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와 내가 체험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육체적인 고통도 있었지만, 그 환상적인 체험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매번 고민이다. 제일 앞에 놓을 사진을 생각하다가 법환포구를 지나 서건도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보았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돌을 정리해 가꾸었을 저 길에서는 땀냄새가 났다. 그것은 짭쪼름한 바다냄새와는 달랐다. 그 순간 내 모든 감각기관들이 짜릿하게 정전기를 일으켰다.

등산이든 트래킹이든 첫날 걷는 것이 힘들다. 더군다나 숙소 문제로 꽤나 고생을 하는 바람에 이래저래 피곤했던 하루였다. 둘쨋날은 새로 숙소를 잡고, 차를 렌트하느라 오전 시간이 바빴다. 4월의 제주는 비수기라서 매우 저렴하게 차를 렌트할 수 있다. 아반테를 30시간 렌트하는데 6~7만원 정도. 제주에서 서귀포로 가는 택시가 3만원 정도하는 걸 생각하면 차를 렌트하여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레이싱걸? 뭐 차 옆에 있으면 레이싱걸이고 운전대 잡고 있으면 카레이서다. 멋대로 생각하고 즐기자. 여행이란 나를 낯선 곳으로 보내 낯선 나와 마주하는 것.





위의 사진은 숲터널로 가기 전 삼나무 숲길 사진이다. 실제 숲터널은 나무들이 도로 위를 덮고 있는 모습이다.(숲터널 사진 보기) 지도를 놓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관통하는 길(5.16도로)에 있다. 차를 렌트한다면 한번쯤 드라이브 코스로 잡아도 좋다. 제주에서 서귀포방향으로 가다보면 사진처럼 삼나무숲길이 먼저 나오고 이후 나무들이 지붕을 만들어 왕복 2차선 도로를 덮고 있는 길이 나온다. 그곳이 숲터널이다. 제주의 해안도로도 좋지만 한라산의 숲터널도 추천할 만한 드라이브 코스다.






오늘 일정은 다시 찻집 솔빛바다에서 시작했다. 마침 제주 올레길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에 설문조사에 잠깐 응하고 기념펜을 선물로 받았다. 출발하며서 만난 숲에 내리는 아리한 아침햇살이 어여쁘다.





7코스는 바다 산책로에서 시작된다. 조금만 가다 보면 외돌개를 만나고 일명 '폭풍의 언덕'에 도착한다. 왼쪽으로는 절벽 아래로 쪽빛바다가 넘실거리고, 오른쪽으로는 숲이 아름답다.








사진에 우뚝 솟은 바위가 외돌개이다. 그리고 외돌개 오른편 툭 튀어나온 곳이 일명 폭풍의 언덕. 이렇게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외돌개 주변은 남주해금강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로 유명해 중국과 동남아 사람들이 많이 찾아 왔다.








외돌개는 화산이 분출할 때 형성된 것으로, 바다에 외로이 서 있는 바위라고 하여 외돌개라고 불린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제주를 강점하고 있던 몽고인 세력 묵호를 평정할 때 이 외돌개를 장군으로 치장해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돔베낭길 가기 전. 노란 유채꽃과 보랏빛 자운영?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들판에 꽃들이 가득하다. 그 위로 바람이 지나는 흔적이 사진에도 보일까?  










어제의 사건과 사고, 피곤함도 금세 잊혀졌다. 아름다운 풍광과 길이 피로회복제다. 다리에서는 다시 힘이 나고, 발바닥은 금방 달아올라 가볍다. 인생의 목표는 길 끝에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의 지혜는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배움은 내 발자욱 밑에서 자라는 것이며, 많은 길 위에 더 큰 배움이 있다. 
 






 


돔베낭길. 제주 말로 '돔베'는 도마이고, 낭은 '나무'다. 즉, '돔베낭길'은 '도마나무 길'이라는 말이다. '도마'는 입이 도마처럼 넓은 나무를 일컫는 말인데, 이곳에는 그런 나무들이 늘어서 있어서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외돌개에서 돔베낭길까지 약 2.5km의 길은 올레길 전체를 통틀어서도 멋진 길 중의 하나로 이곳만 걷는 관광객들도 꽤 많을만큼 풍광이 좋기로 소문났다. 구간마다 해안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어 해안의 자연이 빚은 조각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했다.




어제도 보았던 나무들이였는데, 이렇게 지천으로 자라 천지를 피빛으로 붉게 물들여 놓았다.



어제 서귀포칼호텔로 들어가는 길도 쪽문을 통하더니 이날도 돌담을 약간 허물어 튼 길을 만났다. 선명하게 나 있는 파란색 화살표가 이곳이 올레길임을 말해 주고 있다.





미라 키가 훌쩍 커진 듯^^. 뒤에 주차된 차량만 아니었으면 꽤 좋은 사진인데 하는 아쉬움이...



호근동 위생처리장. 공공기관이지만, 이렇게 항상 문을 열어놓고 올레 여행객들을 반겨 주고 있다.
이런 친절한 배려의 안내판이 참 반갑고 고맙게 여겨진다.



 


속골 휴양지 가는 길에서.



속골휴양지 입구. 열대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 삼나무숲이나 플라타너스 나무 길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 묘한 감정을 자극한다.



길이 아닌데 미라는 개만 보면 사진에 담겠다고 다가섰다. 미라가 다가서는 그 길에도 개가 몇마리 묶여 있었다. 미라에게는 예전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결혼하기 전에 그만 저 세상으로 떠났다. 지금도 그 강아지(이름은 '동이') 얘기만 하면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올레길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길은 차도 옆으로 난 아스팔트 도로다. 길이 주는 피곤함은 거기서 배가된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니 그런 길은 사진으로도 담지 않았다. 다음으로 돔베낭길처럼 잘 가꾸어진 길도 길 자체로만 보면 위 사진의 길 보다는 하급이다. 그냥 경운기나 달구니들이 다녔을 법한 정다운 길이 좋다. 흙기운 때문인지 발도 덜 피곤하다.



스모루 소공원의 징검다리. 미라 앞에 가는 올레꾼의 모습. 돔베낭길을 벗어나서는 다시 사람이 별로 없다. 이날도 수녀 두분과 홀로 가는 저 앞에 남자 분, 그리고 젊은 여자 두 분 이렇게만 볼 수 있었다.







