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백두대간 24구간 중 네번째 구간 후반부 : 백암봉-빼재 구간 종주
날짜 : 2010년 2월 27일





| 동행 : 두 사람 그리고 구름                                          

두 사람. 한 사람은 대학 동기이며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 또 다른 한 사람은 내 오랜 직장 상사. 한때 한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었다. 모두 출판편집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만나면 술 한잔 나눈다. 일복 터지는 직장 생활을 서로 위로하는 일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이 잘 맞는다. 이번에도 인연이 닿은 건지 셋이 함께 산행을 떠났다. 반은 내가 꼬신 것이고 반은 흥에 겨워 따라온 사람들. 그들에게 이번 산행은 즐거움과 힘겨움을 오가는 롤러코스트 같았을 것이다.

내 친구는 나와의 산행이 거의 20년 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지리산을 다녀온 후로 처음인 셈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겨울산에 한번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재작년엔가 겨울 산행 장비를 다 마련했다며 빨리 산행 날짜 잡으라고 닥달을 했다. 그래서 다늦은 이번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극적으로 산행에 합류한 것이다. 그는 산행을 통해 여유를 찾고 싶어 했다. 주말마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 살던 그에게 이번 산행이 작은 돌파구가 되었을까?

그리고 직장 상사 김차장님. 인연으로 따지면 벌써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셈이다. 한솥밥을 먹는다지만 직장 상사라는 어려움도 있다. 다만 드러내고 살면 불편한 것들은 바닥에 내려놓고 사는 것이 지혜다.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얼굴 못 보는 날도 있다. 딱히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닐지라도 못 보면 심심한 얼굴이다. 게다가 그의 자리는 모니터 세개로 완벽하게 쌓은 철옹성 같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참을성인지 무심한 건지 헷갈린다. 다행히 이번 산행을 통해 똘똘 뭉쳐져 있던 자신을 살짝 풀어 헤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 역시 여유라면 여유겠다.







오랜 세월을 가끔, 또는 자주 보았던 사람들이다. 비슷한 공간에서 종종 얼굴 마주하면 닮은 구석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닮은 것은 시간 뿐. 우리에게 과거는 멋들어진 추억이 되었고, 현재는 물샐틈없는 빡빡한 일상이며, 미래는 가늠하기 힘든 불안이 지배하고 있다. 업계 사람이 아니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농담들로 서로를 위안하기도 하지만, 공공의 비밀을 이용하여 급소를 가격할 수도 있다. 전쟁 같은 일상을 뒤로 하고 산에 왔다. 산에서는 그런 일상들이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발 아래 구름이 있고, 그 구름 밑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듯이, 우리는 저 험한 세상사를 벗어나 구름 위에서 노니는 재미에 취해 하루를 흠뻑 적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긴다.

우리 셋 외에 부지런히 우리를 뒤쫓던 동행이 있다.





"너는 이만한 운해 풍경을 본 적이 있니? 산에 많이 다녀봤으니 본적 있겠구나."
"아니, 나도 이런 운해는 처음이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동안 폭포수처럼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던 구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멀리 도도한 백두대간의 산맥들을 구름바다가 넘실거리며 조금씩 집어 삼켰고 멀리 있는 산들은 그속에 갇힌 외로운 섬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저 위에 뛰어내리면 푹신푹신해서 하나도 안다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우리는 구름 속에 갇혔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방향으로 빠졌을 때부터 이미 발목까지 쫓아왔더랬다. 처음에는 그저 멋진 풍광이었던 구름이 슬슬 빗방울을 뺨에 긋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점차 적지 않은 빗방울을 쏟아냈다. 빼재에 도착한 우리들은 대부분 흠뻑 젖어 있었고 엄습해 오는 정월대보름날의 밤공기에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 雲 좋은 날 -
함께 간 이의 표현이다. 비구름에도 갇혀 보았으면서 여전히 향적봉과 중봉에서 만난 구름의 바다를 잊을 수 없었나 보다.








|| 8개의 봉우리와 3개의 고갯길을 지나다                                          

이번 백두대간 길은 전체 24구간 중 제 4구간의 뒷부분으로 도상 거리는 13.1km에 불과하다. 비록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타고 손쉽게 향적봉에 올랐지만, 이후 구간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우리가 넘었던 봉우리만 8개이며 거쳐간 고갯길만 3개나 된다. 그만큼 오르내림의 부침이 심했던 구간이다.

봉우리 이름들은 다른 지방에서 보는 흔한 봉우리 이름과는 달랐다. 향적봉은 그렇다 쳐도 중봉, 귀봉, 못봉, 대봉, 빼봉 등의 외글자 이름 봉우리들은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그나마 백암봉이나 갈매봉은 두글자 봉우리 이름이라 그런지 생소한 느낌이 덜하다.





지나온 고갯길 이름은 월음재와 횡경재, 그리고 마지막 기착지인 빼재(신풍령)이다. 이렇게 여러 봉우리와 고갯길을 지나오다 보니 쉽게 다리에 무리가 가기 마련. 사람들은 하나둘씩 말을 잃어갔다. 일행은 향적봉에서 송계삼거리까지 풍광에 심취해 신나게 걸었다. 그러나 막판 빼봉을 전후로 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 해가 진 산속을 무언가에 쫓기듯 휘적휘적 걸어야 했다. 

백두대간을 탄다고 하니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여 산을 오르려 하느냐고 묻곤 한다. 산을 타는 일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정신력을 극한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에서 젖먹던 힘을 끌어 내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체험이다. 나아가 나약하고 겁많은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짭쪼름한 땀방울이 볼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오는 경험, 물론 권할 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산행의 묘미가 있다. 스스로 찾아가는 땀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정화, 나를 깨끗이 하는 힘이 산에 있다. 정화 능력. 숲은 단순히 공기만 맑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몸과 마음까지 정화한다.

