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서 자전거 200리길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길은 항상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새롭게 길이 나면 그곳에서 제를 올렸다. 길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이면서 낯선 것들이 공동체로 들어오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것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공동체는 밖으로 번창하라는 의미를 제에 담았다.

중앙선의 복선화로 새롭게 자전거길이 뚫렸다. 사실 길이 "새로" 뚫렸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미 있던 길을 자전거 길로 바꾸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철도 중앙선의 역사는 멀리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만주 침략과 한반도 수탈의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중앙선을 건설했다. 1936년 일제가 밝힌 건설 목적에서는 “반도 제2의 종관선을 형성함으로써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경기도 등 4도에 걸치는 오지 연선 일대의 풍부한 광산·농산 및 임산자원의 개발을 돕고, 지방산업의 발달을 촉진하는 동시에 격증하는 일본(日)·조선(鮮)·만주(滿)의 교통 연락, 객·화의 수송 완화를 도모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각주:1]  철마가 달리던 길을 이제는 두 바퀴를 굴리며 달리는 자전거들의 질주로 채웠다. 억압과 착취의 도구였던 길이 놀이와 낭만의 길로 바뀐 것이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였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아마 이런 때에 쓰는 말일 것이다.

용산역에서 6시 45분 용문행 전동차. 맨 앞칸과 뒤칸에는 자전거를 싣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앞칸에만 해도 20여 대의 자전거로 채워졌다. 거기에 레저용 자전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짐받이에 마른 풀더미가 있었는데, 할아버지 말로는 약재에 쓰이는 거라서 돈을 많이 받는단다. 지금도 자전거를 싣고 밭에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 노인 외에도 밭에 나가신다는 중년의 아저씨와 또 다른 노인도 생활 자전거를 전동차에 실었다. 일요일이라 놀러 가는 자전거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분들의 자전거는 화려한 자전거들 틈에서도 유난히 돋보였다.

용산에서 출발해 약 1시간 반 만에 양평에 도착했다. 양평역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길을 바로 찾기는 어려웠다. 편의점에 들어가 물어서 겨우 자전거길에 올라갔다. 길은 아주 잘 닦여 있었다. 아스팔트를 덮은 철도 길은 부드러운 페달의 느낌을 다리에 전해주었다. 이제는 기차가 지나지 않아 버려질 뻔했던 능내역은 자전거들의 휴식 공간으로 변했다. 젊은 시절 모꼬지 장소로 대성리 다음으로 자주 찾았던 능내역이 이렇게 변하니 기분이 묘했다. 철도의 레일도 철길을 덮었던 자갈들도 저마다의 독특한 운치를 주었다. 산을 뚫어 만든 9개의 터널도 자전거길의 하나다. 교각은 반반한 나무판자를 깔아놓았다. 판자 위를 달리는 자전거로 달그락거리는 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 모든 것들이 한강 자전거 길에서 만날 수 없는 양평 자전거길의 재미다.

반면 급커브길이 많고 언덕길도 많았다. 자전거 초급자나 아동들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터널 안도 생각보다 어둡다.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자전거 길 관리가 제대로 이어질지도 걱정이다. 사람이 오가는 자리는 아무리 조심스러워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관리가 부실하면 금방 망가지기 쉽다. 게다가 자전거 도로는 지역 지자체가 직접 관리할 텐데, 안양천만 해도 동네마다 지자체 사정에 따라 길의 상태가 다르다. 양평이나 남양주의 재정 상태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전거 도로 관리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하루 전 팔당댐 인근 양서문화체육공원에서 '남한강 자전거길 길트임 기념식'이 있었다. 여기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4대강(사업)은 강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해서 하는 것"이라며 "소수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국민들은 절대 환영"이라고 언급했다.

