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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9일, 길면 10일의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떠난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발해 전라북도 무주로 나올 예정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백두대간 코스다. 보통 남한의 백두대간 코스가 총 650km(도상)라고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지도가 24구간으로 나와있고, 그중 4개 구간을 걷는 것이니 대충 계산해 보면, 650÷24×4=108.3333...이 나온다. 100km 산악행군인 셈이다.


내가 제대한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한 적이 있다. 물론 100km의 실제 도상거리는 약 80km였다. 그렇지만 이 구간을 24시간만에 행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 8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8시에 부대 귀환이라는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행군이었다.


이번 산행은 도상 100km인 만큼 실측은 아마도 120km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간이 길다. 예상은 8박9일. 산장이 없는 구간이 많고 노숙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텐트를 가져가는 이유다. 짐을 대충 풀어놓으니 만만치 않다. 막상 배낭에 넣어보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공간이 부족하다. 결국 짐을 더 줄여야 했다. 막판에는 텐트에서 플라이마저 제거했다. 텐트에서 잘 때 비오면 대책 없다. 이런 부담 때문에 동행을 구하고자 여러 후배들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국 혼자 간다. 처음부터 혼자서 간다는 전제하에 모든 준비를 진행했지만, 부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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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동행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게바라의 친구 알베르토는 8개월간의 남미 여행을 함께했다. 동행은 갈림길에서 같이 논의하고,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축제와 기쁨을 함께 경험하고, 배고픔과 질병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여행의 소소하고 자잘한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사람도 없이 혼자서 간다.


그래, 혼자서 가라. 거기서 만나는 사람과 나무와 들꽃과 새들과 인사하자. 힘들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지나가는 바람에 의지해 휘파람을 불자. 낯선 여행객들에게 안부를 묻고, 행선지가 같으면 함께 걷자. 천천히 걸으며 발밑에 피어난 들꽃들에게 인사하고 세상에 지쳐 돌아보지 않았던 나를 위로하자. 낯선 공간에서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그것은 더 큰 내가 존재하다는 깨달음의 시작이고 자기성찰의 변곡점이다. 온갖 땅부자들이 넘쳐흐르지만, 정작 땅한평도 가지지 못한 나는 여기 지리에서 덕유까지 이 공간을 내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땅보다 더 소중한 공간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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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두려운 곳이다. 그것도 혼자서 깊고 깊은 산 속을 헤매며 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졸아든다. 지리산이야 오가는 사람이 많고, 거기서 길을 잃은 없겠지만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으로 가는 길은 생소하기도 할뿐더러 길도 쉽게 앞을 틔어주지 않을 것이다. 또 혼자 가는 길에 짐은 왜 이리도 많은지, 이제까지 산행의 경험 중에 가장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게 됐다. 배낭은 산더미 같은 무게로 어깨와 허리 무릎과 발목을 짓누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는 더 무겁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무사히 종주를 마칠 수는 있을까. 나의 귀환은 가난할까, 풍요로울까. 다시 돌아온 자리는 지금 생각하는 그 자리와 다를까, 같을까. 예수는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집을 떠났고, 부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왔다. 주몽은 부여를 떠나서 고구려를 세웠고, 온조는 고구려를 나와 백제를 세웠다. 말썽꾸러기 골칫덩어리 손오공은 1만8천리 서역길을 가면서 고귀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났고, 더불어 불경도 얻었다. 그에게 불경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여행을 통해 만난 삼장법사의 가르침과 저팔계, 사오정과의 우정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진정한 여행은 떠남-역경-만남-헤어짐-성숙-깨달음-귀환의 과정에서 수많은 세속의 잡념들과 상념들을 정화시켜준다. 벌거벗은 체 내던져진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내 여행은 무엇을 얻을까. 나는 슬기로운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병든 조선을 구하지는 못할망정 나 하나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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