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7》로 홍콩 현대사를 관통해 온 한 형사를 통해 홍콩의 역사와 시민적 정의에 관해 이야기했던 찬호께이가 이번 작품 《고독한 용의자》에서는 현대사회의 고독을 소재로 자본주의의 딜레마 속으로 파고들었다. 《13.67》에서도 관전둬 형사는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권력의 한계와 모순 속에서도 자신만의 남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고독한 용의자》에서도 권력의 힘과 법의 정의가 미치지 않는 비극적 모순이 등장한다.
정의마저 빗겨간 곳에서 피어난 희생
사회 모순은 폭력적으로 단시간에 이루어지거나, 반대로 아주 긴 시간에 걸쳐 감각을 무디게 만들며 기억 바깥으로 사라져간다. 문제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 안에서 정의는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법이 아닌 사적 처벌이 고개를 든다. 화려한 쫄티 입은 마블 영화 속 초인들이 늘 법과 정의의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다면 악인을 규정하고 처벌할 힘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하물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지구를 구한 초인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방구석에 갇혀 사회적으로 ‘패배자’라 손가락질받는 은둔자들이다. 하지만 이 ‘손가락질받던 방구석 히어로들’이 ‘자기희생’ 위에서 정의를 실현한다. 그래서 이들의 정의는 고독하다. 진짜 악을 처벌하는 정의는 자신을 버리는 희생 위에서만이 가능하고, 그 희생마저 영원히 드러나서는 안 되는 비밀이 되어야 했기 떄문이다.
20여 년간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던 사람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자살 사건인데, 그가 살던 방에서 의문의 인체 조각이 담긴 13개의 방부 유리병이 쏟아져 나온다. 조사 결과 모두 인체의 조각이며 젊은 남자와 여자의 시체임이 밝혀진다. 남자는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여자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자살한 은둔자와 유리병의 두 인물은 어떤 관계일까?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던 그가 사실은 연쇄 살인마였던 것일까?
잔혹한 연쇄 살인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사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이 치밀하게 꾸며진 각본이었다. 트릭은 죽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죽음은 목적을 이루었다. 죽음은 감추어져 있던 진실을 드러냈지만 또 반대편의 진실은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숨겼다. 그리고 진실을 아는 이는 희생자가 못다한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의 잔인함과 불완전한 사회의 모순 속에서 뜨거운 인간애와 순결한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감당할 비극의 무게는 얼마인가?

고독한 죽음으로 감추어야 했던 진실
홍콩, 일본, 영국은 우리보다 앞서 은둔 청년의 고립 문제를 다루어왔다. 영국은 ‘외로움 담당 장관’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일본은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돌보는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삼아 대응했다. 그렇지만 은둔 청년 문제의 뿌리에는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비정함과 모순이 얽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소설에서 은둔자 세바이천은 사실 무기력한 은둔형 외톨이와는 거리가 멀다. 절친인 칸즈위안과 계속 교류하며 지냈고, 온라인을 이용해 충분히 수입을 내면서 자신의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게 가능했던 능력자였다. 비극적인 사건만 아니었다면 그는 이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인재였다. 비록 그는 고독한 죽음을 선택했지만, 그 고독한 죽음마저 가장 인간적인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친구들과 끝까지 고군분투했다.
이 소설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한꺼번에 펼쳐지는 화려한 떡밥 회수의 쾌감만이 아니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의 진짜 숙제다. 후반부에서 사건의 윤곽이 잡혀가며 이야기의 결말로 서서히 스며들어 갈수록 독자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고 가슴먹먹한 여운과 씁쓸함이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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