4대강 사업은 크게 보 사업과 준설 사업, 그리고 강변 주변 사업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자전거 길도 크게 보면 4대강 사업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양주길 구간은 예전 폐철도를 이용해 마련한 자전거 도로다. 따라서 이 구간은 4대강 사업과 관련성이 없다. 물론 이 길이 나중에 강을 따라 연결되는 전국 자전거 도로망에 포함되므로 그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4대강 사업을 억지로 녹색 사업으로 포장하기 위한 꼼수다. 많은 자전거 전문가들이 레저로서의 자전거 문화보다 교통수단으로서 도심내 자전거 도로 확보가 더 시급한 녹색 사업임을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으로 쫓겨난 농민만 2만 4천여 농가에 이른다. 남양주길 한가운데에 있는 두물머리에서는 현장 농민들이 지금도 계속 저항하고 있다. 이곳의 사업 공정률은 0%라고 한다. [각주:2] 이명박 대통령은 항상 그래왔듯이 이곳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농민들과 인권환경단체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프레드 피어스의 '강의 죽음'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수문학자와 공학자들은 강과 관련된 수많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결론 내렸다. 흐르는 강물의 위력과 콘크리트가 정면으로 대치하면 언제나 콘크리트가 패배한다. 한 곳에서 홍수를 막으면, 다른 곳에서 더 자주 홍수가 일어난다. 공학자들이 강을 다스리려는 시도는 자연과 함께할 때, 자연의 요구에 순응할 때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각주:3]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올여름 많은 비 때문에 한강과 그 지천들, 지방의 많은 하천의 둔치에 만들었던 수많은 구조물과 자전거 도로들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본다면 지금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 얼마나 허울 좋은 껍데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뚫린 자전거길은 무척 반갑다. 하지만 또한 슬프다. 반갑게 맞아들이고 즐겁게 달려야 할 그 길에 묻어 있는 이 수많은 이야기와 애환들을 언제쯤 세상에서 알아줄까.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길은 길이다. 길을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도 들어오지만, 전염병과 전쟁, 폭력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놓고 달리는 이 자전거 길이 언제나 평화와 행복을 전해주기를 바라면서도 또 다른 욕심과 욕망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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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이버 지식사전 "중앙선"에서(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1346) [본문으로]
  2. 인권오름-4대강 사업 공정률 0%, 팔당 두물머리를 지키자 [본문으로]
  3. 이정환닷컴-"4대강,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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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주중 방문자 수는 170명 내외. 주말에는 방문자수가 급감하는 경향인 내 블로그가 지난 일요일 방문자수 187명이라는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하더니 어제는 또 293명이나 내 블로그를 방문했다. 갑작스럽게 방문자수가 늘어난 원인을 찾기 위해 유입 URL를 보는데, 딱히 유입되는 곳이 일정치 않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검색을 통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여느 때와 다른 점은 ‘자전거 여행’이라는 검색 키워드가 유별나게 많다는 점이다.


추측컨대 아마도 지난 일요일 강호동의 1박2일이 옥천 자전거 여행을 다룬 것 때문일 것이다. 내 블로그가 자전거 여행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있는 만큼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전거 여행 이야기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을 검색한 것으로 보인다.


TV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TV예능 프로그램의 하나인 강호동의 1박 2일에 소개되는 여행지는 곧바로 포털 검색 순위에 오르며 한동안 여행객들이 몰려들어 홍역을 앓을 정도라고 하니, ‘자전거 여행’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는 내 블로그 역시 그 여파를 받은 셈이다.


그렇지만 자전거 여행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수많은 도전에 온몸으로 맞서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여행에 가깝다. 만일 1박2일의 김종민이 실제로 하루 70km를 주행해야 한다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도로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나면 시간당 15km의 주행 속도로 8시간 주행의 원칙을 잘 준수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지 않고 무리한 계획을 세운다면 반드시 낭패를 보고 말 것이다.




실제로 자전거 여행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며 안전대책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기본적인 도로교통법은 숙지하고, 다리 위나 터널 등 위험한 코스에 대해서는 대책을 우회로나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더군다나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라면 여행 짐 꾸리는 것부터가 큰 일이다. 무엇보다 자전거여행 경험자들이나 자전거 여행 서적을 통해 다양한 정보들을 사전에 접해 두는 게 좋다.


아래는 내 블로그에 올려진 다양한 자전거 여행 팁과 관련된 정보들이다. 이 밖에도 틈틈이 올린 글들이 꽤 되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정리해 보았다.


가볼만한 자전거 여행 코스

  도로교통법과 자전거

도로 주행 요령

우리나라 국도 정보 1

우리나라 국도 정보 2

여행의 실질적인 준비

마음가짐 되새기기

자전거를 대중교통에 싣기

우천에 대한 대비

자전거 여행 중 당할 수 있는 부상1

자전거 여행 중 당할 수 있는 부상2


이밖에 자전거 전국 일주의 경험담이 내 블로그에는 담겨 있다. 일부 정보는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자전거 전국 일주는 사실 무모하게 출발한 여행을 자랑하는 것 같아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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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리까지 한강변을 달리다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그래도 삶을 살아갈 또 하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사는 건 이렇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에서
강해지는 것이겠다.



