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동네에 퍼지는 음울한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했다. 요즘에는 미세먼지가 환경의 주범이었지만, 내 어릴적에는 안양천과 그 지류들에서 나는 악취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안고 살았다. 알 수 없는 거품과 기름띠가 범벅이던 그 하천. 한여름 폭우로 안양천과 그 지류인 목감천이 범람하면 물난리를 피해 가재도구를 높은 지대로 옮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한강과 안양천, 그 지류들을 찾는다. 안양천 상류 지역에서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도 나온단다. 속절없는 개발의 흐름 속에서 버려졌던 강물이 조금씩 제모습을 찾아간다. 이번에 걸었던 서울둘레길 6코스는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2017년 6월 25일.

서울 둘레길 6-2코스의 여정: 구일역-오금교-도림천 합수부(신정교)-오목교-목동교-양화교 폭포-안양천 합수부(한강)-황금내근린공원(가양동)-가양역




 안양천 둑방길은 대부분 흙길로 이루어져 있다.


 싱그러운 초록빛 사이로 잘 가꾸어 놓은 화단도 잘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길이 나무그늘 아래로 곧게 뻗어 있다.



 성미 급한 단풍들이 벌써 얼굴을 내민다.



 오랜 가뭄으로 송충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무 하나는 절반 가까이 나뭇잎이 뜯어먹혔다.


날이 무척 가물었다. 방송에서도 가뭄으로 인해 해충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전했다.(가뭄에 또 해충 기승…대형 애벌레 득실 / YTN 사이언스) 안양천 주변에서도 몇몇 나무들은 뉴스 기사에 나온 밤나무처럼 잎사귀를 죄다 갉아먹은 애벌레들로 가득차 있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양호한 나뭇잎을 건진 것인데, 대개 나뭇잎 하나에 2~3마리의 애벌레들이 열심히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날 일기예보에서는 다행히 비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것에 불편함보다는 기쁨이 더 컸다. 비좀 맞으며 걷자는 일념으로 걸으면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주문까지 만들었다. 


"비야 비야 내려라, 많이 많이 내려라."


우리의 걷기 여행은 이렇게 기우제가 되었다. 손수건을 나풀거리면서 하늘을 향해 흔들었고, 아이는 우리가 주문 외우기를 멈추면 다시 주문 외우기를 재촉했다. 물론 누구보다 열심히 주문을 외운 것은 아이였다.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나 온다고 예보되던 비였기에 조금 뜻밖이었고, 우리는 그것이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이라며 아이에게 축하해 주었다. 


준비한 우비를 갖추어 입고 길을 걸었지만 비는 생각보다 가늘었고 금새 그치고 말았다. 실망한 아이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가늘어진 비를 우비에 있던 모자로 받아서 모으기도 하면서 비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가 걷는 동안에는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는 우리가 둘레길을 벗어나고 식당에 들어섰을 때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익숙하고 친절한 서울둘레길 안내판


안양천 둘레길 코스는 둑방길로만 연결되긴 어렵다. 간간히 고수부지 길로 내려가는데 그또한 지루함을 덜어주니 반갑다.


 다양한 체육 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테이크아웃 햄버거와 미리 준비한 과일로 점심을 채웠다.


안양천의 옛 이름은 '대천(大川)'이라고 한다. 안양천의 물이 삼성산에 위치한 안양사(安養寺)에서 발원해 붙여진 이름이다.[각주:1]  1910년 경의 안양천의 모습은 상당히 굴곡이 있는 하천이었다. 그러다가 도시 개발에 따른 하천 정비 사업으로 지금의 비교적 곧바로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굴곡이 있는 사행하천에 비해 흐름이 단순해진 하천은 그만큼 홍수에 취약하다. 1977년 7월 8일 발생한 폭우로 안양천 대홍수가 발생했고, 인명 피해만 총 677명으로 이중 사망 208명 실종 49명이 집계됐다. 이후 안양천에 대한 본격적인 정비가 시작되었으나 맑고 깨끗한 안양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범람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다. 그러면서 하천의 둑방을 시멘트로 덮고 천변의 모래톱이나 갈대 숲을 없애버리면서 강은 점점 더 죽어가고 말았다. 

게다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도시 개발과 공장 지대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생활 하수와 공장 폐수가 무분별하게 쏟아져들어왔고 안양천은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최악의 하천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안양천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가 136mg/L이 나왔는데, 이정도에서는 어떤 생물도 살 수가 없는 수치였다. 


자연형 하천 조성 사업이 시작된 것이 2001년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은 꽤 효과를 보고 있다. 징검다리 설치, V자 여울, 습지 조성 등 자연과 같은 흐름과 물살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다시 물고기와 철새들이 노니는 하천으로 만들고 있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아이와 아이 엄마


 오후 늦게나 온다던 비가 살짝 왔다.


이내 그쳐버리고 다시 후텁지근한 날씨로...




비가 와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범람하는 강 주변은 그로 인해 옥토를 형성했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땅을 가꾸어 풍성한 곡식을 거두며 살았다. 세계 문명의 시작이 모두 강 주변에서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강이 범람하지 않았다면 이루어 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강을 관리한다. 치수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강은 범람하지 않는다. 도시는 더이상 기름진 땅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강은 가정의 생활 하수를 받아야 하며 공장의 폐수를 흘려 보내는 장치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강은 더러움과 치욕을 견뎌야 하면서도 범람할 수도 없이 길들여지면서 병들었다. 


안양천의 개발 역사를 보면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물이 되어 버린 일도 있었다. 강을 가두고 흐름을 막아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쓰레기를 흘려보내던 시절이다. 강이 정화할 수 있는 양 이상의 유기물들이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인공적으로 변한 강 주변 시설도 강의 정화 능력을 현격히 떨어뜨렸다. 인간에 의해 범람을 허락받지 못한 자연 하천은 그렇게 썩어갔던 것이다. 












안양천은 이제 사람이 거닐 수 있고, 자연이 되살아나는 하천이 되었다. 안양천의 자전거도로는 이제 자전거도로의 경부선으로 불릴만큼 통행량도 많아졌다. 자전거도로와 분리되어 조성된 서울둘레길 안양천 코스는 초급코스 중의 초급코스로 걸을 수만 있다면, 아니 휠체어를 타야 하는 이들도 풍광을 즐기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안양천을 달리거나 걷는 것은 우리 시대의 작은 행복이 되었다. 




