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백두대간 24구간 중 다섯번째 구간 초반부 : 신풍령-삼봉산-초점산-대덕산-덕산재 구간 종주
날짜 : 2010년 5월 15일





소사고개의 탑선 마트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봄가뭄이 오래되서 걱정이란다. 비가 오길 기다리는 산골 아낙의 마음을 헤아림은 어렵지 않다. 봄날의 산행은 바삭바삭 타들어가는 메마른 땅에서 풀풀 일어나는 먼지들을 보면 말이다. 민초의 가슴 한켠에서도 헤아릴 수 없는 갈증이 목줄을 타들어가는 5월. 배낭 가볍게 꾸리고 다시 백두대간길에 올랐다. 이번 산행은 백두대간 24구간중 다섯번째 구간(신풍령-우두령) 중 신풍령과 덕산재 구간이다. (6월2일날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을 유린한 세력을 심판합시다)

새벽 2시 반. 거창 시외버스터미널. 오가는 이들은 없고, 한가로이 택시들이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우리는 우선 이른 아침을 든든히 먹자며 해장국집을 찾아나섰다. 해장국에 소주 한잔, 든든히 속을 채운 후 택시를 잡고 신풍령으로 이동했다.(택시비 32,000원) 그때까지는 미쳐 몰랐다, 우리가 12시간 뒤에나 다시 밥을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긴 처음 딛는 길에 새롭지 않고 낯설지 않은 게 있을까. 모두가 지나고 나니 꿈같은 시간이었다.

택시 기사님도 신풍령의 백두대간 시작길을 잘 모르고 있었나 보다. 자칫 지나칠 뻔했던 입구를 간신히 찾아냈다. 짙게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찾아낸 신풍령 입구에서 다시 신발끈을 고쳐 메고 비탈길에 올랐다. 시간은 새벽 3시 50분. 여명이 트려면 적어도 2시간 정도는 있어야 할 듯했다. 계산해 보니 부지런히 오르면 삼봉산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간산행의 오묘함이 온몸을 저며왔다. 렌턴을 켜고 오르는 산길이지만, 양 옆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숲의 윤곽이 별빛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였고, 더불어 그 사이 오솔길도 밤의 고즈넉함을 잔뜩 끌어안고 있어 부드러웠다. 잔솔가지 위로 밤새 내려앉은 이슬들을 사뿐사뿐 밟아가는 산길이 기분을 좋게 한다. 우리 발걸음에 놀란 산짐승들이 어두운 숲 저편에서 사사삭 움직였다. 그래도 걷기에 이만큼 좋은 길은 없다 생각했다.

삼봉산에 도착한 시각은 5시 20분. 막 붉고 노란 기운이 저편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름이 잔뜩 끼어있던 하늘이라 멋진 일출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산에서 일출을 본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누군가와 함께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은 마치 출산의 경험처럼 신비롭다. 아직 꽃봉우리를 트지 못한 꽃나무 너머로 붉은 태양이 서서히 자신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 봄이 가깝다. (6월 2일 투표를 통해 진짜 봄을 맞이해 봅시다)




























출발이 좋다. 봄의 기운에 솟아오르는 태양의 기운까지 얻었다. 이날 가기로 한 거리는 자그마치 21km(처음 목표는 부항령이었다). 그야 말로 산 넘고,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고갯길만 3개가 있고, 이름 있는 산이 3개다. 목표는 멀리 잡았지만, 무리 하지는 않겠다는 계획이었다. 산행이 힘들어지면 중간의 덕산재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신풍령에서 삼봉산까지의 길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비록 어두운 밤길을 걸었지만, 고요한 숲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길은 적당히 말라 있었고, 길섶의 풀들은 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딱 거기까지만 자리를 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해가 뜨고 주위가 밝아지면서 서서히 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치에는 자잘한 얼레지꽃들이, 길 옆에는 진달래꽃들이, 간간히 얕은 언덕이나 무덤가에는 할미꽃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진달래는 한창이라서 길바닥에도 꽃잎이 떨어져 있는가 하면 가지마다 환하게 피어나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첫번째 고비는 삼봉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내리막길. 내리막길은 바로 시작되지 않고, 몇개의 암릉구간을 지난 후부터 시작되어 소사고개까지  내리 이어진다. 삼봉산과 소사고개의 고도차 약 600m. 산을 하나 내려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숨이 차는 일이 없지만, 몸에서 받는 자잘한 충격들이 내리막길에 있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이 하산이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

백두대간은 산길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니다. 중간중간 산에서 내려와 고갯길을 지나가기도 한다. 고랭지밭을 지나가는가 하면, 작은 과수원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초록의 향연 속에서 갑자기 만난 하얀 사과꽃들의 모습은 또다른 선경의 하나다. 소사고개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7시 30분. 여기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매점도 있다. 탑선슈퍼는 대간꾼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듯하다. 이른 아침이라지만 막걸리 한 사발이 어렵지 않다. 아주머니가 김치도 내 주신다. (막걸리 값이 2000원) (전 한나라당이 싫어요!!!)










중앙이 소사고개. 건너편이 삼봉산




이제 다시 막걸리와 안주로 간단히 속을 채웠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이때 대충이라도 아침식사를 때웠어야 했다. 막걸리의 취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초점산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시작이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시작하던 산길이 이내 봉우리를 향해 급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막걸리 기운은 이내 사라지고 숨이 폐를 꽉 채우며 압박했다. 

산은 멀리 있어 보이나 다가가면 생각보다 더 가깝다. 위의 마지막 사진에서 멀리 있는 봉우리가 일출을 보았던 삼봉산이다. 그 너머의 신풍령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9시가 안되어 초점산 정상까지 왔으니 대단히 멀리 온 것이다. 도심에서는 시선을 멀리 두는 것도 어렵고, 또한 그만큼 많이 걷는 일도 드물다. 거리로 따지면 10km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뿌듯하다.

소사고개에서 초점산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오르고 나서도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마치 자신이 정상인양 고개를 내밀지만, 올라보면 진짜 봉우리는 그 뒤에 숨어서 웃고 있다. 막걸리 기운도 빠져나가고 호기도 몰려들어 오지만, 마땅히 물을 받아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봄가뭄처럼 목이 바싹 타들어가는 구간이었다. 미리 물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게 못내 안타까웠다.

백두대간 구간에서는 물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 지도를 보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없다면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함에도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목을 축일 식수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정작 라면 정도를 끓여먹기도 부족한 정도의 물만 가지고 산행을 했다. 가져간 영양갱과 육포, 오이 등으로 지친 몸을 달랬다.















대덕산까지는 평범한 능선길이다. 잡목과 억새가 많이 있어서 그런지 멀리서도 꽤 부드러운 등산로가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대덕산의 정상 부근 길 옆에는 작은 소나무 하나가 낮게 등산객을 반겨주었다. 앞에 달렸던 삼봉산이 거친 암봉을 이루고 있는 반면, 대덕산은 부드러운 능선길이 마치 동네 뒷산을 오르는 듯 친숙하다.

높이 1290m의 대덕산은 전라북도 무주군, 경상남도 거창군, 경상북도 김천시 등에 걸쳐 있다. 명종 때의 예언가 남사고는 무풍(무주군 무풍면을 말하는 듯, 대덕산이 위치한 곳)을 무릉도원 십승지라고 하였는데, 예로부터 국난이나 천재지변이 생길 때마다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덕산 정상에서 한무리의 중년 남성분들을 만났다. 차림을 보면 대간종주 하시는 분들은 아니었다. 그저 가까운 산에 온 모임으로 보였는데, 마침 점심식사를 하시는 중이었나 보다. 푸짐하게 싸온 김밥을 한묶음 선물해 주셨다. 가뜩이나 허기져 있던 우리는 개눈 감추듯 해치웠다. 비록 김밥에는 묵은 김치와 단무지만이 들어있었지만, 그보다 맛있는 김밥을 어디서 먹어봤을까. 백두대간의 산세는 여기서 매우 부드럽게 머뭇거리다가 다시 힘차게 북으로 달린다.