안내서에는 많은 지명들이 나오지만, 정작 해당 지역에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속골휴양지-스로루소공원-철다리-징검다리 언덕길-바위를 뚫고 지나는 길-수봉로로 가면서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당혹스러웠다.

수봉로는 염소가 지나다니던 길을 2007년 김수봉 님이 손수 삽과 곡괭이로 돌을 놓고 길을 다듬어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이의 정성과 배려를 느낄 수 있을 길이지만 정작 정확한 지점에 안내된 표지가 없어서 안타깝다.



공물해안길.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다.



법환 포구 마을 진입 전. 포구마다 있는 마을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바다로 내려와 삶의 터전을 일구어 만든 곳, 포구. 포구들마다 하나둘씩 있을 만한 사연이 궁금하다. 그물을 다듬고 있을 어부나 망태를 들고 마을길을 돌아나오는 할망을 보면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만나는 마을에서 눈이 맑고 미소가 아름다운 그이와 함께 걷다보니 풍경들 하나하나가 가슴을 흔든다.
















 

서건도 바다산책길. 안내서에는 서건도로 나와있다. 시간이 좀 남는다면 서건도에 들어가 볼 수도 있었겠지만, 갈길이 바빴다. 올레길이 그리 만만히 볼 곳이 아님을 실감했다. 돔베낭길에서도 바닷가에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길을 재촉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사람들이 즐겨찾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이 꾸며놓은 조형물들이 제주의 뛰어난 풍경과 제법 잘 어우러졌다. 실상 제주는 잘 꾸며놓은 관광지보다 이렇게 자연이 빚은 예술품들을 감상하며 자신만의 예술품을 창작해 보는 것도 여행의 큰 기쁨이 아닐까?



차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그 길. 올레길의 매력이다. 걷는 것의 즐거움, 내 어깨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일까? 아니 제 흥에 겨워 꽃들과 함께 어우러지다.







제주 청보리(일 거다). 제주의 밀인가 해서 찾아보니, 제주에서는 밀이 재배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 정보가 있다. 아무리 봐도 난 사진발 정말 안 받는단 말이지. 





다시 바닷가 길로 접어든다. 곧 악근천을 만난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걸을 때 쯤 우리들 그림자도 많이 길어졌다. 꽤 시간이 흐른 것. 뒤에서 사진을 찍자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뭘 하려 하나 보니 그림자 사진을 찍자고 한다. 녀석들도 우리 쫓아 오느라 고생이 많다며...


사진에서 멀리 끝 쪽에 악근천이 있다. 악근천을 바로 넘지 않고 돌아가야 한다.





악근천을 돌아 풍림리조트 후문으로 가는 길의 초입은 비닐하우스촌이다. 마을길을 좀 지나다보면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그리고 얼마 안가 풍림리조트 후문이 나온다.



풍림리조트 안으로 악근천이 흐른다.





풍림리조트 안으로 난 올레길. 예쁘게 꾸며져 있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친절한 안내표지도 잘 되어 있어 반갑다.



주상절리대. 풍림리조트를 나가는 쪽의 우측 절벽 모습이다. 인공적으로 꾸민 것처럼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지만, 자연의 손이 빚은 예술이다. 내일 8코스에 주상절리를 가는데 여기서 가까이 보니 좋다.



풍림리조트를 나와 얼마 안가면 화훼단지를 지난다. 옆으로 있는 비닐하우스가 화훼단지. 그리고 강정마을과 강정포구를 지나는데, 이 구간이 한창 공사중이었다. 7코스는 모두 좋았는데, 마지막에 트럭들이 내뿜는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주민들의 편의와 삶을 위한 개발이라면 그도 인정할 수 있겠지만, 딱히 그런 것이 아닌 투자라는 명목의 개발이 이 땅에 만연해 있다. 그런 개발들은 꼭 강의 흐름을 막고, 산의 지형을 변화시킨다. 제주에서 오래 살았던 노인분들은 개발되기 전의 제주도가 훨씬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우리가 올레길에서 본 제주의 풍경들 중에서도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길들이 더욱 정감이 갔다. 이중섭 화가나 김영갑 사진 작가가 자신의 캔버스와 프레임에 담은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진정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월평포구. 포구라고 부르기에는 웬지 쑥스러울 정도로 작은 포구였다. 저 작은 포구도 폭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 때면 자기 안으로 숨어든 배들을 포옥 안아줄 것이다. 모든 포구들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이로써 7코스도 마무리됐다. 이른 점심을 먹고 출발할만큼 늦은 시작이라서 서두르다 보니 사진도 많지 않다. 돌아보면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는 게 많이 아쉽다. 그러나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추억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함께 걸었던 그 길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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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중략)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칼릴 지브란


제주의 4월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월요일 하루 내내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친 후라 그런 것일 게다.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한 기운이 넘친다. 걷기 좋은 날이다. 흙도 부드럽게 발을 감싸준다.

제주올레길을 걷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말렸다. 결혼 준비며 손님 접대며 이래저래 피곤할 터인데, 여행만은 편하게 쉬다 오라는 어른들의 말씀도 그렇고, 직장 다니면서 장기간 여행가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특별한 여행지를 찾아 가는게 좋지 않느냐는 친구들 말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제주도는 마음만 먹으면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니 굳이 고집피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편하게 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가만히 차려놓은 차림표대로 이곳저곳 데려다 주면 의미도 모른 체 구경하고 똑같은 사진 찍는 일은 불편하다. 그렇다고 해외 자유여행을 꼼꼼히 계획하고 실행할 시간과 여력도 쉽게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한 제주올레길 여행. 참 잘 다녀왔다. 지금도 제주의 하늘과 바람과 사람들이 우리 사이에서 춤춘다.




6코스는 쇠소깍에서 시작해 제지기오름을 오르고, 칼호텔과 파라다이스 호텔 앞을 지나 서귀포 시내를 관통하고, 다시 천지연폭포 생태공원을 둘러본후 외돌개로 오는 코스다. 아스팔트길이 많아서 첫날코스로 잡는다면 좀 힘들 수도 있다. 또 중간에 식사를 하겠다면, 정확한 장소를 잘 파악하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 뽑은 올레코스 지도에 나온 식당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미리 김밥이나 간식거리를 준비한다면 좀더 수월할 것이다.