산의 봉우리들은 멀게 있다고 느껴져도 가다 보면 가깝다. 저기까지 언제 갈까 싶다가도 가다 보면 의외로 가깝다. 현대인들의 거리 감각은 사뭇 다르다. 개봉동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먼데서 오냐, 시간은 얼마나 걸리냐며 묻지만, 실제 거리 12.1km를 말하면 그렇게 가깝냐며 반문하고, 한시간 이내에 온다고 하면 내가 무척 속도를 내며 달리는 줄 안다. 도시민들의 거리는 이미 시간 거리로 판단되며 실제 거리 감각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산은 그런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운다. 자연의 소리, 바람의 방향, 동서남북의 방위, 가야할 길과 표지,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와 그에 소요되는 시간 등등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내 몸의 오감을 이용해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만큼 산도 나를 느낀다. 그냥 지나치던 바위 옆에서, 언제부턴가 앞발을 쫑끗 세우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다람쥐도 그제서야 눈에 띄며, 발치에 치이는 오종종한 들꽃들도 나를 반기고, 산새들도 경계심을 풀고 내 주위에서 휘파람을 불러댄다. 멀리 까마득한 계곡에서부터 쓸고 올라오는 바람에는 온갖 산의 흔적들을 안고 달려 온다. 그 순간은 나도 자연이 되는 것이다.
 








||| 길에서 만난 봄 그리고 떠나는 겨울의 흔적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따뜻했고,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날이었다. 길은 길고 길었던 지난 겨울의 흔적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따뜻한 양지녘의 길들은 지난 겨울의 눈들이 녹아 진창을 만들었고, 응달진 곳은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을 이루었다. 준비해 간 아이젠을 차는 것도 번거롭고 벗고 다닐려니 아슬아슬했다.

산행 초반에는 날이 참 좋았다. 혹시나 해서 두껍게 껴입었던 옷들을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구름은 저 밑에 깔려 있었고, 햇살은 완연한 봄기운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뒤에서 쫓아오던 구름들이 기어이 우리를 뒤덮더니 결국은 비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잠깐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누구는 무릎이 아파 쩔쩔 매기도 했다.





길이 눈길에 묻힐 수 있는 겨울이 특히 길을 잃기 쉽다. 앞서 가던 친구도 그만 눈이 뒤덮은 능선길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가던 길의 끝에 있어야 할 길이 사라지고, 아득한 잡목숲만 앞을 가리고 있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도중 마침 우리와 같은 길로 산행을 하던  이의 도움으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덕유산에서도 대간 길은 대간꾼이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길이라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혹여 우리가 눈밭에 내놓은 발자국 때문에 다른 이가 길을 잃을까 걱정이다.

길은 이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렸다면 좋은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공간 감각 기능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한다. 만일 그 중 하나라도 없다면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본 받을 만한 스승, 지혜로운 친구, 자신감이 없다면 다시 길을 되짚어 나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다시 시작한다.

이미 만들어진 길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이다. 내 뒤로 길이 점점 길어질수록 앞에 남은 길은 짧아진다. 한걸음 한걸음이 산행을, 인생을 완성한다.






간간히 나타나는 길표지들이 반가운 것은 초행 산길의 유일한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앞서간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이며 쉽게 지워져 버리는 산길의 충실한 나침반이다. 한동안 길표지가 나오지 않으면 갑작스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혹여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 그러다가 작은 길표지라도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991년 지리산에 처음 갔을 때도 길표지들은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지금 지리산에서는 길표지가 대부분 사라졌다. 길표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길이 뚜렷하고 표지판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길표지들이 자연을 헤친다. 하지만 백두대간 길은 다르다. 곳곳에 빠지는 샛길이 있고, 때로는 잡목과 풀들로 길이 가려지기도 하며, 엉뚱한 표지로 인해 길을 잘못들 수 있도  있다.

길은 그래서 기대와 두려움 모두를 동반한다. 길이 인생에 빗대어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은 후회로 점철되며, 가야 할 길은 그래서 두려움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럴 때 나를 안내하며 지켜줄 동행과 표지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길임에 틀림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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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처럼 살아라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9

- 삿갓재대피소 >> 동엽령 >> 송계삼거리 >> 향적봉 >> 무주리조트(약 10.7km)

- 200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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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뒤에 남는 아쉬움들, 연민, 후회, 집착... 털어버리고 싶었던 감정들이 심장 가장 안쪽에서 비를 맞고 있다. 소나기처럼 그냥 지나가다오. 그저 한바탕 비를 맞고 푹 젖어버리면 더이상 비를 피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했다. 이날 예정된 목적지는 향적봉 대피소. 거기서 하룻밤 더 묵고 다음날 빼재로 내려가 상경한다는 계획이다. 따라서 이날 갈 거리는 짧다.

 

비는 그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다. 배낭에만 우의를 둘러주었다. 다시 신발끈 꾹 메고 길을 나섰다. 이날만큼은 동행이 있다. 함께 삿갓재 대피소에 묵었던 아저씨다. 아저씨는 향적봉까지 가고 거기서 하산하겠다고 했다. 짧은 동행길이지만, 헤어지게 되면 몹시 흔들린다. 머릿속에서는 적당한 타협의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 어차피 덕유산 향적봉을 찍으면 다 온 거니까. 그리고 괜히 하룻밤을 더 묵는 것보다 그냥 하산하자. 다음에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와 나머지 구간을 계속 가면 되겠지.’

‘아냐, 그래도 처음 계획한대로 가야겠어. 그냥 하루 푹 쉬면 내일 수월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아저씨가 먼저 출발한 다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많이 지쳤던 것일까.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고 생각했다. 끝이 보이니 그 생각은 더욱 강했다. 가만히 있으니 드는 잡생각이다. 일단 걷자. 부지런히 아저씨 뒤를 쫓았다.  

 









 


 

삿갓재 산장을 나오자마자 또 급한 오르막길이다. 보슬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언제 장대비로 바뀔지 알 수 없다. 무룡산에 오르기 전, 먼저 출발했던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우의를 꺼내 배낭을 감싸고 있었다. 무룡산에서 내려서면 순탄한 마루금길이다.  


간간히 비가 쏟아졌다. 기상이 불안정한가 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천둥번개는 멀리서 친다. 9시 20분 동엽령에 도착했다. 넓은 동엽령 지대는 짙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동엽령에서


 송계삼거리 이정표




 함께 동행한 아저씨


 

 왼쪽으로 가는 길이 신풍령 가는 길, 오른쪽은 삿갓재에서 내가 올로온 길.



동엽령에서 백암봉(송계삼거리)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마침내 향적봉이 눈앞이다. 여기서향적봉으로 가는 길은 백두대간길이 아니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쪽으로 가는 길이 백두대간 길이다. 그러나 덕유산 주능선을 타면서 향적봉을 오르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이 아닐까. 대간길을 잠시 미루고 향적봉으로 발길을 돌렸다.

