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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논쟁을 보면서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8.11.30 18:13




대학 때 역사 연구 소모임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배운 진실은, 역사는 주관적 서술이라는 점이다. 사실로 치장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서술가의 관점과 철학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 생각과 철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나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배운 역사는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이 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삶이 되었다. 나의 역사 공부는 내 대학생활에서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 것들을 결정하는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1991년에는 강경대 열사의 죽음에 항거해 십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분신을 할 정도로 노태우 정권과 민족민주운동 세력이 치열하게 싸우던 시기였다. 종로 거리는 매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고, 대학 곳곳에서는 연일 집회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난 데모라면 딱 한번 나갔을 뿐이다. 지금 와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의 나는 소심하고, 무관심하고, 무정했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옆에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당시 역사에 대해 몰이해하고 있었고, 가치관이나 관점이 분명하지 서 있지 못했다. 역사와 문학은 그런 나에게 내 행동의 분명한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게 했으며, 인간의 선한 자유의지가 궁극적인 세상의 희망임을 일깨워 준 학문이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 교과서 이야기다. 교과서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의 갈등을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갈등의 양상은, 보수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진보쪽에서는 ‘검정 교과서의 수정 요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제가 되는 구체적인 조항을 보면, ‘8·15광복절과 연합군의 승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부분, 미·소 군정과 관련해 서로 성격이 다른 사료를 비교한 부분, 분단의 책임을 대한민국에 전가한 부분과 정권의 실상을 판이하게 서술한 부분, 대한민국을 민족정신의 토대에서 출발하지 못한 국가로 기술한 부분, 그리고 북한 정권의 실상을 달리 서술한 부분’ 등이다. 이 부분에서는 역사가들 안에서도 매우 다른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나온 내용이 사실을 벗어난 잘못된 서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익 인사들의 주장은 매우 익숙한 레퍼토리다. 1997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족하면서 내 건 것이 일본을 폄하하는 내용들로 구성된 역사 교과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일본의 긍지와 자랑을 학생들에게 심겠다는 것인데, 실상 그 내용은 제국주의 일본의 역사를 정당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의 연장선에서 보고, 남북 분단의 외재적 요인에 눈감고, 친일파 청산의 좌절을 감추려는 우리나라 우익이나 일본 우익이나 다를 바가 없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역사 교과서도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논리다.

“국가의 정통성은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통해 나오는 것이지, 교과서를 통제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조작해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 정부는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타조’처럼 불편한 과거사에 대해 무작정 귀를 막으려 하고 있고, 이는 ‘국가적 자긍심’을 명분으로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우익들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과거의 일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역사의 희생자들과 그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 대립하는 관점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 남과 북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일”
- 브루스 커밍스, 한겨레신문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집단의 정체성이나 역사적 정통성은 그 집단 내에 속해 있는 사람이 집단에 대해 가지는 신뢰를 통해 나오는 것이지, 거짓이나 왜곡을 통해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과거의 일들을 재조명함으로써 또다시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이스라엘의 초등 역사 교과서는 첫 부분에서 “우리의 조상은 애급의 노예였다.”라고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이 언급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긍심을 잃었다거나,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됐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결국 우리나라 우익들은 역사를 감추고 싶은 것이며 왜곡하고 싶다는 말이다.

물론 단순히 역사 서술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역사 ‘교과서’라는 다른 측면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즉 ‘교과서’가 가지는 특수한 지위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를 이용해 국민들의 생각과 사상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저급하기 짝이 없다. 더군다나 검정 교과서의 본래적 취지인 다양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일련의 행위는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교과서가 과연 학생들의 수준이나 교육 현실에 적합한지는 따지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하워드 진은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역사 연구는 곧 무엇이 중요한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는 실제로 현재 우리의 관심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라고 말했다.

내가 역사 연구 소모임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스스로 역사 연구 교재를 정하는 일이었다. 지금 그 교과서를 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어보자. 과연 그들에게 실제로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이 역사 교과서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나 권리가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 그들을 가슴 뛰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지, 과거와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을 발견했는지, 지금의 내가 살아가면서 깨달아야 할 성찰의 과제들을 찾을 수 있었는지 말이다.




합리적인 권위는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비합리적인 권위는 힘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에 종속된 사람을 착취하는데 봉사한다.
-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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