대덕산에서 덕산재까지 다시 한참을 내려오는 내리막길이다. 백두대간 종주 책자에는 덕산재에 매점이 있다고 했으나 거기에서 만난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듯했고, 사람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물을 구하려고 집을 한바퀴 돌아보았지만 밖에 나와 있는 수도꼭지 비슷한 걸 발견할 수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산행 속도로 봐서는 최소한 2시간 반에서 3시간은 가야 오늘가기로 한 부항령까지 갈 수 있는데, 그러자니 다들 지치고 허기져서 더이상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이날의 산행은 덕산재에서 마무리했다. 산을 오르내림이 신체의 고생을 각오하는 거라지만, 몸을 상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생업이 있는 사람들인만큼 무리해서 산행을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뜻깊은 산행이었다. 봄날의 대간길은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다녀온지 불과 3일이 지난 지금, 나에게 남은 기억은 고통보다는 기쁨에 더 가깝다. 산에서 만난 바람, 공기, 물, 그리고 새소리와 야생화들, 사과꽃과 그 사과꽃 같은 웃음을 가진 사람들의 기억, 이 모든 것들이 다음 산행을 가라 등떠민다.
(저는 이번에 모두 진보 후보에게 투표를 할 생각입니다. 사표는 없습니다. 길게 보고 먼 장래를 위해 진보후보에게 투표해 주세요^^)







지난번 덕유산 산행에서 본 운해

지난번 덕유산 산행에서 본 운해



여차저차 하다 보니 4월 3일(토)로 일정을 잡았다. 올 초에 다시 백두대간 길을 걷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가급적 한달에 한번씩 가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가정사며 회사일이 그렇게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내가 양보하고 맞추어야 할 일이 많다. 그만큼 나는 아주 작은 존재다. 하지만 나 하나쯤 빠진다고 일을 허투로 하거나 게을리 해서도 안된다. 그만큼 나는 중요한 존재라고 위안한다.

또, 백두대간 종주는 내 생의 목표이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남한내 백두대간 길을 천천히 밟아나갈 것이다. 생이 이어지고 남북이 연결된다면 백두산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서 걷는 길이다.

이번 구간은 큰 산이 품은 길도 아니고 멋드러진 풍경이 있는 곳도 아니다. 찾아오는 이들은 나처럼 대간꾼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길은 천상 혼자서 가야 한다. 이번에야 말로 봄꽃들과 다정히 인사하며 휘파람 부르며 봄의 기운이 깃든 산속 길을 오롯하게 걷겠다. 구름을 벗하고 바람에 흔들리며 지나온 길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제법 긴 산행이 될 듯하다. 하루에 걸어야 할 길이 21km가 약간 넘는다. 도상에 제시된 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예상 산행 시간은 약 11시간 10분이 걸릴 듯하다. 여기에 휴식 시간과 점심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새벽 동틀 때 쯤인 오전 5시 30분부터 산행을 시작해 해가 저물기 전인 오후 5시 전에 끝낼 생각이다.

꽤 긴 산행이며 여지껏 하루에 걸었던 거리들 중에서 가장 긴 거리다. 지난 산행에서도 버거웠던 것을 생각하면 솔직히 무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기에 만약을 대비해 덕산재에서 탈출할 생각도 하고 있다.

산길의 특징은 여러개의 재(고개)를 넘는다는 것이다. 산행도 빼재에서 시작해 부항령(고갯길이다)에서 끝난다. 중간에 된새미기재, 호미골재, 소사고개, 덕산재가 있다. 소사고개와 덕산재는 아예 차들이 지나는 도로이다. 그만큼 오르내림의 부침이 심할 듯한데, 그중 삼봉산에서 소사고개로 쭉 떨어졌다가 다시 초점산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가 가장 힘들 듯싶다.

4월 3일의 무주-김천 지역 날씨는 구름 조금에 아침 최저 기온 영상 2도, 낮 최고 기온 영상 15도로 일교차가 심할 것으로 보인다. 등산 당일 비소식은 없지만, 수요일과 목요일 비 예보가 있어서 길이 진창이 되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백두대간을 타다 보면, 가장 복잡한 게 교통편이다. 비용의 대부분도 교통비가 차지한다. 이번에도 역시 교통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우선 서울에서 빼재까지 가는 교통편은, 일단 거창까지 시외버스(남부시외버스터미널 막차 23:00분, 19,400원)를 이용한다. 그리고 다시 거기서 택시를 이용(네이버에서 계산한 메타요금으로는 19,900원/27.23km이나 부르는 요금은 따로 있는 듯, 3만원)해 이동할 생각이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도 복잡하다. 부항령에서 김천의 콜택시를 부른다. 이 경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택시비로 35,000원을 불렀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지도 검색을 통해 나온 택시요금은 약 28,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 역시 웃돈을 부른 듯하다. 거기서 김천역에서 기차를 이용해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김천역에 도달하는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지만 김천역에서 서울가는 막차는 23:35(15,400원)까지 있다. 참고로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고속버스는 18:00가 막차인 듯하다.

이래저래 왔다갔다 교통비로 10만원을 채우는 셈이다. 이때 인원이 2~4명이 된다면 택시비를 나눌 수 있어 부담은 줄어 들 수 있다. 하지만 경험상 이마저도 뒷풀이 비용을 생각하면 같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함께 하는 산행을 통해 인간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다. 반면 혼자서 오랜 사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므로 이것 역시 비용으로 책정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2008년 7월 9박 10일 지리산-덕유산 종주 이후 2년 만의 나홀로 산행이라서 좀 떨린다. 이번에는 더 크게 외쳐야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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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 신풍령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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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백두대간 24구간 중 네번째 구간 후반부 : 백암봉-빼재 구간 종주
날짜 : 2010년 2월 27일





| 동행 : 두 사람 그리고 구름                                          

두 사람. 한 사람은 대학 동기이며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 또 다른 한 사람은 내 오랜 직장 상사. 한때 한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었다. 모두 출판편집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만나면 술 한잔 나눈다. 일복 터지는 직장 생활을 서로 위로하는 일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이 잘 맞는다. 이번에도 인연이 닿은 건지 셋이 함께 산행을 떠났다. 반은 내가 꼬신 것이고 반은 흥에 겨워 따라온 사람들. 그들에게 이번 산행은 즐거움과 힘겨움을 오가는 롤러코스트 같았을 것이다.

내 친구는 나와의 산행이 거의 20년 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지리산을 다녀온 후로 처음인 셈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겨울산에 한번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재작년엔가 겨울 산행 장비를 다 마련했다며 빨리 산행 날짜 잡으라고 닥달을 했다. 그래서 다늦은 이번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극적으로 산행에 합류한 것이다. 그는 산행을 통해 여유를 찾고 싶어 했다. 주말마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 살던 그에게 이번 산행이 작은 돌파구가 되었을까?

