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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7 | 인간 전태일의 인권 감수성을 생각하며
  2. 2009/08/21 | 당신 자녀의 교과서, 안녕하십니까? (4)


 

▲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동상

지금 평화시장과 동대문 일대는 의류 패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지요. 그러나 1970년 오늘 여기서 한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뚫고 빛나는 화염으로 세상을 밝히고 산화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여공들이 점심을 굶는 것이 안타까워 서울 수유리 집에서 평화시장까지 걸어 다니면서 아낀 버스비로 여공들에게 점심을 사 먹인 일화는 그의 헌신과 희생이 깊은 인간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연구자였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려운 한문이 가득한 근로기준법을 날이 새가면서 읽고 해석하며 스스로 이해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 근로기준법이 고통받는 여공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되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장기표 신문명연구원 원장은 전태일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전태일은 고난 속에서 사랑을 얻는 사랑의 원리, 사랑을 통해 지혜를 얻는 지혜의 원리, 사랑과 지혜를 통해 높은 꿈을 이루는 꿈의 원리,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가운데 법열을 얻는 인생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 같이 소중한 교훈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경향신문에서 재인용)


오늘 그가 산화하며 외쳤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마라”


과연 지금 이 말은 얼마만큼 지켜지고 있을까 자문해 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일요일 공휴일도 없이 혹사당하고 있는 노동자들, 저의 시선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과 대우는 분명 나아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또 다시 한쪽에서 차별의 온상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우리의 삶을 지키고 있다면, 먼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태일은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재단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여공들의 고통과 아픔을 돌보다가 해고당하기까지 하죠. 그가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함께 일하던 여공이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인 폐렴으로 강제 해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느낀 충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열악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하는 시다들을 ‘나의 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바탕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나의 나’를 볼 줄 아는 시선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태일의 의미는 바로 ‘나의 나’를 보는 시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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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교 다닐 때 새 교과서를 받으면 그 냄새부터가 기분이 좋았어요. 집안이 넉넉지 못해서 새 책을 사주는 일이 드물다 보니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면 눈코입귀손 등 오감을 동원해 책을 느끼며 좋아했지요. 그리고 지난 달력을 가져와 교과서를 표지를 싸는 일도 즐겁기만 했는데요.

그런 시절에도 누구나 한번쯤은 교과서에 낙서 한 번 안해 본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표지의 ‘국어’를 ‘북어’로 ‘수학’을 ‘잠수함’으로 고치는 장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듯합니다. 무엇보다 교과서 삽화에 장난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아이들의 교과서 낙서를 보면 순정만화 그림부터 성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그림, 코믹한 그림 등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낙서들이 넘쳐납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본 청소년들의 낙서를 보면서, 일찍부터 경쟁 체제에 내몰린 아이들이 그 스트레스를 교과서에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혹 무시무시한 폭력 장면, 살인이나 폭행 등을 그려 넣은 엽기적인 그림도 더러 볼 수 있는데, 그 정도로 청소년들의 낙서에서는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칼이나 총, 살인, 폭력, 욕설 등이 예사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청소년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학업에 대한 부담감도 크고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로 인해 교과서가 무시되고 있는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졸리거나 지루하면 교과서에 낙서를 합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모든 아이들을 만족시키는 수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선생님들이 좀더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수업을 고민하고 개발한다면 교과서 낙서도 줄지 않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 교과서 역시 잘 만들어야져야 합니다. 교과서에 인권침해나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 그것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죠. 그런 폭력을 교과서가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 교과서들은 무심결에 인권침해, 혹은 차별적인 요소들을 삽화로 사용한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위 그림은 지난 교과서입니다. 두 삽화에서 여성이나 여아는 집안일, 육아를 담당하는 것으로 성역할을 고정화하는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왼쪽 삽화에서는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 그리고 직업군인은 모두 남자로 그렸습니다. 오른쪽 삽화에서는 의사와 조종사, 경찰은 남성으로 교사와 간호사는 여성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역시 남녀를 차별하는 그림입니다.




왼쪽 삽화는 남성은 일, 생산에 종사하는 반면, 여성은 가사, 양육을 전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오른쪽 삽화에서는 국제협약을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각국 대표를 모두 남성으로만 그리고 있습니다.

교과서의 삽화는 아이들에게 해당 학습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중요한 학습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해당 학습 내용에만 국한되어 인권적인 내용을 소홀히 한다면, 작은 걸 얻고 큰 것을 잃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라도 댁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교과서를 펼쳐 보세요. 자녀분들의 교과서에는 어떤 낙서가 되어 있나요?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낙서들이 있다면 무조건 야단칠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반면 아이들의 그림이 폭력적이라면 자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 안의 삽화들을 살펴보세요. 살펴볼 때는 다음 2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고정관념에 따라 삽화를 구성한 것을 찾아보세요.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만 입고 있는 삽화, 여자만 집안일을 하고 있는 삽화, 여성이나 여아를 집안일이나 비역동적인 놀이를 하는 삽화 예를 들어 남아는 축구, 여아는 공기놀이 등을 하는 삽화, 중요하거나 고위직 등의 직업이나 직종은 남성 중심인 삽화 등을 찾아봅시다.

둘째, 삶의 다양성이 드러나도록 그려진 삽화를 찾아보는 거죠.

외국인을 그릴 때 긍정적인 모습에는 유럽계 외국인, 부정적 모습에는 아프리칸계 외국인으로 구분지어 그린 삽화는 없을까요? 또 놀이를 하거나 활동을 할 때 장애인을 넣지 않은 삽화도 생각해 볼 문제죠. 그리고 국제결혼 2세대 자녀의 모습도 삽화에 담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문제겠지만, 세심한 배려나 관심으로 세상은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작은 편견이나 차별이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고 상처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권위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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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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