 
바로 엊그제 결혼을 한 우리는 사실 피곤하기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하자고 주문을 걸어보지만 결혼식이란 게 어디 그리 편하겠는가. 긴장감으로 굳은 몸과 마음을 추스리는 시간으로 하루는 짧은 감이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저 호텔방에 죽치고 앉아 멀뚱멀뚱 먼 바다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 언제나 창조는 시작에서 비롯되고, 그 시작은 결단에서 나온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면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 길을 나서니 봄꽃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쇠소깍은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효돈천 끝에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깊은 소이며, 쇠소깍의 '쇠'는 '효돈'의 옛이름이고, '소'는 연못, '깍'은 제주 방언의 접미사로 '끝'을 의미한다. 이곳은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으로 빼어난 풍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신분의 문제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가 이곳에 육신을 내던졌다는 쇠소깍 전설은 여느 이름 있고 아름다운 소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물은 생명과 죽음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니,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소에 몸을 던져 죽은 이들이 이승에서 못이룬 사랑을 저승에서라도 이루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구전된 것이리라.

쇠소깍 전설 보기





위 사진에서 보면 오른편에 파란 화살표가 보이고 왼편 위쪽 나뭇가지에 걸린 천쪼가리가 보인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표지이다. 궁색하기 그지 없지만,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길을 헤맨다 싶을 때면 나타나니 반갑기 그지 없다.




제주의 풍경에는 집들도 한몫한다. 평범한 서민의 집들도 그렇지만, 부유한 사람들의 별장이나 여행객을 유혹하는 펜션들은 그림 같다. 옆의 사진의 집 입구는 저렇게 나무를 인위적으로 휘어서 꾸며놓았다. 대문을 대신하는 나무의 그늘이 들어서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하겠지만, 웬지 나무들이 서글퍼 보인다.
























 
제주를 삼다도라고 한다.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고 한다. 사진 한장에 담아본 돌과 바람과 여자. 돌담길은 정겹다. 거기에 얼키설키 담쟁이 덩쿨들도 반갑다. 바람이 불어 준다. 돌담길을 따라 흐르는 바람을 맞아 활짝 웃었다.




제지기 오름 초입.
옆의 이주일 별장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코메디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주일 씨가 말년 폐암과 싸우던 그 집이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금연 광고에 출연한 이주일 씨의 말은 웃음을 앗아간 무서운 담배의 존재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주일 별장을 옆으로 끼고 제지기 오름으로 오르는 길이다.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피곤하던 차에 다시 산길로 들어서니 반갑다. 흙길이 좋다.



제지기 오름.
제지기 오름은 야트막한 오름이다. 입구에서 정상까지 쉬지 않고 간다면 15~20분이면 충분하다. 정상에는 동네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이 있고, 전망이 좋은 곳은 잘 정비되어 있어 다리쉼을 하기도 좋다. 여기서 우리는 가져온 맥주를 하나 나누어 마시고 쉬었다. 바닷가 공기와 숲의 바람이 어우러져 나른한 봄날을 전해주었다.




제지기 오름에서 바라본 보목항구. 오밀조밀한 집들과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오름길에서 만난 오름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여력이 된다면 꼭 올라보길 바란다.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재미다.


보목항구의 집들. 대문 대신에 있는 줄, 돌담 위의 빨랫줄, 햇볕 좋은데서 말리고 있는 해초... 작은 항구 마을에서 목격하는 정다운 풍경들이다. 여행은 평범한 것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여행은 평범을 향한 다가섬이어야 한다. 일상의 다정함을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다.


보목항구 근처에서.
모든 자연이 하늘과 바람과 물과 대지의 기운에 힘입어 꽃을 피운다. 담장 위에도 아스팔트 사이에도 들판에도 산에도 꽃들이 활짝 피어난다. 누군가가 그랬다. "여행이란 '여기 아닌 어딘가'로 가는 것이며, '어제 같지 않은 내일'을 확실하고도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이다"라고. 겨울의 문이 닫히고 봄이 생동하는 지금, 이 길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길은 끝나지 않으리라.





















 


4월의 제주도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북적인다. 웬만한 관광지에는 학생들의 생기발랄한 떠들석함으로 시끄럽다. 지방 여기저기서 모여든 아이들의 귀여운 사투리를 듣는 재미를 안다면 그리 불쾌하진 않으리라.


유채꽃도 다 졌겠지, 싶었는데 막상 돌아다니다 보니 여전히 화려하게 잘 피어나고 있더라. 멀리 보이는 외로운 섬과 바닷가에 피어난 유채꽃이 아름답다.































비닐하우스 안을 기웃거리니 어여쁜 꽃들이 또한 지천이다. 아마 난꽃이 아닐까? 잘 아시는 분 있다면 코멘트 부탁드린다. 색깔이 고왔다.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지난해 여름(7월)에 왔을 때는 해안가에서 한라산을 보기 어려웠다. 아마도 너무 습한 기온이 연무현상을 일으켜 한라산을 지운 것 같았는데, 요번에는 어디서나 가리는 것만 없다면 내내 한라산이 우리와 동행했다. 사진처럼 항상 꼭대기 부근은 흰구름을 걸치고 앉아 있었다.




보목항구에서 서귀포칼호텔로 가는 중.
멀리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이중섭 화가도 저 섬을 배경으로 풍경화를 그렸는데,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자연이 주는 영감은 옛사람과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게 해 준다. 

보목항구를 나와 보목 배수펌프장과 구두미포구를 지나 서귀포칼호텔로 들어간다. 보목항에서 칼호텔까지는 좀 지루한 길이다. 내내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해서 발도 아프다. 이런 길은 자전거로 달리면 제격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서귀포칼호텔로 들어가는 입구. 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틈새에 길을 낸다고 했을 때 적합한 말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도 호텔로 들어가는 길이라서 그럴까. 어릴적 골목길에서 놀다가 옆집으로 넘어간 공을 찾으러 몰레 남의 집에 갈 때처럼 설렌다.

