 

비는 계속 오락가락이다. 오전 중에 개인다는 일기예보는 역시 여기 덕유산에서는 통용될 수 없나 보다. 길가에는 간간히 원추리 꽃망울이 길쭉하게 나있다. 햇빛이 나지 않아서인지 보통 때면 활짝 개화를 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텐데 날씨가 안 좋아 개화시간이 좀 늦다. 덕유산도 지금 이맘때면 원추리가 한창이다. 귀품 있는 모양새며 도도한 줄기가 꽤나 운치가 있다. 카메라에 담지 못한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중봉에서

 

백암봉을 지나 제2덕유산이라는 중봉을 넘었다. 잘 만든 나무계단을 오르는 데 바람이 거세다.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중봉을 넘어 향적봉으로 향했다. 향적봉에 오르기 전 향적봉 대피소에 들렸다. 이곳에서 일단 점심을 해결했다. 덕유산 산장 안의 매점에서는 지리산과 달리 사발면을 판매한다. 햇반과 사발면을 주문하면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나오고 사발면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준다. 최소한의 먹을 거리는 충분히 사서 해결할 수 있다. 젖은 신발을 벗도 양말도 대충 씻어서 꾹 짰다. 다시 신으려니 찜찜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마침 함께 동행했던 아저씨가 새 양말을 꺼내주며 신으라고 하신다. 함께 비바람을 뚫고 왔던 우정의 표시였을까.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발은 젖었어도 양말이라도 갈아 신으니 한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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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다시 향적봉으로 향했다. 이때까지 이곳에서 자겠다는 생각을 했기에 배낭도 산장에 놓고 카메라만 들고 향적봉으로 올랐다. 백암봉을 지나 향적봉까지 종종 주목을 만날 수 있었다. 주목은 고지대에서 자라는 나무이며 덕유산에도 300~500년된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특히 소백산 정상의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관상용으로도 제배되고 있지만 정말 멋진 주목을 보기 위해서는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덕유산의 설경이 멋진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주목의 설경도 꼽는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말이 따라 붙는 주목의 고아하고 옛스러운 모습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다음에 겨울 덕유산을 오면 반드시 이 주목의 모습을 내 눈안에 담아 볼 것이다.


마침내 향적봉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름이 모든 것을 가려버렸다. 분명 까마득한 높이에 올라왔는데도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구름이 주는 신비함도 이쯤 되면 서운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마침내 덕유산 향적봉까지 왔는데, 볼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게 아쉽다. 향적봉에서 사진을 찍던 노인 한분과 만났는데, 그분도 오전 중에 날이 개일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올라오셨다고 한다. 이러다가 허탕만 치겠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향적봉은 바로 밑에까지 곤돌라로 편하게 올라올 수가 있어 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을 찾아 온다. 일출이나 일몰 등의 풍경사진이 인기다. 이맘 때쯤에는 원추리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노인이 알려주었다.









 주목






 

삿갓재에서 이곳까지 동행한 아저씨는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시겠단다. 바람이 많이 불어 뜨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운행되고 있다니 반가운 일이다. 아저씨와 작별하고 다시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왔다. 다시 갈등이 시작됐다.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신풍령쪽을 탈까. 아니면 좀 무리가 되어도 신풍령으로 지금 출발할까. 그냥 향적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 서울로 올라갈까. 무리를 해서 신풍령(13.1km)까지 간다고 해도 밤늦게나 떨어질 테니 서울 올라가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대피소에서 하루를 쉬려고 하니 시간이 아깝다. 결국 난 다시 배낭을 메고 향적봉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하산을 해 오늘 안으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남은 구간이 아쉽긴 하지만 향적봉에 왔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백두대간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했다.

 

향적봉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곤돌라 승강장이 나온다. 10m 앞도 안보이는 구름 때문에 승강장을 찾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승강장을 만나니 반갑다. 편도 7000원의 표를 끊고 입구에 서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곤돌라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나의 곤돌라를 골라 올라타는데 승객은 나 하나다. 서서히 산을 내려가는 곤돌라 안에서 온 몸의 힘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으로 굳어진 힘이었을 거다. 지상에 가까워올수록 구름은 걷히고 맑은 대지가 나타났다. 산 아랫동네는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이 내가 타고온 곤돌라. 왼쪽의 리프트는 운행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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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무주리조트 웰컴센터에서 서울 잠실까지 가는 버스가 오후 3시에 있으며 요금은 15000원이라고 한다. 가격도 싸고 바로 이곳에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남아서 웰컴센터에서 옷을 갈아입고 대충 머리와 얼굴 팔 다리도 씻었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보니 가관이다. 염소수염은 길게 자라 있고, 머리는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데다,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으니 산도적이 따로 없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중간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악천후 속에서도 이렇게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운이다.

 

멋진 날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혼자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입가에서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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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6 - 외롭고 높고 쓸쓸한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외롭고 높고 쓸쓸한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6

- 매요리 - 복성이재 - 봉화산 - 중재(21.4km)

- 2008.06.30





늘 그래왔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햇반을 준비하면서 점심때 먹을 것까지 데웠다. 햇반은 그냥 먹으면 까칠하지만, 한번 데웠다 먹으면 어떨까. 새로운 시도다. 잘 되면 도시락을 먹는 기분일 것이다.


햇반 하나에 김치로 아침을 떼웠다. 물론 이렇게 출발하면 9시부터 배가 고파온다. 그때부터는 쵸코바나 사탕으로 견디다가 11시 즈음에 점심식사를 한다. 물이 있는 곳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냥 맨밥을 먹으며 물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지리산과 달리 백두대간에는 종종 물 구하기 어려운 구간이 있다.



 

▲ 매요마을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6시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민박집을 나왔다. 매요휴게소를 나와 마을의 시멘트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743번 지방도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계속 북진하면 유정육교가 나오는데 이 육교를 통해 88고속도로를 건넜다. 임도를 따라 사치재를 향했다. 출발은 언제나 가볍다. 문제는 산등성이 초입이다. 사치재에서 산길을 잡는데 잡목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지, 길잡이 리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또 길을 엉뚱한 데로 잡았다. 다시 사치재 팻말 앞으로 내려왔다. 30분의 시간과 체력을 날렸다. 길이 함몰되어 전혀 없는 곳에 길잡이 리본이 보였다. 설마 저 곳에 길이 있을까 싶어 올라갔는데, 거의 잡목과 풀들로 우거진 곳에 아주 작은 길이 나 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가보자 싶어 올라가니 다행히 이 길이 맞았다.


