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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의 주요 내용은 “생명의 역사에서 진보에 대한 오해”이다. 

더이상 과학책에서 나와서는 안되는 그림. 마치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변화되어 온 모습을 진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각인시켜서 진화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진화는 단선적인 변화가 아니라 수많은 가지들이 파생되어 온 현재의 모습일 뿐이다. 

1부 ‘플라톤에서 다윈까지 우수성의 확산’에서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화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인간으로의 진화를 진화의 최종점으로 본다는 것에 있다. 우리 스스로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 같고, 심지어 이 지구를 끝장낼 수 있는 무기도 가지고 있으며, 공기도 빛도 전혀 없는 물속 깊은 곳에서부터 아무것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추운 북극점까지 어디에서나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 등으로 지구를 대표하는 생물종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인간이 지구를 대표하는 생물종에 오를 수 있을까? 굳이 지구를 대표하는 생물종을 뽑는다면 굴드는 박테리아를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코로나 19로 인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전 지구적 혼란 상황을 보면 결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를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생물종이라는 오해. 우리가 가진 그 절대적 신념을 조용히 깨뜨리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학의 역사에서 일어났던 모든 혁신들은 종류는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절대적 확신이라는 인간의 오만을 차례로 뒤엎어 나간 것이다. – 프로이트

 

인간은 복잡성을 띤 생물종이다. 복잡성을 가졌다고 해서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복잡할수록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박테리아는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종을 가지고 있고,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진 생물종이다. 수많은 지구 생물종이 멸종을 했지만 박테리아는 여전히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지고 온 지구에 퍼져 있다.

2부 ‘죽음과 말 - 변이의 중요성에 대하여’에서 저자는 우리가 보는 흔적이 모든 것을 밝혀주지 못하는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말이 진화된 흔적을 보면 우리가 흔하게 이야기하는 직선적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말의 진화는 ‘진화 계통수’로 보았을 때는 풍부한 변화로 점철되어 있다. 점차적 단순적 변화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저자는 말의 진화를 통해 진화는 모든 종의 변화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며 단선적인 변화로 진화를 이해하는 것은 잘못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현재의 일시적 지배력을 종의 우월성이나 영원한 생존 가능성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3부 ‘4할 타자의 딜레마’는 이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챕터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현실을 수십 년의 야구 기록을 통계화하고 수치화하고 그래프로 만들어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야구가 발전함에 따라 4할이라는 견고한 벽은 더욱 견고해졌고, 야구의 신이 만들어 놓은 2할 6푼의 중심점에 선수들이 더욱 집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지금의 규칙이 그대로 적용되어 계속 간다면 그 중심점이 오른쪽 벽(4할대)에 더 가거나 왼쪽으로 움직이는 변화는 있겠지만, 거의 변화하지 않을 거라 보았다. 

 

 

“최고의 선수들이 오랫동안 같은 규칙으로 경기할 때 그 시스템의 수준은 향상되며, 그것의 향상과 함께 변이 정도는 차츰 줄어들고 전체적으로 평준화된다. (중략) 이는 안정된 규칙 아래에서 승리라는 포상을 놓고 경쟁하는 개체들로 이루어진 시스템 전체의 일반적인 성질이다.”

제한된 조건과 규칙이 분명한 시스템에서는 이런 평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안정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야구 역사 초반에 다양한 변화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퍼펙트게임, 4할 타자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마찬가지로 지구 역시 생명체의 등장이라는 시점에서는 다양한 변이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와중에 지구 환경과 생태가 안정화되고 지구라는 제한된 조건과 자연이 정한 규칙이 안정화되면서 생명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떻게 원숭이가 인간이 될 수 있으며 왜 지금은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느냐는 우문에 대한 굴드의 재치 있는 현답인 셈이다. 

4부 ‘생명의 역사는 진보가 아니다’는 결국 인간의 종 변화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며, 인간의 탄생 역시 예견된 결과가 아니며 우연의 산물임을 말한다. 지구 역사가 다시 45억 년의 생을 다시 굴러간다고 해도 지금의 모습과 같은 인간이 지구 상에 존재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인류가 뛰어난 종의 DNA를 내세워 우주까지 진출한다 할지라도, 설사 우주 밖의 새로운 생명체를 만난다 할지라도 인류가 진화의 결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굴드의 주장이다. 

이 책은 ‘진화’라는 단어를 발견한 이후 쌓아온 오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우주를 통틀어 우리가 가장 진화한(?) 생명체라고 믿거나 우리보다 진화한(?) 생명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화를 단선적이고 결과론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인류는 생명체가 다양한 변이를 겪는 과정에서 나타난 우연의 산물임을 알고 우리 스스로 생명에 대한 존중과 겸양을 갖추어야 하며, 독선적인 자기애나 우월감에 빠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풀하우스 - 10점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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