 


서귀포 칼호텔의 호수 풍경. 칼호텔은 제주시에도 있고 서귀포에도 있다. 서귀포 칼호텔은 이처럼 넓은 정원과 멋진 풍경을 가지고 있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반면 제주 칼호텔의 경우 제주시내에 위치해 있어 공항과 가깝게 위치한 편의성으로 업무차 방문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우리 둘다 취향이 비슷하다는 점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르겠다. 여행, 특히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시골을 좋아하며, 자연을 향한 동경도 비슷하다. 이번 여행도 어쩌면 힘들고 피곤했을 텐데, 단 한번의 투덜거림도 없이 항상 씩씩하게 다니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건강함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서귀포 칼호텔 내부의 야자나무길. 중문관광단지 안에는 많은 특급호텔이 있는데, 저마다 아름답고 거닐기 좋은 정원을 잘 꾸며놓았다. 이곳 서귀포칼호텔과 파라다이스호텔의 내부가 올레길에 포함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마음껏 날아보는 이유다.
















 







 



 




몇몇 관광지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제외하고 올레길 대부분은 정말 조용히 단 둘이 걸을 수 있었다. 아주 간간히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보기는 하지만 한코스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수에 불과했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제주올레가 널리 알려졌고, 웬만한 택시기사들도 올레길을 다 알고 있을만큼 보편화되었다고 하지만 주중에 올레길을 찾는 여행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더 고즈넉하고 즐거운 여행이었을 것이다. 마치 우리 둘만을 위해 온 세상이 꽃길을 가꾸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호텔을 벗어나 소정방폭포로 가기 전. 돌담을 약간 허물어 일부러 길을 낸 것 같았다. 길은 경계를 허물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말이다.

6코스에서는 보목항구를 벗어나 칼호텔까지의 길이 좀 지루하다. 그리고 호텔들을 벗어나면 정방폭포로 향하는데 이 길은 지루하지 않지만 관광지라서 소란스러움이나 번잡함은 각오해야 한다. (물론 길에서는 한적하다, 관광지 가서 그렇다는 말이다.)

사진은 파라다이스 호텔의 대지였을 것이다. 제주 특유의 돌로 만든 계단과 옆으로 가늘게 뻗은 대나무들이 자여스럽게 그늘을 드리워주었다. 봄날의 따가운 햇볕을 시원하게 녹여준다.


















 

 


소정방폭포. 올레길에서 정방폭포 전에 있는 소정방폭포. 정방폭포는 입장료를 받지만 이곳은 그냥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한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저 밑에서 폭포수 안마를 받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올레6~7코스는 이렇게 인위적으로 잘 꾸며놓은 길들이 참 많다.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이 보기는 좋지만 자꾸 보니 실증도 나기 마련. 어떤 이는 이런 6코스가 가장 재미없다고도 한다. 인공적인 맛, 마치 미원으로 맛을 낸 것 같은 느낌이라서가 아닐까.



정방폭포. 유명 관광지인만큼 사람들이 많다. 결혼 시즌이라 그런지 커플들도 눈에 많이 띄지만, 그래도 아이들만큼은 아니다. 단체관광을 온 노인분들도 보인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물줄기는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모르지만, 장관이었다.





정방폭포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해산물들. 이게 만원어치이다. 한소쿠리에 2만원씩 하는 거 우리는 사정해서 만원어치만 달라고 했다. 소주도 팔고 있다.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정방폭포 옆에 있는 서복전시관. 우리가 갔을 때는 내부 공사중이라서 구경할 수 없었다. 서복전시관은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와 관련된 서귀포 지명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 잠깐 시간내서 읽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서복전시관 안내문 보기







정방폭포를 나와 소낭머리 전망대를 지나 서귀포 초등학교로 갔다. 관광지에서 내내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과 비명 소리를 들었음에도 여기 초등학교에서 듣는 아이들의 소음은 정겹기만 하다. 피시방 등에서 보면 아이들이 쏟아내는 욕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데 어른들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경쟁의 세계로 내몰고 있다. 국제중학교에 일제고사에,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은 못난 어른들이다. 

서귀포초등학교를 지나 이중섭 미술관을 찾았다. 여기는 시내길이라서 자칫하면 화살표를 잃을 수 있다. 안내표지를 잘 찾아서 이동하고, 가급적이면 시내 지도를 이용해 이중섭 미술관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이 좋다.

이중섭 미술관 일대는 이중섭 공원으로 만들어 이중섭 화가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섭 미술관 내 포토존. 강한 붓터치에 붉은색 톤의 소 그림이 방금 막 그려낸 듯 생생하다.

이중섭 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서귀포. 멀리 보이는 게 아마 섶섬이 것이다.(틀리면 지적해 주세요^^) 즐비하게 서 있는 관광버스들. 서귀포의 풍경이다.




























 




이중섭 공원을 나와 천지연생태공원. 보이는 붉은 잎들은 처음부터 붉게 나지는 않은 듯하다. 녹색이었던 잎들이 마치 단풍이 들듯이 불게 물들었다. 봄날의 단풍구경하는 듯 신기하기만 하다.





어느 꽃은 이미 져서 저렇게 골목길 담장 아래에서 마지막 붉은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봄은 매우 짧다.


6코스의 막바지에 있는 어려운 코스 삼매봉이다. 물론 여길 오르지 않아도 되지만, 산사람 미라와 나는 이 길 또한 놓치지 않는다. 기어이 또 오르기 시작했다. 한때 제철을 만나 흐드러지게 피었을 꽃잎들이 길 위에 뿌려져 있다. 사뿐히 즈려밟고 나아갔다.






















 
 
 
 
 


한참을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피곤할만도 한데, 어디서 그런 체력이 샘솟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짧은 언덕길에 불과하지만 등줄기를 흐르는 땀은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 멀리 한라산을 바라본다. 이번 여행에는 한라산을 넣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꼭 저 산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삼매봉 언덕에 있는 체육공원.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잘 된 편이다. 설치 뿐만 아니라 보존 및 관리도 중요하다. 부디 흉물로 방치되지 않기를...




사실 이 날 10시 30분에 시작한 올레길 여행은 삼매봉을 올랐을 때는 4시를 훌쩍 넘겨버리고 말았다. 이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된 점심식사도 하지 못했다. 기껏 준비해 간 육포와 맥주, 과자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제주올레 웹사이트에서 추천한 식당은 여간 꼼꼼하지 않으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당초 계획했던 식당을 놓치니 그대로 끼니를 거르고 만 것이다. 게짬뽕을 간절히 부르짖어 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왔다. 지금 이 시간도 제주의 게짬뽕은 어떤 맛일까 무척 궁금하다.