사치재에서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산등성이는 1994년과 1995년에 두차례에 걸쳐 산불이 났던 곳이다. 그래서 큰 나무들은 이미 고사하고 지금은 식물들의 춘추전국 시대다. 작은 잡목과 풀들이 길을 덮어버린 것이다. 종종 살아남은 소나무들은 까맣게 그을린 나무둥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간혹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 도저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현장이다. 밤새 내린 이슬이 맺힌 풀들이 서서히 내 신발을 적셔왔고, 키만큼 자란 잡목과 가시나무, 풀들이 내 팔을 할퀴었다. 재작년 초봄에 이곳에 왔을 때는 길도 잘 보이고 잡목과 풀들도 거의 없더니 두해 지나 숲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여름이니 그럴만도 하다.


평일이다 보니 산길을 걷는 사람도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만큼 새벽부터 지어진 수많은 거미집을 부시고 다닌다. 한걸음을 디디면서도 벌레라도 있으면 피해왔건만, 수많은 거미집들을 거침없이 부시고 그 무수한 잡풀 속을 탈출해야했다. 아, 얼마나 많은 집들을 부시며 걸어왔던가. 얼굴과 팔에 엉기는 거미집 때문에 기분이 묘하다. 마치 숲이라는 큰 거미집에 내가 걸려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간신히 산불난 지역을 벗어나니 온전한 산길이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본다. 한바탕 전쟁을 치룬 것 같다. 신발은 난리가 아니다. 많이 젖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긴바지를 입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하지만 반팔 옷은 치명적이다. 팔에는 온갖 가시와 풀에 베인 상처들 투성이다. 백두대간에는 이런 구간이 꽤 많다고 하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잡목과 가시덤불을 지나야 할까.







▲ 아막성터


 


10시도 되지 않아서 신발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신발 안까지 젖어버렸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점심도 먹을 겸 치재에 있는 철쭉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재작년에 한번 백두대간 중 1박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11시 쯤 철쭉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무그늘에 마련한 평상에 앉아서 가방을 풀고 신발도 벗었다. 양말과 깔창을 벗어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샌들을 신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잠시후 주류 배달 차량이 들어왔다. 그에게 물어보니 아주 멀리 있는 포도밭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답해준다. 차에 실려온 맥주가 한짝씩 내려지는 걸 보니 입이 왜 이렇게 마를까. 그렇다고 주인 없이 맥주를 꺼내먹는 건 아니다. 할 수없이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니 일찍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기에 평소처럼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렸다.


“산에서 오는겨”

“네, 주인장이 없어서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올 거니께, 저기 물 떠다 마시고 기다려봐요.”

“저, 할머니, 주인하고 친하세요?”

“바로 요 옆집에 살어요. 왜?”

“그럼 제가 할머니께 일단 삼천원 드릴테니, 여기 맥주 좀 가져다 마실게요. 할머니가 주인 오면 주세요.”

“그래요? 그러지 뭐.”


얼마나 맥주가 마시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내가 그때를 돌아봐도 참 신기하다. 맥주 한병을 다 비우고 아침에 데운 햇반을 꺼냈다.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찰기가 잘 흐르고 밥도 잘 익었다. 그냥 식은 도시락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맥주 한병과 밥을 먹으니 기운이 살아난다. 그러고 나니 주인이 왔다. 맥주를 마신 자초지정을 얘기했다.


“아이구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이거 밍밍한 맥주를 마셨겠네요. 하나 더 드릴까요?”

“아니오. 또 산을 타야하는데, 그만 마실게요. 하하”


철쭉식당의 주인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짐을 다시 정리하고 있으려니까, 다시 일을 나가신다.


“이제 요 앞에 포도밭에서 일하니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세요.”


백두대간 손님들이 대부분인 식당이다 보니 산을 타는 손님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나와 다시 산등성이를 올랐다. 잠깐 신발과 발을 말렸는데, 한결 낫다. 힘껏 산을 다시 올랐다. 식당이 철쭉식당인 것은 치재 근처가 유명한 철쭉군락지이기 때문이다. 사람 키만큼 자란 철쭉들이 길을 덮고 있다. 그나마 가시나무나 날카로운 풀들이 아니라서 좋지만, 역시 길을 헤쳐 나가는 동안 철쭉가지가 자꾸 배낭을 잡아끈다.


▲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넘어간다. 봉화산에서 바라본 백두대간길.


 


▲ 봉화산에서 바라본 조망.




오후 2시 봉화산에 올랐다. 답답했던 조망이 확 트였다. 돌아보면 9박 10일 일정 중 가장 멀리까지 시원한 조망을 보였던 날이다. 그만큼 비와 구름이 일정 내내 나를 뒤덮었다. 지리산을 벗어나면서부터 신발이 마를 날이 없었고, 준비한 양말 다섯 켤레 중 하나라도 완전히 마른 날이 없어, 그냥 신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 본 조망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갈 길이 멀었다. 중재까지는 가야 하는데, 벌써 오후 2시를 넘었다. 최소한 4시간은 가야하는데, 6시라면 간당간당하다. 자칫 금방 어두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름이라 7시까지 밝기는 하지만 깊은 산속에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봉화산 이후로는 길이 좋다. 마루금은 억새만 좀 자라 있을 뿐이다. 구름이 아니었다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걸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중재까지 4시간 동안 물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좋으면 또 저것이 안 좋다. 모든 걸 만족하는 여행은 드물다. 여행은 그런 부족함 때문에 채워지는 것이다.


▲ 이 정도 길은 양호한 편.

▲ 중재민텔 풍경.



 

중재에 도착한 건 6시가 다되어서다. 중재 고개에 보니 ‘중재민텔’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원래는 중재 샘터 근처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또 젖었으니 그곳에 가기로 했다. 게다가 고개까지 차량으로 와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 이날은 대략 10시간 이상을 달린 셈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곳 중재 민텔도 중재에 있는 유일한 민박시설로 자리잡았다. 많은 대간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아 쉬고 갔다. 집 바깥벽에는 대간 산꾼들이 매달아놓은 길잡이표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거리도 많이 걸었던 하루였다. 오면서 조우한 산행객은 딱 한팀에 불과하다. 치재의 철쭉식당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산에서 혼자 걸어왔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행이었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위로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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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떠나는 걸음이 다시 지리산으로 간 이유                              

백두대간 제3구간 종주 코스는 남원과 함양사이의 고원지대인 운봉고원을 통과한다. 여원재에서 출발, 고남산-유치재-사치재-복성이재-치재-봉화산-중치까지 갈 예정이었다. 즉 여원재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여원재에서 거꾸로 남쪽으로 달렸다.

우리가 남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출발하고 2시간 뒤에서야 알았다. 해는 이미 중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돌아갈 길을 고심했다. 결국 가던 방향을 따라 지리산으로 가기로 했고, 여원재에서 출발한 백두대간 산행이 수정봉과 노치마을, 정령치로 이어져 다시 지리산의 품속으로 기어들어간 꼴이 됐다.