  1. 출처: 안양천의 역사와 문화(이종만, 한국하천협회지(2007) [본문으로]


6월 11일(일) | 총 10.3km | 매헌역-양재시민의 숲-대한항공 폭파 사건 희생자 위령탑(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여의천-내곡동 주민센터 근처-구룡산 주변길-대모산 주변길-수서역


일요일 아침을 이렇게 서둘렀던게 얼마만일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준비했다. 짐은 아내가 미리 전날 준비해 놓는다. 꼼꼼하게 챙겨놓은 짐들을 보면 이 도보길 여행에 대한 그이의 바람이 보인다. 길과 숲과 바람에 목말랐던 사람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보인다. 길을 걸으며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갖는 열망이다. 왜 사람은 이 스피드한 세상, 편리한 세상에서 굳이 피곤하고 힘든 일을 자처하며 쾌감을 느낄까?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밝힌 바 있다. '러너스 하이'. 또는 '운동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미국 심리학자 멘델이 논문에서 처음 밝힌 용어는 '엑서사이즈 하이'였다. 그는 이것을 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신체적 스트레스로 얻게 되는 행복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몸은 일정 시간동안 운동을 계속하면 뇌에서는 '베타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이 마약성 물질을 투여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운동의 행복감을 알고 기꺼이 힘든 운동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나 나나 몇 시간 동안 걷는 것에는 익숙하다. 젊은 시절 일년에 몇 번씩 지리산 같은 산을 오르고 내렸다. 걷는다는 것에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벅찬 기대감이 몰려오는 이유다. 이날 가야할 길도 10km가 넘었다. 두 개의 산길을 걸었다. 산이 작다고는 해도 산은 산이다. 오를 때에 근육에 오는 뻐근함이 있고, 내려올 때는 관절에 오는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나무와 풀이 주는 숲의 향이 있고, 사박사박 밟아가는 흙길의 정겨움도 있다. 새들의 지저귐이 연한 바람을 타고 귓속을 간지럽힌다. 


아이가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숲은 숲대로 아이를 보듬어 안고 가고, 아이도 아이대로 이겨낼 거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부모의 보호는 보잘것 없다. 그것을 아이도 알아갈 거다. 더 큰 세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이날의 첫 시작점인 양재시민의 숲 공원에는 역사의 슬픔들을 위로하는 공간이 여럿 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공중 폭파된 사건이다. 이 테러를 실행한 것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이며 이 둘이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러 조사 과정에 대해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선거 하루 전 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서울에 압송되어 온 것과, 하필 비행기 탑승 인원도 중동에 진출했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안기부의 기획이 아닐까라는 의심이다. 또 김현희에 대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전격 사면도 의혹을 더욱 키웠다. 그러나 2006~20007년 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각주:1]에서도 밝혀진 사실은 북한의 테러였다는 것이며, 북한측 인사가 간접적으로 자신의 행위였음을 시인하는 발언[각주:2](기사보기)도 있었다. 물론 이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정부 관계자들의 모의가 있었다는 것도 진실위가 밝힌 사실이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인도양에 잠들어 버린 115명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이 이곳에 있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이다. 진실만이 오직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건을 다른 의도로 이용하려 하면서 진실이 가려질 때, 아픔은 커지고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양재시민의 숲에는 또 다른 위령탑이 하나 더 있다. 둘레길에서 벗어나 있어서 둘레길 여행자라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어렵지만 여기에는 '삼풍 참사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 붕괴하면서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 실종자 6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참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은지 1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 무너져 버리게 한 원인은 부실 시공과 설계 변경, 그리고 이것을 뇌물을 받고 눈감아준 공무원과 관리 기관의 부실 감독, 결정적으로 긴급 안전 진단을 한 설계 감리 회사가 '붕괴 우려'를 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에 눈이 멀어 영업을 강행한 사업주 등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였다.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은 비용을 이유로 생략되거나 무시되었다(관련 자료: 위키백과 바로 가기). 총체적 부실과 돈을 향한 욕망으로 점철된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결국 2년 뒤 대한민국의 붕괴로 귀결됐다. IMF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급속 성장 속에서 용인되었던 자본주의의 욕심을 눈감고 인정했던 처참한 결과였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폭주하는 기관차 위에 승선해 있다. 삼풍백화점의 저주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되돌아왔다. 천박한 자본주의를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들여 놓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생명을 담보로 한 탐욕의 괴물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어린 목숨들을 물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이런 아픈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도망치듯 양재시민의 숲을 통과했다. 그곳을 나오면 여의천으로 내려선다. 여의천은 양재천으로 흐르는 지류이다. 별다른 휴식 공간도 없으며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길도 좁고 포장 상태는 거칠다. 중간에 다리 밑 터널은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이면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듯하다. 대개의 지류가 그러하듯이 찾아오는 이는 우리같은 둘레길 여행자 몇몇이나 마실나온 동네 주민 정도일 것이다. 간간히 두루미도 보이지만 먹을 것이나 있겠나 싶을 정도로 물은 말라 있었다. 


여의천을 잠깐 걷고 내곡동 염곡안 길로 접어든다. 전원마을 같은 공간으로 주변에 밭도 있다. 하지만 둘레길 옆의 염곡 마을은 높다란 담장에 고급스러운 집들이 즐비하다. 아파트숲에서만 살다가 잘 가꾸어진 단독주택들 사이로 걷다 보니 눈이 바쁘다. 마을 옆을 지나면 구룡산 산길로 접어 든다. 

 


 양재 시민의 숲을 나와서




 여의천을 걷는 중 




 내곡동 염곡 마을 으리으리한 저택 옆 



구룡산은 높이 283m 높이의 야트막한 산으로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 등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구룡산이라는 지명은, 옛날 열마리의 용이 승천하는데 그 모습을 본 임신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에 놀라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남은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흔적이 산이 되어 구룡산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 그런데 왜 이 전설에서는 하필 임신한 여성이라는 특정한 사람이 나올까? 아마도 다산에 대한 욕망과 함께 모성은 승천하는 용도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옛사람들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구룡산의 주봉 국수봉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서울 일대 및 한강 하류와 상류 지역까지 전망하기 좋은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 야경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구룡산 산자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 강남구의 산자락을 걷는 기분 또한 묘하다. 구룡산 터널을 지나 언덕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일요일 등산객들이 분주히 오갔다. 우리 아이 또래는 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있어 좋다.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자락에서 먹은 점심-김밥



구룡 터널 지점을 지나면 곧 대모산이다. 산 산자락을 걷다보면 행정 지역으로는 서초구에서 강남구로 넘어간다. 대모산은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원경 왕후와 조선 태종을 모신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서 ‘대모산(大母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는 것과 구룡산 봉우리와 함께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고 하여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출처: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태종의 헌릉 신도비에는 대모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남겨져 있다. 