그리고 직장 상사 김차장님. 인연으로 따지면 벌써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셈이다. 한솥밥을 먹는다지만 직장 상사라는 어려움도 있다. 다만 드러내고 살면 불편한 것들은 바닥에 내려놓고 사는 것이 지혜다.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얼굴 못 보는 날도 있다. 딱히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닐지라도 못 보면 심심한 얼굴이다. 게다가 그의 자리는 모니터 세개로 완벽하게 쌓은 철옹성 같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참을성인지 무심한 건지 헷갈린다. 다행히 이번 산행을 통해 똘똘 뭉쳐져 있던 자신을 살짝 풀어 헤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 역시 여유라면 여유겠다.







오랜 세월을 가끔, 또는 자주 보았던 사람들이다. 비슷한 공간에서 종종 얼굴 마주하면 닮은 구석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닮은 것은 시간 뿐. 우리에게 과거는 멋들어진 추억이 되었고, 현재는 물샐틈없는 빡빡한 일상이며, 미래는 가늠하기 힘든 불안이 지배하고 있다. 업계 사람이 아니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농담들로 서로를 위안하기도 하지만, 공공의 비밀을 이용하여 급소를 가격할 수도 있다. 전쟁 같은 일상을 뒤로 하고 산에 왔다. 산에서는 그런 일상들이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발 아래 구름이 있고, 그 구름 밑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듯이, 우리는 저 험한 세상사를 벗어나 구름 위에서 노니는 재미에 취해 하루를 흠뻑 적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긴다.

우리 셋 외에 부지런히 우리를 뒤쫓던 동행이 있다.





"너는 이만한 운해 풍경을 본 적이 있니? 산에 많이 다녀봤으니 본적 있겠구나."
"아니, 나도 이런 운해는 처음이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동안 폭포수처럼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던 구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멀리 도도한 백두대간의 산맥들을 구름바다가 넘실거리며 조금씩 집어 삼켰고 멀리 있는 산들은 그속에 갇힌 외로운 섬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저 위에 뛰어내리면 푹신푹신해서 하나도 안다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우리는 구름 속에 갇혔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방향으로 빠졌을 때부터 이미 발목까지 쫓아왔더랬다. 처음에는 그저 멋진 풍광이었던 구름이 슬슬 빗방울을 뺨에 긋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점차 적지 않은 빗방울을 쏟아냈다. 빼재에 도착한 우리들은 대부분 흠뻑 젖어 있었고 엄습해 오는 정월대보름날의 밤공기에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 雲 좋은 날 -
함께 간 이의 표현이다. 비구름에도 갇혀 보았으면서 여전히 향적봉과 중봉에서 만난 구름의 바다를 잊을 수 없었나 보다.








|| 8개의 봉우리와 3개의 고갯길을 지나다                                          

이번 백두대간 길은 전체 24구간 중 제 4구간의 뒷부분으로 도상 거리는 13.1km에 불과하다. 비록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타고 손쉽게 향적봉에 올랐지만, 이후 구간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우리가 넘었던 봉우리만 8개이며 거쳐간 고갯길만 3개나 된다. 그만큼 오르내림의 부침이 심했던 구간이다.

봉우리 이름들은 다른 지방에서 보는 흔한 봉우리 이름과는 달랐다. 향적봉은 그렇다 쳐도 중봉, 귀봉, 못봉, 대봉, 빼봉 등의 외글자 이름 봉우리들은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그나마 백암봉이나 갈매봉은 두글자 봉우리 이름이라 그런지 생소한 느낌이 덜하다.





지나온 고갯길 이름은 월음재와 횡경재, 그리고 마지막 기착지인 빼재(신풍령)이다. 이렇게 여러 봉우리와 고갯길을 지나오다 보니 쉽게 다리에 무리가 가기 마련. 사람들은 하나둘씩 말을 잃어갔다. 일행은 향적봉에서 송계삼거리까지 풍광에 심취해 신나게 걸었다. 그러나 막판 빼봉을 전후로 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 해가 진 산속을 무언가에 쫓기듯 휘적휘적 걸어야 했다. 

백두대간을 탄다고 하니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여 산을 오르려 하느냐고 묻곤 한다. 산을 타는 일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정신력을 극한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에서 젖먹던 힘을 끌어 내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체험이다. 나아가 나약하고 겁많은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짭쪼름한 땀방울이 볼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오는 경험, 물론 권할 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산행의 묘미가 있다. 스스로 찾아가는 땀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정화, 나를 깨끗이 하는 힘이 산에 있다. 정화 능력. 숲은 단순히 공기만 맑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몸과 마음까지 정화한다.

산의 봉우리들은 멀게 있다고 느껴져도 가다 보면 가깝다. 저기까지 언제 갈까 싶다가도 가다 보면 의외로 가깝다. 현대인들의 거리 감각은 사뭇 다르다. 개봉동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먼데서 오냐, 시간은 얼마나 걸리냐며 묻지만, 실제 거리 12.1km를 말하면 그렇게 가깝냐며 반문하고, 한시간 이내에 온다고 하면 내가 무척 속도를 내며 달리는 줄 안다. 도시민들의 거리는 이미 시간 거리로 판단되며 실제 거리 감각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산은 그런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운다. 자연의 소리, 바람의 방향, 동서남북의 방위, 가야할 길과 표지,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와 그에 소요되는 시간 등등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내 몸의 오감을 이용해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만큼 산도 나를 느낀다. 그냥 지나치던 바위 옆에서, 언제부턴가 앞발을 쫑끗 세우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다람쥐도 그제서야 눈에 띄며, 발치에 치이는 오종종한 들꽃들도 나를 반기고, 산새들도 경계심을 풀고 내 주위에서 휘파람을 불러댄다. 멀리 까마득한 계곡에서부터 쓸고 올라오는 바람에는 온갖 산의 흔적들을 안고 달려 온다. 그 순간은 나도 자연이 되는 것이다.
 








||| 길에서 만난 봄 그리고 떠나는 겨울의 흔적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따뜻했고,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날이었다. 길은 길고 길었던 지난 겨울의 흔적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따뜻한 양지녘의 길들은 지난 겨울의 눈들이 녹아 진창을 만들었고, 응달진 곳은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을 이루었다. 준비해 간 아이젠을 차는 것도 번거롭고 벗고 다닐려니 아슬아슬했다.

산행 초반에는 날이 참 좋았다. 혹시나 해서 두껍게 껴입었던 옷들을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구름은 저 밑에 깔려 있었고, 햇살은 완연한 봄기운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뒤에서 쫓아오던 구름들이 기어이 우리를 뒤덮더니 결국은 비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잠깐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누구는 무릎이 아파 쩔쩔 매기도 했다.





길이 눈길에 묻힐 수 있는 겨울이 특히 길을 잃기 쉽다. 앞서 가던 친구도 그만 눈이 뒤덮은 능선길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가던 길의 끝에 있어야 할 길이 사라지고, 아득한 잡목숲만 앞을 가리고 있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도중 마침 우리와 같은 길로 산행을 하던  이의 도움으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덕유산에서도 대간 길은 대간꾼이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길이라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혹여 우리가 눈밭에 내놓은 발자국 때문에 다른 이가 길을 잃을까 걱정이다.

길은 이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렸다면 좋은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공간 감각 기능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한다. 만일 그 중 하나라도 없다면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본 받을 만한 스승, 지혜로운 친구, 자신감이 없다면 다시 길을 되짚어 나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다시 시작한다.

이미 만들어진 길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이다. 내 뒤로 길이 점점 길어질수록 앞에 남은 길은 짧아진다. 한걸음 한걸음이 산행을, 인생을 완성한다.






