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난 민서가 태어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민서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고통스러워하고 힘겨워 하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의 고통에 대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힘겨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매우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고통은 여전히 내 기억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둘째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둘째를 가지는 것에 대해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내 재정 건전성이나 내 삶의 부자유 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어 했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가 그것을 잊었을 리가 없다. 적지 않은 나이라서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둘째를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딸 민서가 홀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 고통과 힘겨움을 무릎쓰려는 엄마의 모정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둘째를 가졌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키워 보면 후회할 거라는 사람들의 말도 흘려 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미래에 저당잡혀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아내와 나, 민서가 행복한 길을 찾는 게 정답이다.
아내가 둘째를 가지자고 한다. 아마도 잘 된다면 마흔 전에 아이 둘 키우는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다.
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아이를 안아 들어 본다는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큼직한 사랑을 하나 들고 있는 무게와 같다. 아이가 무럭무럭 크다 보면 그 버거움은 아이의 몸무게만큼 더욱 커진다. 그런 사랑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게 또한 사랑이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 경험인가.
고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아기가 함께 맞아주는데, 그때마다 민서는 활짝 웃어 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날 있었던 모든 안 좋은 기억들을 지워주는 미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래서 점점 가벼워진다. 누군가는 회사에 묶어 놓은 말뚝을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묶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말뚝은 꽃을 닮았나 보다. 집안에서는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민서가 7kg을 살짝 넘어서고 있다. 2.02kg의 미약한 몸무게로
태어났지만 200여일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주 건강하고 활기차게 잘 자라고 있다. 민서를 들어 안는 일은 행복하지만 조금씩 삶의 무게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걱정스런 눈길을 느꼈는지 민서는 환하게 웃어 준다.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를 보며 근심을 잊는다.
요새는 뒤집기가 한창이다. 어떨 때는 잘 자다가 자기도 모르고 뒤집고는 끙끙대는 통에 나와 아내의 잠도 깨우고 만다. 그럼에도 아이가 뒤집는 모습은 경이롭다.
처음에는 허리를 활처럼 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한쪽 다리와 뒷머리를 받쳐서 허리를 띄운다. 이러면 절반은 성공이다. 예전에는 여기서 힘이 딸려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요새는 다리 힘도 세지고 목의 근육도 단단해졌는지 끙끙 두번만 하면 어느새 뒤집고 엎드려 있다.
민서에게 엎드려서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아주 다른가 보다. 무척이나 신기한 듯 고개를 둘레둘레 흔들며 주위를 살핀다. 자신이 한 행동이 의미하는 것을 곰곰이 뒤짚어 보는 듯한 멍한 눈빛으로 앞을 본다. 물론 그렇게 한 5분 정도 있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요새는 뒤집은 자세에서 발을 허둥대곤 한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본격적으로 기어다닐 것이다.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큰일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부모든 그럴 것이다. 아이가 다칠 거라는 생각은 그 어떤 악몽보다 무섭다.
그러나 이 세상은 비참과 무지, 불의와 폭력이 난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를 무력화시키는 온갖 사건사고들이 곳곳에서 터지는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은 것 자체가 원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음 세대에 걸어 보는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더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 사회는 인간의 이런 유기적 욕망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라면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꿈이다.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경험'이다. 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나 돌아보면 산통의 시간만큼 길고 긴 시간이 있을까. 그러나 이제 그 시간도 지나간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죽을 만큼의 고통마저 아름답게 만들어준 한 생명이 환하게 피어났다.
지난 주 금요일(11일) 밤, 아내는 다시 이대 목동 병원에 입원했다. 저녁 식사 이후에 다시 시작된 진통은 이전보다 구체적인 통증을 주었다고 한다. 3~5분 간격으로 진통을 느낀 것이다. 이대 목동 병원에 옮겨 당직 의사로부터 들은 소견으로는 이전과 비슷하며 진통의 강도가 약간 세진 정도라고 한다. 우선은 진통대기실에서 진행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내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옆에서 나도 잠들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아내는 작은 오빠와 올케 언니와 통화했다. 9시쯤 올케 언니와 오빠가 도착하고 난 잠시 사우나에 가서 좀 쉬었다 오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뜬 이후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다시 돌아온 12시에 본 아내의 얼굴은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내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힘들었지만, 분만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자리를 뜨지 않고 옆에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뿐, 아내는 울었고, 나는 절망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고통을 멈추고 수술을 시키고 싶었지만, 의사가 수술하겠냐는 물음에 아내는 참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참을성도 오래 가기 힘들었다. 오후 2시를 넘어가면서 아내는 정신을 잃기도 했고, 어떻게 좀 해달라며 울부짖었다. 정말로 무섭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세상의 어떤 고통을 산고에 비유할 수 있을까. 없다.
