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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 출렁다리 앞
소금산 출렁다리 앞 포토존
울렁다리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협곡의 모습. 멀리 보이는 다리가 울렁다리이다.
소금산 울렁다리. 출렁다리를 지나 한 20여분 가면 도착한다. 여기로 가는 길도 아찔함을 맛볼 수 있다.
울렁다리는 바닥이 유리인 구간이 있다. 바닥을 바라보며 그 위로 걷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소금산 출렁다리는 원주의 간현광광지 안에 있다. 날이 풀리면 줄서서 건너야 한다고 하는데, 새벽에 출발한 덕분인지 그나마 좀 한산했다. 다만 내려올 때에는 주차장도 거의 가득 찼고사람들이 오르는 인파도 제법 많았다. 만일 출렁다리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이른 아침에 오르는 게 좋을 듯하다.

소금산 계곡에서는 포크레인을 비롯한 중장비들이 관광지 개발 공사에 한창이었다. 관광지에 차를 주차하고 식당을 찾아 식사를 먼저 했다. 아침부터 막걸리를 한 사발 돌리는 것도 아저씨 여행의 꿀맛이다. 소금산 출렁다리 입장권은 1인당 3000원. 하지만 2000원을 원주 사랑 상품권으로 돌려 준다. 원주시 식당이나 시장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나중에 원주 전통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상품권을 사용했다.

관광지 입구에서 출렁다리까지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물론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어 어렵지 않지만 다리가 불편한 분들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잘 걷는 사람은 20여분 정도 부지런히 올라가면 다리 초입에 닿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쉬엄쉬엄 올라가면 3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출렁다리의 길이는 200m. 길이도 길이지만 협곡을 잇는 높이가 남다르다. 자그마치 100m높이에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100m 상공을 흔들리면서 걸어보는 느낌은 제법 짜릿하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더 흔들릴까?

출렁다리를 지나 최근에 개통된 울렁다리로 이동했다. 울렁다리로 향하는 길에서도 놀라움이 계속된다. 절벽에 심을 받고 거기에 받침을 얹어서 길을 만들었다. 사실상 산길이 아니라 절벽 옆길을 타고 이동하는 셈이다. 인간의 기술력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울렁다리는 출렁다리보다 길고(353m) 높이도 더 높다(200m). 중간에 유리 바닥을 만들어 아찔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그래도 다리 밑을 보기 보다 다리 중간에서 건너편 소금산 협곡의 절경은 꼭 눈에 담고 가자.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곳 출렁다리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들이 앞다투며 관광지 현수교 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를 비롯해, 울산 대왕암 출렁다리(303m), 충남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600m), 충남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402m), 전북 순창 체계산 출렁다리(270m 높이90m), 충북 제천 청풍호 옥순봉 출렁다리(222m) 등등... 대충 인터넷에 '출렁다리'라고 검색하면 쏟아져 나온다. 산업 발전의 성과는 오래 걸리기 마련이지만, 이런 토목 사업을 통한 관광지 개발은 금방 눈에 띈다. 성과 위주 보여주기식 개발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문화 산업의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긴 할 거다. 그러나 미래의 먹거리 개발을 위해서는 지역의 지도자라면 보다 높고 큰 혜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출렁다리가 만일 찾아오는 관광객이 줄어 관리비만 먹는 하마가 되어 관리 인력과 재정이 줄어들었다가 큰 사고로 이어진다면 누가 책임질까? 성장만을 염두하는 개발이 갖는 한계다.

박경리 문학공원 내 전시관에 있는 시.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후 쓴 시. 온갖 고통을 글로써 극복하려는 사마천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던 것일까.
박경리 문학의 집 전시실에 마련된 전시물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장면들의 내용을 펼쳐 놓고 사건에 관계된 여러 장치들로 실감있게 나타내 주었다. 텍스트와 책, 사물을 통해 전시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동상. 편안한 얼굴로 어느 한 곳을 지그시 응시하는 선생의 모습에서 <토지>의 마지막 부분을 집필하던 그이의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박경리 문학공원에도 들렸다. 2010년이었던가, 2011년이었던가. 아이가 2살일 때 안고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때도 이곳에 들렸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전시관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때로는 그렇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안심한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인데도, 박경리 선생은 저 돌 위에 변함없이 한쪽 팔을 대고 기댄채 앉아 있다. '잘 지내셨어요?' 마음으로 재회의 인사를 나누니 편안해진다.

이곳은 선생께서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며 대하 장편 소설 <토지>의 마지막 4부와 5부를 집필하고 완결지었던 곳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힘들게 자식을 키워내면서도 자신의 속에 담긴 응어리와 한을 글로 풀어내었던 한 인간의 삶의 흔적을 본다.

알 것 같다. 쉽지 않고 힘든 일이다. 그런 그의 아픔과 고통이 그가 쓴 시 <사마천>에 잘 드러나 있다.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도, 불의의 사고로 죽은 아들에 대한 애달픔도 글을 쓰면서 위로받았을까. 모든 사람이 그럴 거다. 내가 하는 일이 언제부턴거 경제적 문제와 삶의 철학의 경계에 서는 일이다. 그저 밥벌이로 하는 일이었는데, 그 일이 어느날부터 내 인생에 대한 깊은 연민과 통찰을 주는가하면, 반대로 인생의 깊은 철학에서 시작되었던 작업이 어느새 밥벌이로 연결되어 나와 가족을 연명하게 하는 일도 있는 거다.

원주를 간다면 그 어느곳보다 이곳 박경리 문학공원에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용소막 성당 앞 계단
용소막 성당 출입구 앞.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들. 안에서는 예배가 행해지고 있다.
성당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느티나무
나무에 잎이 무성해진 여름이면 붉은 벽돌 성당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용소막 성당은 강원도에서 세 번째로 건립된 성당이다. 건물이 지어진 건 1915년. 약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 자리에서 지역민들의 평안을 기도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성당도 성당이지만 성당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그루의 느티나무들이 영묘하다. 성당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인 성당을 둘러싼 아름드리나무들. 성당보다 더 오랜 역사로 이 땅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 150번의 사계를 지나오고 처음 찾아왔던 사람의 자손과 그 자손의 자손이 찾아오는 것을 지켜보는 저 생명들은 이날 이곳을 찾은 우리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원주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였던 용소막 성당을 한바퀴 돌면서 이번 여행의 이름을 생각해 본다. 그 겨울 원주, 우연 2022. 대학 선후배 동기 사이인 우리 넷은 실로 십여년의 세월을 건너 오랜만에 함께 긴 밤을 같이 보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도 풀어 보았지만, 편안하고 시답지 않게 오고간 농담들이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싶었던 시간이 아닐까. 경직된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푼 뜻하지 않은 여유. 이제 좀 마음의 짐들을 내려놓고 살면 좋겠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내 주위의 사슬들을 끊어내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이제 스스로의 마음을 드넓은 평야에 선 초인처럼 깊은 협곡을 바라보는 의인처럼 잠시만이라도 자신만의 세상을 다시 꿈꿀 수 있었던 시간이었길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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