삼매봉을 내려오면 외돌개로 길은 곧장 이어진다. 잘 가꾸어진 길이라 반갑긴 하지만 차라리 저 나무판 길이 없었다면 어떨까 싶다. 그냥 풀과 흙과 돌들이 어지러운 길을 따라 간다고 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사람들의 발자욱으로 만든 작은 오솔길도 걸을 만하다. 굳이 이렇게 아까운 나무들을 또 베어냈을 것을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외돌개 가는 길. 바다 빛깔이 참 좋다.




외돌개 초입의 해안가. 당일날에는 여기가 외돌개인 줄 알았다. 다음날 외돌개라는 명칭의 뜻을 알고, 진짜 외돌개를 보았지만, 이곳 풍경도 매우 아름다웠다. 바람과 파도가 빚은 온갖 형상들이 청록색 바다빛깔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화를 만들어냈다.



 
전부터 짐작은 했지만, 미라는 남자로 태어났다면 개구장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을 것이다. 왼쪽 사진의 경우 나도 오르기 힘든 바위 위를 어떻게 올라갔는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웃고 있다.



























6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솔빛바다 찻집. 많은 올레꾼들이 여기에 모인다. 주인장이 추천한 여러가지 차로 여행의 피로를 달래고 여행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즐거운 추억을 나누는 재미도 좋다. 시내로 나가는 택시를 불러달라면 주인장이 친절히 직접 전화해서 불러 주니 도움을 요청하자. 



 


 


이로써 제주 올레 6코스 여행을 마쳤다. 안내서에 따르면 15km로 나와 있지만 관광지에 들어가고 삼매봉에 오르고 한 것을 생각하면 족히 16km 이상은 걸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침 한끼 먹고 10시 30분에 시작해서 5시 30분에 끝났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여행 내내 함께한 동행이 있어서 가능했다. 길은 우리 뒤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이 길을 만들고 언제나 나아갈 힘만 있다면 길은 우리 앞에서 계속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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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의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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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을 다녀온 서명숙 씨는 각자의 공간에 ‘카미노’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하고 자신의 고향 제주도에 ‘제주올레’를 만들었다. ‘올레’란 ‘거리길에서 대문까지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아무리 길이 흔하다고 하지만 걷고 싶은 길을 만든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길이 있다고 해서 다 걷기 좋은 길도 아니다. 걷고 싶은 길에는 문화가 담긴 풍경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그 지역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순례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길 위에서 꽃핀다. 또 길을 만들어도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면 그 길은 지워지기 마련이다. 앞사람의 발자취가 느껴지고 뒷사람을 위해 함부로 발 디딜 수 없는 그런 길이 진짜 길이다.

제주도 여행 둘째 날은 바로 그 제주올레 첫 번째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6시간 이상 20km 가까이 걸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트래킹은 내가 넣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백두대간의 여운이었을까, 걷는 게 좋다. 트래킹이 없었다면 제주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첫번째 길의 시작점인 시흥초등학교는 먼저 성산까지 렌트카로 이동하고 그곳에 차를 주차한 다음 시흥초등학교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렌트카가 없을 경우 제주나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회선 일주도로를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시흥리에 내리면 된다. 1시간 좀 더 걸리며, 운임은 3000원 정도(변동 가능). 우리가 시흥초등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5분. 중산간 지역에 있는 학교라서 그런걸까. 작은 규모이지만 깔끔한 잔디운동장이 마음에 쏙 든다.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먼지 하나 묻지 않을 것 같은 깨끗함이 느껴졌다. 시간만 된다면야 폴짝폴짝 뒤어다니면서 다방구 놀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날 가야할 길이 멀다.





▲ 뒤에 보이는 작은 언덕이 말미오름(혹은 말오름)이다.
올레 첫길은 초등학교 옆으로 돌아서 그 오름을 오른다.


걷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단 육체적 건강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는가. 경보 하듯이 걸어다니거나 심지어는 뛰어 다닌다. 대중교통이 1~2분만 지연되도 분노수치가 올라간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나머지 걷는 것도 잊어버렸다. 걸음을 못 걷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주위 사물과 교감하고 하늘을 보며, 땅을 생각한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한번 더 살펴보고 관조할 수 있는 여유와 철학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여행객들이나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목적지는 라싸나 산티아고가 아닌 바로 그 자신이다. 신 앞에 겸손해진 자아를 이끌어내며 걷는 것, 그것이 걷기의 철학이고 순례길이 담고 있는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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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미오름에서 맞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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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는 길바닥과 돌담, 전봇대에 진행방향을 가르쳐 주는 안내 표시가 있다. 백두대간처럼 리본으로 길 안내를 하던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페인트로 칠해진 화살표가 낯설고 눈에 거슬린다. 조만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된다면 멋들어진 이정표가 사람들을 맞아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무튼 길 잃어버릴 일은 별로 없다. 단지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시흥초등학교 옆길로 해서 말미오름을 옆으로 돌아가는 돌담길이 나온다. 바닥에 나온 표시에 주의하면 길은 찾기 쉽다. 한적한 돌담길을 걷다보면 슬슬 땡볕이 거슬린다. 바람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주면 좋겠지만, 산밑이라서 아직은 덜 시원했다. 여름에는 덥더라도 반드시 긴팔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제주도 햇살을 쉽게 봤다가 지금 팔뚝이 허물을 벗고 있다.

그래도 고즈넉한 제주도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밭일 마치셨는지 망태기 들고 점심 드시러 가는 할망(할머니의 제주도 방언)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도 드리자. 반갑게 웃어주는 할망의 주름진 얼굴도 제주가 주는 선물이다. 환국은 배가 고팠는지 돌담 옆에 버려진 감자에 관심을 가졌다. 얼마전까지 밭에는 감자가 심어져 있었나보다.



