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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남은 여행의 시작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1
- 중산리 >> 천왕봉 >> 장터목산장(6.7km)
- 2008.06.24~25




 

떠남은 여행의 시작이다. 물론 준비하는 그 순간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까지 여행은 불확실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공상에 불과하다. 하루짜리 나들이도 칫솔이 부러졌다는 하찮은 이유만으로 좌절되는 일은 허다하다.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여행을 떠나지만 그 실행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기 때문에 떠남은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떠나기 전 지인을 만났다. 그는 내가 떠나는 것도 몰랐지만, 어찌됐든 배웅 아닌 배웅을 맞아 소주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실상 나는 매우 두려운 상황이었고, 누구든지 툭 건들면 주저 앉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럴 때 걱정을 나누고 원정을 독려하는 이를 만난다면 고맙다.


실상 미안한 감도 있다. 누구는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고, 곤봉과 방패, 군화발에 짓눌리고 있는데, 한가하게 백두대간이나 타겠다고 나선다는 죄책감이다. 어쩌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나보다. 하지만 내가 이겨내야 할 것은 무기력이었고, 되찾아야 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희망이다. 그래서 고되고 외롭고 쓸쓸한 여행을 선택했다.


적당히 취해 진주행 심야 고속버스에 올랐다.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소주 덕분인지 곧 잠이 들 수 있었다. 버스는 3시간 반만에 머나먼 남쪽 진주에 나를 내동댕이쳤다. 휑하게 텅빈 진주 버스터미널의 새벽은 내 여행의 고단함을 예견하는 듯했다.



 

가게들은 닫혀 있고, 터미널 한쪽은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다. 피곤에 지친 아저씨가 터미널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고, 터미널 바깥에서 졸고 있는 아줌마의 리어카에는 식어가는 간식거리들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새벽첫차로 내려온 내 모습을 보고 지리산 가는 걸 대번에 알아봤는지, 중산리로 가자고 보챘다. 야간 산행을 해야할만큼 길이 급하지도 않아 거절했다. 길 건너 편의점에 가서 부족한 물건을 몇가지 사고 다시 터미널로 왔다. 새벽 3시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첫차는 6시가 넘어서 있다. 잠을 청했다. 불편한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깊은 잠은 없었다.


어차피 여행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것은 또한 인내의 시간이다. 패키지여행처럼 틈이 없이 뱅뱅 돌리며 구경하기 바쁜 여행도 있지만, 어차피 내 여행은 그런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은 어디까지 얼마만한 시간을 걸어야 도착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는 여행이다. 하루종일 걷는다는 건 시간을 또 그만큼 보내며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왔다. 5시에 나가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2줄 샀다. 그리고 6시 30분 중산리로 떠나는 첫차에 올랐다.


시간반을 달려 중산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등산객은 나와 고등학생 3명이 전부다. 아이들은 새벽잠을 물리치고 산을 찾아왔다. 가볍게 멘 아이들의 가방만큼 표정도 밝고 가볍다. 잠이 많을 나이에 지리산을 가겠다고 아침 첫차에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괜히 반갑다. 아이들이 까불면서 등산로를 향해 갈 때 나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메고, 스틱을 꺼내 길이를 맞추었다.


“우리 너무 널널하게 가는 거 아니냐? 저 사람 좀 봐. 우리도 저 정도는 준비해야 하잖아.”


내가 준비하는 폼이 꽤 진지했을까. 아이들의 대화가 재밌다. 하지만 지리산은 가볍게 가도 괜찮다. 지리산에는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색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새벽 첫차에 몸을 실고 온 그 마음 그대로 산에 올라가렴.



 



8시 10분 지리산 중산리 탐방지원센터를 지났다. 덩치 큰 바위들로 채워진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우렁우렁 울린다. 지원센터에서 칼바위까지 약 1시간 10분의 거리는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아침부터 계곡 물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엊저녁까지 있었던 마음 한자락의 두려움도 씻겨나갔다.


