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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했다. 늦은 저녁 지하철 풍경은 모두 각자의 일상을 마치고 하나둘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질질 끌며 집으로 가고 있다. 저 짐들은 다시 내일 아침이면 질질 끌리며 직장으로 학교로 다시 경쟁의 세상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들이다.

세상의 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을까. 짐의 형식이나 방법은 달랐을 테지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운명이 반드시 짊어질 억겁의 운명은 하나였을 거다. 생-로-병-사, 21세기 과학이 풀지 못하는 의문은 몇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 경계에 다가서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안의 괴로움까지 풀 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만났다. 마른듯하지만 강건하고, 부드러운 듯하지만 날카로운 조각선들, 저 보일 듯 말 듯한 입꼬리의 미소는 깨달음으로 한걸음 나아간 신성의 모습일까. 아무리 엎드려도 그 눈에 눈맞춤 할 수 없는, 낮고 낮아지는 그 마음은 더더욱 깊어진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출가 직전 태자 시절에 중생의 고통을 보면서 고뇌에 잠겨 있는 모습을 그린 모습이다. 즉 부처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중생의 고뇌를 헤아리는 태자의 모습은 미륵보살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출가를 결심했다. 큰 마음을 가지고자 했던 사유의 깊이를 우리는 얼마나 짐작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면서, 버리지 못한 것에 질질 끌려다니는 우리네 인생은 그에게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사유 되었을까. 두루 헤아리며 생각한다는 ‘사유(思惟)’가 여기 불상에 깃들어 나는 자꾸 그 생각 안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가 보지만, 헤아릴 길이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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