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때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인문학이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교양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먹고사니즘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데 인문학은 왜 인기를 끌었을까? 

2019년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성인(25~64세)의 49%가 대학교육을 이수했다. 이는 조사 대상 46개국 중 가장 많은 것이었다. 조사 연령대를 낮추어 25~34세의 성인은 거의 70%에 가까운 대학 교육 이수율을 보인다. (기사 링크

이처럼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인문학’은 그리 어렵지도 않은 학문이다. 우리는 인문학의 주요 학문 분과를 ‘교양’이라고 부르며 대학 시절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해 왔다. 이른바 ‘문-사-철’ 즉, ‘문학’ ‘역사’ ‘철학(윤리)’ 등이며, 여기에 ‘정치’ ‘경제’ 등도 엮여 있다. 시작은 아마도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한마디였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회사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을 중요시한다는 언급이었다. 시장은 인문학을 상품화했고, 다양한 책과 강연, 모임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그런 흐름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창의적인 제품을 만드는 비결은 우리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고자 했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보다 품위 있는 관계(?), 즉 지적 대화를 위해 인문학을 탐하고 있다. 저자 채사장은 모 방송국 강연(유튜브)에서 인문학 공부 열풍을 비판했다. 인문학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는 모습을 지적했다. 

‘인문학’을 배우는 이유가 ‘교양’일 수도 있다. 그것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폭넓고 상식적인 개념화된 지식을 익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큰 의미로서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사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고, ‘나와 사회의 관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이를 위해 채사장은 ‘역사, 정치, 사회,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풀었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그 깊이는 매우 깊을 수 있어서 책 한 권에 자세히 풀어내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재미있는 비유와 쉬운 어휘를 사용하는 저자의 능력은 우리를 보다 쉽게 인문학의 도입부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해 주었다. 여기에 집필 당시의 사회적 문제를 대입하여 나름의 시각에서 해석을 얹었다. 인문학의 응용이다. 잘 쓰는 저자와 탄탄한 기획과 시대적 흐름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여기서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먼저 ‘역사’ 편에서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생산수단의 개념을 설명하고 원시 공산사회에서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까지의 단계별로 생산수단의 변화와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후 근대 자본주의가 태동한 후 자본주의의 모순에 의해 세계대전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다. 

다음 ‘정치’ 편에서는 흔히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하는 기준과 방식이 결국 경제 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구분에 따라 결정되는 것임을 설명하며 현실 정치 즉 FTA, 무상급식, 민영화 등에서 경제 체제적 관점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고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문제점과 독재 정치와의 구분,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사회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설명하고, 생산수단과 자본을 가진 보수층이 사회의 프로파간다를 조작하거나 장악하면서 정치적으로 보수를 지지할 수 없는 서민, 노동자, 자영업자, 농민 등이 보수를 지지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는 ‘사회’ 편이다. 사회에서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와 헌법에서 규정하는 의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개념적 차이가 무엇인지, 자연권의 탄생과 발전, 전체주의와 세금의 문제 등을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에 대해서는 ‘미디어는 어떻게 거짓을 말하는가’를 통해 자본의 지배를 받는 미디어의 속성과 그로 인해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언론의 문제를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윤리’ 편이다. 우리를 시험에 빠뜨리는 윤리적 상황, 즉 딜레마에 대해 다룬다. 그 상황에서 어떤 판단이 가장 윤리적일까에 대한 논란의 역사를 통해 윤리의 문제를 정리하고 있다. 먼저 윤리적 판단, 의무론과 목적론, 정언명법, 목적론과 공리주의 등 인류가 가진 윤리의 문제를 각각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나아가 어떤 사회가 윤리적인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이 책이 쓰일 당시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던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화두로 던졌다. 사회 변화를 위한 과정과 절차, 그리고 최종 목적이 모두 조화로울 수 있을까? 여전히 우리가 가져가야 할 윤리적 화두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8점
채사장 지음/웨일북



반응형
반응형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톨스토이처럼 쉽게 풀어 줄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톨스토이를 접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그의 단편들을 안데르센 동화집처럼 보았던 적이 있다. 물론 안데르센과 톨스토이는 너무나도 다른 작가였지만, 그 둘은 우리집 세계아동문학전집에서 함께 살았던 식구였다. 특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바보 이반’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 등의 단편은 어린 나에게도 다른 동화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바보 이반’. 세 형제 중에 바보로 놀림 받던 이반이 결국 왕국의 공주님과 결혼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 이상하게 생긴 악마가 바보 이반에게 붙들려 있는 이상한 그림이 여전히 머릿속에 아련하다. 하지만, 우직하고 성실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가를 보여 준 단편이었다. 


