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 - 떠남은 여행의 시작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떠남은 여행의 시작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1
- 중산리 >> 천왕봉 >> 장터목산장(6.7km)
- 2008.06.24~25




 

떠남은 여행의 시작이다. 물론 준비하는 그 순간부터가 여행의 시작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까지 여행은 불확실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공상에 불과하다. 하루짜리 나들이도 칫솔이 부러졌다는 하찮은 이유만으로 좌절되는 일은 허다하다.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여행을 떠나지만 그 실행은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기 때문에 떠남은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떠나기 전 지인을 만났다. 그는 내가 떠나는 것도 몰랐지만, 어찌됐든 배웅 아닌 배웅을 맞아 소주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실상 나는 매우 두려운 상황이었고, 누구든지 툭 건들면 주저 앉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럴 때 걱정을 나누고 원정을 독려하는 이를 만난다면 고맙다.


실상 미안한 감도 있다. 누구는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고, 곤봉과 방패, 군화발에 짓눌리고 있는데, 한가하게 백두대간이나 타겠다고 나선다는 죄책감이다. 어쩌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나보다. 하지만 내가 이겨내야 할 것은 무기력이었고, 되찾아야 하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희망이다. 그래서 고되고 외롭고 쓸쓸한 여행을 선택했다.


적당히 취해 진주행 심야 고속버스에 올랐다.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소주 덕분인지 곧 잠이 들 수 있었다. 버스는 3시간 반만에 머나먼 남쪽 진주에 나를 내동댕이쳤다. 휑하게 텅빈 진주 버스터미널의 새벽은 내 여행의 고단함을 예견하는 듯했다.



 

가게들은 닫혀 있고, 터미널 한쪽은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다. 피곤에 지친 아저씨가 터미널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고, 터미널 바깥에서 졸고 있는 아줌마의 리어카에는 식어가는 간식거리들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새벽첫차로 내려온 내 모습을 보고 지리산 가는 걸 대번에 알아봤는지, 중산리로 가자고 보챘다. 야간 산행을 해야할만큼 길이 급하지도 않아 거절했다. 길 건너 편의점에 가서 부족한 물건을 몇가지 사고 다시 터미널로 왔다. 새벽 3시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첫차는 6시가 넘어서 있다. 잠을 청했다. 불편한 의자에 누워 새우잠을 청했다. 깊은 잠은 없었다.


어차피 여행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것은 또한 인내의 시간이다. 패키지여행처럼 틈이 없이 뱅뱅 돌리며 구경하기 바쁜 여행도 있지만, 어차피 내 여행은 그런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은 어디까지 얼마만한 시간을 걸어야 도착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는 여행이다. 하루종일 걷는다는 건 시간을 또 그만큼 보내며 목적지가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이 왔다. 5시에 나가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2줄 샀다. 그리고 6시 30분 중산리로 떠나는 첫차에 올랐다.


시간반을 달려 중산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등산객은 나와 고등학생 3명이 전부다. 아이들은 새벽잠을 물리치고 산을 찾아왔다. 가볍게 멘 아이들의 가방만큼 표정도 밝고 가볍다. 잠이 많을 나이에 지리산을 가겠다고 아침 첫차에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괜히 반갑다. 아이들이 까불면서 등산로를 향해 갈 때 나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메고, 스틱을 꺼내 길이를 맞추었다.


“우리 너무 널널하게 가는 거 아니냐? 저 사람 좀 봐. 우리도 저 정도는 준비해야 하잖아.”


내가 준비하는 폼이 꽤 진지했을까. 아이들의 대화가 재밌다. 하지만 지리산은 가볍게 가도 괜찮다. 지리산에는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색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새벽 첫차에 몸을 실고 온 그 마음 그대로 산에 올라가렴.



 



8시 10분 지리산 중산리 탐방지원센터를 지났다. 덩치 큰 바위들로 채워진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우렁우렁 울린다. 지원센터에서 칼바위까지 약 1시간 10분의 거리는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아침부터 계곡 물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엊저녁까지 있었던 마음 한자락의 두려움도 씻겨나갔다.


칼바위부터는 계곡과 멀어지고 본격적인 산속길을 걷는다. 코끝으로 바람새는 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진다. 밤새 잠을 설쳐서 그럴까.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다. 이번 산행을 위해 체력단련을 따로 하지 않았다. 평소에 자전거를 타고 다닌 것이 그나마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운동이라고 할만큼 말하기도 부끄러운 정도다. 그러니 헉헉거리는 것도 당연하다. 어차피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올랐다. 장기 산행인만큼 처음부터 힘빼지 말자는 거다. 어깨에도 힘을 빼고 다리도 폼잡지 말것이며 고개도 얌전히 숙이고 가자. 그렇지만 한 발에 한땀이 목줄기를 타고 흐른다.






로타리 산장에 도착한 것은 그렇게 산과 첫호흡을 맞추어 갈 때였다. 여기서 준비한 김밥 한줄을 먹어 시장기가 돌기 시작한 속을 달랬다. 나머지 한줄은 천왕봉에서 먹기 위해서다. 김밥을 먹고 있을 때 대학생 2명이 내려왔다. 역시 라면을 끓여 먹을 준비를 한다. 젓가락이 없어 산장 매점에 젓가락을 부탁하자 일회용 젓가락은 없다며 나뭇가지를 사용하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매점 더 안쪽에서 한소리 흘러나온다.


