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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 8점
김호연 지음/나무옆의자
 
 

편의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구심력과 원심력
"불편한 편의점"은 이문구의 "관촌수필"처럼 하나의 장소에서 여러 군상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그려낸 연작 소설이다. 24시간 돌아가는 편의점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원운동하는 물체에 작용하는 구심력처럼 우리의 마음을 끌어들인다. 이런 강한 구심력이 있기에 물체는 원심력을 발휘해 힘차게 원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구심력은 바로 인간에 대한 관심, 그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에 대한 믿음이다. 이 중심에는 '독고'와 '사장 할머니 염영숙'가 있다. 반면 이야기를 재미있고 풍부하게 하는 힘이 원심력이다. 원심력을 받는 이야기의 인물로는 20대 여성이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알바를 하는 '시현',  50대 여성으로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는 '오선숙', 배우로 활동하다가 극작가로 변신한 '정인경', 의료기기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40대 중년의 사내 '경만', 경찰로 재직하다가 불명예 퇴직하고 사설 흥신소에서 일하는 60대 '곽 씨'가 있다. 편의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군상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돌리는 원심력이 된다. 사장 할머니(염영숙)로부터 시작된 인간을 향한 관심과 구원에 대한 믿음, 그리고 용서로 이어지는 경애의 마음이 '독고'라는 정체 불명의 노숙자로 전달되고 이것이 크게 확산하면서 이야기의 꽃을 피워 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기처럼 숨쉬며 접하는 공간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알바들이 있고, 편의점을 찾는 동네 할머니와 꼬맹이부터 술취한 사람들과 진상들 이야기는 양념처럼 이야기의 재미를 더한다. 거기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알바라고 불리는 직원들의 모습도 어느 편의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네들의 문제 있는 사연들이 '독고'라는 노숙자를 만나면서 삶의 변곡점을 지나고 좀더 희망을 가져 보는 변화를 겪는 모습은 이 책을 읽을 때 독자가 품게 되는 감동 중 하나이다. 

이야기는 연작 소설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이 있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인물 '독고'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잇다. '독고'와 '편의점 사장 할머니'가 잃어버린 지갑을 연으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를 시작으로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 할머니의 가족과 거기서 다시 연결된 곽 씨까지 이야기는 줄줄이 엮여 이어진다. 

불편하지만 괜찮아
여러 이야기 중 책 제목과 동일한 소제목의 '불편한 편의점' 이야기는 좀 불편했다. 대학로 배우였다가 대본 작가로 활동하지만 신춘문예 말고는 자기 작품을 연극 무대에 올려본 적이 없는 작가의 이야기. '독고'라는 인물과 편의점을 글로 써낸다는 설정으로 이 책의 작가가 불쑥 등장하는 느낌이다. 이 소설 전반적으로 다양한 군상들이 편의점에서 어우러지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보편화된 대중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만 등장하는 작가의 모습은 그다지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작가가 자신이 받은 사회의 도움에 은혜를 갚는다는 느낌으로 끼워 넣은 건 아닐까 생각되는 여러 부분이 있지만 전체 이야기 중에 가장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보편화된 장소라는 편의점, 내 이웃 혹은 독자 자신을 닮은 인물들이 하나같이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편의점을 찾고, 여기서 다시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도시 동화의 틀을 잘 갖추고 있다. 사람에 지치고 용서와 구원의 길을 잃은 이들에게 잠시 삶의 고단함을 잊고 나침반을 다시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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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62.9%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총 선거인수 3765만 3518명 중 모두 2368만 3684명이 투표를 마쳐 투표율은 62.9%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대선 가운데 최저 투표율(70.8%)을 기록했던 16대 대통령선거보다 낮아 역대 최저 투표율 기록을 세웠다.”

어느 모 뉴스사이트에서 퍼 온 지난 대선 결과이다. 뉴스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의 수는 정확히 1396만 9834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정말 시간이나 여건이 안 되어 투표를 못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투표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유는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일 많은 부분은, 어차피 내 한 표가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음으로 차라리 놀러 가는 게 더 유익하다는 주장, 다음으로 더러운 정치판에는 관심 갖기 싫고 투표라는 행위가 귀찮기만 하다는 생각, 그리고 내 투표권을 기꺼이 양도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투표를 안 한다는 주장, 여기에 정말 아무 생각 없어서 투표를 안 하는 사람 등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377쪽

