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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자전거 가게의 자전거들



내가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고, 아주 가끔 자전거여행을 다녀온 포스트를 올리고, 한동안 자전거출퇴근을 했다는 이유로, 지인들이 자전거에 대해 묻곤 한다. 보통은 어떤 자전거를 사는게 좋으냐는 질문이지만, 자전거의 종류도 많고 용도도 다양해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내가 아는 정보도 빈약하고 지식도 얕은게 가장 큰 이유다. 아는 후배가 또 안부게시판에 비밀글로 자전거에 대해 물었다.


 "이제 봄이구 해서 자전거를 살까 하는데,

 어떻게 저렴하고 튼튼하고 예쁜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을까요?

 일상에서두 가까운 근거리 여행두 가능한 걸루 사고 파요~

 너무 큰 욕심인가요? 자전거 구입에 관한 조언좀 부탁드려요~"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얼버무리거나 이런저런 말들을 늘여놓긴 하는데, 한번 본격적으로 정리해 보자는 욕심이 생겨 몇자 적어본다. 혹시나 이글을 보는 자전거 고수분들 중에 더 많은 정보를 댓글로 알려준다면 더없이 감사하겠다.


먼저 스스로 자전거를 타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단순하게 풀자면, 이동 수단인가 운동 수단인가를 따져 보는 거다.


서울시는 조만간 두개 구를 선정, 자전거 시범타운을 선정한다고 했다. 자전거만으로 그 구에 있는 학교, 쇼핑센터, 집, 지하철역 등 주요 시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럴 때 자전거는 하나의 이동 수단이며, 생활밀착형 자전거다. 쉽게 다룰 수 있으며 편하게 오갈 수 있고, 잠깐 방치한다고 해서 누구하나 눈독들이지 않을 것 같을 것, 더불어 여러 자질구레한 짐들도 실을 수 있는 자전거여야 한다. 이럴 때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다. 이럴 때 자전거 선택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보통의 운동수단의 자전거는 다시 레저용 자전거로 부를 수도 있다. 장거리 이동을 하거나 거친 길을 달려야 하거나 어느정도 속도를 낼 수 있는 자전거들이다. 자신의 에너지를 최대한 뿜어내서 그 효과를 바로 볼 수 있는 자전거다. 운동수단, 레저수단으로서의 자전거는 가격도 쉽지 않다. 종류는 더욱 다양해지고 선택도 복잡해진다. MTB냐 사이클이냐, 바퀴 사이즈를 어떻게 하고 안장 높이와 종류는, 그리고 샥(쇼바)은 어떻게 하며, 기아는 몇단이 적정한가 등등 생각해야 할 여지가 복잡해진다.


내 자전거는 운동수단으로 시작해 지금은 이동수단이기도 하다. 가까운 거리(구로구 개봉동에서 한시간 거리-서울시청까지)는 자전거로 이동한다. 보통의 출퇴근길이가 1시간 이상이라면 일반 생활자전거보다는 좀 튼튼하고 잘 제작된 유사MTB나 사이클이 좋다.


다음으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 내 몸에 맞는 자전거다.

몇년전까지 '자전거신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신문을 보면 나오는 자전거를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런 자전거들이 또한 쉽게 버려저 애물단지가 되곤 한다. 그 이유는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핸들과 팔의 길이, 안장의 높이와 페달 등등 직접 타보지 않고 사진만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자전거에는 많다. 자전거 초보라면 인터넷에서 자전거를 골라서 사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된다. 이왕이면 동네 자전거숍도 알아두는게 나중에 AS를 위해서도 좋고, 다양한 자전거 정보도 직접 얻을 수 있으니 자전거숍을 찾아가 직접 만져보고 가능하면 한번 타보고 결정하도록 하자.


그밖에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나도 복잡해진다. 내가 가입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나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 카페에 가면 자전거와 관련된 많은 정보들이 수시로 오간다. 거기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 보고 없으면 질문을 던져보자. 친절한 사람들이 많으니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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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크게 보아 한강의 수경이라는 X축과 북악산, 남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산경의 Y축으로 이뤄진 사분면이다. X축과 Y축이 만나는 산수의 중점에 한남대교가 있지 않나 싶다. 원래 서울 도심의 수경축은 청계천이었다가 강남으로 서울이 뻗어나가면서 한강으로 대체됐다. 