“생나뭇가지를 부러뜨리란 말이냐. 그냥 우리 젓가락 빌려드려라.”


일회용이 편리하지만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산에 온 사람의 예의다. 젓가락을 준비하지 않은 학생들의 불찰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사용하라는 직원의 말도 산장 직원으로서 적절치 못한 언행이다. 산에 왔으면 단지 발자국만 남기고 가면 된다. 되도록 아무것도 남겨서도 안 되며, 아무것도 가져가서는 안 된다.




 

6월의 여름산은 온통 녹색이다. 조그만 흙이라도 있으면 풀들이 삐쭉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빛이 잘 들지 않는 바위에는 초록의 이끼가 축축하게 묻어 있다. 온갖 들풀들과 야생화, 나무들이 한껏 초록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많은 풀들과 야생화, 나무의 이름들을 나는 잘 모른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서라는 것을 핑계로 대지만 언제 제대로 알아보려나 했을까. 다음에는 정말 식물도감이라도 하나 사서 돌아다녀야겠다.


로타리 산장 이후부터는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이다. 길이 급하게 천왕봉으로 달린다. 경사가 급하고 험해 코끝이 땅에 닿아 코재라는 이름이 붙은 노고단 고개만큼 힘들다. 게다가 날카로운 돌들이 불안하게 엉켜있다. 자칫하면 앞사람의 험한 발디딤에 뒷사람에게 날선 돌들이 굴러갈 판이다. 힘들다고 함부로 발을 디뎠다가는 자신도 위험하고 뒷사람도 위험한 구간이다. 한걸음이 조심스러운 곳이다.





 

천왕봉에 가까워지자 나무에 가려졌던 조망이 트이기 시작했다. 산 아래 마을도 구름에 덮여있고, 하늘의 해도 구름이 가리고 있다. 묘한 풍경이다. 장마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그리되니 산은 딴세상이다. 속세와 선계 사이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찾는 것일까. 세상과 떨어져서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다는 것.


그렇다 해도 이번에도 일출보기는 글렀다. 저리 구름이 위아래로 잔뜩 끼어 있으니 말이다. 애초에 덕이 없는 놈이니 어쩌겠나.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그렇게 뻔질나게 지리산을 오갔으면서 여직까지 못 봤다는 것은 내 부덕의 소치다. 그러나 좋은 것일수록 아껴두는 법, 언젠가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


* 기상(氣像) : 사람이 타고난 기개나 마음씨. 또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모양.


사람들은 백두대간의 남쪽 시작점을 이곳 지리산 천왕봉으로 잡고 있다. 물론 백두대간을 처음으로 종주한 이는 부산 금정산에서 출발했고, 어떤 이는 한라산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지리산 천왕봉을 그 시작점으로 잡은 것은 지리산이 주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마지막에 하는 일 중 하나가 이 1.5m짜리 표지석에 서서 자신의 기상을 뽐내며 사진을 찍는 일이다. 지리산이 가진 그 기개와 마음씨를 소중히 받아 안고 갔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남은 김밥 한줄을 먹었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6월 말이라지만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니 살갗에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바람을 피해 바위 뒤에서 웅크리고 앉아 김밥을 먹었다. 천왕봉에는 사람들이 한두명 밖에 없었다. 날파리들만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쓸쓸하고 어지러운 점심시간이었다.








 

천왕봉을 넘어 제석봉으로 들어서면 황량한 벌판에 듬성듬성 서 있는 고사목들을 만난다. 이영광 시인의 <고사목 지대>는 이렇게 시작한다.


죽은 나무들이 씽씽한 바람소릴 낸다

죽음이란 다시 죽지 않는 것,

서서 쓰러진 그 자리에서 새로이

수십년씩 살아가고 있었다


여기 고사목들은 억울한 죽음 때문인지 서서 죽어,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살아있는 나무들이 그들 밑에서 새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생사의 양상은 그렇게 구별되지 않았다. 고사목들은 살아있는 나무들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서서 죽어가며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고사목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나무들의 억울함을 우리는 알까. 무심히 들리는 내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섬뜩하다.



 



 

장터목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니 산장은 한산하다. 좀더 갈까? 내처 생각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첫날은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지리산을 천천히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쉬고 싶은 곳에서 쉬고, 구경할 곳에서 구경하면서 가는 거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세석과 백무동쪽에서 넘어오기 시작한다. 80%는 대학생들이다. 단체로 온 학생들도 많다. 그러고보니 지리산과 나와의 인연도 대학 1학년때다. 그때는 텐트에다가 버너도 없어 요즘 말하는 브루스타까지 챙겨왔던터라 짐이 꽤 많았다.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함께해서 즐거웠던 산행이었다. 요즘 학생들의 짐은 단출하다. 등산장비가 좋아진 점도 있지만, 단체 여행의 좋은 점은 짐을 많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행렬이 길어지고 통제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최소한 버거운 짐에 시달릴 일은 없다.


