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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6구간, 주천에서 성심원까지는 아내와 딸이 함께 걸었다. 그러나 아내의 건강 문제로 오래 걷는 게 힘들어졌다. 아내가 빠지니 아이도 안 걷겠다고 버틴다. 걷기, 오르기, 그리고 견디기... 아이에게는 좀 지루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아빠와 딸의 여행은... 앞으로 10년 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서운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위해 아이의 성장을 기다리고 내 건강을 살필 시간이다.
가족과 함께 서울둘레길을 완주했을 때의 그 기쁨과 희열을 잊을 수 없다. 항상 엄마가 앞에 서고, 어린 딸이 중간에, 내가 맨 뒤에서 걸었다. 어린 딸이 10여km를 아무 투정없이 걸었을까. 한번은 내가 아이를 업고 걸었던 일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길을 아이는 잘 걸었다. 힘겨웠던 시간은 지나면 영광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지리산둘레길은 자연스럽게 세워진 목표였다. 서울둘레길에 비해 멀리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지만 이는 내가 좀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과 이루려 했던 지리산둘레길 완주의 마음은 결국 그렇게 접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을 수는 없어서 친구들에게 제안해 보았다. 그렇게 세 친구들이 모여 지리산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7구간부터 걷는 것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아내와 함께 지리산둘레길을 걸어 왔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가족끼리 가지 못한 사연도 이해해 주었다. 못다한 완주의 꿈을 다시 시작했다.

성심원 나루터의 흔적
성심원 길. 경호강을 끼고 걷는다.


9월 4일. 여느 때처럼 새벽에 나섰다. 친구들도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게 모였다. L은 전날 늦게까지 영업한다고 술을 엄청 마셨단다. 운전하는 내내 옆자리에서 수다를 떠드니, 차 안이 술냄새로 가득해진다. 어차피 초반 운전은 내가 해기로 했고, C가 내 뒤를 이어 운전했다. 새벽 4시에 나섰지만, 도로는 분주했다. 사람들의 토요일 새벽길도 바쁘게 돌아갔다. 함양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성심원 앞에 차를 주차했다. 친구들이 급하게 서둘렀다. 기념 사진도 찍자마자 저만치 가버린다. 황급히 쫓아가면서도 발걸음은 가볍다. 세 친구의 둘레길 여행은 이렇게 첫발을 내디뎠다.
성심원 앞에는 경호강을 건널 수 있는 나루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1988년 제대로 된 다리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 나루터를 통해 사람들은 성심원을 오갔다고 한다. 이제는 흔적만 남아 있는 나루터에는 이날 텐트가 쳐져 있었다. 누군가 거기서 하루를 묵었나 보다. 둘레길 여행객일까, 낚시꾼일까? 경호강은 은어 낚시로 유명하다. 우리가 찾아간 9월은 은어철이 아니지만, 강을 따라 가는 길에 낚시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경호강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산으로 향한 길이 나기 시작한다. 아침재를 향해 오르는 길이다.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차량 통행이 가능한 포장도로 길이 한참 이어진다. 그러다가 만나는 첫번째 고갯길이 아침재다.

경호강을 벗어나 걷는다.
아침재. 여기서 어천마을로 가는길과 웅석봉 가는 길로 나뉜다. 
119농원 앞. 119 대원으로 일하시던 분이 만든 농원일까? 이름이 신기하다. 