 

말미오름을 본격적으로 오르는 초입에는 시흥리 청년들이 내건 현수막도 눈에 띈다. 제주올레를 방문하신 분들을 환영한다는 내용이다. 오름에 오르는 길은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 있어 편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아져서기도 하겠지만, 제주올레를 만드는 이곳 사람들의 정성과 관심이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20분 정도 오르니 목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제주올레 팸플릿에는 걸쇠를 열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걸쇠가 아닌 끈으로 묶여 있었다. 넘어가면서부터는 목장이다. 말이나 소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문을 잠가 놓는데, 이후에 나오는 다른 문들은 걸쇠로 되어 있어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오름에서 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연무 때문에 아주 멀리까지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오름 아랫동네와 성산 앞바다까지는 아주 잘 보였다. 예전 한라산에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제주도가 보다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선 듯한 느낌이다. 바람은 또 어찌나 시원하게 불어주던지, 여기 오면서 흘렸던 땀을 순식간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 제주의 검은 흙이 녹색과 대비되어 두드러지게 보였다. 밭을 갈아 놓은 뒤 아직 작물을 심지 않았다.

▲ 멀리 희미하게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까마득하다.
그러니까 이날 걸어야 하는 거리는 저기를 넘어 그 다음 섭지코지다.




▲ 여행객들을 위해 벤치도 마련해 놓았다. 목책을 따라 가면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 가능하면 카메라를 가져가자. 휴대전화 카메라까지 동원됐다. 각자가 담은 풍경들은...


설마 클릭하는 건 아니지?

말똥. 목장은 지뢰밭.

우리가 걸었던 길은 목장길이다. 목장길이니 말이 뛰어다니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는 소보다 말이 많았다. 말들이 뛰어다니고 힝힝거리며 발을 구르는 모습을 텔레비전이 아닌 목장에서 보는 재미도 좋다.

단, 발밑을 조심하자. 말똥이 천지다. 유감스럽게 아무도 똥을 밟지 않았는데, 나만 두 번이나 밟았다. 풀들을 먹고 사는 놈이라 똥이 냄새도 없고 또 오래된 똥은 흙색과 비슷한데다가 풀속에 숨어있어서 잘 보고 다녀야 피할 수 있다. 경치 좋다고 둘레둘레 다니다가 똥을 두 번 밟았지만, 소똥 밟으면 재수가 좋다는 말에 빗대어 히히덕거리며 좋아라했다. 똥 밟는게 좋을리 없지만 경치나 바람, 그리고 걷는다는 것에 취했던 것이다.

천연거름 덕분인지 야생화가 참 많고, 그에 어울리는 갖가지 나비들이 춤을 춘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이름모를 야생화들 틈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목가적 풍경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멀리 펼쳐진 제주의 들판과 바다를 보는 재미가 합쳐졌다. 원경과 근경 모두가 즐겁다.

 





▲ 말미오름을 잠깐 내려와서 오름과 밭 사이로 난 오솔길.




▲ 초지에 길표시가 없다고 걱정할 것 없다. 땅에 있는 돌맹이 위에도 표시가 있고, 나무에도 표시가 있다.




▲ 배가 고프다며 쳐지기 시작한 환국.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배고파 산딸기도 따먹었다고 한다.











▲ 말들을 풀어 키우고 있고, 목장 한곳에는 제주도식 무덤도 있다.



▲ 좋댄다.



▲ 내 앞에 간 죄로 뒷모습만 찍혔다. 물론 의도적으로 현상이는 사진찍히는 걸 피했다.



▲ 사람들이 오니 경계를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가까이 가지 않는다면 먼저 달려드는 일은 없다.



▲ 이렇게 해서 오름 걷기는 끝났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가는 길이다.


오름에서 준비한 간식을 먹었다. 미리 감자와 샌드위치를 좀 만들어 왔는데, 아주 요긴하게 먹었다. 간식거리는 시흥리 마을에 있는 구멍가게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많이 걸을 때는 수시로 먹는 일이 중요하다. 모두가 배가 고파 혼났고, 무엇보다 환국이는 지쳐버렸다. 그래도 감자 하나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오름 여행을 끝낸 시간은 12시 반 정도. 약 1시간 반의 여행이었다. 짧지만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장을 나와 다시 시작되는 길은 시멘트 길과 중산간도로인 아스팔트길이다. 뜨거운 지면을 따라 걷는 일이 목장길을 걸었을 때보다 좀 힘들다. 시멘트길에서는 간간히 빗물이 고인 곳이 많아서 까다로웠고, 아스팔트 국도길은 가끔씩 지나다니는 차량에 신경을 써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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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에서 성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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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감동과 재미 때문인지, 종달리 마을까지 가는 길은 좀 지루했다. 다들 점점 더 뜨거워지는 태양에 조금씩 지쳐갔다. 마침내 종달리 마을 앞 표지석에 도착했고, 더위도 식힐 겸, 입구의 매점에 잠시 들렸다.

처음 시흥초등학교 앞에서 보았던 밝은 미소는 발갛게 달구어진 뺨 때문에 지워졌다. 서영 선배는 다시 선크림을 발랐고, 나는 매점 앞 수도꼭지를 틀어 등목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밖에서 등목을 해본 게 까마득하다.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 종다리 마을로 들어가서 옛소금밭을 지나서 종다리 해안가로 가야 한다. 그리고 시흥해녀의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할 것이다.

 

▶ 종달리 폭낭.
종달리 마을길에서 만나는 나무.
우리가 지날 때도 동네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서 있는 표지석에는
종달리 소금밭의 유래가 적혀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 종달리 소금밭 사잇길. 물론 지금은 소금밭의 흔적만 남았다.


▲ 지금 소금밭은 이처럼 무성한 잡풀들이 점령했다.



종달리 마을을 지나면 곧 해안도로가 나온다. 2006년 나는 이 도로를 달려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갔다. 그때는 엄청난 바람 때문에 힘겹게 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날만큼 바람이 제일 고맙다. 걷는 걸 방해할 만큼의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시원하게 쌩쌩 불어주어 땡볕 더위도 잊을 수 있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전거조차 가기 어려운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길도 나있지 않은 오름은 물론 해안가 바위들 사이나 모래사장은 자전거라도 가기 어려운 길이다. 이런 길을 걷는 재미는 자전거와 다른 맛이 있다.
제주도 여행하는 내내 자전거 여행자들을 많이 봤다. 대부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젊은이들이었는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겹게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면 예전 내 생각이 나 코끝이 찡해진다. 자전거 여행도 좋지만, 제주올레도 추천하고 싶다.

제주도는 크게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누는데, 종달리와 시흥리는 바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다. 종달리와 시흥리는 인접해 있지만 전자는 제주시에 속해있고, 후자는 서귀포시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해녀들이 많고, 일제시대에는 이 지역 일대 해녀들이 일제의 폭압적인 수탈정책에 거세게 저항했던 역사가 서려있다고 한다.