기다리면서 보니 천왕봉에서 보았던 할머니도 내려왔다. 할머니는 여느 시골할머니의 나들이 복장 같았다. 파란 꽃무늬 잠뱅이에 몸빼바지, 그리고 하얀 단화를 신고 나무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몸 어디에도 등산에 어울리는 모습은 없었다. 취사장에 들어온 할머니는 아이들 쌕같은 가방에서 양은냄비와 버너를 꺼냈다. 버너는 낡았지만 그래도 내 것과 견줄만했다(내 버너는 족히 6~7년은 된 물건이다). 그런데 양은냄비라니, 최첨단 코펠들이 여기저기서 물을 끓이고 있고, 손바닥보다 작은 최첨단 버너가 여기저기서 불을 피우고 있는데 말이다. 할머니는 버너를 킬 줄을 몰라 옆의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저씨는 흔쾌하게 불을 댕기면서 물었다.


“할머니 혼자 오셨어요?”

“예, 혼자 왔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노고단에서 여까지 왔지요.”

“사시는 곳은 어딘데요?”

“청양서 왔어요.”

“지리산에는 처음이세요?”

“네, 지리산은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번에 맘 먹고 왔지요. 하룻밤은 저기 어디냐, 백소령인가 거기서 잤지요.”

“할머니 대단하시네요.”


지리산의 매력은 이런데 있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 남녀노소가 여기에 모여든다. 할머니를 보며 튼튼한 스틱과 고가의 등산화로 무장한 내 자신이 참 초라해 보였다. 할머니의 그 순수한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장비에 의지하려던 내 부족함은 체력이 아니라 마음이었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날 할머니의 양은냄비는 나에게 잊지 못할 장면 중의 하나였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짐을 챙겨 들어갔다. 예약을 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다. 평일이라서 가능하다. 대규모 대학생 단체 등산객들이 있었지만 장터목 산장이 워낙 크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밤에 잠깐 바깥으로 나와 보았다. 역시 구름 때문에 별은 볼 수 없었다. 산장 안에서는 곳곳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내일 하산하는 사람들이다. 내일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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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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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9일, 길면 10일의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떠난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발해 전라북도 무주로 나올 예정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백두대간 코스다. 보통 남한의 백두대간 코스가 총 650km(도상)라고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지도가 24구간으로 나와있고, 그중 4개 구간을 걷는 것이니 대충 계산해 보면, 650÷24×4=108.3333...이 나온다. 100km 산악행군인 셈이다.


내가 제대한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한 적이 있다. 물론 100km의 실제 도상거리는 약 80km였다. 그렇지만 이 구간을 24시간만에 행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 8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8시에 부대 귀환이라는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행군이었다.


이번 산행은 도상 100km인 만큼 실측은 아마도 120km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간이 길다. 예상은 8박9일. 산장이 없는 구간이 많고 노숙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텐트를 가져가는 이유다. 짐을 대충 풀어놓으니 만만치 않다. 막상 배낭에 넣어보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공간이 부족하다. 결국 짐을 더 줄여야 했다. 막판에는 텐트에서 플라이마저 제거했다. 텐트에서 잘 때 비오면 대책 없다. 이런 부담 때문에 동행을 구하고자 여러 후배들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국 혼자 간다. 처음부터 혼자서 간다는 전제하에 모든 준비를 진행했지만, 부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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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동행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게바라의 친구 알베르토는 8개월간의 남미 여행을 함께했다. 동행은 갈림길에서 같이 논의하고,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축제와 기쁨을 함께 경험하고, 배고픔과 질병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여행의 소소하고 자잘한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사람도 없이 혼자서 간다.


그래, 혼자서 가라. 거기서 만나는 사람과 나무와 들꽃과 새들과 인사하자. 힘들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지나가는 바람에 의지해 휘파람을 불자. 낯선 여행객들에게 안부를 묻고, 행선지가 같으면 함께 걷자. 천천히 걸으며 발밑에 피어난 들꽃들에게 인사하고 세상에 지쳐 돌아보지 않았던 나를 위로하자. 낯선 공간에서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그것은 더 큰 내가 존재하다는 깨달음의 시작이고 자기성찰의 변곡점이다. 온갖 땅부자들이 넘쳐흐르지만, 정작 땅한평도 가지지 못한 나는 여기 지리에서 덕유까지 이 공간을 내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땅보다 더 소중한 공간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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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두려운 곳이다. 그것도 혼자서 깊고 깊은 산 속을 헤매며 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졸아든다. 지리산이야 오가는 사람이 많고, 거기서 길을 잃은 없겠지만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으로 가는 길은 생소하기도 할뿐더러 길도 쉽게 앞을 틔어주지 않을 것이다. 또 혼자 가는 길에 짐은 왜 이리도 많은지, 이제까지 산행의 경험 중에 가장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게 됐다. 배낭은 산더미 같은 무게로 어깨와 허리 무릎과 발목을 짓누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는 더 무겁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무사히 종주를 마칠 수는 있을까. 나의 귀환은 가난할까, 풍요로울까. 다시 돌아온 자리는 지금 생각하는 그 자리와 다를까, 같을까. 예수는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집을 떠났고, 부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왔다. 주몽은 부여를 떠나서 고구려를 세웠고, 온조는 고구려를 나와 백제를 세웠다. 말썽꾸러기 골칫덩어리 손오공은 1만8천리 서역길을 가면서 고귀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났고, 더불어 불경도 얻었다. 그에게 불경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여행을 통해 만난 삼장법사의 가르침과 저팔계, 사오정과의 우정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진정한 여행은 떠남-역경-만남-헤어짐-성숙-깨달음-귀환의 과정에서 수많은 세속의 잡념들과 상념들을 정화시켜준다. 벌거벗은 체 내던져진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내 여행은 무엇을 얻을까. 나는 슬기로운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병든 조선을 구하지는 못할망정 나 하나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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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떠나는 걸음이 다시 지리산으로 간 이유                              

백두대간 제3구간 종주 코스는 남원과 함양사이의 고원지대인 운봉고원을 통과한다. 여원재에서 출발, 고남산-유치재-사치재-복성이재-치재-봉화산-중치까지 갈 예정이었다. 즉 여원재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여원재에서 거꾸로 남쪽으로 달렸다.