아침재는 어천마을과 성심원 사이의 고갯길이다. 여기서 오른쪽길이 웅석봉으로 가는 길이다. 계곡을 만나기 전까지 편안한 산길은 계속 이어진다. 점점 더 숲으로 들어가면서 길은 좁아지고 길을 덮는 풀들도 키가 높다. 이런 산속으로 수천년 동안 사람이 마을과 마을을 잇기 위해 등짐을 지고 날랐을 것이고, 배고픈 산짐승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였을 거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니 사람들은 유람을 위해 산속을 거닌다. 걸으며 듣고 보고 느끼는 것들은 도시 생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옛추억들을 되살린다. 단지 옛 생각에 젖어들기만 해서 이 산길을 찾는 걸까? 복잡한 일상과 피곤한 인간 관계를 떠나 한나절 아무 생각 없이 오감만을 되살리며 걷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119농원을 지나서 조금만 걸어가면 작은 계곡을 하나 건넌다. 다리가 따로 없다. 물이 적을 때는 그냥 건널 수 있겠는데,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훌쩍 뛰어 건너기는 약간 불안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며 건넜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숲속이었지만 깊은 산에서 내려온 물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이 물은 웅석 계곡을 지나 어천 마을 앞을 흐르다가 경호강에 다다른다. 여기까지는 여느 지리산 둘레길과 다르지 않았다. 7코스 중의 가장 큰 난코스는 이 계곡을 넘어 시작된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전의 계곡
물이 상상 이상으로 차가웠다.
계곡을 건너자마자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좁고 가파른 길이다.
크게 자란 버섯들을 많이 보았다. 당연히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도 자태는 아름답다.


계곡을 건넌 후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지그재그 오르막길이 웅석봉하부헬기장(지금은 정자가 지어져 있다)까지 내내 계속된다. 둘레길이 처음인 두 친구는 이런 길이 어떻게 지리산 둘레길이냐며 혀를 내둘렀다. L은 전날 과음한 탓에 더 힘들어 했다. 땀을 비오듯 흐르는 그를 받쳐주면서 걷는 데 땀에서 술냄새가 났다. 작작 쳐먹지... 게다가 물을 그렇게 마시니 저러다 탈수증이 걸리지 않나 걱정될 정도였다. 여러 여행 후기에서도 7코스에 대해서 힘들다는 평이 많다.
지리산둘레길 5코스 중에 있던 산불감시초소도 꽤나 힘든 오르막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여기 웅석봉 오르막길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좁은 산비탈길을 그야말로 한뼘씩 타고 오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지루하고 힘들다. 해발 고도로 보아도 산불감시초소는 약 600m지만 웅석봉 헬기장은 800m에 약간 못미친다. 예전에는 지리산 종주를 거의 매년 했었지만 이제 산에 올라간다면 덜컥 겁부터 먹는 나이가 됐다. 온전한 산행을 안 한지 꽤 오래됐다. 가족과 함께 둘레길 여행을 시작하면서 더 안가게 된 것이다.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젊은 시절의 그 낭만과 열정을 마음에 품고 산에 오르고 싶다. 몸이 따라주지 않겠지만 세월의 노련함와 여유로 산을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이번 웅석봉 오르막길도 그런 마음이었다. 좀더 크게 심호흡하면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신중하게, 힘들다고 땅만 보고 걷지 않고 잠시 허리 펴고 나무와 하늘도 쳐다 보고, 그렇다고 발 아래에 핀 버섯과 야생화와 풀들에도 눈길 주는 것도 잊지 않기. 2~30대의 나 역시 그랬을 테지만, 4~50대의 나도 그렇게 산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걷는다.
웅석봉 하부헬기장의 정자에서 중년 부부를 만났다. 50대로 보이던 두 부부가 함께 산행을 나왔다. 웅석봉 꼭대기로 올라간다면서 지리산둘레길은 다 돌아봤는데, 정말 좋았다고 이야기해 준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온 우리 일행을 위해 지리산둘레길의 아름다움을 줄줄이 이야기해 주니 친구들이 좋은 기운을 받았다.
힘들게 올라온만큼 여기서 준비해 간 맥주와 약간의 간식거리로 배를 채웠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나니 기운이 돌아왔다. 다시 나머지 길도 내쳐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라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말한마디 나누기 어려웠던 오르막길과 달리 내려가는 도중에는 셋이 나란히 뭉쳐서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었다.