장백산[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와 남쪽으로 수 천리를 넘어 상주 속리산에 이르고, 여기서 꺾여 북서쪽으로 또 수 백리를 달려 과천 청계산에 이르며, 또 꺾여 북동으로 달려 한강을 등지고 멈추었다.

백두산의 산줄기가 여기서 멈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산을 신성시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산 그늘을 따라 걷다 보면 산의 향기가 진하게 전해져 온다. 구룡산에 비해 가꾸어진 흔적이 많았다. 유아 숲체험장이 있는가 하면 근처 주민들을 위한 체육 공원도 많다. 청소년 자연학습장도 마련되어 있다. 


대모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돌탑들이 있다. 돌탑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는데, 서울 강남 일대를 비롯해 최근 들어선 초고층 빌딩 롯데 타워도 가까이 보인다. 이 돌탑들은 임형우라는 사람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15년에 걸쳐 쌓아올렸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그냥 이곳이 좋아 돌 몇개를 쌓아놓는 것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돌들을 하나씩 둘씩 쌓아 올리니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그런 일상에서 돌 하나가 가져온 힘이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일만시간의 법칙이다. 


'일만시간의 법칙'은 맬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뉴요커" 기자)이 쓴 "아웃라이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루 3시간씩 10년이면 1만 시간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각주:3]  한 사람이 15년 동안 돌을 쌓으면서 염원했던 내용은 소박했다. 하지만 소박한 염원의 결과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걷고 있는 우리의 바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오늘도 아이는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걸었다. 그리고 많이 지쳤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걷다보면 시간은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할 것이다. 때로는 그 목적지나 여정이 우리의 바람에 못 미칠 수도 있고, 바람과 햇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야 한다. 인생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아니다. 산비탈과 계곡, 구릉과 능선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이 둘레길을 걸으면서 아이도, 그리고 나도 참고 인내하며 인생의 멋과 맛을 알아가길 기대한다.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유아 숲 체험장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돌탑 전망대


 대모산 돌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대모산에서 수서역으로 




  1. 안기부 조작설 등은 사실이 아니며 북한대남공작조직의 주도에 의해 김현희와 김승일이 자행한 테러로 단정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다만 대선 전에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하기 위해 안기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실무대책본부를 운영하는 등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오히려 각종 의혹을 유발하게 된 측면이 있다. — 국가정보원 (2007). 《(과거와 대화)미래의 성찰, 1 : 국정원 「진실위」보고서·총론》. [본문으로]
  2. 정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3∼4년 전 중국에서 6자회담 때 사석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리근 미국국장 등 북한 당국자들과 얘기를 나눴다"며 "당시 리근 국장이 `우리는 KAL기 사건 이후 한번도 테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본문으로]
  3. Brooke N. Mcnamara, David Z. Hambrick, Frederick L. Oswald가 주도해 미국 미시건대, 라이스대, 사우스일리노이대, 영국 브루넬대, 호주 에디스코완대 3개국 5개 대학에서 음악과 체스 실력에 관한 88개의 논문을 메타 분석을 해 본 결과, 에릭슨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논문 <음악, 게임, 스포츠, 교육, 경력에서의 의도적 연습과 기량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 Professions>에서 그들이 음악, 스포츠, 체스 등에서 1만 시간의 법칙 – 즉 연습량과 퍼포먼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지만 설명이 되는 부분이 고작 30%에도 미치지 못했고, 심지어 학업의 경우 무려 4%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출처: http://ppss.kr/archives/24700 [본문으로]


날이 흐리고 예보에서는 저녁부터 비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틀전에 7km가 넘는 둘레길(4-1코스)을 다녀온 뒤라 그냥 쉬려 했지만 아내는 다시 걷고 싶어 했다. 다리가 아픈데도 걷고 싶단다. 결혼 전까지 혼자서도 잘 돌아다니던 처자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면서 묶여 지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요 몇주 둘레길 걷기를 시작하면서 여행에 대한 바람이 폭발한 것이다. 물론 아내의 바람만 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새롭게 가정을 꾸리며 안팎으로 좌충우돌 살다보니 어디를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별로 없다. 1년에 한번도 여행을 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작은 보람과 기쁨, 그리고 기분좋은 노곤함이 묻어나는 이런 여행을 세 식구가 누릴 수 있다는 건 괜찮은 일이다. 


구름 잔뜩인 6월 6일 현충일. 안양천 길은 그늘이 별로 없을 거라 예상했었다. 내가 자전거로 다녔던 길과 비슷할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양천 구간은 잔뜩 흐리거나 비올 때 걷기로 했었다. 이날이 그랬다. 잔뜩 흐린데다가 오후 늦게 비 예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안양천길은 그늘 구간이 생각보다 아주 길었다. 해가 쨍쨍한 날에도 충분히 걸을만 했다. 


이날의 여정은 석수역에서 시작했다. 석수역에서 구일역까지의 거리는 7.8km. 이틀전 걸었던 거리와 비슷하다. 또 천변가 길을 걸으니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의 둘레길과는 천양지차. 둘레길 안내 사이트에서도 '초급' 코스로 나와 있다. 설렁설렁, 놀며쉬며, 이짓저짓 딴짓하며 걷기 좋을 코스라고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였다. 


석수역을 나와서 주택가를 지나 천변 도로가를 걷다 보면 준공장지대를 지난다. 좀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조금만 가면 안양천변으로 들어가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움이 기다렸다. 바로 보행자 전용도로. 사실 자전거로 안양천을 오갔던 적이 많아서 자전거길 옆의 보행자도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석수역에서 구일역까지 연결된 구간에서 자전거와 보행자가 나란히 걷는 구간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보행자 전용도로로 걷는다. 간혹 가다가 자전거가 오가긴 하지만 실수이거나 일부 생각없는 사람들일뿐 자전거를 가지고 가더라도 끌고 다니라는 안내판이 있을 정도다. 보행자 전용 도로라고 좁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폭이 족히 3m는 남짓한 길이 대부분이다. 큰 도로를 활개치며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걷는 즐거움도 배가 된다.  


