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피규어라는 것은 자신의 감동을 기록한 영예로운 수집품 중의 하나일 것이다. 책상 위 또는 책장에 늠름하게 전시되어 있는 피규어는 과거 기억에 다시 몰입할 수 있는 상징물이며, 잊고 있었던 꿈의 한 조각을 다시 불타오르게 할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의 작은 피규어들을 모아왔었다. 뽀로로로 시작해서 로보카 폴리, 꼬마버스 타요, 신비아파트의 신비를 비롯한 여러 귀신들과 숲속 요정 페어리루, 아이엠스타와 프리파라의 아이돌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피규어까지···· 어릴 적에 모은 작은 장난감들이야 아직 아기때인만큼 큰 부담없이 사줄 수 있었다. 아이는 혼자 있는 시간에 그 장난감들로 역할극 놀이에 곧잘 빠져들면서 즐거워했다. 뽀로로와 크롱으로 장난을 치는 모습을 표..
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면 쉽게 상처받고 겁이 많아 무서움에 떨면서 구석으로만 슬슬 피하던 쬐끄맣고 깡마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사로 잡혀 있어서 바깥에서 한번이라도 안면이 있는 어른들에게는 꼬박꼬박 인사를 잘 했는데, 그러면 대부분의 어른들이 나를 알아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죠. 하지만, 그건 어쩌면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린 나의 순진한 처세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물론 용기 있는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만... 그런 내 성격을 닮았는지 내 아이도 겁이 많고 착하고, 부끄럼도 많이 탑니다. 3개월 전 이사하고 자기 방을 따로 마련하여(사실 이전 집에도 아이 방은 있었지만 그곳을 사용하지 않았죠) 따로 재우려고 했는데 아직까지 진전이 없네요. 애써 내가 계속 아..
딸 민서가 다음달 생일이 되면 딱 60개월이 된다. 처음 2.04kg의 미숙아로 태어났고 인큐베이터에서 3주 머물때는 1.89kg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새 키도 또래 아이보다 크고, 몸무게도 비슷하게 나간다. 신생아실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의 일이다. 면회도 쉽지 않아 예약하고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나날이 잘 견디고 건강하다는 이야기만으로 감사해 했다. 엄마 젖을 빠는 모습은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면회를 하려고 대기할 때였다. 안이 부산스러웠다. 결국 많이 아프던 미숙아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다. 아주 작은 상자가 나오고 뛰따라 엄마아빠가 따라나왔다. 우리는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민서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출생률이 떨어지면서 산부인과나 유아관련 의학은 이..
봄이 오는 소리에 맞추어 공원 나들이를 떠났다. 따스한 봄햇살이 비치는 버스 창가에 기대어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던 아이는 이내 내 팔에 기대어 잠들었다. 다 왔다고 깨우자 눈을 크게 뜨고 바깥을 바라보며 또랑또랑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 일어났어요." 퀵보드를 타고 자전거도 탔다. 이제 제법 안정감 있게 자전거를 탄다. 처음으로 브레이크의 기능을 알았고 장애물이나 충돌 위험 앞에서 브레이크를 잡기도 했다. 아이의 인지 기능이나 지적 능력은 부모의 시선보다 더 앞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리는 민서. 이유는 밤새 손가락에 감아놓은 밴드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그 밴드는 어젯밤 민서가 자는 틈에 일부러 떼어 놓은 것이다. 아무래도 상처를 감아놓으면 습해서 덧나거나 잘 낫지 않을 것 같아 취한 조치였다. 그렇지만 민서는 손가락에 밴드 감는 걸 워낙 좋아하는 터라 아침에 일어나서 없어진 걸 알고는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어차피 밤에 잘 때에만 풀어 놓으려 한 것이고 아침에 다시 감아주겠다 생각한 건데, 아이의 반응이 실로 즉흥적이다. 엄마가 밴드를 감아주자 울음을 뚝 그치고 이번에는 냉장고를 열어달라고 한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민서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그것을 꺼내더니 먹어도 되는지 물어본다. 아침 식사 전에는 안된다고 했다. 엄마한테 가서는 쵸코파..
아이는 자란다. 계절이 지나가는 속도보다 빠르다. 금세 쌓인 낙엽을 밟는 아이의 작은 발이 만질 때마다 자란 것을 느낀다. 어떤 때는 키보다 더 빨리 자라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또 한 가족이 동물원을 향한다. 아이는 아직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다. 그 아이도 우리 아이만큼 빨리 자랄까. 산꼭대기에서는 벌써 벌거벗은 나무도 보인다. 떠나는 계절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웃음기가 좋다. 따라 웃어보지만 헤설프다. 문득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본 자작나무 숲이 떠올랐다. 하나의 질서처럼 곧게 뻗은 회색빛 자작나무 숲에는 세월의 엄중함이 묻어 있다. 거기 가면 아무 거리낌 없이 시간을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 살다보면 세상은 참 잔인하다. 여기저기 충돌과 살육의 소음이 쟁쟁하다. 그러다가 이렇게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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