도상 거리로는 47.3km가 나오지만 아마도 족히 50km는 달렸을 것이다. 지난 금요일 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열리는 회사 체육대회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참석했다. 그러니까 구로구 개봉동에서 미사리 조정경기장(행정구역상 경기도 하남시)까지 자전거로 간 것이다. 새벽밥을 챙겨 먹고 5시 30분에 출발해 약 2시간30분이 걸려 8시 경에 대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포대교



전날 밤까지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12시가 넘어서 잤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4시 반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밥도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5시 반에 집을 나섰지만 이미 주위는 아침 해의 기운이 뒤덮고 있었다.

장거리 자전거 주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물론 틈틈이 자전거 출퇴근을 통해 체력을 단련해 왔지만 실상 50km에 가까운 거리를, 그것도 주어진 시간 안에 가야 하는 일은 나에게 있어 대단한 도전이다. 바로 그 전날 저녁까지도 그냥 가야할지 자전거로 가야할지 한참이나 망설였으니 말이다.

비교신학자 조셉 캠벨은 모든 사람에게는 '성소(聖所)', 즉 자기 자신만의 성스러운 공간이 있다고 했다. 나에게도 나만의 성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한강 길에 있다. 이른 아침 뻥뚫린 한강변길을 달리며 느끼는 질주의 느낌은 남다르다.

이 한강변에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나만의 공상에 빠져든다. 나를 잊고 나를 찾는 신기한 경험이 여기서 빚어진다. 환기와 정화와 순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환기-귓볼에서 휘감고 나아가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것. 정화-몸안의 독소들을 길 위와 한강에 던지버리며 달리는 것. 순화-날카로워진 속살과 속마음들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












미사리 조정


참 시시한 도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달리는 법을 잃어버리는 치타는 굶어죽는 법이다. 치타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뛰지만 자기안의 본능을 깨우는 질주의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달린다. 속도는 자본주의만의 욕망이 아니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길을 만들었고, 그 길 위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오늘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올해 목표로 한 3000km 달리기는 아마도 어려울 듯싶다. 그렇지만 나는 궁금하다, 내가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지. 그 끝이 어디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달리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시끌벅적한 체육대회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육대회를 꽤 격하게 치루었으며, 그 결과 얻은 영광의 상처들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동료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집 근처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도 삶을 살아갈 또 하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좀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진다. 사는 건 이렇게 한걸음 더 내디딜 수 있다는 믿음에서 강해지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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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와 지방도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데는 일반국도가 확실히 좋다. 하지만 길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적다. 그러나 지방도는 좀 돌아가는 길이고 갓길도 작지만, 보고 느낄 수 있는게 많다. 오늘도 잠깐 지방도를 타다가 늦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와 만날 수 있었다.

부여를 나와 공주로 가는 길은 예상대로 언덕들이 무수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다지 힘든 언덕은 아니었지만, 아침부터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니 덜컥 겁이 났다. 일찍 출발한다고 아침도 빵과 우유로 대신했다. 배고픔은 없지만, 몸이 어떨지 걱정됐다.


공산성




부여도 그랬지만, 공주는 더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도시도 부여보다 깔끔하고, 도시 중앙에 있는 공산성은 높지도 않으면서 고풍스런 멋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다면 함께 공주를 찾아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런 공주를 그냥 자전거로 지나쳐야 하니 좀 아쉽다.

공주를 지나 한참 가다 보니 오르막이 시작됐다. 차령터널로 가는 길이다. 터널 앞에서 옆 구길을 타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전에 이미 오르막길이 시작된 거라 그런지 차령고개는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차령고개 정상에는 휴게소로 지어진 건물이 버려져 있었다. 황량한 가을 바람과 낙엽들, 그리고 버려진 건물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차령고개를 오르면서도, 그리고 내려가면서도 차 한대를 만나지 않았다. 터널이 생긴 이후 아무도 이 길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길도 버려진다. 길을 통해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고, 길을 통해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데, 막상 버려진 길에는 무엇이 남을까. 가끔 나처럼 찾는 이가 있겠지만, 버려진 건물과 황량한 길의 풍경은 가을의 쓸쓸함을 더욱 깊게 한다.