우리가 남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출발하고 2시간 뒤에서야 알았다. 해는 이미 중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돌아갈 길을 고심했다. 결국 가던 방향을 따라 지리산으로 가기로 했고, 여원재에서 출발한 백두대간 산행이 수정봉과 노치마을, 정령치로 이어져 다시 지리산의 품속으로 기어들어간 꼴이 됐다.

언젠가 가야할 길이었다. 5월달에 가려고 했던 구간이다. 하지만 1박2일로 달리기에는 벽소령-여원재가 너무 긴 코스다. 이 기회에 정령치까지 미리 끊어 줌으로써 5월 산행의 부담을 줄였다. 또 이번에 가지 못하고 다음 달에 찾을 봉화산 코스는 진달래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음달이면 만개해 있을 테니 아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산은 정상에 오르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데 있다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 나이 30대,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갈 것이다                        

사실 준비는 아주 잘 됐다. 대장을 맡은 친구도 꼼꼼히 잘 챙겼다. 일행 모두 열정도 있고, 체력도 괜찮았다. 식량과 부식은 회사에서 집으로 오던 내가 간단히 장을 보아 마련했다. 지난번보다 알차고 풍부했다. 지도도 <백두대간24>라는 가장 최근에 나온 지도책을 구했다. 빈약하지만 나침반은 친구가 마련했다. 하룻밤 묵을 숙소도 확보했다. 고도계도 있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구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없었다.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먼저 간 이들이 남겨둔 표식만으로 찾아가기에는 우리 경험이 부족했다.






3월 9일 영등포발 진주행 9시 52분차에 몸을 실었다. 낮에 사무실에서 일하다 오느라 친구 둘은 제대로 저녁식사도 못 챙겼단다. 준비해간 빵으로 대충 끼니를 채우고 맥주 한잔씩 마시고 잠을 청했다. 밤기차의 흔들거림에 몸을 실으니 잠도 쉽게 찾아들었다.

하지만 피곤을 싣고 달리는 거다.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주말에 이렇게 산행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어려움들은 어쩔 수 없다. 한창 사회에서 일할 30대의 나이다. 여유롭게 산행 준비하고 느긋하게 집을 나오기가 쉽지 않은 세대다. 하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추억거리 하나 만들어 보자는 일념, 그리고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등을 떠민다. 어려움은 타고 넘어야 한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남원역 대합실


기차 안에서 설핏 잠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원 도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친구들을 부랴부랴 깨워야 했을 만큼 나도 친구들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남원역에 내린 시간은 새벽 2시경.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남원역은 시내에서도 한참 동떨어져 있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잠에서 덜 깨 몽롱한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자니 그 시간도 속절없다.

결국 택시를 타고 남원 시내까지 나왔다. 아저씨에게 버스터미널 근처 PC방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하면서 한마디 물어보았다.

“아저씨 백두대간 가는 사람들 요즘도 많아요?”
“요새는 좀 뜸하제요. 그라도 꾸준히 오갑니다.”


24시간 해장국집의 풍경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PC방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PC방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맸다. 조용한 지방 도시를 새벽에 거니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무도 없는 빈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만큼 고즈넉했다. 고만고만한 2~3층 높이의 건물들이 꼬깃꼬깃 접힌 것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담하다.

PC방을 찾아 정보를 더 구하고 거기서 잠시 눈을 붙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장을 맡은 기석이는 밤새 이번 구간에 대한 웹 정보를 검색하고 꼼꼼히 읽어갔다. 옆에서 보면서 간간히 쳐다 보았지만 이내 무거운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대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PC방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 건 새벽 5시경. 근처 24시간 하는 밥집이 딱 2군데 있었다. 흔한 김밥집과 해장국집, 우리는 해장국집을 선택했다. 든든히 잘 먹고 가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새벽의 해장국집에는 반드시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취한 사람들의 구불텅한 말투는 힘든 고갯마루를 오르는 것처럼 알아듣기 힘들다. 술취한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이어갔고, 상대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삼켜준다. 식어가는 해장국에는 멀건 기름때만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소주잔은 바닥이 보일 틈이 없었고, 김치는 그 자리에서 내내 젓가락을 기다리며 쉰내를 풍겼을 텐데 말이다.

삶의 고단함을 등산에 비유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그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 산행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해 줄까. 나는 이 고약한 마약에 취해 오늘도 짐보따리를 이고 산행을 나섰다. 무엇을 잊기 위함이고 어떤 것을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문득 <낮은 산이 낫다>라며 지리산 산줄기 밑의 한 야산에서 살고 있다는 남난희 선생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새벽길을 알려준 운성대장군                                                 

새벽 6시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는 첫차를 탔다. 새벽 첫차를 타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첫차를 몰고 나오는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새벽 첫차를 타고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보며 배운다.

