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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한 사회 노회한 조직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다니는 회사는 나이를 참 많이 먹었구나 싶다. 물론 회사가 45년이나 되었으니 사람으로 쳐도 중년을 달리고 있는 셈이지만 가끔 보면 그 이상의 연배를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립과 갈등이 있을 때 손쉽게 지위와 나이를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회사의 행동을 보면 45세가 아닌 60대 후반일 것 같은 고루함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나이 듦에서 오는 신중함과 엄격함이 긍정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시대에 뒤쳐지는 프로세스나 시스템, 직원 복지 정책이나 회사 비전 등은 동종 업계 그 어떤 회사보다 노후화 되어 있는 회사가 아닌가 의심할 때가 많다.

2주 전부터 회사 워크숍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워크숍이라고 해서 어떤 중요한 이슈나 주제를 가지고 심층 토론이나 회의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구성원끼리 하루 잘 놀고 먹고 잘 수 있는 장소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회사는 모르는 비공식 워크숍이라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회사는 팀별 워크숍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전 워크숍도 마치 007작전 수행하듯 몰래 회사를 빠져나가 개별적 혹은 조별로 해당 장소에 찾아가도록 지시를 받기 일수다. 그러니 지원금 등은 애초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은 팽배했다. 워크숍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한 몇달 전부터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는 워크숍은 절대 갈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상 회식도 아니고 토요일 오전까지 헌납해야 하는 워크숍에서 금요일 저녁 출발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사실상 저녁에 출발해 술이나 마시고 놀다가 뻗어서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오는 그야말로 별 무의미한 일정만 소화하는 일에 사람들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팀별 워크숍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긍정적 효과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한푼도 지원하지 않는 우리 회사에 대한 반발, 조직의 고루함도 사람들의 불만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팀장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다.



▲ 지난 해 영종도 워크숍의 한 장면



하지만 여기에는 조직원들 사이의 오묘한 이해관계의 대립도 없지 않다. 각각의 담당자들이 각자의 일을 수행하면서 겪는 상급자와의 오랜 갈등, 각 담당자들 간의 갈등, 조직원들간의 묘한 오해 또는 서먹함 등이 두껍게 쌓여 있다 보니 조직원들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해 보려는 노력이 가치를 바랬다. 물론 1박2일 화려한 워크숍이 오래 쌓인 갈등의 때를 한번에 벗겨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속내를 편안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는 프로그램과 그것을 지원하는 회사의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래된 가치, 다양성의 회복                          


이렇게 부정적 분위기가 가득한 상황에서 워크숍을 준비하는 명을 받았으니 나로서는 곤혹스럽기만 했다. 윗사람에게는 금요일 일찍 출발하는 워크숍 일정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하고 직원들에게는 부정적인 워크숍 인식을 긍정적 인식과 기대로 바꿔야 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구글 문서를 이용한 설문조사였다. 설문조사를 통해 직원 일반의 워크숍에 대한 인식을 윗사람들이 그대로 받아 안아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여 워크숍에서는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총 3차례에 걸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상처를 덧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과정도 부실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결국 1박 2일 워크숍은 무산되고 대신 금요일 저녁의 바비큐 파티로 진행할 예정이다. 워낙에 다양한 개성과 업무로 어우러진 팀이라서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굳이 통일하기 보다는 서로의 이해를 요청하고 최대한 모두가 편안한 일정으로 잡아보려 하였다. 무엇보다 술자리 외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일정이었다.

다양성은 조직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면 힘들고 답답한 좁은 문처럼 보이지만, 그 문이 제대로 열린다면 누구나 오갈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큰 문이 될 수 있다. 그러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다양성을 버린다면 그건 윗사람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과정이 반복됨을 의미한다. 동료 직원이 수시로 바뀌는 것은 그만큼 일의 편차가 커짐을 의미하고 조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자연히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다양성에 대해 폭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진행되는 워크숍(야유회)가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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