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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 지리산둘레길의 아홉 번째 덕산-위태 구간을 걸었다. 이 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경남 산청군에서 하동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 포장도로길을 많이 걷는다.
- 여러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 해발 482m의 중태재(갈티재)가 가장 높은 곳이다.
- 대나무 숲이 종종 지나가게 된다.

구간 길이는 약 10.2km이며 쉬지 않고 걷는다면 3시간 정도면 무난히 완주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길이다. 덕산, 송하, 위태 마을은 논농업 중심이지만, 중태마을이나 유점마을은 산 속에 있어 주로 감나무 농장을 하고 있거나 다양한 밭작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까지 여러 산촌을 보아왔지만, 이번에는 산촌마을 한가운데로 통과하는 여정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지나가는만큼 여행자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산천재에 위치한 8-9구간 시종점.
산천재. 하늘은 맑았고, 12월 기온으로는 좀 포근한 편이었다.
멀리 눈쌓인 지리산이 보인다. 천왕봉과 싸리봉 등의 능선이 아닐까 생각된다.
산천재를 벗어나 덕천강의 강둑길을 걷는다.

산천재에서 시작된 걸음은 먼저 덕천강변길로 이어진다. 덕천강은 남강으로 흘러들어가 낙동강을 만난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물의 여정이다. 멀리 눈쌓인 지리산을 보면서 걷는 기분이 묘하다. 겨울산은 아름답다. 봄, 여름, 가을이 주는 아름다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우 매력적이지만 위험하고, 눈 부시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쉽게 허락되지 않으며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혹독하다. 이번 겨울은 더더욱 위험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산장(대피소)들이 운영을 하지 않는다. 눈덮힌 지리산을 보면서 내년 겨울에는 꼭 저 산에 올라보겠다 다짐한다.

덕천강을 넘을 수 있는 징검다리. 원래 코스는 이 길이 아니다. 두물이 만나는 곳에 있는 원리교와 천평교를 넘어야 한다.
송하마을 이정표
9구간 초반에는 포장길을 걷는다. 차량통행은 드물지만 가끔씩 빠른 속도로 차들이 이동하니 조심해야 한다.
철조망에 다닥다닥 붙은 리본들. 초반 여정에서는 이정표나 리본을 보기가 어렵다.
멀리 보이는 다리가 20번 국도를 잇는 덕산1교이다.


9구간에서 덕천강을 넘은 이후로 초반 여정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마을을 지나는 것도 아니며 그냥 차도를 내내 걷는다. 마을이라도 나오고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그렇게 지루하진 않겠지만 마을도 보기 어렵고 가끔 지나다니는 차들만 있을 뿐이다. 왼쪽으로 조례산을 끼고 20번 국도가 통과하는 덕산1교 다리 밑을 지날 때면 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나온다. 덕산1교 다리를 지나면 강과 이별하며 중태마을을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 도로 양옆으로 황량해진 들판이 깊어가는 겨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겨울은 겨울대로의 멋이 있다. 종잇장처럼 얇게 스며드는 햇살이 무척이나 반갑고,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옷길을 여미게 하면서도 추수를 끝낸 들판의 떨어진 지푸라기들이 흔들리는 모습으로 겨울의 정취를 실감하게 해준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남은 여정을 걱정해야 하지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면 눈발이 휘날리는 시골길을 걷는 것도 좋은 이야깃거리로 전할 수 있을 듯싶다.

중태마을에 위치한 지리산둘레길 안내소와 당산나무
지리산둘레길 안내소. 스탬프가 준비되어 있다.
곶감을 말리는 창고. 마을마다 이런 창고들을 갖추고 있었다.
가정집에서는 처마에 매달아 곶감을 말리고 있었다. 때깔이 곱다.
시냇물과 대나무 숲 오솔길이 잘 어우러진 풍경
마을은 점점 더 산으로 올라간다.
"농작물에 손대지 말아 주세요. 마을주민께서 애써 키운 자식과 같은 재산입니다."


