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 김호연 지음/나무옆의자 편의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구심력과 원심력 "불편한 편의점"은 이문구의 "관촌수필"처럼 하나의 장소에서 여러 군상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려낸 연작 소설이다. 24시간 돌아가는 편의점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원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구심력처럼 우리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이런 강한 구심력이 있기에 물체는 원심력을 발휘해 힘차게 원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구심력은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 그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에 대한 믿음이다. 이 중심에는 '독고'와 '사장 할머니 염영숙'가 있다. 반면 이야기를 재미있고 풍부하게 하는 힘이 원심력이다. 원심력을 받는 이야기의 인물로는 20대 여성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
불온한 책, 불온한 사상 사람의 생각은 말과 글로 전달된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대화를 하듯이, 많은 이에게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글이 필요하다. 여러 권력자들이 자신의 독재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반대자들의 말과 글을 차단했다. 때로는 죽음으로, 때로는 금서라는 형식으로···· 중세 시대 고대 인문학 관련 서적들은 이교도의 사상이라는 이유로 종교적 권력 아래 대중에게서 격리되었다. 격리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간의 무차별적인 공격 앞에 속절없이 사라져 갔던 고대 문헌들을 기어이 끄집어 내어 세상앞에 내놓았던 사람들이 있다. 이 책 은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인 포조 브라촐리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포조는 중세의 기독교 권력의 몰락해 가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던 로마 교황청 서기이기..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직장 동료들이 가끔씩 던지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는 절대 하지 않았던 말인데, 나이가 드니 저절로 입밖으로 터진다. 변하지 않는 구조와 회사의 인식에 대한 자괴감을 담아서 이렇게...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넷플릭스 드라마에서 20대의 젊은 청년 조일병이 내뱉던 그 말은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무시무시한 폭력 앞에 내던져졌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도 손내밀지 않았으며 모두가 방관했다. 그 절망 앞에서 그는 마지막을 향해 폭주했다. 누가 착하고 순했던 조일병을 그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은 의미없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떠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군 시절(1993~1995) 중대 행정반 게시판에는..
작가 박현옥 | 문이당 | 2006년 5월 읽음 당황스러운 제목이다. 누군가 소개해줬을 때 이혼 이후의 얘기라고 짐작했다. 드라마 ‘연애시대’처럼(사실 이 드라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혼 이후에도 관계를 이어가는 남녀의 이야기는 흔한 소재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책장을 열 때부터 심상치 않다. “모든 것은 축구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시작하는 소설의 첫머리. 제목-아내가 결혼했다-은 남자들에게 비난받기 좋고 첫머리-모든 것은 축구로부터-는 남자들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물론 여기서 말한 남자들이란 ‘모든’ 남자를 말하기 보다는 ‘대부분’의 남자들을 말한다. 아내가 결혼하는 걸 좋아할 남자들은 극히 드물 것이며, 축구를 싫어하는 남자보다는 좋아하는 남자가 훨씬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는 보통의..
오래전부터 집을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새로운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본가에서 멀지 않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직장이 멀어서, 혹은 결혼 때문에, 아니면 집이 멀리 이사가니까 등등의 이유가 아니면 독립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가와 한동네라니 이상하게 볼만도 하다. 가족. 참 슬프고 억장이 내려앉는 말이다. 태어나자마자 속하게 되는 집단이고, 그 집단의 보호 아래 성장하고 자라왔으며, 이만큼 살아왔던 고마운 곳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곳은 감옥이 된다. 내 말과 행동과 생각을 구속하는 일이 생긴다. 머리가 커지면서, 대가리에 피가 마른다는 어느 시점에서 가족이 나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위로보다 상처가 될 때가 많다. 영화 을 보며 입안이 텁텁해지는 건 왜일까. 엄..
“자, 이 사진을 보세요. 어떤 공통점이 있죠?” 학생들은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조그마한 목소리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흑백이요.” “한 사람이네요.”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어요.” “사진의 질감이 거친데요.” 때로는 대답에 칭찬하고, 때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이며 학생들의 수업의지를 북돋우고 있는 이는 한금선 사진작가. 학생들은 광운대학교 미디어학부 학생들. 한금선 작가는 내가 만드는 잡지와도 꽤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분이다. “그래요. 그런 공통점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그 안에서 이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그게 무엇일까요?” 그야말로 토론수업이고 현장학습이었다. 학생들은 주위에 서성이는 관중들을 조금은 의식하는 듯해 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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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명계남의 모노드라마)를 보고 어느 누구나 자기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다. 콘트라베이스든, 첼로든, 팀파니든 각자가 고유한 역할과 소리가 어우러져 합중주든 오케스트라든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박수갈채를 받는 대표는 지휘자이거나 좀 더 나아가면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다. 이쯤 되면 다른 악기들의 불만도 있을 법하다. 왜 저들만 나서야 되냐구요~ 그런 불만이 가장 큰 것은 콘트라베이스일 것이다. 하긴 그럴만한 게, 역대 유명 짜하다는 작곡가 중에 이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독주곡을 만들어 준 사람은, 없다! 현악기 중 가장 낮은 저음으로 오케스트라에 무게를 실어주고 중심과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악기인데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는 작곡가들은 많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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