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겪게되는 아픈 갈등들은 시간이 지나 원인과 결과만 남은 앙상한 기억만 남는다. 그런 기억들은 아무렇지 않게 뚝뚝 꺾어 추억의 불쏘시개로 쓰인다. 그래서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고 고통은 계속되는 거다. 그 이유와 해결 과정은 모두 망각한 채 다시 반복되는 갈등의 골로 시나브로 빠져들어간다. 함정에 빠져버리면 다시 빠져나오려고 골머리를 앓지만 앙상한 기억들을 떠올려보는 일은 허튼 수작에 불과하다. 그냥 슬픈 일이다. 속상해하고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슬프고 슬프게 받아들일 일이다. 갈등은 결국 슬프다. 연민일 수도, 동정일 수도 있다. 씁쓸하다 못해 아리기까지 한 입맛을 느끼는 일이다. 무슨 짓을 해도 무력함에서 헤어나오기 힘들다. 이럴 때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슬픈 일이 생긴 것이다. 그냥 슬픔..
버스 정류장 화단이 또 예쁘게 꾸며졌다. 도시에서 살면 이런 사소하지만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심미적 구조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인공적이지만 세심한 인간의 도시 문명을 접하면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시골 정류장은 어떨까? 어느 지리산 산골마을은 하루 3~5회 정도 버스가 온다. 정류장 구석에는 거미줄이 커다랗게 쳐져 있고 언제 붙였는지 모를 광고판들이 여기저기 색이 바래고 귀퉁이가 떨어져 바람에 팔랑거린다. 아무렇게나 써져있는 콜택시 번호 중에는 017도 있더라.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인공 구조물 밖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숲과 들판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들이 낡은 정류장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또한 경이롭다. 오래되어 낡음을 생생한 자연이 감싸안은 듯하다. 존재들에 이유를 분이고 엮일 것..
한날 거의 동시간에 찍은 두 개의 나무 사진이다. 여의도 LG빌딩에서 마포대교로 넘어가는 교차로, 이곳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두 대왕참나무 그늘목이 너무 상반된 모습이다. 같은 공간에서 하나는 지난 가을에 떨어지지 못한 잎들이 무수히 매달려 있고, 다른 나무에는 마른 나뭇잎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 생각에는 잎을 떨구지 못한 나무가 이상해 보인다. 두 나무에서 나타나는 외관상 극명한 차이가 무엇 때문인지 궁금해졌다. 이를 위해 먼저 “나무는 왜 가을에 잎을 떨어뜨릴까?”를 알아보았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에너지를 성장보다는 보존으로 전환한다. 즉, 낮의 길이가 점차 짧아짐에 따라 광합성의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무는 잎에 가는 영양분을 줄인다. 이때 잎과 나뭇가지..
다시 다음 교육과정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집필진을 꾸리고, 차기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을 확인하고, 수업 방식과 교육 현장의 요구 등을 정리하고 있다. 편집자를 새로 뽑고 있다. 많은 편집자가 이 시기에 필요하다. 길면 2년의 프로젝트 업무라서 계약직을 뽑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출판의 전 과정을 깊이 있게 다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과서 출판은 해 볼만한 일이다. 일부 과목은 지원자를 찾기가 어렵다. 국영수사과 등의 주요 과목은 계속해서 개발이 있고, 업무 연속성도 있어서 지원자도 많고 경험자도 많지만 예체능 계열이나 선택 과목(기술가정, 한문, 정보 등등)은 구인난에 시달린다. 출판으로 직업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콘텐츠 사업 중에서도 출판은 어쩌면 매력이 많이 떨어진 업..
겨우내 물꽂이로 키워 온 페페의 뿌리가 풍성했다. 오늘 흙에 옮겨 심었다. 흙은 예전 산세브리아를 키우던 화분에서 가져 왔다. 흙색은 검었다. 한창 세계 3대 곡창지역이라는 우크라이나 땅의 흙도 검다고 들었다. 아주 좋은 흙이다. 흙도 방치하면 건조하고 푸석푸석해지며 빈약해진다. 비록 화분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지만, 틈틈히 물꽂이에 있던 물들을 부어주면서 흙을 건강하게 키웠다. 무생물인 흙이 건강하다?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흙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흙이다. 물꽂이로 사용된 물이 흙속에서 식물과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식물의 뿌리에는 여러 미생물들이 자란다고 한다. 마치 우리의 장과 같다. 장에 사는 미생물들이 우리가 먹은 음식들을 잘 분해해 ..
차별과 혐오를 앞세워 갈라치기 하는 세력과 분노와 공포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세력의 싸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가 가진 공통점이다. 대선 기간 중 양측은 총칼만 안 들었을 뿐, 말로 오가는 증오의 표현들은 총칼 못지 않았다. 이렇게 비이성적인 난투극으로 대선을 치루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싶은 마음인데, 과연 그런 게 가능해질까? 상대를 상대로 이해하지 않고, 전부 몰살하고 절멸해야할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양쪽 다 있더라. 그런 사람들에게 먹이(관심)를 주는 사람도 많다. 생각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그냥 사는 대로 생각하는 바보가 된 사람들이다. 이재명이든 윤석렬이든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왔으면 그만한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것인데 그걸 보지 않고 어떻게든 흠결만 잡고 늘어졌다면 스..
전쟁도 혁명도 실시간 SNS로 전파되는 세상이다. 머나먼 타국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신경이 집중된다. 지하벙커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도 길바닥에서 죽어가는 군인의 모습도 내 작은 휴대폰으로 시시각각 전달되었다. 아파트를 향해 떨어지는 미사일의 모습, 곧바로 이어지는 폭발과 섬광. 전쟁에서 빛과 열은 대부분 참혹하다. 차라리 지하의 어둠이 더 평화롭다. 전쟁이 일상의 모든 걸 거꾸로 바꿔놓고 말았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안도하면서도 여전히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세상은 그만큼 가까워졌다. 부디 이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투표권이 생긴 이래 대통령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었다. 직접적인 선거 활동을 한 경우도 있었고, 간접적인 지지-반대 발언을 온라인 공간에서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줄곧 지지했던 민주당에 표를 주기가 어렵다.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생긴 건 서울과 부산시장에 후보를 냈을 때부터다. 그때 민주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말로만 반성하는 관행, 서민을 위한 정책 실종,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 민중을 외면하는 나라 살림... 무엇보다 변하지 않은 공포와 분노 마케팅. 언제까지 보수세력에 대한 반대 이익만 취득하며 살 건가? 이런 이유로 당연히 민주당은 이제 심판의 주역이 아닌 대상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한다. 우리가 더 지지해 주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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