만 향적봉에 왔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백두대간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향적봉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곤돌라 승강장이 나온다. 10m 앞도 안보이는 구름 때문에 승강장을 찾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승강장을 만나니 반갑다. 편도 7000원의 표를 끊고 입구에 서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곤돌라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의 곤돌라를 골라 올라타는데 승객은 나 하나다. 서서히 산을 내려가는 곤돌라 안에서 온 몸의 힘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굳어진 힘이었을 거다. 지상에 가까워올수록 구름은 걷히고 맑은 대지가 나타났다. 산 아랫동네는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 오른쪽이 내가 타고온 곤돌라. 왼쪽의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
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무주리조트 웰컴센터에서 서울 잠실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에 있으며 요금은 15000원이라고 한다. 가격도 싸고 바로 이곳에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남아서 웰컴센터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충 머리와 얼굴 팔 다리도 씻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보니 가관이다. 염소수염은 길게 자라 있고, 머리는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데다,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으니 산도적이 따로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중간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악천후 속에서도 이렇게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운이다.
멋진 날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혼자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입가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아침부터 안개가 심상치 않다. 강수확률은 30%. 비가 올까? 완전히 마른 신발을 신어봤던 게 언제였더라. 수염을 자른 게 언제였더라. 입고 있는 옷도 매일 똑같다. 다행히 매일 세탁을 해서 입지만 물세탁만 한 거라서 냄새도 좀 난다. 머리카락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자라고 있다. 손톱의 때는 양호하다지만 끼고 있는 장갑에서는 퀴퀴한 땀내가 진동을 한다. 행색만 보면 산사람 그대로다. 도시에 나간다면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을 거다. 이렇게 이틀은 더 가야 한다. 여행이 끝난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5시, 식당에서 차려준 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하는데 촛불집회 관련 뉴스가 나왔다. 주인할머니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 왜 저럴까라며 혀를 찼다. 단순히 안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드렸다.
“할머니, 옛날 어르신들도 사람이 먹는 소고기의 국물하나라도 소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미국소는 육식을 한단 말이에요. 게다가 안 먹는다고 안 먹을 수가 없는 게 소잖아요. 어떻게든 우리 식탁에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설명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 정서탓일까. 세상과 떨어져 여행하겠다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다. 몇 가지 간편요리를 사려고 보았는데, 대부분 유통기한을 훨씬 넘었다. 씁쓸했다. 결국 라면만 2개 사 넣었다.
육십령고개로 다시 올라선 시간은 6시. 고갯마루는 안개로 10m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량 소통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널찍한 도로를 건너니 기분이 묘하다. 여기는 선계와 세속의 경계선일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는 급경사가 보인다. 다시 백두대간이 시작됐다.
▲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본 육십령 식당. 저 트럭 뒤에 육십령 식당이 있다.
▲ 육십령 고갯마루. 전라북도 표지판 뒤에서 백두대간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할미봉까지는 단단한 암봉이다. 암봉이 단단하지 않은 게 어디있겠냐만,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밧줄이 매달려 있는데 만일 밧줄이 없다면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난코스다. 스틱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만일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타는 사람이라면 스틱은 배낭에 접어두는 게 좋다. 그리고 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동안 자칫 딴생각을 하거나 허투루 발을 딛는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암봉을 간신히 지나고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기어이 한바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행히 스틱을 잘 잡아서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지만 스틱의 끄트머리 부분이 살짝 휘어졌다. 그러나 이는 다음에 올 더 큰 문제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아찔한 암봉을 오르고 내린 다음에서야 내 배낭에 물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 한통은 암봉에서 떨어져버렸나 싶었는데 예비 물통마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물을 다시 채우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누다가 물통을 깜빡 잊은 것이다. 아마도 식당 테이블에는 꽉 채워진 물통 두개가 머쓱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육십령에서 2시간 가까이 걸어온 길이다. 게다가 할미봉이라는 두 번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암봉을 넘어왔다. 그리고 앞으로 3시간 가까이 가야 샘이 있다. 둘 중의 하나다. 다시 1시간 반을 걸쳐 할미봉을 넘어 육십령에 가서 물통을 찾아오던가, 3시간을 더 참고 장수덕유산까지 가던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다시 할미봉을 넘고 싶지도 않고, 물통 때문에 왕복 3시간의 체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결국 장수덕유산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갈증은 정말 지독했다. 그럴 때면 나무들에 맺힌 물방울들로 갈증을 채웠다. 나뭇잎 중에는 그래도 침엽수 종류이면서 잎이 넓은 게 좋았다. 활엽수 쪽은 굉장히 까칠하고 맛이 이상한데, 참나무류의 나뭇잎들은 물방울도 잘 머금고 있고 나뭇잎도 부드러워 핥기 좋았다. 소나무 잎들도 제법 물방울이 알알이 맺혀 있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지기 때문에 마시기 힘들다. 그렇다해도 가뭄에 물 한 바가지에 불과했다.
갈증이 너무 심해 바위틈에 고인 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물은 마실 물이 못된다. 뜨거운 한여름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었을 것이다.
공기는 더 축축해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한바탕 쏟아 부을 기세다. 차라리 한바탕 쏟아진다면 컵이라도 대놓고 있다가 마실 참인데, 오진 않았다. 할미봉을 넘어 교육원삼거리까지 1시간 20여분의 길은 평탄한 편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장수덕유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면서 장수덕유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이정표가 샘터(참샘)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바로 내리막길을 타고 갔다. 150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내리막길이지만 바위들에는 이끼가 많이 껴있고 너덜지대를 지나는 곳에는 길이 뚜렷하지 않아 한동안 해매기도 했다. 마침내 작은 참샘을 찾았고 거기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가 반갑다.
