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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혼자서 왔어?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2
- 장터목산장 >> 촛대봉 >> 벽소령 >> 연하천산장(12.8km)
- 2008.06.26



장터목산장은 이른 새벽부터 어수선하다.
3시반부터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잠결에 들린다. 대부분 일찍부터 일출을 보러 천왕봉에 오르려는 사람들이다. 산장 게시판에는 이날 일출이 5시 15분 경에 있을 거라고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름이 위아래로 가득했던 엊저녁의 풍경은 멋진 일출을 보여줄리 만무하다. 만일 날이 좋았다면 나는 촛대봉 일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날씨 때문에 접었다. 4시경에 일어났다. 일찍 일어났지만 잠은 충분했다. 이미 많은 침상이 비어있다. 모포가 어지럽게 널린 곳도 있다. 대충 꾸리다가 만 배낭도 보인다. 급하게 나간 모양새다.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내일 지리산 최저

14도 최고 21도

구름 조금 강수확률

오전 10% 오후 20%


후배 환국이가 문자를 보내주었다. 이번에 떠나오면서 아무래도 기상정보는 접하기 어렵다 싶어 환국에게 다음날 기상정보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부탁해 놨다. 오기 전에도 무운을 빌어준 후배였고, 여행 내내 문자를 보내 준 것에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햇반으로 아침을 먹었다. 산 아래서 준비해온 카레와 더불어 먹으니 먹을 만하다. 새벽 공기가 약간 서늘하지만 상쾌하다. 멀리 구름이 잔뜩 껴있다. 밥을 먹고 나니 새벽에 천왕봉에 다녀온 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일출은 없었다. 사람들 얼굴 여기저기에는 피곤하고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다. 장터목의 아침은 일출에 따라 표정은 확 달라진다. 멋진 일출이라도 있던 날이면 축제 분위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렇듯 침울하다. 날씨랑 똑같다.


5시 반, 식사를 마치고 배낭을 꾸렸다. 어제는 배낭을 잘못 꾸려서 힘들었다. 배낭을 꾸릴 때는 부피에 비해 무거운 것을 아래로 넣고, 가벼운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한다. 양말이나 속옷, 여분의 옷은 딱딱한 물건들 사이사이에 끼어 넣는 게 효율적이다. 물론 배낭에 짐을 넣기 전 김장비닐을 넣어 침수에 대비하는 것도 요령이다. 또 옷들은 지퍼 팩이나 작은 비닐주머니에 소단위로 나눠 놓으면 효율적으로 배낭을 채울 수 있다. 우의나 배낭커버는 유사시 바로 꺼낼 수 있도록 배낭 위쪽이나 옆주머니에 넣어둔다. 그러나 이날 같을 경우 비올 확률이 매우 낮아서 안쪽 깊이 넣어버렸다. 우의도 부피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배낭을 잘못 꾸리면 배낭에 따라 몸의 중심이 흔들리기 쉽다. 그러면 무릎이나 발목, 허리 등에 더 많은 무리가 가고 피로감도 급격히 찾아온다. 배낭은 최소한 몇 시간 동안 짊어지고 가는 것인 만큼 많이 고민하고 신중하게 꾸려야 한다.


6시, 장터목 산장을 떠났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나왔지만, 곧 몸이 더워졌다. 연하봉에서부터 슬슬 구름이 다시 몰려들었다. 하얀 파도처럼 아주 천천히 밀려오는 게 보였다.





7시 20분 촛대봉에 도착했다. 봉우리 모양새가 촛농이 흐른 촛대처럼 보인다해서 촛대봉이다. 이미 짙은 구름으로 10m 앞을 보기가 어렵다. 넓은 세석평전이 한눈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세석산장은 들리지 않고 곧장 영신봉으로 치고 올랐다. 여름 꽃들이 아침이 되자 만개하고 있다. 초록의 숲에서 피어난 수수한 순백의 꽃들은 별처럼 반짝이며 길잡이를 하고 있다.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지리산 마루금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대부분의 봉우리들이 1500m의 고봉이지만 한시간 이상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드물다. 8시에 영신봉을 올랐다. 영신봉에서 떨어지는 급한 내리막에서는 잘 만들어진 나무계단이 있어 편하다.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이 구름으로 가려져 아쉽지만 키큰 나무들이 펼쳐진 협곡의 모습은 지리산에서 놓칠 수 없는 풍경 중 하나다.