홍은택 씨가 쓴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의 한 대목이다. 홍은택 씨는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이라는 자전거 여행기를 쓰기도 했다. 얼마전 후배로부터 선물받은 이 책은 올해들어 자전거 출퇴근을 일주일이 2~3회 정도 하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글들은 대부분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들을 책으로 다시 정리해서 내놓았는데, 자전거로 서울에서 출퇴근 하는 이들이거나 자전거 출퇴근을 생각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여행 기분을 내며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과 같지 않다. 출퇴근과 여행 모두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여행은 매일 목적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꼭 가야할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연적 목적지가 있는 출퇴근과 다르다.



자전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전거에 의한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은 홍은택 씨의 생각에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다. 작년 말 자전거 전국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감정의 일부분이 여전히 자전거 출퇴근 행위 중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 자전거를 타고 지나면서 보는 풍경들-버스정류장의 사람들, 아현동의 가구상점, 마포대교를 건너며 보는 한강의 일몰, 여의도 공원의 한가로움, 영등포역 주변의 분주함-은 퇴근을 여행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들이면서 일상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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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그 안장에 올라타고 길을 달릴 때부터 곧 여행이다.
바람을 가르고 힘차게 페달질을 하면 온갖 지나치는 군상과 일상이 꿈처럼 몽롱하게 스쳐지나간다.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자전거 출퇴근이 가지고 있는 묘한 기운이다. 책의 저자 역시 그러한 면에 주목해 자전거 출퇴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자전거 타기는 바람에 얼굴을 씻는 즐거움이었고 숲의 향기에 흠뻑 젖는 희열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했던 시절, 자전거 타는 것 외에 다른 아무 목적이 없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자전거는 내게 공간 이동의 자유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줬다. 지금은 자전거 타기, 그 자체보다 자전거를 타던 그 때의 질박한 생활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과제와 고통, 그리고 성취가 분명했던 시절.


언제나 여행을 꿈꾼다. 꿈꾸는 자는 준비된 자다. 자전거 출퇴근을 통해 꿈꾸는 많은 것들, 여기 이 책에 구체적으로 담겨져 있다. 모두가 자전거로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그런 꿈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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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배우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 특히 몸에 밴 기술의 경우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평생 각인되는 것이다. 그런 것에 자전거가 있다. 지난 토요일 후배의 부탁이 있어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줄 일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넘어지는 공포, 그리고 충돌의 공포다. 공포는 사람의 행동을 제어하는 주요한 감정의 하나이지만, 그 공포를 넘어섰을 때 느끼는 희열은 또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후배도 그런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는 그 배움으로서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 그리고 희망


“걱정 마, 내가 자신하건데, 너 한 번도 안 넘어지고 자전거 배우게 해줄게. 믿어봐.”


사실 자신할 수 없지만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일 것이다. 그래야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믿고 따르는 힘이 생긴다. 자전거를 배울 때 뒤에서 꼭 잡아주고 있다는 믿음, 넘어질 때 달려와 일으켜 주면서 상처를 돌봐줄 것에 대한 믿음은 마음과 마음이 연대하는 것이다. 교육은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1:1 교육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공간 


“토요일 10시 여의도 공원 태극기 앞에서 보자.”


자전거를 배우기 좋은 곳은 공터다. 길 보다는 탁 트인 넓은 공터를 택해야 마음이 더 안정된 상태에서 자전거를 배울 수 있다. 여의도 공원을 택한 것은 일단 자전거를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많고 워낙 넓은 공간에다가 편의 시설도 갖추어 있어서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다.


자전거 고르기


“어때 앉아보니까 편하지. 다리도 땅에 닿으니까 안정되고.”


우선은 자전거와의 첫만남이 중요하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사람이라면 핸들은 일자보다 U자형태로 핸들이 몸쪽으로 꺾어진 것이 편하다. 그리고 안장의 높이는 안장에 앉아서 발을 내렸을 때 두 발이 땅에 닿을 정도로 낮게 하는 게 좋다. 이런 조건을 갖추었을 때 자전거에 탄 사람의 등이 곧게 펴져 있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전방의 먼곳을 볼 수 있다. 


시선


“자전거로 달릴 때 가급적 10m 앞으로 보려고 해봐. 핸들이나 앞바퀴를 보고 있으면 십중팔구 넘어져.”