하지만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라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물을 떠서 자세히 보니 1mm도 안되는 유충도 보였다. 급하지 않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은 물은 아니다. 샘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수질표시도 없다. 그런 물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건 내 위장의 위대함이다. 이곳에서 육십령 매점에서 구한 찹쌀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물통이 없어서 김을 넣었던 반찬통에 물을 담았다. 김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약간의 소금도 남아있던데다 기름기도 있지만 물 없이 가는 것보다 얼마나 훌륭한가.
▲ 장수덕유산에서 찍은 사진. 10m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다.
물을 마시니 다시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오는 길은 가뿐하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속 가니 넓은 안부가 나온다. 장수덕유산 쪽의 조망이 남덕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구름 때문에 10m 앞도 가물가물하다. 바람도 솔찬히 불기 시작했다. 장수덕유산을 막 벗어나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잠깐 머물다가 가는 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이어 천둥번개까지 동반했다. 머리 위에서 울어대는 천둥소리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이날은 정말 산전수전 다 겪는 날이다. 물이 없어 고생하더니 물(비)이 넘쳐 또 고생이다. 남덕유산 정상부분은 암봉에 훤하게 열려 있어서 번개에 노출될 수 있었다. 결국 남덕유산은 옆으로 질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덕유산을 옆으로 비껴가면 이후부터는 또 한참을 내려간다. 큰 산이라서 그런지 오르고 내리는 부침이 심하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계단에 쭈그려 앉아 젖은 담배를 물고 있으려니 내가 생각해도 몰골이 가관이 아니다. 온몸은 흠뻑 젖어버렸고 고지대이다 보니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저체온으로 지치겠다 싶어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쉬는 시간도 편하게 못 쉬는 상황이다. 비가 오니 개구리와 두꺼비가 길바닥에서 놀고 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자 두꺼비 한 마리가 언덕으로 오르려고 바둥대는 모습이 재밌다. 빗속에서 지쳐 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월성재에서 다시 삿갓봉으로 치고 올라갔다. 역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땅바닥만 보면서 오기로 걸었다. 금방 나올 것 같은 삿갓봉은 굽이굽이 고갯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오고 천둥과 번개는 머리 위에서 위협사격을 가했다. 삿갓봉을 오르는 일도 위함하기 짝이 없다. 우회길이 있을까 싶어 지도를 보니 아주 작게 빗금이 나있다. 있다면 다행인데, 없다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삿갓봉에 오르기 직전에 옆으로 난 샛길이 나타났다. 비교적 뚜렷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삿갓재 대피소에 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계속되는 내리막길. 언제나 그렇지만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만큼 어렵다. 숨쉬기는 편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느껴지는 중압감은 오르막보다 최소한 1.5배만큼 느껴졌다.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대피소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서 삿갓재 산장의 매점문을 두드렸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 한분이 먼저 와 있었다. 산장에는 직원 외에 그 아저씨와 나 단 둘이 있었다.
▲ 삿갓재에서 바라본 조망. 나무들 때문에 그다지 좋지는 않다.
▲ 삿갓재 대피소 앞에서.
▲ 구름으로 살짝 가려진 곳 너머로 삿갓봉이 있다.
▲ 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고, 그 위로 하늘 한 구석은 비교적 맑았다.
▲ 삿갓재산장에서 본 또다른 풍경.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도착한 나는 먼저 젖은 등산화를 따뜻한 스팀 옆에 기대어 놓았다. 젖은 옷을 말리는 것보다 등산화를 말리는 게 먼저였다. 내일까지 마를까? 그럼 다행이지만 젖은 모양새로 봐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널어야 할 것들과 말려야 할 것들을 산장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결 낫다. 찹쌀떡으로 때운 점심 때문인지 그때부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삿갓재 산장은 제한급수를 하고 있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160m를 내려갔다 오라는데, 그게 힘들어서 그냥 급수시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덕유산은 처음이지. 예전 어느 겨울에 차를 타고 가는데 멀리 보이는 덕유산의 설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겨울에 오르기 전에 한번 여름에 혼자 와 본거야.”
덕유산은 겨울이 멋진 산으로 유명하다. 무주리조트 쪽의 스키장 때문만은 아니다. 바위로 된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주는 운치와 오래된 주목에 쌓인 설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들었다. 시간이 남는 우리의 얘기는 이런저런 얘기로 나아갔다. 내가 지리산에서부터 왔다는 얘기가 아저씨의 호감을 자극했는지, 아저씨의 인생얘기가 술술 나왔다.
“한때 사업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쫄딱 망했어. 빚더미에 앉아 있었는데도 몇 년간 살 수 있었던 건 내가 여기저기서 야생난을 많이 구해다 놨기 때문이야. 집에 있던 야생난을 팔아서 몇 년을 먹고 살았으니까, 꽤 많이 모았었지. 비싼 건 천오백만원까지 받았어.”
“거의 산삼 한뿌리 값이네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구하셨어요.”
“10억짜리 난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뭐. 오래전부터 야생난 구하러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외딴 섬도 가보고 첩첩산중에도 들어가 보고. 온갖 곳을 가지만 사유지나 국립공원, 도립공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는 안가. 지금도 기아사람들과 야생난 모임을 하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일제 GPS가 달린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다니면서 난을 찾고 있지. 좋은 난이 발견된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고 몇 년 뒤에 다시 와보려는 거야. 이게 돈이 되거든. 옛날부터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심마니처럼 다니다 보니 지금도 이 나이에 산을 제법 타는 편이지.”
아저씨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노인의 그늘은 없었다. 영각사에서 출발해 1시 넘어서 삿갓재에 도착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빨리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한 사업도 실패했지. 그리고 노숙생활도 3년이나 했다우. 노숙이란 게 힘들긴 하지만 그게 몸에 배면 또 빠져나오기가 어렵지. 그러다가 동생이 소개시켜준 기아자동차의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 이번에 휴가를 내서 혼자 찾아온 거야.”