차령고개 정상에서




차령고개를 넘고 한산한 길을 가다가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만났다. 외진 길의 왼편으로 산의 언덕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불자 나무에 남은 나뭇잎과 땅에 떨어져 있던 낙엽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생명을 다하고 썩어 다시 나무에게로 돌아갈 나뭇잎들의 마지막 향연이었을까. 하늘을 떠다니는 나뭇잎들은 새떼들의 군무처럼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다녔다. 카메라로 찍으려 했지만, 그 찰나는 오래되지 않고 낙엽비가 되어 도로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실상 카메라로 찍어보았자 나뭇잎들이 추는 춤이 제대로 표현될 리는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었다.

천안에 들어간 시간은 2시 경. 80km를 달려왔지만, 어쩐지 더 힘이 났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택까지 20km가 좀 넘는다. 내처 달릴까 고민했다.


'평택까지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평야지대이니 어려운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오늘 달린 거리도 평소보다 많다. 무리해서는 안된다.'

'토요일까지 서울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오만가지 계산이 재빨리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평택까지 가기로 했다. 평택은 경기도, 서울이 코앞이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기운이 더욱 난다. 예상대로 평야지대다 보니 힘든 언덕도 없다. 그러나 서울로 가까워질수록 차량이 부쩍 많아졌다. 예전 서울에서 양평으로 갈 때처럼 많은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옆을 스쳐지나갔다. 갓길의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지만 긴장되지 않을 수 없다. 긴장을 하니 무릎은 신경이 가지 않고 손목이 아프다. 핸들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평택에 들어간 시간은 예상대로 4시. 평택시청에 들어가 평택의 관광지도를 얻었다. 송탄까지 멀지 않아보였다. 오늘 묵을 곳을 찾다가 송탄으로 잡았다. 관광지도는 송탄역이 가깝게 나타나 있었는데 이런, 송탄역에 도착하니 거의 6시가 됐다. 관광지도도 믿을 게 못 되지만, 길을 잘못 알려준 주유소 아저씨 때문에 너무 힘들게 찾아갔다.

부여에서 송탄까지, 생각해보면 자전거 여행 중 가장 먼 거리를 달린 듯하다(약 130km 이상). 아쉬운 점은 충청북도를 밟지 못했다는 거다. 그래도 이제 경기도다. 조금만 힘을 내자. 이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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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하구둑


 

어느덧 충청북도까지 왔다. 내일은 공주를 지나 천안까지 갈 계획이다. 오늘보다 긴 여정이다. 예정대로 간다면 내일은 경기도의 코앞에 가는 것이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첫발을 내딛던 여행 첫 날이 생각났다. 이 긴 여행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무언가 아쉽다. 이 여행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거의 매일같이 쓴 이 여행기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그보다 많은 추억이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머물러 있다. 길에서 만난 다양한 세상과의 조우는 내가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까? 그 답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내가 생활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일상은 여행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여러 생각들이 좌충우돌한다. 이 여행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나쁜 기운들이 파괴됐다. 낙심과 좌절, 불안과 부정이 파괴된 자리에 희망과 기대, 긍정과 자신감이 자리잡고 있다. 여행은 그 자체가 낭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깨달음이다. 길이 곧 도(道)이며, 도(道)는 곧 길이다. 여행의 끝에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를 좀더 파괴하고 더욱 새로워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아침에는 근이형의 글읽는 소리에 잠이 깼다. 글 읽는 소리의 가락과 높낮이는 아침저녁으로 공부에 여념이 없는 근이형의 품성을 그대로 담아 물흐르듯이 흘러가는 듯하다. 듣기 참 좋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짐을 쌌다. 근이형도 오늘은 문화회관에 강연을 나간다고 한다.