톨스토이를 다시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다. 아마도 현대문학 시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때 읽어야 할 책 중 하나가 ‘부활’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부활’에서 온전히 기억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보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더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이제 잊혀진 톨스토이를 인문학 강연에서 다시 만났다. ‘플라톤 아카데미 TV’의 여덟 번째 인문학 강의 ‘톨스토이, 성장을 말하다(석영중 교수)’이다. 강연은 주로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작가 톨스토이를 살펴보고 있다. 작품은 톨스토이의 생을 설명하기 위한 소품에 불과하지만 작품을 읽지 않아도 강연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작품 속 주인공 레빈을 통해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꽤 수명이 길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죽음을 기억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죽음’을 기억할 때 순간순간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고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죽음을 깊이 고민할 때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이 곧 성장의 발판인 것이다. 톨스토이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곧 성장하는 삶이었다. 몰입을 통해 자아를 해방 시키는 것, 그래서 세상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은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나의 생활 전체는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매 순간순간이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에서도 언급되는 이야기이다. 매 순간순간 삶의 의미를 집중하고 발견하여 자아를 세우고 세상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그 성장이 곧 기쁨이며 행복이 된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부활', '안나 카레니나'를 다시 보아야겠다. 




반응형
반응형

언제부턴가 유튜브 동영상을 열심히 보고 있다. 주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한다. 보통은 책을 보는데,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책을 들고 읽는 게 민폐가 되는 경우도 있고, 사실상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유튜브에 올라온 교육, 과학, 인문학 관련 강연이나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접했던 것은 조성택 교수의 플라톤 아카데미 강연, '어떻게 살 것인가? - 경계와 차이를 넘어 함께 사는 지혜'를 우연히 케이블TV에서 접했는데, 이를 유튜브에서 다시 들었던 것이 내가 유튜브에 빠진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플라톤 아카데미 TV의 여러 강연들을 들어 보았다. 


강연의 경우 한국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 강연을 듣는다. 따로 PPT를 활용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주로 인문학 강연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다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보기 시작했다. ‘총, 균, 쇠’의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프로그램[각주:1]으로 시작됐다. 이전의 인문학 강연은 그냥 듣기만 하고 화면은 볼 필요가 없었던데 비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특히 외국 다큐멘터리는 영어가 많이 나와 자막을 반드시 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책을 들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편리하다. 최근에는 교육 다큐멘터리인 EBS의 '학교란 무엇인가 10부작'을 보고 있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이러한 학습(?)은 책에 비해 집중도는 약간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단시간에 꽤 많은 정보들을 편리하게 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지금까지 꽤 많은 다큐와 인문학 강연, 교육 프로그램을 접했다. 그럼에도 너무나 많이 흘려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 이제부터 그런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나의 느낌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것이 내 안의 철학으로 성장하고 내 삶을 밝혀줄 것이라 생각된다. 기록은 기억을 돕고, 그 기억은 가혹한 세상을 향해 나서는 내 자신의 인간적인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최근 본 동영상


  1.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올려 놓아 따로 링크를 달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총균쇠'만 검색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본문으로]
반응형
반응형









지금은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5년여의 수감 생활을 하신 분이죠. 그러나 그는 감옥 생활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던 공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의 경우, 감옥 안에서 네 가지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첫째이자 가장 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과거 1977년 청주 교도소에서 2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의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동서양의 두 분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중략) 진주와 청주에서의 4년여의 감옥 생활은 나에게 다시없는 교육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얻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습니다.”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얼마전 사형수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서는 사형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전국 교정시설에서 자사를 시도한 사람의 수는 422명에 달하며, 이중 7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중 살인(28명, 38.9%)으로 복역 중인 수용자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 수용자(15명, 20.8%)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타인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고 복역하는 수용자들의 자살이 절반을 넘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마땅한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한 실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창안한 인문학자 얼 쇼리스의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995년 얼 쇼리스 교수는 한 여죄수와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가난과 범죄의 악순환을 고민하는 그에게 그 여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에 얼 쇼리스는 범죄자를 포함해, 알콜 중독자, 노숙자, 실업자 등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전파합니다.

“당신은 이 수업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는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나를 설명하는 힘,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문학 과정은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던 ‘조건들’에 대해 과거와 다르게 대응하는 힘을 갖게 한 것이죠.

범죄자들이 수형 시설에서 사회를 원망하고 이웃을 저주할 때, 인문학 과정은 새로운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읽었던 대부분의 서적들-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은 모두 인문학의 영역에 있는 책들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사람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시각과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인문학 독서가 김대중이라는 시대적 위인을 만들어냈듯이 수용시설의 수용자들에게 펼쳐지는 인문학 강의도 그들 자신과 우리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의 독서를 통해 얻었다는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수용자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EBS <지식채널e>의 일부를 옮겨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