간간히 나타나는 길표지들이 반가운 것은 초행 산길의 유일한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앞서간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이며 쉽게 지워져 버리는 산길의 충실한 나침반이다. 한동안 길표지가 나오지 않으면 갑작스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혹여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 그러다가 작은 길표지라도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991년 지리산에 처음 갔을 때도 길표지들은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지금 지리산에서는 길표지가 대부분 사라졌다. 길표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길이 뚜렷하고 표지판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길표지들이 자연을 헤친다. 하지만 백두대간 길은 다르다. 곳곳에 빠지는 샛길이 있고, 때로는 잡목과 풀들로 길이 가려지기도 하며, 엉뚱한 표지로 인해 길을 잘못들 수 있도  있다.

길은 그래서 기대와 두려움 모두를 동반한다. 길이 인생에 빗대어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은 후회로 점철되며, 가야 할 길은 그래서 두려움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럴 때 나를 안내하며 지켜줄 동행과 표지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길임에 틀림없다.

- 끝 -












지난해 12월에 가려했던 덕유산 백두대간 코스 산행을 다시 가려고 합니다.  지난번 덕유산 산행에 관련된 이야기는 '백두대간9 -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를 참고해 주세요. 함께 가실 분은 eowls@eowls.net 이나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사진은 2008년 덕유산에서 찍었던 사진.

백두대간 4~5구간 : (덕유산)백암봉-덕산재 산행


1. 대상지 : 덕유산 향적봉 출발 백암봉 시작 덕암재 도착


2. 기간 : 2010년 2월 27일(토)부터 2월 28일(일)까지(1박 2일)


3. 참석자 : 강대진 외 3명까지 가능


4. 장비 계획

○ 입을 것 : 등산화, 등산복 상하의, 속옷 상하의 2벌씩, 내의 상하의 1벌씩, 방한 재킷, 양말 3켤레, 털모자, 안면마스크 또는 마스크, 폴라, 장갑. 수건, 임시 담요, 판쵸의,

○ 먹을 것 : 버너, 코펠, 캠핑가스 3개, 라면3개, 쌀, 햇반2개, 고추장, 김, 육포, 장조림, 사탕 1봉지, 영양갱 3개, 수저와 젓가락,

○ 구급약 : 진통제, 뿌리는 파스, 붙이는 파스, 압박붕대, 해열제, 대일밴드 등

○ 산행 장비 : 배낭, 보조가방, 랜턴, 스틱1~2개, 아이젠, 스패치, 보온병, 두루마리 휴지, 칫솔, 비닐봉투, 라이터, 볼펜과 수첩 등 필기도구.

○ 기타 자유 장비 : (있어도 되고 없어도 상관 없음) 카메라, 손난로, 휴대폰, 라디오, MP3 등등

○ 숙박을 위한 준비 : 없음(민박이나 산장 숙박 예정)


5. 상세 일정

○ 12월 19일(토)

  ~ 04:40 구로역 도착 : 서울 → 무주리조트(경기 대원고속,02-575-7710)

  ~ 04:50 구로역 출발(구로디지털역 1번출구 LPG충전소 앞)

  ~ 08:00 무주리조트 도착

  ~ 09:00 리조트 아침 식사

  ~ 09:30 곤돌라 탑승(편도 8,000원)

  ~ 10:00 설천봉

  ~ 10:20 향적봉

  ~ 11:00 백암봉(1503, 송계 삼거리)

  ~ 12:20 귀봉(1390)

  ~ 14:00 못봉(1343)

  ~ 14:40 월음재(달음재)

  ~ 15:20 대봉(1263)

  ~ 16:00 갈미봉(1211)

  ~ 16:40 고사목과 헬기장

  ~ 17:30 빼재(신풍령) 도착_산행 마무리

  ~ 18:30 작은골 산장 도착 후 휴식

 ○ 12월 20일(일)

  ~ 05:00 기상

  ~ 06:30 아침 식사 및 출발

  ~ 07:00 신풍령 휴게소

  ~ 07:50 된새미기재

  ~ 08:40 호절골재

  ~ 09:10 삼봉산(덕유삼봉산_1254)

  ~ 09:40 오두재갈림길

  ~ 10:40 소사고개

  ~ 12:10 삼도봉(초점산_1249)

  ~ 13:10 대덕산(투구봉_1290)

  ~ 13:30 점심 및 휴식

  ~ 14:50 덕산재

※ 첫날 코스가 비록 곤돌라로 올라가는 코스이지만, 능선길이 꽤 복잡하고 오르고 내리는 일이 잦아서 체력 소모가 심하다고 함. 시간상으로도 꽤 빡빡하게 잡혀 있어 힘들 것으로 예상됨. 둘쨋날은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을 생각해 서둘러야 한다.


6. 예상되는 비용

○ 교통비 : 54,500원

  - 서울-무주 리조트 : 20,000원

  - 무주리조트 곤돌라 탑승비(편도) : 8,000원

  - 덕산재-김천행 버스 : 1,500원 또는 택시 : 10,000원(☏대덕택시 : 054-434-2009)

  - 김천-서울 : 16,500원(우등)

○ 숙박비 : 30,000원

  - 빼재 작은골 산장(055-941-1110 010-6314-5810) : 30,000원

○ 식사 및 영양식 : 27,000원

  - 1일 아침 식사(무주리조트 안) : 6,000원

  - 1일 점심 (간이식-빵) : 2,000원

  - 영양식(영양갱과 쵸코바) : 2,000원

  - 사탕 1봉지 : 1,000원

  - 1일 저녁(산장 식당 이용) : 7,000원

  - 2일 아침 6,000원

  - 2일 점심 (간이식-빵) : 2,000원

  - 영양식(영양갱과 쵸코바) : 1,000원

○ 기타 20,000원

  - 예비비 : 20,000원


>>>> 총 131,500원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9

- 삿갓재대피소 >> 동엽령 >> 송계삼거리 >> 향적봉 >> 무주리조트(약 10.7km)

-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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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뒤에 남는 아쉬움들, 연민, 후회, 집착... 털어버리고 싶었던 감정들이 심장 가장 안쪽에서 비를 맞고 있다. 소나기처럼 그냥 지나가다오. 그저 한바탕 비를 맞고 푹 젖어버리면 더이상 비를 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했다. 이날 예정된 목적지는 향적봉 대피소. 거기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날 빼재로 내려가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날 갈 거리는 짧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다. 배낭에만 우의를 둘러주었다. 다시 신발끈 꾹 메고 길을 나섰다. 이날만큼은 동행이 있다. 함께 삿갓재 대피소에 묵었던 아저씨다. 아저씨는 향적봉까지 가고 거기서 하산하겠다고 했다. 짧은 동행길이지만, 헤어지게 되면 몹시 흔들린다.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타협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어차피 덕유산 향적봉을 찍으면 다 온 거니까. 그리고 괜히 하룻밤을 더 묵는 것보다 그냥 하산하자. 다음에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와 나머지 구간을 계속 가면 되겠지.’

‘아냐, 그래도 처음 계획한대로 가야겠어. 그냥 하루 푹 쉬면 내일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가 먼저 출발한 다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많이 지쳤던 것일까.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니 그 생각은 더욱 강했다. 가만히 있으니 드는 잡생각이다. 일단 걷자. 부지런히 아저씨 뒤를 쫓았다.  

 









 


 

삿갓재 산장을 나오자마자 또 급한 오르막길이다. 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장대비로 바뀔지 알 수 없다. 무룡산에 오르기 전, 먼저 출발했던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우의를 꺼내 배낭을 감싸고 있었다. 무룡산에서 내려서면 순탄한 마루금길이다.  


간간히 비가 쏟아졌다. 기상이 불안정한가 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천둥번개는 멀리서 친다. 9시 20분 동엽령에 도착했다. 넓은 동엽령 지대는 짙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동엽령에서


 송계삼거리 이정표




 함께 동행한 아저씨


 

 왼쪽으로 가는 길이 신풍령 가는 길, 오른쪽은 삿갓재에서 내가 올로온 길.