백수로 살고 있는 나도 언제부턴가 지금의 생활에 조금씩 안주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일상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은 삶의 철학을 흔들어 놓는다. 내 백수생활도 어디에선가 그칠 것이다. 그 그침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두려울 뿐이다.
5시 즈음 비가 그쳤다. 내리는 기세로 봐서는 하루 종일 올 것 같더니 의외로 싱겁게 그치고 말았다. 저녁식사로 라면에 햇반을 말아먹는 게 식사의 다였다. 허기가 반찬이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비가 그치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가니 제법 조망이 나타났다. 비 때문에 공기는 맑고 청아했다. 7시 반이 되자 노을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데, 정말 멋진 노을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에 빠져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빛과 구름의 향연에 빠져 들었다. 몸속에 누적되어 있던 고단함이 노을 속에서 녹아들어갔다. 이렇게 아름다울려고 그렇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던 것일까. 삿갓재의 노을 속으로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도 상쾌하다. 태생적으로 낯선 곳에서도 잠을 잘 잔다. 산속에서 자고 나면 기분은 늘 좋다. 며칠전까지 내 어깨에는 항상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이제는 파스가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어깨가 단단해졌다. 무거운 배낭과 몸무게를 지탱했던 무릎과 발목은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다. 넘어지고 까지는 일이 없었다. 몸은 이미 자연과 공명하고 있었던 것일까.
6시에 민박집을 나왔다. 짙은 안개가 중재 마을을 살포시 보듬어 안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이번에도 차량으로 고갯마루 근처까지 배웅해 주셨다. 중재에서 이날의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중고개재까지는 가뿐한 산책로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짙은 구름 때문에 저녁날씨가 어찌될지 걱정될 뿐이다. 환국이가 보내온 기상정보에 따르면 오후에는 비올 확률이 높다.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이유다. 이날은 덕유산 초입인 육십령까지 달려야 한다. 어제처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 중고개재에서
중고개재부터는 백운산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내 발걸음에 놀란 나비가 팔랑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내 한걸음이 길섶의 작은 세상을 뒤흔드나 보다. 조그마한 날벌레들이 발 아래에서 요란하게 춤을 춘다. 내 귓가에서 웽웽거리며 날아다닐 때면 너무나 귀찮다. 손으로 휘휘 저어보지만 금방 다시 날아든다. 비가 오면 모두들 풀잎 밑으로 숨어들지만, 날씨가 좋으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힌다.
백운산을 치고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숨이 가슴을 조여올 때면, 갈비뼈를 열어서라도 숨을 더욱 크게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뜨겁게 데워진 발바닥도 떼어서 냉동실에 잠깐 넣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숨을 가다듬고, 발바닥을 나무에 퉁퉁 쳐주면서 위로해 준다. 어차피 올라야 할 산이라면, 기꺼이 즐기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서 노래라도 불러본다. 새소리의 엇장단이 나쁘지 않다. 땀이 흐르는 뺨과 목덜미로 바람의 애무가 간지럽다. 기분이 좋다. 힘들었던 숨쉬기의 고통은 금방 가시고 입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간다.
8시 10분. 마침내 백운산에 올랐다. 정상은 작은 공터를 이루고 있어 사방으로 거칠 것이 없다. 동서남북이 훤하게 트여있는 봉우리다. 멀리 지리산도 가물가물 펼쳐져 있다. 그 까마득한 하늘너머에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백운산 정상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이 모두 보인다.
▲ 백운산에서부터 간간히 나타나는 산죽길.
▲ 영취산 정상의 갈림길.
▲ 영취산 정상의 표지석.
백운산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 모두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대간 길은 영취산까지 완만한 능선길이다. 그러나 여느 능선길과는 다른 멋이 있다. 바로 산죽길이다. 책에는 영취산 이후부터 나온다고 나왔는데, 백운산을 넘어가자 내 키보다 더 자란 산죽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다. 또 책에서는 산죽이 너무 빽빽해 헤치고 나아가기 힘들다고 되어 있는데, 다행히 등산길 확보를 위해 좌우의 산죽 일부는 제거해 놓은 상태였다. 산죽이 주는 시원함과 고즈넉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백두대간에서 소나무숲길과 함께 여기 산죽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다. 산죽밭은 영취산 넘어서도 간간히 나왔다.
10시 영취산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300여m를 내려가 무령고개에 가야 샘이 있다. 내려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가지고 있는 물은 많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덕운봉을 지나 능선 가까이에 샘이 있다고 나왔다. 지도를 믿고 더 나아갔다. 하지만 덕운봉을 한참을 지나 민령 가까이 가서도 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통의 물도 거의 떨어져갔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물이라도 좀 얻어보겠지만 어제처럼 산속에서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977고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샘을 찾으려다가 자꾸 미루던 점심이라 매우 허기져 있었다. 또 물 없는 점심이라니... 그렇게 신발도 벗고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내가 왔던 숲에서 부스럭거리며 사람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린다. 한분이 힘들여 올라오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분도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물을 얻어볼까 했더니 나처럼 중재에서 출발해 그분도 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갈증을 참는 일도 쉽지 않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분이 먼저 출발하고 나도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할 때였다. 또 한 사람이 봉우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분은 영취산에서 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이 풍부했다. 그분 덕분에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고 사람들 신세도 많이 진다.