칼바위부터는 계곡과 멀어지고 본격적인 산속길을 걷는다. 코끝으로 바람새는 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진다. 밤새 잠을 설쳐서 그럴까.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이번 산행을 위해 체력단련을 따로 하지 않았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것이 그나마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운동이라고 할만큼 말하기도 부끄러운 정도다. 그러니 헉헉거리는 것도 당연하다. 어차피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올랐다. 장기 산행인만큼 처음부터 힘빼지 말자는 거다. 어깨에도 힘을 빼고 다리도 폼잡지 말것이며 고개도 얌전히 숙이고 가자. 그렇지만 한 발에 한땀이 목줄기를 타고 흐른다.






로타리 산장에 도착한 것은 그렇게 산과 첫호흡을 맞추어 갈 때였다. 여기서 준비한 김밥 한줄을 먹어 시장기가 돌기 시작한 속을 달랬다. 나머지 한줄은 천왕봉에서 먹기 위해서다. 김밥을 먹고 있을 때 대학생 2명이 내려왔다. 역시 라면을 끓여 먹을 준비를 한다. 젓가락이 없어 산장 매점에 젓가락을 부탁하자 일회용 젓가락은 없다며 나뭇가지를 사용하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매점 더 안쪽에서 한소리 흘러나온다.


“생나뭇가지를 부러뜨리란 말이냐. 그냥 우리 젓가락 빌려드려라.”


일회용이 편리하지만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산에 온 사람의 예의다. 젓가락을 준비하지 않은 학생들의 불찰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사용하라는 직원의 말도 산장 직원으로서 적절치 못한 언행이다. 산에 왔으면 단지 발자국만 남기고 가면 된다. 되도록 아무것도 남겨서도 안 되며, 아무것도 가져가서는 안 된다.




 

6월의 여름산은 온통 녹색이다. 조그만 흙이라도 있으면 풀들이 삐쭉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빛이 잘 들지 않는 바위에는 초록의 이끼가 축축하게 묻어 있다. 온갖 들풀들과 야생화, 나무들이 한껏 초록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많은 풀들과 야생화, 나무의 이름들을 나는 잘 모른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라는 것을 핑계로 대지만 언제 제대로 알아보려나 했을까. 다음에는 정말 식물도감이라도 하나 사서 돌아다녀야겠다.


로타리 산장 이후부터는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이다. 길이 급하게 천왕봉으로 달린다. 경사가 급하고 험해 코끝이 땅에 닿아 코재라는 이름이 붙은 노고단 고개만큼 힘들다. 게다가 날카로운 돌들이 불안하게 엉켜있다. 자칫하면 앞사람의 험한 발디딤에 뒷사람에게 날선 돌들이 굴러갈 판이다. 힘들다고 함부로 발을 디뎠다가는 자신도 위험하고 뒷사람도 위험한 구간이다. 한걸음이 조심스러운 곳이다.





 

천왕봉에 가까워지자 나무에 가려졌던 조망이 트이기 시작했다. 산 아래 마을도 구름에 덮여있고, 하늘의 해도 구름이 가리고 있다. 묘한 풍경이다. 장마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그리되니 산은 딴세상이다. 속세와 선계 사이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찾는 것일까. 세상과 떨어져서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다는 것.


그렇다 해도 이번에도 일출보기는 글렀다. 저리 구름이 위아래로 잔뜩 끼어 있으니 말이다. 애초에 덕이 없는 놈이니 어쩌겠나.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그렇게 뻔질나게 지리산을 오갔으면서 여직까지 못 봤다는 것은 내 부덕의 소치다. 그러나 좋은 것일수록 아껴두는 법, 언젠가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 기상(氣像) : 사람이 타고난 기개나 마음씨. 또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


사람들은 백두대간의 남쪽 시작점을 이곳 지리산 천왕봉으로 잡고 있다. 물론 백두대간을 처음으로 종주한 이는 부산 금정산에서 출발했고, 어떤 이는 한라산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그 시작점으로 잡은 것은 지리산이 주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마지막에 하는 일 중 하나가 이 1.5m짜리 표지석에 서서 자신의 기상을 뽐내며 사진을 찍는 일이다. 지리산이 가진 그 기개와 마음씨를 소중히 받아 안고 갔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남은 김밥 한줄을 먹었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6월 말이라지만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니 살갗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서 웅크리고 앉아 김밥을 먹었다. 천왕봉에는 사람들이 한두명 밖에 없었다. 날파리들만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쓸쓸하고 어지러운 점심시간이었다.








