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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4. 26.

아이의 중간고사 기간. 아이는 혼자 집에 있고 싶다고 했다. 조용히 아내와 단둘이 집을 나섰다. 쫓겨난 거 아니다. 부부 데이트의 날이다. 아무튼 그렇다. 떄로는 그렇게 사는 거다.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한다.  

조계사에 들렸다. 관광객과 불자들로 북적였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한달여 앞두고 있다. 마당 한쪽에서는 법회 준비로 임시 의자들이 늘어서 있고, 또다른 쪽에서는 힙한 찬불가에 맞춰 춤 공연 연습이 한창이다. 입구에 있는 북은 오가는 이들이 시시때때로 두들겨 대니 3초에 한번씩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북소리와 염불외는 소리, 힙합 음악 소리까지 21세기 서울 한복판의 절에서 경험하는 꽤 신비하고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그러나 저러나 아내는 또 아이의 복을 기원하겠다고 연등을 달자고 한다. 얼마나 하겠냐 싶어 그러라고 했는데, 연등 하나가 3만원이다. 연등 접수를 받던 아주머니는 가족 모두 하라고 영업(?)하신다. 물론 복을 기원하는데 어디 한명만 하는 건 이상하긴 하지. 늙으신 어머니, 장모님의 건강도 기원해야 하고, 아직 장가 안 간 동생에게 좋은 배우자가 생기는 것도 바라야 하고, 우리 부부의 건강, 나의 안정적인 직장 생활도 기원하고... 복을 바라는 일들은 쎄고 쏐는데 어디 딸 아이 하나의 복만 바라는 것은 어딘가 뒤통수가 가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그 복을 기원하는 것도 다 돈이다. 그러니 오늘은 아이 건강과 성공만 빌기로 한다.

그렇게 연등 달리는 것도 보고, 사진도 찍고 차도 한잔 마시고 오늘의 두 번째 나들이 장소인 불교중앙박물관을 향하던 중이었다. 어, 그런데 조계사 문 바깥에서 외국 승려가 알수 없는 말로 뭐라고 하면서 웃으면서 우리 팔목에 염주를 들고 안아주고 법석을 떨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예예~ 하다가 시주라며 2만원을 주고 돌아섰다.
"응? 뭐지?" 
그제야 나와 아내는 정신을 차리고 당했음을 직감했다. 역시 서울은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다. 아니 서울토박이들이 외국 승려에게 당했다. 두고두고 속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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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웃으며 불교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오늘의 메인 이벤트. 도솔산 선운사의 삼지장보살. 
1936년 선운사의 금동지장보살좌상이 도둑을 맞는다. 도둑맞은 불상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불상을 소장이 꿈을 꾼다. 불상이 꿈 속에 나와 "나는 원래 전북 고창 선운사에 있었으니 속히 돌려보내 달라."고 말하는 꿈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소장자들에게는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긴다. 병이 생기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하는데 다른 곳에 팔아넘기면 그 사람에게도 똑같은 꿈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결국 마지막 소장자가 고창 경찰서에 자진 신고해 아무 조건없이 불상을 넘기겠다고 밝히게 된 것.

자고로 지장보살은 지옥에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남아 있는 한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면서 지옥을 떠돌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신 분이다. 인간들을 구제하겠다고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같은 분이다. 자발적인 희생, 숭고한 사랑을 상징하는 분이다. 험악한 지옥을 떠돌며 단 한명의 중생이라도 구하겠다고 떠도는 지장보살의 모습을 생각하던 우리의 조상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삼지장보살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이와 함께 익살스러운 승려들의 조각상도 그간 불교 사찰에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익살스러운 동작-곰방대로 자기 코를 위로 찌그려뜨리는 모습이라든지, 곰방대로 등을 긁는 모습, 앞니가 빠진 웃음으로 다른 중을 손가락질 하는 모습 등을 보니 사람사는 모습이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지 않겠나 싶었다. 삶의 잔잔한 기쁨과 슬픔, 해학과 풍자로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내고 수도의 길을 걷는 것. 중이나 나나 다를 바 없다. 그저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와 믿음을 다시 돌아볼 뿐.

조계사 앞마당에 울려퍼지던 21세기 힙합 음악이, 500년전 조상들이 만든 재미있는 승려 조각상과 통한다. 간만에 먼 조상들과 멋지게 인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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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와 이제 경복궁을 갈 차례. 가기전 점심을 먹어야겠다. 북촌손만둣국을 찾아들어갔다. 나는 북촌손만둣국, 아내는 북촌피냉면. 둘다 얼큰하고 매운 맛이다. 북촌손만둣국은 얼큰한 국물이 일품이다. 밥말아 먹어도 맛있겠다 싶었지만 아내가 추가로 주문한 만두까지 먹으니 배가 불러서 밥은 못먹겠더라. 피냉면은 알싸하다. 매우 맵다. 입이 좀 얼얼해진다. 

배불리 먹었으니 걷자. 몇년만에 들린 경복궁. 역시 외국인이 절반이다. 그 절반 중 여자가 절반인데 절반 가까이가 한복을 입고 다닌다. 머리장식까지 예쁘게 하니 정말 어여뿐 외국처자들이 조선의 궁궐을 쏘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닌다. 아내와 나는 결혼전 데이트할 때 고즈넉한 창경궁에서 비오는 궁궐 안을 조용히 돌아다니며 소곤소곤 이야기하거나 조용히 자신의 발소리만 들으면서 걷거나 처마 밑에 앉아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둘다 아무말 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 기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시시때때로 그때의 이야기를 하곤 했고, 이번 경복궁도 그래서 오게 된 건데... 물론 15년도 훌쩍 넘기 옛이야기이고,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 1천만 시대이고, 그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경복궁이니 소란스럽기 그지 없는 건 어느정도 각오하고 갔더랬다. 

그런데, 여기저기 이벤트로 펼쳐진 내용들을 살짝씩 구경했는데, 공연의 질이 좋지 않은 건 아니지만 궁궐 안에서 오일장 공연하듯, 마당놀이 하듯 공연하는 게 맞나 싶다. 관광객의 참여를 독려하고 끌어들이는 모습 등은 민속촌이면 족하다. 궁궐에서까지 그래야 할까? 생각해 볼 문제다. 

그나마 소득이라면 최근 복원되었다는 건천궁이다. 명성황후가 일제의 자객들에게 시해된 역사적 장소이다. 다른 장소와 달리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러 아이들이 강사 선생님과 함께 이곳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을미사변의 역사적 장소로서 의미가 있는 장소가 복원되었으니 보다 생생하게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는 한 나라의 주권이 그렇듯 처참하고 잔인하게 밟히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어떤 나라이건 말이다. 그렇게 경복궁 구경까지 마치고 나니 아내와 나는 녹초가 된다. 경복궁을 나와 정부종합청사 옆길로 돌아서 세종문화회관을 건너 광화문 광장을 거쳐 시청 앞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었다. 서울시의회를 지날 즈음 성공회성당도 구경했다. 그리고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나는 다시 앞으로 몇년간은 경복궁은 쳐다도 보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되고 여력이 되면 덕수궁이나 창경궁, 종묘로 발길이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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