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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걸었다. 
이곳에는 두 번 정도 왔다. 그때마다 내 옆에는 항상 아내와 아이가 같이 걸었다. 
이번에는 지인들과 함께 걸었다. 높이 솟은 나무들이 드리운 그늘과 향기가 좋다. 
자박자박 흙길 밟는 소리도 평화롭다.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월정사 앞에 다다른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에 구름이 걸렸다. 
파란 하늘이 산사를 둘러싼 초록을 더 짙게 물들인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면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이내 엎어져 잠이 들 것 같구나. 
가만히 앉아서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대웅전의 지붕 너머 소나무 숲과 하늘의 경계를 살핀다. 
이 시간이 아깝지 않다.

 

 

안목 커피 거리에는 차와 사람이 가득했다. 
은은하고 깊이 있는 커피향을 상상하면서 방문했지만
마땅히 차댈 곳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이다가 
안목해변과 송정해변을 지나 더 북쪽으로 향했다.

그래, 꼭 커피가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인산인해를 이룬 그 거리에서 복작거리는 것보다
한산하고 조용한 곳이 더 좋다. 
소나무 방풍림을 지나니 바로 푸른 바다가 덥썩 안긴다. 
"어서와, 옥빛 바다는 오랜만이지?"
잘 지내고 있구나, 너도... 나도... 이렇게 뜻밖의 바다를 만나는 행운이 감사하다. 

 

휘닉스 평창에는 처음이다. 
스키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잘 쏘다니는 것도 아니니 이런 곳을 방문할 일도 드물다.
분명 콘도이지만 야외에서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곳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4명이서 3인을 주문했는데 많다. 라면과 맥주는 무제한이다. 
해가 저물 때까지 텐트 안에서는 이야기가 굽이굽이 펼쳐졌다. 
 

평창에 왔으니 이효석 생가도 방문해 본다. 
낡은 집 반석 위에는 오래된 텔레비전과 시계가 나와 있다. 
부서진 시계 바늘은 8시 35분 즈음에 멈춰있고, 
텔레비전 박스는 위태롭게 찌그러져 있어 언제 주저앉을지 알 수 없다. 
석유 곤로는 대청마루에 홀로 올라가 있는데, 
여기 물건들이 그렇듯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버려진 것들처럼 보인다. 
낡고 작동하지 않으며 필요가 사라진 물건들
이효석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찾아오는 이들이 금줄이 쳐진 마당에서 멀거니 집만 쳐다보고 
오래된 농기구와 예전 집안 가구들을 슬쩍 보고 떠난다. 
낡고 버려진 저 물건들처럼 집도 시나브로 낡고 버려지는 것 같다. 

생가 앞 식당 주인의 팻말에는
""메밀꽃 필 무렵"은 시가 아니고 소설입니다."
라는 안내 문구가 써 있다. 
싯구 같은 소설 제목이 말해 주는 것처럼 소설도 그렇게 시처럼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길 영릉에 들렸다. 세종대왕의 묘이다. 
묘역은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듯했다.
얼마전 올린것 같은 집들의 보와 기둥은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언덕 위에 다시 커다란 봉분을 올려서 마련한 세종대왕 묘역은
주변의 푸른 소나무들이 빙 둘러져 있고, 초록의 잔디들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의 묘를 수백년간 지켜온 석상들도 여전하다. 
방문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도 익숙해졌는지 지그시 감은 눈을 뜨지 않는다. 

걷는 걸음걸음마다 마음이 편하다. 여유로운 마음 덕분에 초여름의 열기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시 2021년 6월의 좋은 추억이 온전히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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