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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무반 생활 - 네 마음 안에 새집을 지으렴.


국방부는 여전히 ‘훈련은 빡세게 내무생활은 편하게’를 외치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구호가 역설적인 것은, 그만큼 내무반 사건사고가 많아서지. 게다가 내무 생활의 불만으로 인해 벌어지는 가혹행위나 병사간 폭력행위도 심심치 않을 거고. 사실 20대 열혈 청년 남아들이 모인 공간에서 아무 잡음이 없다는 것이 더 신비로운 일인 거야. 너희 형제들만 해도 하루에 열댓 번씩 싸우고 화해하잖아. 이런 것 때문인지 아무래도 내무생활이 상대적으로 더 힘들다는 건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내무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까?


훈련소에서의 내무 생활이라봐야 다 같은 또래들끼리 훈련병이라는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으니 그다지 큰 문제는 없지. 하지만 자대 배치 받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군대생활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때부터가 고난의 행군길이야. 자대배치를 받으면 어찌됐든 같은 내무반 사람들끼리 제대할 때까지는 같이 먹고 자고 뒹굴고 할 인물들이다. 그러니 안좋은 관계는 두고두고 목의 가시처럼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


자세를 보면 계급이 보인다.





내가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내 위의 선임병이 한 말이 깨더군.

“넌 갓난아기다. 갓난아기는 아무 것도 혼자 할 수 없다. 움직이는 것도, 밥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뭐든 꼼지락 대고 싶다면 우선 나에게 먼저 물어봐라. 내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마라.”

우선은 그의 말대로 따랐다. 내무반이 점호 점검을 앞두고 청소한다고 난리가 아니어도 난 꼼짝없이 가만히 있었고,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 가고 싶으면 손을 들고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말하고 선임병 따라서 화장실을 갔지.


아무튼 그 선임병이 날 많이 갈구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친한 선임병이 됐어. 내무 생활에서는 진심이 필요한 거야. 처음엔 뭐 이런 게 다 있어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공간에서는 이런 룰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지. 하지만 그 순간 선임병을 의심하고 내 좁은 생각대로 행동했다면, 군생활이 내내 괴로웠을 거다. 물론 상상하기 힘든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하고서 혼자 속앓이를 하지 마라. 사회에서라면 구타나 가혹행위는 충분히 기소감이고 심하면 징역형에 처하는 폭력행위다. 군대라서 관대할 거라는 생각은 버려라. 너도 당하면 안되고, 네가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구타나 가혹행위에 대한 구제조치는 아주 다양하다. 이는 다음에 더 자세히 안내해 주마.


비정상적인 문제를 제외하면, 군생활은 세상의 인간관계와 같다. 쉽게 말해 평지 위에 집을 새로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먼저 지반을 다지고, 반석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대들보를 올리는 과정 같은 거 말야. 훈련소는 그 지반을 다지고 반석을 놓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어엿한 집을 짓기까지는 1년 정도가 걸려. 한해의 군생활을 거치고 나면 집은 완성되지. 그 다음은 집안을 꾸미는 거야. 너의 집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쉬거나 놀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상병이나 병장 정도 되면 권력이 생기지. 그 권력을 유지하는 힘은 계급장만이 아니야. 권위와 권력은 존경에서 나와야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거지.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한다. 그 존경을 받기 위해 집을 꾸며야 해. 힘든 사람이 찾아오면 편하게 쉬었다 갈 공간이 필요하고, 심심한 사람이 오면 신나게 놀다갈 공간이 필요하잖아.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마음의 위로와 만족을 얻으면 그것은 곧 존경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 그러니 한순간도 마음의 집을 짓는 걸 게을리 하지 마라. 이 집은 제대 이후에도 너를 지켜줄 안식처가 될테니 말이다.


물론 가끔씩 집에 들어와 깽판을 놓는 사람도 있을 거야. 왜 이거 밖에 못해 주냐, 다른 편의 시설은 없냐, 놀게 부족하다 등등. 게다가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이들도 있겠지. 이건 막을 수 없어. 집을 열어놓은 이상 감당해야 할 변수지. 하지만 그런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을 거야. 종종 찾아오는 좋은 친구가 너의 집이 엉망이 된 걸 보면, 같이 팔을 걷어 부치고 같이 정리해 주겠지. 때로는 멀리서 소식을 들은 친구가 집에 필요한 가구나 가전제품을 보내오기도 할 걸.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더 큰 도움의 손길을 보내기도 하니까 말야. 이것은 네가 너의 집을 알뜰히 가꾸고 살펴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그러니 집을 잘 짓고 가꾸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아무리 집을 잘 지어도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은 있기 마련이지. 지진이나 홍수에 집이 떠내려가는 일도 있지만, 갑작스런 재개발 바람 같이 인위적인 환경의 변화도 있지. 군대는 그런 변화가 극심한 공간이고 시시때때로 그런 위기들이 엄습하는 곳이야. 그것은 군대가 철저히 개인을 종속변수로 본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지. 군대에서 군인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아. 목적을 위해 소모되는 수단에 불과하지.


한번은 큰비가 와서 근방의 동네가 물에 침수되는 등 물난리가 난 적이 있어. 이럴 때는 군대가 대민지원을 나가거든. 보통은 물난리가 난 동네를 청소하는 일을 하지. 한번은 옆에 부대가 양계장으로 대민지원을 나갔다고 하더군. 양계장이 온통 물에 잠겨서 수만 마리 닭들이 폐사한 곳이라는데, 그 상황이 어떻겠어. 군인들은 고작해야 전투복에 전투화만 신고, 거기에 빨간 코팅 장갑만 끼고 그것들을 치우라는 명령을 받았지. 결국 많은 군인들이 이상한 피부병에 걸리거나 몸살을 앓아눕기도 했잖아. 병사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대민지원 활동이었어.

군인이라는 조직만큼 철저히 개인을 조직의 효율에 맞추는 집단도 없어. 조직은 절대 개인의 안위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아. 조직의 보위를 위해 개인을 기꺼이 희생하는 게 조직이다. 군대라는 조직은 더더욱 그러하다. 여차하면 수백 수천명의 군인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워야 하는 곳이지.

괜한 인정에 기대어 ‘조직에서 나는 특별해.’라는 생각 따위는 버려. 애초에 그런 기대를 갖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 조직은 개인이 지은 '마음의 집' 따위는 한 순간에 아작을 낼 수 있어. 이건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야. 어떤 조직이든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려는 게 본질적인 속성이야. 개인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냥 단번에 먹잇감이 되는 것이지. 조직 안에서 너만의 영토를 개척해. 그리고 먼 바다로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체력과 지혜를 키워.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되면서도 조직에 목매인 사람이 되지는 마라. 언제든 네가 조직을 떠나거나 버릴 수 있어야 한단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가벼운 바람처럼 말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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