남원에서 여원재까지는 대략 20분~30분이면 간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고개 7선(選)에도 뽑힌 여원재(女怨峙). 북쪽에서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남원시를 뒤로 하고 고갯길을 올라서면 운봉 고원지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지리산 서부 산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데 동남쪽으로 세걸산과 바래봉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황산이 자리잡고 있다. 유명한 흥부마을도 여기에 있다. 여원재라는 말을 풀어보면 여인의 원한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라 좀 무섭게 느껴진다. 익히 알려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

왜구침입으로 나라 곳곳이 몸살을 앓던 고려 말, 왜구들은 이 깊은 내륙까지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왜구들이 쳐들어와 이곳의 주모를 희롱하자 이 여인은 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자르고 자결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내려온 이성계는 어느날 꿈속에서 노파가 나타나 전투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고, 그대로 실행하여 대승을 거뒀다고 한다. 훗날 이성계가 알아보니 그 노파는 바로 자결한 주모였다. 이성계는 이 주모를 기려 사당을 짓고 ‘여원’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후로 이곳은 여원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나라가 위태롭고 정의가 사라진 곳에 약자들이 설 곳이 어디였을까. 중한 목숨마저 끊어내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여인의 정절이었을까, 자존심이었을까. 어쩌면 남자들에게 유린당하고 노리개감이 되어야 했던 그릇된 시대의 아픔을 원망했던 것은 아닐까.

여원재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등반 준비를 했다. 랜턴을 준비하고 스틱을 꺼내고 신발끈을 다시 묶는 일이다. 언제나 이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밤새 내려온 피곤함도 싹 가실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 출발점에서 길을 정반대로 잡았다.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남쪽을 잡게 된 것은 바로 ‘운성대장군’ 석상 때문이다.







산행 안내를 맡은 기석은 운성대장군 쪽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쪽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고남산 방면으로 가고자 한다면 운성대장군의 건너편 쪽으로 가야 했다.

그야말로 깜깜한 밤이었다. 자신있게 운성대장군쪽으로 길을 갔던 기석이도 우리도 초반에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지도를 보며 어림짐작으로 길을 가늠해 보지만 어스름한 새벽 여명 빛으로는 제대로 찾아낼 수 없었다.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거기가 거기 같은가 하면 또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색색의 리본이 백두대간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사실 리본이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리본이 반드시 있어야 할 만한 곳이 있다.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나 길이 여러 갈래인 곳에서 발견하는 리본은 참으로 반갑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리본을 묶어 놓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특히 자신의 산악회를 자랑하거나 알리려는 목적으로 달아놓은 리본들은 더더욱 그렇다. 지리산을 처음 찾아 갔던 1991년에도 지리산에서 리본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따로 표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길에서 먼저 길을 찾아간 이들이 후세에 오는 이들을 위해 안내표시를 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위적인 표시는 그만 했으면 한다. 한해 2만여명이 백두대간을 다닌다고 하니 조만간 백두대간 길이 환히 열리지 않겠는가.







7시가 넘어가자 멀리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해가 반갑다. 그런데 이상하다. 해가 뜨는 곳이 내 왼쪽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면 해는 내 오른쪽에서 떠올라야 맞다. 그런데 왼쪽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조금더 가다보니 해가 뜨던 왼편으로 큰 저수지가 보였다. 지도상에서는 큰 저수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지도를 펼쳐들고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이 가르치는 북쪽으로 지도를 놓고 보니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우리 길 잘못 든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 나침반이 잘못된 거 아닐까?”
“하기는 일전에 내 나침반도 완전히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야.”
“다음에는 내가 꼭 제대로 된 나침반을 사올게.”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걸. 해가 지금 우리 왼쪽에서 뜨고 있잖아. 해가 북쪽으로 간다면 지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야. 우리 길에서는 해가 오른쪽에 있어야 해.”
“…”

하지만 이때까지 우리는 단 하나의 이정표도 보지 못했다. 도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이정표를 하나도 보지 못해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정표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원재를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올라가는 봉우리 끝이 둘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북쪽의 ‘고남산’, 하나는 남쪽의 ‘수정봉’.





사실 대장만의 잘못도 아니다.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가 친구만을 탓할 수는 없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조금만 가면 마을이 있으니 이럴 때 좋은 경험을 한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이번 산행은 두고두고 재미있게 얘기될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남행을 택했다. 그리고 수정봉에서 노치마을로 하산을 시작했다. 한시간 가량 내려가니 노치마을의 유명한 노송들이 보인다.


감미로운 봄햇살과 할머니의 꼬임에 넘어가 마신 막걸리                            








노치마을 노송은 이 마을의 자랑이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일조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여원재를 중심으로 하는 이 구간은 백두대간의 고원지대로 운봉고원으로 불리운다. 제법 높은 곳에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예부터 질좋고 영험하다는 소나무를 이용해 제기와 목기를 깎는 나무쟁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노치마을의 노치샘에 들어섰을 때 지팡일 짚고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관심을 보였다.