동엽령에서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마침내 향적봉이 눈앞이다. 여기서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백두대간길이 아니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쪽으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 길이다. 그러나 덕유산 주능선을 타면서 향적봉을 오르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닐까. 대간길을 잠시 미루고 향적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다. 오전 중에 개인다는 일기예보는 역시 여기 덕유산에서는 통용될 수 없나 보다. 길가에는 간간히 원추리 꽃망울이 길쭉하게 나있다.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 보통 때면 활짝 개화를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텐데 날씨가 안 좋아 개화시간이 좀 늦다. 덕유산도 지금 이맘때면 원추리가 한창이다. 귀품 있는 모양새며 도도한 줄기가 꽤나 운치가 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중봉에서

 

백암봉을 지나 제2덕유산이라는 중봉을 넘었다. 잘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는 데 바람이 거세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중봉을 넘어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에 오르기 전 향적봉 대피소에 들렸다. 이곳에서 일단 점심을 해결했다. 덕유산 산장 안의 매점에서는 지리산과 달리 사발면을 판매한다. 햇반과 사발면을 주문하면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나오고 사발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최소한의 먹을 거리는 충분히 사서 해결할 수 있다. 젖은 신발을 벗도 양말도 대충 씻어서 꾹 짰다. 다시 신으려니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침 함께 동행했던 아저씨가 새 양말을 꺼내주며 신으라고 하신다. 함께 비바람을 뚫고 왔던 우정의 표시였을까.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발은 젖었어도 양말이라도 갈아 신으니 한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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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다시 향적봉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이곳에서 자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배낭도 산장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향적봉으로 올랐다. 백암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종종 주목을 만날 수 있었다. 주목은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덕유산에도 300~500년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특히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관상용으로도 제배되고 있지만 정말 멋진 주목을 보기 위해서는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덕유산의 설경이 멋진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주목의 설경도 꼽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말이 따라 붙는 주목의 고아하고 옛스러운 모습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다음에 겨울 덕유산을 오면 반드시 이 주목의 모습을 내 눈안에 담아 볼 것이다.


마침내 향적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려버렸다. 분명 까마득한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구름이 주는 신비함도 이쯤 되면 서운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마침내 덕유산 향적봉까지 왔는데,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향적봉에서 사진을 찍던 노인 한분과 만났는데, 그분도 오전 중에 날이 개일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올라오셨다고 한다. 이러다가 허탕만 치겠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향적봉은 바로 밑에까지 곤돌라로 편하게 올라올 수가 있어 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을 찾아 온다. 일출이나 일몰 등의 풍경사진이 인기다. 이맘 때쯤에는 원추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노인이 알려주었다.









 주목






 

삿갓재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아저씨는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시겠단다. 바람이 많이 불어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운행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아저씨와 작별하고 다시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왔다. 다시 갈등이 시작됐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신풍령쪽을 탈까. 아니면 좀 무리가 되어도 신풍령으로 지금 출발할까. 그냥 향적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 서울로 올라갈까. 무리를 해서 신풍령(13.1km)까지 간다고 해도 밤늦게나 떨어질 테니 서울 올라가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대피소에서 하루를 쉬려고 하니 시간이 아깝다. 결국 난 다시 배낭을 메고 향적봉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하산을 해 오늘 안으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남은 구간이 아쉽긴 하지만 향적봉에 왔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백두대간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향적봉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곤돌라 승강장이 나온다. 10m 앞도 안보이는 구름 때문에 승강장을 찾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승강장을 만나니 반갑다. 편도 7000원의 표를 끊고 입구에 서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곤돌라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의 곤돌라를 골라 올라타는데 승객은 나 하나다. 서서히 산을 내려가는 곤돌라 안에서 온 몸의 힘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굳어진 힘이었을 거다. 지상에 가까워올수록 구름은 걷히고 맑은 대지가 나타났다. 산 아랫동네는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 내가 타고온 곤돌라. 왼쪽의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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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무주리조트 웰컴센터에서 서울 잠실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에 있으며 요금은 15000원이라고 한다. 가격도 싸고 바로 이곳에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남아서 웰컴센터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충 머리와 얼굴 팔 다리도 씻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보니 가관이다. 염소수염은 길게 자라 있고, 머리는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데다,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으니 산도적이 따로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중간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악천후 속에서도 이렇게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운이다.

 

멋진 날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혼자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입가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삿갓재 노을에 기대어 서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8

- 육십령 >> 할미봉 >> 장수덕유산 >> 남덕유산 >> 삿갓재대피소(11.9km)

- 2008.07.02.




아침부터 안개가 심상치 않다. 강수확률은 30%. 비가 올까? 완전히 마른 신발을 신어봤던 게 언제였더라. 수염을 자른 게 언제였더라. 입고 있는 옷도 매일 똑같다. 다행히 매일 세탁을 해서 입지만 물세탁만 한 거라서 냄새도 좀 난다. 머리카락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자라고 있다. 손톱의 때는 양호하다지만 끼고 있는 장갑에서는 퀴퀴한 땀내가 진동을 한다. 행색만 보면 산사람 그대로다. 도시에 나간다면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을 거다. 이렇게 이틀은 더 가야 한다. 여행이 끝난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5시, 식당에서 차려준 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하는데 촛불집회 관련 뉴스가 나왔다. 주인할머니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 왜 저럴까라며 혀를 찼다. 단순히 안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드렸다.


“할머니, 옛날 어르신들도 사람이 먹는 소고기의 국물하나라도 소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미국소는 육식을 한단 말이에요. 게다가 안 먹는다고 안 먹을 수가 없는 게 소잖아요. 어떻게든 우리 식탁에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설명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 정서탓일까. 세상과 떨어져 여행하겠다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다. 몇 가지 간편요리를 사려고 보았는데, 대부분 유통기한을 훨씬 넘었다. 씁쓸했다. 결국 라면만 2개 사 넣었다.


육십령고개로 다시 올라선 시간은 6시. 고갯마루는 안개로 10m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량 소통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널찍한 도로를 건너니 기분이 묘하다. 여기는 선계와 세속의 경계선일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는 급경사가 보인다. 다시 백두대간이 시작됐다.


▲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본 육십령 식당. 저 트럭 뒤에 육십령 식당이 있다.


▲ 육십령 고갯마루. 전라북도 표지판 뒤에서 백두대간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할미봉까지는 단단한 암봉이다. 암봉이 단단하지 않은 게 어디있겠냐만,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밧줄이 매달려 있는데 만일 밧줄이 없다면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난코스다. 스틱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만일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타는 사람이라면 스틱은 배낭에 접어두는 게 좋다. 그리고 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동안 자칫 딴생각을 하거나 허투루 발을 딛는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암봉을 간신히 지나고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기어이 한바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행히 스틱을 잘 잡아서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지만 스틱의 끄트머리 부분이 살짝 휘어졌다. 그러나 이는 다음에 올 더 큰 문제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아찔한 암봉을 오르고 내린 다음에서야 내 배낭에 물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 한통은 암봉에서 떨어져버렸나 싶었는데 예비 물통마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물을 다시 채우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누다가 물통을 깜빡 잊은 것이다. 아마도 식당 테이블에는 꽉 채워진 물통 두개가 머쓱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육십령에서 2시간 가까이 걸어온 길이다. 게다가 할미봉이라는 두 번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암봉을 넘어왔다. 그리고 앞으로 3시간 가까이 가야 샘이 있다. 둘 중의 하나다. 다시 1시간 반을 걸쳐 할미봉을 넘어 육십령에 가서 물통을 찾아오던가, 3시간을 더 참고 장수덕유산까지 가던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다시 할미봉을 넘고 싶지도 않고, 물통 때문에 왕복 3시간의 체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결국 장수덕유산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갈증은 정말 지독했다. 그럴 때면 나무들에 맺힌 물방울들로 갈증을 채웠다. 나뭇잎 중에는 그래도 침엽수 종류이면서 잎이 넓은 게 좋았다. 활엽수 쪽은 굉장히 까칠하고 맛이 이상한데, 참나무류의 나뭇잎들은 물방울도 잘 머금고 있고 나뭇잎도 부드러워 핥기 좋았다. 소나무 잎들도 제법 물방울이 알알이 맺혀 있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지기 때문에 마시기 힘들다. 그렇다해도 가뭄에 물 한 바가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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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 너무 심해 바위틈에 고인 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물은 마실 물이 못된다. 뜨거운 한여름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었을 것이다.