▲ 금강에 머물러있는 철새들




다시 29번 국도로 나와 군산을 향했다. 만경을 지나 대야까지는 금방 내달렸다. 어제처럼 평야지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북풍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출발전부터 북상할 때 북풍이 있을 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막상 거센 북풍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려니 속도가 나지 않는다. 군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금강하구둑으로 향했다. 금강하구둑은 어제까지 철새축제가 한참이었나 보다. 여기저기 철새축제를 알리는 팻말과 현수막이 눈에 띈다. 금강하구둑을 건너면서도 많은 철새들을 보았다. 철새 무리들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금강의 물살에 몸을 얹히고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저들도 곧 긴 여행을 떠날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더 나은 땅을 찾아 무리를 지어 떠나는 철새들의 여행은 또 얼마나 힘들고 고단할까.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 또 한세대가 삶을 이어가고 종족이 번영하는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비행처럼 내 자전거 여행도 내 더 나은 삶을 향한 길찾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금강하구둑을 넘어 부여로 가는 북상길에서는 더욱 심해진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조그마한 언덕과 고개들도 이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부여는 백제의 수도였던만큼 많은 산성과 요새로 지켜진 땅이다 보니 부여로 들어가는 길이 쉽지 않다.



▲ 일을 나가는 농부




▲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한가한 들녘 풍경




부여읍에 도착했다. 부여읍 중심가는 군청소재지이지만 소박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군청소재지들의 규모에 비해 아담하다는 느낌이다. 부여의 관광지도를 보니 부여주변에 볼거리가 많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져 마땅히 가볼 시간이 되지 않는다. 이런 때가 좀 안타깝다. 바삐 올라가는 길이니 볼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내일은 힘든 날이 될 것 같다. 또 터널을 피해 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공주로 들어가는 여정에서 얼마나 많은 언덕과 씨름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주행거리 : 약 67km(도상)
주행시간 : 6시간
주행경로 : 김제학성강당 > 만경고교 > (29번국도) > 만경대교 > 대야면 > 금강하구둑 > 화양면 > 한산면 > 임천면 > 규암면 > 부여경찰서 > 부여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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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은 두 번째 국도정보입니다. 역시 오류가 있거나 변경된 점이 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

◎ 40번국도
원래는 대천에서 공주까지가는 국도였으나 대천에서 충남 옛나까지 연결해 더 길어지고 있다.
예산→홍성→천북→대천→부여→공주

◎ 41번국도
북한국도입니다. 금천에서 원산 주위에서 끝난다고 합니다.

◎ 42번국도
인천→시흥→수원→용인→이천→여주→원주→평창→정선→동해

◎ 43번국도
북한 고성까지 연결된 국도입니다.
충남 연기→천안 아산→서평택→발안→수원→광주→하남→서울→구리→퇴계원→의정부→포천→김화

◎ 44번국도
남한에서 제일 높기로 유명한 한계령을 건너서 양양에 이르게 되는 국도입니다.
양평→홍천→신남→인제→원통

◎ 45번국도
충남 서산(해미)→삽교→예산→아산→평택→용인→양수리→청평

◎ 46번국도
중부지역의 경인국도와 경춘국도, 그리고 최전방을 횡단하는 최전방 국도로 볼 수도 있겠네요.
인천→부천→서울→구리→남양주→청평→가평→춘천→양구→인제→원통→진부령→간성

◎ 47번국도
반월→군포→안양→과천→서울→퇴계원→포천→철원→김화

◎ 48번국도
강화도 교동→강화읍내→김포시→김포공항→서울(목동)→종로

◎ 50번국도
북한국도 개성에서 해주를 거쳐 옹진까지입니다.

◎ 51번국도
북한국도 해주→남포→평안도 순천

◎ 52번국도
북한국도 장연→평산 부근을 경유

◎ 53번국도
북한국도 신계→평양

◎ 54번국도
북한국도 황주→사리원을 경유합니다.

◎ 56번국도
김화→춘천→홍천군 서석면→양양

◎ 59번국도
꽤 긴 국도로 전남 광양에서 강원 양양까지 잇는 국도입니다. 본래 경남 기존 지방도에다가 경북 선산 이북 쪽은 33번 지방도를 편입하여 만든 국도입니다.
광양→산청→경남 가야산 부근→성주 서부→김천→선산→문경 동부→단양→영월→정선→횡계→어성전→양양

