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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일) | 총 10.3km | 매헌역-양재시민의 숲-대한항공 폭파 사건 희생자 위령탑(삼풍백화점 붕괴 희생자 위령탑)-여의천-내곡동 주민센터 근처-구룡산 주변길-대모산 주변길-수서역


일요일 아침을 이렇게 서둘렀던게 얼마만일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짐을 준비했다. 짐은 아내가 미리 전날 준비해 놓는다. 꼼꼼하게 챙겨놓은 짐들을 보면 이 도보길 여행에 대한 그이의 바람이 보인다. 길과 숲과 바람에 목말랐던 사람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보인다. 길을 걸으며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갖는 열망이다. 왜 사람은 이 스피드한 세상, 편리한 세상에서 굳이 피곤하고 힘든 일을 자처하며 쾌감을 느낄까? 이미 여러 과학자들이 밝힌 바 있다. '러너스 하이'. 또는 '운동 쾌감'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미국 심리학자 멘델이 논문에서 처음 밝힌 용어는 '엑서사이즈 하이'였다. 그는 이것을 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신체적 스트레스로 얻게 되는 행복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몸은 일정 시간동안 운동을 계속하면 뇌에서는 '베타 엔도르핀'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이 마약성 물질을 투여했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운동의 행복감을 알고 기꺼이 힘든 운동을 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아내나 나나 몇 시간 동안 걷는 것에는 익숙하다. 젊은 시절 일년에 몇 번씩 지리산 같은 산을 오르고 내렸다. 걷는다는 것에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벅찬 기대감이 몰려오는 이유다. 이날 가야할 길도 10km가 넘었다. 두 개의 산길을 걸었다. 산이 작다고는 해도 산은 산이다. 오를 때에 근육에 오는 뻐근함이 있고, 내려올 때는 관절에 오는 묵직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지만 나무와 풀이 주는 숲의 향이 있고, 사박사박 밟아가는 흙길의 정겨움도 있다. 새들의 지저귐이 연한 바람을 타고 귓속을 간지럽힌다. 


아이가 잘 걸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숲은 숲대로 아이를 보듬어 안고 가고, 아이도 아이대로 이겨낼 거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부모의 보호는 보잘것 없다. 그것을 아이도 알아갈 거다. 더 큰 세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양재 시민의 숲에 다시 들어가서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이날의 첫 시작점인 양재시민의 숲 공원에는 역사의 슬픔들을 위로하는 공간이 여럿 있다. 둘레길을 걷다보면 '대한 항공기 버마 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을 만날 수 있다. 이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인도양 상공에서 공중 폭파된 사건이다. 이 테러를 실행한 것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이며 이 둘이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러 조사 과정에 대해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선거 하루 전 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서울에 압송되어 온 것과, 하필 비행기 탑승 인원도 중동에 진출했던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도 안기부의 기획이 아닐까라는 의심이다. 또 김현희에 대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전격 사면도 의혹을 더욱 키웠다. 그러나 2006~20007년 진실규명위원회의 조사[각주:1]에서도 밝혀진 사실은 북한의 테러였다는 것이며, 북한측 인사가 간접적으로 자신의 행위였음을 시인하는 발언[각주:2](기사보기)도 있었다. 물론 이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정부 관계자들의 모의가 있었다는 것도 진실위가 밝힌 사실이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인도양에 잠들어 버린 115명의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이 이곳에 있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이다. 진실만이 오직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사건을 조작하거나 사건을 다른 의도로 이용하려 하면서 진실이 가려질 때, 아픔은 커지고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양재시민의 숲에는 또 다른 위령탑이 하나 더 있다. 둘레길에서 벗어나 있어서 둘레길 여행자라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보기 어렵지만 여기에는 '삼풍 참사 위령탑'이 있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 붕괴하면서 502명의 사망자와 937명의 부상자, 실종자 6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의 참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은지 10년도 되지 않은 건물이 무너져 버리게 한 원인은 부실 시공과 설계 변경, 그리고 이것을 뇌물을 받고 눈감아준 공무원과 관리 기관의 부실 감독, 결정적으로 긴급 안전 진단을 한 설계 감리 회사가 '붕괴 우려'를 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에 눈이 멀어 영업을 강행한 사업주 등 총체적인 부실의 결과였다.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은 비용을 이유로 생략되거나 무시되었다(관련 자료: 위키백과 바로 가기). 총체적 부실과 돈을 향한 욕망으로 점철된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결국 2년 뒤 대한민국의 붕괴로 귀결됐다. IMF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급속 성장 속에서 용인되었던 자본주의의 욕심을 눈감고 인정했던 처참한 결과였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폭주하는 기관차 위에 승선해 있다. 삼풍백화점의 저주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되돌아왔다. 천박한 자본주의를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들여 놓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생명을 담보로 한 탐욕의 괴물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어린 목숨들을 물속으로 끌고 가버렸다.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이런 아픈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도망치듯 양재시민의 숲을 통과했다. 그곳을 나오면 여의천으로 내려선다. 여의천은 양재천으로 흐르는 지류이다. 별다른 휴식 공간도 없으며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길도 좁고 포장 상태는 거칠다. 중간에 다리 밑 터널은 비오는 날이나 흐린 날이면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듯하다. 대개의 지류가 그러하듯이 찾아오는 이는 우리같은 둘레길 여행자 몇몇이나 마실나온 동네 주민 정도일 것이다. 간간히 두루미도 보이지만 먹을 것이나 있겠나 싶을 정도로 물은 말라 있었다. 