자전거가 가지는 속도감은 사람의 걷기보다 빠르다. 당연히 처음 자전거 배우는 사람은 그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자동차를 타보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달리기는 처음일 테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중심을 잡지 못해 핸들이 흔들려 시선이 핸들에 집중되거나 1~2m 앞으로 시선이 고정된다. 위의 자전거의 잇점은 고개를 들어 멀리 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페달 밟기


“일단 페달을 하나 높이 올려. 그리고 다리 하나는 땅에 기대고 있다가 땅에 디딘 발은 뒤로 차주고, 페달은 힘껏 밟아서 앞으로 나가는 거야.”


첫 출발할 때는 페달하나를 가장 높은 지점에 놓고 그 위에 발을 올린다. 다른 발은 땅에 내린다. 그러면 발을 박차고 페달은 힘껏 밟았을 때 별다른 페달운동 없이도 최소한 2m 정도는 나갈 수 있다. 이러면서 균형감각을 조금씩 익힐 수 있다.


중심잡기 그리고 브레이크


“넘어질 것 같으면 그냥 발을 땅에 내려서 기대. 하지만 최대한 멀리 나가보겠다고 생각해야해.”


역시 가장 어려운 일이 중심잡기다.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 주는 건 넘어지지 말라고 하는 거지만, 여기에 너무 오래 기대면 배우는 속도도 그만큼 더 걸린다. 자전거를 고를 때 안장에 앉아 있을 때도 발이 땅에 닿는 것을 고른 것은 넘어질 상황에서 스스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후배는 페달을 한두바퀴 돌리다가 발을 땅에 내리고 다시 처음 페달을 준비해 나아가 1~2바퀴 돌다가 다시 내리다가 어느덧 페달의 횟수가 점차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뒤를 잡아 준 것은 처음 한번 달렸을 때 뿐, 그 다음에 잡아준 적이 없다. 후배가 스스로 달리기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정도 달릴 수 있다면 곧바로 브레이크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 자전거마다 틀리지만 주브레이크가 있으니 그것에 익숙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된다.


회전


“달리는 자전거는 잘 안 쓰러진다. 회전할 때는 몸이 약간 기울어질 수 있어. 회전이 클수록 기울기는 더 커지는게 원심력의 법칙이지. 기울어지는 걸 겁먹지 말고 그 상황을 잘 제어해봐.”


스스로 달리는 것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회전은 역시 어렵다. 처음부터 무리한 회전을 하지 않았다. 여의도 광장은 넓으니까 크게 회전하다가 점차 그 원의 크기를 작게 해갔다. 원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것은 회전이 점점 커진다는 말이다. 광장에서 자전거를 배우면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의 힘이 덜 들어가도 충분히 혼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주행


“공터는 넓게 트여있지만 길은 한정되어 있어 조금 답답할 거야. 또 여러 가지 돌발 상황도 있고 곳곳에 방지턱도 있어. 아스팔트 길이 아닌 곳도 있어 느낌이 많이 다를 거야.”


어느 정도 회전이 익숙해지고 급회전도 익혔고, 급정지도 잘 하고 있다면 여의도 공원 주변의 자전거길을 달려 보는 게 좋다. 보행자도 많고 과속방지턱도 있고,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고, 산책하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속도 보다는 여러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한강길을 달리자


“자 이제 본격적인 주행을 해 보자. 속도도 좀 내보고, 알았지?”


여의도 공원길을 나와 한강길로 나가면 진짜 주행이 시작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속도도 매우 빠르고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도 종종 보여 잘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충분히 여의도공원 내에서 연습을 마쳐야 한다. 다행히 토요일 이른 오후라서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날씨도 좋았고 시야도 맑게 트여서 달리는 속도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여의도공원을 나와 국회의사당을 지나 당산역을 넘어 선유도 공원 다리 아래까지 와서 쉬었다. 좀 쉬면서 보니 그래도 약간의 상처들이 있었나 보다. 종아리에 넘어진 자국이 좀 있었고, 손에 약간의 생채기가 있는 정도다. 주행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생각해 보니 나는 자전거를 언제 배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떤 자전거로 누구에게 배웠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이전에 나에게 자전거를 배우다 실패한 몇몇 분들에게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혹시 자전거 배울 생각이 있는 분은 밥만 사준다면 시간내 줄 의향이 있으니 연락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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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다. 나름대로 성장의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자연과 만나는 감동이 있었고, 항구와 시장과 벌판, 공장에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다. 가을이 깊어가는 한가운데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과 땅을 보았고, 바람과 비도 원없이 맞아보았다. 가을볕에 타버린 얼굴과 더 탄탄해진 다리근육과 맑아진 머릿속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어 기쁘다. 몸이 가벼워진 것처럼 마음도 가벼워졌다. 삶을 더 가볍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송탄역 근처의 여관방에서 눈이 떠진 것은 6시. 알람도 없고 창밖도 어두운데 눈이 떠졌다. 오늘이면 서울로 들어간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다시 잠들어보려 했지만,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뉴스를 틀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심드렁하니 듣는다. 건성건성 듣다가도 일기예보만 나오면 몸이 돌아간다. 버릇이 됐다.