“산에서 오는개벼?”
“아, 네.”
“구람, 여그서 막걸리 한잔 마시구 가. 나두 한잔 주구.”
“아 여기 막걸리 파나요?”

그리고 고개를 들려보니 구판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찾아서 막걸리를 주문했다.



 


햇살 때문이다. 한 병만 마시고 가기로 한 것이 어느새 두병이 되고 세병이 됐다. 막걸리 한 병이 밥사발로 세잔이 나왔으니 셋이서 한 병씩 마신 셈이다. 우리보고 막걸리 마시고 가라던 할머니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한잔 드리고 이야기나 들어보려 했는데, 사라지셨다. 우리가 세 병째 비워갈 즈음에 나타나셨는데, 한잔을 권하니 “나 원래 술 안 마셔.”라며 극구 사양하신다.

그런데 왜 아까는 술 한 잔 사달라고 하셨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햇살만이 아니라 꼬부랑 할머니의 꼬임에도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1500원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지니, 감사할 일이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정령치로 향했다. 노치마을에서 정령치까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가는 길이다. 정령치 꼭대기까지 가는 게 아니라 지리산 입구 바로 앞까지만 가는거라 더 이상의 오르막길도 산길도 없다.





그래도 이 길은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을 떠나는 발걸음이 우여곡절 끝에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4월달에 이번에 타지 못한 길을 가게 될 예정이다. 5월에는 다시 지리산 구간으로 돌아온다. 대장을 다시 내가 맡을 것이다. 참으로 질기고 질긴 지리산과의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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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백두대간!                                                                

지리산은 쉽게 오르는 산이 아니었다. 지난여름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두 번 모두 비를 흠씬 두들겨 맞고 물러서야 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산행에서는 통제마저 뚫고 장터목까지 갔지만 결국 산장지기(장터목 관리소장)에게 한소리 듣고 물러서야 했다. 오기를 부려도 안된다. 날씨를 원망할지, 지리산을 원망할지, 아니면 내 운을 원망할지 원망할 대상마저 간단치 않다.

시간이 지나 올 1월초에 다시 지리산 등반을 도모했다. 이번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가로막았다. 출발 하루전 한반도 일대에 뿌려진 폭설이 원인이었다. 지리산은 깊고 큰 산이라 조금만 눈비가 내려도 입산통제가 내려진다. 결국 지리산을 포기한 그날 태백산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안에 지리산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속상함 반 원망 반을 섞어서.







1월말부터 백두대간을 계획했다. 오랫동안 가졌던 꿈을 다시한번 실현시켜보고 싶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음먹으면서 그 시작점을 진부령으로 잡았다. 지리산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아래에서 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 때문에 그냥 지리산부터 가는 것으로 잡았다. 그렇게 계획하지 않은 지리산행이 결정됐다. 이번에는 지리산이 목적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목적이었다. 선언이 무색하게도 한달만에 지리산을 다시 찾게 됐다.

백두대간을 계획한 사람은 나와 친구 둘.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여성 한명이 더 참가했다. 산행은 3~4명이 최적이다. 택시를 타도 4명은 한차이며, 2인 1조로 움직이기도 좋고, 버스를 타도 2명씩 앉으면 안성맞춤이다.

백두대간의 첫 산행지는 천왕봉. 원래는 산신제도 지내려고 했다. 한달에 1회 이상 간다고 해도 2년여를 꾸준히 다녀야 완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결의를 모으고 다짐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부족으로 인해 산신제를 지낼 수는 없었다. 대신 노고단을 기약했다.

2007년 2월 23일 밤 12시 동서울터미널. 대부분의 차들은 거의 다 떠났다. 아마도 지리산 가는 밤 12시차가 막차인가 보다.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저마다 삶의 봇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으로, 마을로 가려고 한다. 함양을 거쳐 가는 백무동행 버스에는 등산객 반, 일반승객 반 정도가 앉아있다. 자리는 거의 꽉 찼다.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았다. 전날에도 상가집을 다녀오느라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고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선잠만 설핏 오갈 뿐이다. 뒤척이다 보니 3시간이 금방 지났고 백무동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밤을 새고 가려니 잠 오는 게 걱정이다.






어느 하늘의 별들이 저리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백무동 주차장에 내린 시간이 새벽 3시 15분. 버스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한기가 덮쳤다. 추위의 기습에 몸서리가 났다. 걷다보면 더워지는 게 등산이다. 춥다면 걸어야지. 등산화를 단단히 메고 스틱을 꺼내고, 랜턴을 점검하며 등산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어느 하늘 아래서 저리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까.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등산팀 중 한팀이 일찌감치 떠났다. 다른 팀은 아직 떠날 생각이 없는 듯 주차장에 머물러있다.

새벽길을 걷는 것은 침묵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단지 우리 네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서늘하게 밤공기를 갈랐다. 한참을 오르다가 돌아서서 떠나온 마을을 보았다. 잠든 마을은 고요하고 간간히 일찍 깬 불빛만 졸린 눈을 비비는 듯 깜빡거린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내 입김이 구름처럼 떠올라 별빛들을 흩뜨린다. 마른 가지들 틈으로 반짝이는 맑은 별들이 반갑다.

