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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성에서 지적 생물이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생물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 만약 우주의 다른 곳에서 지적으로 뛰어난 생물이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진화를 발견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 <이기적 유전자> 40쪽

어떤 나라에서 지적 사회가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가 자기의 존재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냈을 때이다. 만약 지구의 다른 곳에서 문명이 뛰어난 사회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우리의 문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맨 처음 던지는 질문은 “당신들은 사회의 진화(진보)를 발견했는가?”라는 물음일 것이다.

원문을 쓴 리처드 도킨스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사회의 미개함을 꾸짖고 싶어 그의 글을 차용해 봤다. 이렇게 한 의도에는 작금의 현실의 야만성도 한몫했다. 쉽게 이야기되는 막장 문화는 둘째 치고, 여전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극악함, 거기다가 밑도 끝도 없이 벌어지는 공권력의 무지막지함과 그 저열함에 있다. 우리 사회의 진보는 가능한가? 있기는 한가?

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책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저, 을유문화사)를 이야기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니 본론으로 충실해 보자.

많은 이들(그러니까 나를 포함해서)이 이 책의 제목만으로 헛된 망상과 철학을 늘어놓았다. 이거 뭐지? 인간은 그러니까 그 근본부터 이기적 존재라는 것인가? 그러니 이 사회는 적자생존의 정글 논리가 지배하는 게 당연하고 약육강식에 따라 질서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건가? 강한 놈이 이기는 것이니 재주껏 살아남을 수 있도록 강한 놈에게 빌붙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얼마전 강만수 장관이 돈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될 종부세 폐지를 밀어붙이고 감세정책을 발표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정책은 오래 가기 힘들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 아마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이렇다.

지구 생명체의 진화는 유전자가 더 많은 복제품을 남기는 쪽으로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 유전자는 불멸의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는 그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마련된 생체기계일 뿐이며, 생체 기계인 생명체는 유전자의 이익, 즉 후세에 유전자의 복제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 기본단위는 유전자이며, 이 유전자를 이해할 때 진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유전자의 자기 복제에 대한 욕구를 ‘이기적’이라는 말로 은유적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그런 엄청난 오해(?)를 하고 말았다. 무식해서 부끄러울 뿐이다. 강만수 당신도 무식한 건 마찬가지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자 입장에서 본 이타성은 불가능한 개념이다. 그런 유전자가 있다면 애초에 사라지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치환하는 오류를 범할 사람을 위해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특성에 반하는 밈(Meme) 이론, 즉 문화유전론을 내놓았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었지만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 349쪽

최근 우리 사회는 새로운 문화 유전자를 발견했다. 바로 집단지성이다. 물론 집단 지성은 대중의 의식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한 의식의 반영이라는 대중 의식과 계속해서 발전하는 집단 지성 사이에는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소통이다. 막장 드라마라면서도 계속해서 시청률을 상회할 수 있는 것은 소통이 없는 대중 의식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 지성은 이미 졸렬한 자극과 허무맹랑한 우연, 성찰이 없는 드라마를 막장으로 규정짓고 비판하고 있다. 소통이 만들어 낸 비판의식이다.

반면 소통을 거부하고 오로지 제 갈 길(?)만 가겠다고 외치며 앞에 거치적거리는 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하면서 나아가는 저 정부는 그야말로 막장 중의 막장이다. 시민들은 소통의 장에서 지금의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그에 저항하고자 결집하고 있다.
권력과 전제에 대항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음을 <이기적 유전자>는 밝히고 있다.

다시 도킨스의 말을 차용해 와 정리해 보면,

우리에게는 우리가 먹여 살리는 공권력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지배하려는 권력자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이 사회에는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형식으로 조립되었지만 국민으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 권력자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대한민국에서 깨어있는 시민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권력자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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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해

물론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은 참 좋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먼저 읽었던 나로서는 왜 이렇게 읽기가 더딘지,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은 왜 이리 많은지 나의 무식을 탓해야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의 번역이 엉망이란다.

그러니 되도록 이 전에 나온 동아출판사 <이기적인 유전자>를 볼 것을 추천한다(물론 절판이다, 헌책방 뒤져야 한다). 나도 이 책 팔고 그 책을 찾아서 다시 볼까 생각중이다. 네이버에서 ‘이기적 유전자 번역’만 쳐도 관련 이야기는 쏟아져 나올 것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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