터미널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1번 국도를 따라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많은 차들이 오고간다. 서울에 가까운 국도라지만 도심을 빠져나오면 갓길은 엉망이다. 왼편으로 차들은 쌩쌩 소리를 내며 달리고 갓길은 아슬아슬하고 오른편은 논두렁인 길을 달린다. 도심내에서는 아예 차도로 달리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인도쪽에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지만, 차도의 아스팔트에 비하면 울퉁불퉁하고 곳곳의 지반이 깨지거나 무너져 엉덩이가 무사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안전하게 가자는 마음에 인도쪽을 택해서 조심조심 갔다. 사람도 피해야지 길도 살펴야지 신경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방에 비해 서울과 수도권 쪽이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훨씬 부족하다. 지방의 큰도시 뿐만 아니라 중소도시들 중 일부는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마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인도로 다니는 사람도, 차도로 다니는 차량도, 그리고 자전거도 모두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서울로 올수록 이런 정책적 배려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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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가는 길에 1번 국도를 도저히 타기가 어려워 샛길로 빠져 달렸다. 간신히 수원역까지 달려갔는데, 거기서 다시 안양 방향을 알 수 없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길가 간이매점에서 어묵을 사먹으며 길을 물었다.


“저, 자전거로 안양 방향으로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자전거로?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자전거로 가려면 한참 걸릴 텐데, 어이구”


자전거 전국여행의 마지막 여정인데, 고작 수원에서 안양 가는 게 한참 걸릴 거라고 걱정해 주는 아저씨의 말에 속으로 웃고 말았다. 고작 10km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수백km를 달려온 내가 그것이 두렵거나 걱정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어쩔 수 없이 1번국도를 타고 달렸다. 물론 수원에서부터는 계속 인도로 달렸다. 자출족(자전거 출퇴근족)들은 거침없이 차도를 달린다고 하는데, 자전거 전국여행을 한 나도 도심내 차도를 달린다는 건 꺼리고 싶은 일이다.


수원의 명물이라고 하는 팔달문과 장안문을 지나 의왕시를 향했다. 의왕시내로 진입하니 안양까지 8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안양에 들어가서는 안양천을 따라 집으로 달렸다. 첫날 집에서 나와 안양천을 타고 시작한 자전거 여행이 이제 다시 안양천을 타고 마무리됐다. 안양천 길에서 만나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반갑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네까지 안양천 둔치에서 늦가을 맞이 나들이를 나온 모든 사람들이 나를 마중나온 사람처럼 반갑다.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잠시의 일탈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렇게 나는 돌아가고 있었다. 모천(母川)으로 돌아온 한 마리 연어처럼 내가 다시 돌아간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쏟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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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장여관. 이름은 그럴싸한데, 별로 추천할만한 집은 아니다. 근처 다른 여관방들이 어떤지 모르지만 전국일주에서 다져진 여관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도 온돌이 좋긴 좋다.


김밥나라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초지대교로 향했다. 원래는 섬의 서쪽 끝까지 해안가를 따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행한 김 선배도 오후 일찍 집에 가야 한다고 하니 섬의 동쪽 해안만을 타고 초지진을 구경한 후 초지대교를 넘어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건너편 김포와 그다지 멀지 않다보니 큰 바다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갯벌이나 고기잡이배 등은 반갑다. 바다를 상징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갯벌, 갈매기, 고깃배, 파도, 비릿한 바다내음, 등대, 백사장 등등. 초지진으로 내려가는 길 일부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 비록 막막한 수평선은 보지 못했지만 이런 것들이 마음을 위로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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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한편에 마련되어 있어서 달리기 편하다. 초지대교까지 조금 힘든 언덕길이 한번 정도... 강화도의 독특한 점은 바로 섬 자체가 하나의 요새라는 것이다.