◎ 67번국도
짧은 국도입니다.
왜관→구미

◎ 75번국도
남이섬을 지나는 국도입니다.
가평→남이섬→여주 북부

◎ 77번국도
간단히 요약하면 인천에서 부산까지입니다. 내륙 쪽으로 지나는 국도가 아닌 서해와 남해를 지나는 엄청난 길이의 국도죠. 77번 국도는 새로 신설된 국도로 지방도를 이어서 만든 국도입니다. 아직 많은 부분 공사 중이여서 부분적으로 개통되어 있죠. 조만간 새만금 방조제 길이 77번국도가 될 전망입니다.
인천→→화성→발안→방조제→대산→서산→태안→안면도→고남→공사중→서천→군장산업단지→새만금 방조제(공사중)→군산→계화→부안→영광→함평→신안→동진도→강진→장흥→보성→→고흥→돌산→다리 공사중→남해→삼천포→고성→마산→창원→진해→김해→부산

◎ 79번국도
최근에 신설된 도로입니다.
경남 의령→함안(가야)→창원→부곡→영산면

◎ 82번국도
경기도 서해안 남부를 도는 국도입니다. 발안 동쪽으로 가면 82번 지방도가 오산, 음성, 충주쪽으로 가는데, 82번 지방도도 국도로 될 것다는 전망입니다.
경기 평택→안중→조암→발안

◎ 87번국도
경기도 포천에서 철원을 잇는 국도

◎ 88번국도
울진 평해에서 시작해서 낙동정간을 넘어 경북 영양에서 끝납니다. 거리는 짧은 편이지만 정간 하나를 넘어가다보니 구주령이라는 고개를 지납니다. 백암온천 진입로가 바로 이 도로입니다.
울진 평해→구주령→경북 영양

◎ 95번국도
남제주~북제주입니다. 제주 서부를 지납니다.

◎ 97번국도
95번국도와 마찬가지로 남~북을 잇지만 이 국도는 제주 동부를 지납니다.

◎ 99번국도
일명 1100도로라고 해서 해발고도 1100m고개를 넘어가서 붙은 이름입니다. 제주도 남북을 관통하는 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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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좀 못되어 누님 집을 나섰다. 898번 지방국도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니 얼마 안가서 한재골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이 오늘의 첫 번째 고비,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2차 산맥줄기를 넘어야 하는 코스다. 예전에는 아마도 노령산맥이라고 불렀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 국토연구원의 위성사진 검토 결과 백두대간의 2차 산맥이라고 정정됐다. 그렇게 한 시간을 씨름 끝에 고개하나를 넘었다. 예전 횡성에서 횡계 가던 길을 떠오르게 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내리막길의 즐거움을 한껏 즐겼다. 많이 숙련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달리다보니 체인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기름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작은 소읍의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윤활유를 도움 받아 발라놓으니 소리가 말끔히 사라졌다. 여기까지 오면서 펑크 한번 나지 않은 이 자전거가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1번 국도를 타고 가니 장성호가 나온다. 장성호는 이곳 남도에서도 주요 관광명소 중의 하나. 장성호 주변의 길은 붉은 단풍이 한참 물들어 있어 아름다웠다. 그러나 장성호를 벗어날 때쯤 다시 언덕길이 나왔다. 곰재라고 불렀는데 길지 않았지만 중간에 공사구간이 있어 달려드는 뒷차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장성호를 넘어 정읍으로 가는 길 앞에는 또 하나의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호남터널을 지나가지만 내가 타는 1번 국도는 길재라는 긴 고개를 넘어가게 만들어져 있었다. 터널보다야 차라리 고개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하루동안 3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니 이 산맥의 험준함을 다시 실감하게 됐다.

마지막 고개를 넘어 정읍으로 달려가면서도 다시 큰 언덕을 하나 넘었다. 오늘은 후반부 최대의 수난의 날인가 보다. 다행히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잘 내어 정읍에는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정읍 시내와 시장을 구경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올라올수록 가을이 깊어짐을 느낀다. 때는 이미 겨울의 초입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장성호 주변의 새빨간 단풍이나 정읍시내 입구의 노란 단풍잎, 그리고 도로에서 흩날리는 낙엽들, 간간히 이미 다 벗어버린 나무들까지, 가을은 아직 내륙의 중심부에서 머뭇거리며 천천히 물러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무는 겨울이 다가오면서 가진 것을 다 벗어버리지만 안에서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성장의 외형은 혹독한 변화의 흐름에 나를 가혹하게 내던지는 형상이다. 언제쯤 나는 성장을 위한 변화를 몸에 담아보았을까. 정작 내 안으로 들어가 나를 뜯어 고치는 일은 게을리하면서, 나를 버리지 않고 남의 변화만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이 산하의 가을을 보면서 새삼 변화의 화두를 내 안에 던져본다.