옛부터 내려온 마을에는 언제나 마을을 지키는 나무가 있다. 보통 마을 입구에 있는 그 나무를 당산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수호나무인데, 매년 정월이 되면 마을주민들이 나무 아래에 모여 제를 올리곤 한다. 마을의 지킴이가 되어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행운이 들어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

중태마을 입구에도 그런 나무가 있다.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센터 앞에 있는 나무이다. 나무 아래에는 정자도 마련되어 있어 나그네들의 다리쉼을 돕기도 한다. 중태마을의 당산나무는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렸는데, 그 자리에 다른 자리에 있던 나무를 옮겨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무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중태 마을은 근대사에서도 등장한다. 우금치에서 크게 패한 동학농민군들이 이곳 덕산까지 후퇴했는데, 이를 쫓는 일본군과 중태 마을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기 위해 매복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울창한 대나무 숲
중태마을을 벗어나고 한참 걷다가 만난 쉼터. 잔잔한 음악과 함께 둘레객들을 응원하는 푯말이 인상적이다.
쉼터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이렇게 꾸며 놓았을까?
대나무숲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고, 길 바로 옆은 잣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중태마을을 벗어나 유점마을로 향한다. 옛이름들을 보면 유점골, 놋점골, 불당골이라는 골짜기 이름들이 있다. 모두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유점골은 유기 그릇(점은 '그릇을 만드는 곳'을 뜻하는 옛말이다)을 만드는 마을이었고, 놋점골은 놋그릇을 만들던 곳이었다. 불당골은 불당이 있던 곳을 의미한다. 지금도 그 골짜기 어딘가에는 사람이 살고 있나 보다. 차량이 드나든 흔적이나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옛날 변변한 먹을거리도 없고 오가기 쉬운 곳도 아닌 이 첩첩산중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마을을 관통하는 길을 걷는 일은 조심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삶의 터전에 낯선 이들이 드나드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다. 최근 아파트 단지 내 공간이 사유지라는 명목으로 타 지역 아이들이 놀이터에 들어오는 것도 막는 인심을 생각하면, 소수의 마을 주민들만이 공유하는 그 길을 낯선 나그네들에게 내주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부수적인 피해도 없지는 않았을 터. 애써 키운 농작물이나 과수에 손을 대는 객들도 있을 것이고, 내어 준 길 말고 다른 길로 드나들며 길을 어지럽히는 이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나물이나 약초에 손을 대는 사람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산촌 주민들도 있다. 곳곳에 안내판을 세우고 주의를 당부해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

이번 여행은 특히나 여러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다. 어르신들을 만나면 조심스럽게 인사드리고, 마을 안을 통과할 때면 대화도 조심하고, 흘러내린 마스크도 다시 고쳐 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따로 표현할 수는 없고 그저 마음가짐,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중태재 오르막길 입구
중태재 벤치
중태재에서 내려오는 길
대나무숲
중택지.
지리산둘레길 9-10구간의 시종점

중태재는 해발고도 482m로 그다지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고갯길이다. 이 고갯길이 산청군 시천면과 하동군 옥종면을 연결해 준다. 중태재를 내려오다가 보면 대나무숲을 관통하게 된다. 이번에는 대나무숲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다. 대숲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할 거라 상상했다. 내 어릴적 대숲은 한여름 낮이어도 서늘하고 컴컴하여 귀신이 나올 것처럼 스산했다. 그런데 이미 댓잎들을 많이 떨구어서인지 그리 컴컴하지도 않았고, 대나무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오히려 초록의 대나무에 튕겨 반짝반짝 빛이 났다.

대숲은 그리 길지 않다. 그래도 이번 구간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다. 이 숲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어내려가면 중택지에 도착한다. 중택지는 작은 소류지이지만 풍광이 좋다. 여기서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면 위태마을이 나온다.