웅석봉 하부 헬기장부터는 평탄한 내리막길이다.
달뜨기 능선으로 불리는 곳이다. 산 중턱에 도로가 보인다. 
큰달맞이꽃. 달뜨기 능선이 보이는 언덕에 홀로 피어 있었다. 
운리 마을 초입. 어느 가정집의 담은 작은 대숲이 펼쳐져 있다. 
단속사지 석탑. 절은 사라졌지만 석탑은 남아 있다. 다시 지어진 거겠지만...

2시 즈음 운리마을에 도착했다. L이 준비한 간편 식량은 물만 있으면 저절로 열을 내어 음식을 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L은 물을 준비하지 못했고, 우리가 준비한 물도 그가 웅석봉 오르는 길에 거진 다 마셨다. 물 부족을 겪으며 내려온 찰나에 밥을 먹으려니 물이 없네. 결국 L이 운리마을 경로당을 찾아가 물을 얻어 와 간편식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9시 즈음 출발해 2시 즈음 마쳤으니 그리 오래걸린 여정은 아니다. 다만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고, 지리산둘레길 중 손꼽을만한 힘든 길을 거쳤으니 이후 둘레길은 여유롭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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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정보

성심원 → 아침재(2.3km) → 웅석봉하부헬기장(2.5km) → 점촌마을(6.4km) → 탑동마을(1.5km) → 운리마을(0.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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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 내가 체험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육체적인 고통도 있었지만, 그 환상적인 체험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매번 고민이다. 제일 앞에 놓을 사진을 생각하다가 법환포구를 지나 서건도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보았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돌을 정리해 가꾸었을 저 길에서는 땀냄새가 났다. 그것은 짭쪼름한 바다냄새와는 달랐다. 그 순간 내 모든 감각기관들이 짜릿하게 정전기를 일으켰다.

등산이든 트래킹이든 첫날 걷는 것이 힘들다. 더군다나 숙소 문제로 꽤나 고생을 하는 바람에 이래저래 피곤했던 하루였다. 둘쨋날은 새로 숙소를 잡고, 차를 렌트하느라 오전 시간이 바빴다. 4월의 제주는 비수기라서 매우 저렴하게 차를 렌트할 수 있다. 아반테를 30시간 렌트하는데 6~7만원 정도. 제주에서 서귀포로 가는 택시가 3만원 정도하는 걸 생각하면 차를 렌트하여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레이싱걸? 뭐 차 옆에 있으면 레이싱걸이고 운전대 잡고 있으면 카레이서다. 멋대로 생각하고 즐기자. 여행이란 나를 낯선 곳으로 보내 낯선 나와 마주하는 것.





위의 사진은 숲터널로 가기 전 삼나무 숲길 사진이다. 실제 숲터널은 나무들이 도로 위를 덮고 있는 모습이다.(숲터널 사진 보기) 지도를 놓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관통하는 길(5.16도로)에 있다. 차를 렌트한다면 한번쯤 드라이브 코스로 잡아도 좋다. 제주에서 서귀포방향으로 가다보면 사진처럼 삼나무숲길이 먼저 나오고 이후 나무들이 지붕을 만들어 왕복 2차선 도로를 덮고 있는 길이 나온다. 그곳이 숲터널이다. 제주의 해안도로도 좋지만 한라산의 숲터널도 추천할 만한 드라이브 코스다.






오늘 일정은 다시 찻집 솔빛바다에서 시작했다. 마침 제주 올레길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에 설문조사에 잠깐 응하고 기념펜을 선물로 받았다. 출발하며서 만난 숲에 내리는 아리한 아침햇살이 어여쁘다.





7코스는 바다 산책로에서 시작된다. 조금만 가다 보면 외돌개를 만나고 일명 '폭풍의 언덕'에 도착한다. 왼쪽으로는 절벽 아래로 쪽빛바다가 넘실거리고, 오른쪽으로는 숲이 아름답다.








사진에 우뚝 솟은 바위가 외돌개이다. 그리고 외돌개 오른편 툭 튀어나온 곳이 일명 폭풍의 언덕. 이렇게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외돌개 주변은 남주해금강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유명해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다.