공기는 더 축축해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한바탕 쏟아 부을 기세다. 차라리 한바탕 쏟아진다면 컵이라도 대놓고 있다가 마실 참인데, 오진 않았다. 할미봉을 넘어 교육원삼거리까지 1시간 20여분의 길은 평탄한 편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장수덕유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면서 장수덕유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이정표가 샘터(참샘)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바로 내리막길을 타고 갔다. 150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내리막길이지만 바위들에는 이끼가 많이 껴있고 너덜지대를 지나는 곳에는 길이 뚜렷하지 않아 한동안 해매기도 했다.
마침내 작은 참샘을 찾았고 거기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가 반갑다.

하지만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라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물을 떠서 자세히 보니 1mm도 안되는 유충도 보였다.
급하지 않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은 물은 아니다. 샘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수질표시도 없다. 그런 물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건 내 위장의 위대함이다. 이곳에서 육십령 매점에서 구한 찹쌀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물통이 없어서 김을 넣었던 반찬통에 물을 담았다. 김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약간의 소금도 남아있던데다 기름기도 있지만 물 없이 가는 것보다 얼마나 훌륭한가.



▲ 장수덕유산에서 찍은 사진. 10m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다. 


 

물을 마시니 다시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오는 길은 가뿐하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속 가니 넓은 안부가 나온다. 장수덕유산 쪽의 조망이 남덕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구름 때문에 10m 앞도 가물가물하다. 바람도 솔찬히 불기 시작했다. 장수덕유산을 막 벗어나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잠깐 머물다가 가는 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이어 천둥번개까지 동반했다. 머리 위에서 울어대는 천둥소리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이날은 정말 산전수전 다 겪는 날이다. 물이 없어 고생하더니 물(비)이 넘쳐 또 고생이다. 남덕유산 정상부분은 암봉에 훤하게 열려 있어서 번개에 노출될 수 있었다. 결국 남덕유산은 옆으로 질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덕유산을 옆으로 비껴가면 이후부터는 또 한참을 내려간다. 큰 산이라서 그런지 오르고 내리는 부침이 심하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계단에 쭈그려 앉아 젖은 담배를 물고 있으려니 내가 생각해도 몰골이 가관이 아니다. 온몸은 흠뻑 젖어버렸고 고지대이다 보니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저체온으로 지치겠다 싶어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쉬는 시간도 편하게 못 쉬는 상황이다. 비가 오니 개구리와 두꺼비가 길바닥에서 놀고 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자 두꺼비 한 마리가 언덕으로 오르려고 바둥대는 모습이 재밌다. 빗속에서 지쳐 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월성재에서 다시 삿갓봉으로 치고 올라갔다. 역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땅바닥만 보면서 오기로 걸었다. 금방 나올 것 같은 삿갓봉은 굽이굽이 고갯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오고 천둥과 번개는 머리 위에서 위협사격을 가했다. 삿갓봉을 오르는 일도 위함하기 짝이 없다. 우회길이 있을까 싶어 지도를 보니 아주 작게 빗금이 나있다. 있다면 다행인데, 없다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삿갓봉에 오르기 직전에 옆으로 난 샛길이 나타났다. 비교적 뚜렷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삿갓재 대피소에 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계속되는 내리막길. 언제나 그렇지만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만큼 어렵다. 숨쉬기는 편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느껴지는 중압감은 오르막보다 최소한 1.5배만큼 느껴졌다.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대피소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서 삿갓재 산장의 매점문을 두드렸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 한분이 먼저 와 있었다. 산장에는 직원 외에 그 아저씨와 나 단 둘이 있었다.


▲ 삿갓재에서 바라본 조망. 나무들 때문에 그다지 좋지는 않다.


▲ 삿갓재 대피소 앞에서.


▲ 구름으로 살짝 가려진 곳 너머로 삿갓봉이 있다.

▲ 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고, 그 위로 하늘 한 구석은 비교적 맑았다.


 

▲ 삿갓재산장에서 본 또다른 풍경.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도착한 나는 먼저 젖은 등산화를 따뜻한 스팀 옆에 기대어 놓았다. 젖은 옷을 말리는 것보다 등산화를 말리는 게 먼저였다. 내일까지 마를까? 그럼 다행이지만 젖은 모양새로 봐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널어야 할 것들과 말려야 할 것들을 산장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결 낫다. 찹쌀떡으로 때운 점심 때문인지 그때부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삿갓재 산장은 제한급수를 하고 있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160m를 내려갔다 오라는데, 그게 힘들어서 그냥 급수시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덕유산은 처음이지. 예전 어느 겨울에 차를 타고 가는데 멀리 보이는 덕유산의 설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겨울에 오르기 전에 한번 여름에 혼자 와 본거야.”


덕유산은 겨울이 멋진 산으로 유명하다. 무주리조트 쪽의 스키장 때문만은 아니다. 바위로 된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주는 운치와 오래된 주목에 쌓인 설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들었다. 시간이 남는 우리의 얘기는 이런저런 얘기로 나아갔다. 내가 지리산에서부터 왔다는 얘기가 아저씨의 호감을 자극했는지, 아저씨의 인생얘기가 술술 나왔다.


“한때 사업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쫄딱 망했어. 빚더미에 앉아 있었는데도 몇 년간 살 수 있었던 건 내가 여기저기서 야생난을 많이 구해다 놨기 때문이야. 집에 있던 야생난을 팔아서 몇 년을 먹고 살았으니까, 꽤 많이 모았었지. 비싼 건 천오백만원까지 받았어.”

“거의 산삼 한뿌리 값이네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구하셨어요.”

“10억짜리 난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뭐. 오래전부터 야생난 구하러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외딴 섬도 가보고 첩첩산중에도 들어가 보고. 온갖 곳을 가지만 사유지나 국립공원, 도립공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는 안가. 지금도 기아사람들과 야생난 모임을 하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일제 GPS가 달린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다니면서 난을 찾고 있지. 좋은 난이 발견된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고 몇 년 뒤에 다시 와보려는 거야. 이게 돈이 되거든. 옛날부터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심마니처럼 다니다 보니 지금도 이 나이에 산을 제법 타는 편이지.”


아저씨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노인의 그늘은 없었다. 영각사에서 출발해 1시 넘어서 삿갓재에 도착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빨리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한 사업도 실패했지. 그리고 노숙생활도 3년이나 했다우. 노숙이란 게 힘들긴 하지만 그게 몸에 배면 또 빠져나오기가 어렵지. 그러다가 동생이 소개시켜준 기아자동차의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 이번에 휴가를 내서 혼자 찾아온 거야.”