이명박 정부 탄생 이후 나라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거나 투표를 하지 않음을 후회하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당신 주장대로 당신이 투표를 하건 안 하건, 세상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의 방송 드라마 시티홀의 남자 주인공 ‘조국’(차승원 분)은 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여러분은 반성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원하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당신의 선택이 잘못됐던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직장을 잃어도, 집을 잃어도, 그 흔한 문화시설 하나 없어도 다 내 팔자인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그런 팔자를 원하셨던 겁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인주를 바꾸고. 인주가 바뀌어야 당신의 삶이 바뀌고. 당신 삶이 바뀌어야 당신 아이들의 삶이 바뀝니다…….”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의 속편 격이다. 앞선 전작에서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않으려는 자들을 눈먼 자로, 그리고 눈뜬 자가 가져야 할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세심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전작에서는 온 도시의 시민들이 눈먼 자가 되고 오직 한 명만 ‘눈뜬 자’였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시민들이 모두 ‘눈뜬 자’가 되어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 제도와 그런 제도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온 나라가 백색 실명증에 걸리고 4년이 지난 후 치러진 총선. 그러나 유권자 중(투표자 중에서가 아니라 유권자 중에서다) 83%가 백지투표를 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정부는 이 현상을 체제를 위협하는 불순분자의 선동으로 보고 비밀경찰을 이용한 불법 도감청 등의 방법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뚜렷한 실체를 발견하지 못한다. 몇 번의 재선거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급기야 도시 전체를 반역자로 몰아 도시를 고립시킨다. 정부당국자들은 야밤에 수도를 빠져나가고, 계엄령을 내린 후 도시를 군대로 포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투표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탈출을 거부당하고 사태가 일어나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총리와 대통령 앞으로 편지가 한통 날아오는데, 4년전 온 나라가 백색실명증에 걸렸을 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인이 있었다는 내용으로, 정부 당국자들은 이것을 이번 백지투표와 연관시켜 수사하도록 경찰들을 도시로 보낸다.

경찰들은 도시를 오가면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를 비롯해 그와 함께 힘든 시기를 견뎌냈던 사람들을 만나며 탐문 수사에 들어가지만, 마땅한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수사팀장인 경감은 수사에 회의를 느끼고, 정상적인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의도적 함정 수사에 대해 의사의 아내에게 솔직히 털어놓게 된다. 정부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의사의 아내를 시민들의 반역(백지투표)의 주모한 반역자로 몰아가는 여론 몰이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자 끝내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반역자들이 이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가 하나하나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실패의 원인은, 적어도 내 의견으로는, 우리가 선택한 탄압 조치가 가혹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하던 전략을 계속 따른다면, 강압적인 방법들의 수위를 계속 높인다면, 또 반역자들의 반응이 계속 지금까지와 같다면, 즉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우리는 독재적 성격을 가진 극적인 조치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221쪽

지금으로부터 160여년 전에 핸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미 작은 정부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지금의 정부, 그리고 사회 제도는 지금의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며,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이어져 온 온전치 못한 부당함과 비리를 품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얼마든지 우리가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믿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그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이 사회 역시 당신의 선택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눈 감을 것인가, 눈 뜰 것인가.

검은 색과 빨간색으로 된 표제만 보더라도 각각의 신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우리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조국의 적들의 또 한 번의 전복 행위, 누가 복사기를 돌렸는가, 허위 정보의 위험, 누가 그 복사 값을 냈는가. - 419쪽

이 부분을 보면서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 많은 초들은 누가 돈을 댔느냐’며 화를 벌컥 냈다는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눈뜬 자들의 도시 - 8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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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 8점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류은희.조현천 옮김/현암사



친애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 씨에게

 

얼마전에 당신의 소설 <소멸>을 보았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당신의 소설 <소멸>의 이야기 줄거리는 이러했다. 주인공 ‘나(프란츠 요셉 무라우)’는 여동생 결혼식을 다녀온 다음다음날(그러니까 이틀 후) 뜻밖에 가족(부모님과 형)의 교통사고 사망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장례식에 참석한 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모두 종교단체에 기부하고 생을 마감한다. 당신 소설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내 글만 보면 어떤 이는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런 오해도 살만하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장장 500쪽에 걸쳐 서술되고 있다. 그것도 단 두 문장으로 말이다. 1부 '전보'가 가족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사진을 보면서 가족에 대해 사유하는 장면이고, 2부 '유언'은 고향에 돌아가 장례식을 치루는 일련의 과정에서 떠오르는 사유들의 집합이다. 단 두 문단으로 서술되어 있는 이야기, 게다가 줄거리가 단순한 만큼 나머지는 당신의 온갖 사유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난생 처음 접해보는 새로운 문체와 서술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당신 가족과 조국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온갖 비난과 모욕이 넘쳐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주인공 ‘나’의 냉소다. 곧 소설가 당신의 냉소이기도 하다. 이렇듯 지독한 냉소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세기의 전환기에 이르면 사유하는 것으로, 사유하는 것을 통해 존재해 온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며, 사유하는 인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단 한 가지, 이 세기가 끝나기 전에 자살하라는 것입니다. 〈p.495〉