아내의 산고는 아이가 이미 내려온 상태에서 자궁문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서 더 극심했다고 의사는 말했다. 아침 9시에도 20% 열렸던 자궁문은 오후 2시가 넘어가도 그 상태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후 3시 즈음, 온 분만실이 아내의 비명 소리로 가득했다. 의사들도 의아해하면서 다른 처방을 내릴 게 없다며 안타까운 눈길만 던졌다. 그러다가 어떤 의사가 와서 정신없는 아내에게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자세와 호흡 등을 가르쳐주었다. 그때부터 아내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있었고 고통을 다리 힘으로 모으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제대로 호흡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자세와 호흡을 제대로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자궁문이 열렸고, 지난 6시간 동안 열리지 않던 자궁문이 빠르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시 10분, 아내는 급박하게 분만실로 이동되었고 분만실에 들어간 지 12분 만에 아이를 순산했다.
아이는 33주 5일 만에 세상 바람을 맞았다. 울음은 우렁찼다. 그동안 병원에서 들었던 들었던 아기들의 울음소리와도 달랐다. 분명하고 또렷하게 “응애, 응애”하고 울었다. 놀랍고 신기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몸무게가 작고(2.02kg),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온 바람에 바로 중환아실로 옮겨졌다. 이후 중환아실의 의사와의 상담에 따르면, 중환아실에서도 급박하게 아이를 받아서 아이의 상태나 산모 상태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것, 미숙아에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병환들, 아기 엄마아빠가 준비해야 할 몇가지 등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그런 내용들을 적고 메모했다.
아내는 지난 월요일 퇴원했다. 아내의 출산 소식을 듣고 장모님이 월요일 올라오셨다. 고령의 장모님이 올라오셔서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니 죄송하면서도 아내가 가장 믿고 의지할 분이 장모님임을 생각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저께(15일)부터 아내에게서 본격적으로 모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내가 직접 병원에서 모유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아기는 성탄절 전후로 퇴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세 가족에게 펼쳐질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만 그 한편에는 두려움보다는 아이가 보여 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흘러 넘쳐 강물을 이루고 있다.
그 외 이야기들
1.
출산 소식을 단체 문자로 보냈다. 몇몇 사람은 '속도 위반'이 확실시된다고 놀렸다. 다시 말하지만 허니문 베이비였으며 34주가 채 안된 미숙아였다.
2.
4.19에 결혼해 12.12에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는 정말 역사적인 인물이 되지 않을까. 민중 혁명에 의해 시작되어 군부 쿠데타에 힘입어 태어난 아이???
3.
원래 예정일이었던 1월에 태어났으면 호랑이띠가 될 아이였는데, 12월에 태어남으로써 소띠가 되었다. 이로서 우리집은 엄마 아빠 그리고 아기까지 모두가 소띠인 가족이 되었다.
4. 회사에 나의
출산 휴가 문제를 문의해 보니, 배우자의 출산휴가는 3일이 있는데, 무급휴가라고 한다. 차라리 연차휴가를 쓰라는 말이니, 있으나
마나한 규정이다. 출산장려 광고를 내보내는 나라에서, 직원 교육을 통해 출산을 장려하는 회사에서 이런 부분은 좀 구시대적인
조치가 아닐까. 아마 육아휴직을 내겠다고 하면 난색을 표할 게 분명하다. 노동법에 따르면 3세 이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고 되어 있다.
5.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 좋은 이름 추천받겠다. 채택되는 분에게는 감사의 선물도 준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