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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히 본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참 오랜만에 그 정답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제주도의 해녀할머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다. 평생 물질로 살아 온 여든 된 해녀할머니에게 물었다. "스킨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면 더 많은 수확을 하실 텐데요?" "그걸로 하면 한 사람이 100명 하는 일을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안 하세요?" "그렇게 하면 나머지 99명은 어떻게 살라고?"  - 김규항 블로그 <행복이란 무엇인가>에서

집으로 올라오는길 톨게이트를 빠져나올 때 조카의 느닷없는 질문.  

"하이패스가 뭐에요?"
"응, 단말기를 설치하면 톨게이트를 그냥 통과하면서 자동으로 돈이 나가는 거지."
"그럼 그거 설치하면 편리한 거 아니에요?"
"편리하겠지."
"그럼 왜 설치 안하셨어요?"
"글쎄, 편리하면 좋은 걸까?"

잠시후 톨게이트를 지났다. 한복 유니폼으로 차려입은 징수원이 반갑게 설인사를 하고 있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한참 달리고 있으니 조카가 말을 꺼낸다.

"모든 사람이 하이패스를 사용하면 저 아줌마들은 어디서 일하죠?"

***

귀성전쟁. 그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며 가며 걸린 시간이 장장 20시간(13+7). 내려갈 때는 13시간이라는 시간을 차 안에서 브레이크와 악셀을 번갈아 밟기만하니 시간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운전하면서 심지어 졸음이 쏟아지기도 하더라. 한시간동안 10km도 채 가기 힘들었다. 누가 그러더라 차를 밀면서 가도 이것보다 빠르겠다고...

속도전에 열을 올리는 지금의 각하께서 보기에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중생들인가. 열 몇시간을 걸려 꼬질꼬질한 시골에 내려가 후다닥 차례지내고 성묘하고 올라오는 이 비생산적인 일이 그에게는 어떻게 비쳐질까? 그 시간에 삽질이라도 한번 하면 하루 일당 5만원은 나올 건데 말이다.

그렇다, 지지부진하고 느릿느릿 가더라도 거기에 행복이 있다. 십여시간이나 걸려 내려간 고향에서 어르신들은 "뭐 하러 개고생하며 내려왔냐"며 야단치시지만 입이 귀에 걸려 웃으신다. 그 웃음을 줄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잘 빼입고 간 양복은 엉망진창이 됐고, 넥타이는 대충 풀어헤쳐 볼성사납기 그지 없지만 그런 모습도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보아주시는 분들이 거기에 있다.

속도는 그런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느림이 오히려 기다림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개발이 누군가의 죽음과 절망과 좌절을 바탕으로 한다면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저주다. 그런 바탕에 세워진 고층빌딩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은 또 얼마나 많은 좌절과 죽음을 먹고 성장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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