외돌개는 화산이 분출할 때 형성된 것으로, 바다에 외로이 서 있는 바위라고 하여 외돌개라고 불린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제주를 강점하고 있던 몽고인 세력 묵호를 평정할 때 이 외돌개를 장군으로 치장해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돔베낭길 가기 전.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자운영?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들판에 꽃들이 가득하다. 그 위로 바람이 지나는 흔적이 사진에도 보일까?  










어제의 사건과 사고, 피곤함도 금세 잊혀졌다. 아름다운 풍광과 길이 피로회복제다. 다리에서는 다시 힘이 나고, 발바닥은 금방 달아올라 가볍다. 인생의 목표는 길 끝에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지혜는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배움은 내 발자욱 밑에서 자라는 것이며, 많은 길 위에 더 큰 배움이 있다. 
 






 


돔베낭길. 제주 말로 '돔베'는 도마이고, 낭은 '나무'다. 즉, '돔베낭길'은 '도마나무 길'이라는 말이다. '도마'는 입이 도마처럼 넓은 나무를 일컫는 말인데, 이곳에는 그런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외돌개에서 돔베낭길까지 약 2.5km의 길은 올레길 전체를 통틀어서도 멋진 길 중의 하나로 이곳만 걷는 관광객들도 꽤 많을만큼 풍광이 좋기로 소문났다. 구간마다 해안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어 해안의 자연이 빚은 조각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했다.




어제도 보았던 나무들이였는데, 이렇게 지천으로 자라 천지를 피빛으로 붉게 물들여 놓았다.



어제 서귀포칼호텔로 들어가는 길도 쪽문을 통하더니 이날도 돌담을 약간 허물어 튼 길을 만났다. 선명하게 나 있는 파란색 화살표가 이곳이 올레길임을 말해 주고 있다.





미라 키가 훌쩍 커진 듯^^. 뒤에 주차된 차량만 아니었으면 꽤 좋은 사진인데 하는 아쉬움이...



호근동 위생처리장. 공공기관이지만, 이렇게 항상 문을 열어놓고 올레 여행객들을 반겨 주고 있다.
이런 친절한 배려의 안내판이 참 반갑고 고맙게 여겨진다.



 


속골 휴양지 가는 길에서.



속골휴양지 입구. 열대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 삼나무숲이나 플라타너스 나무 길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묘한 감정을 자극한다.



길이 아닌데 미라는 개만 보면 사진에 담겠다고 다가섰다. 미라가 다가서는 그 길에도 개가 몇마리 묶여 있었다. 미라에게는 예전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결혼하기 전에 그만 저 세상으로 떠났다. 지금도 그 강아지(이름은 '동이') 얘기만 하면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올레길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길은 차도 옆으로 난 아스팔트 도로다. 길이 주는 피곤함은 거기서 배가된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니 그런 길은 사진으로도 담지 않았다. 다음으로 돔베낭길처럼 잘 가꾸어진 길도 길 자체로만 보면 위 사진의 길 보다는 하급이다. 그냥 경운기나 달구니들이 다녔을 법한 정다운 길이 좋다. 흙기운 때문인지 발도 덜 피곤하다.



스모루 소공원의 징검다리. 미라 앞에 가는 올레꾼의 모습. 돔베낭길을 벗어나서는 다시 사람이 별로 없다. 이날도 수녀 두분과 홀로 가는 저 앞에 남자 분, 그리고 젊은 여자 두 분 이렇게만 볼 수 있었다.







안내서에는 많은 지명들이 나오지만, 정작 해당 지역에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속골휴양지-스로루소공원-철다리-징검다리 언덕길-바위를 뚫고 지나는 길-수봉로로 가면서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수봉로는 염소가 지나다니던 길을 2007년 김수봉 님이 손수 삽과 곡괭이로 돌을 놓고 길을 다듬어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이의 정성과 배려를 느낄 수 있을 길이지만 정작 정확한 지점에 안내된 표지가 없어서 안타깝다.



공물해안길.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다.