영취산에서부터 산죽길은 이전보다 더 장관이다. 백운산과 깃대봉 사이에 있는 곳곳의 산죽길은 대나무 내음을 물신 풍기면서 풋풋한 바람을 살랑살랑 내보내준다. 산죽 뒤로 크게 자란 나무들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이루어 주어, 사자처럼 사나운 햇살도 여기서는 털복숭이 강아지처럼 부드러워진다. 한참 쉬고 있으려니 참새보다 작은 새들이 산죽 사이로 오가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귀엽다.
민령서부터는 급한 오르막이 다시 열린다.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깃대봉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에서는 덕유산의 산줄기가 더욱 명확하게 들어온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여정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가깝게는 할미봉이 불쑥 솟아 있고, 그 뒤로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가깝다. 다음날이면 할미봉을 넘어 본격적인 덕유산 자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 쉬고 있으면 초록의 나무그늘이 나를 달래준다.
▲ 깃대봉에서 바라본 덕유산 자락. 멀리 서봉(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보인다.
▲ 영취산에서 출발한 등산객이 깃대봉에서 찍어준 사진.
▲ 육십령 마루로 내려서서
▲ 육십령 식당. 백두대간 종주 등산인들이 많이 찾아 왔나 보다.
깃대봉을 넘어 조금만 내려가자 샘터가 나온다. 물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팻말도 어여쁘게 만들어 놓았다. 물이 맑고 맛있다. 갈증이 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바위틈에서 힘차게 솟아나오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때문이다.
샘터를 지나 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계곡으로 내려가는가 싶지만 곧 능선길을 만난다. 다 왔다 싶은데, 한참을 가야 육십령이다. 지루하고 고단한 길이다.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동쪽(서상쪽)으로 50m만 가면 식당 겸 매점과 민박을 겸하고 있는 육십령식당이 있다. 현금이 얼마 없어 카드로 계산해야하는데 혹시 안된다고 하면 천상 서상읍이나 장게면으로 내려가야 할 판이다. 다행히 주인 할머니는 가능하단다. 이날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육십령 마루에는 가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늘 그래왔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햇반을 준비하면서 점심때 먹을 것까지 데웠다. 햇반은 그냥 먹으면 까칠하지만, 한번 데웠다 먹으면 어떨까. 새로운 시도다. 잘 되면 도시락을 먹는 기분일 것이다.
햇반 하나에 김치로 아침을 떼웠다. 물론 이렇게 출발하면 9시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때부터는 쵸코바나 사탕으로 견디다가 11시 즈음에 점심식사를 한다. 물이 있는 곳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맨밥을 먹으며 물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지리산과 달리 백두대간에는 종종 물 구하기 어려운 구간이 있다.
▲ 매요마을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6시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민박집을 나왔다. 매요휴게소를 나와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743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계속 북진하면 유정육교가 나오는데 이 육교를 통해 88고속도로를 건넜다. 임도를 따라 사치재를 향했다. 출발은 언제나 가볍다. 문제는 산등성이 초입이다. 사치재에서 산길을 잡는데 잡목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지, 길잡이 리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또 길을 엉뚱한 데로 잡았다. 다시 사치재 팻말 앞으로 내려왔다. 30분의 시간과 체력을 날렸다. 길이 함몰되어 전혀 없는 곳에 길잡이 리본이 보였다. 설마 저 곳에 길이 있을까 싶어 올라갔는데, 거의 잡목과 풀들로 우거진 곳에 아주 작은 길이 나 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가보자 싶어 올라가니 다행히 이 길이 맞았다.
사치재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산등성이는 1994년과 1995년에 두차례에 걸쳐 산불이 났던 곳이다. 그래서 큰 나무들은 이미 고사하고 지금은 식물들의 춘추전국 시대다. 작은 잡목과 풀들이 길을 덮어버린 것이다. 종종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까맣게 그을린 나무둥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현장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맺힌 풀들이 서서히 내 신발을 적셔왔고, 키만큼 자란 잡목과 가시나무, 풀들이 내 팔을 할퀴었다. 재작년 초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길도 잘 보이고 잡목과 풀들도 거의 없더니 두해 지나 숲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여름이니 그럴만도 하다.
평일이다 보니 산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만큼 새벽부터 지어진 수많은 거미집을 부시고 다닌다. 한걸음을 디디면서도 벌레라도 있으면 피해왔건만, 수많은 거미집들을 거침없이 부시고 그 무수한 잡풀 속을 탈출해야했다. 아, 얼마나 많은 집들을 부시며 걸어왔던가. 얼굴과 팔에 엉기는 거미집 때문에 기분이 묘하다. 마치 숲이라는 큰 거미집에 내가 걸려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간신히 산불난 지역을 벗어나니 온전한 산길이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본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신발은 난리가 아니다. 많이 젖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긴바지를 입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반팔 옷은 치명적이다. 팔에는 온갖 가시와 풀에 베인 상처들 투성이다. 백두대간에는 이런 구간이 꽤 많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잡목과 가시덤불을 지나야 할까.
▲ 아막성터
10시도 되지 않아서 신발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신발 안까지 젖어버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치재에 있는 철쭉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재작년에 한번 백두대간 중 1박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11시 쯤 철쭉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무그늘에 마련한 평상에 앉아서 가방을 풀고 신발도 벗었다. 양말과 깔창을 벗어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샌들을 신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잠시후 주류 배달 차량이 들어왔다. 그에게 물어보니 아주 멀리 있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답해준다. 차에 실려온 맥주가 한짝씩 내려지는 걸 보니 입이 왜 이렇게 마를까. 그렇다고 주인 없이 맥주를 꺼내먹는 건 아니다. 할 수없이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니 일찍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기에 평소처럼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산에서 오는겨”
“네, 주인장이 없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올 거니께, 저기 물 떠다 마시고 기다려봐요.”
“저, 할머니, 주인하고 친하세요?”
“바로 요 옆집에 살어요. 왜?”
