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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4 | 가을, 울며 떠나다_호명산 (6)
  2. 2008/06/24 | 혼자서 가라 (6)

가을, 울며 떠나다_호명산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때로 세상 속의 내가 위태로운 비탈길에 터전을 잡은 나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땅은 자꾸 내려가라 내려가라 밀어내려는 데, 나무는 기어코 그 비탈에 씨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올곧게 섰다.

세상이 곧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거다. 비탈진 언덕에 서는 나무들이 땅을 기준으로 뻗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기준으로 뻗는 이치를 보라. 내가 지금 발딛고 있는 곳이 내 삶의 기준이 아니라 더 큰 하늘을 보며 그 하늘에 내 삶의 기준을 잡고 서야 한다.



























호명산. 호랑이 호(虎), 울음 명(鳴)을 썼다. 예전 사람의 오감이 적었을 때는 호랑이 울음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 이제 그 산의 주인들은 없다. 계곡을 넘칠 듯 흐르던 풍부한 물은 사람들이 앞뒤로 막아 한쪽에는 청평댐이, 다른 한쪽으로는 호명호수가 들어섰다. 흐를 눈물도 막힌 호랑이들은 이제 여기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가을의 뒤안길에 찾은 산이라서 그럴까. 나무들은 앙상했다. 더불어 걷는 행보도 텁텁하다. 갈증이 목구멍을 치밀어 오른다. 명색이 등반이라지만, 역시 밥벌이의 일환이다(회사에서 가는 야유회다). 김훈은 '모든 밥벌이에는 낚시 바늘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야속하고도 비겁한 변명을 가지고 찾아가는 산이라서 그랬을까. 눈꼽만큼의 기대도 없었건만, 그 산은 사람이 고팠는지 이런 나를 잘도 넙죽넙죽 받아 안았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천지가 낙엽이었다. 얼마전 찾아간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는 이런 낙엽이 없었다. 월정사 숲길이 좋은 헤어로션으로 깔끔하게 빗질이 된 길이라면 호명산의 등산길은 모진 바람을 맞은 광녀의 머릿결 같다. 그런데 오히려 정겹다.

낙엽 밟는 소리를 정밀하게 조사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그도 그 소리가 모든 사람의 감정을 살포시 즈려 밟아주는 그 마사지 효과가 궁금했을 터이다.

우리가 갔을 때의 호명산 낙엽은 그렇게 바삭하게 마르진 않았다. 좀더 바짝 말랐다면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내 들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움은 남지만 이리 많은 낙엽을 밟아 본게 언제였던가 생각하면 이마저도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디가나 길을 안내하는 표지는 선명하다. 작은 리본이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다르겠는가.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사방으로 열리는 법이다. 정해진 길은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인사 정도에 그치면 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좀더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도전도 필요하다. 하나의 길은 하나의 과정과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세상은 더 다양한 길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열릴 수 있는 길.





























오르막길을 올랐던 사람들의 흔적이 보였다. 누군가는 급하게 치고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흔적은 흔들리면서 오르는 길만 남았다.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천천히 오르는 길. 많은 이들이 그렇게 흔들리면서 인생을 산다. 직진의 인생은 얼마나 고달픈가. 나이든 이의 지혜처럼 어쩌면 삶은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천천히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에 행복이 있지 않을까.





























낙엽, 하늘에 떠 있던 시간을 기억할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온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가을에 숲속을 걷는다는 것, 그것은 스스로 겸허해 지는 시간이다. 자연의 순환, 그 오묘함 앞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순환시켜야 하는 절실함을 느낀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숲은 이제 모든 걸 벗고 서로를 보다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가을, 여기 호명산에서 울고 있다.































세상에 지친 이들이여, 천천히 숲을 거닐어 보자. 누군가가 미워지거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다면 나무를 찾아 어루마지며 마치 나에게 하듯 위안하고 안아주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나무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다. 나로부터 시작해 인류를 넘어 지구와 연결되는 경험이다. 지구와의 만남은 저 멀리 다른 행성과의 만남으로 연결되고 궁극적으로 온 우주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나와의 만남이다. 그 경험으로 결단을 내려 길을 가라. 앙상한 가지와 텁텁한 갈증이 존재하는 숲에도 길은 나있지 않은가.

