여의천을 잠깐 걷고 내곡동 염곡안 길로 접어든다. 전원마을 같은 공간으로 주변에 밭도 있다. 하지만 둘레길 옆의 염곡 마을은 높다란 담장에 고급스러운 집들이 즐비하다. 아파트숲에서만 살다가 잘 가꾸어진 단독주택들 사이로 걷다 보니 눈이 바쁘다. 마을 옆을 지나면 구룡산 산길로 접어 든다. 

 


 양재 시민의 숲을 나와서




 여의천을 걷는 중 




 내곡동 염곡 마을 으리으리한 저택 옆 



구룡산은 높이 283m 높이의 야트막한 산으로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 등과 산자락이 이어진다. 구룡산이라는 지명은, 옛날 열마리의 용이 승천하는데 그 모습을 본 임신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자 그 소리에 놀라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남은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면서 남긴 흔적이 산이 되어 구룡산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출처:향토문화전자대전). 그런데 왜 이 전설에서는 하필 임신한 여성이라는 특정한 사람이 나올까? 아마도 다산에 대한 욕망과 함께 모성은 승천하는 용도 떨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옛사람들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구룡산의 주봉 국수봉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서울 일대 및 한강 하류와 상류 지역까지 전망하기 좋은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 야경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구룡산 산자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와 권력이 집중된 서울 강남구의 산자락을 걷는 기분 또한 묘하다. 구룡산 터널을 지나 언덕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일요일 등산객들이 분주히 오갔다. 우리 아이 또래는 볼 수가 없었다. 아이가 있어 좋다.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 길 걷기 



 구룡산자락에서 먹은 점심-김밥



구룡 터널 지점을 지나면 곧 대모산이다. 산 산자락을 걷다보면 행정 지역으로는 서초구에서 강남구로 넘어간다. 대모산은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고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원경 왕후와 조선 태종을 모신 헌릉이 내곡동에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서 ‘대모산(大母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는 것과 구룡산 봉우리와 함께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고 하여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출처: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 태종의 헌릉 신도비에는 대모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글이 남겨져 있다. 

장백산[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와 남쪽으로 수 천리를 넘어 상주 속리산에 이르고, 여기서 꺾여 북서쪽으로 또 수 백리를 달려 과천 청계산에 이르며, 또 꺾여 북동으로 달려 한강을 등지고 멈추었다.

백두산의 산줄기가 여기서 멈추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산을 신성시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산 그늘을 따라 걷다 보면 산의 향기가 진하게 전해져 온다. 구룡산에 비해 가꾸어진 흔적이 많았다. 유아 숲체험장이 있는가 하면 근처 주민들을 위한 체육 공원도 많다. 청소년 자연학습장도 마련되어 있다. 


대모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돌탑들이 있다. 돌탑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는데, 서울 강남 일대를 비롯해 최근 들어선 초고층 빌딩 롯데 타워도 가까이 보인다. 이 돌탑들은 임형우라는 사람이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15년에 걸쳐 쌓아올렸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그냥 이곳이 좋아 돌 몇개를 쌓아놓는 것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돌들을 하나씩 둘씩 쌓아 올리니 누구도 따라하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그런 일상에서 돌 하나가 가져온 힘이다. 여기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일만시간의 법칙이다. 


