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개를 넘고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무사히 제출했다, 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제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내 손을 떠난 책이니 더이상의 미련도 괜한 정신 낭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기는 필요하다. 과연 처음에 가졌던 초심이 잘 반영된 책일까. 책을  생각할 때 가졌던 그 마음들과 생각들과 의지들이 세상에 나온 책들에 잘 반영되어 있을까.

어디나 어려움은 있다. 천재적인 저자이지만 나태함은 어쩔 수 없고, 능력은 뛰어나지만 책임감이 없는 디자이너도 어쩔 수 없다. 실적만 요구할 뿐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도 어디나 비슷하다. 예술적 투혼은 있어도 앞뒤로 꽉막힌 삽화가는 또 어떤가.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이상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는 없어 보인다. 편집자? 어디서나 여기저기 치이기 마련이다.  그나마 편집자가 없다면 이런 책은 나올 수가 없다.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책은 탄생하기 마련이다.

편집자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저자는 물론, 디자이너, 삽화가, 제작 관계자, 인쇄기장, 제본 관계자 그리고 마지막 독자까지.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며 책을 만들어간다. 편집자는 그 모든 관계에서 평형을 유지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이러한 조정은 곧 책을 만드는 과정의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이다. 예전의 교과서가 저자와 학습자가 만나는 공간이라고 했다면, 최근의 교과서는 저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자들이 학습자와 대면하게 하는 책이다. 위에서 말한 모든 사람들이 최근 교과서의 주요 참여자인 셈이다. 따라서 좋은 교과서가 나오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계자들이 저마다의 몫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하고, 각각의 참여자들이 정확한 지침을 가지고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작업을 했을 때 좋은 교과서가 나올 수 있다. 여기에 편집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교과서 외의 학습지나 교재가 개인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교과서는 철저하게 학습자와 학습자, 학습자와 교사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아가 예전의 교육과정이 교사-학습자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 한데 비해 지금의 교육 과정은 학습자-학습자 사이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모둠 학습이나 다양한 토론 학습 등을 제시하는 이유다. 물론 이것이 지금의 교육현장의 현실에 비하면 너무 이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고, 현재 사회가 일방적 교육이 아닌 다자간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당연한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교육 현장의 흐름이 교과서에 투영되기 위해서는 편집자의 시대 인식과 현실 인식이 날카로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편집자의 역할과 임무, 그리고 필요한 능력은 매우 중요해졌지만, 편집자 풀은 대단히 취약해지고 있다. 교과서 시장 역시 정부는 시장논리에 따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게다가 수많은 업체들이 뛰어들어 나눌 수 있는 파이가 점점 적어지고 있고, 많은 야근과 집중적이고 고단한 업무, 사람 관계의 어려움, 무엇보다 적은 임금 등으로 이 업계로 들어오려는 신규 인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만만치 않은 변화의 큰 흐름을 보고 있다. 게다가 저 멀리 E-book이 열대성 저기압골을 형성하면서 점차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도 따라가기가 벅찬데, 저 쓰나미처럼 몰아닥칠 폭풍우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러나 편집자는 성장하고 있다. 성장은 목표나 희망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 자체가 소중한 자산이 된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이 성장이다. 편집자는 한권의 책에서 자신의 성장판과 나이테를 발견해야 한다. 그럴 때 편집자로서의 존재의 이유가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이북의 흐름이 교과서 시장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다양한 질문과 기대감들이 올해를 채울 것이다. 올해는 그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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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하세요?”

상대방을 알고자 할 때 가장 쉽게 던지는 말이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말해 준다는 오래된 관념이 투영되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때로는 편견을 담는 말이다.

“편집자에요. 책 만드는 일을 하죠.”


내 설명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럼 상대방은 여러 가지 상상을 할 것이다. 상대방의 지인 중에 편집자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절망스럽다.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어떻게 편집자를 묘사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작가가 받는 스트레스의 근원은 보통 편집자 혹은 편집장의 마감 독촉이다. 마감 독촉을 하는 편집자의 모습을 작가들은 사악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마감 원고를 받기 위해서는 옆에서 밤새도록 방문앞을 지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독종들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천사의 게임>에 나오는 코렐리라는 편집자는 작가의 영혼마저 담보로 잡고 있지 않나.