 

세상에 자살을 조언하다니, 어떻게 태어난 삶인데 사유하는 인간은 자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가. 이런 지독한 냉소의 배경에는 자위적인 오만이 담겨 있음을 보았다. 당신은 오만함을 통해 자신을 경멸했다. 그리고 이것을 무기로 세상을 경멸하고, 물질 중심으로 흐르는 세상에 저항했으며, 끝내 세상에 잡아먹히지 않으면서 멋지게(?) 한방 날렸다. 그런 점에서 당신을 존경할 수 있을 법하다. 게다가 죽어서 남긴 실제 유언을 들으니 더욱 놀랍다.

 

“내가 쓴 것은 모두 저작권법의 유효기간 동안 오스트리아 국경 내에서 공연되고 인쇄되거나 낭독되는 것을 금한다.”

 

작가가 자신이 쓴 창작품이 자신의 나라에서 출판, 공연, 인쇄 되는 것을 금하다니, 이것은 국가에 대한 증오일까, 역설적인 사랑일까? 아무튼 미친 짓이다. 그만큼 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굳은 의지이자 절박한 메시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가의 권위와 폭력에 의해 셰어마이어와 같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아무 보상도 없이 여생을 살아가고, 나치와 협력해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데 협력하거나 개입했던 이들에게 공로훈장을 떠안기며 터무니없는 연금을 송금하는 국가는 오스트리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부끄럽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본다면 당신은 까무러칠 것이다. 아마도 환생이란 것이 있어 당신 같은 대작가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가급적 피해서 태어나길 바랄 뿐이다. 아니, 제발 한국에 태어나 당신의 그 글로 멋진 한방을 대한민국에 날려주기를 기대하고 싶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지도하는 이들은 물질에 사로잡혀 정신적 가치를 전혀 고려치 않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모든 잣대와 기준을 경제적 가치에 두고 경쟁만이 최고의 선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심지어 꼬맹이 아이들마저 경쟁 체제로 내몰고 있다. 이 권력은 국가의 권력에 도전하고 권위에 상처를 주는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 인신을 구속하고 있다. 물론 그런 지도자를 선택한 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부끄럽지만 물질에 현혹되어, 747이니 주가 3000이니 하는 말에 넘어간 사람이 내 이웃이고, 나 역시 그런 선택을 수수방관했음을 자백한다. 그러니 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을 욕하는 건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는 일이다. 이럴 때이니 냉소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냉소 이전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도대체 이런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묻고 싶다.



소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토마스 베른하르트 (현암사, 2008년)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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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밥먹는다.

- 무슨 반찬

- 개구리 반찬

- 살았니? 죽었니?



아마도 누구나 기억하는 전래놀이의 노랫말이다. 여기서 개구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에 따라 놀이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아무튼 삶과 죽음은 이 놀이에서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죽은 고기를 먹고 있다.(물론 가끔 '산낙지'도 먹어주고 있다) 불이라는 문명의 매체를 이용해 안전하게(?)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환경운동을 하는 후배는 채식주의자다. 유감스럽게도 그 후배와 술한잔도 못해봐서 채식주의자의 생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살아가야할 이 세상은 보통의 사람보다 몇배는 힘들 것이다. 최소한 집밖에서 돈주고  먹는 음식 중에서 완전 채식을 찾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니 말이다.


작가 한강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를 읽게 된 것은 아무래도 지금의 쇠고기 정국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다 읽고 나서 판단한 거지만, 난 한강이라는 소설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채식주의와는 실상 그다지 관계가 깊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상처받은 영혼과 그 영혼에게서 식물적 상상력의 감화를 받지만 세속된 욕망을 추구햇던 예술가, 그리고 식물이 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의 이야기이다. 상처와 욕망과 죽음, 세개의 이야기를 이처럼 잘 버무려 내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과도한 상상을 끌어오지 않았나 싶으면서도 이야기들은 그 안에서 날실과 씨실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세개의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지만 또한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잘 안착하고 있다. 하지만 식물적 상상력이 욕망과 어우러지는 두번째 작품 '몽고반점'은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극적이라서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이야기의 탄탄한 구성과 깔끔한 문체는 막힘없는 독서를 가능케 했다. 이 책은 '채식주의'에 대한 호기심으로 책을 펼쳐들지 않기를 바란다. 잘 스여진 연작 소설, 풍부한 상상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설로서 충분히 만족할만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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