서울로 통하는 수로는 반드시 이곳 강화를 거쳐야 했다. 때문에 강화는 예부터 독특한 군사기지들이 발전했고, 또 그만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며, 수많은 피가 뿌려진 전쟁의 기억을 가진 곳이다. 그것이 바로 ‘돈대’와 ‘진’, ‘보’로 대표되는 군사기지의 흔적이다. 강화도의 돈대-진-보 등은 해양에서 접근하는 적들을 맞아 싸우기 위해 세워진 군사기지들이다. 물론 강화도에는 점등사라든지 마니산, 첨성대 등도 있지만 지정학적 위치로서 강화도가 가지는 역사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대몽골 항쟁의 본거지였고, 근대에는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의 서구 열강의 외침을 겪었던 장소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이웃 사이에도 학살과 보복이 처절하게 되풀이 되어 지금도 전쟁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금기처럼 된 곳이다.


우리는 일정 때문에 대부분의 돈대나 진, 보를 그냥 지나쳤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지나치는 곳이 많다. 자전거는 차보다 느리기 때문에 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고통스럽게 달리기보다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차로 지나가면 못보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선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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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지진을 나온 시간은 11시 50분. 초지대교를 건너온 이후 김포 IC까지는 356번 지방국도를 타고 간다. 지방도로이지만, 자전거 도로와 갓길이 잘 되어 있어 안전한 편이다. 김포IC에서는 다시 48번 국도를 타고 갔다. 한강 제방둑길을 타고 가볼까 했지만, 아는 길로 빨리 가자는 김선배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48번 국도를 타고 행주대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오후 2시가 좀 넘어 행주대교에 도착했다. 갈 때보다 상당히 빨리 왔다.


늦은 점심을 어제의 국수집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다시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찾아가니 국수집은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식당을 찾아가는데, 4000원짜리 콩나물국밥에 맛깔난 반찬까지 꽤 괜찮았다. 어제의 국수에 이어 오늘의 콩나물국밥까지 행주산성 근처 식당은 주머니가 크지 않은 사람들에게 참 괜찮은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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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을 먹고 4월달 파주 원정을 다짐하고 헤어졌다. 김선배는 들어가는 대로 큰애의 조립장난감을 같이 만들어 주어야 하며, 작은애의 네발 자전거의 뒷바퀴를 떼어주기로 했단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주말에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진다. 나는... 딱히 할 일은 없다. 홀가분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부럽기도 하다.


왕복 120여km, 총 주행시간 약 12~13시간의 강화도 여행은 이렇게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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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자전거답게 달렸다. 작년 11월 이후로 이렇게 하루 종일 자전거 타보는 건 처음이다. 사실 많이 긴장하고 걱정했다. 체력은 될까? 자전거는 펑크 나지 않을까? 펑크나면 내가 고칠 수 있을까? 강화도까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일까? 중간에 위험한 곳은 없을까?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등등...

예전에 자전거 전국일주 떠나기전에도 그랬다. 걱정을 하다보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처럼 온갖 상황들이 다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냥 가는 게 좋다. 말이나 생각보다 위대한 것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걱정이 아니라면 페달에 과감하게 발을 얹고 돌려보는 거다.


안양천 자전거도로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부 지역에서. 멀리 보이는 다리는 가양대교



행주대교 남단에서 다리위로 올라가는 길


집에서 나와 달리기 시작하니, 지난 번 보다 짐도 마음도 가볍다. 날씨도 비교적 따뜻하고 화창하다. 안양천을 타고 한강을 향해 달리니 윤비(자전거 이름)도 신이 난 것 같다. 씽씽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기분이 좋은 거다.

함께 가기로 한 김 선배와는 행주대교 북단에 위치한 국수집에서 보기로 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한참 헤맸는데, 다행히 행주산성에서 선배와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12시 경. 점심은 국수로 하기로 하고 근처 <원주 국수집>을 찾아갔다.



원조국수집 주요 메뉴인 잔치국수, 건너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릇에는 비빔국수



원조 국수집, 벽에 세워놓은 자전거들.


우리가 찾아간 '원조 국수집'의 국수는 3,000원.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였지만, 양만은 어느 집 국수보다 푸짐했다. 아침을 늦게 먹고 출발한 나는 잔치국수를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김선배는 비빔국수를 시켰는데, 그런대로 맛있단다.

