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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수와 하늘정원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3
- 연하천대피소 >> 토끼봉 >> 노고단 >> 성삼재휴게소(13.9km)
- 200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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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연하천산장에서 난 평생 잊지 못할 풍경과 만났다. 그리고 매번 지리산을 올 때면 그 풍경을 다시 내 눈안에 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지리산 맑은 밤하늘에 강물처럼 흐르는 별들, 이쪽 하늘에서 저쪽 하늘로 줄줄이 이어져가는 별의 강. 젊은 날에 본 지리산 은하수는 내 감성의 주춧돌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은하수를 잊지 못해 지리산을 찾는다. 내게는 일출보다 소중한 풍경이다.


전날밤, 예전 그 광경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와 보았지만, 짙은 구름에 가려져 별빛 한줄기도 찾기 어렵다. 이른 새벽 일찌감치 산장 밖으로 나섰지만, 초승달만 휑하게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밤하늘 성긴 별들이 산자락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지 못함이 안타깝다.


전날처럼 6시에 산장을 나왔다. 이른 아침 숲길로 나서니 비스듬히 내려앉은 착한 햇살이 마중 나왔다. 욕심조차 이슬로 맑게 정화되는 하루의 시작이다. 연하천 산장을 나오면 곧바로 얕은 오르막이 시작된다. 명선봉이다. 급한 오르막길의 끝에는 작지만 안락한 공터가 나온다. 배낭을 풀어놓고 쉬어가는 길손들의 쉼터다.


명선봉을 지나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종전의 봉우리와는 다른 급한 오르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토끼봉이다. 노고단에서 종주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힘든 구간이 이곳이다. 토끼봉을 넘어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가방을 풀어놓고 숨을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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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봉을 지나 급한 내리막을 내려가면 화개재가 나온다. 날씨가 수시로 바뀌었다. 화개재는 맑았다. 구름도 많이 걷혔다. 멀리 구름이 낮게 깔려 있지만, 머리 위로는 해가 맑게 떠있었다.
지리산 여름 날씨는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다행히 이날 기상정보에 비소식은 없었다.


화개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유명한 240m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일명 600계단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정말 끝이 없이 이어지는 계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힘들여 계단에 올라서면 삼도봉이다.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가 하나의 꼭지점에서 나누어진다.


이번 지리산에서는 많은 대학생들을 만났다. 전국 각양각지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이나 경기 지역보다 지방이 많고, 지방에서도 특히 영남지방 학생들이 많았다. 영남 학생들이 대규모 단위가 많고, 또 그러다 보니 말이 많고 활기차서 눈에 띈 것일 수도 있겠다. 호남이나 서울 경기 지역 학생들은 좀처럼 보기 만나기 어렵다는 게 의아하다. 하지만 산에서 그 경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는 전국 각지의 등산객들이 영호남의 경계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삼도봉을 지나면 곧 노루목이다.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여기에 있다.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노고단으로 빠졌다. 이글을 쓰는 지금은 무척 후회된다. 어차피 시간이 남았는데 천천히 반야봉을 둘러보고 와도 좋았다. 이번 가을 다시 지리산을 찾는다면 꼭 들려야겠다.



▲ 화개재 삼거리 모습. 예전보다 복원작업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노루목에서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곧 임걸령 샘터다. 풍부하게 나오는 물이 반갑다. 연하천을 나오면서 물을 가득 떠왔지만 4시간 가까이 산행을 하면서 거의 떨어졌기 때문이다. 갈증이 한창일 때 마시는 시원한 샘물은 이 세상 어떤 음료수보다 짜릿하다. 지리산은 적당한 곳에 맞춤으로 샘이 있어 좋다.


임걸령부터 노고단까지는 산뜻한 산길이다. 오르내림도 적고, 길도 평탄한 구간이 많다. 노고단으로 가는 길이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짧다. 지리산 능선에서 벽소령 구간과 함께 가장 걷기 편하고 즐거운 길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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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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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걸령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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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봉 헬기장



노고단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고갯마루에 짐을 풀어놓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과도한 짐이다. 텐트까지 들어가 있으니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일부 짐을 소포나 택배로 되돌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친구 기석의 전화를 받았다. 주말을 맞아 지원을 나오겠다고 한다. 동행이 있어 기쁘기도 하고, 소포나 택배가 아닌 친구에게 부탁해 불필요한 짐을 서울로 보낼 수 있겠다 싶어 반갑다.


노고단 정상이 개방된 것은 최근이다. 스무 번 가까이 지리산을 찾아왔지만 노고단 정상에 올라선 것은 처음이다. 시간이 많이 남는 만큼 짐은 노고단 고개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노고단 정상을 향했다. 나무데크가 편하게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다. 노고단 정상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는 약 750M에 이른다. 양 옆으로 낮게 자란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겹다. 산 아래에서는 구름이 가득했지만 노고단 정상은 햇볕이 따가웠다.


노고단 정상은 ‘하늘정원’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약 30만평에 이르는 넒은 초지에 여름에는 약 35~40종의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룬다. 1507M의 고산지대라 바람이 심해서 나무들도 키가 작아 야생화가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다. 데크 양 옆으로 작은 관목들과 초지를 살피면서도 멀리 노고단 운해가 펼쳐져 있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런 즐거움 사이로 틈틈이 세찬 바람이 흐르는 땀을 씻어 주니 이 또한 등산은 즐거움이다.


노고단고개에서 내려서면 곧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여기서 성삼재까지는 편한 임도를 따라 한시간 가까이 내려간다. 이날은 여기서 버스를 타고 구례로 내려갔다. 친구가 밤기차로 새벽에 오기로 했다.






 

▲ 노고단 정상과 연결된 나무데크





▲ 성삼재에서 바라본 구례군 지역




▲ 성삼재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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