“그럼 제가 할머니께 일단 삼천원 드릴테니, 여기 맥주 좀 가져다 마실게요. 할머니가 주인 오면 주세요.”
“그래요? 그러지 뭐.”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그때를 돌아봐도 참 신기하다. 맥주 한병을 다 비우고 아침에 데운 햇반을 꺼냈다.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찰기가 잘 흐르고 밥도 잘 익었다. 그냥 식은 도시락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맥주 한병과 밥을 먹으니 기운이 살아난다. 그러고 나니 주인이 왔다. 맥주를 마신 자초지정을 얘기했다.
“아이구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이거 밍밍한 맥주를 마셨겠네요. 하나 더 드릴까요?”
“아니오. 또 산을 타야하는데, 그만 마실게요. 하하”
철쭉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다시 일을 나가신다.
“이제 요 앞에 포도밭에서 일하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백두대간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다 보니 산을 타는 손님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나와 다시 산등성이를 올랐다. 잠깐 신발과 발을 말렸는데, 한결 낫다. 힘껏 산을 다시 올랐다. 식당이 철쭉식당인 것은 치재 근처가 유명한 철쭉군락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철쭉들이 길을 덮고 있다. 그나마 가시나무나 날카로운 풀들이 아니라서 좋지만, 역시 길을 헤쳐 나가는 동안 철쭉가지가 자꾸 배낭을 잡아끈다.
▲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간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길.
▲ 봉화산에서 바라본 조망.
오후 2시 봉화산에 올랐다. 답답했던 조망이 확 트였다. 돌아보면 9박 10일 일정 중 가장 멀리까지 시원한 조망을 보였던 날이다.그만큼 비와 구름이 일정 내내 나를 뒤덮었다. 지리산을 벗어나면서부터 신발이 마를 날이 없었고, 준비한 양말 다섯 켤레 중 하나라도 완전히 마른 날이 없어, 그냥 신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본 조망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중재까지는 가야 하는데, 벌써 오후 2시를 넘었다. 최소한 4시간은 가야하는데, 6시라면 간당간당하다. 자칫 금방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 7시까지 밝기는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봉화산 이후로는 길이 좋다. 마루금은 억새만 좀 자라 있을 뿐이다. 구름이 아니었다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중재까지 4시간 동안 물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좋으면 또 저것이 안 좋다. 모든 걸 만족하는 여행은 드물다. 여행은 그런 부족함 때문에 채워지는 것이다.
▲ 이 정도 길은 양호한 편.
▲ 중재민텔 풍경.
중재에 도착한 건 6시가 다되어서다. 중재 고개에 보니 ‘중재민텔’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원래는 중재 샘터 근처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또 젖었으니 그곳에 가기로 했다. 게다가 고개까지 차량으로 와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 이날은 대략 10시간 이상을 달린 셈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곳 중재 민텔도 중재에 있는 유일한 민박시설로 자리잡았다. 많은 대간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쉬고 갔다. 집 바깥벽에는 대간 산꾼들이 매달아놓은 길잡이표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거리도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오면서 조우한 산행객은 딱 한팀에 불과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산에서 혼자 걸어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행이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위로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전날밤 늦게 잠들었다. 방안에는 빨래와 젖은 물건들을 늘어놓아 한쪽 구석에서 초라하게 잠들었다. 밤새 방바닥은 뜨겁게 달궈졌다. 주인께 방에 불을 넣어달라고 말했기 때문인데, 더워도 젖은 물건들을 말리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늦잠을 잤다. 오랜만의 게으름이다. 기상 예보는 오전 중에 날이 갤 것이라고 알려왔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켜보았다. 그러나 응답이 없다. 젖어서 내부기판에 무리가 갔을 수도 있다. 배터리를 분리하고 당분간 휴대전화는 켜지 않기로 했다.
9시에 밖으로 나왔을 때는 가랑비가 좀 내리고 있었다. 이 정도 비는 그냥 맞고 가자고 생각했다. 짐을 정리하는데, 다행히 옷가지와 물건들이 대부분 잘 말랐다. 신발 역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신을만했다. 10시에 나와 보니 날이 갰다. 비가 그친 것이다. 준비했던 우의를 가방에 넣고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백두대간은 우리가 묵었던 마을처럼 낮은 자세로 마을들을 지날 때가 있다. 여기서는 지방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한다. 이런 길도 백두대간일까 싶지만, 해발 500m 이상에 위치해 있는 대간의 한 줄기다. 본격적인 산행길로 들어서는 가재마을까지는 한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제 몰아친 비바람 때문인지, 멀리까지 시야가 맑게 트였다. 고기삼거리에서는 우리처럼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산행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했다. 이날은 일요일이라 많은 이들이 산악회나 산모임 등으로 백두대간 산행에 나섰다.
우리는 예전 추억을 되새기면서 가재마을 가게 앞에서 막걸리를 주문해 한잔 했다. 동행과 함께 하는 막걸리 한잔은 멋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지리산 자락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수를 끌어다 마시는 편인데, 가재마을의 노치샘은 고기삼거리 민박집에서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심지어 노치샘에 비하면 자신들이 마시는 지하수는 썩은 물이라는 비교도 서슴지 않을 정도다.
노치샘을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가기 시작하니 여기저기 대간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이미 대단위의 등산팀들이 이곳을 지나친 흔적도 보였다. 가재마을에서 수정봉으로 가는 길은 예전에도 한번 지났던 길이다. 2006년에 수정봉을 찾았을 때는 팻말도 없이 ‘수정봉’이라고 쓰인 종이만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는데, 지금은 잘 다듬어진 나무팻말이 박혀 있다. 그만큼 백두대간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많아진 것이다. 사실 이런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겠다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노치샘이 있는 가재마을에 사람들이 북적이게 된 것도 순전히 백두대간 덕분이다.