▲ 종달리와 시흥리의 경계지역.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이다. 이때가 막 2시를 넘어 갈 때였다.



▲ 오징어를 말리고 있던 곳에서는 직접 오징어를 파는데, 맛이 괜찮다.



▲ 완전히 마른 오징어가 아니라 반건조 오징어를 살짝 구워주는데, 짜지 않고 쫄깃쫄깃해서 먹을 만하다.
한마리에 1000원~1500원 한다.


▲ 종달리 해안도로에서 찍은 바다사진. 맑고 투명했으며 해초가 많았다.


점심 때가 훨씬 지나도록 먹은 게 없으니 다들 힘들었다. 2시가 넘어서야 시흥리로 들어섰는데, 시흥 해녀의집이 눈앞에 보이자 그제서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기로 계획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시흥 외에도 오조리나 섭지에도 해녀의집이 있다. 모두 그 마을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곳이고 지역 해녀분들이 따온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내놓고 있어 맛있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싸고 질좋다고 한다면 여기 음식은 그야말로 천상의 음식이라고 할만하다. 시흥 해녀의집은 제주올레에서 추천한 맛집으로 조개죽이 일품이다. 우리 일행들도 이곳에서 조개죽과 전복죽을 시켜서 먹었다. 죽이라고 해서 얕보면 큰코 다친다. 커다란 사기 사발에 하나 가득 나오고 반찬거리로 나오는 지짐도 부족하면 더 가져다 주어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제주도에서 나는 반찬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것도 지역의 맛과 멋을 알아가는 재미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개죽에 조개가 참 많았다. 물큰 씹히는 조개와 살살 녹는 쌀알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입안에 맴돈다. 전복죽도 하나 시켰는데, 그렇게 덩어리째 들어간 전복죽 구경은 처음이다. 보통 서울시내에서 전복죽을 먹으면 전복이 그 실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썰어져 있는데, 이곳 해녀의집 전복은 모양 그대로 살려 듬벙듬벙 죽속에 빠져있다. 전복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전복죽도 추천할 만하다. 맥주 한 병을 시켜 똑같이 나누어서 마셨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벽에 달린 선풍기를 무색하게 했다. 조개죽은 6,000원, 전복죽은 9,000원이다.


▲ 이런 전이 나오는 식당이 나는 정말 좋다. 우리가 너무 잘 먹자 아주머니가 하나 더 갖다 주셨다.

▲ 겡이 튀김이라고 부른다. 해안가 바위틈에 돌아다니는 게를 잡아서 튀긴 것으로 바싹하니 맛이 좋다.


▲ 조개죽. 먹다 보니 사진찍은 걸 잊었더랬다. 조개의 시원한 해물맛이 일품이다. 입에 착착 붙는다.


시흥해녀의집 맞은편에는 조가비박물관도 있다. 조가비박물관을 보고 갈까 했으나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지났다. 천천히 쉬엄쉬엄 구경하자는 취지였는데도 불구하고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시흥리해녀의집을 나온 시간은 3시 반경이었다.

식사가 달콤했던 탓일까. 다시 힘차게 길을 나섰다. 성산이 이제 뚜렷하게 보였다. 바다 저 멀리 우도도 눈에 들어왔다. 해안도로를 걷다가 물이 빠진 바닷가를 거닐었다. 해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걸으면서 조개도 줍고 소라도 주웠다. 제주에서 주워온 조개와 소라는 지금 우리집 어항에 들어가 있다. 어항이 한결 더 예뻐졌다.






▲ 해안가를 거닐었다. 썰물 때라서 걷기가 좋았다. 바닷물이 빠지자 해안가는 여기저기 해초들이 어지럽다.








▲ 성산항에 정박해 있는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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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에 올라 꽃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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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차를 주차해 놓았던 성산봉에 도착한 시간이 4시 30분 경, 여기까지 5시간 반정도 걸린 셈이다. 중간에 식사 시간이 좀 길었고, 매점에서 쉬었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다면 늦지 않게 온 것이지만, 성산봉을 올랐다가 다시 섭지코지까지 걷는다면 해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성산봉 오르는 길도 쉽지 않으니 아마도 몇몇은 여기서 여정을 정리해야 할 듯싶었다. 제주올레도 여기서 성산봉을 오르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는만큼 힘든 이들은 그 길을 선택해도 되겠다.

생각해 보니 성산봉 꼭대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성산봉에 입장료 내고 들어와 본 게 대학 수학여행 때로 기억되는데, 그때도 꼭대기는 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전날 술먹고 힘들어서 포기했을 거다. 술이 웬수다. 하지만 오늘은 멀쩡한 정신과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 해주고 있다. 좀 지치긴 했지만, 이 정도는 백두대간 여행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다.

물론 성산봉은 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성산봉으로 오르는 길 좌우측으로 난 산책길을 걷는 것도 성산봉의 절경을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성산봉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아마도 2~3시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입장권(2,000원)을 끊으면서 물어보니 왕복 40분 소요된다고 한다. 쉬엄쉬엄 1시간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성산봉 곳곳을 모두 둘러본다면 2~3시간 정도는 잡는 게 맞다.


▲ 완만한 비탈길이 끝나고 성산봉에 가까워 오면 줄기찬 계단길이 이어진다.







▲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졌다는 제주도와 성산봉의 증거.

▲ 성산봉 분화구. 가운데 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이다.









▲ 서영선배는 줄곧 머리에 꽂아 두었던 꽃을 여기 분화구로 던졌다.













▲ 성산봉 한켠에 마련된 매점 겸 식당. 밑에서는 해녀들이 갓잡은 회와 조개류, 해삼 멍개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시간이 되면 내려가서 소주 한잔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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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봉은 줄곧 계단길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분화구가 훤히 보인다. 성산봉은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바다에 생긴 화산섬이다. 오랜 세월 제주도와 성산봉 사이의 바다가 모래로 메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어렵게 올라가자 아담한 분화구 너머 넓게 펼쳐진 바다가 시원하게 들어온다. 봉우리에 가려져 오지 않던 바람도 여기에서는 시원하게 이마를 쓸어주었다. 치마를 입고 온 젊은 처자도 있고, 샌달을 신고 올라온 총각도 보인다. 아이들은 더더욱 신났다. 힘든 것도 모를 때다. 숨이 턱끝까지 올라온 아저씨 아주머니도 꼭대기에 올라서서 길게 한번 숨을 쉬어 본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살갗에 닿는 모든 것들이 시원하다.