영신봉을 넘어서면 곧이어 갖가지 모양의 암봉이 삐쭉 솟아 있는 칠선봉에 이른다. 잠시 배낭을 풀어 내려놓고 시간과 자연이 빚은 바위 모습을 보면서 감상에 젖어본다.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면 맑은 샘을 만날 수 있다. 선비샘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언제나 수량이 많아서 오가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물통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나와 같은 여정을 가는 사람을 보기 드물었는데, 선비샘에서 아저씨 두분이 동행이 되었다. 산에서 말을 트는 인사말은 대개 이렇다. “어디서 오셨어요?” 혹은 “어디로 가세요?”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오고 가는 길을 묻는 건 당연한 일, 그렇게 해서 대화가 시작되고 동행이 되는 것이다.


“왜 혼자 왔어?”

“아, 네. 다들 시간이 잘 안 맞아서요.”

“혼자 지리산 오는 사람은 보통 고민이 있어 오잖아.”

“……”

“결혼, 연애, 사업, 직장 등등 뭐 그런 고민들을 짊어지고 오지.”


혼자 지리산을 찾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96년 군을 제대하고 나서 홀로 지리산을 찾아 하루 동안 광란의 질주로 천왕봉까지 달렸다. 마땅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답답한 마음을 지리산에 의탁해 보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마음은 비단 나만 그렇지는 않다. 많은 이들이 그런 마음과 정신을 치유받기 위해 숲을 찾고 지리산을 걷는다. 숲의 마루금을 걸으면서 아픈 가슴은 맑은 산공기로 가득 채우고, 복잡한 머릿속은 숲의 공명으로 채운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봉우리에서 깊은 숨을 몰아쉬어 보고, 산 아래 펼쳐진 장난감 같이 조그마한 세상풍경을 보며 위안을 받아 보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사람들은 고통, 우울, 절망, 실패, 좌절을 버리고 온다. 그 깊고 깊은 계곡에서 푹푹 썩어가고 있는 나쁜 감정과 생각들은 다시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선물로 돌아오고 있다. 혼자서 산을 가도 좋은 이유다.



 


 


 


 


 


12시에 벽소령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연하천까지는 넉넉잡고 2시간이면 간다. 점심을 먹으며 푹 쉬기로 했다. 먼저 쉬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역시 여느때와 같은 인사말로 말을 건네본다.


“어디서 오셨어요?”

“연하천에서 왔어요.”

“연하천에서 몇시에 나오셨는데요?”

“여기까지 네 시간 걸렸네요?”

“네 시간이나요?”


두 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네 시간이나 걸렸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길이 바뀐 것일까. 건장하게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을 봤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네 시간이나 걸릴 이유가 없다 싶었다. 길이 바뀌지 않고서야... 그러나 잠시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됐네요. 제 친구가 시각 장애인이거든요.”

“네?”

“앞을 거의 못 봐요. 빛을 감지는 하지만 물체를 구별할 수가 없지요.”


벽소령산장 앞 테이블에서 쉬고 있는 한 사람의 시선은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힘들어서 멍하게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눈이었던 것이다. 그런 핸디캡을 가지고 지리산을 종주하고 있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시각장애인 친구의 바람을 비장애인 친구가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한 4박5일 동안 종주하겠다는 마음으로 가고 있어요. 그래서 짐도 엄청 많아요. 저 친구는 앞을 못 봐서 힘들고, 저는 짐 때문에 힘들고 그러네요.”


이제 점심식사를 마친 그들은 세석으로 가겠다고 한다.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그들도 자신할 수 없다.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4시간이라면, 다시 세석산장까지 4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천왕봉도 오를 수 있는 하루의 여정이건만 아주 천천히 지리산 마루금을 밟아가고 있다.


그들은 음료수 하나씩 나눠 마시고 일어섰다. 둘 사이에는 노란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세석까지 결코 쉽지 않은 봉우리들을 몇 개나 넘어야 한다.


“조심히 가세요.”


난 일부러 큰 소리로 인사했다. 시각장애인 청년이 허공을 향해 대답했다.


“네, 잘 가세요.”


그들을 연결하고 있는 노란끈은 짧지만 그들이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그 노란끈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은 천왕봉까지 무사히 가고 말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올라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과 협동이며,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다. 산은 그런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다.


벽소령에서 뜻깊은 만남을 가진 후 다시 짐을 꾸리고 길을 나섰다. 연하천까지 가는 길은 형제봉을 넘고, 삼각봉을 지나 어렵지 않게 연하천에 도착했다. 다시 한번 이 구간을 함께 지났을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어린다.





연하천은 작은 산장이다. 얼마전에 증축해서 시설이 좀 좋아졌다고 하지만 고작해야 60여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다. 하지만 물이 가깝게 있고, 풍부해서 많은 사람들이 산행 중 반드시 쉬어가는 곳 중의 하나다. 이날은 여기서 머물기로 했다.


