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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와 걷다               

걷는 걸 좋아했다. 결혼 전 아내도 나도 많이 걸어다녔다. 아니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육아의 책임이 주어지면서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돌아다니는 일은 여행 준비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 조금만 걸어도 다리 아프다, 벌레 무섭다, 졸립다 그러며 안아달라 업어달라 하니 돌아다니는 일도 어렵다. 게다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풍광이나 경치를 찾는 것도 어렵고, 아이의 취향이 담긴 여행길도 찾기가 쉽지 않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데리고 가는 일도 있지만, 잠깐 둘러보다가 실증을 내는 일이 잦았다. 놀이가 필요한 아이에게 그곳은 지루한 장소였던 것이다. 

"아이가 언제쯤 우리랑 같이 돌아다닐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가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게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아이는 이만큼 자라 엄마아빠보다 저 앞에서 걷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둘레길을 걸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전 일이다. 회사 동료들과 남산 둘레길 일부를 걸을 때 아이를 데리고 함께 걸었는데, 제법 잘 걸었다. 자신이 생겼고, 이제 어느 정도 걷기 여행은 가능하겠다 싶었다. 다양한 풍경과 경치를 만나는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벌레에 대한 무서움증도 어느 정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스로 업어달라거나 안아달라고 하지 않고, 옷자락에 매달리지 않는다. 돌길을 오르는 걸 좋아하고 바위타기를 신나한다. 숲길을 발랄하게 걷기 시작해 나무들 사이로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5월 14일, 우리 가족은 걷기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2. 우선 서울부터...          

아직 차멀미를 하는 아이때문에 멀리 가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은 서울부터 시작했다. 아내가 관악산을 찍었고, 내가 코스를 잡았다. 서울 둘레길 5-2코스로 석수역 출발해 서울대 정문까지 이어진다. 관악산 정상으로 오르진 않고 산 주변을 걷는 길이다. 


가벼운 옷차림에 웃옷을 하나 더 걸치고 집을 나섰다. 처음 걷는 길이라 길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코스 안내가 잘 되어 있다. 석수역에서 나오자 마자 만난 둘레길 안내판이 반갑다. 자주 등장하는 안내판은 둘레길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고, 아이와 함께 보면서 지나온 길과 가야할 길에 대해 가늠해 보기도 했다. 역사나 유래가 있는 장소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다. 미리 알고 간다면 아이 눈높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석수역에서 출발하는 관악산 초입에서는 김밥 등 간식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 많으니 미리 준비하지 말고 여기서 사는 것도 좋다.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밥집이나 주점도 있는 듯하다. 만일 석수역이 하행길이라면 여기서 막걸리 한잔 하는 것도 또한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곳 둘레길에서 먼저 만나는 길은 '호압사 산책길'이다.산책길은 완만한 산행길로 호압사에서 석수역까지 이어진 길을 이른다. 약 3.7km구간으로 5-2코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산책길에서 다양한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사람들의 산에 대한 기원과 바람도 곳곳에 남아 있다. 신선길이 대표적이다. 신선길에는 많은 돌탑과 산성이 있다. 특히 호압사 입구에서 시작해 호압사 폭포까지 연결된 나무데크의 '호암늘솔길'은 정말 편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인공적인 나무데크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은 그 옆길의 자연숲길을 걸을 수도 있다. 아내는 일부러 자연숲길을 걸었다. 


 

우리는 잠시 나무데크에서 떨어져 소나무숲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솔잎이 가득 뿌려진 평평한 곳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나무 사이를 오가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듣고, 아이들이 숲속을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멀리 있는 호압사에서 나오는 불경 읽는 소리가 은은했다. 무엇보다 바람부는 소리가 좋았다. 아이는 '토토로'에서 고양이버스가 지나갈 때 나는 소리라며 반가워한다. 이 시간이 정말 좋다. 셋이 나란히 누워 숲속의 공기와 햇살과 바람을 온전히 받아 안고 있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30분 정도 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곧 잣나무 산림욕장을 지났고 호압사 절이 나타났다. '호압(虎壓)'은 호랑이를 누르다(제압하다)'라는 뜻으로 호랑이 기운이 가득한 호암산의 기를 눌러 한양을 편하게 하기 위해 지어진 절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한 설화이다. 그중 한 대목을 옮겨온다.