그렇게 휘청거리며 걷다 보면 마구잡이처럼 삐쭉삐쭉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줄 수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정상에서 마신 막걸리 한잔의 취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이란 것이 그런 거다. 보잘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산이라는데도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이 잠시 머물다가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 갈 수 있는 것. 산이 나에게 준 정이고, 내가 산에게 주는 정이다.

다음 달에는 밤새 산을 껴안고 자야겠다.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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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가라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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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9일, 길면 10일의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떠난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발해 전라북도 무주로 나올 예정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백두대간 코스다. 보통 남한의 백두대간 코스가 총 650km(도상)라고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지도가 24구간으로 나와있고, 그중 4개 구간을 걷는 것이니 대충 계산해 보면, 650÷24×4=108.3333...이 나온다. 100km 산악행군인 셈이다.


내가 제대한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한 적이 있다. 물론 100km의 실제 도상거리는 약 80km였다. 그렇지만 이 구간을 24시간만에 행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 8시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8시에 부대 귀환이라는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행군이었다.


이번 산행은 도상 100km인 만큼 실측은 아마도 120km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간이 길다. 예상은 8박9일. 산장이 없는 구간이 많고 노숙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 텐트를 가져가는 이유다. 짐을 대충 풀어놓으니 만만치 않다. 막상 배낭에 넣어보는데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공간이 부족하다. 결국 짐을 더 줄여야 했다. 막판에는 텐트에서 플라이마저 제거했다. 텐트에서 잘 때 비오면 대책 없다. 이런 부담 때문에 동행을 구하고자 여러 후배들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결국 혼자 간다. 처음부터 혼자서 간다는 전제하에 모든 준비를 진행했지만, 부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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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동행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게바라의 친구 알베르토는 8개월간의 남미 여행을 함께했다. 동행은 갈림길에서 같이 논의하고,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축제와 기쁨을 함께 경험하고, 배고픔과 질병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여행의 소소하고 자잘한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럴 사람도 없이 혼자서 간다.


그래, 혼자서 가라. 거기서 만나는 사람과 나무와 들꽃과 새들과 인사하자. 힘들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지나가는 바람에 의지해 휘파람을 불자. 낯선 여행객들에게 안부를 묻고, 행선지가 같으면 함께 걷자. 천천히 걸으며 발밑에 피어난 들꽃들에게 인사하고 세상에 지쳐 돌아보지 않았던 나를 위로하자. 낯선 공간에서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그것은 더 큰 내가 존재하다는 깨달음의 시작이고 자기성찰의 변곡점이다. 온갖 땅부자들이 넘쳐흐르지만, 정작 땅한평도 가지지 못한 나는 여기 지리에서 덕유까지 이 공간을 내 삶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등기부등본에 기록된 땅보다 더 소중한 공간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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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두려운 곳이다. 그것도 혼자서 깊고 깊은 산 속을 헤매며 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졸아든다. 지리산이야 오가는 사람이 많고, 거기서 길을 잃은 없겠지만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으로 가는 길은 생소하기도 할뿐더러 길도 쉽게 앞을 틔어주지 않을 것이다. 또 혼자 가는 길에 짐은 왜 이리도 많은지, 이제까지 산행의 경험 중에 가장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가게 됐다. 배낭은 산더미 같은 무게로 어깨와 허리 무릎과 발목을 짓누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는 더 무겁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무사히 종주를 마칠 수는 있을까. 나의 귀환은 가난할까, 풍요로울까. 다시 돌아온 자리는 지금 생각하는 그 자리와 다를까, 같을까. 예수는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집을 떠났고, 부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왔다. 주몽은 부여를 떠나서 고구려를 세웠고, 온조는 고구려를 나와 백제를 세웠다. 말썽꾸러기 골칫덩어리 손오공은 1만8천리 서역길을 가면서 고귀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났고, 더불어 불경도 얻었다. 그에게 불경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여행을 통해 만난 삼장법사의 가르침과 저팔계, 사오정과의 우정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진정한 여행은 떠남-역경-만남-헤어짐-성숙-깨달음-귀환의 과정에서 수많은 세속의 잡념들과 상념들을 정화시켜준다. 벌거벗은 체 내던져진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내 여행은 무엇을 얻을까. 나는 슬기로운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병든 조선을 구하지는 못할망정 나 하나라도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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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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