언젠가 가야할 길이었다. 5월달에 가려고 했던 구간이다. 하지만 1박2일로 달리기에는 벽소령-여원재가 너무 긴 코스다. 이 기회에 정령치까지 미리 끊어 줌으로써 5월 산행의 부담을 줄였다. 또 이번에 가지 못하고 다음 달에 찾을 봉화산 코스는 진달래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음달이면 만개해 있을 테니 아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산은 정상에 오르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데 있다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 나이 30대,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갈 것이다                        

사실 준비는 아주 잘 됐다. 대장을 맡은 친구도 꼼꼼히 잘 챙겼다. 일행 모두 열정도 있고, 체력도 괜찮았다. 식량과 부식은 회사에서 집으로 오던 내가 간단히 장을 보아 마련했다. 지난번보다 알차고 풍부했다. 지도도 <백두대간24>라는 가장 최근에 나온 지도책을 구했다. 빈약하지만 나침반은 친구가 마련했다. 하룻밤 묵을 숙소도 확보했다. 고도계도 있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구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없었다.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먼저 간 이들이 남겨둔 표식만으로 찾아가기에는 우리 경험이 부족했다.






3월 9일 영등포발 진주행 9시 52분차에 몸을 실었다. 낮에 사무실에서 일하다 오느라 친구 둘은 제대로 저녁식사도 못 챙겼단다. 준비해간 빵으로 대충 끼니를 채우고 맥주 한잔씩 마시고 잠을 청했다. 밤기차의 흔들거림에 몸을 실으니 잠도 쉽게 찾아들었다.

하지만 피곤을 싣고 달리는 거다.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주말에 이렇게 산행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어려움들은 어쩔 수 없다. 한창 사회에서 일할 30대의 나이다. 여유롭게 산행 준비하고 느긋하게 집을 나오기가 쉽지 않은 세대다. 하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추억거리 하나 만들어 보자는 일념, 그리고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등을 떠민다. 어려움은 타고 넘어야 한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남원역 대합실


기차 안에서 설핏 잠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원 도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친구들을 부랴부랴 깨워야 했을 만큼 나도 친구들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남원역에 내린 시간은 새벽 2시경.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남원역은 시내에서도 한참 동떨어져 있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잠에서 덜 깨 몽롱한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자니 그 시간도 속절없다.

결국 택시를 타고 남원 시내까지 나왔다. 아저씨에게 버스터미널 근처 PC방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하면서 한마디 물어보았다.

“아저씨 백두대간 가는 사람들 요즘도 많아요?”
“요새는 좀 뜸하제요. 그라도 꾸준히 오갑니다.”


24시간 해장국집의 풍경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PC방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PC방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맸다. 조용한 지방 도시를 새벽에 거니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무도 없는 빈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만큼 고즈넉했다. 고만고만한 2~3층 높이의 건물들이 꼬깃꼬깃 접힌 것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담하다.

PC방을 찾아 정보를 더 구하고 거기서 잠시 눈을 붙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장을 맡은 기석이는 밤새 이번 구간에 대한 웹 정보를 검색하고 꼼꼼히 읽어갔다. 옆에서 보면서 간간히 쳐다 보았지만 이내 무거운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대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PC방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 건 새벽 5시경. 근처 24시간 하는 밥집이 딱 2군데 있었다. 흔한 김밥집과 해장국집, 우리는 해장국집을 선택했다. 든든히 잘 먹고 가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새벽의 해장국집에는 반드시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취한 사람들의 구불텅한 말투는 힘든 고갯마루를 오르는 것처럼 알아듣기 힘들다. 술취한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이어갔고, 상대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삼켜준다. 식어가는 해장국에는 멀건 기름때만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소주잔은 바닥이 보일 틈이 없었고, 김치는 그 자리에서 내내 젓가락을 기다리며 쉰내를 풍겼을 텐데 말이다.

삶의 고단함을 등산에 비유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그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 산행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해 줄까. 나는 이 고약한 마약에 취해 오늘도 짐보따리를 이고 산행을 나섰다. 무엇을 잊기 위함이고 어떤 것을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문득 <낮은 산이 낫다>라며 지리산 산줄기 밑의 한 야산에서 살고 있다는 남난희 선생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새벽길을 알려준 운성대장군                                                 

새벽 6시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는 첫차를 탔다. 새벽 첫차를 타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첫차를 몰고 나오는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새벽 첫차를 타고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보며 배운다.

남원에서 여원재까지는 대략 20분~30분이면 간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고개 7선(選)에도 뽑힌 여원재(女怨峙). 북쪽에서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남원시를 뒤로 하고 고갯길을 올라서면 운봉 고원지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지리산 서부 산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데 동남쪽으로 세걸산과 바래봉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황산이 자리잡고 있다. 유명한 흥부마을도 여기에 있다. 여원재라는 말을 풀어보면 여인의 원한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라 좀 무섭게 느껴진다. 익히 알려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

왜구침입으로 나라 곳곳이 몸살을 앓던 고려 말, 왜구들은 이 깊은 내륙까지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왜구들이 쳐들어와 이곳의 주모를 희롱하자 이 여인은 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자르고 자결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내려온 이성계는 어느날 꿈속에서 노파가 나타나 전투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고, 그대로 실행하여 대승을 거뒀다고 한다. 훗날 이성계가 알아보니 그 노파는 바로 자결한 주모였다. 이성계는 이 주모를 기려 사당을 짓고 ‘여원’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후로 이곳은 여원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나라가 위태롭고 정의가 사라진 곳에 약자들이 설 곳이 어디였을까. 중한 목숨마저 끊어내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여인의 정절이었을까, 자존심이었을까. 어쩌면 남자들에게 유린당하고 노리개감이 되어야 했던 그릇된 시대의 아픔을 원망했던 것은 아닐까.

여원재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등반 준비를 했다. 랜턴을 준비하고 스틱을 꺼내고 신발끈을 다시 묶는 일이다. 언제나 이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밤새 내려온 피곤함도 싹 가실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 출발점에서 길을 정반대로 잡았다.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남쪽을 잡게 된 것은 바로 ‘운성대장군’ 석상 때문이다.







산행 안내를 맡은 기석은 운성대장군 쪽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쪽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고남산 방면으로 가고자 한다면 운성대장군의 건너편 쪽으로 가야 했다.