아침 안개가 옅게 드리워졌지만, 등산에는 지장이 없다. 소나무 군락지를 이루고 있는 이 길은 산 타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히 즐기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유니콘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다.”
기석이 던진 말처럼 여원재까지 가는 등산길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원재에서 점심을 먹고 기석은 서울로 향했다. 나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미안하다는 친구다. 난 고맙다며 힘있게 그의 손을 잡았다. 진심으로 함께 한 1박2일 산행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서울로 도망가고 싶었던 나의 등을 산으로 밀어준 큰 격려였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여원재를 떠나 고남산을 향해 가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난관이 시작됐다. 잡풀이 어제처럼 발목을 잡았다. 여원재까지 오면서 거의 마르기 시작한 등산화는 다시 젖기 시작했다. 독도도 어렵고, 길잡이를 해준 리본들도 어지럽게 헷갈린다. 결국은 길을 잃고 말았다. 친구와 헤어지고 길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간길이라 생각하고 올라가는데, 어느덧 벌목된 나무들로 인해 길잡이 리본들은 도통 볼 수가 없다. 대략 지도정보와 눈에 보이는 봉우리와 길들을 짐작해 찾아 올라가는데 뜬금없이 큰 무덤 하나가 딱 길을 가로막고 있다. 거기에서 길이 끊겼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내 위치를 짐작해 보니 장치로 올라가는 길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이름모를 무덤의 주인장에게 길을 물어본다고 가르쳐줄 리도 없고, 그저 주저앉아서 나침반과 지도만을 보고 내가 가야할 길을 가늠해 보았다. 무덤 뒤편 능선을 향해 치고 올라가면 대간길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토끼들이나 지났을까, 길은 보이지 않고 온갖 잡목들이 온몸을 붙잡았다. 간신히 능선길로 올라갔지만, 대간길이 아니다. 다시 양옆의 능선이 보였다. 이러다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다시 지도를 살폈다. 마을을 두고 왼쪽으로 빙둘러가는 대간길을 유심히 보았다. 분명 고남산은 오른편에 있지만, 마을길과 비교해보면 왼편에 대간의 마루금이 걸려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왼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마침내 대간길과 만날 수 있었다. 지도를 보니 장치와 합민성을 그냥 지나친 듯싶다. 한시간 가까이 헤맨 결과치고는 나쁘지 않다. 최악의 경우 여원재로 다시 돌아가 길을 되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다행히 지도를 잘 살피고, 지형지물에 대해 제대로 판단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우여곡절 끝에 홀로 고남산에 올랐다. 고남산까지 오르는 길은 오랜만의 가파른 등반길이긴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다. 게다가 능선길이라서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소나무숲이 잘 만들어져 있어 숲길을 걷는 즐거움도 크다. 하지만 고남산을 넘자 다시 길이 헷갈린다. 길잡이 리본도 여기저기 어지럽다. 다시 지도를 수시로 꺼내놓고 길을 찾아야 한다. 임도와 산길을 수시로 오가면서 길은 진행된다. 다시 구름이 짙게 드리워지고 이슬비가 살살 내리기 시작했다.
길을 찾느라 고생한 때문인지 매요마을에는 예정보다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마을 적당한 공터에 텐트를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백두대간 때문에 유명해진 매요휴게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매요휴게소는 사람들 싸움에 어수선했다.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싸움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바깥으로 짐을 들고 나왔다. 길을 가는 할머니에게 마을회관 앞 공터에 텐트를 쳐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니, 괜찮지만 이왕이면 민박집에서 쉬지 그러냐고 물으신다. 매요마을에 민박집이 있을 거라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좀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마을 위쪽에 노부부가 민박집을 하나 내서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서는 텐트보다는 당연히 민박집이 좋다. 물론 비용이 들기 마련이지만, 잘 쉬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민박집은 어렵지 않게 찾았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알아서 달라고 하셨다. 민박집에서 신문지를 얻어 등산화 안에 채우고 조금 남은 저녁볕에 말렸다. 그리고 여전히 먹통인 휴대전화 때문에 민박집 전화를 빌려 집에 전화했다. 마지막으로 김치를 좀 얻어 저녁찬과 아침찬으로 해결했다.
내가 묵게 된 민박집은 2층인데, 아래층은 주인 내외분이 사시고, 2층을 손님들에게 빌려주었다. 방에는 살림이나 세간이 그대로 있었다. 책상에는 읽던 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다. TV는 없었지만 라디오와 오디오기도 있었다. 민박집 치고는 좀 황당하다 싶었지만, 그런대로 인간미가 넘쳤다. 2층 베란다는 꽤 넓고 민박집이 산자락에 붙어있어 매요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친구 기석은 새벽 2시가 좀 넘은 시간에 찾아왔다. 이번 종주 구간 중 1박 2일 동안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동행없이 가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구간이라 심심하지 않지만, 이제부터가 외로운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지리산 종주 코스를 벗어나면 이런 장마철에 산을 찾아올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내면과의 동행이라 여기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막상 그것은 험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혼자 가면 또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또 즐거운 일이다. 그런 기대감이 여행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산중 여행이라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동행은 절실하다. 친구는 약해지고 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보다는 ‘우리’가 더 강하다.
우리는 잠깐 선잠을 잤다. 2시간 정도의 옅은 잠이었다. 이날 기상예보는 중부지방에 돌풍을 동반한 40~100mm의 비가 내린다고 알려왔다. 4시 반에 일어난 우리는 터미널로 나갔다. 터미널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식사를 하고 김밥을 2줄 준비했다. 6시 성삼재로 오르는 버스에 올랐다.
