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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맞다. 우리 내외와 민서, 그리고 부모님까지 모시고 나선 가을 나들이로 선택한 장소는 소요산. 가을 단풍이 설악산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 단풍 보기가 쉽던가. 게다가 전철까지 소요산역이 생긴 마당에 단풍으로 유명한 소요산이 그리 여유로운 풍경을 보여주리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 넓은 소요산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어서 다시 바깥 도로변에 주차할 때까지만 해도 괜히 왔다 싶었다.



원래 일정은 자재암까지만 가는 것이었기에 큰 무리는 없겠다 싶었는데, 사람들의 물결을 보니 숨이 턱막혀왔다. 사람 구경에 신난 민서는 자신만의 탄성을 연일 내지르지만 이 인파의 물결 속을 헤치며 자재암까지 오를 생각을 하니 좀 걱정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입구에 국화전시회장은 볼만했다. 아직 많은 국화들이 만개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활짝 핀 국화꽃들 앞에서 연신 셔터기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아침을 일찍 드신 부모님을 위해 먼저 식당부터 잡았다.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12월에 치를 돌잔치 이야기며, 부모님 건강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 아버지 치과 치료에 대한 잔소리. 아버지는 그동안 잘 참아오시던 담배를 다시 태우시기 시작했다. 치과에서는 절대 금연을 강조해 오던 터라 성과 없는 잔소리를 해야했다. 나이들면 늘어나는 게 잔소리라는 말이 딱 나를 두고 한 말일까. 내가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알았다"하면서도 건성으로 듣고 넘어가신다. 한번 더 다짐을 받으려 재차 말을 하니, "이번 것만 다 피면 안핀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짐작 할 수 있는 건 쉽게 못 끊으실 것이며 재차 담배를 입에 물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잔소리'라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어떤 감명도 깨달음도 변화의 다짐도 얻을 수 없는 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의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어렵다. '진심'이 없는 게 아니라 표현의 방법이 문제일 것이다.



어머니는 매번 함께 외식을 할 경우 당신께서 계산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아이 키우면서 살기 어려울 테고 시부모와 함께 여행 다니는 게 어려울 테니 당신께서 내시겠다는 마음이겠지만... 아버지에게 시집 온 이후 아들 둘을 키우면서 제주도도 못 가보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날의 소소한 외출은 턱없이 부족하다. 언젠가 제주도 여행을 함께 가겠다는 마음은 몇년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지만 이제 내 가족이 생기고 나니 그도 역시 쉬운 게 아닌 일이 되었다. 역시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이런 것이리라.




가족은 연민의 무덤이다. 끝없는 연민 속에서도 그 끝에 닿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다. 누군가가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라고 하지만, 가족에 대한 연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질되지도 않으면서 끈질기게 다가와 마음을 태운다. 이런 연민은 행동하지 않으면 그저 마음의 속살만 썩게 한다. 오랜 세월 속에서 시들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연민의 무덤이며 그 끝인 것이다.

연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떨까. 구체적인 행동이 더 나아진 미래를 보장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연민은 더 나쁘다. 그것은 연민의 주체나 객체 모두에게 나쁜 것이다.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발견하려는 창조적 주체가 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매일 얼굴을 대면하는 가족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옳다. 여행도 그런 발견을 촉진시켜 줄 수 있는 좋은 도구다.

이날 소요산 여행은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보면서, 자재암까지 다녀온 일정으로 무사히 마쳤다. 여전히 나는 많이 부족한데 부모님은 빨리 늙어가신다.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10월 마지막주는 처형댁 식구들과의 여행이 잡혔다. 이 여행이 닫혀 있는 연민의 그늘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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