 석수역에서 1번 출구는 관악산으로 향하는 5코스, 2번 출구는 안양천으로 가는 6코스 구간이다. 


 석수역을 나와 만난 둘레길 리본. 누군가가 리본에다가 화투 한 장을 꼽아 놓았다. 

목단(모란)으로 화투의 6번 그림이다. 둘레길의 6번 코스를 알리기 위한 재미있는 장치일텐데 

아마도 모르고 가는 사람이 많을 듯


 주택가를 나오면 도로가를 걷는다. 오가는 차량에 주의한다. 

준공장 지대라서 소움과 먼지가 날릴 수 있다는 것도 주의한다. 


 예전에는 자전거 도로였을텐데, 지금은 보행자 전용 도로이다. 

사람들의 습관인지 가운데 넓은 길보다 좌측 좁은 길로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길 양옆으로 나무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오래 자란 나무들이다. 

머리 위로는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갔다. 자연스럽게 길 위로 그늘이 지는 구조다. 


 머리 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오른쪽 기찻길 위로 기차와 전동차가 수시로 지나간다. 

서부간선도로 차량 소리는 그리 크지 않은데, 역시 KTX부터 전동차까지 수시로 지나다니는 길 옆이라 시끄럽다. 




행정구역으로는 금천구와 구로구를 지나간다. 우리처럼 둘레길 여행자의 모습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 동네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다. 금천구에 속한 안양천 주변은 지금 장미가 한창이다. 금천구에서 조성한 것으로 석수역에서 금천구청역까지 약 2000m 구간을 '장미원'으로 명명하여 가꾸고 있다. 다양한 수종의 장미를 구경할 수 있으며 폭염이나 비에 상관없이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붕 삼아 걸으며 장미를 감상할 수 있다.  전용 산책길답게 휴식 공간이나 의자도 잘 마련되어 있다. 단지 수시로 다니는 기차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서 시끄럽다. 


길에는 다양한 재미 요소도 있다. 자신의 나이대에 따라 통과해 보는 뱃살 점검 구간도 그 하나다. 나도 통과해 보려 했는데, 배가 아닌 엉덩이가 걸리더라. 그럼 뱃살은 안녕한건가? 발바닥 지압 구간도 있다. 예전에 남산에서 만났을 때는 그래도 끝까지 천천히 지나가는 건 되던데, 이날만큼은 결국 중도 포기했다. 너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끝까지 걸었다. 아무래도 가방이 주는 무게가 있기 때문에 더 힘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지만... 




 석수여-금청구청역 사이 안양천길에서는 이맘때 다양한 장미들을 볼 수 있다. 


 편안한 휴식 공간도 제공한다. 


 다음에는 꼭 통과해야 할 텐데...


 발바닥 지압 코스. 결국 포기했지만, 아내는 끝까지 갔다. 




금천구청역을 지나 지압판 길이 끝나면 안양천 옆길로 간다. 잠시 자전거와 동행하는 길이다. 이때 살짝 비가 오기도 했다. 오후 늦게 온다던 비가 이르게 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양천 옆 고수부지 길은 독산역 부근까지 이어진다. 안양천은 경기도 의왕시에서 발원해 군포, 안양, 광명시를 지나 서울의 구로구, 양천구, 영등포구를 지나 한강에 이른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악취가 진동하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곳이었고, 여름이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주변 일대가 물난리를 겪곤 했는데, 이제는 비교적 맑은 물이 흐르고 고기떼도 보이며, 철새들이 찾는 공간이 되었다. 


안양천 천변의 들꽃을 꺾어다가 예쁜 꽃다발을 만들면 아이는 나비를 쫓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쁘다. 비가 살짝 비치기 시작했지만 그럭저럭 맞을만 했다. 그러다가 독산역 부근에서 새로운 길이 열린다. 안양천의 명소 벚꽃길이다. 서울에서 벚꽃길하면 여의도가 유명하지만 여의도와 함께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이곳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구일역까지 3.4km에 다달하는 벚꽃나무 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박동우님의 벚꽃길 사진 보기) 지금은 벚꽃도 없고 버찌들이 떨어지면서 길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그래도 푸르른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아이가 가리키는 곳은 어디였더라... 





 카메라를 놓고 가는 바람에 아내와 내 핸드폰으로만 찍은 사진들. 안양천 옆 고수부지의 꽃들  



 비가 비치기 시작해 아이는 준비한 비옷을 입혔는데, 이내 벗고 다녀도 될 정도로 빗발이 약했다. 


 벚꽃은 졌지만 노란꽃들이 가득했다. 유채꽃은 아니고... 



 벚꽃 터널



이날의 목적지 구일역 근처는 공사중이었다. 둘레길을 다시 가꾸는 공사로 보였는데, 제대로된 안내판이 없어서 좀 고생했다. 결국 아래 사진에서 보듯 하천길로 내려가기 위해 강둑길을 거칠게 내려가야 했다. 그 길도 사람들이 오가다 보니 생긴 임시길이다. 구일역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가도 되는 거리. 마지막에 아이가 삐져서 나와 아내한테 한소리 들은 것 빼고는 무척 즐거운 날이었다. 구일역의 대형마트에 들러서 모자도 하나씩 사고 다음 둘레길을 기약했다. 


 구일역 주변 - 여기는 흙길이 조성되어 있다. 


 준비해간 김밥과 주먹밥, 구일역에 도착할 즈음 빗줄기가 제법 세서 세 식구 모두 우비를 걸쳐 입었다. 모자도 하나씩 구했다.




서울둘레길 4-2. 사당역에서 양재시민의숲까지 걸었다. 산으로는 우면산이 있다. 대성사를 옆으로 끼고 돈다. 마지막 양재시민의숲에 가기 전에 잠깐 양재천길을 걷기도 한다. 거리는 7.6km. 사당역에서 10시 20분 출발해 양재시민의숲역(매헌역)에 들어간 시간이 5시 20분 쯤이다. 약 7시간이 걸렸다. 물론 안내 사이트에서는 불과 3시간 20분이면 된다고 나와 있다. 중간에 아이가 우면산 놀이터에서 놀았고, 산중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고, 종종 쉬고, 양재시민의숲 공원에서 자리깔고 눕기도 했으며 마지막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방문해 관람했으니 아주 편안하게 다녀왔다고 보면 된다. 앞의 두 번의 둘레길보다 더 긴 거리였지만 걷는 게 익숙해져서 더 쉽고 편하게 다녀왔다. 