성삼재로 올라가는 길부터 심상치 않은 구름들이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게 보였다. 가는 비가 뿌려지는 가운데 우리는 우의를 꺼내 입었다. 버스가 올라온 861번 지방도의 진행방향으로 좀더 나아가면 고리봉-만복대 방향 길이 좁게 나있다. 다시 능선에 올라서 고리봉으로 오르는 길, 기석은 인터넷을 통해 이 구간은 헌옷을 입어야 한다는 글을 봤다고 말했다. 길이 험한가 보다 싶었지만, 실제로 길을 걷다보니 왜 헌옷을 입으라고 했는지 실감이 났다. 숱한 잡목들이 살을 스쳤고, 가방을 잡아끌었으며, 발을 걸어왔다. 우의를 걸쳐 입어도, 신발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은 어쩔 수 없었다. 반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빗물은 무릎과 정강이를 타고 발목 안부터 젖어들었다. 산행을 하고 불과 2시간도 안되어 신발은 푹 젖어버렸다. 등산화 자체는 방수처리가 잘 되어 있지만, 다리를 타고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은 어쩔 수가 없다. 신발 안까지 젖어버리니 온몸이 젖어든 듯하다.
묘봉치 전까지 길을 덮어버릴 정도로 무수히 자란 잡목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편한 복장도 아닌데 우의를 입고 길을 뚫자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온몸은 젖어버렸고 신발도 질퍽거렸다. 발이 젖어버리면 물집이 쉽게 잡히고, 발바닥 살이 찝혀서 걸음걸이가 힘들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하필 친구가 도와주러 내려온 마당에 이런 험한 일을 당하니 도움을 청한 나로서는 미안하기만 하다.
묘봉치를 넘어가면 그나마 거친 잡목들의 방해는 벗어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능선길이 만복대까지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바람의 본격적인 방해가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잡목과 풀들이 바람을 막아주었지만 묘봉치에서 만복대를 오르는 구간은 바람을 막아줄만한 것이 없다. 가을이면 억새가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고 하지만 6월이라 그만한 억새들은 어디에도 없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도 바람에 휘청거린다. 예전 설악산에서 만난 바람만큼은 아니지만, 엄청난 돌풍이 비와 섞여서 귀청을 때렸다. 한걸음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날씨만 좋았다면 만복대에서 쉬면서 준비한 맥주도 한잔 했을 것이다. 정상에 오를수록 더욱 거세게 몰아지는 비바람에 곁눈질로만 만복대와 인사하고 곧장 내리막길로 내려섰다. 다시 잡목숲을 지나니 바람은 잦아들었다.
만복대에서 내려서 정령치 휴게소에 들렸을 때는 몸이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정령치 휴게소가 열려 있을 거라고 판단한 우리는 휴게소로 들어가려 했으나 모든 문이 잠겨 있었고 공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휴게소의 바깥 어디에도 비바람을 피할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대충 싸온 맥주와 김밥으로 점심을 때워야 하는 판에 난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에서 먹을 수도 없고, 쫄쫄 굶으면서 몇시간을 다시 산을 넘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행히 공사 준비를 위해 나와 있던 휴게소 소장님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공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준 것이다. 온몸이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소장님은 이런 비바람에 산을 탈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친절하게 커피도 손수 타주시면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가란다. 우리는 거듭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렸다. 공사도구로 어지럽던 박스 안이었지만 비바람을 피하고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맥주와 김밥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운 우리는 다시 단단히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정령치 휴게소를 떠나 큰고리봉까지는 급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큰고리봉에서는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능선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대간은 고기리 마을 방향으로 뚝 떨어진다. 내리막길은 더욱 미끄러워 서두를 수가 없이 더디기만 했다. 짙은 구름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나그네들이었다. 비바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열심히 걸어 온몸이 열이 올랐지만 비바람 때문에 금방 식었다.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를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이렇게 온몸이 젖어 계속 간다는 것은 무리수라는 판단에서였다. 당초 목적지였던 수정봉을 포기하고 우선 고기삼거리의 민박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고기리 삼거리에 내려서서 가까운 민박집-약촌산장-을 찾아들어가니, 이미 등산객 한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네, 성삼재에서 출발했어요.”
“허, 우리도 거기서 왔는데, 늦게 출발했나봐요.”
“네, 7시 쯤 출발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반가운 인사가 매우 살갑게 들렸다. 우리만 산을 탔으려니 생각했지만 이미 우리 앞으로 간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이런 궂은 날씨에 함께 산을 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위안이 되곤 한다. 같이 역경을 이겨냈다는 동질감이다.
방으로 들어선 우리는 먼저 푹 젖은 신발과 옷과 가방을 말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내일도 산을 타야 한다면 최대한 잘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방은 온통 젖은 옷가지와 물건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옷걸이에 걸어놓은 배낭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져 밑에 수건을 받쳐야 했다. 신발은 깔창을 분리해 흙만 씻어내고, 방안 한 구석에 비닐을 깔아 올려놓았다. 대충 정리하는 데도 버겁기만 하다.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해 늦은 점심을 청했다. 식사와 함께 반주를 청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친구들 얘기부터 다시 시작한 연애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요즘 시골에 땅보러 다닌다.”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했다. 이 친구가 투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이런 산골이나 경치 좋은 곳에 작은 집 하나 짓고, 가끔 숙박 손님들도 받아 살아가는 거야.”