'일만시간의 법칙'은 맬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뉴요커" 기자)이 쓴 "아웃라이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루 3시간씩 10년이면 1만 시간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각주:3]  한 사람이 15년 동안 돌을 쌓으면서 염원했던 내용은 소박했다. 하지만 소박한 염원의 결과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걷고 있는 우리의 바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오늘도 아이는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걸었다. 그리고 많이 지쳤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걷다보면 시간은 우리를 목적지로 안내할 것이다. 때로는 그 목적지나 여정이 우리의 바람에 못 미칠 수도 있고, 바람과 햇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야 한다. 인생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아니다. 산비탈과 계곡, 구릉과 능선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이 둘레길을 걸으면서 아이도, 그리고 나도 참고 인내하며 인생의 멋과 맛을 알아가길 기대한다.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유아 숲 체험장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길 걷기 


 대모산 돌탑 전망대


 대모산 돌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대모산에서 수서역으로 




  1. 안기부 조작설 등은 사실이 아니며 북한대남공작조직의 주도에 의해 김현희와 김승일이 자행한 테러로 단정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다만 대선 전에 김현희를 국내로 압송하기 위해 안기부 등 10개 기관이 합동으로 실무대책본부를 운영하는 등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 서두르다 보니 오히려 각종 의혹을 유발하게 된 측면이 있다. — 국가정보원 (2007). 《(과거와 대화)미래의 성찰, 1 : 국정원 「진실위」보고서·총론》. [본문으로]
  2. 정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3∼4년 전 중국에서 6자회담 때 사석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리근 미국국장 등 북한 당국자들과 얘기를 나눴다"며 "당시 리근 국장이 `우리는 KAL기 사건 이후 한번도 테러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본문으로]
  3. Brooke N. Mcnamara, David Z. Hambrick, Frederick L. Oswald가 주도해 미국 미시건대, 라이스대, 사우스일리노이대, 영국 브루넬대, 호주 에디스코완대 3개국 5개 대학에서 음악과 체스 실력에 관한 88개의 논문을 메타 분석을 해 본 결과, 에릭슨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논문 <음악, 게임, 스포츠, 교육, 경력에서의 의도적 연습과 기량 Deliberate Practice and Performance in Music, Games, Sports, Education, and Professions>에서 그들이 음악, 스포츠, 체스 등에서 1만 시간의 법칙 – 즉 연습량과 퍼포먼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분야에 따라서 조금씩 달랐지만 설명이 되는 부분이 고작 30%에도 미치지 못했고, 심지어 학업의 경우 무려 4%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출처: http://ppss.kr/archives/2470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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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4-2. 사당역에서 양재시민의숲까지 걸었다. 산으로는 우면산이 있다. 대성사를 옆으로 끼고 돈다. 마지막 양재시민의숲에 가기 전에 잠깐 양재천길을 걷기도 한다. 거리는 7.6km. 사당역에서 10시 20분 출발해 양재시민의숲역(매헌역)에 들어간 시간이 5시 20분 쯤이다. 약 7시간이 걸렸다. 물론 안내 사이트에서는 불과 3시간 20분이면 된다고 나와 있다. 중간에 아이가 우면산 놀이터에서 놀았고, 산중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고, 종종 쉬고, 양재시민의숲 공원에서 자리깔고 눕기도 했으며 마지막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방문해 관람했으니 아주 편안하게 다녀왔다고 보면 된다. 앞의 두 번의 둘레길보다 더 긴 거리였지만 걷는 게 익숙해져서 더 쉽고 편하게 다녀왔다. 


사당역에서 방배우성아파트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들,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들이 나온다. 보통의 등산길 초입이라면 막걸리집, 김밥집, 기념품점 등이 즐비한데, 여기는 인적이 드물고, 기껏해야 서울둘레길 걷는 사람이나 찾아와서 그런지 주변이 삭막하다. 동네개들이 이따끔 누가 오나 쳐다보고 짖어대거나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아, 고양이도 한마리 봤는데,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집고양이가 마실을 나온 듯했다. 손을 내미니 코끝을 손에 대서 냄새만 맡아보더니 자기 길을 간다. 언제쯤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래서 언덕길을 오르는 그 잠깐 사이에도 '이 길이 맞나'하는 의문을 가지고 몇번이나 길을 살피곤 했다. 오르는 사람도 내려오는 사람도 없으니 길을 물을 수도 없어서 난감했지만, 다행히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보면 둘레길을 안내하는 리본과 표지가 종종 보인다. 


