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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을 넘는 것은 의외로 쉬웠다. 전날 세번의 고갯길을 넘으면서 생긴 요령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제 묵은 곳의 해발고도가 높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대관령을 조금만 오르다보면 해발고도 700m지점에 도달하고 거기서 더 달리면 에너지연구소라고 풍력발전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해발고도 832m 대관령 정상!!! 그렇게 경외했던 장소에 이렇게 쉽게 올라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내려가는 길의 끝에 강릉이 기다리니 당황스러움 보다는 기쁨이 크다.
대관령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이 내리막길은 강릉영동대학까지 연결되며 약 18km다. 이 길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힐클라임대회의 정식 코스이기도 하다. 힐클라임 대회는 자전거를 타고 강릉영동대학(해발고도 30m)에서 출발해 대관령 정상까지 18km를 오르는 대회로 자전거 매니아들에게는 도전해 볼만한 대회라고 한다.
역시 내려가는 길은 정말 위험천만하고 스릴있다. 특히 급커브길과 급경사가 겹쳐 있다보니 손에 땀을 쥐고 손목에 너무 강한 힘이 들어가 시큰거릴 정도로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강릉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로 했기에 강릉교도소 앞을 지날 때 지인에게 경포대에서 만나자고 문자를 전송했다. 강릉시도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닌지라 복잡했다. 초입부터 헤매며 물어물어 찾아가던 중 관광안내소가 보여 직원에게 강릉시 지도를 부탁해 받을 수 있었다. 관광안내소는 여러 여행객들에게 매우 유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상세한 여행지도를 받을 수 있어서 지역의 관광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길에 대한 안내도 비교적 자세히 되어 있어 낯선 여행객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된다.
안내지도를 보며 경포대를 찾아가던 중 친구 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민에게는 자전거 여행을 간다고는 얘기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는지, 내가 강릉에 도착했다니까 놀라는 눈치다.
"야, 나 여러번 죽을 뻔했다.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다."
"너 진짜 미쳤구나."
"그러게, 하다보니 내가 정말 미친 짓을 했구나 싶다."
"암튼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
"야 한번 지원 안 나오냐?"
"나도 하번 가고 싶은데, 일정이 어떻게 되냐?"
대략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니 민은 진심인지 꼭 가겠다고 말했다. 그 말만으로 참 기뻤다. 오지 않는다 해도 멀리서 진심으로 응원하는 한 사람을 얻은 기분이다.
원래 일정은 동해까지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포대 바다 앞에 서니 더 달리고 싶지 않았다. 바다를 멀리 바라보다 해변의 모래 위로 누워버렸다. 파란하늘에 눈이 시리다. 눈을 감았다. 서울을 출발해 여기까지 달려왔던 과정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괜히 내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한순간 이만큼 했으면 정말 잘한거다 싶으면서 이제 그만 서울로 돌아가자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무엇보다 외롭다는 느낌, 이만큼 했으면 할만큼 한 거라는 위안이 나를 감쌌다.
눈을 떴다. 새파란 하늘이다. 다시 일어나 앉았다. 두 소녀가 모래를 컵에 담아 바다로 던진다. 아이들에게는 무척 진지하고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엄마가 바다 가까이 가지마라 나무라지만 막무가내다. 어차피 돌아올 모래들을 계속 그렇게 바다로 던지는 아이들. 그들에게는 행동 그자체가 소중하고 의미있다. 누가 무어라 하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 행동이 놀이이고 학습이다.
약속한 지인 선영씨와 만났다. 예전 직장에서 알게 된 사람이다. 그냥 '아는 여자'라고 하면 될까? 선영씨에게 풍성한 지원을 받았다. 자기 동네에 왔으니 손님 접대를 제대로 하겠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고 위안이다.
진짜 원조 초당순두부 집에서 순두부와 비지를 정말 맛있게 해치우고 근처의 허난설헌 생가에 들러 주옥같은 그의 시를 읽으며 즐거운 낮 한때를 보냈다. 다시 택시를 타고 나를 안내한 곳은 오죽헌. 율곡 이이 선생의 생가이며 신사임당의 친정집이라고 한다. 이곳은 꽤 잘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허난설헌 생가의 풋풋함이 더 정겹다. 저녁에는 경포의 바닷가에서 회를 먹었다. 그야말로 융숭한 칙사 대접을 받은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오늘 하루는 이곳 경포대에 있는 찜질방에 묵고 내일 출발할 것이다. 서울에는 비가 왔다고 하지만 여기 강릉은 파란 하늘에 낮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글송글 맺힐 만큼 따뜻하다. 내일은 동해를 지나 삼척까지 가볼 예정이다. 오전에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 비가 온다면 갠 다음에 출발할 것이다. 여기서 까먹고 헝클어진 일정을 어떻게 만회할지는 삼척가서 고민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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