친구의 꿈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소박한 꿈이 아닐까. 지금부터 돈을 잘 모아보겠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경치 좋은 곳에 가끔 여행 삼아 가면서 어디에 집을 지을까 고민하는 정도다. 보통 사람들이 땅 보러 다닌다면 시세나 투자가치 등을 따지는 것일 텐데, 그에게 그런 것은 아직 안중에 없다. 즉 땅보러 다닌다는 말의 의미는 여행 삼아 다니는 산골마을의 경치를 눈여겨본다는 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산골마을의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활짝 열린 미닫이 문 너머로 비는 추적추적 계속 내렸다. 바람은 그세 많이 잦았나 보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산골마을에서 멀리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1993년, 연하천산장에서 난 평생 잊지 못할 풍경과 만났다. 그리고 매번 지리산을 올 때면 그 풍경을 다시 내 눈안에 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리산 맑은 밤하늘에 강물처럼 흐르는 별들, 이쪽 하늘에서 저쪽 하늘로 줄줄이 이어져가는 별의 강. 젊은 날에 본 지리산 은하수는 내 감성의 주춧돌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은하수를 잊지 못해 지리산을 찾는다. 내게는 일출보다 소중한 풍경이다.
전날밤, 예전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와 보았지만, 짙은 구름에 가려져 별빛 한줄기도 찾기 어렵다. 이른 새벽 일찌감치 산장 밖으로 나섰지만, 초승달만 휑하게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밤하늘 성긴 별들이 산자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
전날처럼 6시에 산장을 나왔다. 이른 아침 숲길로 나서니 비스듬히 내려앉은 착한 햇살이 마중 나왔다. 욕심조차 이슬로 맑게 정화되는 하루의 시작이다. 연하천 산장을 나오면 곧바로 얕은 오르막이 시작된다. 명선봉이다. 급한 오르막길의 끝에는 작지만 안락한 공터가 나온다. 배낭을 풀어놓고 쉬어가는 길손들의 쉼터다.
명선봉을 지나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종전의 봉우리와는 다른 급한 오르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토끼봉이다. 노고단에서 종주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힘든 구간이 이곳이다. 토끼봉을 넘어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가방을 풀어놓고 숨을 가다듬는다.
토끼봉을 지나 급한 내리막을 내려가면 화개재가 나온다. 날씨가 수시로 바뀌었다. 화개재는 맑았다. 구름도 많이 걷혔다. 멀리 구름이 낮게 깔려 있지만, 머리 위로는 해가 맑게 떠있었다. 지리산 여름 날씨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다행히 이날 기상정보에 비소식은 없었다.
화개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유명한 240m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일명 600계단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정말 끝이 없이 이어지는 계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힘들여 계단에 올라서면 삼도봉이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하나의 꼭지점에서 나누어진다.
이번 지리산에서는 많은 대학생들을 만났다. 전국 각양각지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이나 경기 지역보다 지방이 많고, 지방에서도 특히 영남지방 학생들이 많았다. 영남 학생들이 대규모 단위가 많고, 또 그러다 보니 말이 많고 활기차서 눈에 띈 것일 수도 있겠다. 호남이나 서울 경기 지역 학생들은 좀처럼 보기 만나기 어렵다는 게 의아하다. 하지만 산에서 그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전국 각지의 등산객들이 영호남의 경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삼도봉을 지나면 곧 노루목이다.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여기에 있다.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노고단으로 빠졌다. 이글을 쓰는 지금은 무척 후회된다. 어차피 시간이 남았는데 천천히 반야봉을 둘러보고 와도 좋았다. 이번 가을 다시 지리산을 찾는다면 꼭 들려야겠다.
▲ 화개재 삼거리 모습. 예전보다 복원작업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노루목에서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곧 임걸령 샘터다. 풍부하게 나오는 물이 반갑다. 연하천을 나오면서 물을 가득 떠왔지만 4시간 가까이 산행을 하면서 거의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증이 한창일 때 마시는 시원한 샘물은 이 세상 어떤 음료수보다 짜릿하다.
지리산은 적당한 곳에 맞춤으로 샘이 있어 좋다.
임걸령부터 노고단까지는 산뜻한 산길이다. 오르내림도 적고, 길도 평탄한 구간이 많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이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짧다. 지리산 능선에서 벽소령 구간과 함께 가장 걷기 편하고 즐거운 길 중의 하나다.
▲ 노루목
▲ 임걸령 샘터
▲ 토끼봉 헬기장
노고단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고갯마루에 짐을 풀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도한 짐이다. 텐트까지 들어가 있으니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일부 짐을 소포나 택배로 되돌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친구 기석의 전화를 받았다. 주말을 맞아 지원을 나오겠다고 한다. 동행이 있어 기쁘기도 하고, 소포나 택배가 아닌 친구에게 부탁해 불필요한 짐을 서울로 보낼 수 있겠다 싶어 반갑다.
노고단 정상이 개방된 것은 최근이다. 스무 번 가까이 지리산을 찾아왔지만 노고단 정상에 올라선 것은 처음이다. 시간이 많이 남는 만큼 짐은 노고단 고개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노고단 정상을 향했다. 나무데크가 편하게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노고단 정상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는 약 750M에 이른다. 양 옆으로 낮게 자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겹다. 산 아래에서는 구름이 가득했지만 노고단 정상은 햇볕이 따가웠다.
노고단 정상은 ‘하늘정원’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약 30만평에 이르는 넒은 초지에 여름에는 약 35~40종의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룬다. 1507M의 고산지대라 바람이 심해서 나무들도 키가 작아 야생화가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다. 데크 양 옆으로 작은 관목들과 초지를 살피면서도 멀리 노고단 운해가 펼쳐져 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런 즐거움 사이로 틈틈이 세찬 바람이 흐르는 땀을 씻어 주니 이 또한 등산은 즐거움이다.
노고단고개에서 내려서면 곧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여기서 성삼재까지는 편한 임도를 따라 한시간 가까이 내려간다. 이날은 여기서 버스를 타고 구례로 내려갔다. 친구가 밤기차로 새벽에 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