선배 말에 따르면, 원래 이곳 원조국수집은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본거지란다.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가진다는데, 이날도 모임이 있었나보다. 김선배나 나도 회원이기는 한데, 가입인사만 했지 들러보지도 않았던 터라 그냥 모른체 했다. 다른 자전거 회원들은 우리가 누군가 싶은지 흘깃흘깃 쳐다본다. 민망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좋은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자전거를 잘 모르는 나는 그냥 좋아보인다 싶었는데, 김선배 말로는 보통 50만원 이상 되는 것들 같다고 한다. 우리 자전거는 20만원 대의 저렴한 자전거. 그래도 저 으리으리한 자전거 중에 과연 몇대나 한달간 전국일주를 해보았을까 생각하니 은근히 내 자전거가 자랑스럽다. (원조 국수집은 행주산성 입구에 있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점심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경. 예상보다 꽤 늦은 출발이었다. 행주대교 남단에서 48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거기서 48번 국도만 타고 내내 달리면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다. 처음 가는 것인만큼 48번 국도만 내내 따라 달리기로 했다.

행주대교 넘어 초반에 자전거 도로가 조금 있다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시 김포 근처에 이르니 넓직한 갓길이 나오고 차량통행도 한산해졌다. 최고제한속도가 80km라고 하지만 한산한 도로에서 그렇게 달리는 차량은 없다. 전국일주 하면서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 소음에 익숙한 나에 비해, 김선배는 약간 긴장하는 듯했다.

잘뻗은 국도변도 김포시내에 들어서자 없어지고 우리는 차도 위로 달렸다. 역시 시내주행이 까다롭다. 차량들이 속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통행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시 김포시내를 벗어나면 얇은 갓길이 나온다.

김포를 벗어나 강화대교를 건넌 것은 3시 반. 행주산성을 떠난 후 2시간 반만에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었다.



시원하게 뻗은 서울-김포 48번 국도



나를 믿고 첫 자전거 여행을 나선 김선배



강화대교 건너기 전


강화대교 건너편 휴게소에 들려 쉬었다. 우리는 서로 엉덩이의 안부를 물었다. 목표한 강화도에 왔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휴게소 매점에서 지도를 얻어 다음 목적지를 논의했다. 그래도 최대한 달려서 석양을 보자는 욕심에 아픈 엉덩이를 달래며 안장에 올랐다. 계획은 해안도로 북쪽길로 달려 섬의 서쪽까지 가는 것. 하지만 길을 잘못들어 그만 해안도로 남쪽길로 들고 말았다. 다시 길을 돌아오다 착한 동네 주민분을 만났다. 그분도 자전거를 타고 가시길레 붙잡고 물었다.

"아저씨 해안도로 북쪽길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아 연미정 가려고 하는구만요. 거기 좋지. 얼마전까지 군사지역이라서 못들어갔는데, 요즘에는 주말에 한해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던데..."
"아네, 그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그게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가는 거지. 군부대 옆으로 통과하는 거에요. 나도 연미정이나 한번 가볼까 생각중인데, 하하"

아저씨는 아주 유용한 정보 두가지를 알려준 셈이다. 해안도로 북쪽길과 '연미정'이라는 곳이 참 볼만하다는 것. 아저씨 말대로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니 반듯한 자전거 길이 나온다. 하지만 그 옆으로는 견고한 철조망이 쳐져 있어 좀 삭막하다.


얕은 차단벽도 있는 자전거 전용 도로

아저씨가 안내해 준 길은 해안도로로 연미정 가는 길도 맞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한 정보가 있었으니... 강화도는 북한과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연미정 가는 길에 해병대 군인 아저씨들이(무척 앳되 보였다) 도로를 막아섰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그냐 자전거타고 왔는데... 관광이죠."

물론 살풋이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은 더이상 가는 것은 안된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민통선 안으로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민통선이라니, 우리가 참 많이도 올라왔나 보다. 민통선이라는 개념을 순간 망각한 나는 개념없는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나요?"

군인아저씨도 황당했을 텐데 친절하다.

"글쎄요. 아무튼 돌아가셔야 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서서 가려는데, 군인 아저씨들 우리에게 거수경례도 붙인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거수경례에 웃으며 "수고하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왜 군인을 보면 늠름하다는 생각보다는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까.

제법 넓직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강화군청(중심지)이 있을 만한 지역을 찍어 바로 농로로 들어섰다. 지도에도 없는 임시도로길을 달렸다. 논들은 한번 밭갈이를 해주었는지 객토가 잘 되어 있다. 오랫동안 가물었을 텐데도 한번 객토를 해놓으니 검고 찰진 흙들이 밖으로 드러나 보였다.