위태마을에 들어서니 멀리 개짖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가 시끄럽다. 오전 8시 40분 즈음 덕산에서 시작된 둘레길이 12시 10분 즈음 위태 마을에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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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두 번째 둘레길 여행이다. 10월 16일 토요일 출발하면서 이번에는 현지에서 하룻밤 묵고 올라오기로 했다. 친구들과의 외박 여행은 그야말로 오랜만이다. 셋 중 둘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상태이고, 나는 다음주 2차 접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 건 코로나가 아니었다. 일주일전부터 예보되어 있던 가을비. 비가 얼마나 올까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는데, 현지 예보에 따르면 약한 비가 오전 중에 그칠 거라는 것. 한 달 전부터 잡았던 일정을 강행키로 하고 다시 새벽길을 나섰다.

운리마을에 있는 지리산둘레길 8-9구간 시종점 표지판
출발할 때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둘레길을 시작해야 했다.
밤새 내린 비와 바람으로 낙엽들이 길에 가득했다.
지리산의 마을마다 쉼터 같은 나무들이 있다. 때로 그 나무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고 가도 좋다.
포장도로는 끊기고 자연 흙길이 시작됐다. 멀리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비는 오락가락, 바삐 걷는 친구들, 무엇이 그리 바쁜가. 천천히 가세.
겨울이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길가에 핀 꽃들에게도 눈을 돌려 보자고.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지 않은가.
운리마을을 벗어나 완만한 오르막길 임도가 나왔고, 그 정상에 작은 정자와 함께 지리산둘레길 안내판이 있다. 
7구간 웅석봉에 대한 트라우마일까? 급한 오르막길을 앞두고 긴장감이 돌아 사진 한방 찍는다. 

비를 맞으며 걷는 일이 어려울까? 한여름 소나기라면 여행자에게 땀을 식혀 주는 바람보다 때로는 더 반갑다. 가을비는 어떨까? 숲속에서 만나는 가을비는 낙엽과 함께 떨어지면서 보다 우울한 정취를 깊게 해 준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 울리는 숲 한가운데서 우리는 떨어지는 빗방울과 낙엽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슬픈 광경을 목도한다. 때로 우리 인생은 불운이 겹겹이 들이닥쳐 청구서처럼 펄럭일 때도 있겠지. 살다보니 정말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진 그 순간,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견뎌지더라. 그 인연을 위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견뎌내고 나아가는 것 아닐까.

비는 서서히 그쳐갔다. 지리산 둘레길의 정자가 있는 곳에 이 길의 유례가 실린 표지판이 있다.

솔숲과 참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숲길과 게곡길, 임도를 번갈아 가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고령토를 운반하던 운재로가 남아 있으며 남명 조식 선생의 무덤에 이르는 길도 만난다. 마근담 계곡 따라 덕산 초입이 옛날 장터였다.


길을 가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참나무 군락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다행히 8구간에서 급한 오르막길은 없었다. 반대로 가장 멋진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드라운 흙길이 내내 이어진다. 아침 산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이런 곳에 모셔진 무덤의 주인은 심심하지는 않겠다. 둘레길 여행객들의 심심치 않을 방문을 받을테니.
빽빽이 둘러싼 참나무 사이를 걸었다. 지리산둘레길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여기 참나무숲에서 만난다. 
참나무숲 군락지를 걷는 일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햇볕이 내리 쬐나, 바람이 부나...


이곳은 지리산둘레길 중에서 참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참나무에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 '진실'의 의미를 지닌 접두어 '참~'이 붙었는데, 그만큼 우리 조상들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있게 쓰인 나무였다. 집을 짓는 목재로서뿐만 아니라 다 타고 남은 숯도 참나무 숲을 '참숯'이라고 부르면서 높게 쳐 준 것이다. 반대 의미의 접두어인 '개~'를 생각해 보면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 참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장관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땅에서 올라온 황토흙 내음, 떨어지는 빗방울이 낙엽에 닿는 소리, 비에 젖은 숲의 나무와 땅이 주는 오묘한 빛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의 오감을 한껏 느끼게 해 주었다. 지난달까지 울어 제끼던 매미 소리도 사라지고 새 소리마저 드물었던 이날의 숲은 인상적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도시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쌓여 왔던 답답함과 긴장감이 이곳 참나무 숲에서 순식간에 씻겼다.  