그야말로 깜깜한 밤이었다. 자신있게 운성대장군쪽으로 길을 갔던 기석이도 우리도 초반에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지도를 보며 어림짐작으로 길을 가늠해 보지만 어스름한 새벽 여명 빛으로는 제대로 찾아낼 수 없었다.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거기가 거기 같은가 하면 또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색색의 리본이 백두대간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사실 리본이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리본이 반드시 있어야 할 만한 곳이 있다.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나 길이 여러 갈래인 곳에서 발견하는 리본은 참으로 반갑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리본을 묶어 놓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특히 자신의 산악회를 자랑하거나 알리려는 목적으로 달아놓은 리본들은 더더욱 그렇다. 지리산을 처음 찾아 갔던 1991년에도 지리산에서 리본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따로 표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길에서 먼저 길을 찾아간 이들이 후세에 오는 이들을 위해 안내표시를 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위적인 표시는 그만 했으면 한다. 한해 2만여명이 백두대간을 다닌다고 하니 조만간 백두대간 길이 환히 열리지 않겠는가.







7시가 넘어가자 멀리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해가 반갑다. 그런데 이상하다. 해가 뜨는 곳이 내 왼쪽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면 해는 내 오른쪽에서 떠올라야 맞다. 그런데 왼쪽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조금더 가다보니 해가 뜨던 왼편으로 큰 저수지가 보였다. 지도상에서는 큰 저수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지도를 펼쳐들고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이 가르치는 북쪽으로 지도를 놓고 보니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우리 길 잘못 든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 나침반이 잘못된 거 아닐까?”
“하기는 일전에 내 나침반도 완전히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야.”
“다음에는 내가 꼭 제대로 된 나침반을 사올게.”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걸. 해가 지금 우리 왼쪽에서 뜨고 있잖아. 해가 북쪽으로 간다면 지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야. 우리 길에서는 해가 오른쪽에 있어야 해.”
“…”

하지만 이때까지 우리는 단 하나의 이정표도 보지 못했다. 도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이정표를 하나도 보지 못해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정표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원재를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올라가는 봉우리 끝이 둘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북쪽의 ‘고남산’, 하나는 남쪽의 ‘수정봉’.





사실 대장만의 잘못도 아니다.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가 친구만을 탓할 수는 없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조금만 가면 마을이 있으니 이럴 때 좋은 경험을 한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이번 산행은 두고두고 재미있게 얘기될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남행을 택했다. 그리고 수정봉에서 노치마을로 하산을 시작했다. 한시간 가량 내려가니 노치마을의 유명한 노송들이 보인다.


감미로운 봄햇살과 할머니의 꼬임에 넘어가 마신 막걸리                            








노치마을 노송은 이 마을의 자랑이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일조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여원재를 중심으로 하는 이 구간은 백두대간의 고원지대로 운봉고원으로 불리운다. 제법 높은 곳에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예부터 질좋고 영험하다는 소나무를 이용해 제기와 목기를 깎는 나무쟁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노치마을의 노치샘에 들어섰을 때 지팡일 짚고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관심을 보였다.

“산에서 오는개벼?”
“아, 네.”
“구람, 여그서 막걸리 한잔 마시구 가. 나두 한잔 주구.”
“아 여기 막걸리 파나요?”

그리고 고개를 들려보니 구판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찾아서 막걸리를 주문했다.



 


햇살 때문이다. 한 병만 마시고 가기로 한 것이 어느새 두병이 되고 세병이 됐다. 막걸리 한 병이 밥사발로 세잔이 나왔으니 셋이서 한 병씩 마신 셈이다. 우리보고 막걸리 마시고 가라던 할머니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한잔 드리고 이야기나 들어보려 했는데, 사라지셨다. 우리가 세 병째 비워갈 즈음에 나타나셨는데, 한잔을 권하니 “나 원래 술 안 마셔.”라며 극구 사양하신다.

그런데 왜 아까는 술 한 잔 사달라고 하셨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햇살만이 아니라 꼬부랑 할머니의 꼬임에도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1500원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지니, 감사할 일이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정령치로 향했다. 노치마을에서 정령치까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가는 길이다. 정령치 꼭대기까지 가는 게 아니라 지리산 입구 바로 앞까지만 가는거라 더 이상의 오르막길도 산길도 없다.





그래도 이 길은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을 떠나는 발걸음이 우여곡절 끝에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4월달에 이번에 타지 못한 길을 가게 될 예정이다. 5월에는 다시 지리산 구간으로 돌아온다. 대장을 다시 내가 맡을 것이다. 참으로 질기고 질긴 지리산과의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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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백두대간!                                                                

지리산은 쉽게 오르는 산이 아니었다. 지난여름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두 번 모두 비를 흠씬 두들겨 맞고 물러서야 했으니 말이다. 두 번째 산행에서는 통제마저 뚫고 장터목까지 갔지만 결국 산장지기(장터목 관리소장)에게 한소리 듣고 물러서야 했다. 오기를 부려도 안된다. 날씨를 원망할지, 지리산을 원망할지, 아니면 내 운을 원망할지 원망할 대상마저 간단치 않다.

시간이 지나 올 1월초에 다시 지리산 등반을 도모했다. 이번에는 비가 아니라 눈이 가로막았다. 출발 하루전 한반도 일대에 뿌려진 폭설이 원인이었다. 지리산은 깊고 큰 산이라 조금만 눈비가 내려도 입산통제가 내려진다. 결국 지리산을 포기한 그날 태백산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안에 지리산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속상함 반 원망 반을 섞어서.







1월말부터 백두대간을 계획했다. 오랫동안 가졌던 꿈을 다시한번 실현시켜보고 싶었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음먹으면서 그 시작점을 진부령으로 잡았다. 지리산에 대한 원망 때문에 아래에서 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 때문에 그냥 지리산부터 가는 것으로 잡았다. 그렇게 계획하지 않은 지리산행이 결정됐다. 이번에는 지리산이 목적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목적이었다. 선언이 무색하게도 한달만에 지리산을 다시 찾게 됐다.

백두대간을 계획한 사람은 나와 친구 둘.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여성 한명이 더 참가했다. 산행은 3~4명이 최적이다. 택시를 타도 4명은 한차이며, 2인 1조로 움직이기도 좋고, 버스를 타도 2명씩 앉으면 안성맞춤이다.

백두대간의 첫 산행지는 천왕봉. 원래는 산신제도 지내려고 했다. 한달에 1회 이상 간다고 해도 2년여를 꾸준히 다녀야 완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결의를 모으고 다짐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준비부족으로 인해 산신제를 지낼 수는 없었다. 대신 노고단을 기약했다.