사당역에서 방배우성아파트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들,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들이 나온다. 보통의 등산길 초입이라면 막걸리집, 김밥집, 기념품점 등이 즐비한데, 여기는 인적이 드물고, 기껏해야 서울둘레길 걷는 사람이나 찾아와서 그런지 주변이 삭막하다. 동네개들이 이따끔 누가 오나 쳐다보고 짖어대거나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아, 고양이도 한마리 봤는데,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집고양이가 마실을 나온 듯했다. 손을 내미니 코끝을 손에 대서 냄새만 맡아보더니 자기 길을 간다. 언제쯤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래서 언덕길을 오르는 그 잠깐 사이에도 '이 길이 맞나'하는 의문을 가지고 몇번이나 길을 살피곤 했다. 오르는 사람도 내려오는 사람도 없으니 길을 물을 수도 없어서 난감했지만, 다행히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둘레길을 안내하는 리본과 표지가 종종 보인다. 


숲속으로 난 길을 걸어들어 갈 즈음에 스탬프 찍는 곳이 나타났다. 우면산 끝자락이라는 표시다. 둘레길 수첩을 꺼내 스탬프를 찍었는데, 역시나 잘 나오지 않는다. 준비해 둔 스탬프 패드를 꺼내서 스탬프에 묻히고 다시 찍는데 이번에는 스탬프 범벅이 됐다. 아이는 속상해 하였다. 힘들어도 엄마아빠 따라 온 아이에게 즐거움 중의 하나가 스탬프 찍는 건데, 이런 부분은 좀 아쉽다. 



 사당역에서 우면산 초입 가는 길에서 만난 동네 화분


 이런 저런 소규모 공장과 창고들이 있는 골목길. 멀리 마중나온 강아지


 고양이를 보고 손짓하는 아이


숲은 완연한 여름으로 달리고 있다. 녹음은 점점 짙어지고 꽃들도 햇살을 받아 색이 진하다. 그늘진 곳과 햇살 드리운 곳의 온도차가 크다보니 나무 아래에서 맞는 바람이 무척이나 반갑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땀 흘릴만한 길이다. 


성산약수터 근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이곳을 지나 약간의 언덕길을 오르니 어른키보다 큰 돌탑이 쌓여져 있고, 그 옆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 세 식구가 이 기회를 그냥 지날 수 있을까. 다들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여기서 또 쉰다. 역시 아이가 좋아한다. 출발할 때도 쭈쭈바 하나 물고 출발했는데, 벌써 두 번째 얼음과자다. 


우면산 자락은 관악산 자락에 비해 길이 훨씬 수월하다. 잘 다듬어진 면도 있지만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심하지 않다. 평범한 산길을 지나는 느낌으로 갈 수 있다. 긴 거리였지만 발걸음이 익숙해진 것인지 많이 걸어도 힘들지 않다. 우면산은 2011년 여름의 폭우 속에서 엄청난 산사태를 겪었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가 계속해서 오면서 우면산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산사태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관련 자료) 우면산 산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산사태의 원인은 다양하다. 직접적인 원인은 환경을 돌보지 않은 난개발, 산림청의 경고를 무시한 담당관청 등도 문제지만, 궁극적으로 자연 현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즉 산은 산사태로 점점 깎이고 깎여 평지화되는 것이 오랜 지구의 일상이라는 것. 여기에 인간의 개발이 산사태를 더 촉진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인간의 삶이 개발을 피할 수는 없지만, 산사태 역시 피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면산 지역은 산사태 이후 사방 공사 등 다양한 우면산 살리기 개발에 나섰다. 산사태를 복구하고 다시 나무를 심어 삼림을 조성했다. 여기저기 인공 계곡을 만들어 비가 와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여 제2의 산사태를 예방하였다.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산림이 국토의 70%라는 한반도에서, 게다가 한여름의 집중폭우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기상 현상이 된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의 삶이 함께 하는 것은 팽팽한 줄다리기일지도 모른다. 결코 느슨해질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우면산 초입


 아이스크림 빨고 다닐 때가 좋지.


 둘레길을 안내하는 화살표


 사유지를 분리하는 철조망 담장 사이로 피어난 들꽃들


 햇볕은 뜨거워지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우면산의 중심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힘들 때는 손잡고...


 아이스크림을 입 언저리에 골고루 묻히고 다녀서...


 산중턱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두 번째 아이스크림. 돌탑 주변에서..


 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산책길


 다시 막대기 하나 들고 다니면서... 다음에는 꼭 스틱 들고가기로...


 우면산 살리기 활동 


우면산 산자락 따라서 계속


 우면산 사방공사 지역. 여기서 산사태가 일어났고, 수많은 흙더미들이 쓸려 내려갔다. 


 점심 먹었던 자리에서 하늘을 찍었다. 


 막대기 하나가 좋은 장난감이 되는 숲


 나무둥치도 올라가 보고 ....


 멀리 롯데타워도 보인다. 


 힘들어했지만 나름 재미를 찾아 다니던 아이



 세 식구 다시 발걸음을 모아서...


 이날은 숲이 대부분이었던 둘레길


면산을 빠져 나오자 어린이 놀이터가 나왔다. 아이에게는 가장 신나는 공간. 우리 외에도 세 아이와 엄마가 나와 놀고 있었다. 그 엄마는 풍선에 물을 넣어 물풍선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던지면서 놀아 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뜨거운 날에 물풍선 놀이만한 게 있을까. 넓은 놀이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텐데, 참 잘 놀아준다. 놀이터 한쪽에 진짜 나무들을 세워 작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안에서 어떤 아이들이 소꼽놀이를 했는지 작은 나무토막 위에 아기자기하게 돌맹이들과 모래들이 펼쳐져 있다. 어느 아이가 펼쳐놓은 소박한 밥상을 보면서 도란도란 엄마 아빠 놀이를 하였을 꼬마들의 행복한 가정에 들어온 느낌이다. 


 우면산을 빠져 나오자 나타난 어린이 놀이터의 시설물


 쉴 때는 신발도 벗고 시원하게 ... 우면산 놀이터 정자에서.