백무동에서 3시 40분경에 출발해 참샘에 도착하니 5시 10분. 참샘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커피를 마시기로 했는데, 한기가 장난이 아니다. 물 끓이는 반시간도 안되는 시간이 한나절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출발했다.

소지봉을 지나니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살짝 깃들기 시작했다. 시간상 무리해 달린다고 해도 일출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별이 총총 떠 있는 밤하늘을 보니 일출 구경이 아쉽기만 하다.











제석봉, 용서와 참회에서 평화와 안녕으로                                   


 

▲ 장터목 산장


장터목에 오른 시간이 7시 10분경.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햇반은 뜨거운 물에 최소한 15분정도 끓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까칠해서 먹기가 괴롭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급하게 햇반을 꺼내 먹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배가 고팠다지만 정말 먹기가 곤혹스러웠다.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해법은 라면에 햇반을 다 넣어서 끓여 먹는 것. 친구는 ‘개죽’이라고 했지만 정말 먹을 만했다. 일단 뜨거운 밥알이 부드럽게 넘어가니 속에서 편하다. 맛이야 나아질 것이 없지만, 그래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쉬우니 다들 수월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천왕봉으로 길을 나섰다. 천왕봉에서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올 계획이라 배낭은 모두 장터목 산장에 놓고 다녀왔다.


 


장터목을 떠나 제석봉을 올랐다. 여전히 황량한 봉우리는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다. 용서와 속죄의 시간은 참으로 길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날이 언제쯤일까. 1991년부터 각인된 이곳에 대한 내 기억은 여전히 멈추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무자비한 침탈에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보인다. 빈자리에서 조금씩 솟아나는 생명들을 보면서 제석봉이 다시 많은 나무와 풀들로 뒤덮이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쯤이면 이 황량한 봉우리의 모습은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용서와 참회의 기억도 사라지겠지. 그 자리에는 질서와 평화가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제석봉의 풍경들



천왕봉, 이제 백두대간의 시작이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들어서니 바위틈 사잇길이 얼음으로 꽁꽁 얼어있다. 아이젠을 끼고 있지만 그래도 쉽지 않다. 통천문, 하늘로 통하는 문. 좁은 틈사이로 올라서면 곧 하늘이 나를 반기는 곳. 얼마 만에 오르는 것일까. 지난여름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장터목까지 왔지만 끝내 돌아서야만 했던 그곳이 이제 눈앞에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곳인가. 많이 다녀보았으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천왕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구름도 저 멀리 물러나 쉬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시작점. 민족의 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나는 서 있다. 이렇게 맑고 고운 겨울을 보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1991년과 1997년 가을 이후로 천왕봉의 맑은 하늘을 보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천왕봉에서 새롭게 백두대간의 성공을 기원하는 한편, 끝까지 완주해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 천왕봉에서 일행들과 함께

 

장터목으로 돌아가는 길, 제석봉을 지나가는 길은 아무리 지나다녀도 말이 없게 만드는 길이다. 천왕봉을 오를 때도 이 제석봉을 지나면서 겸허해지지만, 하산길도 산에 대한 경외감이 나를 휘감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까지는 장터목에서 두시간 내외의 길. 천왕봉까지 가볍게 오른 일행들을 괴롭히는 것은 졸음이다. 나역시 밤을 거의 꼬박 세우고 내려온 거라 걸어가면서도 졸립다. 촛대봉에 오르고 세석 산장이 보일 즈음에는 그저 잠시라도 눈을 붙였으면 하는 바람만 간절했다. 지리산에 오면 항상 밤차로 오다보니 익숙하지만 역시 피곤한 일이다.






세석에 도착하니 4시 정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쉬자는 의견이 대세다. 저녁은 화려한 만찬이다. 먹을 것들은 죄다 꺼내놓고 준비해간 삼겹살과 목살을 굽기 시작했다. 2근 1200g이다. 겨울이라서 냉장은 걱정없었다. 지난 여름에도 삼겹살을 산중에서 구워먹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이번에도 준비한 것이다. 만만치 않은 양인데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위가 닥쳐왔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다고 여겼는데, 겨울 동장군이 이 산속에 들어와 숨어있었나보다. 일행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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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겨울산을 만나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자던 생각이 그만 6시까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산에서는 모두 부지런해 어떤 이는 새벽 3시부터 부스럭거리며 산행을 준비한다. 새벽 일출을 보려는 사람도 있고, 갈 길이 멀어 일찍 떠나는 이들도 있다. 난 피곤했는지 중간에 깨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밤새 눈이 왔었다. 세석산장 주변은 온통 눈천지다. 눈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고, 길은 이미 눈으로 덮이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김치찌개. 있는 김치를 다 넣고 요리하는데, 맛이 영 나지 않았다. 함께 간 사람 중에 요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산 중이니 이렇다 할 양념이나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저 있는 김치와 참치로 찌개를 만들었다. 어제의 만찬이 간절히 그리워졌다. 김치찌개는 그저 그랬고 밥알은 까칠했다. 결국 다시 국에 밥을 말아 먹기로 했다. 역시 부드럽고 뜨거운 것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시간이다. 산에서는 세재를 쓰지 않기로 한데다가 겨울이니 음식 닦아내는 게 문제다. 하지만 아주 간단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 물론 산에서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게 제1원칙. 그 뒤에 남은 요리의 흔적은 눈을 긁어다가 넣고 밥을 비비듯이 쓱쓱 문지르면 눈이 살짝 얼어 알갱이가 되면서 찌꺼기들을 깨끗이 빨아들인다. 거기에 마시던 커피를 조금 남겨서 넣고 휴지로 골고루 닦아주면 음식냄새마저 사라진다. 이는 라면이나 찌개를 해 먹은 뒤 설거지 할 때 매우 유용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길과 눈꽃, 그리고 눈축제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아침먹고 짐을 꾸려서 세석산장을 나간 시간은 7시 반. 벽소령까지 길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다시 그곳에서 작전도로를 타고 음정마을까지 3시간반 정도. 점심 시간까지 대략 8시간 반 정도 예상하고 출발했다.