2007년 2월 23일 밤 12시 동서울터미널. 대부분의 차들은 거의 다 떠났다. 아마도 지리산 가는 밤 12시차가 막차인가 보다. 마지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저마다 삶의 봇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으로, 마을로 가려고 한다. 함양을 거쳐 가는 백무동행 버스에는 등산객 반, 일반승객 반 정도가 앉아있다. 자리는 거의 꽉 찼다.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았다. 전날에도 상가집을 다녀오느라 잠을 많이 자지 못했다.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고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선잠만 설핏 오갈 뿐이다. 뒤척이다 보니 3시간이 금방 지났고 백무동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밤을 새고 가려니 잠 오는 게 걱정이다.






어느 하늘의 별들이 저리 맑고 투명할 수 있을까                       

백무동 주차장에 내린 시간이 새벽 3시 15분. 버스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한기가 덮쳤다. 추위의 기습에 몸서리가 났다. 걷다보면 더워지는 게 등산이다. 춥다면 걸어야지. 등산화를 단단히 메고 스틱을 꺼내고, 랜턴을 점검하며 등산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마쳤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어느 하늘 아래서 저리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을까.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등산팀 중 한팀이 일찌감치 떠났다. 다른 팀은 아직 떠날 생각이 없는 듯 주차장에 머물러있다.

새벽길을 걷는 것은 침묵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단지 우리 네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서늘하게 밤공기를 갈랐다. 한참을 오르다가 돌아서서 떠나온 마을을 보았다. 잠든 마을은 고요하고 간간히 일찍 깬 불빛만 졸린 눈을 비비는 듯 깜빡거린다.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내 입김이 구름처럼 떠올라 별빛들을 흩뜨린다. 마른 가지들 틈으로 반짝이는 맑은 별들이 반갑다.

백무동에서 3시 40분경에 출발해 참샘에 도착하니 5시 10분. 참샘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커피를 마시기로 했는데, 한기가 장난이 아니다. 물 끓이는 반시간도 안되는 시간이 한나절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출발했다.

소지봉을 지나니 동녘 하늘에 붉은 기운이 살짝 깃들기 시작했다. 시간상 무리해 달린다고 해도 일출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별이 총총 떠 있는 밤하늘을 보니 일출 구경이 아쉽기만 하다.











제석봉, 용서와 참회에서 평화와 안녕으로                                   


 

▲ 장터목 산장


장터목에 오른 시간이 7시 10분경.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라면과 햇반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햇반은 뜨거운 물에 최소한 15분정도 끓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까칠해서 먹기가 괴롭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급하게 햇반을 꺼내 먹기 시작했으니 아무리 배가 고팠다지만 정말 먹기가 곤혹스러웠다.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해법은 라면에 햇반을 다 넣어서 끓여 먹는 것. 친구는 ‘개죽’이라고 했지만 정말 먹을 만했다. 일단 뜨거운 밥알이 부드럽게 넘어가니 속에서 편하다. 맛이야 나아질 것이 없지만, 그래도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쉬우니 다들 수월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천왕봉으로 길을 나섰다. 천왕봉에서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올 계획이라 배낭은 모두 장터목 산장에 놓고 다녀왔다.


 


장터목을 떠나 제석봉을 올랐다. 여전히 황량한 봉우리는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다. 용서와 속죄의 시간은 참으로 길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날이 언제쯤일까. 1991년부터 각인된 이곳에 대한 내 기억은 여전히 멈추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무자비한 침탈에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곳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이 보인다. 빈자리에서 조금씩 솟아나는 생명들을 보면서 제석봉이 다시 많은 나무와 풀들로 뒤덮이는 상상을 해본다. 그때쯤이면 이 황량한 봉우리의 모습은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용서와 참회의 기억도 사라지겠지. 그 자리에는 질서와 평화가 자리잡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제석봉의 풍경들



천왕봉, 이제 백두대간의 시작이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들어서니 바위틈 사잇길이 얼음으로 꽁꽁 얼어있다. 아이젠을 끼고 있지만 그래도 쉽지 않다. 통천문, 하늘로 통하는 문. 좁은 틈사이로 올라서면 곧 하늘이 나를 반기는 곳. 얼마 만에 오르는 것일까. 지난여름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면서 장터목까지 왔지만 끝내 돌아서야만 했던 그곳이 이제 눈앞에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갈망해 왔던 곳인가. 많이 다녀보았으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천왕봉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구름도 저 멀리 물러나 쉬고 있었다. 백두대간의 시작점. 민족의 뿌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나는 서 있다. 이렇게 맑고 고운 겨울을 보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1991년과 1997년 가을 이후로 천왕봉의 맑은 하늘을 보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 천왕봉에서 새롭게 백두대간의 성공을 기원하는 한편, 끝까지 완주해내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 천왕봉에서 일행들과 함께

 

장터목으로 돌아가는 길, 제석봉을 지나가는 길은 아무리 지나다녀도 말이 없게 만드는 길이다. 천왕봉을 오를 때도 이 제석봉을 지나면서 겸허해지지만, 하산길도 산에 대한 경외감이 나를 휘감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까지는 장터목에서 두시간 내외의 길. 천왕봉까지 가볍게 오른 일행들을 괴롭히는 것은 졸음이다. 나역시 밤을 거의 꼬박 세우고 내려온 거라 걸어가면서도 졸립다. 촛대봉에 오르고 세석 산장이 보일 즈음에는 그저 잠시라도 눈을 붙였으면 하는 바람만 간절했다. 지리산에 오면 항상 밤차로 오다보니 익숙하지만 역시 피곤한 일이다.






