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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항상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한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새롭게 길이 나면 그곳에서 제를 올렸다. 길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이면서 낯선 것들이 공동체로 들어오는 입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좋은 것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공동체는 밖으로 번창하라는 의미를 제에 담았다.

중앙선의 복선화로 새롭게 자전거길이 뚫렸다. 사실 길이 "새로" 뚫렸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이미 있던 길을 자전거 길로 바꾸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철도 중앙선의 역사는 멀리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만주 침략과 한반도 수탈의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중앙선을 건설했다. 1936년 일제가 밝힌 건설 목적에서는 “반도 제2의 종관선을 형성함으로써 경상북도·충청북도·강원도·경기도 등 4도에 걸치는 오지 연선 일대의 풍부한 광산·농산 및 임산자원의 개발을 돕고, 지방산업의 발달을 촉진하는 동시에 격증하는 일본(日)·조선(鮮)·만주(滿)의 교통 연락, 객·화의 수송 완화를 도모하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각주:1]  철마가 달리던 길을 이제는 두 바퀴를 굴리며 달리는 자전거들의 질주로 채웠다. 억압과 착취의 도구였던 길이 놀이와 낭만의 길로 바뀐 것이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였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아마 이런 때에 쓰는 말일 것이다.

용산역에서 6시 45분 용문행 전동차. 맨 앞칸과 뒤칸에는 자전거를 싣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앞칸에만 해도 20여 대의 자전거로 채워졌다. 거기에 레저용 자전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짐받이에 마른 풀더미가 있었는데, 할아버지 말로는 약재에 쓰이는 거라서 돈을 많이 받는단다. 지금도 자전거를 싣고 밭에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이 노인 외에도 밭에 나가신다는 중년의 아저씨와 또 다른 노인도 생활 자전거를 전동차에 실었다. 일요일이라 놀러 가는 자전거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분들의 자전거는 화려한 자전거들 틈에서도 유난히 돋보였다.

용산에서 출발해 약 1시간 반 만에 양평에 도착했다. 양평역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길을 바로 찾기는 어려웠다. 편의점에 들어가 물어서 겨우 자전거길에 올라갔다. 길은 아주 잘 닦여 있었다. 아스팔트를 덮은 철도 길은 부드러운 페달의 느낌을 다리에 전해주었다. 이제는 기차가 지나지 않아 버려질 뻔했던 능내역은 자전거들의 휴식 공간으로 변했다. 젊은 시절 모꼬지 장소로 대성리 다음으로 자주 찾았던 능내역이 이렇게 변하니 기분이 묘했다. 철도의 레일도 철길을 덮었던 자갈들도 저마다의 독특한 운치를 주었다. 산을 뚫어 만든 9개의 터널도 자전거길의 하나다. 교각은 반반한 나무판자를 깔아놓았다. 판자 위를 달리는 자전거로 달그락거리는 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 모든 것들이 한강 자전거 길에서 만날 수 없는 양평 자전거길의 재미다.

반면 급커브길이 많고 언덕길도 많았다. 자전거 초급자나 아동들에게는 쉽지 않아 보인다. 터널 안도 생각보다 어둡다.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자전거 길 관리가 제대로 이어질지도 걱정이다. 사람이 오가는 자리는 아무리 조심스러워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관리가 부실하면 금방 망가지기 쉽다. 게다가 자전거 도로는 지역 지자체가 직접 관리할 텐데, 안양천만 해도 동네마다 지자체 사정에 따라 길의 상태가 다르다. 양평이나 남양주의 재정 상태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전거 도로 관리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하루 전 팔당댐 인근 양서문화체육공원에서 '남한강 자전거길 길트임 기념식'이 있었다. 여기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4대강(사업)은 강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해서 하는 것"이라며 "소수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국민들은 절대 환영"이라고 언급했다.