참나무숲 군락지는 걷기 좋게 잘 다듬어져 있다. 
참나무 군락지를 안내하는 안내판

 

비도 많이 그치고 나뭇잎에 매달린 빗방울들만 간간히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10월 중순. 가을이 여기 지리산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참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백운 계곡이 나온다.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을 매우 아겼으며 자주 찾았던 곳이다.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표지판에도 나와 있다.

조식 선생에 대해 아는 바는 없었다. 다만, 그가 평소에 "지식을 알면 행해야 한다"는 것(실천궁행實踐躬行)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알면서도 행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부조리와 비합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거나 체념하는 일이 많아진다. 수없이 조정으로 천거되고 높은 벼슬을 추천받았으면서도 결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이곳 산청에서 후학 양성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이 분의 모습이 어쩌면 고고한 학자로서의 표상일 수는 있겠다.

게다가 조식 선생이 이러한 생각(실천궁행) 때문에 퇴계 이황과도 크게 다투었다고 하니 그가 큰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생각해 보면 이황이나 이이의 유학이 세상의 일이나 인민의 안락과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조식 선생의 학문이 훗날 북학파, 실학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누가 더 세상 사람에게 이로웠는가는 물을 필요가 없겠다.

백운계곡의 모습
백운동 계곡
둘레길 안내 이정표와 돌무덤. 
쓰러진 나무가 위태롭게 보인다. 
작은 대나무들이 길 옆에서 여행객들의 손을 잡아준다. 떨어진 댓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밟힌다.
울창한 숲이 산을 이룬다. 산이 숲을 가꾼다. 사람은 그저 머물다 갈 뿐이다.


백운계곡을 지나 다시 산길을 걷다보면 마근담을 만난다. 마근담의 어원은 '막은담'에서 왔다고 한다. 온 사방이 산으로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했다. 공기가 맑고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마근담에서부터는 흙길이 아닌 시멘트-콘크리트 길이다. 여전히 주위는 높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게다가 이날 따라 바람마저 거세어 온 산의 나무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한 잎들이 바람에 떨어져서 하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가을이 실감난다.

내려가는 길에는 감농장이 지천이다. 산청은 감이 유명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감을 이용해 곶감을 만들어 도시로 내보내는 모양이다. 감나무에서는 감들이 한창 익어갔고, 감 농장의 한켠에서는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매달아 말리기 위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1월에는 산청 곶감 축제가 열릴 만큼 이곳 산청에서 곶감은 무척이나 중요한 생산물이다.

사실 곶감은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건조 과일은 다양한 형태로 만날 수 있긴 하지만 곶감이 주는 매력은 여타 마른 과일들에 비교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이곳 산청 곶감은 지리산의 깊은 산속에서 겨울을 난다. 이 곶감을 먹는다면 지리산의 맑은 공기를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근담으로 내려 서는 길. 
마근담길은 대부분 포장도로로 덕산까지 이어진다.
산청은 곶감으로 유명하다. 매년 1월 산청곶감축제가 열린다. 
감나무에는 곶감이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곶감에서 빨리 거둔 감들로 곶감을 말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함께 빨래를 하던 공동 빨래터. 이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남명 조식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가 내린 비
지리산둘레길 9-10구간 시종점 표지판. 

 

이날 9시에 운리마을에서 시작해 1시에 덕산(시천면 산천재)의 시종점에 도착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우리는 조미원이라는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날 서울로 상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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