세석에 도착하니 4시 정도.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쉬자는 의견이 대세다. 저녁은 화려한 만찬이다. 먹을 것들은 죄다 꺼내놓고 준비해간 삼겹살과 목살을 굽기 시작했다. 2근 1200g이다. 겨울이라서 냉장은 걱정없었다. 지난 여름에도 삼겹살을 산중에서 구워먹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이번에도 준비한 것이다. 만만치 않은 양인데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다.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추위가 닥쳐왔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다고 여겼는데, 겨울 동장군이 이 산속에 들어와 숨어있었나보다. 일행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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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 겨울산을 만나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자던 생각이 그만 6시까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산에서는 모두 부지런해 어떤 이는 새벽 3시부터 부스럭거리며 산행을 준비한다. 새벽 일출을 보려는 사람도 있고, 갈 길이 멀어 일찍 떠나는 이들도 있다. 난 피곤했는지 중간에 깨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니 6시에 일어났다.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밤새 눈이 왔었다. 세석산장 주변은 온통 눈천지다. 눈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고, 길은 이미 눈으로 덮이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김치찌개. 있는 김치를 다 넣고 요리하는데, 맛이 영 나지 않았다. 함께 간 사람 중에 요리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산 중이니 이렇다 할 양념이나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다. 그저 있는 김치와 참치로 찌개를 만들었다. 어제의 만찬이 간절히 그리워졌다. 김치찌개는 그저 그랬고 밥알은 까칠했다. 결국 다시 국에 밥을 말아 먹기로 했다. 역시 부드럽고 뜨거운 것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 시간이다. 산에서는 세재를 쓰지 않기로 한데다가 겨울이니 음식 닦아내는 게 문제다. 하지만 아주 간단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 물론 산에서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게 제1원칙. 그 뒤에 남은 요리의 흔적은 눈을 긁어다가 넣고 밥을 비비듯이 쓱쓱 문지르면 눈이 살짝 얼어 알갱이가 되면서 찌꺼기들을 깨끗이 빨아들인다. 거기에 마시던 커피를 조금 남겨서 넣고 휴지로 골고루 닦아주면 음식냄새마저 사라진다. 이는 라면이나 찌개를 해 먹은 뒤 설거지 할 때 매우 유용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눈길과 눈꽃, 그리고 눈축제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아침먹고 짐을 꾸려서 세석산장을 나간 시간은 7시 반. 벽소령까지 길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다시 그곳에서 작전도로를 타고 음정마을까지 3시간반 정도. 점심 시간까지 대략 8시간 반 정도 예상하고 출발했다.

어제는 맑고 화창한 겨울날씨, 오늘은 눈내리는 겨울날씨다. 지리산이 겨울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친절한 지리산은 정말 오랜만이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느낌도 좋다. 새도 눈길을 총총 밟고 갔나보다. 꿩일까?






8시경에 영신봉을 지나면 수많은 나무계단의 내리막길이 나온다. 벽소령에서 세석을 갈 때면 여기가 가장 힘들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계단이다. 반대로 세석에서 벽소령으로 갈 경우 계속 내리막길이니 그다지 부담이 없다. 경치를 감상하면서 갈 수 있으니 즐겁다. 칠선봉에 도착한 시간은 영신봉을 떠난 후 약 한시간 뒤인 8시 50분.

칠선봉은 주위의 바위들을 유심히 보는 재미가 있다. 예전부터 산에 있는 바위에 살아 있는 생명의 모습을 찾아내어 이름을 붙인 건 바위의 영험에 기댄 토템신앙의 발현일 것이다. 칠선봉 주위의 바위에서 인간의 형상을 찾아내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칠선봉을 지나 약 40분 쯤 더 가니 선비샘이 나온다. 날씨는 분명 영하로 내려간 날씨인데도 샘은 얼지 않았다. 물의 양도 풍부하다. 여름날에 비해 적긴 하지만 겨울철의 샘치고는 부족함이 없다. 맑은 선비샘의 차가운 물을 마시니 속 깊숙한 곳까지 겨울의 냉기가 싸하게 내려간다.

선비샘에서 약 30여분 가면 구벽소령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벽소령길이 시작되는 데 1km가 조금 넘는 거리로 평탄하게 이어진다. 벽소령길은 편안하게 산책하듯이 갈 수 있다. 오솔길을 걷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름다운 것은 위험하다-벽소령                                              

벽소령은 오른편으로 기암괴석들이 깎아지르듯 서있다. 왼편으로는 계곡쪽을 향해 가파른 낭떠러지다. 길이 넓으니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다보면 “낙석주의” 표지판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왼편으로도 안전줄이 계속 쳐져 있다. 그만큼 위험을 내재한 곳이다.


 


벽소령 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경. 눈발이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쪽에서는 눈이 빠르게 녹았다. 특히 벽소령 산장의 지붕에서는 눈이 녹아 내리며 처마끝에서는 물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일행은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김치와 라면, 캠핑가스가 부족해 이곳에서 추가로 구입해야 했다. 지리산의 산장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산밑에서 사는 것보다 약간의 웃돈을 더 내야하지만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산장에서 먹을 것을 구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산장도 미쳐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물건이 품절될 수 있으니 산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건 비상시나 반드시 필요할 때만 하는 게 좋다.






가을과 겨울이 겹치고 있는 길, 작전도로                                      





 

벽소령에서 하산길은 음정마을로 잡았다. 음정마을로 출발한 시간은 12시 20분. 작전도로길은 초반 100m정도만 가파를 뿐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이 옛군사도로다. 평탄한 길로 6.4km정도인데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산책길이라고 보면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산에 온 것이 아니라 멋진 옛길을 걷는 것 같다.

벽소령을 내려가니 양지바른 곳에는 눈이 녹았고, 그늘진 곳은 눈이 많이 쌓여있다. 눈이 쌓인 곳도 이미 속은 얼어 있어 올라가도 많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양지바른 곳은 마치 가을길처럼 낙엽 썩는 냄새마저 났다.

이곳 벽소령 작전도로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운치있는 길이다. 하산길에 일행은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특수성도 있겠지만 이 길은 원래 등산객들이 잘 타지 않는 길이다. 그러다보니 더 고즈넉하고 운치있다. 또 지리산 능선을 타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더 이상 등반이 어려울 경우 탈만한 하산길이다.





 

즐겁게 눈싸움도 하고 떠나온 지리산 봉우리들을 뒤돌아보면서 내려가니 어느새 음정마을이다. 음정마을은 조그마한 마을이다. 음정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2시 반 정도. 하산길이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음정마을을 벗어나면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함양 가는 버스의 시간 간격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산골짝까지 오는 버스가 많지는 않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때 때마침 버스가 왔으니 우리는 참 운이 좋은 편이다.





버스는 조금 더 올라간 양정마을이 기점이었다. 양정마을에서 10분 정도 쉰 버스는 오후 2시 35분경

출발해 음정마을을 거쳐 함양으로 달렸다. 함양에 도착한 것이 오후 3시 30분, 함양까지는 약 한시간 거리인 셈이다. 함양발 서울행 버스는 이미 군내버스 기사님이 전화예매를 해주셨다. 우리가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난 것이다. 만일 아저씨가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오후 5시에나 있을 서울행 버스를 타야 했을 것이다. 함양에서 출발한 버스는 약 3시간 40분만인 7시 10분에 서울 동서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여유있게 즐긴 산행이었는데도 서울에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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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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