사실 편집자야 말로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예전 교과서 편집자들에게 오가는 속설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편집자가 교과서에 나오면 그 책은 심사에서 떨어진다.’ 물론 지금은 편집자의 이름도 버젓이 박혀서 교과서가 나오고 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편집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획, 집필, 디자인, 조판, 교정, 제판, 인쇄, 제본 등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자기가 만드는 책이 어떤 책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저자도 아니고 바로 편집자다. 편집자는 저 모든 과정에 개입해서 일일이 조정하고 합의하며 때로는 피터지게 싸우면서 한권의 책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훌륭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서 지휘자가 필요하고, 대중을 사로잡는 영화를 만들려면 뛰어난 영화감독이 필요하듯이, 역사에 길이 남을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편집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책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편집자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편집자, 저자, 북디자이너, 인쇄공-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며, 어느 과정에서는 무엇에 세심하고 이런저런 치명적인 실수에 유의해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감명은 사명감과 자부심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출판사 가운데 하나인 사이먼 앤드 슈스터사에서 41년 동안 편집자로 일한 집시 다 실바는 기고문 <편집자와 저자>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편집자는 대부분 알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글, 창조적 아이디어, 책을 사랑하기에 이 일에 매진할 뿐, 우리가 주목받길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공헌을 깊게 이해한 저자가 머리말이나 감사의 글에서 우리의 이름을 언급하고자 하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허락할 뿐이다. 우리는 편집자라는 직업이 최선의 책을 위해 묵묵히, 무명으로 공헌하는 직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사폰이 그의 책 <바람의 그림자>에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책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믿는다. 한 권의 책은 수많은 밤을 새우면서 글자 하나하나 눈에 박아 넣었을 편집자들의 피와 땀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혼이 더욱 깊어질수록 이 세상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올해로 책 만드는 일을 한지 횟수로 10년을 채웠다. 그동안 내 손을 거쳐간 책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이땅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이 그 책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편집자라는 직업을 결코 버릴 수 없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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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만들어지기까지...

Posted by 구상나무 구상나무


지난 10월 14일 찍은 개봉동 우리집에서

길고 긴 장정이 마무리 단계에 다가왔다. 그동안 하군(마눌님 애칭)과 뜨기(태아 애칭)에게 서운하게 할만한 일이 많았다. 하지만, 하군은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나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홀로 있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언제나 많은 것을 이해해 주었고, 뜨기는 새벽에 들어오는 아빠의 음성을 잊지 않고 힘찬 발길질로 맞아 주었다. 

직장인의 밥벌이 노동은 어디가나 비슷하겠지만, 교과서 편집 업무는 마치 수많은 야수와 독충들로 우글거리는 정글 속을 탐험하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거다. 오늘도 아는 후배 하나는 나에게 말했다.
"정말로 나 죽을뻔 했어요."
그 말이 결코 평범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이처럼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노고 속에서 탄생한다.

단행본 출판사에서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 어쩌면 교과서일 수도 있겠다. 고작 150여쪽의 음악 교과서를 만드는 데 왜 1년이나 걸리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아이들은 150여 쪽의 책을 1년간 들여다 보게 된다. 그 1년의 시간동안 한치의 빈틈도 없이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야 하는 것이 교과서이다. 단 한 쪽도, 단 한 줄도, 단 한 글자도 허투로 만들 수 없고, 쉽게 지나칠 수 없어서 심사본 제출일이 시작된 오늘도 어디선가는 다시 인쇄소를 찾아가 재인쇄를 들어가는 게 교과서다.

책은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쌀 한톨을 위해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번 가듯, 책 한권에는 교과서 한권에는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모아야 한다. 그것을 모으는 사람이 편집자이다. 편집자 스스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이 있어도 책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하나의 책이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과정에 함께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이러한 과정처럼 많은 사람들의 온기와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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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네가 보는 책들,한권한권이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어.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살면서 꿈꾸었던 이들의 영혼 말이야.한권의 책이 새주인의 손에 들어갈 때마다,누군가가 책의 페이지들로 시선을 미끄러뜨릴때마다,그 영혼은 자라고 강인해진단다.-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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