임시도로를 달리는 김선배. 평화로운 강화의 봄이 느껴졌다.



임시도로 위를 달리는 김선배

결국 우리는 강화군내로 들어왔다. 거기서 숙소를 잡았다. 김선배의 네비게이션에서 검색해 나온 유일한 여관 독일장 여관에 짐을 풀었다. 물론 군청 주변에 여관은 많았다. 결론적으로 여관 상태는 그다지... 아무튼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마땅한 집이 없는데, <소문난 감자탕집>이 있어 어떤 맛이기에 소문났다고 자랑하나 궁금해 찾아들어갔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감자탕이다. 우거지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 좋았다. 고기맛은 나쁘지 않다. 국물맛은 진한편이다. 감자는... 하나도 못먹고 다 뺏겼다.


<소문난 감자탕>집의 감자탕 가장 작은 것(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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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와 지방도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데는 일반국도가 확실히 좋다. 하지만 길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적다. 그러나 지방도는 좀 돌아가는 길이고 갓길도 작지만, 보고 느낄 수 있는게 많다. 오늘도 잠깐 지방도를 타다가 늦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와 만날 수 있었다.

부여를 나와 공주로 가는 길은 예상대로 언덕들이 무수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다지 힘든 언덕은 아니었지만, 아침부터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일찍 출발한다고 아침도 빵과 우유로 대신했다. 배고픔은 없지만, 몸이 어떨지 걱정됐다.


공산성




부여도 그랬지만, 공주는 더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도시도 부여보다 깔끔하고, 도시 중앙에 있는 공산성은 높지도 않으면서 고풍스런 멋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함께 공주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런 공주를 그냥 자전거로 지나쳐야 하니 좀 아쉽다.

공주를 지나 한참 가다 보니 오르막이 시작됐다. 차령터널로 가는 길이다. 터널 앞에서 옆 구길을 타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이미 오르막길이 시작된 거라 그런지 차령고개는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차령고개 정상에는 휴게소로 지어진 건물이 버려져 있었다. 황량한 가을 바람과 낙엽들, 그리고 버려진 건물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차령고개를 오르면서도, 그리고 내려가면서도 차 한대를 만나지 않았다. 터널이 생긴 이후 아무도 이 길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길도 버려진다. 길을 통해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고, 길을 통해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데, 막상 버려진 길에는 무엇이 남을까. 가끔 나처럼 찾는 이가 있겠지만, 버려진 건물과 황량한 길의 풍경은 가을의 쓸쓸함을 더욱 깊게 한다.


차령고개 정상에서




차령고개를 넘고 한산한 길을 가다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만났다. 외진 길의 왼편으로 산의 언덕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불자 나무에 남은 나뭇잎과 땅에 떨어져 있던 낙엽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생명을 다하고 썩어 다시 나무에게로 돌아갈 나뭇잎들의 마지막 향연이었을까. 하늘을 떠다니는 나뭇잎들은 새떼들의 군무처럼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다녔다. 카메라로 찍으려 했지만, 그 찰나는 오래되지 않고 낙엽비가 되어 도로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실상 카메라로 찍어보았자 나뭇잎들이 추는 춤이 제대로 표현될 리는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었다.

천안에 들어간 시간은 2시 경. 80km를 달려왔지만, 어쩐지 더 힘이 났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택까지 20km가 좀 넘는다. 내처 달릴까 고민했다.


'평택까지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평야지대이니 어려운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오늘 달린 거리도 평소보다 많다. 무리해서는 안된다.'

'토요일까지 서울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오만가지 계산이 재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평택까지 가기로 했다. 평택은 경기도, 서울이 코앞이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기운이 더욱 난다. 예상대로 평야지대다 보니 힘든 언덕도 없다. 그러나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차량이 부쩍 많아졌다. 예전 서울에서 양평으로 갈 때처럼 많은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갓길의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지만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긴장을 하니 무릎은 신경이 가지 않고 손목이 아프다. 핸들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평택에 들어간 시간은 예상대로 4시. 평택시청에 들어가 평택의 관광지도를 얻었다. 송탄까지 멀지 않아보였다. 오늘 묵을 곳을 찾다가 송탄으로 잡았다. 관광지도는 송탄역이 가깝게 나타나 있었는데 이런, 송탄역에 도착하니 거의 6시가 됐다. 관광지도도 믿을 게 못 되지만, 길을 잘못 알려준 주유소 아저씨 때문에 너무 힘들게 찾아갔다.