놀이터에서 한참을 쉬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시간이 여유롭다. 다시 양재시민의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놀이터를 나와 횡단보도를 넘어 차도 옆을 좀 걷다가 보면 양재천을 만난다. 양재천을 잠깐 걷게 되는데, 잘 꾸며져 있는 양재천도 걷기 좋았다. 야생화들을 길가에 심어 놓았는데, 푸른 하늘과 작은 개천이 조화롭다. 자꾸 발걸음을 잡는 들꽃길을 지나면 보리인지 밀인지를 심어 놓은 곳이 나온다. 손으로 만져보니 무척 거칠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구경을 한다니 둘레길 걷기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숲길만 걷다가 천변길을 걸으니 새롭다. 


양재천을 걷는건 아주 짧았다. 양재시민의숲 공원이 바로 나왔다. 나무들이 무척 컸다. 오래동안 자라온 나무들이다. 양재시민의 숲 공원이 조성된게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 대회를 앞두고 만들어졌으니 대략 30년 가까이된 숲이다. 그러니 숲이 풍성하다. 나무 종류만 43종에 약 98,000주가 자라고 있단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냥 쉬다가 지나왔다. 


많은 시민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펼치고 일요일 오후를 한가로이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가까운 매점을 가니 공원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매점이라 인산인해다. 한참 줄을 서서 맥주 2캔과 음료 하나 과자 하나 사들고 나왔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먼길을 걸어온 다리를 편하게 뻗고 맥주를 넘기니 신선이 따로 없다. 일요일 하루가 알차게 갔다. 



 놀이터를 나와 차길을 따라 걷는다. 


양재천으로 내려서 걷는 길 들꽃과 들풀들이 길가에 가득하다.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밀밭은 이제 추수 때를 지나 누렇게 변하고 있다.


양재천을 가로 질러 가면 곧 양재시민의 숲이 나온다. 


 양재시민의 숲 입구. 


 나무 그늘 터널을 지난다. 


 돗자리 깔고 앉아서 엄마아빠는 맥주 한잔, 아이는 음료수 한잔. 걸어왔던 길을 이야기한다. 




양재시민의숲 공원에는 매헌 기념관이 있다. '매헌'은 윤봉길 의사의 호이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현재 루쉰공원)의 의거를 기념하고, 의사의 행적을 정리하였으며 그가 남긴 글을 전시하고 있고 사후 대한민국에서 수여한 훈장이 전시되어 있다. 젊은 시절부터 농촌에 조직을 만들어 우리글과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결국 큰 뜻을 품고 집을 나서서 결국 상해에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의거를 성공시켰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사나이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공을 이루지 않고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젊은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끝에 닿아 있다. 이상을 쫓는 사람은 누구도 쫓아갈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젊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 이상을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매헌 기념관 앞에서


 매헌 기념관 안에 있는 윤봉길 의사 전신상


 야외에 있는 윤봉길 의사 동상 


관악산 입구에서 시작해 사당역까지 걸었다. 5.8km의 코스로 5-2보다 짧다. 


날은 여전히 좋았다. 관악산 입구에서 좌판을 벌린 노점상들이 부지런히 가게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가로운 오후의 시작을 알리는 가게들 사이로 우리 가족의 둘레길 여행을 시작했다. 아이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밝다. 전날 여의도 물빛 공원에서의 물놀이가 무척이나 즐거웠나 보다. 이날도 즐거운 가족나들이로 한껏 들떠 있었다. 


서울대 정문에서 바로 둘레길을 찾지 못해 약간 헤매었다. 등산복을 입고 오가는 사람들을 따라 서울대 안으로 들어가 보다가 다시 지도를 자세히 보니 잘못된 길이다. 서울대에서 낙성대로 가는 길은 서울대 정문을 보고 왼편으로, 서울대를 오른쪽에 끼고 걸어야 한다. 표지판도 그리 되어 있건만, 둘레길 초보자의 흔한 실수이다. 가야할 길이 멀지 않으니 길을 잘못 들어도 여유롭다. 쉬엄쉬엄 걷기, 놀면서 걷기, 천천히 걷기, 도란도란 걷기... 아이와 함께 걷기 위해 필요한 원칙이다. 


얼마 안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 낙성대까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숲길이 이어진다. 5-2코스가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면 여긴 자연그대로의 숲길이다. 오르고 내리고 타박타박 걷다 보면 5-2코스에 비해 지루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람과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루한 아이는 금방 지쳐했고 어깨가 축축 늘어졌다. 아이를 달랠 엄마의 한 마디. "조금만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자~"


낙성대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공원 가게로 들어갔다. 이 가게에서는 자전거도 대여해 주는지 자전거를 빌리려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 이런 날에는 '쭈쭈바'를 먹어야 한다는 아내의 주장에 셋이 다 쪽쪽 빨아 먹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야외 의자에 앉았다. 고요한 숲속을 거닐다가 가까운 도로에서 들리는 차량들 소리를 들으니 무척 시끄럽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피곤도 몰려오는 기분이다. 아내는 이내 쭈쭈바 빨면서 걷자고 우기기 시작했고 나이 마흔 넘은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가 쭈쭈바 물고 다니는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낙성대(落星垈), 별이 떨어진 자리. 이곳에는 사당이 있는데, 사당의 주인은 고려시대의 무장 강감찬 장군이다. 이곳은 그가 태어난 터라고 한다. 그가 태어날 때 별이 떨어져서 이곳 이름을 낙성대라고 지었다. 강감찬 장군은 고려 현종 때 쳐들어온 거란(요나라)의 대군을 물리친 귀주대첩이 유명하다. 84세까지 살았고 무신으로는 우리나라 3대 대첩(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한산도대첩)의 하나인 귀주대첩을 이끌었으며, 문신으로도 고려 때의 최고위 관직인 문하시중까지 올랐으니 그에 대한 신화적 이야기들이 숱하게 많이 내려오지 않을 수가 없다. 출생 설화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맥락에서 전해져 왔던 것일 거다. 옛이야기에서는 왕마저도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들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강감찬이 3군을 거느리고 개선해 포로와 노획 물자를 바치니 왕이 친히 영파역(迎波驛)까지 나가서 맞이하는데 채붕(綵棚)을 맺고 풍악을 치며 장병들을 위해 연회를 배설했다. 왕이 금으로 만든 여덟 가지의 꽃을 손수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 준 후 왼손으로는 강감찬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축배를 들어 그를 위로하고 찬양해 마지않으니 강감찬은 분에 넘치는 우대에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의를 표시했다.