숲속으로 난 길을 걸어들어 갈 즈음에 스탬프 찍는 곳이 나타났다. 우면산 끝자락이라는 표시다. 둘레길 수첩을 꺼내 스탬프를 찍었는데, 역시나 잘 나오지 않는다. 준비해 둔 스탬프 패드를 꺼내서 스탬프에 묻히고 다시 찍는데 이번에는 스탬프 범벅이 됐다. 아이는 속상해 하였다. 힘들어도 엄마아빠 따라 온 아이에게 즐거움 중의 하나가 스탬프 찍는 건데, 이런 부분은 좀 아쉽다. 



 사당역에서 우면산 초입 가는 길에서 만난 동네 화분


 이런 저런 소규모 공장과 창고들이 있는 골목길. 멀리 마중나온 강아지


 고양이를 보고 손짓하는 아이


숲은 완연한 여름으로 달리고 있다. 녹음은 점점 짙어지고 꽃들도 햇살을 받아 색이 진하다. 그늘진 곳과 햇살 드리운 곳의 온도차가 크다보니 나무 아래에서 맞는 바람이 무척이나 반갑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땀 흘릴만한 길이다. 


성산약수터 근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이곳을 지나 약간의 언덕길을 오르니 어른키보다 큰 돌탑이 쌓여져 있고, 그 옆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우리 세 식구가 이 기회를 그냥 지날 수 있을까. 다들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여기서 또 쉰다. 역시 아이가 좋아한다. 출발할 때도 쭈쭈바 하나 물고 출발했는데, 벌써 두 번째 얼음과자다. 


우면산 자락은 관악산 자락에 비해 길이 훨씬 수월하다. 잘 다듬어진 면도 있지만 오르고 내리는 굴곡이 심하지 않다. 평범한 산길을 지나는 느낌으로 갈 수 있다. 긴 거리였지만 발걸음이 익숙해진 것인지 많이 걸어도 힘들지 않다. 우면산은 2011년 여름의 폭우 속에서 엄청난 산사태를 겪었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비가 계속해서 오면서 우면산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산사태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관련 자료) 우면산 산사태는 왜 일어났을까? 산사태의 원인은 다양하다. 직접적인 원인은 환경을 돌보지 않은 난개발, 산림청의 경고를 무시한 담당관청 등도 문제지만, 궁극적으로 자연 현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즉 산은 산사태로 점점 깎이고 깎여 평지화되는 것이 오랜 지구의 일상이라는 것. 여기에 인간의 개발이 산사태를 더 촉진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인간의 삶이 개발을 피할 수는 없지만, 산사태 역시 피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면산 지역은 산사태 이후 사방 공사 등 다양한 우면산 살리기 개발에 나섰다. 산사태를 복구하고 다시 나무를 심어 삼림을 조성했다. 여기저기 인공 계곡을 만들어 비가 와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여 제2의 산사태를 예방하였다.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산림이 국토의 70%라는 한반도에서, 게다가 한여름의 집중폭우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기상 현상이 된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의 삶이 함께 하는 것은 팽팽한 줄다리기일지도 모른다. 결코 느슨해질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우면산 초입


 아이스크림 빨고 다닐 때가 좋지.


 둘레길을 안내하는 화살표


 사유지를 분리하는 철조망 담장 사이로 피어난 들꽃들


 햇볕은 뜨거워지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우면산의 중심지.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힘들 때는 손잡고...


 아이스크림을 입 언저리에 골고루 묻히고 다녀서...


 산중턱에서 바라본 서울의 모습


 두 번째 아이스크림. 돌탑 주변에서..


 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산책길


 다시 막대기 하나 들고 다니면서... 다음에는 꼭 스틱 들고가기로...


 우면산 살리기 활동 


우면산 산자락 따라서 계속


 우면산 사방공사 지역. 여기서 산사태가 일어났고, 수많은 흙더미들이 쓸려 내려갔다. 


 점심 먹었던 자리에서 하늘을 찍었다. 