4대강 사업은 크게 보 사업과 준설 사업, 그리고 강변 주변 사업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자전거 길도 크게 보면 4대강 사업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양주길 구간은 예전 폐철도를 이용해 마련한 자전거 도로다. 따라서 이 구간은 4대강 사업과 관련성이 없다. 물론 이 길이 나중에 강을 따라 연결되는 전국 자전거 도로망에 포함되므로 그 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4대강 사업을 억지로 녹색 사업으로 포장하기 위한 꼼수다. 많은 자전거 전문가들이 레저로서의 자전거 문화보다 교통수단으로서 도심내 자전거 도로 확보가 더 시급한 녹색 사업임을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으로 쫓겨난 농민만 2만 4천여 농가에 이른다. 남양주길 한가운데에 있는 두물머리에서는 현장 농민들이 지금도 계속 저항하고 있다. 이곳의 사업 공정률은 0%라고 한다. [각주:2] 이명박 대통령은 항상 그래왔듯이 이곳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농민들과 인권환경단체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프레드 피어스의 '강의 죽음'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수문학자와 공학자들은 강과 관련된 수많은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결론 내렸다. 흐르는 강물의 위력과 콘크리트가 정면으로 대치하면 언제나 콘크리트가 패배한다. 한 곳에서 홍수를 막으면, 다른 곳에서 더 자주 홍수가 일어난다. 공학자들이 강을 다스리려는 시도는 자연과 함께할 때, 자연의 요구에 순응할 때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각주:3]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올여름 많은 비 때문에 한강과 그 지천들, 지방의 많은 하천의 둔치에 만들었던 수많은 구조물과 자전거 도로들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본다면 지금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 얼마나 허울 좋은 껍데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뚫린 자전거길은 무척 반갑다. 하지만 또한 슬프다. 반갑게 맞아들이고 즐겁게 달려야 할 그 길에 묻어 있는 이 수많은 이야기와 애환들을 언제쯤 세상에서 알아줄까.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길은 길이다. 길을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도 들어오지만, 전염병과 전쟁, 폭력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놓고 달리는 이 자전거 길이 언제나 평화와 행복을 전해주기를 바라면서도 또 다른 욕심과 욕망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1. 네이버 지식사전 "중앙선"에서(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1346) [본문으로]
  2. 인권오름-4대강 사업 공정률 0%, 팔당 두물머리를 지키자 [본문으로]
  3. 이정환닷컴-"4대강,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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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 횡성

내 몸에 맞는 최대속도를 찾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과 산위에서 내려오는 단풍진 숲의 모습. 길의 저편 끝까지 이어진 은행나무 가로수 길. 그곳을 달리다보면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들. 간간히 내 옆을 달리는 자동차들의 시샘일 듯 뒷꽁무니에서 날아오르는 낙엽들이 스치듯 나에게 다가서면 나는 넋이라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양평에서 횡성으로 가는 길을 가다보면 홍천과 횡성으로 갈라지는 길을 만난다. 거기까지는 내 옆으로 80~100km 가까이 달리는 차들이 주는 위압감에 핸들을 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지저분한 갓길에 있는 작은 돌맹이 하나도 놓칠세라 주변 풍광은 신경쓰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횡성으로 가는 6번 국도는 왕복 2차선의 한적한 길이다. 차들도 훨씬 적고 달리는 속도도 느려진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줄줄이 서있고 가을걷이가 끝나 볏단을 세워놓은 논과 멀리서 자전거만 지나가도 짖는 개들, 드물게 서있는 당산나무(마을 입구에 서 있는 큰 나무)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 재미가 좋다. 그러나 횡성까지는 구비구비 언덕길들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진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코스가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익히 알려진 라이딩 코스라고 한다.





마침내 징한 언덕길을 만났다. 왜 이리 언덕이 심한가 했더니 여기가 도덕고개란다. 고작해야 해발 230m 정도에 불과하지만 첫번째 고개라 너무 힘들었다. 도덕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횡성군으로 진입이다. 횡성군청 소재지까지 달리는 길, 곧바로 내리막으로 연결된다. 차도 별로 없겠다 싶어 올라오면서 쌓인 한풀이 겸 내리질렀다. 그러나 난 스피드광은 못되나 보다. 일단 가속이 붙은 자전거를 제어하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거리감각이 순식간에 뒤바뀌니 핸들을 어느 점에서 꺾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뿐만아니라 돌발상황에서 갑자기 핸들을 꺾게 되거나 브레이크를 잡는다면 그대로 곤두박질 치고 큰 사고가 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감쌌다. 결국 천천히 브레이크를 잡으면서 무리없이 내려오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순식간에 1km를 내달리는 그 느낌은 정말 자전거를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쾌감이다.









그러나 언제나 불안한 걱정은 현실로 된다. 다음 고개를 넘어 다시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갓길에 버려진 건축폐기물을 피하다가 그만 핸들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 차도 한가운데로 꺾어져 들어갔다 간신히 되돌아오는 일을 겪었다. 만일 뒤에서 차라도 달려왔다면 그 자리에서 차에 치였을 터. 십년은 감수한 기분이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지면에 스치며 충격을 받아 발톱이 지금도 아프다. 그러나 천만다행이다. 내리막길, 특히 차도의 내리막길은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


예정보다 횡성에 일찍 도착했다. 점심도 건너고 1시 반경에 횡성군내로 들어와 오복장이라는 자장면 집에서 자장면을 먹었다. 매일 여관방을 잡고 다니다보니 먹는 건 좀 아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일 횡성까지 가는 길이 좀 헷갈려 다시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자세한 길을 다시 프린트하고 모레 있을 대관령 등정을 위한 선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 어렵지도 않고, 또 쉽지도 않을 것 같다. 아무튼 내일 모레 4일이면 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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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 양평