부여에서 송탄까지, 생각해보면 자전거 여행 중 가장 먼 거리를 달린 듯하다(약 130km 이상). 아쉬운 점은 충청북도를 밟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도 이제 경기도다. 조금만 힘을 내자. 이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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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얼마 뒤, 역에 세워놓았던 자전거의 안장을 도둑맞고 말았다. 자전거를 통째로 들고 가는 자전거 도둑도 있는가 하면 요즘은 부품 일부를 훔쳐가는 도둑도 많다. 자전거 여행 중에도 앞 전조등 뒤 후미등을 모두 초반에 도둑맞았더랬다. 여행 후반에는 자전거를 여관 로비나 뒷마당 가려진 곳에 놓았고 찜질방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환한 곳에 보이게 하거나 찜질방 로비 한 구석에 양해를 구해 채워놓기도 했다. 안전하게는 가까운 파출소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자전거 도둑이 기승을 부리다보니 자전거 도둑을 피하기 위한 방법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마음 먹고 훔쳐가는 도둑을 막을 방법은 딱히 없다. 자전거 주인이 최대한 세심하게 자전거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최상이다. 자전거의 안전한 관리 방법을 정리했다.

① 잠금장치는 필수 : 외부에 자전거를 가지고 나갔다면, 최소 1분이상 자전거가 눈에 안띄는 곳에 둘 경우는 반드시 잠금장치를 해야 한다. 잠금장치가 없는 자전거는 충동적인 절도의 쉬운 표적이 된다.

② 단단한 자물쇠 : 실톱이나 소형절단기로 쉽게 끊어지는 케이블이나 사슬은 피해야 한다. 자전거 대리점에서는 실톱이나 소형절단기로는 끊을 수 없는 강한 자물쇠와 케이블을 판매하는데 가격이 좀 비싸지만 그만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자전거를 잠글 때는 프레임과 바퀴를 함께 묶어 주어야 하며, 여러대의 자전거를 엮어서 묶을 수 있다면 아주 좋다.

③ 실내 보관 : 장기간 자전거를 타지 않을 때는 가급적 집안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단독주택일 겨우 마당에 보관해도 되겠지만, 요즘 전용 마당이 있는 주택은 드문만큼 집안 베란다나 다용도실, 거실 등에 자전거를 보관하는 것이 안전하다.

④ 지하철역이나 아파트 내 자전거 보관소는 상습적인 자전거 도난 장소다. 불가피할 경우 어쩔 수 없지만 야간에는 절대 피해야 할 장소다.

⑤ 안장이나 속도계, 전조등, 후미등 등은 단단히 매여 놓거나 탈착해 따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⑥ 도난경보기를 설치한다.

사실 개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도둑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떠한 자전거라도 털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도난 자전거는 보통 온라인으로 유통된다. 인터넷에 자전거 등록을 통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자신의 자전거를 광고하는 것도 이 도난에 대비한 방법이기도 하다. 관련 사이트로 오마이자전거(www.omaja.co.kr), 세이프바이크(www.safebike.co.kr)가 있다.

자전거 도둑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도 자전거 도둑 때문에 골머리가 아팠나 보다. 2005년 한해 동안 도난당한 자전거만 97대, 거의 100대에 가까운 자전거가 도난당하자 대학 당국은 ‘미끼 자전거’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이 미끼 자전거에는 GPS추적장치를 달아 자전거가 없어질 경우 신호를 쫓아 도둑을 잡는다는 구상이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전거 도둑과의 전쟁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자전거 도난을 막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자전거 도둑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구에 사는 양은정 씨는 20년간 가족들의 자전거를 포함 20여대를 도난당한 후 ‘자전거에도 등록번호제를 실시하자’는 입법청원 운동을 벌였다. 사실 번호판을 단 자전거, 막상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일본은 오래전부터 실시해 온 제도다. 자전거 도둑을 완전히 막지 못하지만 유통 단계에서 쉽게 매매될 수 없게 한 만큼 자전거 도둑은 크게 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들어설 날이 언제쯤일지 알 수 없다. 도쿄 시내에서 자전거의 교통분담율이 20%이르는데 비해 서울은 오토바이 포함 6%에 불과하니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언젠가는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때까지 자신의 애마를 언제나 소중히 보관하는 노력,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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