- 《고려사》 권 94, 〈열전〉 제7, 강감찬


걷기 여행이 여유 있게 걷는 건 좋은데, 낙성대 안을 두루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걷다보니 걷는 속도는 많이 느렸고, 다른 길로 빠져서 힘과 시간을 쓰는 게 어렵다. 낙성대안 강감찬 장군의 사당까지도 가보지 못하고 다시 옆길로 들어가 서울 둘레길을 마저 걸었다. 


▲ 출발 전 한껏 신난 아이


▲ 선풍기도 목에 걸고... "아빠, 이 길 맞아?"


▲ 걷기에 빠진 아내. 좁은 길에서는 아내가 앞에 서고 뒤에 아이가 서고 내가 맨 뒤에 서서 걸었다.


▲함께 걷는 엄마와 딸


▲ 도로에서 옆길로 빠져 산길로 들어섰다.


▲바닥에는 나무에서 나온 꽃잎들이 잔뜩 떨어져 있다. 


▲가면서 나무도 한번씩 만져 보고...


▲ 5-1코스는 관악산의 북사면을 걷는 길로 조용하고 고즈넉한 산길이 대부분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잎이 땅을 뒤덮었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5월의 하순


▲낙성대에 들어섰다.


▲낙성대 안국문 앞. 여기서 둘레길은 안국문 안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른편 길로 빠진다.


많이 쉬었다 걸어서 그런지 아이는 더 힘들어 했다. 낙성대를 지나 다시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 산길이다. 이런 길이 관음사까지 이어진다. 낙성대에서 다시 산길로 들어서자 하얀 꽃잎들이 하늘하늘거리며 떨어진다. 낙화(落花). 오후의 햇살 사이로 떨어지는 꽃잎들이 반짝거린다.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하얀 꽃길을 걸으니 다른 세상에 온듯하다. 숲은 계절에 따라 바뀌고 자연은 오묘한 조화 속에서 자체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우린 그저 바라보고 느끼면 될 뿐. 숲이 주는 따뜻한 선물에 마음이 녹아든다. 


쉴자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우리 세식구 누울 돗자리 깔만한 공간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5-2코스의 그 소나무 숲이 흔한 게 아니다. 낙성대 이후 이어진 길에서는 그리 오래지 않은 여러 잡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간신히 좁은 터를 발견하고 김밥을 먹고 간식을 먹으며 허기를 잡고 다리를 쉬었다. 아이의 생명력은 팔닥팔닥 거리며 다시 살아나 재잘거리기 바쁘다. 잠깐 누워서 숲의 공기와 바람을 느껴 보는 우리만의 의식도 가졌다. 


낙성대에서 이어진 숲길은 다시 관음사까지 줄곧 이어진다. 산중의 절이 다 그러하겠지만 고즈넉하고 조용하다. 큰 절이 아니라서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다. 절 중앙에 샘이 나오는데, 보기에도 시원하고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린다. 한모금 들이키고 다시 절을 본다. 관음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이다. 관음보살(觀音菩薩)은 '중생의 소리를 본다'라는 뜻으로 중생이 말하는 소리를 보고 구제한다는 말이다(용어풀이). 불교를 믿는 것은 아니나 무릇 베풀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상대의 말을 듣고 눈을 맞추어야 하는 법이니, 관음보살의 존재가 그것을 알려 준다.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얼마나 잘 듣고 이해하려 하는가. 가까이 자신의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아이, 형제자매의 말도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의 그런 답답함이 관음보살에 투영되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가족은 관음보살 앞에서 각자의 기도를 마음 속으로 올렸다. 사람들의 간절함은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지쳐서 어깨가 처진 아이


▲힘들어 하는 모습. 지난번보다 구간은 짧았지만 전날에 이어 이날도 많이 걷다 보니 힘들어 했다. 


▲ 떨어지는 꽃잎, 산길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하얀 꽃잎들이 뿌려져 있었다.


▲산 중턱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 다시 손 꼭잡고 힘내서 걷는다.


▲ 누워서 발을 모아 보자. 애쓰는구나. 


▲ 무당들이 제를 올리는 작은 동굴


▲기운내서 씩씩하게 걷는다. 


▲숲길 곳곳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봄꽃들


▲관음사


▲관음보살. 남성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여성이라는 것이 주요 학설이다. 


▲저 바가지들은 치우고 찍을 걸 그랬다.


▲맑은 물이 흘렀다. 한 모금 마실만 하다. 


▲300년된 느티나무가 절 한 가운데에 있다. 큰 나무가 있는 집은 얼마나 편안한가.


▲사당역으로 가는 주택가 화단에서 만난 꽃. 참 예쁘고 신비로롭다. 꽃잎이 안과 바깥에 따로 있다. 





우리가 걸어온 거리

 - 이날 걸은 거리: 5.8km  

 - 올해 걸은 거리: 12.7km







1. 아이와 걷다               

걷는 걸 좋아했다. 결혼 전 아내도 나도 많이 걸어다녔다. 아니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육아의 책임이 주어지면서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돌아다니는 일은 여행 준비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 조금만 걸어도 다리 아프다, 벌레 무섭다, 졸립다 그러며 안아달라 업어달라 하니 돌아다니는 일도 어렵다. 게다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풍광이나 경치를 찾는 것도 어렵고, 아이의 취향이 담긴 여행길도 찾기가 쉽지 않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데리고 가는 일도 있지만, 잠깐 둘러보다가 실증을 내는 일이 잦았다. 놀이가 필요한 아이에게 그곳은 지루한 장소였던 것이다. 

"아이가 언제쯤 우리랑 같이 돌아다닐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가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게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아이는 이만큼 자라 엄마아빠보다 저 앞에서 걷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둘레길을 걸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얼마전 일이다. 회사 동료들과 남산 둘레길 일부를 걸을 때 아이를 데리고 함께 걸었는데, 제법 잘 걸었다. 자신이 생겼고, 이제 어느 정도 걷기 여행은 가능하겠다 싶었다. 다양한 풍경과 경치를 만나는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벌레에 대한 무서움증도 어느 정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스스로 업어달라거나 안아달라고 하지 않고, 옷자락에 매달리지 않는다. 돌길을 오르는 걸 좋아하고 바위타기를 신나한다. 숲길을 발랄하게 걷기 시작해 나무들 사이로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5월 14일, 우리 가족은 걷기 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2. 우선 서울부터...          