백수로 살고 있는 나도 언제부턴가 지금의 생활에 조금씩 안주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일상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은 삶의 철학을 흔들어 놓는다. 내 백수생활도 어디에선가 그칠 것이다. 그 그침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두려울 뿐이다.


5시 즈음 비가 그쳤다. 내리는 기세로 봐서는 하루 종일 올 것 같더니 의외로 싱겁게 그치고 말았다. 저녁식사로 라면에 햇반을 말아먹는 게 식사의 다였다. 허기가 반찬이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비가 그치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가니 제법 조망이 나타났다. 비 때문에 공기는 맑고 청아했다. 7시 반이 되자 노을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데, 정말 멋진 노을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에 빠져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빛과 구름의 향연에 빠져 들었다. 몸속에 누적되어 있던 고단함이 노을 속에서 녹아들어갔다. 이렇게 아름다울려고 그렇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던 것일까. 삿갓재의 노을 속으로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산죽길에서 만나는 바람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7

- 중재 >> 백운산 >> 영취산 >> 깃대봉 >> 육십령(19.1km)

- 2008.07.01.






꿈도 꾸지 않은 깊은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도 상쾌하다. 태생적으로 낯선 곳에서도 잠을 잘 잔다. 산속에서 자고 나면 기분은 늘 좋다. 며칠전까지 내 어깨에는 항상 파스가 붙여져 있었다. 이제는 파스가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어깨가 단단해졌다. 무거운 배낭과 몸무게를 지탱했던 무릎과 발목은 신기할 정도로 멀쩡하다. 넘어지고 까지는 일이 없었다. 몸은 이미 자연과 공명하고 있었던 것일까.


6시에 민박집을 나왔다. 짙은 안개가 중재 마을을 살포시 보듬어 안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이번에도 차량으로 고갯마루 근처까지 배웅해 주셨다. 중재에서 이날의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중고개재까지는 가뿐한 산책로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짙은 구름 때문에 저녁날씨가 어찌될지 걱정될 뿐이다. 환국이가 보내온 기상정보에 따르면 오후에는 비올 확률이 높다.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이유다. 이날은 덕유산 초입인 육십령까지 달려야 한다. 어제처럼 먼 거리는 아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 중고개재에서



중고개재부터는 백운산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내 발걸음에 놀란 나비가 팔랑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내 한걸음이 길섶의 작은 세상을 뒤흔드나 보다. 조그마한 날벌레들이 발 아래에서 요란하게 춤을 춘다. 내 귓가에서 웽웽거리며 날아다닐 때면 너무나 귀찮다. 손으로 휘휘 저어보지만 금방 다시 날아든다. 비가 오면 모두들 풀잎 밑으로 숨어들지만, 날씨가 좋으면 이렇게 사람을 괴롭힌다.


백운산을 치고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숨이 가슴을 조여올 때면, 갈비뼈를 열어서라도 숨을 더욱 크게 쉬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뜨겁게 데워진 발바닥도 떼어서 냉동실에 잠깐 넣어놓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숨을 가다듬고, 발바닥을 나무에 퉁퉁 쳐주면서 위로해 준다. 어차피 올라야 할 산이라면, 기꺼이 즐기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아무도 없으니 혼자서 노래라도 불러본다. 새소리의 엇장단이 나쁘지 않다. 땀이 흐르는 뺨과 목덜미로 바람의 애무가 간지럽다. 기분이 좋다. 힘들었던 숨쉬기의 고통은 금방 가시고 입꼬리가 가볍게 말려 올라간다.


8시 10분. 마침내 백운산에 올랐다. 정상은 작은 공터를 이루고 있어 사방으로 거칠 것이 없다. 동서남북이 훤하게 트여있는 봉우리다. 멀리 지리산도 가물가물 펼쳐져 있다. 그 까마득한 하늘너머에서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백운산 정상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이 모두 보인다.


▲ 백운산에서부터 간간히 나타나는 산죽길.


▲ 영취산 정상의 갈림길.

▲ 영취산 정상의 표지석.

백운산에서는 날이 좋으면 지리산과 덕유산 모두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대간 길은 영취산까지 완만한 능선길이다. 그러나 여느 능선길과는 다른 멋이 있다. 바로 산죽길이다. 책에는 영취산 이후부터 나온다고 나왔는데, 백운산을 넘어가자 내 키보다 더 자란 산죽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다. 또 책에서는 산죽이 너무 빽빽해 헤치고 나아가기 힘들다고 되어 있는데, 다행히 등산길 확보를 위해 좌우의 산죽 일부는 제거해 놓은 상태였다. 산죽이 주는 시원함과 고즈넉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백두대간에서 소나무숲길과 함께 여기 산죽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이다. 산죽밭은 영취산 넘어서도 간간히 나왔다.

 

10시 영취산 정상에 올랐다. 여기서 300여m를 내려가 무령고개에 가야 샘이 있다. 내려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가지고 있는 물은 많지 않았다. 지도를 보니 덕운봉을 지나 능선 가까이에 샘이 있다고 나왔다. 지도를 믿고 더 나아갔다. 하지만 덕운봉을 한참을 지나 민령 가까이 가서도 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통의 물도 거의 떨어져갔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물이라도 좀 얻어보겠지만 어제처럼 산속에서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977고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샘을 찾으려다가 자꾸 미루던 점심이라 매우 허기져 있었다. 또 물 없는 점심이라니... 그렇게 신발도 벗고 점심을 먹고 있으려니 내가 왔던 숲에서 부스럭거리며 사람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린다. 한분이 힘들여 올라오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분도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물을 얻어볼까 했더니 나처럼 중재에서 출발해 그분도 물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갈증을 참는 일도 쉽지 않다. 점심을 먹고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분이 먼저 출발하고 나도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할 때였다. 또 한 사람이 봉우리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분은 영취산에서 오신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물이 풍부했다. 그분 덕분에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고 사람들 신세도 많이 진다.


영취산에서부터 산죽길은 이전보다 더 장관이다. 백운산과 깃대봉 사이에 있는 곳곳의 산죽길은 대나무 내음을 물신 풍기면서 풋풋한 바람을 살랑살랑 내보내준다. 산죽 뒤로 크게 자란 나무들이 자연스러운 그늘을 이루어 주어, 사자처럼 사나운 햇살도 여기서는 털복숭이 강아지처럼 부드러워진다. 한참 쉬고 있으려니 참새보다 작은 새들이 산죽 사이로 오가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귀엽다.


민령서부터는 급한 오르막이 다시 열린다.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깃대봉에 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에서는 덕유산의 산줄기가 더욱 명확하게 들어온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여정의 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가깝게는 할미봉이 불쑥 솟아 있고, 그 뒤로 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가깝다. 다음날이면 할미봉을 넘어 본격적인 덕유산 자락으로 들어가게 된다.


▲ 쉬고 있으면 초록의 나무그늘이 나를 달래준다.


▲ 깃대봉에서 바라본 덕유산 자락. 멀리 서봉(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이 보인다.

▲ 영취산에서 출발한 등산객이 깃대봉에서 찍어준 사진.  


▲ 육십령 마루로 내려서서  


▲ 육십령 식당. 백두대간 종주 등산인들이 많이 찾아 왔나 보다.  



깃대봉을 넘어 조금만 내려가자 샘터가 나온다. 물이 풍부한 곳이다. 이곳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팻말도 어여쁘게 만들어 놓았다. 물이 맑고 맛있다. 갈증이 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바위틈에서 힘차게 솟아나오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기 때문이다.