 

천왕봉을 넘어 제석봉으로 들어서면 황량한 벌판에 듬성듬성 서 있는 고사목들을 만난다. 이영광 시인의 <고사목 지대>는 이렇게 시작한다.


죽은 나무들이 씽씽한 바람소릴 낸다

죽음이란 다시 죽지 않는 것,

서서 쓰러진 그 자리에서 새로이

수십년씩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 고사목들은 억울한 죽음 때문인지 서서 죽어,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살아있는 나무들이 그들 밑에서 새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생사의 양상은 그렇게 구별되지 않았다. 고사목들은 살아있는 나무들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서서 죽어가며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고사목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나무들의 억울함을 우리는 알까. 무심히 들리는 내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섬뜩하다.



 



 

장터목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니 산장은 한산하다. 좀더 갈까? 내처 생각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첫날은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지리산을 천천히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구경할 곳에서 구경하면서 가는 거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세석과 백무동쪽에서 넘어오기 시작한다. 80%는 대학생들이다. 단체로 온 학생들도 많다. 그러고보니 지리산과 나와의 인연도 대학 1학년때다. 그때는 텐트에다가 버너도 없어 요즘 말하는 브루스타까지 챙겨왔던터라 짐이 꽤 많았다.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함께해서 즐거웠던 산행이었다. 요즘 학생들의 짐은 단출하다. 등산장비가 좋아진 점도 있지만, 단체 여행의 좋은 점은 짐을 많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행렬이 길어지고 통제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최소한 버거운 짐에 시달릴 일은 없다.


기다리면서 보니 천왕봉에서 보았던 할머니도 내려왔다. 할머니는 여느 시골할머니의 나들이 복장 같았다. 파란 꽃무늬 잠뱅이에 몸빼바지, 그리고 하얀 단화를 신고 나무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몸 어디에도 등산에 어울리는 모습은 없었다. 취사장에 들어온 할머니는 아이들 쌕같은 가방에서 양은냄비와 버너를 꺼냈다. 버너는 낡았지만 그래도 내 것과 견줄만했다(내 버너는 족히 6~7년은 된 물건이다). 그런데 양은냄비라니, 최첨단 코펠들이 여기저기서 물을 끓이고 있고, 손바닥보다 작은 최첨단 버너가 여기저기서 불을 피우고 있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버너를 킬 줄을 몰라 옆의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저씨는 흔쾌하게 불을 댕기면서 물었다.


“할머니 혼자 오셨어요?”

“예, 혼자 왔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노고단에서 여까지 왔지요.”

“사시는 곳은 어딘데요?”

“청양서 왔어요.”

“지리산에는 처음이세요?”

“네, 지리산은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번에 맘 먹고 왔지요. 하룻밤은 저기 어디냐, 백소령인가 거기서 잤지요.”

“할머니 대단하시네요.”


지리산의 매력은 이런데 있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 남녀노소가 여기에 모여든다. 할머니를 보며 튼튼한 스틱과 고가의 등산화로 무장한 내 자신이 참 초라해 보였다. 할머니의 그 순수한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장비에 의지하려던 내 부족함은 체력이 아니라 마음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날 할머니의 양은냄비는 나에게 잊지 못할 장면 중의 하나였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겨 들어갔다. 예약을 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다. 평일이라서 가능하다. 대규모 대학생 단체 등산객들이 있었지만 장터목 산장이 워낙 크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밤에 잠깐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역시 구름 때문에 별은 볼 수 없었다. 산장 안에서는 곳곳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내일 하산하는 사람들이다. 내일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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