주행거리 : 57km
주행시간 : 6시간
주행구간 ; 광주일곡지구 > 898번 지방도 > 장성호 > 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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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빗물로 인해 도로 위에 얇은 층이 형성됩니다. 이 층은 물만이 아니라 도로에 있던 먼지 등의 부유물이 섞여 있기 마련이죠. 물도 그렇지만 이런 부유물들로 인해 도로는 자연스럽게 매우 미끄러워집니다.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의 경우에는 차량에서 흘러나온 각종 기름들이 같이 섞이게 됩니다. 우천시 자전거 여행은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시야 확보도 어려워집니다. 모자를 써도 빗물로 인해 전방을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을뿐더러 만일 백미러를 하고 있다고 해도 백미러 역시 빗물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쉽게 뒤에서 오는 차량을 살피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으로 인해 고인 빗물을 옴팡 뒤집어쓰는 경우도 종종 있죠.


타이어, 핸들, 브레이크, 페달 모든 면에서 자전거는 빗속에 100%노출되는 구조입니다. 그러다보니 빗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능고장 사례도 많지요. 브레이크 패드와 림이 젖기 때문에 제동력이 떨어집니다. 핸들부분의 기어조절장치에도 물이 들어가고 장갑이 젖었을 경우 기어 조정도 애를 먹게 됩니다.


도로를 함께 이용하는 차량과 자전거는 끊임없이 서로 소통합니다. 자전거는 수시로 뒤에서 오는 차량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차량 역시 여러 방법으로 앞에 달리는 자전거에게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죠. 비는 이런 소통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자전거가 비를 맞게 되면 반드시 청소를 하고 기름칠을 다시 해야 합니다. 가급적 비가 올 거라고 예상되면 자전거를 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를 맞게 되면 체온이 떨어지는데 거기에 무리해서 페달을 밟으며 운동을 하니 감기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자전거도 사람도 비를 맞은 후 관리를 잘해야 건강한 여행을 지속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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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있는 동안에도 내륙에 비가 왔었다. 강진을 나와 달리는데 날씨가 잔뜩 흐리다. 비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한두방울 긋기 시작했다. 일전에도 비를 맞고 달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얼마 못가서 덕신해수욕장의 청솔민박집에 머물다가 다음날 출발했다. 기상청 예보에도 비올확률이 40%라고 했으니 비가 올 거라는 각오는 되어 있었다.


먼저 2번 국도를 타고 목포 방면으로 가다가 13번 국도를 타고 영암으로 갈 예정이었다. 잘만 하면 광주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못해도 나주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성전 근처에서 점점 빗방울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월남저수지 옆을 지나서 풀치터널 앞에서는 옆에서 지나가는 차들이 내는 물보라를 느낄 정도였다. 쏟아진다 싶을 정도는 아닌 잠깐은 맞고도 다닐 수 있는 가랑비 정도였지만, 도로는 이미 푹 젖어 있었고,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비를 피해 보았지만, 쉽게 그칠 비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영암까지 가서 차후 여정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빗속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빗속을 자전거로 달린다는 것, 당연히 좋은 일이 아니다. 비로 인해 내 시야도 방해를 받고, 달리는 차들 역시 시야가 더욱 좁아지게 된다. 게다가 빗길의 미끄러움까지 더해진다면 위험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또 가끔씩 큰 차가 옆으로 지나가면 뒤쪽에서 일어나는 물보라 세례가 있다. 도로가 많이 젖어 있고 비가 계속 오다보니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 또 자전거는 물받이가 허술하다. 그러다 보니 내 자전거의 바퀴에서 튄 물이 심지어는 내 머리까지 올라와 버리곤 한다.