샘터를 지나 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계곡으로 내려가는가 싶지만 곧 능선길을 만난다. 다 왔다 싶은데, 한참을 가야 육십령이다. 지루하고 고단한 길이다.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동쪽(서상쪽)으로 50m만 가면 식당 겸 매점과 민박을 겸하고 있는 육십령식당이 있다. 현금이 얼마 없어 카드로 계산해야하는데 혹시 안된다고 하면 천상 서상읍이나 장게면으로 내려가야 할 판이다. 다행히 주인 할머니는 가능하단다. 이날은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다. 육십령 마루에는 가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외롭고 높고 쓸쓸한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6

- 매요리 - 복성이재 - 봉화산 - 중재(21.4km)

- 2008.06.30





늘 그래왔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햇반을 준비하면서 점심때 먹을 것까지 데웠다. 햇반은 그냥 먹으면 까칠하지만, 한번 데웠다 먹으면 어떨까. 새로운 시도다. 잘 되면 도시락을 먹는 기분일 것이다.


햇반 하나에 김치로 아침을 떼웠다. 물론 이렇게 출발하면 9시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때부터는 쵸코바나 사탕으로 견디다가 11시 즈음에 점심식사를 한다. 물이 있는 곳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맨밥을 먹으며 물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지리산과 달리 백두대간에는 종종 물 구하기 어려운 구간이 있다.



 

▲ 매요마을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6시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민박집을 나왔다. 매요휴게소를 나와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743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계속 북진하면 유정육교가 나오는데 이 육교를 통해 88고속도로를 건넜다. 임도를 따라 사치재를 향했다. 출발은 언제나 가볍다. 문제는 산등성이 초입이다. 사치재에서 산길을 잡는데 잡목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지, 길잡이 리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또 길을 엉뚱한 데로 잡았다. 다시 사치재 팻말 앞으로 내려왔다. 30분의 시간과 체력을 날렸다. 길이 함몰되어 전혀 없는 곳에 길잡이 리본이 보였다. 설마 저 곳에 길이 있을까 싶어 올라갔는데, 거의 잡목과 풀들로 우거진 곳에 아주 작은 길이 나 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가보자 싶어 올라가니 다행히 이 길이 맞았다.


사치재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산등성이는 1994년과 1995년에 두차례에 걸쳐 산불이 났던 곳이다. 그래서 큰 나무들은 이미 고사하고 지금은 식물들의 춘추전국 시대다. 작은 잡목과 풀들이 길을 덮어버린 것이다. 종종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까맣게 그을린 나무둥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현장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맺힌 풀들이 서서히 내 신발을 적셔왔고, 키만큼 자란 잡목과 가시나무, 풀들이 내 팔을 할퀴었다. 재작년 초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길도 잘 보이고 잡목과 풀들도 거의 없더니 두해 지나 숲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여름이니 그럴만도 하다.


평일이다 보니 산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만큼 새벽부터 지어진 수많은 거미집을 부시고 다닌다. 한걸음을 디디면서도 벌레라도 있으면 피해왔건만, 수많은 거미집들을 거침없이 부시고 그 무수한 잡풀 속을 탈출해야했다. 아, 얼마나 많은 집들을 부시며 걸어왔던가. 얼굴과 팔에 엉기는 거미집 때문에 기분이 묘하다. 마치 숲이라는 큰 거미집에 내가 걸려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간신히 산불난 지역을 벗어나니 온전한 산길이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본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신발은 난리가 아니다. 많이 젖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긴바지를 입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반팔 옷은 치명적이다. 팔에는 온갖 가시와 풀에 베인 상처들 투성이다. 백두대간에는 이런 구간이 꽤 많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잡목과 가시덤불을 지나야 할까.







▲ 아막성터


 


10시도 되지 않아서 신발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신발 안까지 젖어버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치재에 있는 철쭉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재작년에 한번 백두대간 중 1박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11시 쯤 철쭉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무그늘에 마련한 평상에 앉아서 가방을 풀고 신발도 벗었다. 양말과 깔창을 벗어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샌들을 신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잠시후 주류 배달 차량이 들어왔다. 그에게 물어보니 아주 멀리 있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답해준다. 차에 실려온 맥주가 한짝씩 내려지는 걸 보니 입이 왜 이렇게 마를까. 그렇다고 주인 없이 맥주를 꺼내먹는 건 아니다. 할 수없이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니 일찍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기에 평소처럼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산에서 오는겨”

“네, 주인장이 없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올 거니께, 저기 물 떠다 마시고 기다려봐요.”

“저, 할머니, 주인하고 친하세요?”

“바로 요 옆집에 살어요. 왜?”

“그럼 제가 할머니께 일단 삼천원 드릴테니, 여기 맥주 좀 가져다 마실게요. 할머니가 주인 오면 주세요.”

“그래요? 그러지 뭐.”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그때를 돌아봐도 참 신기하다. 맥주 한병을 다 비우고 아침에 데운 햇반을 꺼냈다.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찰기가 잘 흐르고 밥도 잘 익었다. 그냥 식은 도시락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맥주 한병과 밥을 먹으니 기운이 살아난다. 그러고 나니 주인이 왔다. 맥주를 마신 자초지정을 얘기했다.


“아이구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이거 밍밍한 맥주를 마셨겠네요. 하나 더 드릴까요?”

“아니오. 또 산을 타야하는데, 그만 마실게요. 하하”


철쭉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다시 일을 나가신다.


“이제 요 앞에 포도밭에서 일하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백두대간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다 보니 산을 타는 손님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나와 다시 산등성이를 올랐다. 잠깐 신발과 발을 말렸는데, 한결 낫다. 힘껏 산을 다시 올랐다. 식당이 철쭉식당인 것은 치재 근처가 유명한 철쭉군락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철쭉들이 길을 덮고 있다. 그나마 가시나무나 날카로운 풀들이 아니라서 좋지만, 역시 길을 헤쳐 나가는 동안 철쭉가지가 자꾸 배낭을 잡아끈다.


▲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간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길.


 


▲ 봉화산에서 바라본 조망.




오후 2시 봉화산에 올랐다. 답답했던 조망이 확 트였다. 돌아보면 9박 10일 일정 중 가장 멀리까지 시원한 조망을 보였던 날이다. 그만큼 비와 구름이 일정 내내 나를 뒤덮었다. 지리산을 벗어나면서부터 신발이 마를 날이 없었고, 준비한 양말 다섯 켤레 중 하나라도 완전히 마른 날이 없어, 그냥 신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본 조망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중재까지는 가야 하는데, 벌써 오후 2시를 넘었다. 최소한 4시간은 가야하는데, 6시라면 간당간당하다. 자칫 금방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 7시까지 밝기는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봉화산 이후로는 길이 좋다. 마루금은 억새만 좀 자라 있을 뿐이다. 구름이 아니었다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중재까지 4시간 동안 물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좋으면 또 저것이 안 좋다. 모든 걸 만족하는 여행은 드물다. 여행은 그런 부족함 때문에 채워지는 것이다.


▲ 이 정도 길은 양호한 편.

▲ 중재민텔 풍경.



 

중재에 도착한 건 6시가 다되어서다. 중재 고개에 보니 ‘중재민텔’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원래는 중재 샘터 근처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또 젖었으니 그곳에 가기로 했다. 게다가 고개까지 차량으로 와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 이날은 대략 10시간 이상을 달린 셈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곳 중재 민텔도 중재에 있는 유일한 민박시설로 자리잡았다. 많은 대간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쉬고 갔다. 집 바깥벽에는 대간 산꾼들이 매달아놓은 길잡이표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거리도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오면서 조우한 산행객은 딱 한팀에 불과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산에서 혼자 걸어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행이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위로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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