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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의 투표다. 누구에게는 20년만의 투표일 것이다. 아니, 어떤 이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투표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소중하다고 하는 그 선거권. 어찌 보면 성스럽기까지 하지 않는가. 이 투표용지 하나 얻어 보자고 우리는 1980년 광주에서 수많은 피들이 흩뿌려졌고, 1987년에는 넥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투표용지를 볼 때마다 거기에 서려있는 피와 눈물을 느낄 때가 있다. 적어도 투표라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있어 섬세하고 엄숙한 종교 의식과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 드디어 집으로 선거공보물이 도착했다. 후보들의 면면이야 그동안 동네에 붙은 선거벽보를 통해 눈에 익어 있었는데, 내 눈에 가장 이색적으로 비친 것은 투표 장소였다. 이번 투표 장소는 이전의 종교 시설이 아닌 근처 경로당으로 잡혔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경로당은 바로 집 앞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오랫동안 그 종교 시설에서 투표를 해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줄곧 한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동안 그 종교시설이 세워진 이후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자원 봉사를 하는 청소년들의 친절한 안내를 동네 어귀부터 받을 수 있었고, 투표장 안도 적당한 넓이에 부산함 없이 줄을 서서 투표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종교시설도 번번이 투표 때마다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공간을 내어 주고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희생한 것인만큼 그 장소에 대해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일 기독교인이 절에 들어가서 투표해야 한다면? 만일 불교인이 성당 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면? 만일 천주교인이 이슬람사원에 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면? 물론 관광의 일환으로 절, 성당, 교회를 ‘구경’간다. 그러나 분명 엄숙하면서 즐거운 투표 행위가 종교적 신념과 다른 곳에서 치러진다고 할 때, 게다가 내밀한 나만의 비밀스러운 행위인 기표 행위가 부처님, 예수님, 하느님이 있다는 종교시설에서 치러질 때 느끼는 모종의 불안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정말 투표가 그런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축제일 수 있을까? 굳이 배타적일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지 않는 투표소 설치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2005년도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종교인은 절반을 넘는 53.6%라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선택할 수 있지만, 투표 장소는 선택할 수가 없다.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서울시만 해도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한 곳이 2,210개 투표소 중 511개소(23.1%)로 꽤 많은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공직선거법」 제147조 제2항은 투표소를 “투표구 안의 학교, 읍·면·동사무소 등 관공서, 공공기관·단체의 사무소, 주민회관 기타 선거인이 투표하기 편리한 곳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서울시처럼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그런 공공장소가 없을 리가 없다. 물론 경로당이라는 공간을 투표 장소로 활용함으로써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투표일 하루만큼은 불편을 겪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선거를 계기로 노인들의 사랑방인 경로당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경로당을 찾아와 그동안 소외된 공간이었던 경로당이 오랜만에 더 활기찬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투표소 앞에서 사진을 찍어서 선관위로 보내면 추첨을 통해 경품도 준다고 하니, 경로당 앞에서 우리 세 식구 가족사진을 찍어봐야겠다. 이번 선거는 한결 더 신나고 재미있게 투표할 수 있어서 좋다.




2010. 5. 30. 국가인권위 블로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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