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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겨울산을 만나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자던 생각이 그만 6시까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산에서는 모두 부지런해 어떤 이는 새벽 3시부터 부스럭거리며 산행을 준비한다. 새벽 일출을 보려는 사람도 있고, 갈 길이 멀어 일찍 떠나는 이들도 있다. 난 피곤했는지 중간에 깨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밤새 눈이 왔었다. 세석산장 주변은 온통 눈천지다. 눈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고, 길은 이미 눈으로 덮이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김치찌개. 있는 김치를 다 넣고 요리하는데, 맛이 영 나지 않았다. 함께 간 사람 중에 요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산 중이니 이렇다 할 양념이나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저 있는 김치와 참치로 찌개를 만들었다. 어제의 만찬이 간절히 그리워졌다. 김치찌개는 그저 그랬고 밥알은 까칠했다. 결국 다시 국에 밥을 말아 먹기로 했다. 역시 부드럽고 뜨거운 것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시간이다. 산에서는 세재를 쓰지 않기로 한데다가 겨울이니 음식 닦아내는 게 문제다. 하지만 아주 간단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 물론 산에서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게 제1원칙. 그 뒤에 남은 요리의 흔적은 눈을 긁어다가 넣고 밥을 비비듯이 쓱쓱 문지르면 눈이 살짝 얼어 알갱이가 되면서 찌꺼기들을 깨끗이 빨아들인다. 거기에 마시던 커피를 조금 남겨서 넣고 휴지로 골고루 닦아주면 음식냄새마저 사라진다. 이는 라면이나 찌개를 해 먹은 뒤 설거지 할 때 매우 유용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길과 눈꽃, 그리고 눈축제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아침먹고 짐을 꾸려서 세석산장을 나간 시간은 7시 반. 벽소령까지 길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다시 그곳에서 작전도로를 타고 음정마을까지 3시간반 정도. 점심 시간까지 대략 8시간 반 정도 예상하고 출발했다.

어제는 맑고 화창한 겨울날씨, 오늘은 눈내리는 겨울날씨다. 지리산이 겨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친절한 지리산은 정말 오랜만이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느낌도 좋다. 새도 눈길을 총총 밟고 갔나보다. 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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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경에 영신봉을 지나면 수많은 나무계단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벽소령에서 세석을 갈 때면 여기가 가장 힘들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이다. 반대로 세석에서 벽소령으로 갈 경우 계속 내리막길이니 그다지 부담이 없다. 경치를 감상하면서 갈 수 있으니 즐겁다. 칠선봉에 도착한 시간은 영신봉을 떠난 후 약 한시간 뒤인 8시 50분.

칠선봉은 주위의 바위들을 유심히 보는 재미가 있다. 예전부터 산에 있는 바위에 살아 있는 생명의 모습을 찾아내어 이름을 붙인 건 바위의 영험에 기댄 토템신앙의 발현일 것이다. 칠선봉 주위의 바위에서 인간의 형상을 찾아내는 건 사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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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봉을 지나 약 40분 쯤 더 가니 선비샘이 나온다. 날씨는 분명 영하로 내려간 날씨인데도 샘은 얼지 않았다. 물의 양도 풍부하다. 여름날에 비해 적긴 하지만 겨울철의 샘치고는 부족함이 없다. 맑은 선비샘의 차가운 물을 마시니 속 깊숙한 곳까지 겨울의 냉기가 싸하게 내려간다.

선비샘에서 약 30여분 가면 구벽소령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벽소령길이 시작되는 데 1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벽소령길은 편안하게 산책하듯이 갈 수 있다. 오솔길을 걷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다-벽소령                                              

벽소령은 오른편으로 기암괴석들이 깎아지르듯 서있다. 왼편으로는 계곡쪽을 향해 가파른 낭떠러지다. 길이 넓으니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다보면 “낙석주의” 표지판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왼편으로도 안전줄이 계속 쳐져 있다. 그만큼 위험을 내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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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경. 눈발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쪽에서는 눈이 빠르게 녹았다. 특히 벽소령 산장의 지붕에서는 눈이 녹아 내리며 처마끝에서는 물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일행은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와 라면, 캠핑가스가 부족해 이곳에서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 지리산의 산장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산밑에서 사는 것보다 약간의 웃돈을 더 내야하지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산장에서 먹을 것을 구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산장도 미쳐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물건이 품절될 수 있으니 산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건 비상시나 반드시 필요할 때만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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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과 겨울이 겹치고 있는 길, 작전도로                                      





 

벽소령에서 하산길은 음정마을로 잡았다. 음정마을로 출발한 시간은 12시 20분. 작전도로길은 초반 100m정도만 가파를 뿐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이 옛군사도로다. 평탄한 길로 6.4km정도인데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산책길이라고 보면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산에 온 것이 아니라 멋진 옛길을 걷는 것 같다.

벽소령을 내려가니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녹았고, 그늘진 곳은 눈이 많이 쌓여있다. 눈이 쌓인 곳도 이미 속은 얼어 있어 올라가도 많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지바른 곳은 마치 가을길처럼 낙엽 썩는 냄새마저 났다.

이곳 벽소령 작전도로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운치있는 길이다. 하산길에 일행은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겠지만 이 길은 원래 등산객들이 잘 타지 않는 길이다. 그러다보니 더 고즈넉하고 운치있다. 또 지리산 능선을 타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더 이상 등반이 어려울 경우 탈만한 하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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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눈싸움도 하고 떠나온 지리산 봉우리들을 뒤돌아보면서 내려가니 어느새 음정마을이다. 음정마을은 조그마한 마을이다. 음정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2시 반 정도. 하산길이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음정마을을 벗어나면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함양 가는 버스의 시간 간격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산골짝까지 오는 버스가 많지는 않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 때마침 버스가 왔으니 우리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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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조금 더 올라간 양정마을이 기점이었다. 양정마을에서 10분 정도 쉰 버스는 오후 2시 35분경

출발해 음정마을을 거쳐 함양으로 달렸다. 함양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 30분, 함양까지는 약 한시간 거리인 셈이다. 함양발 서울행 버스는 이미 군내버스 기사님이 전화예매를 해주셨다. 우리가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난 것이다. 만일 아저씨가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오후 5시에나 있을 서울행 버스를 타야 했을 것이다. 함양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3시간 40분만인 7시 10분에 서울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여유있게 즐긴 산행이었는데도 서울에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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