"저희들은 의심을 풀 길이 없사와 힘센 장시들을 뽑아서 그들과 함께 지난 밤엔 궁궐의 일터를 지키고 있었사옵니다."
"그래서?"
"부엉이가 울고 난 뒤였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 한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괴물이라, 그래서?"
"소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반은 호랑이요 반은 그 형체조차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서 저희들이 낮 동안 세워 놓은 건물을 마구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 호압사의 전설(출처: 호압사 홈페이지)


전설에 따르면 당시의 수도 한양을 향하는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호압사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풍수사상과 토템사상이 어우러진 이야기이다. 한나라의 기틀을 잡는 데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 그것에 대처하기 위한 간절함이 묻어 있다. 절의 역사를 상징하듯 500년된 느티나무가 우리를 맞았다. 큰 나무를 보면 고개를 들어 넓게 퍼진 가지 끝을 쳐다본다. 넓게 드리워진 나무와 굵은 몸통 여기저기 갈라져 떼운 모습에 세월의 흔적이 드리워져 있다. 




호압사에서 관악산 정문까지는 서울시 테마 숲길인 '도란도란 걷는 길'이다. 이 길 중간에 삼성산 성지의 세 외국인 신부에 대한 이야기는 '기해박해: 1839년에 일어난 제2차 천주교 탄압' 을 담고 있는데, 참으로 끔찍한 사건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말도 안되는 명분으로 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당시의 천주교는 지금의 빨갱이처럼 입에 올려서도 안되고, 함부로 집안에 들여서도 안되며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금기어였다. 집안을 풍비박산내고 처참한 죽음으로 이끄는 그 과정에 권력의 치졸하고 비열한 음모가 있었다. 종교와 사상의 자유는 이렇게 많은 피가 뿌려지면서 이 시대의 확고한 이념이 되었다. 억울함은 씻겨졌을지 모르나 역사는 남아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삼성산 성지를 지나 조금만 더 가다보면 작은 바위들이 있는 곳 옆을 지났다. 바위를 오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따라 조금 오르니 서울대 건물들이 보인다. 넓은 교정을 아이에게 보여 주며 저게 다 하나의 대학교라고 설명하니 눈만 깜빡인다. 그나마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인데도 2학년 한 반이 5개반밖에 없으니 저 큰 교정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건, 단순히 복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아이의 꿈이 아닌 어른의 꿈을 투영시키는 그릇된 욕망 등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 입구로 내려가는 마지막 길에는 길게 늘어선 장승들을 만날 수 있다. 온갖 모습들을 한 장승들이 관악산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는 길을 지키고 있나 보다. 어떤 장승은 입안에 건빵이 들어 있다. 산행객들이 장난스럽게 올려놓았나 보다. 우리 가족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함께 웃었다. 그렇게 유쾌하게 이날의 걷기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3. 첫 도보 여행의 소회              

약 6.9km의 길을 걸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고, 작은 오솔길도 있었다. 걷기에 편했던 길이다. 이날 걸은 걸음은 약 18000걸음이다. 1시 10분 석수역에서 출발해 5시 10분 관악산 입구를 나왔다. 쉬엄쉬엄 놀면서 가다보니 4시간 정도 걸렸다. 아이는 제법 잘 걸었고, 걱정하던 아내도 매우 즐거워했다. 기분좋은 피곤함이 배였다. 서울대입구역 근처 감자탕집에서 소주와 감자탕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일요일 집에서 보내다보면 오후부터 못내 아쉬움이 깊어지곤 했는데, 이날은 뿌듯함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붙었다. 아내는 꼭 서울둘레길을 완주하자고 한다. 우리 가족의 첫 목표가 생겼다. 





우리가 걸어온 거리

- 이날 걸은 거리: 6.9km 

- 올해 걸은 거리: 6.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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