아직 차멀미를 하는 아이때문에 멀리 가는 건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은 서울부터 시작했다. 아내가 관악산을 찍었고, 내가 코스를 잡았다. 서울 둘레길 5-2코스로 석수역 출발해 서울대 정문까지 이어진다. 관악산 정상으로 오르진 않고 산 주변을 걷는 길이다. 


가벼운 옷차림에 웃옷을 하나 더 걸치고 집을 나섰다. 처음 걷는 길이라 길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코스 안내가 잘 되어 있다. 석수역에서 나오자 마자 만난 둘레길 안내판이 반갑다. 자주 등장하는 안내판은 둘레길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고, 아이와 함께 보면서 지나온 길과 가야할 길에 대해 가늠해 보기도 했다. 역사나 유래가 있는 장소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다. 미리 알고 간다면 아이 눈높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석수역에서 출발하는 관악산 초입에서는 김밥 등 간식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 많으니 미리 준비하지 말고 여기서 사는 것도 좋다.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밥집이나 주점도 있는 듯하다. 만일 석수역이 하행길이라면 여기서 막걸리 한잔 하는 것도 또한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곳 둘레길에서 먼저 만나는 길은 '호압사 산책길'이다.산책길은 완만한 산행길로 호압사에서 석수역까지 이어진 길을 이른다. 약 3.7km구간으로 5-2코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산책길에서 다양한 숲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사람들의 산에 대한 기원과 바람도 곳곳에 남아 있다. 신선길이 대표적이다. 신선길에는 많은 돌탑과 산성이 있다. 특히 호압사 입구에서 시작해 호압사 폭포까지 연결된 나무데크의 '호암늘솔길'은 정말 편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물론 인공적인 나무데크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은 그 옆길의 자연숲길을 걸을 수도 있다. 아내는 일부러 자연숲길을 걸었다. 


 

우리는 잠시 나무데크에서 떨어져 소나무숲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솔잎이 가득 뿌려진 평평한 곳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나무 사이를 오가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도 듣고, 아이들이 숲속을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멀리 있는 호압사에서 나오는 불경 읽는 소리가 은은했다. 무엇보다 바람부는 소리가 좋았다. 아이는 '토토로'에서 고양이버스가 지나갈 때 나는 소리라며 반가워한다. 이 시간이 정말 좋다. 셋이 나란히 누워 숲속의 공기와 햇살과 바람을 온전히 받아 안고 있다.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30분 정도 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곧 잣나무 산림욕장을 지났고 호압사 절이 나타났다. '호압(虎壓)'은 호랑이를 누르다(제압하다)'라는 뜻으로 호랑이 기운이 가득한 호암산의 기를 눌러 한양을 편하게 하기 위해 지어진 절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한 설화이다. 그중 한 대목을 옮겨온다.


"저희들은 의심을 풀 길이 없사와 힘센 장시들을 뽑아서 그들과 함께 지난 밤엔 궁궐의 일터를 지키고 있었사옵니다."
"그래서?"
"부엉이가 울고 난 뒤였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 한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괴물이라, 그래서?"
"소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반은 호랑이요 반은 그 형체조차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서 저희들이 낮 동안 세워 놓은 건물을 마구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 호압사의 전설(출처: 호압사 홈페이지)


전설에 따르면 당시의 수도 한양을 향하는 호랑이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호압사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풍수사상과 토템사상이 어우러진 이야기이다. 한나라의 기틀을 잡는 데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 그것에 대처하기 위한 간절함이 묻어 있다. 절의 역사를 상징하듯 500년된 느티나무가 우리를 맞았다. 큰 나무를 보면 고개를 들어 넓게 퍼진 가지 끝을 쳐다본다. 넓게 드리워진 나무와 굵은 몸통 여기저기 갈라져 떼운 모습에 세월의 흔적이 드리워져 있다. 




호압사에서 관악산 정문까지는 서울시 테마 숲길인 '도란도란 걷는 길'이다. 이 길 중간에 삼성산 성지의 세 외국인 신부에 대한 이야기는 '기해박해: 1839년에 일어난 제2차 천주교 탄압' 을 담고 있는데, 참으로 끔찍한 사건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말도 안되는 명분으로 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당시의 천주교는 지금의 빨갱이처럼 입에 올려서도 안되고, 함부로 집안에 들여서도 안되며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금기어였다. 집안을 풍비박산내고 처참한 죽음으로 이끄는 그 과정에 권력의 치졸하고 비열한 음모가 있었다. 종교와 사상의 자유는 이렇게 많은 피가 뿌려지면서 이 시대의 확고한 이념이 되었다. 억울함은 씻겨졌을지 모르나 역사는 남아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삼성산 성지를 지나 조금만 더 가다보면 작은 바위들이 있는 곳 옆을 지났다. 바위를 오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따라 조금 오르니 서울대 건물들이 보인다. 넓은 교정을 아이에게 보여 주며 저게 다 하나의 대학교라고 설명하니 눈만 깜빡인다. 그나마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인데도 2학년 한 반이 5개반밖에 없으니 저 큰 교정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라는 건, 단순히 복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아이의 꿈이 아닌 어른의 꿈을 투영시키는 그릇된 욕망 등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 입구로 내려가는 마지막 길에는 길게 늘어선 장승들을 만날 수 있다. 온갖 모습들을 한 장승들이 관악산에서 서울대로 이어지는 길을 지키고 있나 보다. 어떤 장승은 입안에 건빵이 들어 있다. 산행객들이 장난스럽게 올려놓았나 보다. 우리 가족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함께 웃었다. 그렇게 유쾌하게 이날의 걷기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3. 첫 도보 여행의 소회              

약 6.9km의 길을 걸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고, 작은 오솔길도 있었다. 걷기에 편했던 길이다. 이날 걸은 걸음은 약 18000걸음이다. 1시 10분 석수역에서 출발해 5시 10분 관악산 입구를 나왔다. 쉬엄쉬엄 놀면서 가다보니 4시간 정도 걸렸다. 아이는 제법 잘 걸었고, 걱정하던 아내도 매우 즐거워했다. 기분좋은 피곤함이 배였다. 서울대입구역 근처 감자탕집에서 소주와 감자탕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일요일 집에서 보내다보면 오후부터 못내 아쉬움이 깊어지곤 했는데, 이날은 뿌듯함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붙었다. 아내는 꼭 서울둘레길을 완주하자고 한다. 우리 가족의 첫 목표가 생겼다. 





우리가 걸어온 거리

- 이날 걸은 거리: 6.9km 

- 올해 걸은 거리: 6.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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