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단풍이 한창인 계절에는 주말에 차를 끌고 여행을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운전 미숙도 있겠지만, 아기가 장시간 차안에 갇혀 있는 일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가까운 양평을 다녀오면서도 오는 길에는 길치의 고통을 톡톡히 치루어야 했었기에 더더욱 주말 여행은 겁이 난다. 그렇다고 이 좋은 가을날 집에만 있는 것도 한번 주어진 삶에 대한 불성실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덕수궁과 정동길, 광화문 광장까지 둘러보는 이른바, 가을맞이 서울 단풍 트레킹.
민서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날 하루 민서가 웃고 즐기며 흥분하는 모습은 더불어 어른들도 즐겁게 한다. 꽃과 비둘기, 낙엽과 많은 사람들의 모습. 즐겁고 행복한 주말의 고궁 나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평범하고 즐거운 나들이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삶의 의미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때라고 하던가. 아이가 생기면서 매 순간 그런 느낌들이 심장을 두드린다. 더불어 별 것 아니던 내 삶도 더 살아야 할 가치가 커지고 있다.
9시가 좀 못되어 누님 집을 나섰다. 898번 지방국도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니 얼마 안가서 한재골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이 오늘의 첫 번째 고비,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2차 산맥줄기를 넘어야 하는 코스다. 예전에는 아마도 노령산맥이라고 불렀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 국토연구원의 위성사진 검토 결과 백두대간의 2차 산맥이라고 정정됐다. 그렇게 한 시간을 씨름 끝에 고개하나를 넘었다. 예전 횡성에서 횡계 가던 길을 떠오르게 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내리막길의 즐거움을 한껏 즐겼다. 많이 숙련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달리다보니 체인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기름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작은 소읍의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윤활유를 도움 받아 발라놓으니 소리가 말끔히 사라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펑크 한번 나지 않은 이 자전거가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1번 국도를 타고 가니 장성호가 나온다. 장성호는 이곳 남도에서도 주요 관광명소 중의 하나. 장성호 주변의 길은 붉은 단풍이 한참 물들어 있어 아름다웠다. 그러나 장성호를 벗어날 때쯤 다시 언덕길이 나왔다. 곰재라고 불렀는데 길지 않았지만 중간에 공사구간이 있어 달려드는 뒷차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장성호를 넘어 정읍으로 가는 길 앞에는 또 하나의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호남터널을 지나가지만 내가 타는 1번 국도는 길재라는 긴 고개를 넘어가게 만들어져 있었다. 터널보다야 차라리 고개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하루동안 3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니 이 산맥의 험준함을 다시 실감하게 됐다.
마지막 고개를 넘어 정읍으로 달려가면서도 다시 큰 언덕을 하나 넘었다. 오늘은 후반부 최대의 수난의 날인가 보다. 다행히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잘 내어 정읍에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정읍 시내와 시장을 구경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올라올수록 가을이 깊어짐을 느낀다. 때는 이미 겨울의 초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장성호 주변의 새빨간 단풍이나 정읍시내 입구의 노란 단풍잎, 그리고 도로에서 흩날리는 낙엽들, 간간히 이미 다 벗어버린 나무들까지, 가을은 아직 내륙의 중심부에서 머뭇거리며 천천히 물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가진 것을 다 벗어버리지만 안에서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성장의 외형은 혹독한 변화의 흐름에 나를 가혹하게 내던지는 형상이다. 언제쯤 나는 성장을 위한 변화를 몸에 담아보았을까. 정작 내 안으로 들어가 나를 뜯어 고치는 일은 게을리하면서, 나를 버리지 않고 남의 변화만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이 산하의 가을을 보면서 새삼 변화의 화두를 내 안에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