단체로 온 대학생들이 속속 넘어오고 있다. 모두들 여기서 한바탕 쉬고 가고 있다. 50여명 정도의 대인원이 함께 지리산을 타고 있다. 선발대와 후발대가 1시간 이상 차이가 날 정도다. 그래도 젊고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다. 함께 지리산을 탄다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알고 그것을 배려하는 과정에서 동기애와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힘든 여정에서 우정은 더욱 빛을 발하며 고귀하다. 하지만 이기적인 일부의 행동은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다음의 사건이 그러했다.


산장 관리인 아저씨가 연하천에서 묶는 O대학교 동아리팀에게 삼겹살 한근을 선물로 주었다. 약 20여명으로 이루어진 팀에게 고기 한근은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러자 일부 학생들이 후발대가 오기 전에 먼저 구워먹자고 주장했다. 어차피 한점씩 나눠 먹기 힘들다면 빨리 먹어치우고 안 먹은 것처럼 숨기자는 것이다. 너무나 황당한 주장이었지만, 제3자인 내가 뭐라고 말 할 게재는 아니다. 그렇다고 고기를 준 산장 관리인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부 의견은 그렇게 급속도로 모아졌다. 속으로 정말 철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선발대의 선배가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얼마 안 되지만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겹살로 먹으면 모두가 먹기 힘들겠지만 잘게 잘라서 김치와 함께 볶아서 모두가 골고루 나눠 먹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경쟁 중심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희극이다. 먼저 왔으니 먼저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 거기에는 약자나 함께 살아가는 동료에 대한 배려나 연민은 없다. 승자독식주의만 자리잡고 있다.


이날 본 두개의 풍경, 시각장애인의 지리산 종주와 연하천 삼겹살 논란은 이 사회의 희망과 절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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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백두대간!                                                                

지리산은 쉽게 오르는 산이 아니었다. 지난여름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두 번 모두 비를 흠씬 두들겨 맞고 물러서야 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산행에서는 통제마저 뚫고 장터목까지 갔지만 결국 산장지기(장터목 관리소장)에게 한소리 듣고 물러서야 했다. 오기를 부려도 안된다. 날씨를 원망할지, 지리산을 원망할지, 아니면 내 운을 원망할지 원망할 대상마저 간단치 않다.

시간이 지나 올 1월초에 다시 지리산 등반을 도모했다. 이번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가로막았다. 출발 하루전 한반도 일대에 뿌려진 폭설이 원인이었다. 지리산은 깊고 큰 산이라 조금만 눈비가 내려도 입산통제가 내려진다. 결국 지리산을 포기한 그날 태백산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안에 지리산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속상함 반 원망 반을 섞어서.







1월말부터 백두대간을 계획했다. 오랫동안 가졌던 꿈을 다시한번 실현시켜보고 싶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음먹으면서 그 시작점을 진부령으로 잡았다. 지리산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아래에서 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 때문에 그냥 지리산부터 가는 것으로 잡았다. 그렇게 계획하지 않은 지리산행이 결정됐다. 이번에는 지리산이 목적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목적이었다. 선언이 무색하게도 한달만에 지리산을 다시 찾게 됐다.

백두대간을 계획한 사람은 나와 친구 둘.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여성 한명이 더 참가했다. 산행은 3~4명이 최적이다. 택시를 타도 4명은 한차이며, 2인 1조로 움직이기도 좋고, 버스를 타도 2명씩 앉으면 안성맞춤이다.

백두대간의 첫 산행지는 천왕봉. 원래는 산신제도 지내려고 했다. 한달에 1회 이상 간다고 해도 2년여를 꾸준히 다녀야 완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결의를 모으고 다짐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부족으로 인해 산신제를 지낼 수는 없었다. 대신 노고단을 기약했다.

2007년 2월 23일 밤 12시 동서울터미널. 대부분의 차들은 거의 다 떠났다. 아마도 지리산 가는 밤 12시차가 막차인가 보다.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저마다 삶의 봇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으로, 마을로 가려고 한다. 함양을 거쳐 가는 백무동행 버스에는 등산객 반, 일반승객 반 정도가 앉아있다. 자리는 거의 꽉 찼다.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았다. 전날에도 상가집을 다녀오느라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고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선잠만 설핏 오갈 뿐이다. 뒤척이다 보니 3시간이 금방 지났고 백무동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밤을 새고 가려니 잠 오는 게 걱정이다.






어느 하늘의 별들이 저리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백무동 주차장에 내린 시간이 새벽 3시 15분. 버스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한기가 덮쳤다. 추위의 기습에 몸서리가 났다. 걷다보면 더워지는 게 등산이다. 춥다면 걸어야지. 등산화를 단단히 메고 스틱을 꺼내고, 랜턴을 점검하며 등산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어느 하늘 아래서 저리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까.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등산팀 중 한팀이 일찌감치 떠났다. 다른 팀은 아직 떠날 생각이 없는 듯 주차장에 머물러있다.