 막대기 하나가 좋은 장난감이 되는 숲


 나무둥치도 올라가 보고 ....


 멀리 롯데타워도 보인다. 


 힘들어했지만 나름 재미를 찾아 다니던 아이



 세 식구 다시 발걸음을 모아서...


 이날은 숲이 대부분이었던 둘레길


면산을 빠져 나오자 어린이 놀이터가 나왔다. 아이에게는 가장 신나는 공간. 우리 외에도 세 아이와 엄마가 나와 놀고 있었다. 그 엄마는 풍선에 물을 넣어 물풍선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던지면서 놀아 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한다. 뜨거운 날에 물풍선 놀이만한 게 있을까. 넓은 놀이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텐데, 참 잘 놀아준다. 놀이터 한쪽에 진짜 나무들을 세워 작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안에서 어떤 아이들이 소꼽놀이를 했는지 작은 나무토막 위에 아기자기하게 돌맹이들과 모래들이 펼쳐져 있다. 어느 아이가 펼쳐놓은 소박한 밥상을 보면서 도란도란 엄마 아빠 놀이를 하였을 꼬마들의 행복한 가정에 들어온 느낌이다. 


 우면산을 빠져 나오자 나타난 어린이 놀이터의 시설물


 쉴 때는 신발도 벗고 시원하게 ... 우면산 놀이터 정자에서.


놀이터에서 한참을 쉬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시간이 여유롭다. 다시 양재시민의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놀이터를 나와 횡단보도를 넘어 차도 옆을 좀 걷다가 보면 양재천을 만난다. 양재천을 잠깐 걷게 되는데, 잘 꾸며져 있는 양재천도 걷기 좋았다. 야생화들을 길가에 심어 놓았는데, 푸른 하늘과 작은 개천이 조화롭다. 자꾸 발걸음을 잡는 들꽃길을 지나면 보리인지 밀인지를 심어 놓은 곳이 나온다. 손으로 만져보니 무척 거칠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구경을 한다니 둘레길 걷기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숲길만 걷다가 천변길을 걸으니 새롭다. 


양재천을 걷는건 아주 짧았다. 양재시민의숲 공원이 바로 나왔다. 나무들이 무척 컸다. 오래동안 자라온 나무들이다. 양재시민의 숲 공원이 조성된게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 대회를 앞두고 만들어졌으니 대략 30년 가까이된 숲이다. 그러니 숲이 풍성하다. 나무 종류만 43종에 약 98,000주가 자라고 있단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냥 쉬다가 지나왔다. 


많은 시민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펼치고 일요일 오후를 한가로이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가까운 매점을 가니 공원에 있는 하나밖에 없는 매점이라 인산인해다. 한참 줄을 서서 맥주 2캔과 음료 하나 과자 하나 사들고 나왔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먼길을 걸어온 다리를 편하게 뻗고 맥주를 넘기니 신선이 따로 없다. 일요일 하루가 알차게 갔다. 



 놀이터를 나와 차길을 따라 걷는다. 


양재천으로 내려서 걷는 길 들꽃과 들풀들이 길가에 가득하다.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밀밭은 이제 추수 때를 지나 누렇게 변하고 있다.


양재천을 가로 질러 가면 곧 양재시민의 숲이 나온다. 


 양재시민의 숲 입구. 


 나무 그늘 터널을 지난다. 


 돗자리 깔고 앉아서 엄마아빠는 맥주 한잔, 아이는 음료수 한잔. 걸어왔던 길을 이야기한다. 




양재시민의숲 공원에는 매헌 기념관이 있다. '매헌'은 윤봉길 의사의 호이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현재 루쉰공원)의 의거를 기념하고, 의사의 행적을 정리하였으며 그가 남긴 글을 전시하고 있고 사후 대한민국에서 수여한 훈장이 전시되어 있다. 젊은 시절부터 농촌에 조직을 만들어 우리글과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결국 큰 뜻을 품고 집을 나서서 결국 상해에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의거를 성공시켰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 "사나이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공을 이루지 않고서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으리"


젊은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끝에 닿아 있다. 이상을 쫓는 사람은 누구도 쫓아갈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젊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 이상을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매헌 기념관 앞에서


 매헌 기념관 안에 있는 윤봉길 의사 전신상


 야외에 있는 윤봉길 의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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