법환 포구 마을 진입 전. 포구마다 있는 마을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바다로 내려와 삶의 터전을 일구어 만든 곳, 포구. 포구들마다 하나둘씩 있을 만한 사연이 궁금하다. 그물을 다듬고 있을 어부나 망태를 들고 마을길을 돌아나오는 할망을 보면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만나는 마을에서 눈이 맑고 미소가 아름다운 그이와 함께 걷다보니 풍경들 하나하나가 가슴을 흔든다.
















 

서건도 바다산책길. 안내서에는 서건도로 나와있다. 시간이 좀 남는다면 서건도에 들어가 볼 수도 있었겠지만, 갈길이 바빴다. 올레길이 그리 만만히 볼 곳이 아님을 실감했다. 돔베낭길에서도 바닷가에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길을 재촉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이 꾸며놓은 조형물들이 제주의 뛰어난 풍경과 제법 잘 어우러졌다. 실상 제주는 잘 꾸며놓은 관광지보다 이렇게 자연이 빚은 예술품들을 감상하며 자신만의 예술품을 창작해 보는 것도 여행의 큰 기쁨이 아닐까?



차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그 길. 올레길의 매력이다. 걷는 것의 즐거움, 내 어깨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일까? 아니 제 흥에 겨워 꽃들과 함께 어우러지다.







제주 청보리(일 거다). 제주의 밀인가 해서 찾아보니, 제주에서는 밀이 재배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 정보가 있다. 아무리 봐도 난 사진발 정말 안 받는단 말이지. 





다시 바닷가 길로 접어든다. 곧 악근천을 만난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걸을 때 쯤 우리들 그림자도 많이 길어졌다. 꽤 시간이 흐른 것. 뒤에서 사진을 찍자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뭘 하려 하나 보니 그림자 사진을 찍자고 한다. 녀석들도 우리 쫓아 오느라 고생이 많다며...


사진에서 멀리 끝 쪽에 악근천이 있다. 악근천을 바로 넘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악근천을 돌아 풍림리조트 후문으로 가는 길의 초입은 비닐하우스촌이다. 마을길을 좀 지나다보면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그리고 얼마 안가 풍림리조트 후문이 나온다.



풍림리조트 안으로 악근천이 흐른다.





풍림리조트 안으로 난 올레길. 예쁘게 꾸며져 있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친절한 안내표지도 잘 되어 있어 반갑다.



주상절리대. 풍림리조트를 나가는 쪽의 우측 절벽 모습이다. 인공적으로 꾸민 것처럼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자연의 손이 빚은 예술이다. 내일 8코스에 주상절리를 가는데 여기서 가까이 보니 좋다.



풍림리조트를 나와 얼마 안가면 화훼단지를 지난다. 옆으로 있는 비닐하우스가 화훼단지. 그리고 강정마을과 강정포구를 지나는데, 이 구간이 한창 공사중이었다. 7코스는 모두 좋았는데, 마지막에 트럭들이 내뿜는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주민들의 편의와 삶을 위한 개발이라면 그도 인정할 수 있겠지만, 딱히 그런 것이 아닌 투자라는 명목의 개발이 이 땅에 만연해 있다. 그런 개발들은 꼭 강의 흐름을 막고, 산의 지형을 변화시킨다. 제주에서 오래 살았던 노인분들은 개발되기 전의 제주도가 훨씬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우리가 올레길에서 본 제주의 풍경들 중에서도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길들이 더욱 정감이 갔다. 이중섭 화가나 김영갑 사진 작가가 자신의 캔버스와 프레임에 담은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진정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월평포구. 포구라고 부르기에는 웬지 쑥스러울 정도로 작은 포구였다. 저 작은 포구도 폭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 때면 자기 안으로 숨어든 배들을 포옥 안아줄 것이다. 모든 포구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이로써 7코스도 마무리됐다.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할만큼 늦은 시작이라서 서두르다 보니 사진도 많지 않다. 돌아보면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게 많이 아쉽다. 그러나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추억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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