새벽길을 걷는 것은 침묵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단지 우리 네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서늘하게 밤공기를 갈랐다. 한참을 오르다가 돌아서서 떠나온 마을을 보았다. 잠든 마을은 고요하고 간간히 일찍 깬 불빛만 졸린 눈을 비비는 듯 깜빡거린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내 입김이 구름처럼 떠올라 별빛들을 흩뜨린다. 마른 가지들 틈으로 반짝이는 맑은 별들이 반갑다.

백무동에서 3시 40분경에 출발해 참샘에 도착하니 5시 10분. 참샘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커피를 마시기로 했는데, 한기가 장난이 아니다. 물 끓이는 반시간도 안되는 시간이 한나절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출발했다.

소지봉을 지나니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살짝 깃들기 시작했다. 시간상 무리해 달린다고 해도 일출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별이 총총 떠 있는 밤하늘을 보니 일출 구경이 아쉽기만 하다.











제석봉, 용서와 참회에서 평화와 안녕으로                                   


 

▲ 장터목 산장


장터목에 오른 시간이 7시 10분경.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햇반은 뜨거운 물에 최소한 15분정도 끓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까칠해서 먹기가 괴롭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급하게 햇반을 꺼내 먹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배가 고팠다지만 정말 먹기가 곤혹스러웠다.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해법은 라면에 햇반을 다 넣어서 끓여 먹는 것. 친구는 ‘개죽’이라고 했지만 정말 먹을 만했다. 일단 뜨거운 밥알이 부드럽게 넘어가니 속에서 편하다. 맛이야 나아질 것이 없지만, 그래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쉬우니 다들 수월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천왕봉으로 길을 나섰다. 천왕봉에서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올 계획이라 배낭은 모두 장터목 산장에 놓고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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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을 떠나 제석봉을 올랐다. 여전히 황량한 봉우리는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다. 용서와 속죄의 시간은 참으로 길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날이 언제쯤일까. 1991년부터 각인된 이곳에 대한 내 기억은 여전히 멈추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무자비한 침탈에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보인다. 빈자리에서 조금씩 솟아나는 생명들을 보면서 제석봉이 다시 많은 나무와 풀들로 뒤덮이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쯤이면 이 황량한 봉우리의 모습은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용서와 참회의 기억도 사라지겠지. 그 자리에는 질서와 평화가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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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석봉의 풍경들



천왕봉, 이제 백두대간의 시작이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들어서니 바위틈 사잇길이 얼음으로 꽁꽁 얼어있다. 아이젠을 끼고 있지만 그래도 쉽지 않다. 통천문, 하늘로 통하는 문. 좁은 틈사이로 올라서면 곧 하늘이 나를 반기는 곳. 얼마 만에 오르는 것일까. 지난여름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장터목까지 왔지만 끝내 돌아서야만 했던 그곳이 이제 눈앞에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곳인가. 많이 다녀보았으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천왕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구름도 저 멀리 물러나 쉬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시작점. 민족의 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나는 서 있다. 이렇게 맑고 고운 겨울을 보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1991년과 1997년 가을 이후로 천왕봉의 맑은 하늘을 보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천왕봉에서 새롭게 백두대간의 성공을 기원하는 한편, 끝까지 완주해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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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에서 일행들과 함께

 

장터목으로 돌아가는 길, 제석봉을 지나가는 길은 아무리 지나다녀도 말이 없게 만드는 길이다. 천왕봉을 오를 때도 이 제석봉을 지나면서 겸허해지지만, 하산길도 산에 대한 경외감이 나를 휘감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까지는 장터목에서 두시간 내외의 길. 천왕봉까지 가볍게 오른 일행들을 괴롭히는 것은 졸음이다. 나역시 밤을 거의 꼬박 세우고 내려온 거라 걸어가면서도 졸립다. 촛대봉에 오르고 세석 산장이 보일 즈음에는 그저 잠시라도 눈을 붙였으면 하는 바람만 간절했다. 지리산에 오면 항상 밤차로 오다보니 익숙하지만 역시 피곤한 일이다.






세석에 도착하니 4시 정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쉬자는 의견이 대세다. 저녁은 화려한 만찬이다. 먹을 것들은 죄다 꺼내놓고 준비해간 삼겹살과 목살을 굽기 시작했다. 2근 1200g이다. 겨울이라서 냉장은 걱정없었다. 지난 여름에도 삼겹살을 산중에서 구워먹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이번에도 준비한 것이다. 만만치 않은 양인데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위가 닥쳐왔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다고 여겼는데, 겨울 동장군이 이 산속에 들어와 숨어있었나보다. 일행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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