갓길은 곧 생명 



<< 아버지가 출발 전 찍어준 사진

뻔하다고 생각했던 길에서 2번이나 어긋났다. '천상 길치'라고 하지만 어쩌면 너무 자만한 건 아니었을까? 한강 자전거길을 따라가다가 멋모르고 들어간 길, 한강이 참 작다 생각했는데, 나타나는 현수막, "중랑천 시민 걷기 대회'... 그렇다면 여기가 중랑천? 아차 어디서 잘못 들었을까.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먼저 산책 나온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서울숲쪽으로 가란다. 다시 달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울숲은 아니다 싶었다. 다시 자전거 타고 나온 노인 일행들에게 물었다. 중랑천 직전에 뚝섬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자전거 길을 끝까지 달려 워커힐 호텔 앞쪽으로 가란다. 양평가는 길이라며 친절히 알려주는 노인분들. 돌아가고 묻고 다시 찾아가고 하며 뚝섬길을 따라 달리기까지 30분은 놓친 것 같다. 체력은 체력대로 소비하고...


두번째로 길을 잃은 곳. 자전거 동호회 분들로 보이는 3분에게 어디까지 가시냐고 물었다. 미사리까지 가신다고 해 그럼 양평가는 길을 아시냐고 물으니 미사리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으니 그리 가는 게 어떠냐고 하신다. 속으로 '워커힐 호텔 앞을 지나쳐야 한다는데' 했지만, 3분 모두 워낙 프로 같은 느낌이 들고 길을 많이 가보신 것 같아 믿고 따라갔다. 그렇게 천호대교를 넘었다. 그러나 미사리 앞에서 공사중 팻말에 좌절. 길이 끊긴 것이다. 다시 그분들과 작별하고 천호대교를 도로 건너 워커힐 호텔 쪽으로 길을 틀었다. 야트막한 언덕길, 하지만 벌써 지쳐 있었다. 시간은 12시. 호텔 앞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길을 묻되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 것, 목적지가 정확하게 같지 않다면 함부로 따라가지 말 것.


워커힐 호텔 앞을 지나면서 계속 이어지는 6번 도로. 가느다란 갓길은 생명선이었다. 그러나 덕소에서 잠깐 또 길을 잘못 들어버렸다. 위험하다 싶어 좀 피해간다는 것이 완전히 돌아버렸다. 사실 갓길을 처음 달리다 보니 이 길이 정말 위험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뒤에서 시속 70~90km로 달리는 자동차들, 그리고 버스와 트럭은 정말 두려운 존재다. 


 << 멀리 팔당댐이 보인다.


능내쪽으로 빠졌다. 시간이 되면 들려볼까 했는데, 초행길이니 관광은 포기했다. 새로 난 6번도로는 터널도 많아 위험하다고 한다. 구도로가 갓길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차들이 많지 않아 달릴만하다. 간간히 나타나는 언덕들이 심히 불편하지만...


양수대교를 넘어갈 때는 차들의 속력이 더욱 불붙은 것 같다. 다행히 이쪽의 갓길은 자동차 한대가 온전히 설 수 있을만큼 넓다. 최대한 길 바깥으로 달렸다. 트럭들이 지나갈 때마다 일으키는 바람이 마치 내 등뒤를 떠미는 것처럼 느껴진다. 

양평가는 갓길에서 많이 보는 것 중의 하나가 동물의 시체다. 어떤 것은 이미 흙더미와 썩여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아무 생각없이 그 시체들을 밟고 넘어왔다. 하지만 아무리 시체라지만 밟고 지나가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내가 또 확인하는 것 같았다. 종종 나오는 동물의 주검들을 이제는 피해간다. 그리고 잠시 그들의 안식을 빌어준다.


금성의 김현용 선배가 추천한 '들꽃 수목원'이 보인다. 역시 그냥 통과다. 멀리서만 봐도 참 예쁘게 보이는 수목원인데 안타깝다. 잔인한 오르막길이 나온다. 딱 한번 걸어서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는 탄력을 이용해 한번에 올랐다. 조금씩 요령이 붙는다. 하지만 어느새 근육에서는 이상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느낌 쥐나기 전의 그 징조다.


10lkm 정도 남았다. 정말 힘들다. 시간은 3시. 한 한시간 달려야 하나? 가다보니 시내가 보인다. 다 온 것이다. 시내 들어가기 전에 홍천-횡성 가는 길이 갈라진다. 내일은 이길로 해서 횡성까지 가야 한다. 어떤 언덕이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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