어제는 맑고 화창한 겨울날씨, 오늘은 눈내리는 겨울날씨다. 지리산이 겨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친절한 지리산은 정말 오랜만이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느낌도 좋다. 새도 눈길을 총총 밟고 갔나보다. 꿩일까?






8시경에 영신봉을 지나면 수많은 나무계단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벽소령에서 세석을 갈 때면 여기가 가장 힘들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이다. 반대로 세석에서 벽소령으로 갈 경우 계속 내리막길이니 그다지 부담이 없다. 경치를 감상하면서 갈 수 있으니 즐겁다. 칠선봉에 도착한 시간은 영신봉을 떠난 후 약 한시간 뒤인 8시 50분.

칠선봉은 주위의 바위들을 유심히 보는 재미가 있다. 예전부터 산에 있는 바위에 살아 있는 생명의 모습을 찾아내어 이름을 붙인 건 바위의 영험에 기댄 토템신앙의 발현일 것이다. 칠선봉 주위의 바위에서 인간의 형상을 찾아내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칠선봉을 지나 약 40분 쯤 더 가니 선비샘이 나온다. 날씨는 분명 영하로 내려간 날씨인데도 샘은 얼지 않았다. 물의 양도 풍부하다. 여름날에 비해 적긴 하지만 겨울철의 샘치고는 부족함이 없다. 맑은 선비샘의 차가운 물을 마시니 속 깊숙한 곳까지 겨울의 냉기가 싸하게 내려간다.

선비샘에서 약 30여분 가면 구벽소령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벽소령길이 시작되는 데 1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벽소령길은 편안하게 산책하듯이 갈 수 있다. 오솔길을 걷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다-벽소령                                              

벽소령은 오른편으로 기암괴석들이 깎아지르듯 서있다. 왼편으로는 계곡쪽을 향해 가파른 낭떠러지다. 길이 넓으니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다보면 “낙석주의” 표지판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왼편으로도 안전줄이 계속 쳐져 있다. 그만큼 위험을 내재한 곳이다.


 


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경. 눈발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쪽에서는 눈이 빠르게 녹았다. 특히 벽소령 산장의 지붕에서는 눈이 녹아 내리며 처마끝에서는 물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일행은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와 라면, 캠핑가스가 부족해 이곳에서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 지리산의 산장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산밑에서 사는 것보다 약간의 웃돈을 더 내야하지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산장에서 먹을 것을 구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산장도 미쳐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물건이 품절될 수 있으니 산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건 비상시나 반드시 필요할 때만 하는 게 좋다.






가을과 겨울이 겹치고 있는 길, 작전도로                                      





 

벽소령에서 하산길은 음정마을로 잡았다. 음정마을로 출발한 시간은 12시 20분. 작전도로길은 초반 100m정도만 가파를 뿐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이 옛군사도로다. 평탄한 길로 6.4km정도인데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산책길이라고 보면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산에 온 것이 아니라 멋진 옛길을 걷는 것 같다.

벽소령을 내려가니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녹았고, 그늘진 곳은 눈이 많이 쌓여있다. 눈이 쌓인 곳도 이미 속은 얼어 있어 올라가도 많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지바른 곳은 마치 가을길처럼 낙엽 썩는 냄새마저 났다.

이곳 벽소령 작전도로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운치있는 길이다. 하산길에 일행은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겠지만 이 길은 원래 등산객들이 잘 타지 않는 길이다. 그러다보니 더 고즈넉하고 운치있다. 또 지리산 능선을 타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더 이상 등반이 어려울 경우 탈만한 하산길이다.





 

즐겁게 눈싸움도 하고 떠나온 지리산 봉우리들을 뒤돌아보면서 내려가니 어느새 음정마을이다. 음정마을은 조그마한 마을이다. 음정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2시 반 정도. 하산길이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음정마을을 벗어나면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함양 가는 버스의 시간 간격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산골짝까지 오는 버스가 많지는 않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 때마침 버스가 왔으니 우리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버스는 조금 더 올라간 양정마을이 기점이었다. 양정마을에서 10분 정도 쉰 버스는 오후 2시 35분경

출발해 음정마을을 거쳐 함양으로 달렸다. 함양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 30분, 함양까지는 약 한시간 거리인 셈이다. 함양발 서울행 버스는 이미 군내버스 기사님이 전화예매를 해주셨다. 우리가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난 것이다. 만일 아저씨가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오후 5시에나 있을 서울행 버스를 타야 했을 것이다. 함양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3시간 40분만인 7시 10분에 서울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여유있게 즐긴 산행이었는데도 서울에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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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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