성산봉 꼭대기에는 토끼가 한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환국이가 신났다. 거북이가 토끼를 만났으니 아니반가울까.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 토끼는 사람들이 익숙한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풀을 뜯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더니 손길이 닿으면 토라진 여인처럼 돌아서서 멀리 뛰어갔다.

서영 선배는 길가에서 꺾어 온 꽃 한송이를 이곳 분화구를 향해 던졌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일까. 아니면 힘겨운 여정을 마무리하는 통과제의였을까. 꽃을 던지는 손이 곱다. 하긴 이렇게 오래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일 것이다. 결국 서영선배와 현상이는 이곳에서 차를 타고 섭지코지로 가 우리를 기다리기로 했다. 멀리 섭지코지가 흐릿하게 보이지만 까마득하다. 아마도 1시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어림잡아 보았다(결국 2시간 정도 걸렸다).

이제 나와 환국이만 남은 길을 걷기로 했다.



▲ 수마포 해안. 잘 보면 동굴이 보인다.


섭지에서 지는 해를 보다

 

이렇게 되니 나와 환국이가 2004년 함께 지리산을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4명이 같이 갔었는데, 서영선배만 다르고 3명이 이번 제주여행에 같이 온 셈이다. 비슷한 점은 당시에도 2명이 마지막 천왕봉을 오르지 못해 환국과 나만 올랐는데, 이번에도 2명이 빠지고 나와 환국이가 마무리 화룡정점을 찍으러 가는 것이었다. 묘한 우연이다.

위의 사진은 수마포라고 한다. 성산의 옆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동굴로 대공포 기지가 있었다. 4.3 당시에는 이곳에서 토벌대에 의해 양민 학살이 자행된 것이라고 한다. 제주의 뼈저린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나와 환국은 여기서 과감하게 바닷가로 내려섰다. 썰물 때라 바닷물이 꽤 많이 빠졌다. 샌들을 챙기지 않은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 순비기. 나무의 줄기가 모래땅 속으로 숨어서 뻗어나가므로 해녀들이 '물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제주어 '숨비기'라는 명칭이 붙었다.



▲ 모래사구.  간조 때 모래가 쓸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무를 이용해 방책을 세웠다.



▲ 어느 노인이 그물을 손질하나 싶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외국인이 글을 쓰고 있었다.



수마포 해안을 지나면 광치기 해변으로 접어든다. 기나긴 해변이 멀리 섭지까지 펼쳐졌다. 종달리 해안가에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거닐었는데, 성산봉을 나와서는 줄곧 바닷가로만 걸었다. 2시간 가까이 걷는 길이 지루하다고 보면 오산이다. 갖가지 바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해변가는 모래사장도 있고, 너럭바위 지대도 있다. 모래사구 언덕길에는 순비기 군락도 볼 수 있다. 바위지대에는 자잘한 이끼들의 색깔이 탐스럽다. 잘 짜여진 융단처럼 넓은 바위에 깔려 있는 이끼들이 좋다고 함부로 발걸음을 떼어서는 위험하다. 꽤 미끄럽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순비기는 30~60cm정도 자라는 키작은 나무인데 바닷가에 이렇게 어여쁜 꽃나무가 자란다는 게 놀라웠다. 반짝반짝 빛나는 연두색 잎사귀는 작고 탐스러운데다가 연보랏빛의 맑고 투명한 꽃잎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천지로 피어난 꽃들과 잎들을 만져보다 보면 길에서 만난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바닷가 모래사장이라고 모든 곳이 해수욕장일 수는 없지만, 해수욕장이 아니라고 해서 해수욕을 해서는 안된다는 법도 없다. 이 길을 가다 보면 해수욕장이 아닌데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홀로 바닷가에 앉아서 글을 쓰던 외국 노인은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노년의 휴가로 제주를 찾은 듯하다. 반갑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외국인이지만 한국에 왔으니 한국어 인사말 정도는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상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영어로 '헬로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튼 먼바다를 보며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은 내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환국은 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틀림없이 지금 쓰는 글에 우리의 모습이 담겼을 거라며 의기양양이다.

모래사구 근처에서는 버려져 돌아다니는 가느다란 대나무 막대기도 주웠다. 너럭바위 지대는 미끄러울 수도 있고, 모래사장은 푹푹 빠지니 지팡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잘 꽂혀 있는 모래사구 방책용 나무를 뽑지는 말자. 걷다 보면 버려진 대나무들이 천지다.

길을 걷다 보니 꽤 긴 거리다. 1시간이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천천히 길을 가다보니 2시간이 다 되어갔다. 7시 반을 넘어가니 서녘 하늘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디쯤 왔냐는 일행의 전화도 계속 왔다. 섭지에서도 계속 바닷가 길로 가라고 제주올레 팜플릿은 적혀 있는데, 우리는 그냥 시멘트 포장길로 해서 섭지코지로 올랐다.



▲ 해가 지고 있다. 섭지에서.



▲ 섭지코지 등대

▲ 저 봐라. 대나무 작대기에 모자는 삐뚤하고 바지는 둘둘말아 걷어 올리고, 얼굴은 맛이 갔네.
 물고기 잡으러 가나????(섭지코지 드라마 셋트장)


 

이로서 제주에서의 둘째 날, 제주올레 첫 번째 길 걷기가 끝났다. 생각 같아서는 두 번째 길도 걷고 세 번째 길도 걷고 싶다. 하지만 내일 들어가는 우도도 기대된다. 이날 내가 걸었던 길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제주에 한걸음 더 다가선 듯하다. 제주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제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11시에 시작한 여행이 8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9시간이 걸렸다. 뜨거운 햇볕을 우습게 본 덕분에 숙소에 들어와 화끈거리는 팔뚝에 화상치료제를 발라야 했다. 지금 어깨의 살갗은 허물을 벗고 있지만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은 다시 그 길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즐겁기만 하다. 다음에 제주를 갈때는 첫 번째 길을 다시 걷고, 두 번째 길에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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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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