장황하게 빗속을 달리는 어려움을 늘어놓은 이유는 내가 영암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함이다. 결국 나는 영암에서 이날 하루의 여정을 정리해야 했다. 쟈켓도 이미 젖어가고 있어 더이상 달린다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길은 천천히 젖어들었다. 가을도 천천히 길 위에 내려 앉았다. 가로수들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제가 가진 것들을 길 위에 내려놓고 있다. 나도 스스로 시련의 계절을 이겨내기 위해 나를 버리는 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보름을 훌쩍 넘겼다. 참 좋은 것을 많이 보았지만, 무엇보다 내 안으로 들어가는 길 위에 서보았다는 것이 기쁘다. 비록 40km도 달리지 못하고 멈추었지만 비에 젖은 길 위에 서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 비에 젖어 있든, 자갈이 깔려 있든, 포장이 되어 있든, 비포장이든, 그 길 위에 서 있음을 그리고 살아서 달리고 있음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주행거리 : 24km

주행시간 : 2시간 30분

주행구간 : 강진버스터미널 - 성전면 - 풀치고갯길 - 영암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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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반에 일어났다. 민박집 주인아저씨에게 대략적인 한라산 등반코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아저씨가 소개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제주도의 흑돼지가 유명한데, 그 집의 김치찌개에는 그 흑돼지 고기를 사용한단다. 아주 맛있었고 가격(4천원)도 만족스러웠다.


터미널에서 성판악가는 시외버스에 올랐다. 버스로 약 30분 정도면 성판악까지 간다. 오늘은 수능일이라 그런지 아침시간의 버스가 한산하다.


한라산은 긴 등반코스로 인해 성판악 매표소에 오전 9시 전에 입장해야 등반이 가능하다. 8시 반경에 성판악 매표소에 도착 45분 정도에 입장했다. 내 손에는 카메라와 아저씨가 준 감귤 6개만 들려 있었다.


성판악 코스에서 진달래밭까지는 비교적 평탄하며 잘 만들어진 길이다. 누구나 쉽게 오르며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길로 올라갔다가 이 길로 내려온다. 이번 한라산 등반이 나로서는 두 번째지만 오르는 길은 예전과 같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산길을 관음사 코스로 잡았다. 민박집 아저씨의 적극적인 추천이 그 이유다.


어쨌든 오르는 길은 매우 여유 있게 올랐다. 길이 평탄하고 조용히 걷고 싶은 마음에 다른 관광객들이 앞지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걸었다. 적어도 진달래 밭까지는 숲을 거닌다는 기분으로 올랐다. 진달래밭에 도착하니 11시가 약간 넘었다.


진달래밭 산장에서 정상까지는 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니 백록담이 보였다. 2002년엔가 2003년에 올랐을 때는 백록담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구름속으로 숨어버렸는데 오늘은 구름 한점 없다. 훤히 드러나 있는 백록담 바닥에는 물이 거의 없었다. 그저 바닥이 좀 젖어 보이는 정도. 그러나 엄청난 분화구의 크기와 그 주위 봉우리들이 이루는 장관은 힘들게 오른 피로를 위로하는데 더없이 멋진 풍경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바람 때문인지 정상 곳곳에는 얼음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하산길은 처음 가보는 관음사코스로 낯선 길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다시 성판악으로 내려갔지만, 일부 사람들만 이 길을 선택했다.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타난 한라산의 숨은 비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음사 코스의 눈꽃도 화려했다. 바위에도 눈이 얼어붙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산길은 너무 지루했다. 올라가는 길은 짧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무척 길고 지루했다. 초반에는 볼거리가 풍부해 천천히 내려오며 즐겼지만 내려가다 보니 이건 지리산 내리막길보다 더 힘들다. 속도를 본격적으로 내어 보지만 그래도 3시간이 걸렸다. 내려와서 입구에서 내려오는 보통사람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지도를 보니 4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다. 자전거로 단련이 됐지만,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감귤 3개로 버티며 내려온 것이다. 관음사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3시 반정도. 여기서 버스타는 곳까지 또 3.5km를 가야 한단다. 민박집 아저씨는 히치를 하라고 하는데, 잘 잡히지도 않고, 하다 보니 얼굴 얇은 나로서는 도저히 못할 짓이었다. 작정하고 터벅터벅 걸어 내려가니 신비의도로(일명 도깨비 도로)가 나온다. 여기도 일련의 관광객들이 몰려 구경하느라 어수선하다. 한 35분 정도 걸어 내려와 버스 타는 곳까지 오니 시간은 4시.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한라산 여행은 무사히 마쳤다.


내일은 아침 9시 배를 타고 완도로 떠난다. 그리고 땅끝마을까지 간 후 해남쪽으로 달릴 예정이다. 해남까지 가기는 좀 먼 거리다. 아마 땅끝마을 어딘가에서 하루 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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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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